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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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저물어가고있었다.

첫눈이 내린지도 오래다. 땅이 땅땅 얼어붙고 윙ㅡ윙ㅡ 울어대는 강풍은 희슥희슥한 눈가루를 걷어안고 앙상한 나무가지들을 덮치고 거리를 휩쓸었으며 아빠트들과 건물들의 벽에 부딪치고 창문들에 달려들었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김일성동지의 눈앞에는 어찌된 일인지 넓은 벌판에서 소달구지를 몰아가고있는 리종수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보라가 휩쓰는 들에서 로인은 풍뎅이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서 굴함없이 걸어가고있다. 겨울에 저항하고 봄을 맞이해가듯이···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 로인이 앓고있다. 의사들을 보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였다. 수령님께 올해농사작황이 썩 좋지 못하다고 죄송스럽게 말씀드리던 로인의 진실한 모습이 앓아누운 모습과 교차되면서 눈앞을 흐리게 한다.

수령님께서는 김일1부수상에게 주신 편지를 그가 다 읽기를 기다리고계시였다. 편지는 길주군 봉암협동조합의 김영애가 수령님께 보내온것이였다. 그이께서 지난봄에 만나보시였을 당시에는 평조합원이였는데 그후 작업반장이 되였다 한다.

김영애는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은 이후 각성이 되여 조합농사에 주인답게 참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주인다운 립장에서 올해농사과정에 잘못되였다고 생각되는 점을 수령님께 편지로 알려왔다. 청산벌의 리종수로인과 같은 심정임을 그 편지에서 읽을수 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이것이 기쁘시였다. 그래 김일이 편지를 읽는 동안 김영애와 함께 리종수를 생각하게 되신것이였다.

김일이 편지를 읽고있었다.

김영애는 농사일에 거칠어졌을 손이지만 글씨를 동글동글하게 곱게 썼다.

녀인은 먼저 봄에 뜻밖에도 수령님을 만나뵈온 감격과 중요하고 따뜻한 가르치심을 받은데 대해 격동에 넘쳐 쓰고있었다. 조합에서는 그에게 작업반장의 책임을 맡겼다. 그는 작업반의 농사도 잘 짓고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조합농사를 짓는데서도 좋은 의견을 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조합관리위원장도 군인민위원회 위원장도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농민들의 의견도 듣고 창발성도 발휘하게 하면서 새롭게 사업방법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올해농사가 괜찮게 되였습니다. 그렇지만 국가계획은 못하였습니다. 국가계획이 높은탓도 있겠지만 아직 저희들이 수상님께서 교시하신대로 일을 원만하게 못한탓입니다. 올해는 로력이 다른데 많이 빠져나가 김매기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제가 안타까와 제기하고 관리위원장동지도 조합원들의 제기가 옳다고 했지만 군에서는 성에서 내려온 지시를 어길수 없다며 어찌할바를 몰라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우리들의 제기를 시끄러워하면서 저에게 작업반의 농사나 잘 지으라, 치마폭이 너무 넓다고까지 하는것이였습니다. 수상님께서 조합원들이 주인구실을 하고 관리위원회가 주인구실을 하라는 말씀을 받들어나가는 과정이 헐치 않습니다. 농업성의 지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군인민위원회에서 말하는데 그런것 같습니다.》

김영애는 모내기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완료보고를 내도록 독촉한 사실, 조합의 정당평균수확고를 잘된 작업반에 기준하여 높이 판정한 사실들이 성의 강한 요구에 맞춘것이라고 썼다. 녀인은 수령님께서 국사에 바쁘신줄 알면서도 이러한 편지를 올려 죄송스럽다고 하면서 올해의 결함을 극복하고 새해에는 꼭 농사를 잘 짓는것으로 보답하겠다는 결의로 편지를 끝내였다.

