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32

 

32

 

청산리 암화마을 1작업반원들은 마을에서 두엄을 퍼내는 일을 하고있었다. 새해농사차비가 시작된것이다. 올해(1960년)는 어떻게 하든 두엄을 논밭에 많이 내고 정당수확고를 높여야 한다는것을 누구나 생각하고있었으나 작년처럼 작업조직과 로력관리를 한다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다. 조합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평조합원으로 일하고있는 리춘권의 신색도 밝지 못했다. 그에 대한 사업정지책벌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작년도 영농사업을 총화짓고서 그 문제를 취급한다는데 웬일인지 총화회의를 늦잡고있다. 물론 리춘권이는 사업정지책벌을 받고 평조합원으로 일한다 해서 우울해있는것이 아니였다. 초급당단체위원장사업을 하지 않고 일을 꽝꽝 하니 머리가 거뿐하고 좋았다. 그러니 어서 자기 문제를 취급해서 조합원으로만 일하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였다. 그런데 책벌기간이 해를 넘기는데다가 초급당단체위원장직책에 그냥 남아있도록 할것 같아 짜증이 났던것이다.

그는 분조원들과 같이 자기 집의 퇴비를 걸이대로 푹푹 떠서 달구지에 싣는 일을 하고있었다. 절기는 립춘을 가까이하고있었다. 봄기운이 느껴지나 아직은 춥다. 며칠전에 내린 눈이 아직 웅뎅이들과 도랑, 음지들에 남아있어 거기서 랭기가 풍기였다.

해가 점점 높아지면서 해빛이 흰눈에 반사되여 조합원들의 눈을 시게 하였다. 파헤친 두엄에서는 김이 물물 나고있었다. 아버지가 아직은 일을 나오지 못해 춘권이가 대신 황소에다 달구지를 메워가지고 나왔다.

《저게 웬 승용차요?》

누군가 큰길에서 마을로 꺾어들어오는 길모퉁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춘권이가 보니 하늘색승용차가 민주선전실방향으로 가고있는데 사람들이 탔다.

승용차는 ㄷ자모양으로 지은 석두재기슭의 단층건물인 민주선전실앞에 가멎고 차에 탔던 사람 넷이 내리였다. 리당사무실로 민주선전실의 방 한칸을 쓰고있는데 거기서 유근재가 급히 나왔다.

청산리를 찾아온 일행중 나이가 마흔살쯤 되여보이는 칼칼한 인상의 사람이 손을 내밀고 유근재에게 말했다.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입니다.》

《예. 어서 오십시오. 제 청산리당위원장 유근재입니다.》

다른 세사람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나이가 좀 아래였고 얼굴은 무표정이였다.

《리당위원장동무가 마침 있구만.》

부부장이 말했다.

《예. 군당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들어갑시다.》

일행은 유근재의 안내를 받아 리당위원회로 들어갔다. 유근재는 한옆으로 나가 중앙당일군들이 자리잡은 후에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앉았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나왔으니 그로서는 여간 주눅이 들지 않았다.

《강서군당은 오늘부터 당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됩니다.》 부부장이 잘 울리는 저음으로 무게있게 엄숙히 말했다. 《우리 지도그루빠는 청산리당을 맡아 사업을 료해하고 지도하게 됩니다.》

《예.》 유근재는 엉거주춤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곧 사업에 착수하였다.

부부장은 먼저 리당위원회와 관리위원회, 초급당단체들과 작업반들의 조직과 구성에 대해 료해를 했으며 같이 온 과장, 지도원들과 함께 청산리당위원회사업전반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기 위한 세부계획을 유근재와 토의하였다. 저녁에 관리위원회의 책임일군들, 초급당단체위원장들, 작업반장들의 참가하에 중앙당부부장이 이번 지도사업의 취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기본은 검열이 아니라 방조하는것이라고 하였다.

그랬건만 회의에 모인 조합일군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고 긴장감이 비껴있었다.

관리위원장 장영덕은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작년도 예상수확고 재판정이 보여준바와 같이 실지 작년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 온 한해동안 뛰여다니고 고함치고 했지만 결과는 나빴다. 왜 이렇게 되였는가?··· 박진섭반장은 겁을 먹고있었다. 여러가지로 걱정이 되는 일이 많았는데 신약수터에 자리잡은 려관에 가서 공짜로 먹은 술과 단고기장국값을 려관식모가 메우다 못해 하는수없이 빚을 지게 된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빚을 청산하려고 려관에 자주 와서 단고기장국을 받아가는, 옛날에 장사하던 사람에게서 돈을 꾸기까지 했는데 그것도 어쩐지 께름직했다.

