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8

 

28

 

그이께서 이처럼 상념의 세계에 잠겨계시는데 책임부관이 조용히 들어왔다. 그이께서는 책임부관을 못 본듯 까딱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책임부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이의 신색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사색을 방해할것 같아 다시 조용히 나가려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요?》

수령님께서 이마에서 주먹을 떼고 머리를 드시였다.

《저··· 만경대에서 소식이 왔는데···》

부관이 주저했다.

《음, 그런데?》

《할머님께서 상태가 악화되고있다고 합니다.》

며칠째 자리에 누워계신다는 보고를 받으신것이 어제였다. 의사들이 최선을 다하고있으리라는것은 명백해 수령님께서는 할머님께서 곧 일어나실줄로 믿었는데···

《형록삼촌한테서 련락이 왔소?》

《아닙니다. 제가 병상태가 어떤지 먼저 문의했습니다. 숙부님께서 알려드리지 말라고 부탁하시였지만··· 제가 공연히 말씀드렸는가 봅니다.》

《알겠소.》

책임부관이 무엇인가 지시가 계실것 같아 머뭇거리는데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형록삼촌을 좀 만나볼가 했는데 오후에 잠간 다녀오자구.》

《예, 알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올해농사가 잘 안된 문제를 두고 이 괴로운 심정을 누구와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것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만경대협동조합에서 일하고계시는 김형록삼촌이 떠올라 만나보려 하시였었다. 삼촌은 수령님께 나라일과 관련하여 언제나 솔직하였고 바로 그 솔직성과 진실성으로 그이의 국사를 도우시였다.

···만경대들판은 벼가을이 한창이였다. 조합원들은 신이 나서 벼를 베고있었다. 황금의 들판과 그우에 펼쳐진 푸른 하늘, 만경봉의 푸른 소나무들과 울긋불긋 단풍지는 넓은잎나무들,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담장밖에 피여난 가을국화··· 수령님의 어린시절이 흘러간 곳··· 고향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는 줄곧 타향에서 자라고 공부하시였으며 수난많은 조국의 아들로서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백두밀림과 만주광야에서, 압록강, 두만강을 넘나들며 혁명투쟁을 하시였다. 고향에서 오래 살지 못한 까닭인지 어린시절의 추억이 너무도 생생하여서인지 늘 고향에 와보고싶은 그이의 심정이였다. 하지만 조국에 개선하여 인민들에게 개선연설을 하신 다음에야 만경대를 찾으시였고 일찌기 아버님과 어머님을 잃은 그이에게 더없이 귀중하고 존경이 가며 애정이 가는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계시는 옛집이였건만 국사에 바쁘시여 자주 찾게 되지 못하였다. 올해에도 정월초이튿날에(그것도 병석에 있는 박달을 방문하신 후에) 만경대를 찾아 할머님과 삼촌내외분에게 설인사를 하시고 칠골외가집에 들리여 웃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아직 가보지 못하시였다.

년세가 많으신 할머님께서 더 앉아계시지 못하지 않겠는가 하는 쓸쓸한 생각으로 자주 찾아가 뵙지 못한 자책감이 드시였다.

수령님께서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시자 이전 같으면 할머님께서 나라의 수상인 손자분이 오셨다고 그리도 반가와하며 방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오시련만 지금은 뜨락에 괴괴한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할머님께서, 그처럼 강인하고 의지가 굳세여 내 손자가 김일성장군이라고 떳떳하게 하시는 말씀에 왜놈들도 기가 죽었던, 기상이 범 같으시였던 할머님께서 년세가 높아 병환에 누워계신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해방하시고 만경대고향집에 들어섰을 때 달려나오시여 그이의 품에 안기며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다 두고 이렇게 혼자 오느냐.》하고 격정을 터뜨리던 할머님을 생각하니 눈굽이 뜨거워나시였다.

