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6

 

26

 

폭양이 사정없이 퍼붓는 낮이 지나고 해가 높고 험한 서산을 넘어가자 산골짜기에 그늘이 지면서 대기는 선선해졌다. 구름이 떠있는 하늘은 저녁노을에 곱게 물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숙소의 마당에 내다놓은 팔걸이의자에 앉아 휴식하고계시였다. 오늘도 산골짜기들에 박혀있는 마을과 마을들을 이어가며 협동조합들을 돌아보느라 몹시 피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해볕을 막기 위해 전이 넓은 흰 여름모를 쓰고 다니시였지만 확확 달아오른 열풍을 피할수는 없어 얼굴이 검실검실하게 타시였다. 오늘 찾아간 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은 큰 느티나무밑에 걸상을 내다놓고 수령님께서 그늘에 앉으시여 더위를 피하도록 해드리려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은 더위를 무릅쓰고 논밭에서 일하고있는데 내가 나무그늘밑에 앉아서 산천구경이나 하라는가 하시며 폭양을 맞으면서 농가에도 들려보고 축산반 돼지우리도 돌아보시였으며 리상점을 찾기도 하시였다.

상점건물은 단층집인데 벽에 회를 바르고 아담했다. 그런데 상점안은 산간지대의 맛이 나지 않았다. 무슨 천, 양복, 각종 일용잡화, 병맥주, 어물들은 있는데 산골사람들에게 필요한것들, 가령 늙은이들의 지팽이나 담배물주리, 둥글부채 따위들과 산에서 생산되는 꿀, 산열매, 산나물같은 지방특산물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사발, 독 같은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방산업공장들이 제 역할을 못하기때문인지 중앙에서 내려오는 상품만을 손쉽게 받아오기때문인지 여하튼 산골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상점판매원은 열일곱살난 처녀인데 사과처럼 동글한 얼굴이며 유난히 긴 속눈섭이며가 꼭 인형을 방불케하였다. 수령님께서 상점안에 들어서시자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판매원은 조합원의 딸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상점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한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머리가 매우 단순하고 어린 이 판매원처녀는 생긴 모양그대로 종일 매대앞에 인형처럼 앉아서 군상업관리소에서 주는 상품을 받아다 파는것 같았다.

《이 상점은 산골맛이 나지 않아.》

수령님께서는 처녀에게가 아니라 동행한 군위원장에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눈에 수영복이 뜨이였다.

《저건 수영복이 아니요?》

그이께서 저으기 놀라시였다.

판매원처녀는 수령님께서 호기심이 나서 물으시는것이라고 짐작했는지 지은옷들이 있는데로 가서 그 옷을 얼른 집어들었다.

《예, 수영복입니다.》

그 판매원처녀도 관리위원장도 군위원장도 이런 산골상점에 수영복이 있는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것 같은 표정들이였다.

《거기 내려놓소. 판매원동무는 수영복을 사서 입어봤소?》

처녀는 얼굴을 활딱 붉히였다.

《못…》

《왜?》 수령님께서는 처녀가 더 대답을 못하자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입을 필요가 없었을테지, 응? 여긴 대동강같은 큰 강도 없고 송도원같은 해수욕장은 더구나 없으니까. 그래 판매원동무, 더러 사가는 사람들이 있소?》

《없…》 뒤말은 입안에서 맴돌고말았다.

《무서운 형식주의요. 상업성에서 상품들을 생각도 없이 각 도들에 내려보내고 도는 그대로 군에, 군은 또 생각없이 리에 내려보낸단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저런 모직천도 아직 산골농촌의 수준과 생활조건에 맞지 않소. 판매원동무, 저 모직천이 팔리오?》

《체화되여있습니다.》

《그럴테지. 저 병맥주는 사가오?》

《사가지 않습니다. 신의주에 있는 사람이 여기 친척집에 놀러와서 사먹은것밖에는…》

판매원처녀는 그런 상품들이 팔리지 않는것이 자기탓인듯 점점 더 풀이 죽어 금시 울음을 터뜨릴것 같았다.

《산골사람들이야 소주를 좋아하지. 누가 저런 병맥주를 사마시겠소. 신의주사람이 와서 사먹었다는데 사실 평양이나 원산, 신의주 같은데서는 상점에 수영복이나 병맥주가 없어서 못 팔고있소. 그런데 여기에는 체화되여있단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얼굴이 더 빨개지는 어린 판매원처녀를 향해 손세를 써가며 말씀하시였다.