문영숙반장은 당중앙위원회 지도그루빠가 내려온 사실에 대해 때마침 지도검열을 한다는 립장이였다. 결함들이 드러나고 조합이 망신할수 있다. 그러나 속으로 곪아가고있는 징후가 느껴지는 조합의 상처를 대담하게 파헤쳐야 한다는 립장이였다.

리성을 잃고 관리위원장을 치려고 한 사건으로 수치스럽게도 사업정지책벌을 받고있는 리춘권이는 특별한 감정상태에서 지도사업에 림했다. 그는 자기가 지도검열을 받는 기간 무사치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어 우울한 얼굴을 수굿하고 말없이 두엄작업을 했다.

저녁에 지도그루빠가 사업하는 리당위원장 방에 불리워갔다. 부부장이 직접 그와 담화를 하였다. 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춘권동무, 동무가 어떻게 되여 사업정지책벌을 받았는가 하는것은 충분히 들었소. 그러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두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크게 설정하고 우리 사업을 성의껏 방조해주기 바라오. 첫째로는 동무가 위원장으로 사업하는 1초급당단체에 대한 비판적분석이고 둘째로는 리당위원회와 관리위원회사업에 대한 의견을 내는거요. 우리가 어제 지도사업의 취지를 알려주면서 우선 초급일군들이 어떤 립장에서 담화에 림해야 하겠는가 하는 방향을 준것만큼 준비가 되여있으리라고 믿소.》

리춘권은 두손으로 무릎을 쓸며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1초급당단체의 결함이자 그것은 저의 사업상 결함입니다. 저는 당원들과 비당원군중을 교양개조하는 사업을 옳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시끄럽게 여겼습니다. 조합에 들기전에 장사를 했던 강옥숙을 먼저 실례로 들겠습니다.》 강옥숙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고 기호로 넘어갔다.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에서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감정을 갖고 대했습니다. 동산에 기호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만행을 하고 도주한자의 동생이고 〈치안대〉가담자이지만 당의 포섭정책에 의하여 용서받고 일을 잘하고있습니다.》 그는 기호가 박진섭에 의해 모욕을 당한 아픔을 가지고 1작업반으로 왔는데 문영숙반장이 차별없이 대해주어 안착되여 일을 잘하게 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호가 결함이 있지만 그것때문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인 원쑤편에 섰다는것때문에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담화는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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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의 부름을 받은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두사람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들은 각기 지도그루빠를 책임지고 강서군당위원회와 청산리에 나가있는 부부장들이였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누가 먼저 말하겠습니까? 청산리에 나가있는 부부장동무가 먼저 이야기하시오.》

칼칼한 인상의 부부장이 일어섰다.

《료해한 자료들을 아직 체계성있게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료해중이여서 충분하지 못합니다.》

부부장이 말씀드리였다. 그것은 사실 공연한 서론이였다.

《료해도중이기때문에 내가 료해하려고 하오. 그리고 동무들이 체계를 잡을 필요는 없소. 그것은 내가 할 일이요.》

수령님께서는 이번 청산리지도를 이전에 농업협동조합들이나 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실 때와는 달리 더 내용있고 새롭게 하려는데로부터 출발하여 지도방법과 기간 등을 심도있게 설정하시였다. 청산리뿐아니라 청산리가 속해있는 강서군 당사업을 호상련관속에서 고찰하며 밑에 깊이 깔려있는 내용들까지 다 들추어내여 료해하기 위하여 적어도 15일이상의 기일이 걸릴것이라고 타산하시였다. 한개의 협동조합과 군당에 대한 지도로서는 상당히 긴 기간이였다. 그리하여 지도그루빠성원들이 먼저 며칠동안 현지에 나가 현실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수령님께서 부부장이 대답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물으시였다.

《리종수로인의 건강은 어떻소?》

이미 적십자병원 원장을 통해 병상태가 위급하지 않으며 병원에 입원시킬 필요는 없고 안정하면서 약들을 쓰도록 조치를 취했다는것을 알고계시였지만 다시 물으시였다.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물론 아직 일할 상태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로인의 아들이 초급당단체위원장을 하지요?》

《그렇습니다.》

《그의 문제가 제기되였었는데···》

《군당에서 사업을 정지시키고 자체검토를 하도록 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는 리춘권을 료해한 내용을 한동안 말씀드리였다. 《겸해서 말씀드리면 그 초급당단체위원장 리춘권동무로부터 〈당신의 처부터 일을 내보내라.〉는 매우 충격적인 비판을 받은 리당위원장은 그후 처를 농산반에 내보냈습니다.》

