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35

 

35

 

이날 오후 청산리사람들은 들에서 일하며 수령님의 현지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봄추위도 잊고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협의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입을 가볍게 놀리지 말데 대한 사전 주의가 있었으나 어차피 한두마디씩 말을 꺼내지 않을수 없어 흘린 이야기들이 과장되고 살이 붙으며 온 청산벌에 퍼져나갔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낀것은 이번의 청산리지도가 간단치 않으며 뿌리가 빠질 때까지 파고들리라는 예감이였다. 그것은 조합원들이 통쾌한 심정에 잠기게 하였다.

수령님의 덕망에 대해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이른아침에 문영숙반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살림집을 찾아주신 이야기, 문영숙이 살아온 경력을 다 들어주신 이야기, 리종수로인의 건강을 걱정해주시고 아들 춘권을 협의회에 참석시켜주시였으며 그가 당사업을 잘해 과오를 씻도록 따뜻한 가르치심을 주신 이야기, 생활이 어려운 조합원들을 잘 돌봐주며 각계층 군중을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울데 대해 강조하신 이야기, 관리위원장이 비판받은 이야기 등등···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으나 륜곽적으로나마 이야기들을 듣고서도 흥분이 가는 이야기들이였다.

협의회에 직접 참가했던 당사자들의 격동된 심정은 더 말할것이 없었다.

하루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으나 청산리는 잠들지 못하고 집집마다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자기들의 운명과 조합살림살이에 대하여 오늘의 감격적인 사실과 관련시켜 이야기들을 펼치였다.

문영숙은 시어머니와 함께 슬픔과 괴로움, 시련을 헤쳐온 나날들을 추억하였다. 《수상님께서는 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였어요. 어머니, 수상님은 꼭 친정아버지같으셔요.》

《수상님께서 엄하게 비판하시면서도 우리 리씨일가에 대해 뜻깊은 말씀을 주시고 제가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것을 차근차근 일깨워주시는데 저는 제가 비판받는다는것도 잊고 그저 수상님을 정신없이 우러러보기만 했어요. 사람의 속을 환하게 꿰뚫고 계십디다. 수상님앞에서는 사람이 순수해지더군요!》리춘권이는 밤늦도록 아버지와 어머니, 안해가 모여앉은 아래방에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관리위원장 장영덕은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채기였다. 그는 협의회내용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안해가 자꾸 묻자 시끄러워하며 돌아누웠다. 그래 혼자 묵새기느라니 잠들수 없었던것이다.··· 1년간 두주먹을 쥐고 뛰여다녔으나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 그러니 무슨 변명할 말이 있겠는가. 그는 이번에 자기가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예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이처럼 청산리사람들이 각이한 심정을 안고 모대기며 밤잠을 못자고있는 시각에 김일성동지께서도 청산리의 어느 한 농가에서 이밤을 보내고계시였다. (이것은 수령님의 청산리현지지도력사에 아직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오후 늦도록 강서군당위원회 부부장이상 일군들의 협의회를 지도하시였다. 협의회에서 군당위원회사업에 대한 료해를 깊이 하시였다.

회의도중에 그이께서는 오솔오솔 추워나시였다. 감기약의 효력이 다 된 모양이다. 그이께서는 며칠째 감기를 앓고계시는데 아무리 약을 써도 쓸 때뿐이지 약효력이 지나면 다시 추워나군 하였다. 협의회 휴식시간에 책임부관이 알약을 물과 함께 드리며 회의를 미루고 저택으로 돌아가시자고 말씀드리였다.

《괜찮소. 협의회를 마저 하고 가는 길에 어느 농가에 들려 뜨뜻한 아래목에서 땀을 내면 나을게요.》

협의회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읍을 벗어나 들길을 달려 남포ㅡ평양간의 큰 길에 나섰다. 그러나 차는 평양으로 향하지 않고 그 큰 길을 건너 다박솔 우거진 야산아래의 동네로 조용히 들어갔다.

《수상님께서 땀을 내실 농가가 준비되였습니다.》 책임부관이 알려드리였다.

《음, 좋아. 감기는 뜨뜻한 온돌에 누워 땀을 흘려야 낫는단 말이요. 약이나 먹어가지고는 안돼.》

호위일군들의 전지불들이 켜졌다꺼졌다 하며 껌벅거리는 어느한 농가앞에서 승용차가 멈추어섰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수령님께서 농가의 마당에 들어서자 첫눈에 뜨인것은 활짝 열어놓은 부엌칸이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불로 하여 환하게 밝은데 거기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나오는 한 로인의 모습이였다. 솜옷을 두텁게 입었으나 머리는 맨머리바람인데 반백이였다.