김일은 편지를 다 읽고 인민들이 국가기관사업을 비판하고있는것이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직접 수령님께 편지를 올리는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수령님께서 인민들과 허물없이 접촉하시고 항상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기에 인민들은 수령님께 무랍없는 편지를 올리는것이 아니겠는가! 이 한해사이에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시고 키워준 우리 인민들의 정신상태가 성장했다는것을 알수 있지 않는가. 김일이 자기의 느낌을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정신상태가 높아지고있다는데 대해 긍정하시였다.

《청산리에도 리종수라고 하는 로인이 이 아주머니처럼 조합농사에 관심하여 애를 쓰고있소. 늘 좋은 건설적인 의견을 내오. 그런데 관료주의담벽에 부닥쳤단 말이요.》

김일이 말씀드리였다.

《이 편지에 올해농업성사업과 영농사업에서 나타난 일반적인 결함들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습니다.》

《전형적인데가 강서군과 청산리요.》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김만금농업상이 청산리에 여러차례 나가보고 반영한것을 보면 잘 알수 있소. 나는 청산리에 나가 올해영농사업을 총화지어보려 하오. 한개 협동조합이지만 전국적인 실태를 알수 있을거요.》

수령님께서는 이 결심을 김만금농업상에게도 이야기하시였다.

김만금은 올해를 어떻게 총화지으며 사회주의농촌경리의 정확한 운영을 위하여 어떤 교훈을 찾고 대책을 세우겠는가 하는 문제를 모색하고있었는데 수령님께서 청산리라고 하는 하나의 말단단위를 선정하여 직접 나가 총화를 지으려 한다고 하신 말씀에 눈이 번쩍 뜨이여 기쁨과 감동을 금치 못했다. 수령님께서 농업에 얼마나 큰 관심을 돌리고계시는가 하는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생각하면서 농업상으로 또 농업부장을 겸임하고있는 립장에서 자기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년말에 청산리로 나가보시려 하였으나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준비가 박두하여 그 계획을 미루시였다. 또 전원회의과정에 토론들을 들으며 총화내용을 풍부히 할수 있을것이라고 보시였다.

전원회의는 1960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에 대하여와 지방정권기관들의 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 등을 토의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한해동안 전국의 거의 모든 도, 중요한 공장, 기업소들, 수다한 농업협동조합들을 돌아보신데 기초하여 분석종합한 전반적인 당 및 국가활동과 경제의 관리운영, 지도방법에서 이룩한 성과와 심중한 결함에 대하여 일반화하여 천명하시였다.

···올해에 우리는 커다란 승리를 이룩하였다. 우리 나라의 공업생산은 지난해보다 훨씬 더 늘어날것이 예견되고있다.

반면에 결함도 있었다. 올해경제사업을 옳게 총화하는것은 앞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커다란 교훈으로 될것이다.

먼저 계획을 세우는데서 승리에 도취하여 객관적현실을 잘 따지지 않고 너무 높이 세웠다. (농업생산계획을 현실적조건에 맞게 세웠어야 할것이였다. 여기서부터 즉 농업성에서 계획을 주관주의적으로 높이 세운데로부터 올해농사의 우여곡절이 시작되였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9월이후부터는 결함을 바로잡고 다음해 계획을 세우는 사업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소극적인 우경보수주의적편향이 나타났다.

또 다른 결함은 경제건설에서 중심고리를 틀어쥐고 거기에 힘을 넣지 않고 사업을 너무 많이 널어놓은것이다.(농업성에서는 영농사업에 힘을 집중하지 못하였다.)

엄중한 과오의 하나는 로동생산능률을 높이기 위한 정치사업을 잘못한것이다. 가장 중요한 생산력인 사람에 대한 태도를 옳게 가져야 한다.

또 한가지 엄중한 결함은 일군들에게 당의 결정,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상이 부족한것이다.