《리당위원장이 어떻소?》

《사람들속에서 인망이 높습니다. 그런데 주대가 다시말하여 당적원칙을 세우는데서 약한것이 결함입니다. 관리위원장이 하자는대로 따라한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당중앙위원회에서 지도그루빠가 내려가자 혹시 해임이나 철직되지 않겠는지 속으로 상당히 겁을 먹고있습니다.》

《당조직이 똑똑해야 하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다시말해서 당조직을 책임진 사람들이 당적원칙에 튼튼히 서서 정책관철에로 행정일군들을 조직동원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이요. 청산리 리당위원장이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이나 보이려 하는가 하면 초급당단체위원장은 관리위원장의 방에 들어가 책상을 뒤집어엎고 사람을 치겠다고 하니 무슨 일이 잘되겠소? 관리위원회 일군들이 그들을 우습게 볼것이 아니겠소?》

수령님께서는 수첩에 적으시며 리당위원회사업과 관리위원회사업으로부터 시작하여 개별적사람들의 운명문제에까지 파고들며 부부장의 보고를 들으시였다. 강옥숙에 대해서와 밭을 세번 갈아엎었다는 12작업반장 박진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보시였다.

군당위원회사업을 료해한 부부장의 보고에서는 먼저 강서군에서 농촌건설과 농촌경리의 기계화를 위한 사업에서 거둔 성과가 언급되였다. 군농기계작업소는(농기계임경소를 12월전원회의 이후부터 농기계작업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올해에 150대의 뜨락또르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 경지면적의 대부분을 현대적농기계로 경작하게 될것이다.

결함은 군당위원회가 농촌경리의 지도를 맡고있는 군인민위원회를 잘 지도하지 못한것이다.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리해가 아직 부족한데로부터 리가 한개의 생산단위로 되였는데 군일군들은 아직도 군아래에 무슨 중간다리가 있는것처럼 생각하고있다. 군인민위원회는 생산을 책임지는 마지막단위로서 리에 직접 내려가 계획도 세워주고 기술지도도 해주며 협동조합들의 생산에 대해 책임져야 하겠는데 책상에 앉아서 지시나 하고 호통만 치고 통계만 요구하고있다.

《동무가 옳게 보았소.》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현실에 대한 료해를 그렇게 당정책적안목을 가지고 해야 하오.》

부부장들의 보고를 통하여 수령님께서는 기본적인 문제를 잡아쥐시였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고 다양하며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안목 또한 같지 않다.

《래일부터 내가 청산리와 강서군당에 나가겠소.》

그이께서 협의회를 마치시였다.

이튿날 2월 5일 이른아침 김일성동지께서 청산리로 향하시였다.

간밤에 내린 눈이 길에 소복이 깔려있었다. 승용차는 숫눈길에 바퀴자리를 내며 방금 떠오르는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길을 조용히 달리였다. 탁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흰눈이 나무들에 덮인 청산을 바라보시며 봉상강다리를 지났다.

청산리의 길목이며 느티나무며 농가며 논벌의 논뚝이며가 다 그이께 친근감을 자아냈고 다 낯익어보이였다.

석두재기슭의 리민주선전실앞에서 장영덕관리위원장과 유근재리당위원장이 그이를 맞이했다. 외투를 입으시고 털모자를 쓰신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여 인사를 드리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얼굴표정들을 살피시였다. 수령님을 뵙게 된 기쁨과 함께 근심걱정이 가득 어린 얼굴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새 건강들 하셨습니까?》하고 그들의 긴장감을 풀어주시였다.

부부장이 수령님을 리당으로 안내해드리려 하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농가부터 들려보고싶으시였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조합원들의 집을 가리키며 좀 들려보자고 하시였다.

순간 부부장과 유근재는 당황해하였다.

하긴 부부장이 먼저 와서 조직사업을 다 해놓으면서 호별방문은 사전에 몇집을 선정하여 준비시켜놓기로 했는데 그것은 협의회뒤의 로정에 들어가있었던것이다. 그러므로 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수령님께서는 민주선전실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집으로 향하시였다. 그 집은 수령님을 모실수 있게 선정한 집이 아니였다. 그래서 유근재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수령님께서 느닷없이 찾아들어가신 집에서는 로인부부가 손녀 하나를 데리고 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분배받은 정형과 집짐승먹이는 상태를 알아보시고 김장은 얼마나 담갔는가, 남새는 어디서 공급받는가, 무엇을 때는가 등 살림살이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그다음에 바로 옆집을 찾아들어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