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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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종수로인은 닭이 홰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잠에서 깨여났다. 오랜 세월 굳어진 습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럭대며 옷을 입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하늘은 검푸른데 동쪽에서 새별이 아직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고있었다.

서늘한 가을의 새벽바람이 담장을 넘어 불어왔다. 대기는 쌀쌀했으나 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익은 낟알의 구수한 냄새와 등성이 과수원의 과일향기를 날라와 마음속이 흐뭇하게 페부로 흘러들었다.

외양간에서 소방울이 떨렁거리였다. 황소가 주인이 나타난것을 보고 일어서는 모양이였다. 리종수로인은 부엌으로 들어가 바께쯔소리를 내며 물을 퍼다가 외양간 구유통에 쏟아주었다. 황소는 넙적한 주둥이를 구유통에 대고 물을 쭉쭉 마시였다. 구수한 소냄새가 풍기였다. 리종수는 이 소냄새를 제일 좋아했다.

터밭에는 종자로 쓸 팔뚝같은 강냉이이삭들의 수염이 꼬들꼬들 마르고 잎사귀와 줄기가 누렇게 되여 서있는 반면에 가을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있었다. 가을이슬이 내려 터밭의 작물들과 닭이 못들어가게 둘러막은 강냉이대울바자와 며느리가 심은 활짝 핀 코스모스의 꽃잎과 호박과 박이 둥실둥실하게 넝쿨에 매달려 올라앉아있는 지붕과 말라가고있는 포도넝쿨 등이 물기를 머금고 번들거리였다.

차츰 동쪽하늘이 불그레해지면서 하늘색도 파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리종수로인은 황소한테 삶은 여물을 퍼주고 닭장을 열어주어 닭들이 마당으로 내려오게 하였고 토끼장에 가서 똥을 쳐내고 새 토끼풀을 넣어주었다. 꼬리가 둥글게 감긴 누렁암개가 로인을 줄곧 따라다녔다. 새끼를 배서 배가 축 늘어지고 젖꼭지들이 불어났다.

리종수로인은 대통을 입에 물고 파르스름한 담배연기를 여기저기서 피워올리며 쉴새없이 뜨락을 왔다갔다하고 굴뚝모퉁이로 돌아가보고 울타리를 흔들어보았다.

얼굴에 허옇게 비누칠을 한 내의바람의 리춘권이가 방에서 나와 수도가에 쭈그리고앉아서 뻑뻑 수염을 면도칼로 밀었다. 누렁이가 앞발을 그의 어깨우에 올려놓고 뒤덜미냄새를 맡으며 낑낑거리였다.

면도와 세면을 끝내고 어깨에 걸치고나온 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분주히 닦아대고있는 아들에게 리종수로인이 말을 걸었다.

《관리위원회에서 추석때 햇쌀로 밥을 지어 산소를 찾아가보게 하려구 올벼가을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했다지?》

《예.》

《올가을에는 조상들두 땅속에서 기뻐할게다.》

리종수로인은 추석날에 리씨의 선산인 황산에 가문의 수십명 어른들과 그만한 수의 아이들이 하얗게 모여들어 묘소들에 제사를 지내는 모양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올해는 풍작이 들었으니 제사음식을 잘 차려 조상들을 찾아보게 될것이다.

《내 살아생전에 올해 같은 풍년은 처음인것 같다.》로인은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흐뭇한 감정에 눈을 쪼프리였다. 《참, 맏이야. 내 너하구 한번 의논하자구 했는데 원동에 있던 우리 집자리에 수상님께서 찾아주셨던 그 집과 꼭같은 집을 짓고 거기 옮겨가 사는것이 어떻겠니? 수상님께서 찾아보아주신 옛집을 수복하자구나.》

리춘권의 얼굴이 불깃해졌다.

《아버지, 참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가족모임에서 토론하고 관리위원회와도 의논해봅시다. 당장은 농사일을 추세우는것이 급선무이니까 청산리가 더 부유해지는 때에 가서 옛집을 수복합시다.》 리춘권이가 대답했다.

《물론 당장 시작하자는게 아니다.》

리종수로인은 수령님께서 찾아오시여 실농군답게 집도 잘 꾸리고 산다고 하시며 남은 쌀을 팔아 기와를 올리려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기뻐하셨던 일을 잊을수 없었다. 그 집을 수복하여놓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면서 수령님의 은덕을 전해가려는것이 그의 숙원이였다.

