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43

 

43

 

논갈이가 시작되자 리춘심이는 자기가 청산리 취득마을에 가서 일하겠다고 작업반장에게 제기했다. 취득마을 농산작업반장이 까다롭다고 운전수들이 잘 가려 하지 않기때문에 그러는것이였다.

《자존심이 보통 아니군. 청산리가 깍쟁이라는 소리에 반발하는거구만?》반장이 웃었다.

《취득작업반장에게 우리 운전수들에 대한 옳은 인식을 주어야지요.》 춘심이 새침해서 대답했다.

《그 반장이 고추같은 사람이요. 하여튼 나가보우.》

춘심이는 멜빵이 달린 곤색작업복을 입고 어깨우에서 흔들리는 중발머리우에 남자들처럼 검은 작업모를 썼으며 손에는 흰 장갑을 끼였다.

처녀가 아끼고 극진히 보살피며 날마다 깨끗이 닦아서 《천리마》호는 붉은빛의 몸체가 눈부시게 반들반들했다. 뒤에 두개의 날이 달린 보습을 차고 작업소를 출발했다.

취득마을에 이르러 작업반사무실마당에 뜨락또르를 세우고 뛰여내려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통계원 혼자 앉아있었다.

《작업반장동무 어디 있어요?》

《벌에 나갔는데.》

《만날수 없을가요?》

《무슨 일로 왔기에?》

통계원은 뜨락또르의 발동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논판에 가면 만날수 있겠지요 뭐.》

전혀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논갈이를 해주러 뜨락또르를 가지고왔는데도 이처럼 랭랭하게 대할수 있겠는가? 아마 작년 봄에 왔던 운전수에게서 받은 나쁜 인상때문일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춘심이는 문을 닫고 나와 뜨락또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돌아가고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치미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춘심이는 뜨락또르를 몰고 논벌로 나갔다. 논벌에서는 소를 두마리씩 메워 논갈이를 하고있었다. 작업반장이 거기에 있는지?··· 춘심이는 논두렁을 타고넘어 첫 논에 들어섰다. 그리고 논귀때기까지 후진하여가서 보습을 내리웠다.

《탕탕탕탕.》 뜨락또르는 연통으로 연기를 내쏘며 전진했다. 순식간에 논판흙이 뒤집혀지며 두줄기의 이랑이 생겼다.

춘심이는 규격포전이 아닌 둥글기도 하고 모서리지기도 한 논을 전진과 후진을 해가며 빈자리없이 모조리 갈아엎고 다음논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해질녘까지 갈고있는데도 누구 하나 와보지 않았다. 소로 논갈이를 하던 농장원들이 멍청해서 바라볼뿐이였다.

어슬어슬해질무렵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작업복을 입은 우에 솜덧저고리를 걸치고 모자를 쓴 작달막한 사람이였다. 그는 춘심이가 갈아엎은 논을 이윽히 바라보며 말없이 담배를 피우더니 돌아서가버리였다. 아마도 반장 같았다.

그렇지만 춘심이는 그 사람의 행동에는 개의치 않고 날이 어두워지자 전조등을 켜고 논갈이를 계속했다. 배고프고 피곤했으나 작업반장이 찾아올 때까지 해보려는 결심이였다.

작업반장은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대신 통계원이 보자기에 무엇을 싸들고 나타났다.

《좀 세워요.》그가 소리쳤다.

뜨락또르가 멈춰서자 통계원은 춘심이에게 다가와 발동소리때문에 목소리를 높여가지고 물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일하겠어요? 자, 식사를 해요.》

춘심이는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끼였다.

《아니, 이 논을 마저 갈고는 집에 가서 식사하죠.》

《집이 어딘데?》

《암화에 있어요.》

《어마나. 청산리출신이구만요. 어쩐지 글쎄··· 그래두 좀 요기를 해요. 지짐이예요.》

《싫대두요.》

춘심이는 뜨락또르를 전진시키였다. 통계원은 논두렁에 이윽히 서있다가 들어가버리였다.

새 논 한뙈기를 다 갈아번진 춘심이는 비로소 뜨락또르를 몰고 논벌에서 나왔다. 그리고 석두재너머 암화로 향했다.