《처녀판매원, 앞으로는 이런 상품을 받아오지 말라구. 못 가져간다구 올리받으란 말이요. 엉? 이악하게 해야 해. 아무 생각없이 주는대로 받아오면 안돼. 그렇게 할수 있나?》

《네.…》 가늘게 떠는 대답이였다.

《그렇게 해서 군상업관리소가 잘못을 고치도록 교양을 주라구.》

수령님께서는 판매원은 단순히 우에서 주는 상품을 무턱대고 받아다 팔아주는 직업이 아니다, 주민들의 생활을 돌보는 봉사자이다, 때문에 불필요한것은 받아오지 말고 생활에 꼭 필요한 치솔, 치약, 비누같은것은 이악하게 받아와야 한다고 하시며 작년에 전천군의 한 공업품상점에 들리였던 일을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기계공장로동자들과 담화하시는 과정에 그 상점판매원들이 로동자들의 생활상애로를 풀어주기 위해 기울인 기특한 소행들을 들으시고 시간을 내여 찾아가시였었다. 자그마한 상점에 들어서니 열여덟살난 처녀판매원이 인사를 드리는데 그가 바로 로동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정춘실이라는 판매원이였다. 이 처녀는 《우리 가정수첩》이라는것을 만들어놓고 매 가정들에서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주문을 받아가지고 결혼식날 입을 옷감과 살림집에 필요한 옷장, 이불장으로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감에 이르기까지 주부의 심정에서 해결해주고있었다. 단순한 판매원이 아니였다. 이 어린 처녀가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을가. 《우리 가정수첩》이라는 주문대장의 이름에 그 처녀의 심정이 그대로 반영되여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래, 우리모두가 한가정이야. 이것이 우리 나라 사회주의야.》하며 처녀에 대한 치하를 아끼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처녀판매원의 소행에서 사회주의상업봉사활동의 새로운 귀중한 싹을 보시였다. 이러한 싹들이 자라 온 나라의 상업봉사부문에서 꽃으로 피여난다면 상품이 많지 못한 조건에서도 인민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과 편의를 도모해줄것이고 사람들이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느끼게 될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처녀판매원과 군의 책임일군들에게 이와 같이 정춘실을 만나보았던 이야기를 해주시며 인민의 봉사자답게 상업활동을 잘할데 대하여 따뜻이 깨우쳐주시였다.

모처럼 찾아오신 수령님으로부터 치하의 말씀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산간지대농촌의 상점맛이 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은 처녀판매원은 눈물이 가랑가랑 고인 눈을 슴뻑이며 자기도 전천군의 처녀판매원처럼 일을 잘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판매원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지였다.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나는 동무가 훌륭한 인민의 봉사자가 되리라고 믿는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군일군들에게 처녀판매원을 잘 도와주라고, 다시말해서 지방산업을 발전시켜 산골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상품들을 많이 생산하여 리상점들에 넣어주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산간지대에서는 산을 잘 리용해야 합니다. 나는 산간지대에 갈적마다 이것을 강조합니다. 산을 잘 리용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키고 소, 염소, 양, 토끼 같은 초식동물과 돼지를 많이 길러야 합니다. 넓은 방목지가 있어야 축산을 할수 있는것으로 생각하는데 산에 풀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풀을 베여다 가축을 먹이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인민들이 고기를 먹게 하고 상점에도 넣어주어 늘 고기를 떨구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고추도 많이 심고 공예작물도 심고 산과일과 산나물을 뜯어다 팔아 현금수입도 높이며 지방산업공장들에 원료를 대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산간지대에서도 벌방지대나 도시처럼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특색있는 식료가공품들과 생활필수품들을 상점들에 넣어줄수 있고 도시에 내다팔아 돈을 벌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머루, 다래, 산딸기, 돌배 등을 어떻게 가공하여 어떤 식료품들을 만들겠는가, 콩기름을 짜고 나온 대두박으로 간장, 된장, 두부를 만들어 군내인민들에게 공급하고 그 찌꺼기로는 가축사료를 하면 좋지 않겠는가, 일군들이 인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하며 당정책을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 등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수상님, 평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책임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와 그이께서는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에서 현실로 돌아오시였다.

해가 지면 인차 어두워지는것이 산촌의 자연현상이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하늘을 물들이던 락조의 여광도 사라졌다.