수령님께서 먼저 인사를 하시였다.

《주인할아버지이십니까?》

로인이 허리를 쭉 펴며 황황히 다가왔다.

《예, 수상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구들을 뜨끈뜨끈하게 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로인이 낯익었다. 갱핏한 얼굴에 피줄이 불거지고 코밑수염이 까맣게 돋았다. 그렇다. 작년 초봄, 청산리앞도로에서 리종수로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부관이 말리는것도 듣지 않고 인사를 드리겠다며 뿌득뿌득 밀고들어오던 그 로인이였다.

《로인님, 낯이 익습니다. 작년 초봄에 여기 로상에서 만나지 않았던가요?》

로인은 다시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날 이 늙은것이 무엄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수상님께서 다 기억하고계시는군요.》

수령님께서 허허 웃으시였다.

《부관이 막아나섰지만 로인님은 물러서지 않았지요! 무엄하다니요. 오히려 로인님을 알게 되여 나는 기뻤습니다. 오늘은 로인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구들을 덥히셨군요! 고맙습니다. 성함을 어떻게 부르시던가요?》

《조춘보라고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북만원정의 길에서 돌아오시다가 촉한을 만났던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어느 한 깊은 수림속에서 있었던 일이 그 외딴곳에서 농가를 만났고 농가의 주인인 조택주로인과 며느리의 지성어린 간호를 받던 일이 문득 생각나시였다. 어려운 순간에는 언제나 인민들이 그이를 위해 나섰다.

수령님께서 책임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토방에 신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가시는데 로인이 밖에서 잔소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상님을 잘 모셔야지. 이 사람들아, 지금이 몇신가. 아침일찍 청산리에 오신 수상님께서 여적 일을 보셨으니 로독이 드신거네. 쯔쯔쯔···》

아래방에는 이미 두툼한 비단이불이 펴져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로인과 이야기를 해보시려고 그를 불러오라고 지시하시였다.

로인이 들어와 무릎을 꺾고앉았다.

《로인님, 편안히 앉으십시오.》

《예.》 로인이 편안하게 앉았다.

《깊은 밤에 미안합니다.》

《무슨 말씀을! 조선풍습에 지나가던 사람이 자고가자 해도 재워보내는데, 항차 수상님을 모셨으니 이는 경사중의 경사로소이다. 단지 수상님께서 빨리 옥체를 추세우셔야 하겠는데··· 어서 이불속에 드십시오. 이 사람.》하고 그는 책임부관을 불렀다. 《저기 산꿀을 한병 가져다 놨으니 물에 타지 말고 그냥 잡숫도록 대접해드리게.》 그리고 다시 수령님을 향해 말씀드리였다. 《꿀을 드시고 땀을 흠뻑 내면 알도리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로인이 일어섰다.

《할아버지!》 수령님께서 일어서며 로인의 갈퀴같은 손을 잡으시였다. 목이 콱 메이여 겨우 말씀하시였다. 《고맙습니다.》

로인은 허리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 밤이 얼마나 깊었을가?

한잠 푹 자고나신 수령님께서는 온몸이 거뿐해지는것을 느꼈다. 주인집로인이 가져온 꿀과 뜨끈한 구들이 효력을 낸것일가? 로인의 지성이 더없이 고마우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치도 만경대고향집아래목에 누운것만 같으시였다. 백두밀림의 눈보라속에서 우등불을 벗하여 풍찬로숙하시며 늘 그려보았던 고향집아래목이였다. 하기에 조국해방을 이룩하고 개선연설을 하신 후 고향집을 찾으시였을 때 방구들을 수리하느라고 뜯어놓았지만 멍석을 깔고 할머님, 할아버님과 함께 아래목에서 하루밤을 주무시였었다. 아, 그날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시고 뺨을 만져보며 잠 못드시던 할머님의 농사일과 무명낳이에 시달린 그 손, 터슬터슬하고 뼈마디졌어도 그 손이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방안이 후끈하도록 장작불을 때고 비단이불을 펴드리고 산꿀로 로독을 푸시라고 하는 이 집주인로인의 꺼칠하고 투박한 손길도 할머니의 손길과 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러한 인민의 아들된 자신의 행복을 느끼시였다.

