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4

 

24

 

한번은 박진섭이가 춘권이에게 기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관리위원회에 회의 왔다 가던 그가 길에서 춘권이를 우연히 만났다.

《춘권동무, 참 오래간만이요. 조합이 크긴 크오. 한조합에서 같이 일하면서도 만나기 힘드니 말이요.》큰 눈을 드부럭거리며 하는 소리다.

《하긴 그렇소.》 아버지처럼 진섭이를 싫어하는 춘권이는 뚝한 얼굴로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그러나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다고 반갑게 인사하는 진섭에게 지내 성의없이 대꾸하는것 같아 인사로 이렇게 물었다. 《재미 어떻소?》

《그저 그렇지요. 늘 일에 쫓기며 살지요. 그런데 1반에 간 기호는 어떻소? 일을 잘하오?》하고 박진섭이 슬쩍 물었다.

문영숙의 말에 의하면 기호는 입을 꾹 다물고 일을 잘한다고 한다. 작업반원들도 기호를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다. 아버지 리종수는 어느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거 기호가 참 용터구나. 공쇄후치를 만들어서 밭김매기에서 사람의 손이 가지 않게 했다. 아마 능률을 두배는 올렸을게다.》하고 칭찬을 했었다. 리춘권이도 알고있는 소리였다. 문영숙이가 리춘권이에게 기호를 한 사나흘 기계화반에 출근시키려 한다면서 그가 공쇄후치를 창안했는데 제작하게 하려 한다는 말을 했었다. 문영숙의 설명에 의하면 보통후치에 날개를 달아 강냉이뿌리에 북을 돋구어주게 되므로 사람이 다시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것이다.

(모를 소리다. 그게 그렇게 될가?) 춘권이는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기호를 좋게 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기호가 1반에 와서 입을 다물고 일을 잘하는것은 12반에서 반장의 뒤소리를 한것으로 반장과 틀려가지고 쫓겨오다싶이했기때문에 다시는 그런 나쁜짓을 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1반사람들의 신망을 얻어보려는데서 출발한것이라고 춘권이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일을 잘 할수 있다. 형이 만행을 하고 도주했고 그자신이 《치안대》에 든 수치스러운 행적도 있으니 12반에서의 사건을 교훈삼아 극력 자제하는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본성이 나타날것이다. 기호가 결코 진심으로 조합일에 열성을 부릴 사람이 아니다. 죄가 있으니 머리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다니며 수걱수걱 일을 하는것이지 그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춘권이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기호를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한 강습을 받았고 초급당단체위원장이니 그런 속마음을 내색할수 없었다.

《기계화반에 보내서 공쇄후치란걸 만들게 하지요.》 그는 문영숙이에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되긴 될거요?》

문영숙은 웃으며 하여튼 본인이 자신있다니까 믿어보자고 하였다.

기호는 믿음에 보답했다. 그가 만든 공쇄후치가 은을 냈다. 그래 아버지 리종수도 저녁식사시간에 그를 칭찬하였던것이다. 기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는 없으나 어쨌든 그는 공쇄후치를 창안하여 기계화에 이바지했고 작업능률을 올렸으며 군중의 신망을 얻었다.

리춘권은 《기호가 어떻소, 일을 잘하오?》하는 박진섭의 물음에 대답했다.

《12반장은 보배같은 사람을 우리한테 보냈더군. 문영숙반장이 고맙게 여기더군.》

그러자 박진섭의 눈빛이 차거워졌다. 그는 자기가 쫓아보내다싶이한 기호가 다른데 가서 일을 잘한다니 심술이 났던것이다.

그는 입을 삐죽거리였다.

《거 무슨 공쇄후친지 공치후친지 하는걸 만든것을 가지고 그러오?》

《말썽두 없소.》

박진섭이 비죽이 웃었다.

