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9

 

29

 

평양시의 어느 주택건설사업소에 발을 붙이고 일을 시작한 차두철이는 집짓는 작업이 구경할 때와는 다르다는것을 첫순간에 깨달았다. 농사를 지어보았고 관개공사장에 나가 곡괭이로 땅을 파고 함마로 정을 때리고 목고질을 하는 등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이 없이도 되는 로동을 해본 경력밖에 없는 두철이에게 있어서 주택건설작업은 생소하고 기능이 요구되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여기서도 모래와 세멘트와 물을 메날라다가 몰탈을 이기고 또 운반하거나 작업장을 정리하고 청소하는따위의 무기능공들이 하는 작업이 있었다. 이런 일이 두철이같은 무기능공과 신입로동자들에게 차례지는것은 응당하다. 그러나 공사장에서 소대장까지 했고 자존심이 센 두철이는 부끄러움을 느끼였다. 그렇지만 그가 언젠가 주택건설장을 지나며 본, 입에 호각을 물고 붉은기로 신호를 하여 기중기를 지휘하고 벽체들을 세우고 용접불광을 날리는 황홀한 작업은 오랜 경험을 가진 기능공들이 하는 일이여서 두철이같은것은 아직 감히 바랄수 없었다.

두철이는 점점 흥미를 잃었다. 그는 잔잔한 생활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몰탈을 이기고 나르는 매일 반복되는 작업이 농촌에서 김매는 일처럼 따분하게 느껴졌다.

(내가 작업을 잘못 선택했구나. 이제라도 옮겨볼가?··· 어디루?··· 친구가 있는 체육단에 가서 뽈을 찰수 있지.) 순간 그는 《풍년축구경기》에 뛰여들어 망신을 당했던 일이 떠올라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뽈을 놓은지 언제인데 아직 축구생각인가. (그럼 어디로 옮길가.)

농촌에서 밥을 사발이 넘쳐나게 먹던 그는 이곳 합숙에서 주는 밥으로는 도저히 견딜수 없었다. 이것 또한 큰 고민거리였다. 그는 점점 꺼칠해져갔고 우울증에 빠지군 하였다. 누이네집에 드문히 가서 영양보충을 하고 점차 좋은 자리로 옮겨줄테니 좀 참으라고 하는 위안도 얻군 하여 어느정도 진정이 되는가싶었는데 어느날 춘심이한테서 편지가 날아왔다.

《···뜻밖이군요. 두철동무, 나는 놀랐어요. 그리고 분했어요. 동무가 고향을 뜨다니요? 더구나 나하고 토론 한마디없이 그저 마지 못해 하는것처럼 편지 한장 날리고 가버리다니요?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나는 모욕을 받았어요. 두철동무의 그 자신만만한 태도, 나에 대한 홀시에서 모욕을 받았단 말이예요. 앞으로 나도 평양에 데려가겠다구요? 내가 그런 소리에 끌릴것 같던가보지요? 아니예요. 동무나 평양에서 잘사세요.

나는 이제와서야 동무가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 진출했지만 땅에 심장을 바치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은것이 분해요. 이제와서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잘 가세요. 내가 바라는건 평양건설장에 가서는 착실한 인간이 되여달라는거예요.》

편지는 두철이에게 보내는 결별장이였다. 춘심이가 이렇게 나오리라고 미처 생각 못했던 두철이는 심중해졌다.

(내가 춘심이를 다 모르고있었구나. 내가 너무 자고자대했는가?··· 혹시 춘심이가 자기와 미리 토론하지 않았다고 노여워서 분풀이를 하는것은 아닌지?)

분풀이를 하는것 같지 않았다.

《나는 청산벌 농민의 딸이예요. 이 땅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피땀을 쏟으며 농사를 지었고 또 짓고있으며 오빠와 저도 농사를 짓고있고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농사를 지을거예요.》

두철이는 비로소 춘심이가 속해있는 리씨일가에 대하여 심중히 생각해보게 되였다. 청산리에서 손꼽히는 농민일가이다. 그 집안에서 자라며 교양받은 춘심이는 땅에 뿌리를 든든히 내린 거목의 한 가지였다. 그 뿌리를 떠날수도 없고 떠나면 가지의 생명은 끝나는것이다. 두철이는 자기가 큰 착오를 범했다는것을 느끼였다.

