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0

 

20

 

군인민위원회에 회의갔다 온 김명배부위원장이 장영덕이에게 지시를 전달했다.

《학교건설장과 길닦기에 로력을 내라고 합니다. 한 작업반에서 1명씩 내야 한답니다.》 김명배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것 같이 아무런 감정도 섞지 않았다.

장영덕의 긴 얼굴이 건뜻 들리였다.

《모내기를 끝냈으니 한해농사가 다 된것으로 생각하는건 아니요? 김매기를 해야 하겠는데 로력을 뽑아가면 어쩐다는거요? 그래 조합안에서는 의견을 곧잘 제기하는 동무가 말 한마디 없이 이런걸 받아온단 말이요?》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김명배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동무네 조합아이들은 읍학교에 다니지 않는가, 그래 아이들에게 새 교사를 지어주는게 남의 일인가? 또 길이 나빠 뜨락또르, 자동차들이 들추어대고 기관이 마모되고있는데 지금 길닦기를 안하면 언제 하겠는가, 청산리에서는 뜨락또르를 받지 않겠는가 하고 한바탕 욕을 해댑디다.》

장영덕은 말없이 담배곽에 손을 뻗치였다. 한대 피워문 다음 좀 누그러졌으나 저으기 비꼬인 어조로 말했다.

《동무가 나더러 늘 군에서 하는 지시에 맹종맹동한다고 불만이였는데 직접 당해보니 어떻소?》

김명배는 말이 없었다. 말하고싶지 않았다. 군위원장은 작업반에서 1명씩 뽑는데 무슨 자리가 난다고 우는 소리요? 하는 말도 했었다. 김명배는 대답질을 해야 하등의 소용이 없겠다는것을 명백히 깨달았던것이다.

《또 다른건 없소?》

《있습니다.》 여전히 김명배는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뭐요?》

《당중앙위원회 6월전원회의에서 축산업을 발전시킬데 대한 문제가 취급된 후 농업성에서 모든 밀, 보리밭들에 후작으로 강냉이를 집짐승사료로 심으라고 엄격히 지시를 하였는데 우리 조합에서는 밀, 보리를 가을한 밭들중에서 10반보나 강냉이가 아니라 팥을 심었다는것입니다. 이것이 불거져 되게 비판받았습니다. 전원회의정신과 성의 지시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거역한 엄중한 행위로 추궁받았습니다.》

장영덕은 졸지에 의기소침해졌다. 12작업반장 박진섭이와 17작업반장이 작업반에서 팥도 좀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졸랐었다. 그래 5반보씩 심으라고 승인했었다. 작업반장들의 의견을 참작한다고 한노릇이 정책에 어긋나는 행위로 규탄받았다. 그는 자기가 회의에 가지 않은것이 다행이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문제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으리라는것, 년중 내내 보고서에 큼직한 몫을 차지하고 언젠가는 자기가 비판토론을 하게 되리라는것을 예감하며 걱정에 잠기였다.

《그건 우리가 잘못했소.》

장영덕이 침울하게 말했다.

《당장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으라는겁니다.》 김명배가 말했다.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어야지. 그런 우환거리는 제때에 제거해버려야 해.》

김명배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잘못한것은 잘못한것이고 이왕 팥을 심었으면 그대로 두는것이 옳지 않습니까?》

장영덕이가 그를 쏘아보았다.

《동무는 그 장소에서 그런 말을 했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팥을 갈아엎을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팥 심은걸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지 않았다가 더 큰 화를 당하려고 그러는가? 우에서 나한테 따지지 동무한테 따질것 같소?》

김명배가 눈길을 떨구고 말했다.

《저는 군위원장이 화김에 그렇게 말했지 실지 갈아엎을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장난이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한건 비판받읍시다. 그러나 그걸 시정한다면서 이번에는 조합농사에 손해를 주고 조합원들에게 부담을 끼치는 그런 일은 하지 맙시다.》

장영덕이 치미는 화를 터치지 못해 안절부절 못했다.