《김일1부수상동지입니다.》

책임부관이 전화기를 수령님께 들려드리며 설명하였다.

수령님께서는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는 기간에 늘 평양과 전화련락을 취하고계시였는데 김일1부수상과 제일 많이 전화를 하시였다.

《수상님, 건강하십니까?》

김일의 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난 별일 없소. 평양에서는 잘들 있소?》

《예, 수상님, 한가지 급히 알려드리고 결론을 받자고 전화를 합니다.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닙니다.》

《반갑지 않는 소리도 들어야 하는것이 나의 의무지.》

수령님께서 웃으시였다.

《함의선농업상이 사표를 냈습니다.》

송수화기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함의선이가!》

《그는 병원에서 갓 퇴원했는데 이제는 늙고 자주 앓으니 농업상자리를 차지하고있을 면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는 우리 당의 농업정책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우리 나라 농업에 흥미를 잃은데 원인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가 사직서를 내면서 〈젊고 혈기왕성하고 조선의 농업에 체질적으로 맞는〉새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말한데서도 그가 우리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김일은 봄에 벌써 김만금부장과 토론하고 농업상을 교체할데 대해 제기한 사람이다. 김일은 함의선이가 한시기 일을 잘했으나 이제와서는 짐이 된다고 인정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김일의 제기에 일리가 있다고 보시였다. 그러면서도 쓰딸린시기에 쏘련에서 배웠고 꼴호즈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농업전문가인 그를 쉽게 버릴수 없으시였다. 그가 큰 나라에 대한 숭배심과 큰 나라 경험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는 성사업에서 장애물이 되고있다는것을 아시였으나 우리 당의 주체적립장을 인식하고 조국에 필요한 일군으로 되기를 기대하시였다. 그런데 그는 끝내 대렬에서 물러서려 하는것이다. 그가 앓는 몸인데 상자리를 차지하고있을 면목이 없다고 한것은 진심의 목소리일것이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사표를 받아들이자고 선뜻 동의하게 되지 않으시였다.

《1부수상동무, 내 좀 생각해보고 대답을 주겠소.》

그런데 김일이 《예,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수령님께 그 대답밖에 모르는 그가 왜 침묵하는것일가.

《무슨 다른 의견이 있소?》

《그런것은 아닙니다. 수상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분망하시겠는데 함의선이때문에 공연히 마음쓰실것 같아 그럽니다. 저는 함의선이가 옳게 결심했다고 인정합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사람을 잃기는 쉽지만 얻기는 힘드오.》

김일은 수령님의 인덕에 감심된듯 저으기 젖어드는 목소리로 대답드리는것이였다.

《제 언제면 수상님의 덕망을 따를수 있겠습니까.》

《나를 리해해주어 고맙소.》

그이께서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밤에 비가 내렸다. 금시 맑았다가 금시 흐리고 비가 와도 억수로 쏟아지는것이 산골날씨의 특성이다.

수령님께서는 지붕을 두들겨대고 수림을 휩쓰는 비소리를 들으며 숙소의 밤이 깊도록 지방의 당, 인민정권, 경제부문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였고 책도 읽으시였다. 그러면서 함의선이에 대해 줄곧 생각하시였다.

해방후 나라를 건설하자니 제일 귀한것이 인재였다. 하기에 새 조국건설을 돕기 위해 쏘련이나 중국에서 나온 사람들을 그처럼 반갑게 맞아들이고 귀중히 여겨주신 수령님이시였다. 함의선과 강봉석은 농업전문가들로서 공화국이 창건된 후 농림성에서 일하면서 성을 꾸리고 기구를 만들고 사업체계를 세우는 사업과 선진영농법을 받아들여 도입하는데서 한몫씩 하였다. 농림성(후에 농업성)의 토대를 닦는데서 공헌이 컸다. 쏘련에서 뜨락또르를 들여오고 축산업을 발전시키는데서도 많은 일을 했다. 조국해방전쟁의 어려운 시기 전시식량생산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다. 농업협동화의 초시기에 교조주의적인 사고를 하며 말썽을 부리긴 했으나 후에는 열성을 내여 이 사업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그는 큰 나라에 대한 숭배심과 큰 나라의 경험에 대한 교조주의적태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있었으며 드디여는 대오에서 물러서려 한다.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지나온 나날들을 더듬어보시며 더는 그가 우리와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시였다. 김일의 의견에 동감이셨다. 혁명투쟁의 장구한 기간에 대오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을 한두사람만 보았던가?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데리고 가려고 그처럼 믿음도 주고 교양도 주었건만 끝내 떨어져나간 사람들이 어찌 한둘이였던가. 그러나 갈 사람은 가도 혁명은 계속 전진하기마련이다. 물론 사람을 잃는것이 손실이고 괴로운것이다. 그러나 한편 빈껍데기인 허울이 떨어져나가고 진짜 알갱이만 남게 되면 대오는 강철같이 굳세여지기마련이다.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결심을 내리시였다. 집에 들어가라고 하자. 붙들지 말자.

