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2

 

22

 

물쿠는 날씨가 계속되고있었다. 숨쉬기 바쁜 저기압이 대기를 무겁게 누르고 때없이 하늘이 컴컴해지고 험산한 구름들이 밀려오면서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우르릉거리였고 소나기가 시원하게 퍼붓는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는 목화송이같은 구름이 나타나고 하늘이 청청 개이면서 불볕이 쏟아져내린다. 비물을 머금은 꽃들이 활짝 웃고 초목은 싱싱한 잎사귀를 펼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문으로 청사정원의 나무숲을 내다보시였다. 무수한 푸른 잎사귀들이 물에 젖어 번들거리며 흔들거리고있었다.

《농업부장동무가 왔습니다.》

등뒤에서 책임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서보니 김만금이 집무실에 들어와있었다. 여름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왔소? 거기 앉으시오.》

그러나 김만금은 수령님께서 서계시였으므로 앉지 않았다.

수령님께서 그에게로 다가가며 말씀하시였다.

《길게 얘기하지 않겠소. 나는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기 위하여 곧 떠나오. 떠나기 전에 농업부장에게 꼭 할 말이 있어서 불렀소.》

김만금은 어지간히 긴장하여 차렷하고 서있었다.

《앉아서 얘기합시다.》

수령님께서 먼저 쏘파에 앉으시였다. 김만금이 뒤따라 좀 떨어져 앉았다.

수령님께서 눈길을 떨구고 앉아있는 몸이 가로 퍼진 김만금의 우둥퉁한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불쑥 물으시였다.

《김만금이가 최영길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지?》

김만금의 얼굴근육이 푸들쩍 떨었다. 그는 급소를 찔린듯 당황해서 어쩔줄 몰랐다.

그는 최영길이가 농업성은 늘 욕을 먹게마련이요 하던 말이 피뜩 머리를 스치였다. 자연속에서 일기조건의 영향을 받으며 하는 농사일이니 풍파도 많고 제기되는 문제도 많다. 더구나 올해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갈팡질팡하며 오유를 많이 범하고있었다. 농업성의 이러한 결함은 당 농업부의 결함이기도 한것이다. 실례로 농업성에서 조직한 《풍년축구경기》가 말썽을 일으켰는데 농업부가 이미 동의한 까닭에 응당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것이다. 지금 수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풍년축구경기》를 념두에 둔것이 아닌지?

그것을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무슨 〈풍년축구경기〉라는게 굉장했다면서?》 수령님의 안광에서 번뜩이는 노기를 보며 김만금은 속이 얼어들었다. 《김일 1부수상한테서 듣고 알았소. 동무는 보고도 안했지. 어디 말해보오.》

김만금이 급히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귀속에서 잉ㅡ 하는 소리가 나며 사고가 마비된듯싶었다. 그 《풍년축구경기》가 끝내 일을 저질렀다. 물론 그것은 최영길이 발기했다. 그렇지만 김만금이 동의했었다. 후에 너무 어벌이 크게 확대되자 그는 불안을 느끼였으나 수습하기에는 벌써 늦었었다. 그래도 그 도중에라도 단호히 결심하고 중지시켜야 했으나 최영길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수가 없었다.

《동무들이 모내기를 70% 했다며 기본적으로 끝났다고 만세를 부르기때문에 1부수상동무가 경고를 했다는거요. 그런데 당치 않는 리유를 내대고 〈풍년축구경기〉라는것을 벌려놓았소. 동무가 사전에 알았소?》

《사전에 저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풍년축구경기》라는 말이 나올적마다 땀이 바짝바짝 나는 김만금이 풀이 죽어 대답올렸다.

《그러니까 같이 춤추었다는거요?》 수령님께서는 그러니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 하는 심정이시였다.