인민! 우리 인민!···

인민에 대하여 생각하면 언제나 자신이 직접 만나보신 산인간들의 모습이 떠오르군 하시였다. 지난 한해만 해도 함경북도 서수라 한끝에서부터 황해남도 연안의 농촌마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해공, 탄부, 기계공, 어로공, 협동조합원, 학교교원, 기사, 과학자, 인민정권기관의 일군들을 만나보시였던가. 이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탄을 캐내고 쇠물을 녹여내며 기계를 만들고 천을 짜고 집을 지으며 땅을 걸구고 곡식을 가꾸어 낟알을 생산하여 인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사회주의를 전진시킨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력사를 창조해가는 하루하루이다. 로동당시대의 모든 재부, 모든 창조물은 인민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것이다.

사람은 먹고 입고 살아가자면 로동을 해야 한다. 로동을 떠난 인간생활이란 있을수 없다. 지난 시기 인민의 로동은 단순히 먹고 살아가기 위한 로동이였다. 이 로동에 의해 재부가 마련되고 인류력사가 흘렀다. 그러나 부를 창조하고 력사를 창조한 인민대중은 늘 굶주리였고 헐벗었으며 학대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정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수천년의 장구한 세월 우리 인민은 고통과 슬픔을 겪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들은 부의 창조자였으나 력사의 대상이였다. 그리하여 력사의 흐름은 진흙탕물처럼 흐리터분하고 완만하게 목적없이 진행되였다.

시대가 바뀌였다.

우리 인민이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 자기의 주권과 땅을 가지게 되고 생산수단의 주인이 됨으로써 진정한 력사의 담당자가 되였으며 당과 수령의 령도밑에 온갖 난관과 시련을 이겨냈으며 새 력사를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온 나라가 사회주의라고 하는 한가정이 되였다.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였다. 이 대가정은 대규모의 집단경리를 형성하고 강력한 공업국가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력사는 명백한 목표를 가지고 거세차게 흘러가고있다. 목적의식적인 투쟁과 로동을 통해서만 사회주의가 건설된다. 맹목적인 운동이란 사회주의하에서 있을수 없다. 그러므로 당과 수령의 령도는 필연적이며 인민대중을 사회주의건설에 어떻게 조직동원하는가 하는것이 운명적인 문제로 나선다.

한가정의 운명은 아버지에게 달려있고 사회주의국가의 운명은 수령에게 달려있다. 수령은 한순간도 사색과 탐구와 활동을 멈출 권리가 없다. 인민이 수령에게 자기의 운명을 맡겼기에!···

아직은 우리가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입지 못하며 잘살지 못한다. 물론 제1차 5개년계획기간에 의식주문제를 기본적으로 풀게 된다. 인민생활이 눈에 뜨이게 향상되고있다. 배곯는 사람은 없다. 화려하게 살지는 못해도 골고루 생활이 펴이고있다. 그러나 만족할수 없다. 아직 우리는 발전된 공업국가의 수준에 올라서지 못했으며 다른 형제국가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낮다. 하루빨리 사회주의공업국가를 건설하여 인민들이 부유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진흙을 바르고 도배를 한 농가의 담벽냄새, 집안에 배인 구수한 토장내, 부엌아궁이에서 장작이 탁탁 튀는 소리, 생나무의 옹이에서 송진이 끓는 소리···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농가의 독특한 향취였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끼여있어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으며 캄캄했다. 하지만 이제 구름이 걷히고 동이 트면 푸른 하늘이 펼쳐지리라. 주인집로인의 지성으로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지신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용기가 솟구치였다. 《꼬끼요》헛간에서 수닭이 홰를 쳤다. 주인집 수닭이였다. 이 농가 저 농가에서 화답하는 닭의 울음소리가 노래소리처럼 들려왔다. 이것 역시 오래간만에 느껴보시는 농촌의 새벽정서였다.

어제 만나보시였던 청산리농민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문영숙반장의 이야기는 청산리농민들이 살아온 비참한 력사이기도 했고 또 태성할머니처럼 굴할줄 모르는 우리 인민의 자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의 농민, 우리의 인민!··· 모든 인민들이 잘먹고 잘살게 하자는것이 우리의 리상이며 목표이다. 이 목표를 향해 우리는 간고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헐치 않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행복한 생활과 미래를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자신이 쟁취해야 한다.

《꼬끼요ㅡ》닭의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얼마후 려명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 수령님께서는 주인집로인과 작별하시고 승용차를 달려 평양으로 향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