《기호는 나하구 한마을에 사니 내가 더 잘 아오.》 진섭이가 하는 소리다. 《그 사람이 턱이 뾰족하고 눈이 가는데 여간 령리하지 않소. 지내 령리하지요. 일하는걸 보면 알게요. 타산이 밝소. 로력점수에 신경을 쓰구 자기가 일을 잘한다는걸 간부들이 알았으면 하고 마음쓴단 말이요. 그래 내가 로력공수를 좀 적게 주었더니 뒤소리를 한게요. 나는 그 사람이 꾀를 쓰며 뼈를 놀리기 싫어하기때문에 알맞춤한 로력공수를 주었지 뭐 미워서 우정 그런건 아니요. 그런데 뒤에서 반장을 무섭게 헐뜯었소. 그랬다가 혼이 났지. 내가 좀 과격하게 한것은 있지만 그자의 버릇을 가르쳐주었소. 그래 지금 1반에 가서 조용한거요. 뭐 공쇄후치? 속지 마오. 그건 방패막이요.》

《방패막이란건 또 뭐요?》

진섭의 장광설을 들으며 기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긴 했지만 어쩐지 진섭이가 속에 칼을 품고있는것 같아서 그가 싫어져 빨리 그와 헤여졌으면 하던 춘권이는 흥미가 부쩍 동했다.

《그자가 집에 와서 뭘하는지 아오? 낮에는 사회주의를 하구 밤에는 자본주의를 하오. 그 사람이 손재간이 있소. 그래 밤마다 피곤을 무릅쓰구 소소한 상품들을 만드오. 아마 공쇄후치를 만듭네 하면서 자재를 많이 훔쳐서 집에 날라갔을거요. 그렇게 만든것들을 녀편네가 장마당에 내다 파오. 그건 그 녀편네가 팔골 뺑대거리 장마당에서 강옥숙이 참외장사를 하는걸 봤다고 뒤소리를 하는걸 보고 알수 있었지. 그게 제 입으루 제가 장마당에 다닌다는것을 말한게 아니요? 자기두 장사다닌다는 소리지. 이제는 그자가 어떤자인지 알았겠지? 사람의 본바탕은 변하지 않소. 계급적으로 보아도 그렇지. 적은 언제까지나 적으로 남아있소. 춘권동무, 할아버지, 할머니가 적에게 희생되였고 동생도 전사했는데 계급적각성이 무디여져서야 되겠소?》

춘권이는 진섭을 아니꼽게 쏘아보았다.

《기호는 적이 아니요. 동무네 초급당단체위원장이 강습받은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소?》

리춘권이가 이렇게 쏘아붙이자 진섭이는 큰 눈이 더욱 커져서 아무 대꾸도 못했다. 기호가 1반에 가서 일을 잘한다는 소리에 심사가 뒤틀리여 그를 헐뜯다보니 제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가는지 모르고 마구 지껄이다가 한방망이 맞았다.

춘권이는 뚝한 얼굴로 인사도 하지 않고 그와 갈라져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기호를 곱다고는 할수 없지만 원쑤 대하듯 하면 되겠는가. 지절대기는 똥본 오리라고 기호가 마치 원쑤인듯이 마구 지껄여대는 진섭이가 진저리나게 싫었다. 원체 진섭을 헐뜯은 기호가 잘못했지만 그것때문에 앙심을 품고 제 처지를 생각하라,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일이나 해라 하고 군중로선에 저촉되는 발언을 망탕한탓으로 비판을 심하게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 앙심을 아직 품고서 적이요, 계급적각성이요 한다. 누구든 계급적각성이 저보다 못하단 말인가.

그러나 진섭이가 지껄인 말에서 기호를 새롭게 알게 된 소득은 있었다. 기호가 손재간이 있으니 저녁에 퇴근해서 무얼 만드는 모양이다. 낮에는 사회주의를 하고 밤에는 자본주의를 한다? 기계화반에서 자재를 훔쳐갔다? 어쨌든 기호를 믿는다고 하지만 내성으로는 믿게 되지 않고 어딘가 께름직하게 여기는 춘권이에게 진섭이는 그에 대한 흐린 인상을 더해주었다. 역시 본심은 나쁜 놈인가.

강옥숙의 비행도 진섭이의 입을 통해 알게 되였다. 물론 옥숙이가 장사를 다니군 한다는것을 모르고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 리종수가 땔나무까지 한달구지 해다주었으니 량심의 가책이라도 받을줄 알았는데 여전히 장사를 다니고있다니 격분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어둠에 잠기고있는 암화마을에 들어서자 2작업반장 최인서를 찾아갔다. 그가 집에 있었다. 그가 세면을 하는중이여서 토방에 앉아 한동안 기다렸다가 이렇게 물었다.