《농업성에서 올해 알곡을 더 많이 생산하자고 큰소리를 치면서 이제는 농민들도 로동자들처럼 문명한 생활을 하며 흥겹게 일해야 한다고 최영길이 연설을 했다고 하는데 그 결의와 지향은 나무랄데 없소. 그러나 농업성일군들은 면밀한 작전과 구체적인 타산을 하지 않았고 지시를 떨구고 통계나 독촉하면서 밑의 실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소. 농업성사업에 대해서 내가 초봄부터 말하고있는데 정신을 차리지 않고 농번기에 축구를 벌려놓고 숱한 청년들이 련습을 하느라, 군에 올라가 뽈을 차느라 한달동안 농사일을 못하게 했소. 그런데 동무들이 만세를 부르고 뽈차기놀음을 할 때 아직 모를 내지 못한 논이 있었고 또 김매기가 시작되고있었소. 김만금동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소. 당 농업부는 농업성과 같이 행금을 타다보니 어느 줄에서 소리가 잘 나고 어느 줄에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지 모르고있단 말이요.》

김만금은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이마에 내돋은 땀이 볼을 따라 흘렀고 턱에 맺혔다가 떨어져내렸다. 그렇지만 그는 땀을 씻을념을 못했다. 손수건을 꺼내여 땀을 씻을수가 없었다.

《내가 동무에게 여러번 일깨워주었지.》 수령님께서 계속하시였다. 《농업성사업을 당적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그런데 농업실무가 딸린다느니 그래서 실무학습을 한다느니 하길래 그것도 중요하지만 당정책적안목을 가지고 정책적지도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정책적지도를 하기는커녕 최영길이한테 업혀돌아가고있지 않는가. 당정책안목을 가지자면 당정책을 잘 알아야 하고 현실을 잘 알아야 한단 말이요. 그래서 내가 동무를 청산리에도 나가보게 했고 도들을 현지지도할 때 같이 데리고 가기도 했지. 동무는 나와 같이 다니며 느낀바가 많다고 했소. 어떻게 현실을 대하며 인민들의 아픔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것을 배웠다고 했소. 그건 좋소. 그런데 평양에 올라와서는 최영길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단 말이요. 그럴바에야 무엇때문에 현실에 나가보겠소?》

《···》

《이러다간 김매기를 제대로 못할수 있소. 지금 농업성에 똑똑한 주인이 없소. 상은 무맥해졌지, 성에서 실권자라고 하는 최영길부상은 무엇이나 다 된다고 큰소리를 치는데 실지 되는것은 하나도 없소. 동무가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하겠소. 당면하여 김매기에 력량을 집중하시오. 앉아서 땀을 씻소.》

그이께서 좀 누그러진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김만금은 걸상에 앉아 비로소 손수건을 거내여 땀을 씻었다.

수령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함의선농업상은 기계타령만 하고 앉아있는데 농촌경리의 기계화가 하루아침에 될수 있는가, 그런데도 기계화가 쏘련의 엠떼에쓰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사회주의농촌경리의 발전을 기대할수 없고 큰 규모의 협동경리가 실패할수도 있다고 하면서 당정책에 대해 의심하고 신심을 갖지 못하고있다. 우리는 30년대의 쏘련의 실정과도 다르고 오늘의 쏘련과는 더욱 다르다. 우리의 현실은 자기의 력사적인 구체적특성을 가지고있다. 우리는 지금 농촌의 기술혁명을 중심적과업으로 제기하고있는데 실제상 기계화는 시작되고있는 형편이다. 이런 형편인데 기계타령만 하면서 《안된다》는 소리나 하고있어야 하겠는가? 중요한것은 사람이다. 기계도 사람이 만들고 다룬다. 인민대중이 동원되지 않으면 기계화도 빨리 추진시킬수 없다. 인민대중을 옳게 조직동원하면 기계화도 추진되고 사회주의협동경리도 정상적인 궤도에서 발전하게 된다. 기계화수준이 낮다 해도 개인경리나 소규모협동경리보다 우월한 대규모협동경리를 얼마든지 잘 운영해나갈수 있다. 문제는 지도일군들이 어떻게 대중을 조직동원하며 대중이 어떻게 궐기하는가 하는데 있다. 내가 이에 대해서 한두번만 말했는가. 함경북도나 황해남도에 가서 본 엄중한 결함들이나 농업성의 주관주의, 관료주의 같은것을 시정하는것이 바로 협동경리를 바로 운영하는 길이다. 그런데 입이 아프게 강조하고 깨우쳐주고있는데도 잘 시정되지 않고있다. 내가 평안북도에 가서는 신의주지구의 공업과 주로 산간지대의 농촌을 돌아보자고 하는데 거기서도 일이 시원스럽게 되고있는것이 아니다.