그러면 누구를 농업상자리에 앉히겠는가. 이 문제 또한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이께서는 자정이 훨씬 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시였다.

비가 쏟아져내리자 산골물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산굽이를 돌고 바위에 부딪치며 흐르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이튿날 아침 수령님께서는 김일1부수상과 다시 전화를 하시였다.

《함의선동무의 사직제기를 받아들입시다.》 그이께서 시원스럽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언젠가 말했지만 농업성에 똑똑한 주인이 없소. 새 농업상을 빨리 임명해야 하겠소. 나는 김만금동무를 제의하오. 김일동무가 농업상을 교체하자고 제기했을 때 내가 대답을 주지 못한것은 함의선동무가 당의 농업정책에 의심을 품고 일에 열의가 없이 자리지킴이나 하고있지만 그래도 조국의 농업발전에 기여해보겠다고 멀리 쏘련에서 고국으로 나와 주관적으로는 충실하게 일해왔기때문에 의리를 생각해서 이내 대답을 주지 못했던거요. 함의선동무가 현재 농업발전에 장애로 되고있지만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대했드랬소. 그러나 그는 스스로 물러났소. 내가 동무의 제의에 선뜻 대답을 못한 두번째 원인은 당장 후임으로 앉힐 사람이 없기때문이였소. 물론 나는 그 후임으로 김만금동무를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고있었소. 그런데 김만금이 농업상으로 나오면 농업부장자리가 비게 되오. 고르고골라 그를 농업부장자리에 앉혔는데 당장 그 자리에 대신 앉힐 사람이 없소. 그래 내가 결심한것은 김만금동무가 당 농업부장과 농업상을 겸하도록 하자는거요. 지금 농업상을 할 사람은 김만금동무밖에 없소. 밤새껏 생각한 뒤에 내린 결심이요. 1부수상동무는 다른 의견이 없소?》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정치위원회에 제기합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공포하고 곧 일에 착수하도록 합시다.》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숙소밖에서 도의 책임일군들이 대기하고있었다.

오늘 그이께서는 신의주지구의 공장, 기업소들을 돌아보기 위해 떠나신다. 평안북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끝내고는 자강도로 가셔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 평양에 돌아오신것은 8.15명절 전야였다. 평양역에서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들, 부위원장, 부장들, 내각부수상, 상들이 그이를 영접하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1부수상 김일과 인사를 나누시였다. 상들과 인사하며 특별히 김만금에게 이렇게 물으시였다.

《사업에 착수했소?》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김만금의 혈기넘친 불그레한 얼굴을 보며 그이께서 빙그레 웃으시였다.

8.15경축행사들이 지나간 후 내각에 나가 내각회의에 참석하시였던 수령님께서는 김만금을 따로 만나주시였다. 농업상으로서의 김만금이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었다.

김일1부수상이 함께 참가했다.

《성사업을 무엇으로부터 시작하였소?》

수령님께서 김만금이에게 물으시였다. 김만금에게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생기발랄한 모습과 사업의욕이 느껴졌다. 옛 로동판의 싸움군이 오늘은 상으로까지 되였다.

《저는 청산리에 나가보는것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김만금의 대답이였다.

《옳소! 그래야 하오. 농촌에 나가봐야지. 청산리에서는 어떻게들 하고있습디까?》

수령님께서는 주의깊게 그의 대답을 들으시였다.

