청산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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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금은 전국적인 알곡 총수확고자료를 가지고 수령님의 집무실로 가고있었다. 수령님께서 그에게 자료를 독촉하시였던것이다.

총수확고 집계가 방금 끝났다. 그는 농업성에 나가 도별 실수확고를 총집계하는 사업에 같이 참가했었다. 수령님께서 기다리시는 수자였다.

그의 걸음걸이는 여느때없이 가볍고 힘찼다.

수령님께서는 가을에 청산리에 나갔다가 들어오시며 김만금에게 청산리는 풍작이 들었다, 그것은 의심할바 없다, 리종수로인이 증언했으니까, 그러나 청산리만 대풍이 들어서는 의의가 별반 없다, 내가 년초에 청산리를 지도한것이 한개 협동조합의 농사나 잘되도록 하자는데 목적이 있은것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전국적인 예상수확고판정사업을 엄밀하게 할데 대하여 지시를 주시였었다. 그 지시를 김만금은 정확히 집행하였다. 몇개의 군과 개별적인 협동조합들에 직접 나가 판정과정에 허풍을 치지 않는가를 검열하였다. 당 농업부, 농업성, 국가검열성 일군들이 각도에 내려갔었다.

그런데 판정하여 종합한 전국적인 알곡 총예상수확고는 최고수확년도인 1958년의 수자를 릉가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에서 내각에 보고하였고 농업부는 수령님께 문건으로 직접 보고드리였다. 김만금은 문건에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수확고이므로 알곡을 다 탈곡한 다음 실수확고를 보고드리게 될 때까지는 장담할수 없다고 인정합니다.》라는 내용을 첨부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김만금에게 《풍년에는 털수록 낟알이 나온다고 했소. 그러나 아직 만세를 부르지 맙시다. 탈곡을 다그쳐 년중으로 끝내야 하겠소.》하고 지시하시였다. 그리하여 년내로 탈곡을 끝내고 수령님께 총실수확고를 보고드리게 된것이다.

그는 활개를 치며 복도를 걸어갔다. 원래 걸으면서 활개를 치는 습관이 있긴 하지만 지금 기분이 격앙되여 그 습관이 더 뚜렷해졌다. 여기서는 정중하게 걸어야 한다는 관념도 잊었다. 집무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서면서부터야 정신이 들어 걸음걸이를 조심스럽게 하였다.

창밖에서는 흰 눈가루를 걷어안은 바람이 웅웅대며 불었다. 흰 눈가루가 창문에 들씌워지기도 했다. 올해는 일기조건이 불리했다. 만약 날씨가 잘해주었더라면 수확고가 더 높아졌을것이다.

책임부관이 일어서서 《기다리십니다.》하고는 집무실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수령님께서는 집무탁에 앉아 문건을 보고계시였다.

《부장동무요? 어서 오시오.》

그이께서는 보시던 문건에서 눈길을 들고 일어서시였다.

《여기 오오.》

그이께서는 집무탁뒤에서 나오시여 가까이 다가온 김만금의 어깨를 잡고 쏘파에로 이끌어가시였다.

《자, 앉기요.》

먼저 앉으며 김만금이 끼고 온 문서철에 눈길을 보내시였다.

《그래 말해보오.》

김만금은 문서철을 펴기 전에 총수확고를 먼저 말씀드리였다.

《올해에 380만 3,000t의 알곡을 생산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예상수확고를 알고계셨기때문에 그만큼한 총생산량을 짐작하고계시였지만 정작 김만금의 보고를 들으니 가슴이 쩡ㅡ 울리시였다.

《대단하오! 이것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전례없는 다수확이요.》

김만금은 흥분을 억제하느라 헛기침을 하고나서 문서철을 펼치고 각도별 생산량을 말씀드리였다. 그리고 현지에 직접 가보았던 사실을 첨부하여 말씀드리였다. 함경북도는 길주군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알곡수확고가 훨씬 높아졌다. 봉암협동조합에서는 김영애가 관리위원장이 되여 년간 농사를 깐지게 지어 콩, 감자, 강냉이, 벼 등 모든 작물들의 작황들이 좋았다.

수령님께서는 길주군과 함경북도의 농사형편과 인민생활을 걱정하여 절절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여왔던 박달이 문득 생각나시였다. 박달은 지난 4월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가 아직 살아있어 김만금의 보고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할것인가.