리종수는 아침식사를 하고 작업반에 나가서도 마음이 뒤숭숭해서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눈길이 저도 모르게 자꾸 탁고개쪽으로 돌아갔다.

이 흐뭇한 가을날에 수령님께서 꼭 오실것만 같은 예감에서 좀처럼 벗어날수가 없었다. 수령님께서 청산리사람들이 한해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 알아보시려고 나오실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 하루하루 기다려왔는데 오늘 수령님께서 꼭 오실것만 같았던것이다.

그는 삽을 들고 나가 논고를 깊이 파서 논에 고인 물이 마저 빠지도록 삽질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일하는데 멀리에서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종수령감ㅡ》하고 부르는 소리였다. 머리를 든 순간 종수로인은 가슴이 왈랑거리는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큰길우에 승용차들이 서있고 사람들이 몰켜서있는데 분명 그쪽에서 달려오는 장영덕이 자기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있었다.

(아, 수상님께서 나오셨구나!)

리종수로인은 삽을 쿡 꽂아놓고 보도랑을 따라 큰길쪽으로 헤덤비며 달리다싶이 하였다.

 

×

 

하늘은 파랗고 들은 누렇다. 해빛을 받아 벼도 강냉이도 다 누런 황금처럼 번쩍인다.

가을바람이 불면서 무겁게 고개 숙인 황금의 벼이삭들이 서로 비벼대며 설렁인다. 물결친다.

들에 부는 바람에는 구수한 낟알냄새, 향긋한 과일냄새, 씁쓸한 마른 풀냄새, 보도랑의 감탕냄새가 섞이여 냄새만으로도 가을을 느끼게 한다.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연을 띄우며 달려다니고 털빛이 검기도 누렇기도 얼룩지기도 한 개들이 아이들을 뒤쫓아다닌다. 풍년에는 개주둥이에 밥알이 묻어다닌다고 하는데 그것들도 배부르니 좋은 모양이다. 황소는 채를 땅에 떨구고 꽁무니를 쳐든 빈달구지옆에 서서 새김질을 하며 둥그런 순한 눈으로 들판을 바라본다. 봄내, 여름내 쉬임없이 일한 보람을 느끼고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듯···

환한 웃음을 짓고 허리에 두손을 올리신 김일성동지께서 흐뭇한 심정으로 들을 바라보시는데 가을외투자락이 들바람에 펄럭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봉상강제방공사를 본격적으로 하여 올해에는 침수된 논이 없고 기양관개의 덕을 입어 물에 염기도 없어졌다는 김만금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시엿다. 장마철에 대동강물이 불어나면서 봉상강으로 올리미는데 그래서 논에 짠물이 섞인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 그 언제인가 손수 봉상강에서 흘러드는 물을 손가락으로 찍으시여 정말 짠가, 염기가 어느 정도 있는가 가늠해보신적이 있었다. 당시 김만금이는 없었는데 청산리농민들이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면서 아직 어느 간부도 논물에 염기가 섞이는지 물맛을 본적이 없다고 감격에 겨워하였기에 그도 깊은 감명을 받았던것이다. 그래서 염기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드린것이였다.

《묵인 땅은 없겠지?》 벼가 꽉 들어찬 논배미들을 보시며 수령님께서 장영덕이에게 물으시였다.

《수상님, 올해는 심을수 있는 땅에다가는 다 심었습니다. 토지정리도 하고 새땅도 얻어내여 농경지가 늘어났는데 거기서도 풍작이 들었습니다.》

《음, 그래? 얼핏 보기에도 작황이 좋다는것을 알수 있소. 예상 수확고가 얼마요?》

《조합적으로 정당 평균 5t은 날것 같습니다.》

《대단하군. 최고는 얼마요?》

《정당 8t 넘어나갑니다.》

《그러니까 아직 예비가 많아.》

《예. 명년에는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던중 수령님께서는 멀리에서 삽질을 하는 농민을 보시고 리종수로인이 아닌가고 물으시였다. 유근재가 그렇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만나봅시다. 작년 가을에 농사가 안됐다는 말을 나에게 하고 몹시 괴로워했다는데 올해는 어떤 말을 하겠는지.··· 리종수로인의 입에서 풍작이란 말이 나오고 로인이 기뻐해야 진짜 풍년이요.》

관리위원장이 달려가 리종수로인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는 사이에 수령님께서는 논뚝으로 들어서시였다. 벼들이 논에 차고넘쳐 벼이삭들이 논뚝에까지 척척 늘어졌다. 수령님께서는 벼이삭 하나를 꺾어드시고 총알같이 여문 벼의 알수를 헤여보시였다.

