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3

 

3

 

··· 그날 원동마을을 찾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일군들과 담화를 하시다가 농가에도 한번 들려보자고 하시였다.

《리준형로인네 집에 가보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로인이 모범농민이고 그의 맏아들도 아버지 못지 않은 실농군입니다.》

리인민위원장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그 로인네 집에 가봅시다.》하고 담화를 마저 끝내시였다.

장군님께서 안내되여가신 그의 집은 초가집이였으나 부지가 넓었다. ㅁ자형으로 사방에 건물들, 즉 부엌까지 세칸인 본채와 그 본채에 왼쪽으로 수직되게 서있는 사랑채, 오른쪽의 토굴과 외양간, 본채 맞은편에 헛간들이 자리잡고있었다. 초가집인것이 못내 아쉬웠다.

장군님께서 삽짝문을 열고 뜨락에 들어서시니 체구가 장대하고 골격이 굵으며 희슥희슥하고 풍만한 수염이 가슴에 보기좋게 드리운 로인이 흥분해서 붉어진 얼굴로 뜨락에 서있는데 길게 째진 눈에서 린광이 번들거리였다.

《할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장군님께서 서글서글 웃으시며 먼서 인사를 하시였다. 로인의 불이 황황 이는듯 한 눈길이 잠시도 장군님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로인은 늦게야 정신이 들어 어지간히 당황해하며 옛날식으로 왼손바닥을 오른손등우에 올려가지고 배에 붙이며 머리를 깊이 숙여 읍을 하였다.

《예, 어서오십시오. 중앙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 루추한 농사군의 집을 찾아주시니 황송스럽기 그지없소이다.》

그는 정중히 답례를 올리였다.

《주인할아버지이십니까?》

《예, 그렇소이다.》

《식구는 몇입니까?》

《이 집에서 아홉명이 삽니다.》

《누구누구 삽니까?》

《예, 저희 령감로친과 손주들이 저 본채 아래방에서 살고 웃방에는 맏손주와 손주며느리가 살고 사랑채에서는 맏아들 량주가 삽니다. 작은아들은 분가했습니다.》

《대단한 가정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감동을 금치 못하시였다.

《이 집은 언제 지었습니까?》

해방전에는 이렇듯 큰 집을 가지고있지 못했을것이라고 짐작하시며 그이께서 건물들을 돌아보면서 물으시였다. 그때 그이의 눈에서 신비로운 광채가 번뜩이는것을 리준형은 다시 황홀하게 보았다. 로인이 대답을 드리였다.

《원래 이 본채 하나뿐이였는데 토지개혁이후 농사를 잘 지어 쌀이 넘쳐나게 되니 그 남는 쌀을 밑천으로 사랑채와 헛간, 외양간들을 덧붙여 늘구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였다. 토지개혁이후 농민들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하는것을 여기서도 알수 있으시였다.

《쌀독을 좀 봅시다.》

리준형은 장군님을 안내하여 창고쪽으로 향했다.

창고앞에 암닭 대여섯마리와 그것들을 거느리고있는 수닭 한마리가 몰켜서있었다. 손님들이 마당에 들어서자 그리로 피해갔던것이다. 그런데 주인령감이 손님들을 모시고 닭무리로 다가가자 암닭들은 날개를 치며 후닥닥후닥닥 달아났지만 또다시 피해가야할 처지에 불만을 품은 수닭은 커다란 붉은 볏이 더 빨개지며 엇서려 하였다. 등색, 갈색, 자주색, 푸른색 등의 털빛이 울긋불긋하고 꼬리털이 아름답고 앞가슴이 쩍 벌어지고 큼직한 발통에 발톱이 사납게 구부러든 수닭은 위엄있게 대가리를 쳐들고 뒤로 조금씩 쫓기며 꾸르륵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주인령감의 바지가랭이를 쪼아주려고 역습으로 넘어왔다. 주인령감이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단호하게 내짚자 이 성미 고약하고 고집스럽고 거만한 장닭은 다시 뒤로 훌떡 쫓기며 《꼬꼬댁 꼬꼬댁》하고 소리를 질렀다.

장군님께서 장닭을 보며 허허 웃으시였다.

《그놈이 괜찮게 생겼는데요. 성미가 보통아닙니다.》

《성미가 사납구 고약한 놈입니다.》 로인이 자못 자랑스러운듯 말씀드리였다.

《닭들을 많이 치고있습니다. 울긋불긋한 토종닭들이 볼만 합니다.》

리준형은 소란스럽게 구는 장닭을 손짓으로 쫓아보내고 농기구들이 들어있는 첫번째 창고문을 지나 두번째 문을 열었다.

해빛이 비쳐들자 고간안에 놓여있는 세개의 쌀독이 보였다. 장군님께서 로인을 뒤따라 허리를 낮추시며 안으로 들어가 그가 열어보이는 독안을 살피시였다. 세 독에 하얀 쌀이 가득가득 차있었다.