《강옥숙이 요새도 일을 나오지 않습니까?》

최인서는 수건으로 얼굴과 팔의 물기를 닦으며 침울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나왔더군.》

《며칠전에 뺑대거리장마당에 가서 참외장사를 했다는데 알고있어요?》

최인서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장사를 했는지를 모르겠는데 일을 뚜꺼먹은건 사실이요.》

《무슨 구실을 댑디까?》

《늘 하는 소리지. 아이병에 쓸 약구하러 간다구 하더구만. 그까짓거 난 이제는 그 아낙네를 작업반원으로 치지도 않소. 참외장사를 하든 낮잠을 자든 상관하지 않겠소.》

《그러면 됩니까? 교양을 주어야지요.》

《아, 글쎄 난 말하기도 싫다니까.》

리춘권이는 그와 더 이야기해야 소용없겠기에 일어섰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최인서가 붙잡는것을 사양하고 집으로 갔다.

춘권이는 저기압상태로 뚝해서 얼른 저녁밥상을 물리고 곧 강옥숙이를 찾아갔다.

개들이 컹컹 짖어대는 저녁의 마을 오솔길을 헐썩거리며 걸어가느라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초급당단체에 속한 당원들과의 사업만도 아름찬데 기호나 강옥숙이 같은 비당원들까지 관심을 돌려야 하며 락후분자들을 교양개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은 또 얼마나 심중하며 말그대로 《복잡》한가. 그런데 사람들을, 그것도 나이 든 사람들을 개조한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사업이 아니다. 공업부문에서는 강선제강소 진응원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칭호쟁취운동에 궐기하고 그 칭호를 받은것을 비롯하여 이기저기서 그 운동의 선풍이 불고있다. 그들은 생산에서 기적적인 혁신을 일으키고있을뿐아니라 뒤떨어진 사람들을 교양개조하여 선진분자의 대렬에 끌어들이며 집단의 단합을 이룩하고있다고 한다.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쟁취한 진응원작업반원들을 천리마기수라고 부른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가? 가령 강옥숙이와 같은 녀자를 어떻게 교양개조했을가? 최인서는 그와 말하기도 싫다 한다. 그 녀자는 또 최인서를 당초에 대면하기조차 싫다고 한다. 나 춘권이는 초급당단체위원장이니까 내놓고 싫다 하지 않겠지만 무뚝뚝한 나를 좋아할리 없을것이다.

강옥숙이네 집에 다달았다.

저녁밥을 방금 먹고난 옥숙은 무슨 바느질을 하고있다가 앉은채로 《어서 들어와요.》하고 인사에 대답을 했다. 눈치를 보니 싫어하고 꺼리는 심사였다. 춘권이가 칭찬이나 하자고 온것이 아님을 짐작하고있는것이다. 그러거나말거나 들어가 앉아 담배부터 피워물었다.

머리를 맞대고 구들에 엎디여 공부하고있던 두 딸이 담배연기에 기침을 했다.

《아, 이거 실례했군.》

춘권이는 방문을 열고 담배불을 꺼서 밖에 내던졌다.

아래목에 병신아들이 누워있다. 아들도 딸들도 모두 옷을 허름하게 입었고 방안에서는 무슨 불쾌한 냄새가 났다. 천정에 파리똥이 다닥다닥하고 벽에 바른 벽지가 군데군데 찢어졌다.

(남편없이 세 아이를 먹여살리자니 오죽하랴. 그럴수록 일을 잘해서 로력공수를 잘 벌어 분배를 많이 타야 하는데 조합일을 싫어하고 장사하던 버릇을 못 고치고있으니 허 참, 답답하군.)

사람들, 특히 녀자들과 말하는 예술이 없는 춘권이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아주머니, 며칠전에 결근하고 어디 갔댔소?》

옥숙이는 바느질손을 멈추었다.

《평양에 약사러 갔댔어요.》

《군병원에서는 대책이 없답디까?》

《군병원 말은 하지도 말아요.》

《약은 무슨 약을 사서 쓰오?》

《피를 통하게 하는 약이지요. 저 애 다리 하나가 피가 통하지 않아 장작개비처럼 말랐어요.》

철진이가 지팽이같은것을 짚고 절룩거리며 겨우 걷는 모양을 춘권이는 본적이 있었다.

《그럼 약이나 사올것이지 참외장사는 왜 하오?》

순간 옥숙이의 얼굴이 시퍼래지며 입이 이그러졌다.