이튿날 새벽, 날이 밝아올무렵 취득마을 앞벌에서 뜨락또르의 동음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온 동네를 깨웠다. 춘심이가 새벽 일찌기부터 뜨락또르를 몰고와 논갈이를 하는것이였다. 춘심이는 뜨락또르운전수들이 결코 대접이나 받으려고 일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줌과 함께 작업반장에 대한 괘씸한 생각이 들어 이처럼 신새벽부터 논갈이를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보다 소중하고 뜨거운것이 작용하고있었다. 내가 태여나고 자라난 고향, 어머니의 젖줄기와도 같은 땅, 고향의 딸로 성장하도록 해준 고마운 대지,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고향산천 그리고 이 대지에 명줄을 걸고 살아왔으며 대지의 주인이 되여 낟알을 가꾸고 수확하여 나라를 받들고있는 부모형제들과 이웃들인 고향사람들께 바치는 자기의 첫 보답이라고.

땅을 아끼는 뜨락또르운전수가 되여야 한다고 말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이 땅에는 선대의 피와 땀이 스며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온 땅. 아, 어머니대지여, 고향의 흙이여! 나의 땀, 나의 정성, 나의 애정을 다 바쳐 내 이 땅을 갈아번지고있거니 나의 충정의 넋이 밑거름이 되여 알찬 수확이 이루어진다면 내 무엇을 더 바라랴. 사랑하는 뜨락또르야. 기름진 땅을 갈아엎으며 힘차게 전진하자. 땅을 알뜰히 갈아엎자. 땅을 소중히 여기자!)

희미하게 밝아오는 하늘에 새별이 반짝이고 뜨락또르의 동음에 잠을 깬 마을이 술렁인다. 부엌문이 열리고 부지런한 녀인들이 물길러 나온다.

아직 날이 채 밝기 전에 어제 보았던 그 작달막하고 단단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뜨락또르를 세우고 말했다.

《너 리종수령감의 딸이라지?》

《그런데요?》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

《반장아저씨는 옹졸해요. 깍쟁이! 아저씨때문에 청산리가 깍쟁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알겠어요?》

《허허허···》

저녁에 작업소로 돌아갈 때 춘심이는 고기, 떡, 지짐따위를 한보따리 싸가지고가서 운전수들에게 다시 청산리가 깍쟁이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종아리를 치겠다고 말하여 그들을 즐겁게 했다.

춘심이는 봄내 취득작업반에 속해 일하였다. 두철이가 사는 취득마을이다. 잊어버리려고 하면서도 혹시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함께 어차피 생각하게 되는 두철이였다. 그러다가 그를 보았다.

모내기가 시작될무렵의 어느날 춘심이는 논에 써레를 치다가 세명이 한조가 되여 논뚝 쌓는 가래질을 하는 조합원들속에서 두철이를 피뜩 보게 되였다.

(그가 옳을가? 잘못 보지 않았을가? 그는 건설반에 가있다던데···)

웬일인지 가슴이 활랑거리였다. 차두철이가 청년돌격대장으로서 봉상강뚝공사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것을 오빠를 통해 알고있었다. 농번기가 시작되면서 조합청년돌격대는 해산되여 각기 자기 작업반으로들 헤여져갔다. 그러니 두철이는 건설반에 가있어야 할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취득농산작업반에 나와있는것일가? 잘못 보았을것이다. 두철이가 운전수양성소에 땀을 흘리며 찾아왔던 그 밤에 얼핏 보고 아직 본적이 없으니 그의 모습이 눈에 설것이다. 춘심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논판을 한바퀴 돌아 다시 가래질군들을 가까이 지나치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차두철이가 옳았다. 그가 가래장부를 잡고 두 녀인이 가래줄을 당기고있는데 녀인들은 재잘대며 웃고있으나 두철이는 우울한 얼굴이였다. 그리고 분명 뜨락또르를 타고있는 춘심이를 보았겠는데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춘심이, 써레를 잘 치는구나!》

《아무렴, 처녀의 일솜씨가 다르지.》

걷어올린 장딴지에 논흙이 잔뜩 묻은 녀인들이 가래줄을 당기며 지나가는 뜨락또르에 대고 소리쳤다. 여기 두철이가 있으니 보아라! 하는 뜻으로 우정 그러는것 같았다.

