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41

 

41

 

최영길이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이날도 종일 두엄작업을 하고 해가 저물자 지쳐가지고 하숙집인 로인내외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 세면하고 발씻고 저녁을 먹은 뒤 웃방에 벌렁 드러누워있는데 《할아반 있소?》하고 밖에서 누가 찾는다.

방문이 열리고 주인집로인이 《누군가, 어 반장이 어떻게?》하고 반기는 소리가 났다.

《왜 나는 이 집에 오면 못쓰우?》

추위와 들바람에 거칠어진 작업반장의 쉰 목소리였다.

작업반장은 청산리서 온 김명배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겠다는 그에게 관리위원회에서는 7작업반장의 책임을 맡기였다. 그는 처음에는 싫다고 하다가 생각을 달리하고 작업반장직무를 받아들이였다.

그런데 7작업반으로 해임된 이전 농업성 부상이 배치되여왔다. 즉 최영길이 자기가 목을 뗀 사람의 밑에 와서 일하게 된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직까지 서로 잘 모르고있었다. 최영길은 김명배가 청산협동조합의 부위원장을 하던 사람이란것을 몰랐고 따라서 자기가 처벌을 준 대상인줄을 알수 없었다. 김명배도 자기에게 처벌을 내리도록 지시한 사람이 농업성 부상인줄 알지 못하고있었다.…

작업반장 김명배의 거친 말에 주인집로인이 대답했다.

《우리 집에 쇠통 걸음을 않더니…》

《그래 왔지요. 웃방에 최동무 있소?》

《있어. 방금 저녁밥을 먹었어. 그러니까 손님을 찾아왔구만?》

《최동무가 무슨 손님이요. 우리 작업반원인데.》

《좌우간 들어오게나.》

김명배가 웃방문밖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있소?》

《예, 들어오시오.》

대답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김명배가 방문을 벌컥 열고 찬 들바람을 몰고들어왔다. 얼굴은 검게 타고 표정은 무뚝뚝했다. 언제나 그런 표정으로 최영길을 대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나를 찾아왔을가. 최영길은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이 7작업반장이 리현리로 배치받아간 자기를 데리러 관리위원회에 왔던 첫 상봉의 날이 문득 떠올랐다. 관리위원장이 그에게 이 동지는 농업성 부상을 하다가 우리 리현리에 조합원으로 배치받아왔는데 7작업반에 배속시키기로 했소 하고 말하자 김명배는 한순간 경멸의 빛이 얼굴에 스치였었다. 그 다음은 입을 다물고있었다.

정월의 바람을 맞으며 둘이 7반으로 내려가는 동안 김명배는 딱 두가지만을 물었다.

《이름이 뭐요?》

《최영길이요.》

《몇살이요?》

《마흔여덟살이요.》

그 다음에는 침묵이다. 얼어붙은 땅, 황량한 겨울 들판의 살풍경, 바람, 추위, 돌덩이같은 표정의 작업반장…

한해중에서도 제일 추운 1월인데 조합원들은 그 추위속에서 흙깔이작업을 하느라 질통으로 흙을 져나르고있었다. 작업반장은 로인내외가 사는 집에 최영길이 하숙하도록 거처지를 잡아주고 다음날부터 흙깔이작업에 질통을 지고 참가하도록 요구했다. 살을 에이는듯 한 추위와 어깨를 파고드는 흙짐의 무게는 건장한 체격을 가졌고 각오도 단단히 한 최영길이였지만 견디기 어려웠다. 밤에는 앓음소리를 내였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면 일어나야 했고 퉁퉁 부은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이 들게 하고는 아픈 다리를 끌고 들판으로 나가야 했다.

작업반장은 그가 농촌일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는것 같지 않았다. 최영길이 감기에 걸리자 반장 김명배가 말했다.