김만금은 수령님으로부터 엄한 비판을 받은 다음 청산리에 나가 현실을 료해하였고 이번에 상으로 임명된후 다시 나가보았는데 일련의 문제점들이 있었다고 하였다. 김매기에 력량을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작업에 농민들을 동원시킨 사실, 선전부에서 2일간이나 강습을 진행한 사실들은 수령님께서 《풍년축구경기》하나를 통해서도 현농업실태의 본질적인 결함들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시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올해 협동조합들에서 모내기도 제때에 끝내지 못했고 김매기는 더 한심한 형편입니다. 부장동무가 청산리에 나갔다온 후 긴급대책을 취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김일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듯 한 심중한 어조로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도대체 누가 농번기에 농촌로력들을 마음대로 다른 작업에 동원시킬 권한을 군인민위원장에게 주었소, 응?》 수령님께서 격하시여 말씀하시였다. 《군위원장이 제왕처럼 행세하고있지 않는가! 당선전부도 그렇소. 강습을 농번기에 조직해서 숱한 당일군들을 논판에서 불러냈단 말이요. 지금 선전부가 하는 일이 그래! 청년들이 딴스나 추게 하면서…날라리바람을 퍼뜨리고있지 않나. 선전부장이 쏘련에 류학갔다온 사람인데 류학을 갔어도 제정신을 가지고 배워야지. 쏘련에서는 지금 양키문화가 쓸어들어 미국영화를 돌리고 구락부들에서 청년들이 궁둥이춤을 추고있소. 청년들의 사상이 흐려지면 나라의 장래는 담보할수 없소.》

수령님께서는 지금 청년들에 대한 교양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있기때문에 그들속에서 로동을 사랑하고 생활을 혁명적으로 하려는 건전한 기풍대신에 건달군들이 많이 나오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김만금은 청산리 리종수로인이 말한, 농산반에서 일하기 싫어 들떠있다가 도시로 빠져나갔다는 한 청년의 경우가 그 실례로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김만금에게 계속하라고 하시였다.

《저는 봄에 청산리에 가서는 조합자체내에서 발생하고있는 관리운영에서의 부족점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가서는 군인민위원회가 협동조합들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과 오유들을 더 조장시키며 지도사업을 제멋대로 하고있는것을 목격하였습니다. 함경북도에서 본 실태와 같았습니다. 이번에 상으로 임명되여 청산리에 가보고서는 협동조합의 관리운영과 조직사업에서 나타나고있는 엄중한 결함들이 농업성의 관료주의와 직접 련관되여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는 가을남새파종과 관련한 소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했다. …농업성 최영길부상의 때늦은 관료주의적인 지시가 어떻게 협동조합에서 사료용강냉이밭을 갈아엎고 남새를 심게 했는가, 결국 남새파종면적을 제대로 보장할수 없었는데 그 책임은 집행 못한 관리일군들이 지고 떨어지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김만금은 최영길을 이름을 찍어 지적하지 않을수 없었다. 상이 되자마자 아래사람을 비판하지 않을수 없는 사정, 더구나 그 아래사람이 옛 농업학교 동창생이고 자기를 왜놈들로부터 숨겨주고 탈출하도록 도와준 은인이며 농업지도일군으로서도 선배이지만 부득이 비판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사정은 그를 괴롭게 하였다. 또 농업부장으로서 농업성을 옳게 지도하지 못한 자신에게 먼저 잘못이 있다는 자책이 더욱 그를 괴롭게 하였다. 하지만 농업성의 지도일군 일반을 들어 두리뭉실하게 보고드릴수 없는것이다. 자기자신과 그리고 최영길이 다 같이 실제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것이다.

《저는 저와 최영길부상을 비롯한 일부 농업지도일군들의 과오를 심각히 찾아본 상태에서 농업상의 직무수행에 착수하였습니다.》

김만금은 이렇게 보고를 끝마치였다.

걸상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거닐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수령님께서 잘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동무가 내가 평안북도로 떠나기전에 한 비판을 접수하고 농업부문 사업과 그 지도사업에서의 결함을 예리하고 심중하게 인식하고 새롭게 출발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소.》

수령님께서는 김만금을 농업상으로 임명한것이 옳은 결심이였다는것을 재삼 느끼시였다.

《1부수상동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이께서 걸상에 앉으며 김일을 돌아보시였다.