《뭐 어쩐다구? 동무는 언제봐야 이 위원장을 가르치려드는데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오! 이제는 훈시질을 그만하오!》

《저는···》 김명배의 입술이 푸들푸들 떨었다.

《됐소. 더 듣지 않겠소. 그만 가보오.》

장영덕은 부위원장을 내쫓다싶이 하였다. 김명배는 쓰겁게 웃으며 나갔다.

장영덕은 즉시 12작업반으로 자전거를 달리였다. 박진섭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농립모를 벗어들고 인사를 했다.

《반장동무, 밀, 보리 후작으로 강냉이대신 팥을 심은거 있지?》

《예, 다섯반보됩니다.》

진섭은 큰 눈을 끔뻑거리며 어쩐 일일가 궁금해하였다.

《그걸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소, 당장.》

《아니, 그거야?···》

《군소리말고 시키는대로 하오. 그게 문제가 섰소.》

철색인 관리위원장의 길쑴한 얼굴에 엄숙한 빛이 돌았다. 문제가 섰다?··· 박진섭은 강냉이대신 팥을 심은것이 문제가 됐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꺽 판단했다. 기호때문에 혼이 난적이 있는 진섭은 관리위원장앞에서 이전보다 더 설설 기는척 하고있었으므로 군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예, 알았습니다. 당장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겠습니다.》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장영덕은 다시 17반으로 자전거를 달리였다. 논에서는 김매기가 한창인데 지금 거기에 관심할 형편이 못되였다.

17작업반장은 고수머리의 나이지숙한 사람인데 장영덕관리위원장이 팥 심은것을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으라고 말하자 히죽이 웃었다.

《왜 웃는거요?》 장영덕이 눈살을 찌프리였다.

《내 그게 말썽이 될줄 알았댔소.》

《그러면 왜 팥을 심겠다고 제기했소? 나는 교훈을 찾았소. 작업반장들의 요구대로 뭘 좀 했더니 보란 말이요. 내 실수를 했소. 다시는 그런 실수가 없을거요. 알았소? 강냉이를 심소, 당장.》

《예, 하지요.》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17작업반장은 지시를 집행하지 않았다.

그날로 10반보의 팥밭을 갈아엎고 강냉이를 심었다고 군에 보고한 장영덕은 후에야 17반장이 지시를 집행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고 천둥같이 노해서 소리치며 펄펄 뛰였지만 어쩌는수 없었다.

 

×

 

오늘은 조합의 휴식일이다. 리종수로인은 아침부터 밀린 집안일을 하려고 아들과 같이 마당에 나와서 서성거리였다. 그런데 강옥숙이 찾아왔다.

강옥숙은 얼굴이 말상이다. 강서읍에서 살았는데 자그마한 가게를 차려놓고 장사를 했었다. 하루는 미국놈비행기들이 날아와 맹폭격을 했는데 그만 그 가게도, 마침 녀인이 상품을 구하러 나간틈에 가게를 대신 보고있던 남편도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나고 갈가리 찢기고말았다. 강옥숙이는 장사를 계속 해보려고 아득바득 애썼으나 한번 기울어지고 만신창이 된 가세를 일으켜세울수 없어 암화마을에 집을 잡고 이사를 와서 농사를 지으며 장사도 좀 하다가 협동조합에 들었다.

《저, 아부님.》 강옥숙이 리종수로인에게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오늘 소달구지를 좀 쓸수 없을가요?》

《쓸 일이 있으면 쓰는거지. 한데 소달구지가 내게 아니고 작업반재산이니 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해. 아니, 그런데 임자는 왜 자기 작업반장한테 가서 제기하지 않나?》

《난 그 사람하고는 당초에 얼굴을 맞대기도 싫어요.》

옥숙이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큼직큼직한 이발을 드러내보이며 말했다. 금이발 해넣은것이 번쩍이였다.