《쌀이 없이야 나라도 존재하지 못하지요. 쌀이 없이 건설을 할수 없지요. 그러니 나는 변함없이 고향땅을 가꾸어가는 농민으로 남아있을거예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말이예요.

두철동무, 농촌이 싫은 사람이야 어찌겠어요. 사람이란 다 갈길이 다르지요. 그리구 건설장에서도 일을 잘하면 혁신자가 되지요. 나는 두철동무가 혁신자가 되여 신문에 이름이 나기를 바래요. 그러니 꼭 성실한 인간이 되여 성공하세요. 우리 둘사이에 있었던 일은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자요.》

두철이는 방안에 앉아있기가 답답하여 편지를 품에 간수한채 외성독신자합숙을 나와 대동강으로 나갔다. 대동강반의 넓은잎나무들이 누렇게 되여 가을바람에 설렁대며 락엽지고있었다.

(아 아, 춘심이!) 처녀에 대한 애정이 물밀듯 밀려들어 헐떡이면서 그는 락엽을 버석버석 밟으며 유보도로 나갔다. 어째서 이곳으로 나왔는지 알수 없었다. 이곳에서 저녁마다 군중무용이 벌어져 두철이가 자주 나왔었고 혹은 일요일에 춘심이를 그려보며 거닐기도 하였기때문에 습관적으로 발걸음이 옮겨졌을것이다.

두철이는 춘심이가 범접하기 어려운 처녀처럼 쳐다보이였다. 춘심이는 편지를 쓰는 순간에 자기를 증오하고 타매하고 결별을 선언하면서도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있었다는것이 편지의 글줄마다에 흐르는 맥락을 통해 느껴졌다. 편지에서 처녀의 높은 정신세계와 녀성다운 인간미가 아픈 심정과 사랑의 감정속에 풍기고있었다. 처녀는 도량이 컸다.

어둠속에서 대안의 불빛이 드리워 흔들리는 대동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유보도 8각등밑에서는 북과 나팔소리에 맞추어 청년들이 군중무용을 하며 빙빙 돌아가고있었다. 두철이는 뜨락또르운전수양성소에 찾아갔던 날 저녁이 방불히 떠올랐다. 춘심이가 춤을 추다가 반겨 달려나왔었다. 그밤 풀밭에 앉아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두철이는 자기가 너무 자신을 과신하고있으며 춘심이를 무시하였다는것을 인정하게 되였다. 춘심이를 너무도 몰랐던것이다. 잡아당기면 쉽게 끌려올 처녀로 생각했다. 하지만 춘심이는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있었다. 땅에서 떠있는 인간은 두철이였다. 그는 자기가 춘심이한테 뒤떨어져있으며 교양받을 처지에 놓여있다는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 결별하는 길밖에 없다. 춘심이도 그를 못 잊어하고 그도 춘심이를 사랑하고있건만 그들은 결별해야 하는것이다. 두철의 편지를 받은 춘심이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춘심의 회답을 받은 두철이역시 자존심을 내버릴수 없었다.

이미 한 인생전환을 바꿀수 없었다. 두철이는 잃어서는 안될 사람을 잃었다. 사발에 담은 물은 엎질러졌다. 운명은 이미 결정되였다.

그는 쓸쓸해오는 가슴을 누르며 단호한 동작으로 돌아섰다. 유보도의 층계를 밟고 컴컴한 나무숲을 지나 합숙으로 돌아가는 두철이는 자기는 청산벌에서 영영 떨어져나온 존재임을 인식했다.

그러나 운명은 두철이를 다시 시험대우에 올려놓았다.