···다음해에 우리는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힘을 넣어야 한다.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가 끝난것만 가지고 농촌경리가 완전히 사회주의경리로 되였다고는 볼수 없다. 농촌경리의 기계화를 실현하는데서 가장 중요한것은 농기계임경소의 역할을 높이는것이다. 농기계를 임대한다는 농기계임경소의 이름을 농기계작업소로 고쳐부르기로 한다.

토지관리사업을 잘해야 한다. 땅을 아끼고 사랑하여 정성껏 가꾸는 기풍을 길러야 할것이다.

우리의 인민위원회사업에서의 기본결함은 새 환경에 맞게 사업을 개편하지 못한데 있다.

우리 일군들은 혁명적사상관점과 사업방법을 철저히 체득하여야 한다.

혁명적사업방법이란 군중의 힘에 의거하는 방법이다.

···1956년과 1957년에 우리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자재와 자금 등 여러가지로 부족한것이 많아서 1차5개년계획을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리승만은 계속 《북진》하겠다고 떠들어댔고 매일같이 북조선에서 폭동을 일으키라고 방송했다. 또 웽그리아(당시)사변을 계기로 국제반동들은 공산주의가 망한다고 자꾸 떠들어댔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반당반혁명분자들과 싸워야 했으며 다른편으로는 인민생활을 급속히 향상시키기 위하여 경제건설을 더욱 활발히 추진시켜야 하였다. 이때에 당중앙은 우리 앞에 나선 난관을 타개하기 위하여 직접 로동자들과 토의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 지도간부들이 한두개의 도를 맡아가지고 공장으로 나갔다. 나는 강선제강소에 나갔다. 우리는 로동자들에게 우리 사정이 어렵다는것을 솔직히 이야기하였다.··· 로동자들은 나라의 형편이 그렇고 당의 요구가 그렇다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해내겠다고 하면서 강재를 국가계획보다 더 생산할것을 결의하였다. 그들은 강재를 6만t밖에 생산할수 없다던 분괴압연직장에서 9만t을 생산하겠다고 결의하였으며 결국 그해에 12만t의 강재를 생산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다.

이번 전원회의는 커다란 력사적의의를 가진다. 1956년 12월전원회의때와 마찬가지로 전원회의결정실행을 위하여 면밀한 조직사업을 하여 모두가 아래에, 군중속으로 들어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자각성과 열성을 적극 동원함으로써 전당이 앙양된 기세로 1960년도 완충기의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

전원회의에서는 당 및 국가, 경제지도의 모든 분야에서 관료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업방법과 사업체계를 마스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혁명적사업체계, 방법, 기풍을 세울데 대하여 특히 강조되였다.

회의에서 연안군당위원장을 비롯하여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시는 과정에 사업상 및 작풍상 결함들을 비판해주시고 대책을 세워주신 지방의 일군들이 토론을 많이 하였다. 그들은 수령님의 인민적인 령도방법에 대하여 한결같이 이야기하였다.

전원회의정신에 따라 인민경제 부문별 총화를 지으며 도당 전원회의, 군당 전원회의들에서 집행대책을 토의하며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이 아래에 내려가 토의사업에 참가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안남도당 전원회의를 지도하고 이어 강서군당 전원회의를 지도하실 계획이였다. 강서군당 전원회의를 준비하기 위하여 청산리와 강서군 당단체들의 사업을 료해할것이다.

그이께서는 이와 같은 지도사업을 통하여 우리 일군들이 체득하여야 할 하부에 대한 지도와 사업방법의 시범을 보여주시려는것이였다. 이와 같이 청산리에 내려가시려는 의도가 청산리지도를 통해 올해영농사업에 대한 총화를 지으려 했던 당초의 협소한 의미로부터 전반적인 당, 국가, 경제지도에서 새로운 혁명적인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창조하여 일반화하려는 포괄적이고 정책적인 의미로 확대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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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회의정신에 따라 이해가 거의 끝나갈무렵 농업성 당총회에서 한해 사업에 대한 총화가 있었다. 부문별 총화였다.