《진료소에 가서 약을 타먹고와서 흙깔이를 계속하시오. 감기란건 누우면 더하오. 나는 아직 감기에 걸렸다고 누워본적이 없는 사람이요. 아마 최동무는 평양에서 간부를 하며 좀 아프면 차를 타고 큰 병원에 갔겠지. 그렇지만 촌에서는 술에 고추가루를 타서 마시고 땀을 흠뻑 흘리는거로 감기를 고치오. 그러니까 감기를 앓습네 하고 드러누울 생각을 하면 안되겠소.》

최영길은 이를 악물었다. 자기가 간부를 하다 떨어져 내려왔으니 사정을 보려 하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이 무정한 작업반장한테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감기에 드러눕지 않았으며 이를 사려물고 무거운 흙짐을 졌고 얼굴이 얼어드는듯 한 추위를 이겨내려 하였다. 그는 자기의 육체를 마구 혹사하였다.

그렇지만 반장은 칭찬 한번 하지 않았고 요구성을 계속 높이였다. 농업성에서 부상을 하며 큰소리를 치군 하던 자기가 이름없는 농촌마을의 작업반장의 손에 잡혀 어쩌지 못하는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지금은 그가 자기의 상급인것이다.

이처럼 무정한 작업반장이 어떻게 하숙방에까지 찾아올 생각을 했을가? 최영길은 좋은 일로 그가 찾아올리 만무하다고 보았다. 분명 불쾌한 일일것이다.

최영길은 랭랭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채 일어나 앉기도전에 반장이 여전히 뚝해서 물었다.

《뭘 하오?》

최영길은 반갑지 않았으나 찌뿌둥하니 대답했다.

《그저 좀 누워있소. 자 앉으시구려.》

《예, 좀 앉았다 갑세다.》

《담배를 피우오.》

최영길은 잎담배가 든 나무함통을 쑥 밀어주었다. 그는 지금에 와서는 이 잎담배에 습관이 되였다. 반장은 가위로 잘라놓은 종이쪼박을 들고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가족은 누구누구 있소?》그가 물었다.

《처와 아들과 딸이 있소.》

아직 최영길에 대해 그의 가정형편은커녕 여기 내려와서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도 물어본적이 없는 반장의 이 물음에 최영길은 의아해하지 않을수 없었다. 작업반장은 최영길이에게 오직 작업과 관련한 말만 했던것이다.

《모두 뭘 하오?》

그가 또 이렇게 물었다.

《처는 집에서 놀고 아들은 대학에 다니고 딸은 중학교에 다니오.》

반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또 물었다.

《집이 되면 누가 따라나오우?》

《처와 딸이지요. 아들은 대학에 남겠지요.》

《그렇구만.…》 그는 한동안 담배만 피웠다. 이윽하여 다시 말했다. 《어떻게 되여 여기 내려오게 됐소?》

최영길은 쓰겁게 웃었다. 그는 성당총회에서 받은 비판을 다 접수한것은 아니였다. 억울한것이 있었다. 자기는 일을 하려 한것이지 일이 안되도록 하려 한것은 아니였고 더우기는 놀고있지 않았다. 그런데 당원들은 마치 자기때문에 1959년도 농사가 계획을 못한것처럼 피대를 돋구었다. 아무 일도 안하고 학습이나 잘 참가하면서 무슨 연구를 합네 집필을 합네 하며 공밥먹는것들이 기승을 부리여 비판한다고 그는 고깝게 여기였다. 지방에서 오는 출장원들이 집으로 물건을 들고온것을 자기는 알지도 못했다. 처에게서 들어 알고는 꽥꽥 소리쳐 못받게 했다. 그래도 어쨌든 물건이 들어온 모양이다. 그래 이것이 자기의 본심이란 말인가? 두철이를 평양에 끌어올린것은 처의 성화에 못이겨 했지만 잘못했다. 그런데 다른 간부들은 그런 일이 없는가. 다른 사람들은 무난히 지나는데 자기한테서 일이 터지자 별것들을 다 들추어내가지고 공격을 해댄다. 그런데 잔가시가 목에 걸린다고 그 별치 않는 세부들이 사람을 모욕하고 수치감을 느끼게 하고 자빠뜨리는데서 차지하는 몫은 대단히 컸고 효과적이다. 그는 이와 같이 당원들의 비판과 철직처분에 대해 못마땅하게 접수하고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울분을 터친들 무슨 소용이랴. 그래 체념하고있는데 반장이 어떻게 되여 떨어졌는가고 물으니 기분이 잡쳤고 또 상처를 쑤셔대는것 같았던것이다.

