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2

 

2

 

퇴비생산과 반출문제를 가지고 따지고 대답하고 추궁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까맣게 잊고있던 석우마을의 작업반장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모두가 문쪽을 바라보았고 장내가 조용해졌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중 나이많은 작업반장이 일행을 대표하여 사죄하였다.

《동무네는 뭐요?》

장영덕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었다.

《련락을 받은 통계원이 그만 잊고있다가 저녁밥을 먹고 쉬려는데 생각이 나서 허겁지겁 달려와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나이든 그 반장이 늦어진 경위를 설명하였다.

《저녁을 먹고왔단 말이지?》

《예.》

좌중에서 더러 킥킥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에 지치고 배고픈데다가 추운데서 더운데 들어와 장시간 앉아있느라니 그 소란스러운 속에서도 끄덕끄덕 졸던 일부 작업반장들은 새롭게 조성된 정황에 흥미를 느끼고 눈들이 맑아졌다.

《그럼 좋소. 회의가 끝난 다음 동무들은 남아서 앞에서 론의된 문제들을 따로 취급합시다. 그렇게 하는것이 공정하지요?》

《···》 작업반장들은 침묵하였다.

도대체 오늘 왜 모였는가? 그러니까 본문제는 아직 시작도 못했단 말인가? 그만 지쳐버린 반장들은 어서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잠자코 있기로 결심한것 같았다.

모임은 길었다. 장영덕위원장은 늘 잔소리하는 당면한 영농준비와 관련한것들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랭상모판문짝짜기, 랭상모판자리를 양지쪽에 잡고 말뚝을 박고 방풍나래를 치는 작업, 씨뿌리기준비 등···

그다음 지금 진행중인 민주선전실과 탁아소, 살림집건설을 영농기전으로 다그쳐 끝내기 위한 조직사업이 있었다. 건설반이 맡아서 하고있는 이 건설을 군에서도 지원하고있지만 우리 조합이 주인이 되여 하여야 할것이다. 그러자면 각 작업반에서 여기에 로력을 보충해주어야 할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퇴비생산과 반출 등 당면한 영농준비사업이 늦어지고있는 사정을 더 어렵게 하는 모순되는 조치였다. 그러나 벌려놓은 건설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무리하지 못한채 씨뿌리기에 들어갈수는 없다. 완결은 못한다 해도 기본적으로는 끝내고 뒤거두매는 건설반이 계속하면 될것이다. 로력을 얼마씩 낼수 있겠는가?

《15작업반장동무.》

장영덕은 끄떡끄떡 졸고있는 15작업반장을 엄한 눈으로 보며 지명했다.

옆에서 다른 반장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15작업반장은 흠칫 놀라며 머리를 들었다.

《졸고있구만. 내 말을 들었소?》

《예, 다 들었습니다.》

《그럼 대답해보오.》

《예, 랭상모판문짝은 다 짜놓았는데 기름종이가 부족합니다.》

《하ㅡ하ㅡ》

반장들이 왕청같은 대답을 하는 15반장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데 본인은 영문을 몰라 좌우를 두리번거리였다. 그는 랭상모판문짝짜는 문제를 언급하는데까지 듣고는 앉아서 내처 잔것 같았다.

장영덕은 얼굴이 시퍼래져서 그를 쏘아보았다.

리종수로인은 농산반에서 로력이 빠져나가는것이 지금 제일 문제거리이며 이것을 풀어야 영농준비를 제대로 할수 있다는 안타까운 자기 생각을 일어서서 말할가 하다가 주저하였는데 관리위원장이 건설을 마무리하기 위해 또 로력을 뽑아야 하겠다는 조치를 취하자 아연해졌다. 동시에 그는 아까 자기가 일어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히 입아프게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에는 개인의 의지로써는 어쩔수 없는 생활의 흐름이 작용하고있다. 조합이 커지고 힘이 막강해지면서 관개공사도 하고 새땅도 얻어내고 토지정리도 하며 문명한 생활을 하기 위해 살림집도 탁아소도 지어야 하겠다는 욕망이 밑에서부터 우에까지 강하게 작용했으며 그것이 농업성의 의도와 맞아떨어졌고 따라서 성에서도 협동조합들에서도 그러한 계획들을 세웠다. 조합원들도 일군들도 농촌의 광명한 앞날을 내다보며 생활을 새롭게 설계하였다. 그렇게 하여 벌려놓은 일들이 로력부족, 로력랑비라는 첨예한 문제를 산생시키였다. 이제 와서는 여기서 헤여나기 힘들게 되였다.