김만금은 황해남도에 가본 정형을 계속하여 말씀드리였다. 연안군에 풍년이 들었다. 수령님께서 만나주셨던 월남자가족인 양혜옥, 채분녀는 조선로동당원이 되였으며 작업반장으로 이름을 날리고있다. 그 녀성들은 삶의 보람을 찾았으며 이번 가을에 맨처음 수확한 찰벼를 소달구지에 싣고 평양으로 와서 수령님께 선물로 올리였다. 녀인들이 올리는 찰벼를 김만금이 직접 받아서 수령님께 드리였었다.···

《그 아주머니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돈다니 무엇보다 기쁘오.》

수령님께서 그들이 농사를 잘 지었다는 보고를 받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김만금은 산간지대 농업협동조합들에도 농사가 잘되였으며 리상점들에서 특색있는 산골상품들을 많이 팔고있어 조합원들의 환영을 받고있다고 말씀올렸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고장의 형편을 말해보오.》

수령님께서 도중에 말씀하시였다.

《예. 평안남도 승호군 리현리의 실례를 들겠습니다. 3일전에 제가 갔다왔습니다.》 김만금은 최영길이 보낸 편지를 받고 그도 만나보고 그곳 농사형편도 알아보려고 현지에 갔었다. 《리현리는 저에게 약간의 파악이 있는 고장인데 제가 평남도당위원장을 하던 당시에도 못살기로 유명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땅이 나빠 못산다고 했습니다. 땅이 거친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8작업반의 선동원처녀는 땅이 나빠서가 아니라 땅에 대한 애착이 없기때문에 못산다고 주장하여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 처녀선동원이 일을 앞장서서 잘했을뿐만아니라 실천적인 행동으로 작업반원들을 이끌었습니다. 수상님께서 청산리당총회에서 하신 교시를 날마다 조합원들에게 해설선전하며 우선 자기 마을, 자기 조합에 대한 애착심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고 합니다. 리현리는 물이 귀한 고장인데 이 처녀선동원은 민청원들을 발동해서 작업반원들의 집에 물을 길어다주고 땔감이 떨어진 집에 땔감을 해결해주고 일손이 없어 집을 수리 못하는 유가족들의 집을 수리해주고 도배까지 해주었으며 리에 회의갔다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법없이 간장, 된장, 비누, 치약 같은것을 사다가 나누어주어 조합원들이 마음놓고 농사를 짓도록 보살펴주었습니다. 회의 다니느라 낮에 김을 못 맸으면 달밤에 호미를 들고나가 김을 매서 보충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우선 로력점수를 많이 벌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개인농때는 농사에 열성을 다해 실농군소리를 듣던 한 조합원이 조합에 들어서는 공동로동에 성실치 못하고 제 터밭농사에만 열성이였고 꾀병을 쓰며 일도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맡은 강냉이밭을 누군가 밤마다 대신해서 매주었습니다. 선동원처녀였습니다. 여기서 깊은 감동을 받은 그 농민은 그후 열성분자로, 작업반장으로까지 되였다고 합니다. 리당위원회에서 사업을 잘하였습니다. 이 처녀선동원의 모범을 일반화하면서 청산리정신으로 당사업을 실속있게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와 같이 훌륭한 선동원이 배출된것은 우리의 농촌들에서도 인간개조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하시였다. 그것은 천리마시대의 모습이였다.

《참 좋은 이야기를 들었소. 머리가 다 시원해지오. 처녀선동원의 이름이 뭐요?》

《리신자라고 합니다.》

《리신자!··· 그렇게 군중과의 사업을 하는것이 항일빨찌산식이요. 말만 해서는 안돼. 말과 행동이 일치되여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믿고 따르오. 어린 처녀가 참 용하오.》

수령님께서는 바람부는 들에서 조합원들앞에서 선동연설을 하는 처녀의 모습과 집집을 찾아다니며 땔나무와 물걱정을 하면서 해결해주는 처녀의 모습 그리고 달밤에 밭김을 매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하시였다.

《그 처녀는 타고난 락후분자란 없으며 개조 못할 사람은 없다는 수상님의 말씀을 명심했다고 합니다.》

김만금이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마음이 뜨거운 처녀요. 그런 핵심들이 일을 잘하니 리현리에서 전변이 일어나지 않을수 없지.》