《꼭 말해야 하겠소?》

《아니, 그렇지는 않소. 그런데 이제부터 본인뿐아니라 처까지 일생 농사를 짓게 됐으니 어쩐지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뭐 안될게 있소? 반장동무도 일생 농사를 짓는데 내라고 못하겠소?》

반장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여기 와서 신문을 더러 보오?》

《거의 못 보오. 신문을 구하러 다니기도 뭣하고 또 피곤해서…》

반장은 솜옷안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로동신문》을 꺼냈다. 그는 그것을 접은채로 쑥 내밀었다.

《읽어보오.》

최영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고 영문을 몰라하며 신문을 펴는데 김명배반장이 움쭉 일어섰다.

《난 가겠소.》

《좀더 앉아있지. 이 신문을 주려고 왔댔소?》

《잘 있소.》

그는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그를 배웅해준 다음 최영길은 급급히 신문을 펼치였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2월11일부《로동신문》인데 1면 상단에 주먹같은 글자로 《청산리당총회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있었다.

《오늘 본보는 최근 김일성동지의 지도하에 진행된 강서군 청산리당총회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다.》

정신이 번쩍 든 최영길은 글에 주린 사람처럼 신문에 달라붙었다.

《리당총회에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청산리당위원회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금후 리당위원회가 농업협동조합사업지도에서와 당조직정치사업에서 근본적인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명확한 방향과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셨다. 청산리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현지지도와 리당총회에서의 교시는 금후 모든 당단체들과 당지도일군들의 사업에서 지도적지침으로 되며 농촌당단체들의 사업을 결정적으로 개선하며 농촌경리를 가일층 발전시킴에 있어서 획기적인 계기로 될것이다. 그것은 또한 농촌당단체뿐만아니라 우리 당의 기층조직인 모든 초급당단체들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개선강화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신문은 청산리당위원회의 결함에 대하여 체계성있게 분석하였다. 최영길은 그 체계성있는 분석이 수령님의 중요연설에 기초하고있을것이라고 믿었다. 글의 내용은 수령님의 연설에 따라 전개되였음이 분명했다. 신문은 뒤에 가서 《이러한 일이 다른 농업협동조합들에는 없는가?》라는 문제를 설정하고 청산리의 교훈이 주는 보편적의미를 서술하였다.

신문 2면은 《농촌당단체사업을 결정적으로 개선하자. 김일성동지의 지도하에 진행된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당총회에서》이런 제목을 달고 옹근 한면에 걸쳐 총회에서 론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개하였다. 최영길은 자자구구를 따져가며 읽었다. 다 읽고나서 머리를 쳐들었다.

(아, 수상님께서!…)

수령님께서 작년도 농사가 잘 안된 원인을 농업에 대한 지도와 협동경리에 대한 관리운영의 결함에서 찾고 몸소 청산리에 나가시여 당원들, 조합원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대책을 의논해주신 내용이 신문에 밝혀져있었다.

협동화가 완성되고 더우기는 협동경리의 규모가 커짐으로써 민주주의중앙집권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할수 있게 되였다고 환성을 올리며 장악통제사업을 강하게 내밀었던 최영길이였다. 그는 농민들이란 조직해주고 시키는대로 끌어당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강철같은 손아귀에 영농공정을 틀어쥐고 지시를 떨구고 장악통제하면 문제없을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작년에 농사작황은 전해에 비해 나빴고 국가계획을 미달하였다. 그 원인을 수령님께서 청산리지도에서 밝혀주셨다.