두철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있었다. 녀인들이 두철이에게 뜨락또르에 앉은 춘심이가 참 곱지 하고 말하는것 같았다.

《총각, 머리를 쳐들어요.》

《애개개, 춘심이가 다른 논판으로 넘어가는구나.》

《가래날은 왜 콱콱 박나? 공연히 우리보고 화를 내는구나. 호호···》

춘심이는 다른 논판으로 건너가 써레치기를 시작하자 후ㅡ 한숨이 나갔다. 하지만 속이 알찌근해왔다. 두철이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고 결별의 편지를 내긴 했지만 정작 그를 보게 되니, 그것도 청년돌격대장으로 명성을 떨친 후에 논판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가래질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애틋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춘심은 점심시간에 반장에게 농산반으로 건설반에서 지원로력이 나왔는가고 물었다.

《아니, 아직은 모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읍에서 지원나온 로력뿐이요.》

《녜, 그래요.》

작업반장은 처녀를 의아해서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아, 두철이 말이요? 두철이는 우리 농산반으로 적을 옮겼소. 흙을 주무르며 진짜농사군으로 새 출발 하겠다는거요.》

작업반장의 웃는 모습을 보고 춘심이는 얼굴을 붉히였다. 청산리에서는 춘심이와 두철이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없겠으면 없고 반장이 웃겠으면 웃고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였다.

두철이가 농산반에 들어와 진짜농사군으로 새 출발 하고있다는 반장의 말이 처녀를 몹시 격동시켰다. 아버지가 두철이에게 바라는것이 그것이 아니였던가! 춘심이는 이 순간 두철이에 대한 련민의 정으로 가슴이 끓었다.

며칠후 춘심이가 낮작업을 끝내고 밤작업을 하는 교대운전수에게 뜨락또르를 넘겨주려고 정비도 하고 청소도 하고있는데 작업반장이 찾아왔다. 석양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있었다.

작업반장은 이제는 춘심이와 퍼그나 친해졌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고 파르스름한 담배연기를 들바람에 날려보내며 말했다.

《춘심이, 고맙소.》

《무엇이 고마워요?》 걸레로 차체를 닦으며 춘심이가 물었다.

《농민들을 위해 진심을 바치고있으니···》

《녜.ㅡ》 처녀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농민의 딸인걸요.》

작업반장은 한동안 담배를 피우고있다가 다시 말을 붙이였다.

《내가 객적은 소리를 하는것 같은데 아직 두철이와 풀지 못했소?》

춘심이는 머리를 홱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뭘 푼단 말이예요?》

《온 청산리가 다 아는데 뭘 그러나? 내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취득에 나타난 춘심이때문에 두철이가 기를 못 펴고있기때문이야. 사실 다른 뜨락또르가 여기 와서 일했으면 하는 심정이더군.》

석양빛이 처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있었다. 그래서 처녀의 붉어지는 얼굴이 불타는듯 하였다. 춘심이자신도 두철이를 거의 매일 보는것이 괴로왔다. 두철이가 의식적으로 눈길을 피하고있으니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그를 피하고싶지는 않았던것이다. 피하고싶었다면 벌써 다른 뜨락또르와 바꾸었을것이다.

그런데 그냥 이대로 지낼수야 없지 않는가. 농산반장이 왼심쓰는 정도가 됐으니 무슨 마련을 보아야 할것이다. 춘심이는 여기에서 자기가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두철이는 낯을 들지 못하고있다. 자기를 심심히 반성하며 진짜농사군이 되기 위해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춘심이가 행동해야 하는것이다.

그럴 기회가 마침 찾아왔다.

한배미의 논을 다 갈고 다른 배미로 뜨락또르를 몰아가던 춘심이는 아차 실수하여 그만 뒤바퀴가 물도랑에 빠지고말았다. 삽으로 뚝을 헐어내고 바퀴가 나올 길을 닦아야 했다.

자기의 운전기술이 아직 서툴다는 창피를 느끼며 춘심이는 작업반장에게 방조를 요청했다. 작업반장은 방조를 요청하지 않아도 응당 도와주어야 할 립장이라며 쾌히 응했다. 그는 논판에서 일하는 남자로력들을 불러모았다. 그중에는 두철이도 있었다.