《웬 쌀이 이렇게 많습니까?》

《제땅에서 뼈심들여 일하니 현물세, 애국미를 바치고 한해 먹고서도 이렇게 많이 남았습니다. 쌀을 빼앗아가는 지주들이 없으니까요.》

장군님께서는 옥백미를 한줌 쥐여보시였다. 기름기도는 쌀이 주르르 흘렀다.

그이께서 로인을 돌아보시였다.

《쌀이 참 좋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데 다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로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올리였다.

《생활이 나날이 유족해지니 욕심도 커지는것 같습니다. 먹고남은 쌀을 팔아 기와집을 지었으면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참 생각을 잘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농민들이 기와집에서 살아야 합니다.》하고 만족을 금치 못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마당으로 나오시는데 방금 밭에서 들어오는듯 한 쉰살정도 나보이는 듬직한 농민이 허리를 꺾어 인사를 올리는것이였다.

《로인의 맏아들 리종수농민입니다.》 리인민위원장이 소개해드리였다.

《그렇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반가와하시며 리종수가 올리는 인사를 받으시였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체격이 요란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어깨도 넓고 다부지였으며 눈이며 입, 얼굴이 다 잘 생기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겉보기에도 미더워보이는 모범농민부자가 다 그이의 마음에 퍽 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집을 마저 돌아보시며 외양간에 이르시였다. 외양간이 비여있었다.

《소는 몇마리입니까?》

《황소 한마리인데 지금 밭에 나가있습니다.》

로인의 대답이였다.

마당에서는 장닭이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암닭들을 거느리고 태평스럽게 돌아다니고있었다. 조금전에 주인에게 쫓기우는것이 기분나빠서 꼬꼬댁거리며 화를 내던 일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닭의 골이란 말이 우연하게 생긴것이 아니다.

《방안을 좀 구경할수 있습니까?》

장군님께서 로인에게 물으시였다.

《방안이 루추합니다.》하면서도 로인은 먼저 토방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드리였다.

장군님께서 토방우로 올라가시여 구두를 벗고 노전을 깨끗하게 깐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첫눈에 재봉기와 라지오를 보고 새로 장만한것인가고 물으시였다.

《면인민위원회에 다니는 둘째손주가 사온것입니다.》

《이만하면 옛날 부자놈들 부럽지 않겠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모범농민의 가정이 다릅니다. 농사를 잘 짓고 살림살이도 잘합니다. 이제 기와집만 지으면 되겠습니다. 정말 내 마음이 저절로 흐뭇해집니다.》

장군님께서는 잠간 앉았다 가자고 하시며 먼저 노전을 깐 수수한 구들에 앉으시였다. 리종수가 방석을 얼른 가져다드리였으나 그이께서는 그것을 한옆으로 밀어놓고 리준형에게 물으시였다.

《할아버지, 논갈이는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는 소도 있고 로력도 많으니 념려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로력자도 로력자이겠지만 육체가 좋고 근실한 리로인부자가 농사를 뼈심들여 잘 짓기때문일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로인의 손은 아들의 손보다 더 크고 묵직해보이였다.

《이 마을에 소도 없고 로력도 곤난한 집이 있습니까?》

《예, 한 륙칠호가량 됩니다.》 리종수의 대답이였다.

《그 집들도 어떻게 하면 다 농사를 잘 짓도록 할수 있겠습니까? 해방을 맞이하고 땅을 분여받은 농민들이 다 잘살아야지 차이가 생기면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 걱정되는 문제를 꺼내시였다.

《글쎄 제각기 농사를 짓고있으니···》 리준형이 말끝을 흐리였다. 《그런데 바루 말씀드리면 어떤 농사군들은 제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주인인데 구실을 제대로 못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이야기를 심중하게 들으시였다. 토지개혁이후 농민들은 땅과 나라의 주인이 되여 애국적생산열의가 비상히 앙양되였으나 다 같지는 않았다.

《농사일의 근본이 땅을 어떻게 기름지게 하고 잘 다루는가 하는데 있지 않겠습니까.》 리준형이 계속하였다. 《근본을 망각하면 농사군이 아닙니다. 농사군이 땅을 아끼지 않으면 농사를 망칩니다.》

장군님께서는 땅에 대한 로인의 소박한 철학을 들으시며 적극 긍정해주시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할아버지에게서 많은것을 배웁니다.》

로인의 아들 리종수가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리종수는 성미가 급하고 세차며 개방적인 부친에 비해 내성적이고 과묵했다. 그도 어느덧 50줄에 들어섰는데 말을 적게 하고 꾸준히 일을 많이 하는 농민이였다.

《저의 아버지는 땅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하고 리종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땅이 말하기를 진짜주인을 만났으니 농사를 잘 짓자고 했답니다.》

리준형로인은 토지개혁당시의 자기의 내적충동을 억제 못해 말했는데 아들이 정말 자기가 땅이 하는 말을 들은것처럼 이야기하니 저으기 얼굴을 붉히며 난처해하였다.

장군님께서 소탈하게 웃으시였다.

《토지개혁은 우리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실현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도 기뻐하고 땅도 기뻐하는것이겠지요. 땅이 진짜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주인구실을 잘못하면 땅이 노할것입니다. 하하···》

농가안에 웃음이 차넘치였다. 로인이 소리내여 웃자 가슴에 드리운 수염이 보기좋게 흔들렸다. 아들인 리종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다.