《사회주의적농촌경리의 정확한 운영을 위하여》 수령님께서 하신 연설은 시기적절하게 나온 강령적지침이다! 그는 이렇게 속으로 웨쳤다.

주인집로인이 올라왔다.

《거 신문에 뭐가 났소?》로인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들어온것 같았다.

최영길은 흥분에 뜬 어조로 한동안 설명을 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떡끄떡하며 들었다.

《반장이 속이 깊은 사람이요. 그 사람이 청산리서 왔으니까 아마 신문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한것 같소.》 주인집로인이 자기 짐작으로 이렇게 말했다.

《청산리서 어떻게 되여 이 고장에 왔습니까?》

최영길은 비로소 이 신문을 가져온 반장에게 관심이 미치였다. 청산리서 왔다니까 생각이 많았을수 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들고와서 보여주는것일가.

《거기서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했는데 관료주의자들한테 걸려서 떨어졌다구 하더군. 가을남새를 보장 못한 책임을 지고 총화를 지을 때 떨어졌다누만. 그래 제 고향인 리현리로 왔는데 여기서는 그 사람을 7작업반장으로 앉히였소.》

(그러니 반장이!…)

최영길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청산리 관리부위원장이라면 자기가 군위원장한테 지시해서 떼버린 사람이다. 한번 보지도 못했고 이름도 몰랐지만(또 알 필요도 없었다.) 군위원장과 관리위원장의 말을 듣고 남새파종사업을 저애한 인물로 락인하고 떼버리라고 했었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관료주의적전횡으로 성당총회에서 규정되였고 비판되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자기가 목을 뗀 그 사람밑에 와서 그의 지시를 받으며 로동하게 된 이것이 우연인가, 필연인가. 최영길은 너무도 뜻밖의 일을 당하여 저으기 떨리는 손으로 잎담배를 종이에 말았다.

《우리 반장이 나에 대해 무슨 얘기를 안합디까?》

그는 종이에 침을 발라 붙이면서 로인을 쳐다보았다. 김명배가 자기에 대한 원한이 깊을것이니 무슨 말을 했을것이라고 짐작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요. 아무 얘기도 없었소.》

《그래요.》

최영길은 담배연기를 뽀얗게 내뿜었다. 심중이 복잡했다.

《내가 이 신문을 읽어봐도 되겠나?》

《어서 그러시우.》

로인이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인정이 후더분한 로인이다. 최영길이 감기를 앓고나자 닭곰을 해주며 몸을 추서도록 도와준 고마운 로인내외였다. 인민은 땅처럼 너그러웠다. 하지만 그저 너그럽지만 않았다. 작업반장은 용서가 없었다. 이런 속에서 그는 첫 시련을 이겨낼수 있었다.

그런데 반장이 왜 이 신문을 나에게 가져다주는것일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에게 처벌을 가한 나에 대한 반감이 컸을것이니 나를 곱게 볼수 없고 그래서 혹독하게 대했을것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김명배가 무엇때문에 나를 찾아왔고 신문을 주고간것일가? 그 속심을 알 길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최영길은 신문을 안주머니에 접어넣고 작업반으로 나갔다.

반장을 만나자 한쪽으로 데리고갔다.

《신문을 잘 보았소.》 그는 신문을 꺼내주며 침울하게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찾으려고 했댔소. 작업반 선동원처녀가 오늘부터 이 신문에 난 기사를 가지고 선동사업을 하겠다고 했소. 8반 선동원처녀는 벌써 선동사업을 시작했소.》

그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최영길을 대했다. 신문을 받아들자 선동원을 만나려고 갔다.

최영길은 종일 김명배반장에 대해 생각했고 그가 자기를 다르게 대하는것이 없는가 하는것을 눈치채려고 애썼다. 자기에 대해서 특별히 달리 대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달라진것이 있다면 선동원의 신문독보이후 반원들앞에서 청산리당총회에서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올해농사를 잘 짓자는 말을 한것과 두엄작업에 앞장서서 걸이대질을 세차게 하며 땀을 흠뻑 흘린것뿐이였다.