형록삼촌은 조합에 일 나가고 삼촌어머니와 몇명의 친척, 의사, 간호원이 집에 있었다. 그 사이에 할머님의 병세가 호전되여 형록삼촌이 일을 나가신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할머님의 다난한 한생을 말해주는듯 피줄이 불거지고 꽛꽛한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나라일이 바쁘겠는데 무엇하려 왔는가고 겨우 알아들을 소리로 말씀하시며 할머님은 손자분의 손을 맞잡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생을 고생속에서 살아오신 할머님을 말년에나마 편히 쉬도록 잘 돌봐드리지 못한것만 같아 목이 메이시였다.

《할머님, 약이랑 제때에 잡수십니까?》

《그럼. 이 간호원체네가 정성이 여간 아니야.》 할머님이 간호원을 눈으로 가리켰다.

《식사는 어떻게 하십니까? 입맛을 잃지는 않으셨습니까?》

일찍 부모를 여의신 그이에게서는 할머님이 어머님과 같았다. 할머님의 사랑이자 어머님의 사랑이였고 할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자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였다. 이제는 퍽 늙으시여 몸이 체소해진듯싶은 할머님께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있는것 같아 가슴이 저려오시였다.

할머님은 손아귀에 힘을 주시여 그이의 손을 꽉 쥐였다.

《입맛을 잃다니··· 동네사람들이 내 입에 맞는 음식들을 해가지고들 온다구. 내 걱정은 아예 말고 나라의 정사에 힘쓰라구.》

《예. 할머님이 회복되신걸 보니 저도 기쁘고 안심이 됩니다.》

밖에서 떠들썩하더니 방문이 열리고 형록삼촌이 들어왔다.

《수상께서 오셨소?》

《삼촌,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수령님께서 할머님의 손을 놓고 일어서서 인사를 하시였다.

《내야 건강하다뿐이겠소. 수상께서 바쁜 시간을 내셨구만. 할머님은 좀 회복되셨소.》

삼촌은 수령님께서 집에 들어와 앉아계시니 방안이 환해지고 꽉 찬듯 하여 기쁨에 떠서 집안팎을 드나들며 어서 상을 차리라고 녀인들을 들볶아댔다.

《상은 차려 뭘하겠습니까?》

《아니 그럼 수상은 모처럼 오셨다가 그냥 가시겠소?》

삼촌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나 하면 되지요. 저녁시간은 아직 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소. 그냥이야 어떻게 앉았다 가시도록 하겠소. 수상도 인차 자리 뜰 생각을 하지 마시오.》

벌써 마당에서는 닭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삼촌두···》

《오늘 놀다가오. 수상이 언제 마음놓고 휴식한적 있겠소.》

《고맙습니다.》

온 집안이 흥성거리고 할머님도 좋아하였다.

수령님께서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숙부님, 만경대협동조합은 올해작황이 어떻습니까?》

《농사가 잘 됐소. 모두들 입이 귀밑까지 째지게 벙글거리지. 허허···》

형록삼촌은 흐뭇한듯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었다.

《삼촌이랑 모두 애써 농사를 지은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만경대에 풍년이 들었다니 기쁘시였다. 《그런데 전국적범위에서는 농사가 잘된것 같지 않습니다. 아직 예상이긴 하지만 정당수확고가 작년에 비해 떨어진데다가 올해에 파종면적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니, 그럴수가 있나?》

삼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된 리유를 설명하시면서 로력이 딸려 땅을 묵인것도 많다는것을 말씀하시였다. 그러니 알곡총생산량이 현저히 감소될것이다, 또 논밭김을 제대로 매지 못했다, 이것은 정당수확고를 떨구게 한 원인의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왜 이렇게 되였을가요? 농민들이 일을 뼈심들여 하지 못한때문일가요? 나는 할아버님과 삼촌이 어떻게 농사지으셨는지 잘 압니다. 만경대사람들은 다 근면합니다. 우리 농민들은 원래 일을 잘합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조직하니 건달을 부리는것일가요? 삼촌도 언젠가 그런 걱정을 하셨지요.》

삼촌의 표정은 심중했다.