리종수로인은 론리적으로가 아니라 육감으로 그것을 느끼고있었다. 작업반장들이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서 다만 회의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것이 그때문일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과연 입을 다물고 외면하는것이 당원의 량심으로 허용할 일이겠는가.···

리종수로인은 등골로 땀이 흐르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자체모순의 심리에 빠져있음을 인정하였다.

회의가 끝나고 흩어져가기 시작하였다. 석우의 작업반장들만 남았다. 그리고 가슴에 돌덩이가 매달린것 같아 무거운 심정에 잠긴 리종수로인이 그냥 남아있었다.

《령감님, 무슨 용건이 있습니까?》

관리위원장이 이렇게 물었을 때에야 그는 힘겨웁게 일어서서 천천히 신을 신고 사무실을 나섰다. 천정에 전구가 매달려 비치고있는 어둑시근한 복도를 걸어 관리위원회를 나섰다. 달이 아직 뜨지 않은 캄캄한 그믐밤이였다. 차거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으나 로인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 찬바람은 화끈한 얼굴을 시원하게 식혀주고있었다.

작업반장들은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듯 한 홀가분한 기분이였는지 웃고 떠들며 끼리끼리 어둠속으로 흩어져갔다.

누군가 관리위원회사무실앞 들메나무밑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종수로인이 무심히 지나치는데 《후ㅡ》하는 긴숨을 담배연기와 함께 내뿜던 그 사람이 《아부님.》하고 조용히 불렀다. 관리부위원장 김명배였다.

《부위원장인가?》

종수로인은 《위원장인가.》하고 말할번 했다. 암화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을 한 김명배를 늘 위원장이라 부르는데 습관되여있었던것이다. 김명배는 고향이 승호군 리현리(당시)인데 해방전부터 청산리에 와서 살고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에 나갔고 리종수가 암화마을에서 협동조합을 조직하던 시기에 제대되여왔다.

《마침 잘 왔네. 관리위원장감이 없어서 그러댔는데!》하고 그날 리종수는 그를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위원장이야 조합을 조직한 아부님이 해야지요.》

《아닐세. 나는 위원장감이 못돼. 농사는 지을줄 알아두 지도사업은 못해. 자네는 전선에서 단련된 군관이니 조합을 잘 이끌어갈거야.》

이렇게 돼서 김명배는 암화협동조합의 관리위원장으로 선거되여 작년까지 일을 잘했다. 작년에는 농사를 잘 지어 조합을 찾아오신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다. 수령님께서는 마당에 멍석을 내다 깔게 하시고 김명배, 리종수, 문영숙 등 조합원들과 리인민위원장, 리당위원장과 함께 그우에 앉으시여 그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그날 김명배와 리종수로인은 조합을 갓 조직하던 전쟁직후의 나날들을 추억하며 얼마나 감격에 겨워했던가! 두사람은 같이 고난을 이겨내며 협동조합을 발전시켜오는 과정에 서로 신뢰하게 되였으며 인연이 깊이 맺아졌다.···

《예, 접니다.》 김명배가 대답했다.

《왜 그러고 서있나?》

김명배는 다시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마시고는 꽁초를 발밑에 던지고 신으로 비벼껐다. 로인앞에서 례절을 차리는것이였다. 보매 그는 몹시 흥분되여있는것 같았다.

《아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대신에 이렇게 불쑥 물었다. 《오늘회의에 의견이 없으십니까?》

그의 입에서는 더운 김과 함께 방금 들이킨 담배연기가 쏟아져나왔다. 관리위원장의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있는 위원장사무실에서 내비치는 불빛에 김명배의 번들거리는 선이 굵은 얼굴과 열에 뜬것처럼 번뜩이는 눈이 어슴푸레하게 보이였다.

리종수로인은 자기도 김명배의 흥분에 끌려드는 심정이였으나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 사람이 왜 그런것을 묻는지 알수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다.