《만금동무, 우리 일군들이 왜 이렇소? 농업성이나 당 농업부가 왜 이렇게 무책임하게 일하오? 내가 혼자서 다 지도할수 있는가? 동무들이 나의 의도를 받들고 나와 보조를 맞추어 같이 해야 하지 않겠소?》

수령님께서 안타까와하시는 말씀이 김만금의 심장을 찌르고들었다. 수령님을 따르고 수령님으로부터 부단히 배운다고 하지만 언제가야 제 앞처리를 바로 할수 있겠는가? 수령님께서 당 농업부장으로 임명해주셨으면 자기 초소에서 자기 맡은바 책임을 옳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수령님께서 내 혼자 다 지도할수 있는가 하고 절절하게 하신 말씀은 김만금의 뼈를 저리게 하였다.

그는 다시 땀에 푹 젖어들었다. 가슴답답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동무도 잘하느라고 하는것이겠지.》 그이께서 한동안이 지나 저으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지금 올농사가 잘될것 같지 않는 징후들이 나타나고있소. 나는 요새 잠이 다 오지 않소.》

김만금은 눈에 눈물이 핑 도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다행하게도 땀이 그냥 비오듯 하고있어 그가 흘리는 눈물이 알리지 않았다.

그는 일어서서 흐느끼듯 말씀드리였다.

《수상님, 이 김만금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수령님께서 손을 내저으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일을 하느라면 욕을 먹을 때도 있지. 일하는 사람이 욕을 더 먹는 법이요.》

김만금이 앉으며 눈물을 삼키였다.

 

×

 

김만금은 부서로 돌아와 아무런 말도 없이 오래동안 사무탁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부부장이 들어와서 무엇인가 말을 붙이려 하자(아마 결론받을 일인것 같았다.) 급한것이 아니면 후에 보자고 하며 내보내였다. 전화종소리가 울리면 마지못해 송수화기를 들기는 했으나 상급인 경우에는 알았다고 하거나 공손하게 대답을 하고 하급인 경우에는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깊은 자책과 모대김과 추억의 상념속에 빠져드는것이였다.

김만금은 수령님의 손길아래 해방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성장한 일군이였다.

해방전에 그는 막돌같은 존재였다.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왜놈들이 열두삼천리벌에 관개공사를 한다면서 《소화수리조합》이란것을 내오고 인부들을 모집하자 그곳에 나타나 일하면서 《형제계》라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였다. 그는 싸움깨나 하는 사람이였다. 《형제계》는 왜놈들의 가혹한 학대에 항거했고 조선사람들의 권리와 리익을 옹호했다. 후에 알게 되였는데 이 조직이 백두산에서 파견한 공작원의 관심을 끌었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두고 전민항쟁을 준비하기 위해 각지에 공작원들을 파견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 고학으로 대학공부를 하며 좌익운동에 관여한 김만금은 체포를 피해 조선으로 건너와 개성에 머물러있으면서 장가까지 들었으나 뜻을 품고 중국에 들어가 돌아치다가 종당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관개공사장의 인부가 되였고 싸움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주먹이 무서워 왜놈십장들도 감히 어쩌지 못했다.

해방후 그는 안주군당에서 일하다가 중화군당위원장으로 조동되였는데 이곳에 와보니 토지개혁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인정에 끌려 지주들을 내쫓지 않았다든가 응당 지주로 규정해서 토지를 몰수해야 할 대상을 그냥 뒀다든가 하는 우경적편향이 그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는 토지개혁을 군내에서 다시 철저히 진행하였다. 이 사실이 중화군의 토지개혁진행정형을 료해하려고 림춘추와 함께 나오신 수령님께 보고되였다.

수령님께서 이름을 물으시니 김만금이라 했다.

림춘추가 옆에서 《산에서 〈소화수리조합〉의 싸움군에 대해서 보고받으신 기억이 나십니까? 바로 그 동뭅니다.》하고 알려드리였다.