청산리에 타오른 불길이 리현리에도 옮겨와 들판이 들썩들썩 했다.

어느날 최영길은 자기에 대해 나쁜 감정을 품고있으면서도 너무나 태연해있는것 같은 반장을 더는 그대로 대하기가 괴로와 서로 특 털어놓고 이야기하리라 결심했다.

일이 끝나고 어슬어슬해올무렵 최영길은 김명배를 만났다.

《시간을 좀 내줄수 있겠소?》

김명배는 투박하게 대답했다.

《얘기하우. 뭐 긴 이야기요?》

《길어질수도 있소.》

《그러면 하숙집에 가서 기다리오. 내 곧 따라갈테니.》

《그러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면을 하고 작업복도 갈아입은 김명배가 찾아왔다. 그는 부엌에 먼저 들어가 안늙은이와 무슨 말인지 쑥덕거리고서 웃방으로 올라왔다.

《아직 저녁식사를 안했다지요?》그가 물었다.

《그렇소.》

《얘기가 길어지면 배고프겠는데… 내 그래서 저녁상을 차리라고 했소.》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구만.》

《내가 생각했으니 됐소.》김명배는 아래방에 대고 소리쳤다.

《할만, 뭘 꾸물거리오.》

《들어가네.》

《령감은 어디 갔소?》

《장기두려 뒤집에 갔다우.》

《그럼 얼른 상을 들여다놓구 가서 령감님을 모셔오우.》

《그러지.》

안늙은이가 쪽상을 들고 들어왔다. 수수하지만 정갈하게 차린 음식에 술병과 술잔이 놓여있었다. 안늙은이는 반장이 술을 가져왔다고 하였다.

《허, 반장동무, 고맙소.》

《뭐 나도 마시고싶어 가지고온거요. 자, 마십시다.》

반장은 술잔들에 술을 부었다. 그들은 잔을 찧지 않고 첫 잔을 비웠다.

《술을 좀 하오?》 반장이 안주를 집으며 물었다.

《좀 하오.》

《얼마나 하오?》

《앉은자리서 한병정도는 하오.》

《괜찮구만. 나는 두병쯤 앉은자리에서 마시오.》

《그거 대단하구만.》

《당신도 이제 주량이 더 늘거요.》

반장이 전에 없이 소탈하게 나오고 분위기가 좋아지자 최영길이 드디여 본문제를 꺼냈다.

《반장동무, 하나 물읍시다.》

《어서 물어보오. 얘기할게 있다 했지요?》

《반장동무가 왜 수상님의 청산리지도내용이 실린 신문을 나에게 가져다주었소?》

최영길은 바로 그것이 리해되지 않는다는듯 반장의 두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아, 그거 말이요? 읽고서 충격을 받으라는 의미였소.》 김명배는 거침없이 말했다. 《내가 알건대 당신은 관료주의자였다구 하더구만. 그것때문에 떨어졌다지요?》

최영길은 흠칫했다. 성당총회에서 너무 많이 들어 지긋지긋해졌던 그 관료주의자소리를 여기 내려와서 처음으로, 그것도 반장이 마치 호미나 낫에 대해 이야기하듯 아주 쉽게 거침없이 하는것을 들으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얼굴이 컴컴해진 최영길이 대답대신 술잔을 들어 쭉 마시였다.

반장이 술을 부어주며 타이르듯 말했다.

《너무 마음쓸건 없소. 다 지나간 일이요. 지내보니 당신이 일을 괜찮게 하고 농민처럼 되려고 노력한다는것이 알리더구만. 당신이 그간 고달프게 일하며 인생의 쓴맛을 보았으니 이제부터는 단맛을 보게 될거요. 자, 듭시다.》

이번에는 술잔을 쟁강하고 찧었다.