수령님께서 농업상, 농업성 당위원장, 당 농업부 부부장을 부르시여 총화회의방향을 주시고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상무위원 김일이 회의를 지도하도록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리하여 창밖에서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추운 날에 회의가 진행되였다. 밖은 추웠으나 회의장은 앙양된 당원들의 열기가 차고넘쳐 훈훈하였다.···

김일이 이 성당총회의 상세한 내용을 수령님께 직접 보고드리였다.

회의에서는 최영길부상이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당원들이 그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최영길의 권세에 눌리워있던 당원들이 특히 들고일어났다.

최영길은 우선 1957년도와 1958년도의 성과에 도취하여 구체적인 타산이 없이 1959년도 알곡생산계획을 높이 세웠다. 그는 목표를 높이 내걸고 우에서 아래에 대고 호령질만 하면 다되는것처럼 주장하였고 또 그렇게 행동하였다. 그는 《억센 손아귀》에 아래를 틀어쥐고 내밀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농촌경리가 유일적인 사회주의적경리로 된 조건에서 이러한 중앙집권제적인 통제가 가능하며 또 가장 효과적인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는 협동조합들의 실정은 성에 앉아서도 손금 보듯 알수 있다고 하면서 밑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으며 내려가는 경우에도 차를 타고 유람식으로 돌아보고는 좋게 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만족해하였으며 협동조합원들의 생활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집을 화려하게 꾸려놓고 풍청대며 생활하였다.

공업부문에서 농촌로력을 계속 뽑아가서 농촌로력이 긴장한 때 그는 청산리에 있는 자기 처남을 평양으로 끌어올려 주택건설사업소에서 일하게 했다. 농업성 부상이 친척들을 농촌일이 힘들다고 농촌에서 빼오면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교양하겠는가?

농업성은 알곡생산이라는 중심고리에 력량을 집중하지 못하고 농번기에 건설이요, 현금수입이요, 기계화요 하며 로력을 분산시켰으며 더우기는 《풍년축구경기》를 벌려놓고 숱한 청년로력을 모내기와 김매기에서 떼여냈다. 이러한 결과로 로력부족으로 자급비료를 제대로 내지 못했거나 지어 전혀 내지 못한채 파종을 하는 현상을 빚어냈으며 김매기를 제대로 못했다. 비바람피해막이대책도 미리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파종면적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으며(물론 여기에는 공장건설, 도로형성 등의 다른 원인도 있다.) 알곡생산이 현저히 감소되였다. 많은 협동조합들이 올해알곡생산계획을 엄청나게 미달하였다.

최영길은 남새생산계획도 똑바로 세우지 않고있다가 가을남새면적을 늘이도록 모든 협동조합들에 억지로 내려먹이는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리고는 이 긴급지시를 집행하는 과정에 협동조합들에서 의견이 제기된다 하여 규률과 질서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청산협동조합 관리부위원장을 해임시키도록 군에 지시했고 정당한 의견을 제기한 그 조합의 모범농민인 실농군을 관리위원자리에서 떼도록 충고를 주었다. 그 모범농민과 관리부위원장의 《죄》는 사료용으로 심은 강냉이밭을 뒤집어엎고 남새를 심자고 한 관리위원장의 지시를 반대한것이였다. 관리위원장의 지시대로 사료전을 갈아엎고 남새를 심은 작업반장은 칭찬을 받았다.

그는 자기 과신과 독단으로 충만되여있다. 상을 무시하고 독판을 쳤으며 성일군들이 인사를 제때에 못해도 욕설을 퍼붓는 등 제왕처럼 행세하였다. 당학습과 강연회에 자주 빠지고 정치학습을 등한히 하니 당정책을 알리 있는가? 자기의 소위 《농업지도일군경력》과 《농업전문가의 총명》만을 믿고 교만해지고 우쭐해졌으며 당조직도 안중에 없이 독판치기를 하였고 인민을 무시하고 허세만 부렸으며 자기 리속만 차렸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인민을 위해 일하며 농업을 지도할수 있는가?