《아, 안주의 유명한 싸움군.》 수령님께서 껄껄 웃으시였다

김만금은 부끄러워 어쩔줄 몰랐다. 싸움군이 지금 군당위원장을 하고있으니 말이다.

《그래 토지개혁을 해보니 어떻소? 어떤 교훈을 찾았소?》

수령님께서 우선우선한 얼굴로 물으시였다.

《다른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주놈들은 철저히 때려부셔야 합니다. 주먹맛을 보여주어 소멸해야 합니다.》

하며 김만금은 주먹을 쳐들어보이였다.

《그 기세는 좋은데 혁명을 주먹만으로는 할수 없소.》

수령님께서는 자그마하지만 어깨가 벌어지고 오돌찬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였다. 혁명성은 좋으니 공부를 시켜 장차 유능하고 다방면적인 당일군으로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김만금은 수령님의 추천에 의하여 해방후 쏘련에 가는 류학생들속에 군당위원장으로서는 유일하게 망라되였다. 강습이 끝나고 쏘련으로 떠나기 전날 김만금은 수령님의 저택으로 부름을 받았다. 식사를 같이하며 수령님께서 간곡한 말씀을 하시였다.

··· 조선인구의 대다수가 생산수단을 못 가지고 살아왔다. 이 나라의 아들들이 분발하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뭐니뭐니해도 먹는 문제가 기본이다. 쏘련에서도 먹는 문제해결을 중시하고 혈투를 벌려가며 집단화를 단행하였다. 쏘련의 집단화과정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 혁명을 하는것이 인민들에게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특성에 맞게 농촌문제를 풀고있다. 이런것을 명심하고 쏘련의 당학교에 가서 우리 실정에 맞는 지식을 배워가지고 오라.···

김만금은 류학을 마치고 와서 주로 당사업을 했는데 장윤필이와 함께 평안남도에서 농업협동화운동도 농사일도 잘했다.

수령님께서는 어느 설날에 그들 두사람을 따로 불러 고급시계를 표창으로 주시였다.

《이 시계는 평남도가 작년에 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한 표창으로 주는거요.》 수령님께서는 친히 시계를 채워주시며 《국가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지?》하고 대견하여 치하해주는 의미에서 물으시였다.

김만금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예상수확고는 그런데 탈곡을 다 끝내봐야 알겠습니다.》

그는 수령님앞에서는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하며 그 무엇도 숨겨서는 안된다는것, 특히 비판을 모면하거나 일시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허풍을 쳐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철칙으로 간직하고있었기때문에 량심이 허락치 않는 대답을 드릴수 없었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만약 탈곡을 다 해보고 국가계획을 미달했다면 이 시계표창의 의미를 올해에는 꼭 계획을 넘쳐하라는 뜻으로 간직하시오. 그러나 나는 동무들을 믿소.》

수령님께서는 무엇이든 새로운 정책을 구상하시고 실천에 옮길 때에는 평안남도에 먼저 실시해보고 전국에 일반화하시군 하였다. 그만큼 수도 평양이 있는 평안남도를 중시하시였다. 그런것만큼 김만금과 장윤필을 평안남도의 당 및 행정기관의 책임일군들로 임명해준 그자체가 벌써 큰 믿음이였다.

탈곡을 다 해보니 국가계획을 초과하였다. 평안남도는 그해와 이듬해 계속 국가계획을 수행하였다.

이렇게 지방당사업을 하며 지방의 실정에 밝아지고 성과를 올리고있는 김만금을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으로 끌어올려 나라의 농업을 정책적으로 지도하도록 믿음을 주시였다.···

그는 흥분이 앞서는 즉흥적인 성미를 타고난것으로 하여 사업에서 성과와 함께 실수도 많이 했다. 손탁이 세고 전개력이 있었으나 주관주의도 있었다. 그래서 수령님으로부터 비판을 여러번 받았다.···

이튿날 아침 김만금은 청산리를 향해 승용차를 달리였다. 수령님의 비판을 접수하고 농업성에 나가 대책을 세우자면 우선 농촌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하였다. 현실에 나가보면 수령님께서 하신 비판의 말씀을 생활적으로 체득할수 있는것이다.