《하나 또 물읍시다.》

《허, 또 있소?》

《있소. 나는 며칠전에야 당신이 청산리에서 관리부위원장을 하다가 떨어져 왔다는걸 알았소. 관료주의자들한테 걸렸다구 하더군.》

《그렇소! 하…》

김명배가 웃음을 터뜨리였다.

《아직 웃지 마오. 그런데 그 관료주의자들이라는것들이 사실은 나였다는것을 알고있을테지?》

《글쎄, 성 부상이였으니까…》

《아니아니, 내가 바로 당신을 처벌하도록 군위원장에게 직접 지시했단 말이요.》

김명배는 들었던 술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최영길을 가로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럼 여태 모르고있었소?》

《허! 일이 재미스러워진다.》

《아니 그럼 당신이 내가 자기밑에 들어와 일하게 되자 잘 만났다, 어디 한번 고생해봐라, 이렇게 생각하고 나를 대하지 않았단 말이요?》

김명배는 술을 쭉 마시였다.

《재미나오.》

《나는 당신이 나를 혹독하게 대한것을 그때문이라고 보았소.》

《글쎄 알았다면야 어떻게 했겠는지… 아니, 반대로 더운 방안에서 새끼나 꼬게 했을수 있지. 나는 당신이 어려운 환경에서 단련되기를 바랬소. 그러니… 나를 몹시 원망했겠구만?》

최영길이는 반장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김명배는 최영길을 구체적으로 모르고있었다. 관료주의를 부리다가 부상에서 떨어졌다는 정도로 알고있었다는 소리다. 그렇기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 단련시키려고 의도적으로 가혹하고 랭정하게 대했다고 했다. 그런데 최영길은… 옹졸하게 생각했다. 얼마나 그를 미워했던가!

김명배는 자기보다 높이 서있는 인간이였다. 진정한 인민의 모습이였다. 주인집로인이 그가 속이 깊다고 한 말이 이제야 가슴을 쳤다. 흥분하여 확 달아오른 최영길이 손을 쑥 내밀었다.

《명배동무, 손을 좀 잡읍시다.》

《이건 왜 갑자기?》

김명배는 그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의아쩍어하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자, 손을 잡았소. 고맙소. 명배동무! 고맙소! 당신은 참으로 속이 깊고 뜨거운 사람이요.》최영길이 소리쳤다. 오래간만에 부상사무실에서 호통을 치던것과 같은 우렁찬 소리를 냈다. 《나를 힘든 로동속에서 단련시켰고 신문도 그래서 보여준것 아니요.》

격동된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이것이 대지의 품, 인민의 위대한 사랑이 아니냐!

인민이 그를 구원해주었다. 그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며 인민들속에 들어갈데 대한 청산리지도의 참뜻을 글이나 말로써가 아니라 산체험을 거쳐 깨달았다.…

장기두러 갔던 주인집로인이 술병을 들고 들어와서 셋이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하였다.

김명배는 청산리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며 이번에 모든것이 바로잡히게 되여 참으로 기쁘다고 얼굴이 환해져서 말했다.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지요. 밑의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단 말이요. 박진섭이 같은건 관리위원장을 등대고 제멋대로 놀았소. 이번에 이런것들이 다 비판되였을거요. 여기 리현리에서도 청산리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있소. 여기 사람들은 내 고향 사람들이지만 아프더라도 말하지 않을수 없소. 땅이 나빠 못산다고 관리위원장부터 조합원들에 이르기까지 다 얘기하오. 땅이 나쁜건 사실이요. 이 고장 땅은 비가 오면 찰떡처럼 달라붙고 마르면 돌덩이같이 되는 뻘건 진흙땅이요. 그래서 농사가 안되니 모두 땅타발을 하며 여기서 뜰 생각이나 하고있소. 거칠고 못사는 고장이니까 다른데서 처녀들이 리현리에는 시집을 오려 하지 않소.》

술기운이 오른 김명배가 입을 여니 쉬임없이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그는 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못사는 원인을 바로본 사람은 산골에서 이주해온 타지방출신의 어린 처녀였소. 8작업반 선동원 리신자 말이요.》