《예. 리현리에서는 예상수확고보다 실수확고가 더 높이 났습니다. 1959년에 비해 호당분배가 알곡은 2배이상, 현금은 근 3배로 늘어날것으로 타산이 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제일 락후했던 조합이 그렇게 비약을 했으니 다른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우리가 1959년보다 무엇을 특별히 더 잘해주어서 그렇게 되였는가. 땅도 그 땅이요, 집도 그 집이요, 사람도 그 사람이다. 여기에 달라진것은 없다. 그런데 1960년에 일이 잘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당의 결정과 지시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당원들과 군중이 그것을 집행하지 않으면 한갖 빈 종이쪼박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청산리지도가 있은 때로부터 한해사이에 농촌리당사업에서는 커다란 발전이 이룩되였다. 지도일군들이 자기가 할 사업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되였다. 지금은 일군들이 혼자서 바삐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당단체와 당핵심에 의거해서 일하게 되였다.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군중을 옳게 발동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힘든 일에 앞장서자고 하며 뒤떨어진 사람을 부축하여 끌고나가고있다. 심지어 그전에 밉게 보았고 적대시하던 사람들까지 다 개조하여 우리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고있다. 이리하여 협동조합은 하나의 화목한 가정으로 되였으며 우리 당은 굳게 단결된 힘있고 생기발랄한 전투조직으로 되였다. 이것은 우리 당 군중로선의 위대한 승리이다.

공업부문에서도 천리마작업반운동이 힘있게 벌어져 사람을 교양개조하고 경제건설을 촉진시키는데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제1차5개년계획을 2년반에 수행하였으며 올해에는 작년에 비해 16%의 장성을 기록하였다. 농촌에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각각 3,000대씩 생산하여 보내주었으며 앞으로 매해 7천대씩 생산할 능력을 조성하여놓았다. 금년도 완충기의 중심과업인 농촌경리의 기계화과업이 성과적으로 실현되고있다. 올해에 불리한 기후조건에서도 농촌에서 력사상 최고수확을 이룩한것은 참말로 자랑할만 한 성과이다.

전반적인 사회적분위기가 비상히 앙양되고있다. 당사업에서는 사람과의 사업을 기본으로 하여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고있다.···

수령님께서 격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김만금은 깊은 감명속에서 그이의 말씀을 들었다. 사회주의건설에서 달성하고있는 커다란 승리는 사람들의 정신상태의 변화와 결부되여있다. 사람들의 의식이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에 맞게 발전하고있다.

김만금은 함의선 전 농업상을 만났던 생각이 났다.

《함의선동무가 저를 찾아왔댔습니다.》

《함의선이? 참, 그가 지금 어떻게 지내오?》

수령님께서 김만금이쪽으로 몸을 기울이시였다.

《집에서 놀면서 중앙도서관의 청탁으로 로어로 된 기술서적과 잡지들을 번역하고있습니다. 그가 쏘련에 떨구어두고온 딸들의 문제가 제기되여 쏘련에 가서 몇달 체류하고왔습니다. 쏘련에 갔다와서 느낀점이 컸던가 봅니다. 그는 쏘련의 엠떼에쓰들과 꼴호즈들을 돌아보았는데 언젠가 제가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의 농업실태자료를 보고드린 그 정도보다 더 참혹한 현실에 부닥쳐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뜨락또르, 자동차, 꼼바인이 많으면 무얼 하는가, 적지 않은 엠떼에쓰들에서 누구도 기계를 돌보지 않아 파철더미로 되여가고있으며 꼴호즈들에서는 무정부상태가 빚어지고있다, 아까운 우유가 땅에 흘러내리고 닭알은 얼마나 생산되는지 통계를 적당히 잡고는 다 훔쳐내가고 사람들은 극단한 리기주의에 빠져있다, 어디서나 술을 마시고 국가와 꼴호즈재산으로 질탕치게 먹고 놀아대고있다, 이렇게 개탄하면서 함의선동무는 진정한 수령을 모시지 못하고 당의 옳바른 령도가 없으면 강력한 물질기술적수단도 은을 내지 못한다고 하면서 물질기술적수단만을 우선시했던 자기의 교조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함의선의 운명을 두고 생각이 깊으시였다. 사람이 늙고 병이 들면 사업을 더 할수 없는것은 자연의 리치이다. 그러나 함의선이 그래서만 무대에서 사라진것은 아니다. 그는 당의 령도에 충실하려 했고 조국건설에 한몸 바쳐 일했었다. 그렇지만 쏘련식의 체질을 우리 식 체질로 바꾸기 힘들어했다. 그의 충실성, 헌신성은 조선을 쏘련식으로 발전시키는데로 지향되고있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물질기술적토대에서는 큰 규모에로의 협동경리의 발전이 실패할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의 견해를 증명해주는것 같은 현상들이 1959년도에 나타났었다. 그러나 청산리지도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그가 김만금이를 찾아온것이 우연치 않다. 함의선이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결코 매장되여 버리지는 않았다. 한시기 쟁쟁한 농업성지도일군이였던 그가 나라의 농업문제를 아주 외면할수는 없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1960년에 농업부문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은것은 그전해부터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농촌에 많이 넣어주고 기계화를 실속있게 다그친데도 중요한 원인이 있소. 농촌경리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면서 관리운영사업과 지도사업을 사회주의원칙에 맞게 개선함으로써 훌륭한 열매를 맺을수 있었소.》