공업부문에서 농촌으로 진출이 있게 된다는 풍문이 도는 어느날 두철이네 직장의 젊은 로동자가 안해와 함께 자원하여 농촌으로 떠나갔다. 그는 제대군인이였으며 당원이였다. 이 사실은 두철이에게 상당한 심리적작용을 주었다. 당의 호소를 받아들이고 자진하여 농촌에 진출하는 당원의 모습을 보며 그 어떤 량심의 가책을 받는 한편 그러나 자기는 농촌에서 빠져나왔으니 다시 돌아가기는 멋적은 일이며 따라서 결코 자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일 사업소에서 농촌진출을 권고하면 어떻게 할것인가?··· 불안속에 잠겨있는데 과연 로동과 지도원이 그를 찾았다.

로동과 지도원이 물었다.

《두철동무, 여기 언제 왔더라?》

《7월달에 왔습니다.》

《음, 7월달이지.》 그는 문건을 보며 확인했다. 그는 문건에 다 있지만 정신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하여 묻는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것이나 같구만.》

《그렇다구 할수 있습니다.》

《집이 어디드라?》이것도 알면서 묻는 소리였다.

《강서군 청산립니다.》

《음, 청산리. 장가는 갔소?》

《아니요.》

《독신이구만.》 그는 문건에서 눈을 떼고 허리를 쭉 폈다. 《두철동무,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알고있겠지?》

《모릅니다.》 그는 농촌진출문제가 그 결정에 따른것임을 모르고있었다.···

이 상무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경제사업지도에서 나타난 엄중한 결함들을 분석총화하시고 일부 잘못된 현상들을 시급히 바로 잡을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페경지를 복구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겠다.

경지면적이 적은 우리 나라에서는 한치의 땅이라도 아껴써야 하며 토지리용률을 높여야 한다.

···다음으로 공업부문과 건설부문에서 로력을 조절하여 농촌에 돌려야 하겠다. 로동자들속에서 정치사업을 벌려 그들이 《농촌에로!》라는 구호를 들고 자진하여 농촌에 진출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오늘 농촌에는 로력의 여유가 없다. 오히려 로력을 보내주어야 할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로력을 뽑아서 공장에 돌렸다. 그 결과 농촌의 로력사정은 더욱 긴장하게 되였으며 반면에 공장에서는 로력의 여유가 생겨 랑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로동생산능률이 점점 떨어졌다.···

두철이가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이런 심각한 토의가 있었다는것을 알리 없었다.

로동과 지도원은 당에서 중요하게 농촌진출문제를 결정하였다는 사상을 알려주고 이렇게 계속하였다. 말하자면 정치사업을 하는것이였다.

《이렇게 돼서 이번에 국가적으로 건설부문과 공업부문 로동자들을 축소해서 농촌으로 보내는 조치가 취해졌소. 동무도 알고있겠지?》

《압니다.》

《그런데 여러가지로 타산해보았는데 농촌에서 뽑혀온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내는것이 제일 적합할것 같단 말이요. 그래서 우선 농촌 출신들부터 선발하기로 하였소. 두철동무로 말하면 농촌에 집도 있겠다, 갓 진출해와서 아직 건설로동이 서툴겠다, 그러니 첫 대상으로 뽑히였소. 집도 있고 기능도 있는 사람을 뽑는것보다 그게 합리적이 아니겠소. 그래 어떻게 생각하오?》

차두철이는 상대방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혹시? 했던 불안이 현실로 들이닥치였다. 그는 지도원의 얼굴이 안개속에서처럼 몽롱하게 보이였다.

《다른 의견이 있소?》

지도원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오는듯 했다.

《의무성을 띱니까?》 두철이는 더듬거리며 이렇게 물었다.

《아니, 아니요! 철저하게 자원성이요. 당중앙위원회는 로동계급이 자진하여 나라에 조성된 공업과 농업간의 로력불균형을 조절하는 사업에 참가할것을 호소하고있소. 만약 동무에게 무슨 사정이나 애로가 있다면 고려하게 되오. 그러니까 그런것이 있으면 털어놓고 말하오.》

두철이에게 무슨 사정이나 애로가 있겠는가, 있다면 이제 고향으로 되돌아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특히 양성소를 마치고 돌아올 춘심이와 어떻게 대면하겠는가 하는 체면상의 딱한 경우가 있을뿐이다. 이것은 당의 호소를 외면할 리유로 될수 없다. 어차피 농촌으로 가야 할 운명이라면 다른 농촌마을에 나갈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행동이며 리치에도 맞지 않는다. 어머니를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는 여유를 가지려고 이렇게 대답했다.