2작업반장 최인서는 옥숙이를 싫어했다. 한것은 옥숙이가 쩍하면 작업에 나오지 않고 다리병신인 아들의 병을 고친다, 약 구하러 다닌다 하며 실은 보짐장사를 하러 다닌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작업에 나와서도 일을 성실히 하지 않았으며 작업반사람들과 다투기가 일쑤였다. 그렇지만 자기 집 터밭농사는 기름이 찰찰 돌게 알뜰히 하였다. 거름을 듬뿍 내고 김을 부지런히 매주어 강냉이, 감자, 당콩, 호박, 배추, 마늘 등이 싱싱하게 자라고있는 그 녀자의 집 터밭을 보며 작업반원들은 뒤에서 말들을 했다. 제집 터밭농사에는 땀을 들이나 조합농사에는 흥미없이 건들거리기때문에 최인서는 로력점수를 적게 매기였다. 그런다고 옥숙이는 누구는 얼만데 나는 왜 이렇게 적어? 하며 대들군 하였다. 결근을 자주 하여 분배몫이 적으니 생활이 늘 어려웠다. 장사를 가끔 해서 보충하는수밖에 없었다. 최인서는 옥숙이라 하면 아예 대상하려 하지 않았다. 성이 나거나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최인서는 기관총 쏘듯 하는 옥숙의 말을 당해내는 재주가 없어 그저 침울한 얼굴로 그 녀자의 행악질을 듣기만 할뿐이였다. 그러면 옥숙이는 또 반장이 자기를 업신여겨 응대도 하지 않는다고 야단쳤다.

이러한 사정을 리종수로인이 다 알고있었다.

《그래두 자기 작업반에 제기해야지.》 점잖게 타일렀다.

《소가 아까와서 그럽니까?》

옥숙이가 대뜸 걸고들었다.

《글쎄, 휴식일이니 소두 쉬여야지. 그렇다고 그러는건 아니야. 한데 소달구지는 어데 쓰려구 그러나?》

《땔나무를 해오려구 그래요. 혼자 사니 어쩌겠나요. 남자가 없으니 휴식일에도 놀지 못하고 남자가 할 일을 해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두 혼자 산다구 업신여기며 나를 몰아주기만 하지요.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게 폭격에 다리병신이 됐으니 그게 어떻게 커서 제 아버지 원쑤를 갚겠어요? 그런데두 이런 아픈 마음을 누가 알아주기나 해요!》

녀인은 눈물을 좔좔 쏟았다.

《이 사람, 됐네. 철진이 에미, 그만하오. 소달구지 빌리러 와서 무슨 그런 소리를 하오? 집에 남편이 없는 아낙네가 어찌 철진이 에미뿐이겠나? 전쟁통에 과부들이 좀 적게 생겼소?》

《그래두 아들까지 다리병신되지는 않았겠지요.》

옥숙이가 소달구지 빌리러 와서 이와같이 설분을 터뜨리는데는 원인이 있었다. 리종수로인네 터밭에서 김을 매고있는 초급당단체위원장 춘권의 떡판같은 뒤잔등과 굵은 목덜미를 보았던것이다. 그래 그가 들어줍시사 해서 우는 소리를 하는것이였다. 당초부터 팔자타령을 하며 울며불며 하려 한것이 아니였다.

리춘권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종수로인이 옥숙이에게 말했다.

《다 안다니까. 힘들게 사는걸 알아. 그러니까 오늘은 산에 나무하러 가지 말고 집에서 빨래랑 하오. 내가 우리 작업반장한테 가서 승인을 받구 나무를 해다 줄터이니 돌아가우.》

옥숙이는 속으로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펄쩍 뛰였다.