《참 명언이십니다!》 로인이 감탄해마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른의 말씀대로 품앗이도 하고 소겨리도 해서 뒤떨어진 농가들을 추켜세워 마을이 다 농사를 잘 짓겠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갈수록 로인이 마음에 드시였다.

《할아버지는 참 훌륭하십니다. 선진적인 할아버지입니다.》

어느덧 가실 시간이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일어서며 로인에게 《이제는 가봐야 할것 같습니다.》하고 토방으로 나가시였다.

리준형일가모두가 사립문밖에까지 나가 그이를 바래여드리였다.

《할아버지, 오늘 유익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좋은 세상에서 오래오래 사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머리숙이는 로인의 손을 다시 잡아주고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승용차가 탁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봄바람에 허연 수염을 날리며 삽짝문밖에 서있는 로인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 리준형로인은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뉘신지 성함이라도 알아볼걸 그랬다.》

리종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아버지는 여태 김일성장군님을 알아뵙지 못하고 모시였댔습니까?》

로인이 더욱 놀랐다.

《뭐라구? 이 사람아, 그 얘기를 왜 이제야 하느냐?》

로인의 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나는 아버지가 알고계시는줄 알았지요.》

리준형로인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아, 이런 망녕된 일이 어디 있느냐. 땅을 주신 장군님을 뵈옵고도 고맙다는 절을 드리지 못했으니···》

이것이 장군님과 리씨일가와의 첫 인연이였고 동시에 리준형로인과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유일한 상봉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1951년 봄 청산벌을 지나가시다가 리종수를 만나 리준형로인의 최후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후에도 그이께서는 리종수를 여러번 만나시였다. 농업협동화가 끝나고 농사가 잘된 작년가을에도 수령님께서는 암화협동조합에 오시여 리종수로인을 만나보시였다.

이렇듯 그이와 리준형일가와의 인연은 우리 농촌의 발전력사와 더불어 더욱 깊어졌고 그이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추억하군 하시였다. 오늘도 그이께서는 강선제강소에 갔다 오시는 길에 청산벌을 가까이 하게 되자 새봄이 움트는 농촌풍경을 보시며 리씨일가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지금 그이께서 승용차를 달려가시는 평양ㅡ남포사이 큰길은 그이와 결부된 가지가지 전설적인 이야기들로 엮어진 길이였다. 해방직후 고향 만경대를 지나 강선의 로동계급부터 찾아주신 력사의 이야기가 이 길우에서 꽃펴났고 건군의 첫 기슭에서 평양학원과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아 수없이 차를 달리며 정규군건설에 분투하신 이야기와 태성리의 할머니로부터 《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합니다.》라는 인민의 목소리를 들으시며 무한한 신심과 힘을 얻으시였던 이야기, 옥도리관리위원장 림근상농민으로부터 다수확경험을 들으신 이야기 등 가지가지 사연들이 이 길우에 수놓아져있는것이였다. 그 일화들중에 리준형과 그의 아들 리종수를 만나주신 이야기도 깃들어있다.···

승용차는 청산벌에 들어섰다. 그이께서는 줄곧 차창밖에 눈길을 주고계시였다.

봄기운이 확연히 느껴졌다. 훈훈한 바람과 쟁글거리는 해볕이 겨우내 잠들었던 대지에 소생의 청신한 입김을 불어넣어준듯 드넓은 땅이 기지개를 켜고있다. 불가항력으로 엄혹한 겨울을 밀어내고있는 청산벌이 봄의 교향곡을 시작한것이다.

올해는 류다른 봄맞이를 하는 해이다. 전국적으로 농업협동화가 완성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이다.

들판 여기저기에 두엄을 실어내고있는 농민들의 모습이 보이였다. 승용차가 청산리 암화마을앞을 지나고있을 때 수령님께서는 논한가운데로 난 달구지길을 가리키며 부관에게 말씀하시였다.

《저기 소달구지를 몰아가는 농민이 리종수로인같구만.》

《그런것 같습니다.》

수령님을 모시고 암화에 가서 만났던 리종수로인의 건장한 모습을 기억하고있는 부관이였다.

《논에 거름을 실어내는중인것 같소. 가서 데려오시오.》

부관은 시계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없었던것이다.

《잠간 만나보고 가자구.》

부관은 하는수없이 차를 세우도록 하고 문을 열고 내렸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차에서 내려 큰길에서 청산리로 갈라져들어가는 달구지길어귀에서 부관이 리종수를 데려오기를 기다리시였다. 뒤따르던 승용차에서 부수상을 비롯한 수원들이 역시 내려 그이께로 다가왔다.

날씨는 아직 찼다. 들에 부는 바람은 맵짠 기운이 어지간히 빠지고 부드러운 훈향이 느껴지고있었지만 음달에는 눈이 아직 쌓여있어 거기로부터 찬기운이 풍겨와 대기는 쌀쌀했다. 그이께서 입으신 외투자락이 들바람에 펄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