지도원은 선선히 응했다.

《생각해보고 결심이 섰으면 다시 찾아오오.》

의무성을 띠지 않는다니 머리가 자연 복잡해졌다. 며칠전에 농촌에 진출해간 제대군인 당원부부의 모습이 그의 량심을 괴롭히였다. 그렇다고 《옛, 진출하겠습니다.》하고 선뜻 나서게 되지도 않았다.

그는 로동과사무실을 무거운 마음으로 나왔다. 그는 이 주택건설사업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언젠가는 뜰 결심을 하고있었으나 농촌으로 되돌아가려는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당은 농촌으로 부르고있다.···

생각에 깊이 빠져 저도 모르게 누이네 집으로 향했다. 누이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해보려는 심리가 은연중 작용했을것이다. 그런데 늘 반겨맞던 누이가 오늘은 심란한 얼굴이였다.

《너 무슨 일이 있었니? 얼굴이 푹 꺼졌구나. 혹시 농촌진출에 걸리지 않았니?》

누이가 걱정스레 하는 이 말에 두철이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누이가 그걸 어떻게 아오?》

《매부가 그러는데 당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구 국가적인 조치가 취해졌다고 하더라. 농촌로력을 도시에 빼온것이 말썽인것 같애. 매부가 너를 평양에 끌어올린것때문에 무슨 말을 들은 모양이더라.》

두철이는 사고가 마비되는듯 했다.

《내가 잘못 떼질을 쓴것 같다.》 누이가 풀이 죽은 어조로 계속하였다. 《일이 참 별나게 됐다. 별나게 꼬이는구나. 매부가 그러는데 네가 어쩌면 진출에 걸릴것 같다구 하더라. 그래 담화했니?》

《···》 두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찾아온것 같은데 매부가 힘써줄것 같지 못하구나.》

(내가 매부의 힘을 빌어 빠져보려고, 그래서 찾아온것으로 아는구나! 수치스럽구나!)

《내가 그래서 도움을 받자고 온건 아니요.》하고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에 결심을 하였다. 《나는 내 결심을 알리러 왔단 말이요.》

누이는 망연자실해 앉아있는데 두철이는 창피스럽고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쳤다.···

수척해지고 눈이 커지고 입이 한일자로 굳게 다물려진 차두철이는 밤차로 고향에 내려갔다. 밤길을 걸어 취득에 갔고 고향집문을 두드렸다.

《아니, 네가? 어떻게 된거냐?》

배낭을 지고 트렁크를 든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놀라며 반가와하였다. 딸네집에 가지 않고 이곳에서 죽어 남편의 곁에 묻히겠다고 한 어머니는 집을 뜨지 않았으며 변함없는 애정으로 아들을 끌어들이였다.

《아주 왔어요. 어머니!》

《그래? 잘했다.》어머니의 대답이였다.

이튿날 밤에 관리위원회로 가서 장영덕위원장을 만났다. 관리위원장은 꿈같은 려행을 하고 나타난 두철이를 놀랍기보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두철이가 성난듯 무뚝뚝하게 하는 설명을 듣고 장영덕은 그의 창피해하는 심리를 리해하면서 간단히 말했다.

《건설로동을 했다니 건설반에 가서 일해라.》

두철이는 모자를 쥐고 일어서서 나갔다. 그는 다음날부터 일찌기 사람들의 래왕이 드문 시간에 건설반에 나갔고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장차 춘심이가 양성소에서 돌아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처녀를 찾아가지 않고 만나지 않으며 오직 추억으로만 간직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어느날 리춘권이가 건설반에 찾아왔다.

건설반에서는 돼지우리를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있었다.