《아니, 아부님! 그렇게야 어떻게!··· 안돼요. 안됩니다.》

《아하, 나이든 사람의 말을 듣소. 어서 돌아가우, 어서!···》

옥숙이는 마지못해 가는척 하며 돌아섰다. 로인이 고마왔다. 그러나 (이 집은 남자로력이 둘씩이나 되지.)하고 남자손이 없는 집을 도와줄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강옥숙이가 가자 리춘권이 호미를 놓고 일어섰다.

《아부지, 정말 저 집 땔나무를 해줄래요?》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할가.》

《버릇이 됩니다. 교양을 주려면 원칙적으로 주어야지 동정이나 해가지군 안됩니다. 저 녀자는 장사를 해먹던 리해타산이 밝은 녀자예요.》

《나는 교양을 주려는게 아니다. 남자손이 없이 사는 아낙을 도와주어야지.》

리종수로인은 딱 잘라 말하고 외양간으로 갔다. 리춘권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 다시 호미를 쥐였다. 아버지는 이웃이 어려워하는것을 동정하여 자주 저렇게 도와주고있었다. 그러나 어찌겠는가, 아버지가 하시려는것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옥숙이도 사람이니 량심은 있을것이다.

리종수로인은 소달구지를 끌고 산으로 향했다. 강옥숙이 제 리속만 차리고 조합일과 집단을 위한 사업에는 손이 시려한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남편을 미국놈비행기의 폭격에 잃고 다리병신된 아들을 데리고 혼자 고생하는것은 사실이 아닌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소달구지에 가득히 넘쳐나게 싣고 바줄로 얽어맨 다음 되돌아섰을 무렵에는 점심시간이 다 되여오는지 배가 출출했다. 그래 풀을 실컷 뜯어먹어 원기왕성해진 황소를 재촉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동산마을을 지나고 언덕길에 올라섰다. 거기 언덕우 길옆에 강냉이밭이 경사면을 따라 펼쳐져있었다.

《와ㅡ 와ㅡ》 로인은 갑자기 황소를 멈춰세웠다.

언덕우의 강냉이밭 한귀때기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비물에 씻기여 뭉청 떨어져나간것을 보았던것이다. 며칠전에 비가 내렸는데 그 비물이 밭머리에 낸 도랑으로 세차게 흘러내리며 귀때기 한모퉁이를 깎아먹은것 같다. 댓대 잘되는 다 자란 강냉이가 뿌리를 허옇게 드러내고 자빠져있었다.

로인은 마치 제 살점이 떨어져나간것을 보는듯 한 심정이였다. 대통을 피워물고 쭈그리고앉아서 이 밭이 원래 윤칠이가 붙이던 땅인데 지금 12작업반에 속했다는것, 12반장이 박진섭이라는것, 이 건달군, 거짓말쟁이같은 반장이 이것을 보았겠지만 못 본척 하고 놔두고있다는것 등을 생각하느라니 부아가 치밀어 참을수가 없었다.

그래 부리나케 마을로 들어가 진섭이를 찾으니 려관으로 들어가는것을 보았다고 한다. 려관으로 찾아간 로인은 휴식일이여서 대낮부터 려관방에 들어가앉아 술을 퍼마시고있는 진섭이를 끌어내였다.

《령감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가보면 알게 아닌가.》

《하, 이런 참.》

작업반장이긴 해도 리종수로인앞에서는 어쩌지 못한다. 나이도 있고 농사경험도 많지만 모범농민이고 관리위원이며 무엇보다도 함부로 대하게 되지 않는 엄엄한 인품을 갖추고있다.

진섭이를 강냉이밭으로 끌고간 리종수로인은 밭귀때기가 떨어져나간것을 가리키며 한동안 훈시를 했다. 진섭이는 작업반일이 바빠 미처 돌보지 못했다고 루루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농민이라면 첫째로 땅을 아껴야 하는거야. 이게 개인밭이라면 이대루 놔뒀을가? 조합밭이라고 자네도 윤철이도 아파하지 않는것인가, 엉? 조합밭은 내 밭이 아닌가?》

리종수가 소리소리 쳤다.