농사차비로 들끓던 봄에 나가보고 지금 여름에 다시 가보는 청산벌, 몇달사이에 많은것이 변했다. 산은 산대로 푸르고 들은 들대로 한창 자라고있는 벼, 강냉이, 콩 등 작물들에 덮여 푸르다.

그는 군에 먼저 들려 군당위원장 문성술이를 찾아가지고 같이 청산리관리위원회로 갔다. 관리위원회는 텅 비여있었다. 경비 서는 늙은이가 승용차를 타고온 사람들을 맞이하고는 다 논에 들어갔쉐다 하고 말했다.

논에 나간 김만금은 거기서 관리부위원장 김명배를 만났다. 논김을 매고있다가 논두렁으로 급히 나오며 그는 농립모를 벗고 인사를 하였다.

《동무, 부위원장이지?》

《그렇습니다.》

《수고하오. 관리위원회성원들이 모두 논에 들어갔다더구만?》

《예, 방법이 없습니다.》

《허허··· 그건 좋은 일이요.》

김만금이 웃었다.

《부장동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방법이 없다고 한것은 농촌에서 김매기도 모내기 못지 않게 중요한데 김매기에 들어서자 모내기에 집중했던 로력이 다 흩어졌을뿐만아니라 오히려 원로력까지 다른 작업에 돌리고있기때문입니다.》

김명배는 군당위원장을 피뜩 돌아보았다.

《그건 무슨 소리요?》 김만금이 심중해졌다.

김명배는 군당위원장앞이라 얼굴의 땀을 부지런히 씻으며 주저하다가 군인민위원회에서 학교건설과 길닦기에 농민들을 동원시킨 사실과 당일군들의 강습이 있은데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지금 논에서 김매는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하였다.

김만금은 수령님께서 이러다간 김매기를 제대로 못할수 있소 라고 걱정하시던 말씀이 떠오르며 눈앞이 흐려왔다.

《어떻게 된거요?》 그는 문성술이를 돌아보았다.

《강습은 전당적으로 하였습니다. 학교건설과 길닦기에 농민들을 동원시킨것은 ···잘못되였습니다.》

문성술이 눈을 들지 못했다.

《잘못되였으면 빨리 시정해야지!》

《예.》

《지금 수상님께서 김매기때문에 마음쓰고계신단 말이요. 이런것까지 수상님께서 걱정하셔야 되겠소?》

청산리에 나와보기 참 잘했다. 만약 현실에 나와보지 않았더라면 청맹과니노릇을 했을것이고 자기의 과오를 현실을 놓고 깊이 알수 없었을것이다.

그는 리종수로인도 만나보았다.

리종수로인은 흥분하여 말했다.

《그 〈풍년축구경기〉가 조합청년들을 일에서 뜨게 했구 차두철이를 건달뱅이로 만들었습니다.》

《차두철이가 누굽니까?》

《손에 흙을 묻히기 싫어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래두 그런대루 기계화반에 들어가 일을 하느라 했는데 축구를 한다구 한달동안 나돌아다니다가 아예 평양으루 가고말았습니다.》

김만금은 수령님께서 황해남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농촌건달군들을 없앨데 대하여 강조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농촌에서 건달군이 왜 생기는가? 건달을 부리고도 먹고 살수 있는 공간이 있기때문이다. 기계화반에서 일할 때나 한달동안 축구를 한다고 돌아다닐 때나 차두철이는 매일 1.5공수씩 받았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을 묵과합니까? 로인님, 왜 가만둡니까.》

리종수는 눈을 가늘게 하고 띠염띠염 말했다.

《말을 하면 모두 싫어합니다. 학교건설장과 길닦기에 로력을 동원시키는걸 부위원장이 반대했다가 혼쭐이 났습니다. 강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내 아들녀석까지도 나더러 싫은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김만금은 로인의 말을 심중히 받아들이였다. 아래의 의견을 묵살하고 내리먹이기만 하는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관료주의이다.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외곡된 지도관리때문에 사회주의건설이 엄청난 장애를 받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거기서 사회주의에 대한 영상이 흐려지고 비방중상의 언치가 생기는것이다.