《너 왔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야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와야지.》

두철이가 형님처럼 대하는 춘권이다. 그러니까 그 질책은 응당한것이였다. 춘권이도 두철이를 친동생처럼 대했던것이다.

망치로 못을 박고있던 두철이는 일어서서 망치자루만 만지며 머리를 들지 못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무슨 일인들 없겠니? 네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그 심정은 알만 하다. 그러니까 지나간 일은 다 잊어라. 돌아왔으니 되지 않았니?》

춘권이가 형님처럼 타일렀다.

두철이는 대기를 페속깊이 들이키고 대답했다.

《춘권형님, 찾아와주어 고맙소. 내가 찾아갈수 없었다는 사정을 리해하여주니 더욱 그렇소. 그러나 다시는 나를 찾지 마오. 나를 잊어주시오.》

춘권이는 춘심이가 곧 오겠는데 야단이군 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편지가 왔었다. 양성소를 마치고 배치지를 선정할 때 기양농기계임경소로 보내달라고 졸라 승인을 받았으니 곧 고향으로 가게 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춘심이가 두철이의 일을 모를리 없을것이다.

《두철이, 그러지 말라구. 춘심이가 인차 양성소를 졸업하고 온댔어.》

춘권이가 이렇게 말하자 두철이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이그러졌다.

《형님, 우린··· 갈라졌어요. 그 책임은 물론 나한테 있지요. 다시 부탁합니다. 이 몹쓸놈을 잊어주시오.》

두철이는 이야기가 끝났다는것을 암시하듯 망치질을 시작했다.

춘권이는 쓰려오는 가슴을 안고 그 자리를 떴다.

춘심이는 그후 인차 고향으로 돌아왔다.

반년나마 떨어져있다가 다시 보는 고향산천! 강서역에서 기차를 내린 춘심이는 기양농기계임경소에 잠시 들려 지배인과 인사를 한후 짐을 풀기 위하여 청산리 암화마을로 향했다. 석두재를 등진 아담한 마을에 부모님과 오빠, 형님, 사랑스런 조카가 살고있는 정든 집이 있다. 지금 집에서는 어떻게 하고있는가. 아버지는 여전히 조합일밖에 모르시겠지. 춘권오빠 뚝박새는? 형님은? 어머니는 여전히 큰 가정일에 분주하시겠지. 그사이에 더 늙으셨을거야. 누렁이는 새끼를 몇마리나 낳았을가.

마을뒤에 우뚝 서있는 석두재를 보느라니 멀리 지나간 시절에 바람부는 날 두철이가 꽃을 꺾어주던 일이 추억되여 춘심이는 숨이 컥 막히는것 같았다. 너무도 가슴이 쓰려 두철이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두철이와의 관계는 이미 매듭을 짓지 않았는가.

집뜨락에 들어서기전에 벌써 말처럼 큰 누렁이가 달려나와 춘심이의 키를 넘으며 짖어대면서 껑충껑충 뛰였다. 앞발을 어깨에 올려놓고 낑낑거리며 턱과 볼, 코를 마구 핥았다.

《됐다됐다. 누렁아, 잘 있었니?》

누렁이는 앞길을 막기도 하고 좌우에서 계속 껑충껑충 뛰며 따라왔다.

《춘심이가 오는구나!》

어머니가 달려나오고 어린 조카, 이 리씨가문의 4대종손이 두팔을 쳐들고 소리치며 뒤따랐다. 춘심이는 조카를 안고 보동보동한 손을 깨물어주며 귀여워서 어쩔줄 몰랐다.

점심밥을 짓는 사이와 먹는 동안에 집소식과 조합소식을 들었다. 맨나중에 어머니는 춘심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며 두철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하였다.

춘심이는 얼굴이 해쓱해져 숟가락을 놓고 웃방으로 들아가버리였다. 가슴속에 아픈 상처를 남기긴했지만 어쨌든 잊어버리려 했으며 결렬을 선언한것으로 관계를 끊었다고 생각한 두철이가 고향에 다시 내려와있다니 우선 창피스럽고 그것을 두고 고향사람들이 뒤에서 말을 돌릴터인데 그 귀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랴. 두철이와도 만나게 될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절대로!)