《아부님, 내 그래서 그런것은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고정하십시오.》

말은 이렇게 했으나 그래도 자기가 명색이 반장인데 평농장원을 다루듯 한다고 진섭이는 속이 잔뜩 꼬여있었다.

리종수로인이 떠나간 후 진섭은 《늙어가니 느는것은 잔소리뿐이군. 아, 큰 작업반장이 손바닥만 한 밭귀때기 같은것에 매달려 신경쓸새 있는가 말이야.》하고 하늘에 대고 화풀이를 했다. 다시 술을 마저 마시려고 려관에 가서 리종수로인이 쓸데없이 남의 작업반일에 참견질을 한다, 어쩐다 하며 소문을 퍼뜨리였다.

리종수로인은 강옥숙이네 집에 나무단들을 다 부리워주고 녀인이 점심을 잡숫고 가라며 붙잡는것을 마다하고 집으로 갔다.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춘권이가 가책에 잠겨 이렇게 인사를 했다.

이튿날 리종수로인은 일을 끝낸 후 관리위원장을 찾아갔다. 논김을 매다가 곧장 가는 길이여서 넙적고무신을 신은 발이 젖어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며 농립모를 벗는데 빡빡 깎은 둥근머리가 드러나며 전등불에 번들거리였다.

(이 령감이 또 무슨 일인가?)

장영덕은 진섭이한테서 들은 말도 있는지라 시끄러워하였다.

《내가 관리위원장과 좀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 방해되지 않겠소?》

군인민위원회에 낼 보고자료를 쓰고있던 장영덕은 겉으로는 좋게 대했다.

《괜찮습니다. 거기 좀 앉아서 잠간 기다리십시오. 다 되여갑니다.》

그는 부지런히 쓰며 대답했다.

《예, 기다리지요.》

리종수는 한쪽에 가앉아서 농립모로 활활 부채질을 했다.

이윽고 장영덕이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령감님, 가까이 오시우.》

리종수는 앉은걸음으로 그의 책상모서리에 다가가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담배 한대 태워도 되갔소?》

《어서 그러시우. 자, 여기 있습니다.》

《아니, 나는 잎담배가 좋소. 대통에 담아 피우는게 좋아.》

하며 로인은 작업복웃도리 주머니에서 담배쌈지와 대통을 꺼내였다. 그가 부시럭대는 사이에 장영덕이 몇자 더 썼다.

《그건 무슨 문서가 그리 많소?》

책상우에 널린 문서들을 건너다보며 로인이 물었다.

《글쎄말이요. 정신을 못 차리겠다니까요. 밀보리예상수확고, 김매기실적통계 뭐 그러루한것들인데 지도원들이나 부위원장이 만들었다는게 이 꼴이요. 그래 내가 손을 대는게지요.》

그는 문서를 만드는데서는 솜씨가 있었다. 군인민위원장이 여러번 칭찬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리종수로인은 넙적한 손바닥으로 빡빡 깎은 머리를 쓸어만지였다.

《듣자니 군에서 길닦기하는데 하구 학교 짓는데 로력을 내라구 한다면서요?》

《예. 지시가 와서 작업반들에 떨구었습니다.》

《그런데···》 로인이 갑자르다가 말했다. 《김매기가 지금 늦어지고있지 않소. 모내기도 잘해야 하지만 김매기도 잘해야지요. 그런데 금년에는 모내기를 5월말에 끝냈다고 보고는 했지만 실지는 끝내지 못했지요. 이런 형편에서 뒤진 모내기도 끝낼래 김매기도 할래 여간 바쁘지 않는데, 축구를 한다구 젊은이들이 떠다녔지, 또 군에서 로력을 내라고 하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노릇이요? 내 답답해서 찾아왔소.》

그가 뜨적뜨적 하는 말들이 마디마디가 장영덕의 신경을 압박했다. 장영덕은 얼굴이 검붉어졌다.