《나쁜 놈!》주석단에 앉아 묵묵히 당원들의 장시간에 걸친 토론을 듣고있던 김일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드디여 입을 열었다. 《너같은 놈은 농촌에 나가서 농사를 지어봐야 해. 호미로 땅을 긁어보구 두엄냄새를 맡아봐야 사람이 돼!》

김일의 발언은 당원대중들의 일치한 감정을 반영한것이였다. 그들은 최영길을 철직시켜 농촌에 내보내야 한다는 결정을 채택하였다.

성의 부상인것만큼 김일성동지의 결론을 받아야 했다. 김일은 수령님께 회의 전과정을 말씀드리고 당원대중이 결정한 최영길의 철직문제를 보고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이 변질되여간것이 괴로우시였다. 품을 들여 키워온 간부를 한명 뗀다는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한해동안 현지지도를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지도일군들이 어떻게 사업방법을 개선하며 조직지도능력을 높여야 하겠는가 하는것을 가르쳐주었다고 볼수 있소. 그런데 최영길동무는 박창옥이나 허가이가 쏘련에서 배워가지고 와서 퍼뜨린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소. 그가 본것은 왜정시기 관료배들이 인민을 다스리던것과 사대주의자들이 퍼뜨린 관료주의작풍이였소. 이것이 몸에 배여있는 반면에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지도일군이 지녀야 할 품성과 사업방법은 아직 체득하지 못했소. 많이는 모르는데서 그리고 모르면 배워야 하겠는데 자고자대하여 당정책을 학습하지 않은데로부터 과오를 범했소. 본바탕이야 좋은 사람이 아니요? 농민의 아들이였소. 그런데 변질되였거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며 이미 계획하신 청산리지도의 총적방향에 대해서와 시대적요구를 다시 확신하시였다.

···

새해 들어 정초에 최영길이 농촌으로 떠나갔다. 배치지는 평안남도 승호군이였다.

가족들은 림시 떨구어두고 (현지에 가서 자리를 잡고 살림집이 마련되는 차제로 뒤따라간다.) 혼자서 떠나갔다. 당 및 행정적인 완전이동수속과 생활에 필요한것들을 갖추는 준비사업을 끝내고 떠나기 직전에 김만금과 작별하였다.

《상동무, 떠나겠소.》

각오를 단단하게 한 그의 얼굴표정이나 거동에서는 미안해하거나 비굴한 모습 같은것을 찾아볼수 없었다. 오히려 마치도 새로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려 가는듯 한 기백이 흐르고있었다.

《갑시다. 밖에 차가 대기하고있지요.》

김만금은 청사정문까지 나가 바래워줄 심산에서 출입문으로 향했다.

《아, 그럴 필요가 없소. 여기서 헤여집시다. 자, 잘있소.》

최영길이 그를 멈추어세우며 손을 내밀었다.

김만금은 하는수없이 사무실안에서 작별하려고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곧바로 바라보았다. 문득 오래전 일이, 농업학교시절에 왜놈사감을 때려눕히고 어디로 갈지 몰라하는 순간에 나타난 영길이가 《김군, 나를 따라오게.》하며 데리고 가 숨겨주었던,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도록 빼돌리는 작전을 끝내고 헤여질 때 손과 손을 마주 굳세게 잡고 의미깊게 서로 눈들을 마주보았던 일이 머리에 번뜩 떠올랐다.

《앓지 마오.》

김만금은 갈리는 목소리로 겨우 이 말을 했다.

《고맙소.》

최영길이 먼저 마주잡은 손을 놓고 돌아서서 나갔다. 그 순간 만금은 영길이도 자기처럼 지나간 일을 추억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떠나겠소.》하고 기백있게 말한 그가, 이 장대하고 황소처럼 일을 내밀던 강철같은 성격의 사나이가 돌아서서 나가다가 문턱에 발을 걸채이고 비칠거리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