춘심이는 마음을 모질게 도사려먹었다. 깨진 사발이요 엎지른 물이다. 하지만 두철이가 여기 있으니 얼마나 따분한가.

어머니가 들어와 위로하여서야 겨우 진정이 되였다. 춘심이는 눈물을 씻고 세면을 한 다음 임경소를 향해 떠났다. 마음이 한없이 쓸쓸했다. 들바람에 치마자락이 펄럭이였다.

지배인은 춘심이를 처녀운전수라는 의미에서 류다르게 대하는것 같았다. 정식으로 처녀운전수와 담화를 하는 과정에 아버지가 누구라는것을 알게 되자 그 로인에 대한 존경심을 딸에 대한 친절성으로 표시했다.

《처녀운전수한테야 새 차를 줘야지. 우리 나라에서 만든 〈천리마〉호를 주지. 허허···》

《고맙습니다.》

《5작업반에 속해 일하오.》

춘심의 배치는 이렇게 즉석에서 락착되였다.

5작업반운전수들은 저녁에 모여들었는데 합숙에서 생활하는 운전수의 호실에다가 처녀운전수의 《환영연회》를 차렸다. 춘심이는 별로 흥심없이 참가했다. 차두철이때문에 작업소에 배치되여온 기분마저 잡치게 된것이였다. 작업반운전수들이 왜 수심에 잠겼느냐, 수심에 잠긴 처녀의 눈은 총각들의 가슴을 더 자극한다는데 춘심이는 성이 나야 더 매력있을것 같다 등등 수선을 떨었다.

《여기서는 늘 이렇게 잘사나요?》

푸짐하게 차린 식탁(앉은뱅이책상우에 신문지를 편것이였다.)을 보며 춘심이가 물었다.

《늘은 아니지.》 축농증에 걸렸는지 코소리를 내는 운전수가 말했다. 《우리가 벼단운반에 들어가니까 조합들에서 대접하는거지.》

춘심이는 저으기 놀랐다.

《조합들에서 이렇게 환대해요?》

《일만 잘해준다면야. 한데 저 친구는》하고 코소리를 내는 운전수가 다른 키작고 눈이 올롱한 운전수를 가리켰다. 《잘 벌어오지 못해. 올봄에 청산리 취득마을에 봄갈이 나갔는데 작업반에서 닭을 잡아 대접하지 않는다구 〈롱성〉투쟁을 했지. 고장났다고 핑게 대고 낮잠만 자다 왔단 말이야. 융통성이란 영 없거든. 그래 쫓겨났구 우에까지 반영이 돼서 사상투쟁을 했어. 하···》

《그만 지껄여.》눈이 올롱한치가 확 달아올라 대들었다. 《흥! 여기 청산리는 깍쟁이야! 난 죽어두 청산리에는 다시 가지 않겠네.》

《쫓겨났지. 그러니 가고싶어도 못 가지.》

《닥치라구.》

낮잠 잤다는치는 성을 내며 문을 열고 나가버리였다. 다른 사람들이 코맹맹이를 나무람했다. 그 락후한 운전수가 한 소리는 춘심이를 거슬리게 했다. 청산리가 깍쟁이라구?··· 춘심이는 분격했다. 춘심이의 성난 눈이 문을 열고나가는 운전수의 뒤모습을 쏘아보았다. 한동안 좌석이 어색해졌다. 주인공인 춘심이가 흥심없어하여 결국 《환영연회》는 재미없이 끝나고말았다.

저녁에 집에서도 어머니가 한상 잘 차렸다. 닭잡고 떡치고 지짐을 지지였다. 집안식구들외에 원동에 있는 춘심이의 작은아버지도 어떻게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흥을 돋구었다.

춘심이는 역전에서 내려 강서읍을 지나며 사가지고 온 술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에게 부어드렸고 오빠에게도 부어주었다.

리종수령감은 딸이 부어주는 술을 마시며 흡족해하였다.