《그러니 낸들 어쩌라는거요? 령감님이 내 자리에 한번 앉아보지 않겠소?》

관리위원장이 화를 내는 바람에 로인은 아연해졌다. 로인은 자기가 정당한 이야기를 하고있으며 관리위원장도 뼈아프게 받아들이리라고 믿고있었던것이다.

《의견도 경우를 봐서 제기해야 합니다. 그리구 령감님, 조합의 결함을 자꾸 들쑤시여서 리익되는게 뭐 있겠소? 모내기를 기본적으로 끝냈다고 했지 말끔히 끝냈다고 하지는 않았지요. 그건 해마다 그렇게 끝냈다고 보고를 하는건데 농사일에 왜 에누리가 없겠습니까?》

리종수로인은 혀가 굳어져서 그저 장영덕을 놀랍게 쳐다보기만 하였다.

《령감님이야 리해력도 있는데 최인서처럼 막대기같이 뻣뻣하게 나오면 안되지요. 그러지 않아두 령감님이 올해 들어 이 일, 저 일에 잘 삐치고 잔소리가 늘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있어요.》

로인은 혀가 여전히 풀리지 않아 장영덕의 얼굴에서 놀라운 눈길을 떼지 못한채 굳어져있었다.

《잔소리를 하지 말라는것은 아닙니다. 다 경우를 봐가며 해야지요. 누가 잔소리를 좋아하겠습니까? 하나 물읍시다. 어제 휴식일에 어데 갔다 오셨습니까?》

리종수의 눈이 안개가 낀듯 뽀얗게 흐리였다.

《산에 땔나무하러 갔댔쉐다.》

《오시다가 12작업반장 박진섭이를 만났습니까? 거기 비탈 진곳에 있는 강냉이밭으루 진섭이를 끌구가셨다지요?》

《글쎄 끌구갔다구두 할수 있겠지. 싫어했으니.》 리종수는 차츰 혀가 풀리였다. 《강냉이밭귀때기가 비물에 패이구 강냉이대 너덧이 자빠졌길래 그 사람을 찾아가지고 가서 보이구 말을 좀 했지요. 그 밭이 협동화 이전에 윤칠이가 가지고있던 밭이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다루지 않았소. 땅 한뙈기 없어 지주놈밑에서 고생하던 내나 윤칠이나 진섭이가 토지를 분여받고 얼마나 기뻐했구 땅을 제 살처럼 애끼였소? 한데 그게 조합공동의 땅이 되니 그 모양으루 내팽개치고있소!》

로인의 눈에 눈물이 핑 고이였다. 그는 목이 콱 쉬여 더 말을 못했다.

《령감님말씀이 옳습니다.》

장영덕은 눈길을 떨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는 로인앞에서 진섭이도 욕을 하면서 그러나 리해할것은 리해해야지 붙잡아놓고 잔소리를 하니까 진섭이가 싫어하더라고 로인을 설복하려 했었다. 그러나 로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자 속이 뭉클해져 로인을 위안하는데로 기울어졌던것이다.

리종수가 목 쉰 소리로 말했다.

《협동조합이 조직된 후에 제가 수상님을 만나봤을적에 수상님께서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소. 협동조합이 되였으니 개인농때 제집농사를 짓듯 조합농사를 잘 짓는것이 주인구실을 하는게라구 말씀하셨소. 그런데 지금 누가 주인노릇을 하오? 주인노릇을 할려구 해두 그게 어디 되오?》

《예. 령감님말씀이 하나 그른데 없습니다.》 장영덕은 바빠하며 서둘러댔다. 《령감님이 왜 자꾸 잔소리를 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는 리종수가 12반의 팥밭을 갈아엎은것을 또 끄집어낼가봐 겁이 났다. 그러나 로인은 더 다른 말이 없었다.