《그런 걱정을 했댔소.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협동화를 시작하면서 공연한 걱정을 수상에게 말씀드렸다고 후회했더랬소. 흉년이 들어서 소나무껍질을 벗겨 삶아먹으면서도 모두가 조합에 뭉쳐 일했소. 한데 요새 와서는 아닌게 아니라 걱정되는바가 있소.》

《그렇습니까.》

《하지만 상심할 필요는 없소. 수상도 방금 말씀했지만 우리 농민들은 원래 근면하오. 길만 잘 틔워주면 퓽년을 마련하오. 수상이 해방후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전후에 협동화를 정책으로 내놓아서 살길이 열리지 않았소. 조합을 통합한것도 더 발전하고 잘살기 위한 길을 열어놓은게지요. 한데 아직 경험이 없다보니 첫해에 헤덤볐소. 첫술에 배부를수야 없지. 수상이 아래사람들을 잘 배워주고 일깨워주면 바루 잡힐게요. 수상이 더 힘들겠지만 그래서 수상이 아니겠소.》

삼촌의 말씀이 수령님의 심정을 찡 울리였다. 삼촌이 아니면 누가 이런 말을 해주랴. 형록삼촌은 농사일을 두고 자주 수령님께 절실한 조언을 드리군 하시였다. 전쟁시기 내각회의실에서 대동군당전원회의가 있었는데 형록삼촌이 모범농민으로 여기에 참가했었다. 회의후에 수령님께서는 몇몇 모범농민들과 같이 삼촌도 만나주시였다. 그다음 따로 잠간 만나 만경대의 소식도 들으시고 삼촌의 수고에 대해 인사도 하시였다. 삼촌은 내가 일개 농민으로서 무슨 수고가 따로 있겠소, 남들처럼 일했을뿐이요 하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며 다수확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어려운 시기에도 삼촌은 선진영농방법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있었다. 그 모습이 수령님께 신심을 주었다. 수령님께서는 숙부님께서 농사일에 솔선 모범을 보이시니 고맙다고, 힘이 난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전후에도 만경대에 가면 삼촌과 주로 농사얘기를 하시였었다. 삼촌은 언제나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하군 하였다.

수상이 더 힘들어야 한다는 삼촌의 말씀에 대해 수령님께서는 《옳은 말씀입니다. 내가 더 힘들어야 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시였다.

삼촌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였다.

《우리 만경대 김씨일가는 예나 지금이나 일밖에 모르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소.》삼촌이 격정에 넘친 어조로 말씀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들의 뒤를 이어 수상은 어린 나이에 압록강을 건너가 나라를 찾기 위해 백두산에서 고생했고 나라를 찾은 다음에는 인민들을 잘살게 하려고 쉬임없이 현지지도를 하고있소! 언제 가면 수상이 다리펴고 쉬는걸 보겠는지··· 내가 삼촌이라기보다 인민의 한 사람으로 말하오. 수상의 얼굴이 축간것 같소.··· 내 그래 오늘만이라도 고향집에 왔던김에 좀 쉬다가시라고 하는거요. 시름을 잊고 옛이야기랑 하며 휴식하오.》

수령님께서도 가슴이 뜨거워나시였다.

《숙부님, 고맙습니다. 제 오늘 할머님곁에서 좀 놀다가겠습니다.》

삼촌어머니도 들어오고 만경대일가분들이 수령님을 모시고 둘러앉아 슬프고 괴로왔던 과거지사는 피하고 재미났던 이야기들만을 추억하였다. 와ㅡ 하고 웃음이 터져오르기도 하였다.

《수상께서 참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셔.》 삼촌어머니는 수령님곁에 바싹 다가앉아 넋을 잃고그이를 쳐다보다가 감탄을 금치 못해 이렇게 말했다. 할머님도 같이 웃으며 이야기에 끼여들기까지 하시였다. 할머님은 그러다가 슬그머니 손자분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우에 얹고 쓸어주시였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다 주지 못한 애정을 할머님자신께서 주시려는 심정에서 만나실적마다 손자분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는 할머님이시였다.··· 어느새 할머님은 잠이 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시름을 잊고 농사이야기며 만경대가정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자리를 뜨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