최영길이도 리신자를 알고있었다. 이웃동네에 살고있는데 그가 감기를 앓고난 뒤 주인집늙은이내외가 닭곰을 해주려고 신자네 집에 가서 단너삼을 구해왔었다. 신자네는 이 고장으로 이사올 때 산나물을 뜯어말린것을 비롯해서 약재들도 많이 가지고왔었다. 신자네는 그것들을 아낌없이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래서 무슨 약재가 필요하면 신자네 집에 찾아가군 했는데 그 집에서는 매번 웃는 낯으로 대해주었고 없어서 못 주는 경우는 몹시 미안해하였다. 리신자는 16살나던 해에 황해북도 연산의 산골에서 부모를 따라 이주해왔는데 키가 크고 일을 잘해서 인차 남새분조장이 되였고 이듬해부터는 8작업반 민청위원장 겸 선동원을 하게 되였다. 남을 성의껏 도와주고 일에 앞장서니 이 19살난 처녀를 모두 칭찬하고있었다. 최영길은 키가 늘씬하고 두눈이 억실억실하고 젊음이 넘쳐나는 리신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두번 보았는데 마음에 들었다. 리신자는 최영길의 남다른 사정을 알고있는지 동정을 나타내였고 깍듯이 존경하여 인사를 하군 했다. 이 동천벌에서 리신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리신자가 뭐랬는지 아오?》 김명배가 계속하였다. 《땅이 나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지런한 농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사람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고장은 땅도 척박하고 인심도 각박한 고장이다,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다, 그러니 땅에 애정을 쏟아부어 가꾸지 않는다, 그래서 못산다, 이랬소. 얼마나 기특하오. 얼마나 똑똑하고 눈이 바로 배긴 처녀인가. 이제 19살인데!… 리신자가 사는 안섬부락에 한 청년이 있었소. 성철이라구. 이 성철이가 강동에 사는 처녀와 친했는데 부모들이 딸을 리현리에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해서 성철이는 장가를 들수가 없게 되였소. 그러자 성철이는 여기서 살다간 장가도 못 들고 희망도 꽃피울수 없으니 다른 고장이나 도시로 가겠다 하고 아주 락후분자, 불평분자가 되고말았소. 그런걸 선동원인 리신자가 남자가 자존심두 없는가, 이렇게 비판하고 강동에 가서 처녀를 만났소. 처녀는 자기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리현리가 못살 곳이라고 부모가 반대했다며 눈물이 그렁해서 말하더라는거요. 돌아오며 신자는 결심했다오. 내가 사는 고장 리현리에 오곡백과 주렁지는 사회주의락원을 펼치고야말테다, 우리 고장 총각들이 더는 처녀를 데려오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할테다 하고 말이요. 어린 처녀가 참 용하지 않소? 지금 리신자는 청산리당총회소식이 실린 신문을 들고다니며 매일 작업반원들앞에서 선동사업을 하고있소. 우리 작업반 선동원도 그렇게 하고있지만. 리신자는 나보고 하는 말이 청산리서 하신 수상님의 교시는 앞길을 밝히는 등불과 같다고 했소.》

김명배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는 밤을 밝히며 이야기하라 해도 막히지 않을것 같았다. 어느덧 빈 술병 서너개가 상밑에 나딩굴고있었다.

김명배는 그후에도 신문을 몇번 가져다주었다. 《로동신문》 2월21일부에는 《새 환경에 적응하게 군당위원회의 사업을 결정적으로 개선하자. 김일성동지의 지도하에 진행된 강서군당위원회 전원회의에서》라는 제목의 보도가 실리였다. 신문은 보름동안에 걸치는 청산리와 강서군당에 대한 현지지도의 결속으로 군당전원회의가 열리고 여기서 수령님께서 중요한 연설 (《새 환경에 맞게 군당단체의 사업방법을 개선할데 대하여》)을 하시였다고 보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