김만금은 특별히 2작업반장 최인서를 혼자서 만나보았다. 봄에 김만금이가 최인서에 대해 수령님께 보고하기를 우에서 내려오는 간부들을 피하고 시원한 소리를 하지 않으며 관리위원장에게 속을 주지 않고있는데 원래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였을 때 그이께서는 왜 그런지 그 속심을 파헤쳐보았어야 했을것이라고 깨우쳐주시였었다.

최인서는 작업반원들과 같이 논에서 제초기를 밀고있었다. 농립모를 쓰고있었지만 해볕에 타고 들바람에 그슬려 워낙 어두운 얼굴이 더 시커맸다.

김만금은 논뚝으로 걸어나갔다. 개구리들이 첨벙첨벙 논에 뛰여들었다. 그는 논머리에 서서 최인서가 제초기를 밀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논머리까지 제초기를 밀고나온 최인서는 농립모를 벗고 이전처럼 송구스러워하는듯 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히였다. 얼굴에서 땀이 철철 흐른다. 김만금은 깨끗한 옷을 입고 새 구두를 신고 논뚝에 서있는것이 미안스러웠다.

《수고합니다. 몇벌째 김입니까?》

김만금이 물었다. 최인서는 여전히 순진한 미소를 짓고있을뿐이다.

(아하, 가는 귀를 먹었다고 했지.)

그는 이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이번에는 큰소리로 질문을 반복했다.

《두벌째 김입네다.》

그제야 최인서가 더듬거리며 대답하였다.

《늦었구만.》

《···》

《김매기가 늦었단 말입니다.》

《예.》

김매기가 늦었다고 하는데 대해 죄스러워하는것인지 그저 덮어놓고 예 하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김만금이 다시 큰소리를 쳐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대답이 없다. 최인서는 목에 건 수건으로 땀만 씻었다.

(무턱대고 따지니 대답을 하겠는가?)

김만금은 자기가 논뚝에 서서 관료행세를 한다는 생각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웃옷을 벗고 구두와 양말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였다.

《어디 한번 제초기를 밀어봅시다.》하며 그는 논에 들어서서 젊은 청년이 쥐고있는 제초기에 손을 내밀었다.

《그만두십시오.》 청년이 제초기를 뒤로 당기였다.

《괜찮아. 자, 같이 나가봅시다.》

농민들은 말없이 돌아서서 새줄을 잡았다. 김만금이 먼저 호기롭게 제초기를 쭉 밀었다. 쉽게 나가지 않았다. 그는 차츰 제초기를 다루는것이 논밖에서 농민들이 수월하게 쭉쭉 미는것처럼 보이던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제초기를 밀기도 쉽지 않았고 논판에 빠지는 발을 뽑기도 헐치 않았다. 그가 비틀거리며 기운을 쓰는 사이에 농민들은 묵묵히 앞으로 쭉ㅡ 쭉ㅡ 밀며 나갔다.

김만금은 젊어서부터 로동판에서 단련된 사람이다. 지금도 팔에 근육이 불뚝불뚝하고 장딴지가 팽팽했다. 육체적인 로동을 별로 꺼리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해방후부터 사무원생활을 내내 해온탓인지, 논일이 워낙 힘든탓인지 그는 팔의 맥이 풀리고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세명의 조합원들은 김만금을 뒤떨구고 나가다가는 인사가 안되였다고 생각하는지 멈춰서서 기다리군 했다. 그들은 이러한 논일에 적응되고 습관되여있었다. 그렇더라도 힘이 들것이며 그 이상의 마력을 내기는 어려울것이다.

김만금은 논작업이 기계화가 되지 못한 조건에서 로력조직을 합리적으로 하여 농사에 집중하며 김매기에 로동자, 사무원들의 로력지원이 필요하다는것을 이 짧은 체험을 통해서도 느낄수 있었다.