《김만금동무가 무거운 짐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이 말했다. 《올해에 농업성과 금속공업성이 일을 크게 벌려놓고 수습을 잘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내각회의를 열면 의례히 농업성과 금속공업성이 비판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공업화수준이 낮기때문에 농촌에서 일이 힘들고 로력의 부족을 느끼며 금속공업성산하 제강, 제철소들도 로력을 계속 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공업화를 빨리 다그치는것과 함께 지도일군들의 책임성과 지도능력, 사업방법을 발전하는 현실에 따라세우는것이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나선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수상동지께서 올해 초부터 계속 강조하고계십니다. 저는 김만금동무가 농업성사업을 속히 추켜세울수 있으리라고 믿고싶습니다.》

김만금은 그의 기대가 고마왔다. 동시에 심중이 무거웠다. 올해농사는 다 지어놓은것이나 같다. 그런데 모든 징후로 보아 올농사는 잘될것 같지 않다. 가을에 가서 낟알을 털어봐야 알겠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성사업을 인계받은 김만금이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으며 성사업을 속히 추켜세우겠는가. 이제부터 해야 할 사업은 올해의 결속과정이다. 그러므로 우결함을 찾고 심각히 검토하는것이 기본일것이다. 물론 우결함을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래년농사를 잘 지을 방도를 찾게 되는것이다. 김만금의 능력과 실력은 래년도 농사에서 나타날것이다. 1년을 주기로 하는 농사이기때문이다. 그러니 올해는 비판적으로 총화하고 교훈을 찾고 래년도 사업을 설계하는것이 기본으로 될것이다. 물론 아직 한해농사가 다 끝난것은 아니다. 잘했건 못했건 봄내, 여름내 땀들인 노력의 수확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올해를 어떻게 총화할것인가? 사회주의농촌경리의 정확한 운영을 위해서 어떤 교훈을 찾고 대책을 세워야 하겠는가. 이러한 문제가 김만금의 앞에 숙제로 나서고있었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내가 봄에도 동무들에게 이야기한것 같은데 우리가 농촌경리를 포함해서 사회주의건설을 어떻게 편향없이 해나가는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유들을 어떻게 바로잡으면서 성과적으로 전진시켜나가는가 하는것은 우리자신들을 위해서뿐만아니라 국제적인 견지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있소. 아까 내가 쏘련에서의 청년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말했는데 첫 사회주의국가였고 모든 사회주의신봉자들, 혁명가들의 희망의 등대였고 리상으로 그려보았던 쏘련에서 현대수정주의가 대두하여 당과 국가활동, 경제와 문화건설전반에서 엄중한 사태가 빚어지고있는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로동운동이 부닥친 커다란 시련이요. 그 소위 〈변화〉와 〈자유화〉의 물결이 우리 나라에도 미쳐오고있으며 대국의 지위를 리용해 강요되고있소. 이러한 시기에 조선의 혁명가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중국에서의 인민공사운동도 시련을 겪고있소.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의 혁명과 건설을 맑스ㅡ레닌주의와 사회주의원칙에 맞게 구체적으로 옳게 진척시켜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사회주의를 비방하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어떤 대답을 줄수 있겠소?》

수령님께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회주의는 인류력사발전의 필연적이고 합법칙적인 단계이며 인류의 리상사회는 사회주의건설을 통해 이룩되오. 그렇기때문에 사회주의를 위하여 로동계급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생명을 바쳐 싸웠고 오늘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대렬이 늘어가고있소. 올초에 독재정권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어느 길로 나갈것인가 모색하였소. 자본주의로 나가겠는가, 사회주의로 나가겠는가. 까스뜨로는 미국을 알아보기 위해 그 나라를 방문하였소. 부대통령이 직접 맞이하는 등 환영이 요란했소. 그러나 미국에서 돌아온 까스뜨로는 미국의 회사들과 꾸바의 지주들이 독차지하고있던 사탕수수밭을 몰수하는 토지개혁을 하였소. 토지소유권이 합법적으로 인민들에게 차례진다는것을 선포했소. 이 법령은 미국자본가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미국은 격분하였소. 미국은 국교관계를 단절하였소. 까스뜨로가 미국이 격노하리라는것을 알면서도 왜 사회주의길을 택했겠는가. 미국의 코앞에서 미국회사들에 타격을 가하고 사회주의길로 나간다는것이 결코 간단한 결심으로 될 일이 아니요. 그러나 사회주의가 인민들에게 참다운 권리와 행복한 생활을 가져다준다는것을 인식했기에 꾸바는 그 길을 선택한것이요. 지금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 일시적인 난관과 시련, 착오를 겪고있지만 인류는 이 길을 가게 될것이요. 때문에 사회주의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오. 내가 말하자는것이 이것이요.》

수령님께서는 김만금농업상에게 청산리에 직접 나가 올해농사작황을 보려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농사작황이 걱정되시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