다행스러웠다. 리종수로인을 바래워주고 자기 자리에 가앉은 장영덕은 어쩐지 불안스러웠다. 리종수로인 같은 원칙밖에 모르는 늙은이가 조합일을 자꾸 들고다니면 앞으로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되겠는지 알수 없지 않는가.···

저녁식사를 한 후 리종수로인은 대통에 잎담배를 쑤셔담고 불을 달아 입에 물고서 퇴마루에 나와앉았다. 속이 편치 않았다. 농사가 걱정되였고 관리위원장이나 박진섭이 걱정되였다.

초봄에 만나뵈온 수령님의 모습이 눈에 선해지며 더욱 괴로운 심정에 젖어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나라의 농사를 걱정하고계시는데 여기 우리 조합과 우리 군에서는 왜 그 뜻을 따르지 못하는것일가. 김매기가 모내기 못지 않게 한해농사에서는 중요한데 5월말까지 모내기를 끝내자고 몰아치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는가. 박진섭작업반의 밭귀때기 떨어져나간 그 둔덕우의 강냉이밭은 고랑에 범이 새끼치게 풀이 자라고있었다. 한번도 호미질을 한것 같지 않다. 진섭이는 로력이 돌아가지 않아 김도 제대로 못 맸고 밭귀때기 떨어져나간것도 메우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사정이 그럴수 있다. 그런데 군인민위원회에서는 읍에서 하는 공사에 로력을 내라고 한다··· 관리위원장이 바쁠것이다. 의견을 내고 시키는 사람은 많아도 집행하는 사람은 관리위원장이다. 그러니 나도 말로만 의견을 낼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보탬을 주어야 할것이다.

검푸른 하늘 외양간지붕너머로 둥실하게 떠있는 둥근달을 보며 로인은 한가지 결심을 내렸다. 그는 담배를 다 피우고 움쭉 일어서서 창고로 가서 삽을 찾아들었다.

《어딜 가실려우?》 오씨가 물었다.

《내 잠간 갔다 올데가 있어.》

《헌데 삽은 왜 들구가시우?》

《쓸데가 있어서.》

삽짝문을 나서니 달빛이 쏟아져내리는 행길이 환하게 보였다.

얼마후 귀때기가 떨어져나간 둔덕진 강냉이밭에서 삽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이튿날 이른아침 장영덕은 자전거를 타고 동산방향으로 나갔다. 그는 이렇게 이른아침에 작업반들에 나가 작업반장들을 만나기도 하고 작업반형편을 돌아보기도 했다.

동산 12반 못 미쳐있는 언덕밭을 지나가던 그는 밭귀때기를 깨끗이 손질한 흔적을 보았다. 돌과 떼를 날라다 쌓고 흙을 퍼올리고 도랑을 잘 째놓았다. 갓 삽질을 한 흔적을 보아 리종수령감이 말하던 그 밭귀때기가 옳은것 같다.

(진섭이가 령감한테 의견이 잔뜩 있어하더니 그래도 령감의 비판을 접수하고 해놓았군. 일은 제끼는 사람이야.)

이렇게 속으로 진섭을 칭찬하며 동산마을로 내려가서 그를 만났다. 진섭이는 집마당에서 세면을 하고있었다.

《관리위원장동지, 일찌기 내려오셨습니다.》

《12작업반 강냉이밭을 돌아보니 김이 범이 새끼치게 자랐더구만. 논에만 매달려있지 말고 밭에도 관심을 돌려야 하겠소.》

《예. 밭김도 말끔히 매겠습니다.》

진섭이 시원스럽게 대답하였다.

《언덕밭의 밭귀때기는 어느새 수리했더구만.》

《예?》

《아, 종수령감한테 말 들었던 강냉이밭귀때기말이야. 다 제대루 했더구만.》

《예, 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수 없었으나 진섭은 칭찬을 받는것이여서 덮어놓고 예예 하였다. 그러니까 누가 밤새에?··· 하지만 관리위원장이 만족해하니 모른척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