그는 땀이 줄줄 흘렀고 자주 멈추어섰으며 숨이 차올랐다. 그래도 두번 왕복하였다. 옷과 신을 벗어놓은 논머리에 두번째로 되돌아왔을 때 조합원 하나가 《그만 쉬지 않겠습니까?》하고 김만금에게 물었다.

《이게 보기와는 다르군.》

멈추어서서 숨을 몰아쉬며 그가 하는 말에 농민들이 말없는 웃음으로 《그렇지요?》하는 뜻을 나타내였다.

관리위원장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부장동지, 나오십시오.》

김만금은 자기가 이 논판에서 같이 일해야 농민들에게 방해나 된다는것을 깨달았다. 굼뜨게 나가는 자기를 기다려야 했고 간부가 끼여드니 그들이 재미없어 했던것이다. 그리고 그자신이 우선 다리가 떨리고 어깨죽지가 아파서 더 일할수가 없었다.

《농민들이 수고하오. 정말 김매기가 힘들겠소.》

그는 장영덕이에게 이렇게 말하며 청년에게 제초기를 돌려주었다. 마침 관리위원장이 오기를 잘했다. 그가 오지 않았더라면 제초기를 더 밀었어야 했을것이다.

나이지숙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듯 한 조합원이 말했다.

《각자에게는 자기가 맡은 직무가 있지 않습니까. 간부동지는 김매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사무보기가 힘들지요.》

김만금을 위안하는 소리였다.

《어서 가십시다. 모두 부장동지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장영덕이 김만금을 재촉했다.

김만금은 원래 왜 김매기가 늦어지고있는가, 이래가지고 네벌김은커녕 세벌김매기도 힘들것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농민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구두를 신고 최인서에게 수고하겠다는 인사를 했다. 최인서는 아까처럼 어줍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렇다, 김만금은 《김매기를 다그쳐 세벌김매기를 보장해야 하겠소.》하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제초기를 직접 밀어보기 전이라면 그렇게 말했을것이다.

뙤약볕아래서 힘들게 제초기를 미는 농민들에게 논두렁에 서서 세벌김매기를 하라고 말하기는 쉽겠지만 그것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들 매 농민들은 다 자기 힘껏 일하고있지 않는가.

김만금이에게는 최인서의 미소가 《그래, 직접 제초기를 밀어보니 어떻습니까?》하고 묻는것처럼 느끼였다. 그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알수 있었다. 제초기를 밀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을 해야 소용없을것이고 제초기를 밀어보았으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깨달을수 있는것이다. 그 사람이 지각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관리위원회까지 갔다. 군당위원장, 리당위원장, 관리부위원장, 리종수로인이 기다리고있었다. 김만금은 군당위원장에게 《동무도 제초기를 밀어보오.》하는 말을 할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겨우 논판을 두번 왕복해보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협의회를 시작하려는데 군인민위원장도 왔다. 김만금은 오늘 청산리에 와서 료해과정에 알게 된 문제점들에 언급하였다. 로력이 제일 필요한 시기에 로력을 농사가 아닌 작업에 동원시킨 군인민위원회를 비판하고 조합의 로력을 전부 김매기에 돌리여 군적으로도 모내기시기처럼 동원로력을 조합들에 내보낼 대책을 세우도록 했다.···

성에 올라가서도 이와 같은 대책을 전국적으로 세우도록 할 결심을 품고 그는 평양으로 올라갔다. 그길로 성에 나타난 김만금은 입원중인 상을 제외한 국, 처장이상 간부들을 모아놓고 농업부문에 주신 수령님의 비판교시를 전달하였으며 방금 청산리에 나가본 실태를 이야기했다.

《현실은 수상님의 비판의 말씀이 얼마나 옳은가 하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성의 책임일군들은 대체 여기 앉아서 뭘하고있습니까?》

그는 준절하게 따지였다. 부상들, 성당위원장, 국장들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김만금이 최영길을 지명했다. 상이 입원중인 지금 그가 성에서 제일 높았던것이다.

《최영길부상동무.》

최영길은 앉은채로 김만금을 쳐다보기만 했다.

《지명하면 일어서는것이 규률이 아니요?》

김만금의 노성이 방안공기를 쩡 울리였다. 최영길이 흠칫하며 일어섰다.