《아니 누가 참외장사를 한대요?》

《본 사람이 있소.》

《누군데? 기호 녀편네가 그럽디까?》

도적이 발이 저린 법이다. 옥숙이는 저도 어쩔새없이 기호의 처한테 들킨것을 스스로 토설한셈이다.

춘권이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기호 처한테 들킨 모양이지요?》

옥숙이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검은 눈동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참외장사를 다녔어요. 기호 녀편네한테 들키기도 했소. 그래 어쨌단 말이요? 약을 사자면 돈이 있어야 할게 아니요? 누가 나한테 돈을 거저 준답디까? 예?》

이렇게 대들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춘권이는 눈에서 사나운 빛이 펑끗했다. 하지만 《엄마야》하며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자 가슴이 쓰려와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그는 농번기에 장사를 다닐게 아니라 로력공수를 벌어야 한다는것, 그래야 자기도 잘살고 조합에도 리익이 된다는것 등등 없는 말재간을 부려가며 따뜻하게 타일렀다.

머리를 수굿하고 듣고있던 옥숙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춘심이네 집은 고맙게 생각해요. 아부님이 땔나무를 해다주고 춘심이 오빠두 여러가지로 날 생각해준다는걸 알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틀려먹었어요. 남을 흠잡지 못해 안달이 났어요. 참외장사 좀 한걸 고해바치구 그 쌍년, 얼마나 잘사나 내 보겠소.》

《아니, 아니, 근본잘못이야 본인한테 있지요. 왜 남을 욕하오?》

《춘심이 오빠, 내 말 좀 하라오? 예?》

옥숙이의 눈빛이 얼음같았다.

《얘기하시우.》

《내 이 말은 하지 않을가 했는데 모두 나만 교양하자구 달라붙으니 안할수 없소. 왜 나보구만 못살게 굴어요? 내가 남편이 없구 혼자 살구 힘이 없으니 나보구만 해보는데 일을 아예 나가지 않고 집에서 노는 아낙네들보구는 왜 말을 못하오? 그래도 나는 일을 다니지 않소?》

《그건 대체 무슨 소리요?》

《아니 춘심이 오빠는 소경이요? 아니면 모르는척 하우? 그래 조합관리위원장 하구 리당위원장 녀편네들은 집에서 고이 놀구있는데 그것들보구는 왜 해보지 못하오? 제 남편들이 간부면 놀아도 일없대요? 어디 좀 말해보자요.》

옥숙이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악을 썼다.

리춘권이는 불시에 당하는 기습에 당황해하며 간부들이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며 늘 바쁘니 집안일을 거둘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뒤를 거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어물어물 변명했다.

옥숙이가 더 요란스럽게 폭발했다.

《아니 나는 혼자 살며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러면 나보다 더 바쁠가? 그렇지만 팔자가 사나와서 놀지를 못해요. 춘심이 오빠, 알겠소? 간부들 녀편네들부터 일 내보내고 나를 교양해요. 그게 옳지 않소? 간부들이니 말하기 힘들테지. 나같은건 누가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업신여기구 별소리를 다하지만.》

춘권이는 울적해졌다.

그는 쿨쩍거리는 옥숙을 남겨두고 그 집을 나왔다. 할 말이 없었던것이다.

(내가 초급당단체위원장은 뭣하러 하면서 이 고생인가. 그저 논밭에 나가 일이나 꽝꽝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머리가 시원하구 아니, 난 더 못하겠어.)

춘권이는 그길로 리당위원회를 찾아가 유근재를 만났다. 유근재는 제3초급당단체위원장과 담화하는중이였다.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는데 유근재가 불렀다.

《무슨 일이요?》

《예. 그저 좀 후에 오지요.》

《앉아서 기다리오.》 유근재는 담화를 마저 끝내고 상대자를 내보낸 다음 춘권이를 돌아보았다. 《말하오.》

춘권이는 일어서면서 음울하게 말했다.

《난 초급당단체위원장을 못하겠소. 논에 나가 일하겠소. 내 할 말은 이게 다요.》

《허 사람두, 무슨 일이 있었소?》

《난 사람을 교양하는걸 못하오. 내 성미에 맞지 않소.》

《이제 보니 동무자신부터 교양되여야 하겠구만?》

리춘권은 그의 눈길을 피하여 어딘가 방안구석쪽을 바라보고있는데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아니요, 리당위원장! 리당위원장과 관리위원장의 처부터 일내보내야 하오.)