《의견이 있으실테지요. 왜 없겠습니까? 오늘회의가 우리 조합관리위원회사업실태를 그대로 반영하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같아서는 퇴비장만을 계획대로 하기는커녕 씨뿌리기도 제대로 할것 같지 못합니다. 관리부위원장이 이런 소리를 하는게 우습고 어처구니가 없겠지요? 아부님, 내가 오죽하면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또 아부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부님은 왜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았습니까? 왜 잠자코 계셨습니까?》

리종수는 무딘 나무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는것 같았다. 김명배의 추궁은 그의 아픈 곳을 면바로 타격하는것과 같은것이였다. 그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고 자신이 어둠속으로 빠져드는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관리부위원장인 너는 왜 가만있었느냐고 저를 추궁하실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관리위원장과 함께 관리위원회를 이끄는 일군으로서 회의에서 의견을 내놓는것은 자기를 변명하고 관리위원장에게 책임을 미는 행동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중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부님만은 의견을 내서 관리위원회사업을 비판하실줄 알았습니다. 기대했습니다. 오늘모임에 관리위원들을 참가시키자고 한것은 나의 제기였습니다. 나는 아부님의 의견을 듣고싶었던것입니다. 나는 관리위원장과 개별적으로 토론을 많이 합니다. 농사를 잘 모르는 관리위원장이기때문에 힘껏 도와주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위원장이지요. 결심채택의 권한은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또 나의 몇마디 의견보다 아부님 같은분들의 한마디 의견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아부님은 암화협동조합시기 좋은 의견을 내놓아 저를 많이 도와준 모범농민이 아닙니까. 오늘의 견지에서 청산협동조합이 안고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보지 못할리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관리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을 도와주려 하지 않습니까?》

리종수는 《누가 관리위원장인가 하는데 달렸지.》하고 말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로인은 김명배가 단지 자기가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흥분해있지 않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김명배는 조합일이 제대로 풀려나가지 못하고있는것이 안타까와 그러는것이였다. 회의 전과정에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그도 리종수로인처럼 고심을 겪고있었을것이다. 그는 관리위원장과 토론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결심채택은 관리위원장이 한다고 했다. 여기에 그의 고민이 있는것이 아닌가? 과연 관리위원장의 완고한 고집을 꺾을수 있을가? 관리위원장은 우의 지시에 준하고 부위원장은 아래의 실정을 내대고 조정하려 하지만 먹어들어가지 않을것이다.

리종수령감이 의견을 냈더라면 설사 그것이 관철되지 않는다 해도 그의 가슴이 좀 시원해졌을것이다. 그리고 농민들의 의견을 참작하도록 관리위원장에게 권고할수 있을것이다. 어떻게 하면 관리위원회사업이 즉 조합일이 바로잡혀나가겠는가 하는 모대김이 리종수로인이 입을 다물고있은데 대한 노여움으로 번져졌을것이다.

리종수로인은 관리위원장방에서 회의할 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로인의 침묵이 김명배를 좀 진정시킨듯싶었다.

《아부님, 안됐습니다. 내가 좀 흥분한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사죄했다.

《집으로 가지 않겠나?》

로인이 침울하게 말했다.

《먼저 가보십시오. 관리위원장을 혼자 두고 나만 퇴근하겠습니까?》

리종수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둠속을 더듬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식구들이 기다리고있었다. 식구래야 로인과 로친, 맏아들 내외와 손자가 전부였다. 둘째아들은 읍에 나가살고 셋째아들은 전쟁시기 전선에서 희생되였다. 외동딸은 지금 뜨락또르운전수양성소에 가있었다.

로인은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이 지금 살고있는 집은 세칸짜리인데 아래방에서 로친과 춘심이가 살고 웃방을 맏아들 춘권이내외가 쓰고 맨 웃방에 로인이 거접하고있었다. 때식은 아래방에서 모두 모여 하고 잠들기 전까지 집안이야기와 조합이야기를 하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면서 손자와도 즐기는 방 역시 아래칸이였다.

로인이 묵묵히 식사를 하는 사이에 식구들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는데 어째 오늘 밤은 로인의 표정이 무거운것 같아서 방안분위기가 밝지 못했다.