《부상동무는 아직도 수상님의 교시에 담긴 사상이 무엇인지 모르는게 아니요?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수 있소?》

최영길은 무엇때문에 갑자기 노성을 지르느냐고 의아해하는듯 했다.

《부상동무는 〈풍년축구경기〉의 후과가 얼마나 엄중한가를 알고있소? 협동조합들에서 어떤 물의가 일어나고있는지 아는가? 내가 방금 청산리에서 보고들은것들을 말했는데 동무가 협동조합들에 내려가보지 않으니 알탁이 있소? 강서군에서 농민들을 길닦기와 학교건설에 동원시킨것 같은 무법천지를 알고있었는가? 부상동무는 성이 함경북도부터 황해남도까지 전국에 널려있는 협동조합들에서 벌어지고있는 일들을 일일이 알수 없기때문에 큰 선에서 장악통제를 강화하는것이 방책이라고 했는데 장악통제가 아래실정을 모르는 총명한 자기 두뇌 하나로 될수 없다는거야 상식이 아니겠소? 김매기를 언제까지 끝내라, 네벌 매라! 하고 동무가 성에 앉아서 호령하면 일이 다 된다고 어리석게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지금 관료주의가 얼마나 심한가. 농민들은 입도 못 벌리게 한다는거요.》

최영길은 김만금의 벼락치듯 하는 비판에 대해 의견이 전혀 없는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눈길은 떨어뜨리고 입을 꾹 다문채 묵묵히 서있었다. 그의 이러한 변명하지 않는 태도가 어느 정도 김만금의 분을 삭이게 하였다.

《물론 성이 리나 군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다 알수도 없고 다 책임질수도 없소. 그렇기때문에 일반성을 띠는 문제점을 찾아쥐고 대책을 세워야 하며 그러자면 아래를 알아야 하는거요. 아래 실정을 통계를 가지고 장악하는것은 낡은 방법이요. 생동한 현실을 통계수자로는 정확히 알수 없소. 동무들은 지금 김매기정형을 통계수자나 가지고 장악하려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소. 조합들에 내려가보시오.》

김만금은 김매기를 다그쳐 끝낼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긴급회의를 열며 성당위원회에서 《풍년축구경기》문제를 취급할데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성에 내려오면 최영길의 방에 들려 잠간씩이나마 휴식하며 롱도 하고 사담도 하던 김만금은 이날은 내려와서도 올라가면서도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최영길은 농업부장이 간 후 얼굴이 뻘겋게 되여 자기 사무실에 들어가 담배연기에 휩싸여 오래동안 거닐기도 하고 쏘파에 육중한 몸을 던지기도 하면서 모대김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기가 큰 잘못을, 돌이킬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는것을 알았다. 김매기를 제대로 내밀지 못했다. 모내기의 성과에 들떠 김일 1부수상의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냈으며 《풍년축구경기》를 조직해 숱한 로력을 랑비했고 김매기도 응당 모내기처럼 돌격전을 했어야 했는데 방심했다.

그는 김만금의 쩡쩡 울리는 목소리와 불이 이는듯한 눈길을 잊을수가 없었다. 그는 김만금을 오늘 새롭게 알았다. 김만금이 단순한 옛친구가 아니라 농업부장이라는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사업에 들어가서는 동창생이 통하지 않는다. 최영길이 안주농업학교시절에 왜놈사감을 때려주고 피할데 없어하는 김만금을 도와주었으며 일본으로 빼돌리는 일도 조직해주었다. 은혜를 입히자 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김만금의 의거를 찬양했고 그에 공감되였기때문이였다. 이러한 과거지사는 해방후 국가의 서로 다른 중요직책에서 떨어져 일하면서도 항상 마음이 가깝게 통하도록 하였다. 김만금이 자기의 상급이 된 후에도 최영길은 그러한 동창생관계의 따뜻한 감정을 유지하였다. 김만금이도 같았다. 그러나 사업은 사업인것이다. 김만금은 과오를 범한 최영길을 용서치 않았다. 《풍년축구경기》문제를 성당위원회에서 취급하도록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은 최영길을 성당위원회에서 취급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