《두철이가 책임지고 차를 끌어내도록 도와주라구.》

반장이 지시하며 의미있는 웃음을 눈에 담았다.

청년돌격대 대장을 한 경험이 있는 두철이에게는 뜨락또르를 물도랑에서 빼내는 일이 아이들 장난만치 쉬운것으로 여겨졌으나 그 뜨락또르의 운전수가 춘심인것으로 하여 심리가 복잡했다. 물론 누구의 뜨락또르가 빠졌건 또 반장의 지시가 없다 해도 응당 솔선 나서서 도와줄 두철이였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도랑의 뚝을 삽으로 깎아내라는 지시를 주고는 자기는 마을로 들어가 통나무 두대를 메고왔다. 그가 당도했을 무렵에 벌써 바퀴가 빠져나갈 길을 닦아놓았다. 그러나 경사가 심하고 뜨락또르가 기울어져있어 그대로는 빠져나갈수 없었다. 이것을 미리 타산하고 통나무를 메여왔다.

그의 지시로 통나무들을 바퀴밑에 넣고 사람들이 매달려 지레대처럼 뜨락또르를 들어주며 차가 전진하게 했다.

그가 소리쳤다.

《자, 시작!》

조합원들이 통나무에 매달려 와ㅡ 소리치는것과 동시에 뜨락또르가 용을 쓰며 앞으로 전진했다. 춘심이는 마치도 자기 몸으로 뜨락또르를 이끌듯 허리를 숙이고 손발에 힘을 주었다.

《나간다.ㅡ》

함성과 함께 뜨락또르는 보뚝우에 올라가 섰다.

법석 떠들며 녀자들은 돌아가고 남자들은 담배를 피워물었다. 모두들 두철이를 칭찬하는데 그는 눈을 내리깔고 잠자코 담배만 피웠다.

차에서 내린 춘심이가 다가왔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고마와요.》하며 처녀는 두철이를 쳐다보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부닥쳤다. 뜨거움과 열렬한 감정이 섬광처럼 오고갔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춘심이는 두철이에게서 새로운 체취를 느끼였다. 어딘가 진지하고 엄엄했으며 검실검실하고 묵직했다. 균형잡힌 육체에서 억센 남성미가 풍기였다. 담배를 피우는거며 특히 석쉼하게 갈린 목소리는 처녀를 위압하는듯 했다.

그들은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것을 서로 깨달았다. 하지만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춘심이가 먼저 말했다. 《남자번지개》가 아닌가.

《인사를 못했는데··· 돌격대에서 수고했어요. 얘기 다 들었어요.》

두철이 대답하였다.

《뭐 그저 관개공사장에서 돌격대소대장을 한 밑천이 있어 좀 했을뿐이요.》

서로 결별을 선언했고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거듭 맹세를 했었지만 지금 만나고보니 그것이 진심이 아니였으며 속으로 서로 깊이 사랑하고있었다는것이 명백해졌다. 한순간에 춘심이도 두철이도 그새 별일없은듯 한감이 들었다.

두철이가 입을 다물고있으니 춘심이가 또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보낸 편지를 보았어요?》

《보았소. 나는 춘심이를 고맙게 생각하오. 나는 탓하지 않았소. 나는 내가 물러나야 하며 어차피 갈길은 서로 갈라졌다고 생각했소.》

《다시 합쳤지요.》

《정말이요?》

춘심이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시원한 들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건··· 고향이 이 두철이를 받아주었다는 소리요. 나는 고향에 몸만 와있었소. 춘심이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고향에 마음의 뿌리를 내릴수 있겠소!》

《나쁜 사람! 내 속을 그렇게도 태우구는···》

춘심이가 흐느끼듯 말했다.

《용서하오.》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요?》 춘심이가 눈물을 삼키였다.

두철이도 눈굽이 축축하게 젖어났다.

그 눈물들이 마음속의 말을 전달하고있었다. 뜨거운 애정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목이 다 쉬였군요.》

《잠을 좀 못 잤더니···》

《담배를 언제 배웠어요?》

《농산반에 와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러니 나도 농사군이 되여가는것 같아.》

이러루한, 다른 사람에게는 별반 의의가 없는 이야기를 계속하며 그들은 모내기로 들끓는 청산벌에 서있었다.