로인은 김명배부위원장이 하던 말이 그냥 귀에서 윙윙거리였다. 안타까와하던 그의 얼굴이 눈에 삼삼했다. 그가 옳게 말했다. 잔뜩 벌려놓은 일들을 질머지고 쩔쩔매는 관리위원장을 도와주자면 창발적인 의견을 내야 하는것이다. 설사 그가 고집을 부린다 해도 꾸준히 설복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로인도 사실 걸리고있는 문제들을 시원하게 풀어낼 무슨 뾰족한 안을 가지고있는것이 아니여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할 말이 전혀 없는것도 아니였다. 가령 기계화반에 청장년로력이 가득 들어가있는데 대해 불만이 컸다. 그렇다면 하나라도 건설적인 의견을 내야 했을것이다. 조합이 커져서 그야말로 할 일이 많아졌으니 관리위원회 일군들만으로 원만히 운영해갈수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관리위원장은 남의 말은 쇠통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로인은 울컥 치미는 울화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기계화반문제가 떠오르자 다시 차두철이 생각났다. 번듯하게 잘 생기고 인사례절이 밝고 사람을 따른다. 하지만 젊은 놈이 소달구지만 몰고다니며 논판에 들어가기는 싫어한다고 한다. 이런 놈이니 뚝힘을 쓰지 않고 허리도 굽히지 않는 기계화반에 들어가면 건들거리며 허송세월하기가 십상일것이다.

몸집이 큰 춘권이가 로인이 식사를 하는데 방해를 놀고있는 어린 아이를 당겨안고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회의를 했습니까?》

《늘쌍 하는 회의지.》 이렇게 대답하고 로인은 아들을 건너다보았다. 《기양관개공사장에 가있는 취득에 사는 차두철이가 관리위원회에 나타났더구나. 무슨 일때문에 왔는지 아애비는 모르느냐?》

《글쎄 만나보지를 못해서···》

《공사장에서 돌아오면 기계화반에 들어가기로 약조가 되였다지?》

《예.》

식구들은 로인이 차두철의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긴장해졌다. 한것은 이 집 사람들이 다 두철이를 좋게 보는데 령감의 태도만은 알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로친은 춘심이의 배필로 두철이를 점찍어놓고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령감은 두철이에 대해 쓰다달다 일체 평가가 없었다.

로인이 말했다.

《만일 두철이가 건달군들이 모여있는 기계화반에 들어가면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하겠다.》

로인이 선포하자 모두 얼굴이 굳어졌다.

《글쎄 생각들을 해봐라.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이냐? 수상님께서 우리가 원동마을에 살 때 친히 우리 집을 찾아주셨고 그후에도 나를 만나주실적마다 회억하시는 농민가문이 아니냐? 이런 집안에 아무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로인은 춘심이와 두철의 남다른 관계를 념두에 두었으며 로친이 두철이를 사위로 맞아들였으면 하는 꿈을 안고있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에 미리 주의를 주는것이였다.

무게있는 로인의 목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찡ㅡ 울리였다. 그들은 이루 말할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에 잠기였다.

이윽하여 맏아들 춘권이가 얼굴이 불깃해져가지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집안은 자랑스러운 집안입니다. 그런데 기계화반사람들이 다 건달군이겠습니까? 또 거기 들어가는것이 다 나쁜 처사겠습니까?》

로인은 수저를 내려놓고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였다. 며느리가 얼른 수건을 드리고 쪽상을 내갔다.

로인은 수건으로 입언저리를 씻고 말했다.

《내가 좀 과장해서 말했다. 다 건달군이야 아니지. 진짜기술자들이 적지 않아. 하지만 거기에 건달군들이 많이 쑤시고들어간건 사실이야. 나는 두철이가 거기 들어가 빈둥거릴가봐 그러는게다. 작고한 그 애 아버지는 직심한 농사군이였다. 두철이두 땅에 발을 착실하게 붙여야지 그렇지 않다간 건달군이 될수 있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거야.》

로인의 속깊은 말에 춘권이는 더 다른 대답을 못했다. 그런데 로친 오씨가 한마디 했다.

《기계화반에 들어간다구 건달군이 될가?》

《편역을 들어두 원칙이 있어야지. 잘못한건 비판도 하면서. 두철이를 생각하겠거든 농산반에서 일하도록 해야 해! 손에 흙을 묻히게 해야 해!》하고 로인은 자기 방으로 올라가려고 움쭉 일어섰다.

 

×

 

리씨일가는 오랜 농민가문이였다. 그들은 룡강에서 300여년을 대를 물려오며 살았다. 그러다가 20세기초에 리종수의 아버지 리준형의 대에 이르러 룡강을 떠나 청산리 원동으로 이주해와서 오늘까지 반세기를 내려오고있다. 리준형은 청산리에 뿌리내린 리씨일가의 1대종손이 되였다. 그때 리종수는 겨우 아홉살이였다.