김만금이도 벼알수를 헤여보았다. 그는 다시 당중앙위원회로 들어갔다. 올해농사가 영농준비로부터 씨붙임, 모내기, 김매기에 이르기까지 원만하게 진척되여가자 수령님께서는 한해동안 농업성을 갱신하고 영농사업에 대한 지도에서 전환을 가져와 농사일이 성과적으로 진척되도록 하는데 기여한 김만금이를 중앙당으로 소환하시였다. 그래서 농업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농업부장사업만을 전임하게 되였다.

리종수로인이 다가오며 농립모를 벗고 둥근머리를 숙이였다.

《수상님,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수령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으시였다.

《예. 로인님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다 회복이 되여 일을 꽝꽝 하고있습니다.》

《그렇다니 참 다행입니다. 집안에서 다들 잘있습니까?》

《예. 다 무고합니다.》

《초급당단체위원장을 하는 아들이 일을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로인은 크고 묵직한 거쿨진 손으로 빡빡 깎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 달라졌습니다.》

《뜨락또르운전수를 하는 딸은 어떻게 지냅니까? 제방공사돌격대장을 했던 청년과 화해를 했습니까?》

《예. 그놈이 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 농사일을 착실하게 하고있습니다. 저는 사실 그놈을 사위로 삼지 않으려 했는데 방법이 있습니까. 승인을 했습니다. 탈곡까지 해놓고는 그 애들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서글서글 웃으시였다. 그 밝은 웃음이 눈부시였다.

《잔치에 나도 초청하겠습니까? 그들의 잔치국수를 먹어봐야지요.》

《허··· 수상님두.》 종수로인은 다시 머리를 어루만지였다. 《수상님!》그는 정색하며 말씀드리였다. 《제 작년 가을에 수상님께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고 죄송스러운 말씀을 올리고 그게 가슴에 맺혀 1년내내 내려가지 않았댔는데 지금은 속이 후련해졌습니다. 올해 청산리는 대풍이 들었습니다. 제 평생에 처음 보는 대풍입니다. 온 청산리에 웃음이 넘쳐나고있습니다.》

들바람이 휙ㅡ 불었다. 그러자 다시 벼들이 물결쳤다. 황금물결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황금파도속에 서계시는듯 한 심정이였다.

《로인님, 어찌 웃음뿐이겠습니까. 노래도 절로 납니다. 허···》

《예. 수상님 말씀이 옳습니다.》

《로인님, 좀 걸읍시다.》

수령님께서는 로인이 달려온 그 보도랑길을 가을외투자락을 날리며 걸으시였다. 황금물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시는것이였다.

《로인님, 요새 청산벌에 대한 노래가 나왔는데 들어보셨습니까?》

《예. 일전에 시쓰는 선생하고 작곡하는 선생 두분이 나왔댔습니다.》

《옳습니다. 김옥성이라는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그가 지은 노래들을, 특히 《결전의 길로》를 좋아하시였다. 이번에 지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도 대단히 마음에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걸으시며 흥얼거리시였다.

 

아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평안도 강서땅 청산리벌에 풍년이 왔네

 

리종수는 불시에 눈굽이 화끈 달아오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수령님께서 얼마나 만족스럽고 기쁘시면 노래까지 부르시랴. 이 대풍을 마련해주려고 정초부터 봄, 여름, 가을 쉬임없이 청산벌을 찾아주시며 로고를 기울여오신 수령님이시였다.

리종수로인의 귀에는 합창과 배합된 관현악의 장쾌한 선률이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

아 풍년이 왔네 벼풍년 왔네

평안도 강서땅 청산리벌에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

 

수령님께서는 선률을 따라 흥얼거리다가 눈을 슴뻑이는 로인에게 이 노래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이 풍년을 수상님께서 마련해주셨다는 내용이 있어서 좋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허허 웃으시였다.

《여러분들이 노력한 결실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시였다.

리종수의 눈에는 수령님께 기쁨과 만족을 더 드리려고 황금물결이 끝없이 설레이며 춤을 추는것 같았다.

《로인님, 얼마나 좋습니까?》

벼들이 춤추는 황금의 들을 바라보며 두손을 허리에 얹으신 김일성동지께서 격정에 겨워하시는 말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