 

×

 

모내기가 끝나갈무렵에 입원한 아들에게 가있던 강옥숙이 돌아왔다.

청산리 암화마을에 도착한 옥숙이는 자기 집부터 찾아갔다.

녀인은 자기 집을 삭갈린줄 알았다.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변했고 군데군데 떨어져나갔던 담벽이 새로 흙매질을 했을뿐아니라 하얗게 회가루까지 발라 여간 산뜻하지 않았다. 널쪽들이 더러 떨어져나갔던 퇴마루도 말짱 새로 다시 했다.

집은 비여있었다. 방문에 쇠가 걸려있어 들어가보지 못하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당에는 터밭에서 강냉이, 감자, 당콩, 부루 등이 싱싱하게 자라고있었다. 누군가 갓 김을 매주어 풀 한포기 없었다.

대체 어찌된 일일가? 누가 이렇듯 집을 새로 꾸려주고 터밭일까지 해주었을가? 작업반에서?··· 병원에 면회왔던 문영숙반장에게서 (1,2작업반이 통합하여 1작업반이 되면서 강옥숙은 1작업반원이 되였다.) 작업반이 나서서 집도 수리하고 아이들은 리춘권이네 집에 가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대충 들었는데 실지 와보니 너무나 놀랍고 더우기는 터밭일까지 착실하게 해줄줄 몰랐다.

옆집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아에미가 왔나?》하며 신을 신고 울바자로 다가왔다. 강옥숙이도 다가갔다.

《할머니, 누가 이렇게 집을 수리하고 기와까지 올렸어요?》

《춘심이 오빠가 민청원들을 동원시켜서 했지. 제가 솔선 민청원들을 데리고와서 일했어. 휴식일마다 와서 일했구 일 끝난 밤에도 했어. 참 자물쇠가 걸려 집안을 못 봤겠구만. 도배지도 새로 바르고 장판도 다시 했지. 부뚜막도 다 다시 쌓았어.》

《터밭은 누가 와서 가꾸었나요?》

《춘심이 오빠두 하구 반장, 민청위원장이 했지. 춘심이 오빠 리춘권 그 사람이 참 인정이 깊은 사람이야. 터밭에 진거름을 듬뿍 내구 씨앗을 뿌렸다네.》

《···》

《남편없이 녀자 혼자 사는 집인데 좀 더 일찌기 도와주었어야 했을거라면서 오히려 죄스러워하더구만. 쯔쯔··· 그저 뚝하구 말이 없는 억대우같은 사내로만 보았는데 속이 비단결같아.》

옥숙은 말없이 눈물만 닦았다.

《그래, 철진이는 다리를 다 고쳤나?》

《녜. 이젠 저 혼자 걸어다니기때문에 내가 먼저 왔어요. 집일도 궁금하고 작업반에도 일을 나가야 하겠기에··· 내 없는새에 모내기를 거반 끝냈군요. 미안해서 병원에 더 있지 못하겠어요. 병원에서 극진하게 치료해줬어요. 해방전 같으면 우리같은게 어디라고 그런 큰 병원에 가서 수술까지 할수 있겠어요? 그것두 무료루··· 돈 한푼 안 받아요. 할머니, 정말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예요. 사람들두 다 좋구요. 나는 내 혼자밖에 모르던 녀자, 장사질이나 하며 건달을 부리구 돈 1전을 가지구 부들부들 떨던 녀자예요. 리기주의자구 린색한 녀자였지요. 그런데 대체 무슨 리유로 우리 아들애를 병원에 입원시켜 병신다리를 고쳐주구. ··· 내 장사질해서 약을 사다쓰던 생각을 하면, 이런 은혜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구 병원에 들어가 간병하는 동안에도 먹을것을 보장해주구 이렇게 집을 새로 수리해주구··· 터밭농사까지 해주니··· 대체 내가 뭐예요. 예, 할머니?!···》

옥숙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엉엉》소리내여 울었다. 어깨가 세차게 오르내리고 전신이 떨렸다.