그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종시 입밖에 내여 말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자신을 몹시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였다.

《아니 춘권이, 왜 그러오?》

유근재가 놀랍게 쳐다보았다.

리춘권이는 아무 대답 없이 곰처럼 어정어정 걸어가 문을 잡아채듯 열고 나와버리였다.

 

×

 

리춘권이 우울해져서 종일 논에 나가 김을 매고있는데 해가 기울무렵 문영숙반장이 찾아왔다. 춘권이와는 대조되게 밝고 생신한 얼굴이다. 그 녀자에게서는 마음속 고민같은것이 있는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남편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작업반장사업까지 하느라 그 녀자처럼 새벽에 일어나 늦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잠시도 앉아 쉴새없이 바쁜 사람은 없을것이다. 가냘픈 어깨에 집과 작업반의 중하를 다 걸머지고있는 녀인이 어찌 마음고생이 없으랴. 젊은 나이에 홀로된 몸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절로 남편생각이 솟구쳐올라 눈물로 베개를 적신 밤이 어찌 한두밤이랴.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하루종일 뺑뺑 돌아치며 잡념을 잊고있는것이다.

《춘심이 오빠, 나 좀 봐요.》

문영숙이 논머리까지 김을 매며 나온 춘권이를 불렀다. 춘권이는 논물에 손을 씻고 논두렁으로 나오면서 피뜩 영숙을 보았다. 흰 머리수건밑에서 예쁜 눈이 반짝이는데 눈가의 주름살과 갈라터진 입술이 춘권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가 뒤에서 잘 도와주지 못하고있어. 초급당단체위원장이라는것이) 문영숙에 대한 애처로운 생각과 함께 이러한 가책이 들었다.

《저녁에 당원들의 회의를 간단히 하면 좋겠어요.》 문영숙이가 리춘권이와 논두렁에 가지런히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지금 김매기가 바쁘긴 하지만 풀이 한창 기름이 오르는 시기여서 매 집에서 새벽에 풀베기를 하자고 작업반에서 토론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잘 응하지 않는군요. 리종수아부님같은분들은 새벽풀베기를 착실하게 하는데 대개가 하루이틀 하구는 걷어치우든가 마지못해 한두지게정도 하고말아요. 김매기가 끝나면 풀베기를 본격적으로 하겠지만 지금부터 짬짬이 풀을 베여야 래년 봄에 논밭에 거름을 충분히 낼수 있다는걸 누구나 알고있겠는데 제집농사처럼 어디 팔 걷고 나섭니까?》

리춘권이는 두말이 없었다.

《회의를 합시다.》

《우리 관리위원장이 왜 회의를 자주 소집하는가 했더니, 호호》

문영숙이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춘권이도 벙긋 웃었다. 이 녀자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명랑해지고 즐거워진다.

《그리구 말이예요. 기호동무가 동산에서 출퇴근하기 힘들어하는데. 글쎄 이게 기본은 아니예요. 기본은 손재간이 있구 연구심이 있다는거예요. 이런 동무를 기계화반에 넣어야 하지 않을가요? 기계화반이 동산에서 가까우니 출근하는데도 편리하지 않겠어요.》

기호 소리가 나오자 춘권이는 박진섭을 만나 그에 대해 들은 말들이 불쑥 생각났다. 그리고 춘권의 솔직한 심정은 연구심이 있고 손재간이 있다 해서 아무나 기계화반에 넣을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는 아직 기호를 깊이 모른다. 문영숙이가 기호를 받아들일 때도 싫어하였지만 지금도 기호가 공쇄후치를 창안했는데도 선뜻 칭찬하고 내세우고싶지 않다. 개인감정은 그렇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인 원쑤편에 섰던 기호가 아닌가. 그런데다가 기호가 《자본주의를 한다》고 박진섭이 말했다.