수령님께서는 사대주의적인 사고에 빠져있던 함의선이 우리 당의 정책을 정확히 인식한것은 반갑고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그의 생활형편을 료해하고 말년을 불편없이 보내도록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최영길이 지금 어떻게 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저는 몇번 승호군당에 문의하여 최영길동무가 어떻게 생활하고있는지 알아보았지만 로동단련을 하는데 오히려 지장이 될것 같아 찾아가보지는 않았는데 며칠전에 그로부터 한해를 총화짓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김만금은 편지내용을 말씀드리였다.

최영길은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오늘 부장동무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것은 이 한해동안 어머니대지, 사회주의협동벌에서 〈풍토순화〉과정을 어지간히 거친탓일거요. 올해는 풍작이 들었소. 벌판에 낟알이 꽉 찼소. 내가 언제인가 부장동무에게 말했지만 한해농사총화는 가을에 결실을 놓고 하게 되오. 나 개인에 대한 총화도 가을을 맞으며 스스로 하여보았소. 과연 결실이 좋은지. 그것은 객관이 평가할 일이요. 하지만 한가지 말할수 있는것은 내가 사회주의협동전야를 어머니대지라고 부를수 있을 정도로 대지의 품이 어머니의 사랑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넓으며 또한 엄하다는것을 몸으로 체험했다는거요.···》 그리고 그 체험과정을 서술하였다.

수령님께서 다 듣고나서 말씀하시였다.

《나는 앞으로 협동경리를 기업적방법으로 지도하는 문제를 연구하고있소. 군인민위원회에서 농업부를 떼내여 전문 농촌경리를 지도하는 기관을 내오고 거기에 농촌경리에 복무하는 기업소들을 다 망라시켜 종합적으로 지도하게 하려 하오. 그러자면 일군들이 많이 필요한데 최영길동무같은 농업전문가이며 행정일군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못하오. 그 동무를 소환하여 큰일을 맡겨야 할것 같소.》

수령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몹시 감동된 김만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상님! 최영길동무는 조합원으로 평생 살며 일할 각오를 가지고있는데 수상님의 말씀을 전달받으면 큰 충격을 받을것입니다. 저는 그 동무가 앞으로는 사회주의시대의 요구에 맞게 사업을 잘해나가리라고 확신합니다.》

수령님께서 빙긋이 웃으시였다.

《동무들이 안주농업학교 동창생이고 농업전선에서 같이 일했는데 앞으로도 손잡고 잘해보오.》

《예.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앉소. 한가지 더 있소.》

수령님께서 방열기에서 증기흐르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시며 동안을 두었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청산리에서 우리가 준 과업을 총화하는 문제인데 어떻소? 청산리에 또 나가 총화를 짓는것이 좋겠는가. 다른 리에 나가서 짓는것이 좋겠는가.》

김만금은 머리가 빨리 도는 행동형의 사람이다.

그는 수령님의 의도를 즉시에 알아차렸다.

《수상님. 청산리지도의 의의는 청산리에 국한되는것이 아니고 그 생활력은 전국적인 범위에서 나타나야 하며 또 실지 나타났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두손바닥으로 무릎을 철썩 치시였다.

《좋소. 리현리에 가서 총화를 지읍시다. 처녀선동원 리신자도 만나보고!》

그이께서는 담화를 끝내고 걸상에서 일어서시였다.···

1961년 1월 23일 아침. 날씨는 맵짰으나 하늘이 파랗게 개이고 대기는 투명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승용차에 오르시여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과 일부 농업협동조합 관리위원장들이 방청으로 참가하여 진행될 리현리당총회를 지도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하시였다.

승용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흰눈 덮인 무연한 벌판이 펼쳐졌다. 대한무렵이여서 땅땅 얼어붙은 대지에 눈가루를 안은 찬바람이 휩쓸고있었다. 하지만 이제 구름너머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해볕이 따스해지면 대지는 거밋거밋해지면서 부풀어오르고 흰 김을 뿜어올리며 움씰거릴것이다. 또다시 봄이, 이전에 볼수 없었던 커다란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는 봄이 찾아올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영농준비로 들끓는 새봄이 금시 눈앞에 보이는듯싶으시였다. 앞으로 더욱 번영하고 부강해질 사회주의농촌과 우리 조국의 휘황한 모습이 펼쳐지고있었다.

 

주체95(200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