할머니도 치마로 눈물코물을 씻으며 코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달라져가고있지. 지금 청산리가 얼마나 화목해졌는지 모른다구. 그러니 일이 잘될수밖에!··· 그만 울라구. 임자두 남편잃구 다리병신 된 아들을 먹여살리구 병을 고쳐보려구 고생을 많이 했지. 이제는 그게 옛말로 됐구만. 그만 그치라는데. 딸애들은 학교갔을거야. 자, 여기 열쇠가 있어. 집에 들어가 불부터 때오. 방안청소는 내가 매일 했으니까 깨끗할거야.》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

옥숙은 열쇠를 받아쥐고 방문으로 향했다. 울바자를 빙 에돌아 옆집 할머니도 삽짝문을 열고 들어왔다. 둘이 같이 가마에 물을 붓고 불을 지피였다.

《할머니, 난 점심 먹구는 일나가겠어요.》

옥숙이가 점심밥을 먹으며 말했다.

《오늘이야 쉬여야지, 집안도 돌보면서.》

《한시가 새로워요. 어서 일해서 봉창해야지요. 지난날 잘못 산걸 다 벌충해야지요.》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사람이 이렇게도 달라질수 있는가···

점심밥을 먹고 설겆이를 한 뒤 잠간 구들에 누워 허리를 편 강옥숙은 차비를 하고서 논으로 향했다. 아직 들판에는 조합원들도 지원자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강옥숙이 지내 서두른것이다. 그래서 야산기슭의 강냉이밭을 지나 논밭에 이르러 혼자서 논김을 맸다. 이윽하여 작업반원들이 하나 둘 나타났고 문영숙이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벌판에서 리춘권이도 만났다. 모두들 온 청산벌이 떠나가게 웃고 떠들어댔다.

《관리위원장하구 리당위원장한테 인사를 못하구 곧장 나왔는데 어떻게 할가요?》

옥숙이가 리춘권이에게 물었다.

《지금 사무실에 가야 없소. 관리위원장은 아침부터 아예 작업반에 나가 사오. 리당위원장도 작업반에 나갔을거요. 저녁에나 가야 만날지.》

《그럼 춘심이 오빠, 저녁에 나랑 같이 가주겠어요? 혼자서 쑥스럽구만요.》

《강옥숙아주머니가 이제는 내우를 다 하는군.》

《하···》

다시 웃음이 터졌다.

저녁밥을 먹은 뒤 리춘권이는 찾아온 강옥숙이와 함께 먼저 리당위원장 유근재를 만났다. 유근재는 벙실벙실 웃으며 강옥숙이와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당위원장사무실을 나오니 밤이 퍽 깊었다.

《관리위원장이 있을가요?》

《있을거요. 낮에 작업반에 나가 로동을 하구는 밤에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느라 늦도록 앉아있군 하오. 저기 뵈지요? 관리위원장방에 불이 켜져있소, 갑시다.》

그들은 관리위원회에 이르러 어둑시근한 복도를 지나 장영덕의 사무실에 이르렀다. 방문이 반쯤 열려져있었다. 사무실이 더워 창문과 방문을 열어놓은것 같다.

방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춘권이는 문을 넓게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관리위원장아주반이 없소?》

춘권이는 대꾸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옥숙이도 의아해하며 뒤따랐다.

장영덕은 앉아서 사무를 보는 책상에 엎드려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아, 얼마나 곤했으면!···)

춘권이는 가슴이 뭉클했다. 단순하고 고지식하고 꾀를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인 경우에 자그마한것이라도 가슴속에 맺히면 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영덕은 자기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지금 얼마나 애를 쓰고있는가.

인간은 본시 아름다운 존재로 태여난다.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 아름다운 성품이 활짝 피여나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과오를 범하기도 하는데 과오를 씻는 과정에 인간은 더 아름다와지는것이다.

춘권이는 장영덕이를 치겠다고 이 방에 뛰여들어와 책상을 뒤집어엎던 일을 생각하며 부끄러움에 머리를 들지 못했다. 춘권이가 옳게 말한것도 있지만 청산리지도기간 비판된데 의하면 박진섭이 장영덕과 리종수에 대하여 소문을 망탕 퍼뜨려 관리위원장이 애매한 루명을 쓰게 만들었다. 그래 춘권이가 사실과 맞지 않는 소리를 망탕 해댈 때 관리위원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러나 장영덕은 그후에도 구태여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