《반장동무, 기호를 받을 때는 남자로력자가 한명 늘기때문에 받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 로력자를 스스로 내놓는단 말이요? 스스로 생각한거요, 아니면 누가 그런 의견을 냅디까?》

《내 생각이예요. 작업반 욕심도 차려야 하지만 더 넓게 보아야 하지 않을가요? 기호의 재간이 아깝기두 해요. 그런 사람은 제자리에 가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문영숙은 이런 녀자였다. 사람을 귀하게 여겼고 생각을 넓게 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것이고 간부들도 그를 좋게 보는것이였다. 리춘권이는 이 아련해보이는 작은 녀자가 곰처럼 체통이 큰 자기보다 속이 더 넓은데 탄복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기호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기호가 밤마다 망치를 두드리고 줄칼로 쓸고 하며 상품을 만들어 처를 시켜 내다 팔고있다는것을 문영숙이 알고있는지?

《기계화반에 넣는건 고려해봐야 할것 같소.》

리춘권이 들바람에 흔들리는 벼포기들과 저녁노을이 곱게 물든 하늘이 어린 논물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거기에 인원이 차고넘치였소. 우리 아버지는 기계화반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쑤시고 들어가있다고 늘 불만이요.》

《제 생각에는 재간이 없고 공밥먹는 사람은 솎아내고라도 진짜 기술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넣어야 할것 같은데요.》

춘권이는 그 말 역시 옳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역시 기호인 경우는 고려해야 한다.

《기계화반에는 기술이 있다 해서 아무나 넣는게 아니라고 생각하오.》

춘권이가 여전히 뚝한 얼굴로 말했다.

《녜?!》

문영숙이 저으기 놀라며 춘권이를 쳐다보았다. 춘권이는 그 녀자의 의아해하는 눈빛에서 그러니 기호는 재간이 있어도 안되는가, 아직 믿을수 없다는것인가, 《치안대》에 가담한 죄때문에? 하는 뜻을 읽을수 있었다. 마치도 자기 춘권의 속을 들여다보는것 같다.

춘권이는 자기자신에 대해 짜증이 났다. 그는 오만상을 찌프리고 이렇게 변명하듯 말했다.

《동산에서는 기호에 대해 나쁜 소문이 돌고있소. 공쇄후치를 만들며 기계화반에서 자재를 훔쳐냈다고도 하고 무얼 소소하게 만들어 돈벌이를 한다고도 하고》

《그래요?》

문영숙이 더욱 놀란다. 그 녀자는 제 손가락들을 주무르며 생각에 잠기였다.

이날 저녁 1초급당단체에 속한 당원들의 긴급회의가 있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리종수로인이 곤히 자는 아들과 며느리를 깨웠다. 로인은 낮에는 논김을 매고 밤에는 당사업을 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아들과 그리 건강치 못한 며느리를 아직 새벽풀베기에 인입시키지 않고 거의 혼자 나서군 했다. 그런데 어제밤 당회의에서 론의가 있었고 춘권이가 《아버지, 나도 새벽풀베기에 이제부터는 빠짐없이 참가하겠습니다. 초급당단체위원장이 당원들의 앞장에 서지 못했어요. 래일 새벽 내가 혹시 못 일어나거든 깨워주십시오. 인성이 엄마도 깨워주십시오. 그 사람도 해야 합니다.》하고 부탁하였었다.

《네 말이 옳다. 새벽풀베기에서 우리 집이 앞장서자.》로인이 이렇게 대답했었다.

춘권이와 그의 처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나왔다. 아직 날은 푸름푸름했다. 셋이서 지게, 낫, 바줄들을 준비하고 작업복을 입는 사이에 날이 환하게 밝았다.

세사람이 석두재기슭으로 향했다. 새벽이슬이 신과 바지가랭이, 치마자락을 적시기때문에 고무장화들을 신었다. 풀밭을 장화로 밟고 지나면 풀잎에 뽀얗게 서리였던 이슬이 풀잎과 함께 뭉개지며 장화자욱이 선명하게 찍히였고 장화는 물기에 번들거리였다.