《우리 집안에 뜨락또르운전수가 생겼다.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다. 녀자가 뜨락또르를 모는 세상이 아니냐. 너희들이 부럽다. 내가 말했지. 너희들은 다르게 농사를 지을게라구. 세상은 변해가고있어. 그러나 근본은 변할수 없다.》

로인은 딸에게 훈시를 하였다.

《뜨락또르를 모는데서는 운전기술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은 농민들을 위하겠다는 정신을 간직하는거다. 그래야 농촌기계화를 위해 진짜로 마음 바쳐 일하는 뜨락또르운전수가 될수 있다. 내가 뜨락또르로 논갈이를 하는걸 좀 보니까 어떤 운전수는 논을 넓은데만 빙빙 돌아가며 갈아주고 달아나니 농민들이 소루 다시 귀잡이를 가느라 더 품이 들더구나. 이 석두재너머 취득에 왔던 운전수는 작업반장이 닭을 잡아 대접하지 않는다구 청산리가 깍쟁이라면서 잔뜩 부어서 논을 좀 가는척하다가 고장났다고 세워둔채 오후한겻을 낮잠만 자다 갔다. 그놈이 후날 다시 오자 작업반장이 너따위는 필요없으니 도루 가라 하고 쫓아보냈다. 뜨락또르로 논을 갈아주는게 무슨 선심쓰는겐가? 그런데두 농민들을 깔보구 재세하며 대접이나 받으면 좋아하구 대접 안하면 싫어하면서 망탕 갈아엎거던! 무한궤도자리를 깊이 내구 논뚝을 싹 깔아뭉개구··· 그 사람들이 갈아엎는 땅이 어떤 땅이냐! 그저 땅을 간다고 생각해서는 안돼. 농민들의 허리를 펴주시려고 애쓰시는 수상님의 뜻을 땅에 펼친다고 생각해야 해.》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채 듣고있던 딸이 대답했다.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 오씨가 참녜를 했다.

《아, 방금 온 애한테 무슨 훈시질이 그렇게 엄하우?》

그 말에 개의치 않고 아버지는 다른게 없다, 땅에 마음을 바쳐야 한다, 뜨락또르를 몰건 호미질을 하건 마찬가지다, 올해농사가 왜 잘되지 못했는가, 농사군의 본분을 지켜 일을 하지 못했기때문이다, 정말 수상님앞에 면목이 없었다 하고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식구들은 가을에 수령님께서 청산리에 나오셨던 이야기며 마을과 조합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춘심이가 양성소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듣느라 밤가는줄 몰랐다. 그러나 두철이의 말은 누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두철이문제를 론의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있었으나 아버지가 집안에서 두철이에 대한 말은 아예 꺼내지 못하게 눌러놓았기때문에 피하는것이였다. 로인은 두철이라 하면 머리를 내젓는판이였다.···

어느날 저녁 춘권이는 기회를 엿보다가 춘심이를 마당으로 데리고나갔다. 춘심이는 덧옷을 걸치고 오빠를 따라 뜨락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너한테 다 말했다고 하니 내 구태여 반복하지 않겠다.》 울바자곁에 이르러 춘권이가 입을 열었다. 《너도 생각이 많으리라고 본다. 내가 너를 설복하거나 네 마음을 떠보자는게 아니다. 단지 나는 두철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것을 너에게 알려주자는거다. 두철이는 평양에 빠져나갔다가 도루 진출해나온것을 몹시 창피스럽게 여기면서 사람들을 피해다니였다. 그런걸 내가 한번 찾아갔더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며 자기를 잊어달라고 하더라. 너를 볼낯이 없어 그러는거야. 그렇게 결심했지만 마음이 편안하겠니?》

춘심의 눈찌가 심상치 않게 번뜩이였다.

《오빠는 무슨 소리를 하자는거예요? 그를 용서하라는거예요? 자존심을 굽히고 아량을 베풀자는거예요?》

총알을 쏘는것 같은 목소리가 밤공기를 맵짜게 울리였다.

춘권이는 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예상했던대로 춘심이는 두철이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춘심이를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