뒤에서 아들과 함께 따라오는 며느리가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하품을 하였다. 종수로인이 돌아보며 《졸리느냐?》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아부님?》며느리가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풀밭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베자.》

리종수로인이 지게를 벗어 작대기를 뻗쳐 세워놓으며 낫을 벗겨들었다. 날이 선들선들하게 간 낫이였다. 며느리에게 좀 작은 낫을 주고 자기와 아들은 큰 낫을 들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자 낫날로 풀을 끌어당겨 왼손으로 모아쥐고 재차 날을 풀대밑에 대고 힘을 주어 당겼다. 썩ㅡ 하고 풀들이 잘리우며 왼팔에 와서 안긴다. 이렇게 몇번 하자 왼팔에 안긴 풀이 단을 이루었다. 그는 이 풀단을 번쩍 들어 그루터기들만 남은 번번해진 곳에 척 눕혔다. 이슬들이 모아져 물방울을 이루어 후두둑 떨어진다. 왼팔소매에 토시를 끼였건만 벌써 이슬에 푹 젖었다. 이렇게 이슬에 젖는것때문에 새벽풀베기를 싫어하였다. 하지만 풀베기철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베지 않으면 때를 놓쳐 풀들이 쇠기 시작한다. 쇠기 전에 기름이 번들번들할 때 시간을 아껴가며 한단이라도 더 베야 하는것이다. 지금은 나무들과 풀들과 곡식들이 무성할대로 무성하여 한껏 살이 찌고 기름이 올랐다.

썩ㅡ 썩ㅡ 리종수로인은 이슬에 젖어가지고 낫질을 계속했다. 그옆에서 끈으로 허리를 동여맨 며느리도 시아버지께 뒤질세라 부지런히 낫질을 하였다. 단이 차면 떨기나무줄기를 비틀어 맬끈을 만들어가지고 무릎으로 힘껏 눌러 조이며 단을 묶는다. 젊고 힘이 왕성한 리춘권이는 세차게 낫질을 했고 끙끙거리며 풀단을 큼직큼직하게 묶었다. 풀단들이 늘어나며 어느새 한지게씩 될상싶다.

풀단들을 지게마다 올려쌓고 바줄로 동여맨다. 어느새 그렇게 많이 베여 단을 묶어 쌓았는지 아득히 높아보였다. 춘권이의 풀단이 제일 높았다. 그는 먼저 자기 일을 끝내고 아버지와 처가 풀단을 지게에 쌓는것을 거들어주었다.

며느리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불그스레 물드는 동녘하늘을 쳐다본다. 꾀꼴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잎담배를 다져놓은 대통에 성냥을 그어대여 불을 단 리종수로인이 지게를 지려 하는데 아들이 와서 힘을 써주었다. 춘권이는 안해에게도 다가가 거들어준 다음 자기의 산더미같은 지게 멜끈을 두어깨에 걸고 《끙ㅡ》하고 한번 힘을 쓰며 우쩍 일어섰다.

리종수로인은 입에 문 대통에서 담배연기를 풀썩 내보내며 이들과 며느리를 앞세우고 경사진 풀밭을 내려와 마을길에 들어섰다. 그 시각에야 뒤늦게 풀베기를 하려고 석두재로 가는 조합원들과 길을 어기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조합원들은 산이 움직이는것 같은 춘권이의 풀단을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리종수로인이 대통의 담배를 다 피우기 전에 집에 당도하여 지게를 내려놓고 바줄을 풀고 풀단들을 이미 웅뎅이에 높이 쌓인 풀더미우에 한단씩 던진다. 후두둑후두둑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다시 빈 지게를 지고 세사람이 함께 풀밭으로들 향했다. 두번째 지게를 지고 올 때 동녘하늘에서 해가 솟았다. 처음에는 불그레하고 큰 불덩이같더니 차츰 작아지고 눈부시게 빛을 뿌렸다. 그러자 새들이 나무잎속에서, 지붕우에서 울어대기 시작했고 매미들의 《맴ㅡ 맴ㅡ》하는 합창이 더 맹렬해졌다. 지게를 내려놓았을 때 며느리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두지게를 했다는 로동의 희열로 고운 눈이 반짝이고 땀흐르는 얼굴에 붉게 홍조가 피였다.

《너는 이제는 그만두거라.》 리종수가 며느리를 쳐다보지도 않은채로 말했다.

《아부님은요?》

《난 아애비하고 한지게 더하겠다.》

《그럼 저도 같이 해야죠.》

《아서라.》

《그래두》

《두말 없다.》

리종수로인은 이슬에 저고리며 치마가 흠뻑 젖고 숨이 차 할딱거리는 며느리를 떨구고 아들과 함께 다시 풀밭으로 향했다.

이날 아침 오씨가 차린 아침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리씨일가사람들은 다른 날보다 특별히 흥겨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