그들의 12대선조는 임진왜란시기 김응서장군을 따라 싸움에 나섰던 장수였다. 그 장수가 입었던 투구와 갑옷, 사용했던 장검이 수백년세월을 대대로 가보로 전해져내려오고있었다. 그런데 조선이 일본에 강점된 이후 반일애국적인 가문이라 하여 놈들의 박해가 심해 리준형은 룡강에서 더 살수가 없었던것이다. 그가 청산리를 자기네 일가가 새로 뿌리내릴 거처지로 선정한것은 원동마을 뒤쪽으로 황산이라고 하는 큰 왕릉을 방불케 하는 산이 솟아있는것을 보았기때문이였다. 리준형이 원동마을에 이사하여 집을 짓고 가족을 데려다 살림을 시작하면서 맨처음 한 일이 룡강에 묻혀있는 조상들의 뼈를 전부 파다가 황산에 옮겨묻은 일이였다. 그는 커다란 나무함을 짜가지고 소달구지에 싣고가서 친척들과 함께 조상들의 뼈들을 파내여 한구씩 참지에 싸고 명주천으로 감아 그 나무함안에 차곡차곡 넣어가지고 왔다. 그리고 황산에 이르러 넓은 구뎅이를 파고 이번에는 반대로 차곡차곡 내려놓고 묻었다. 그래서 굉장히 큰 무덤이 생겼다. 황산은 이렇게 리씨일가의 선산이 되였는데 새로 이사온 타관사람이 그 산을 점유한데 대해 관청에서도 마을에서도 어쩌지 못했다. 한것은 리준형이 먼 조상인 장수의 골격을 닮아 체격이 장대하고 구레나룻이 하관을 감싼 얼굴에서 눈찌가 심상치 않게 번뜩이고 목소리가 우렁차서 범접하기가 두려웠고 또 집안에 걸어놓은 장수의 장검과 투구, 갑옷이 위세를 돋구었기때문이였다. 가문의 종손인 리준형이 원동에 이사옴으로 하여 종가가 청산리로 옮겨졌다.

청산이 마주보이는 탁고개아래의 원동마을에 이사한 후 리준형이 다음으로 한 일은 농사지을 소작지를 얻는것이였다. 그는 꿩두마리를 사가지고 촌장과 같이 지주 양봉문이를 찾아갔다. 양지주는 두말없이 《안된다.》하고 소작주기를 거절했다. 성미가 불같으며 왜놈과 싸운 장수의 후손이라는 명예를 깊이 간직하고있는 리준형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길게 째진 눈에서 불이 일고 구레나룻이 시꺼먼 네모진 억센 턱이 흔들렸다. 그는 가지고왔던 꿩 두마리를 지주집 뜨락에 활 내던지고 돌아섰다. 촌장이 그러지 말고 다시 청원해야 한다고 뒤쫓아왔지만 리준형이는 큰걸음을 성큼성큼 내짚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땅 없는 놈이 별수 있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화가 저으기 사그라졌을 때 안해가 간곡히 타이르고 촌장도 다시 가보자고 하여 하는수없이 굴욕적인 걸음을 하게 되였다. 이번에는 혼자서 갔다.

《너는 누구냐?》지주 양가가 뜨락에 우뚝 서있는 리준형이를 처음 보는것처럼 물었다.

그의 길게 째진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하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원동 사는 리준형이올시다.》

《무슨 일로 왔느냐?》

《전번에 말했는데요.》 그는 머리를 쳐들고 뻣뻣한 자세로 대답했다.

《나는 모르겠다.》

《지주어른의 땅을 좀 얻어부치자는거웨다.》

《내 땅을 얻어부치겠다?》

《예.》

《네게 줄 땅이 없다.》

리준형의 얼굴에 돋아난 무수한 털들이 전부 일어섰다. 그는 분노에 떨며 모욕을 참지 못해 양가를 쳐다보았다.

《네놈이 나를 마주보면 어쩔테냐?》

《지주어른은 속통이 좁소이다. 싫으면 그만두시오. 다른 지주어른한테 부탁하리다.》

하고 리준형은 픽 돌아서서 씨엉씨엉 걸아나갔다.

양가는 대문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준형이를 살펴보았다. 배짱이 보통아닌 놈이다. 무엇보다도 장대한 체구가 마음에 들었다. 촌장을 통해 이미 힘이 장사같다는것과 일에 직심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저 털보는 황소한가지루 일을 할게다. 아니, 다른 지주한테 줄수 없어.) 이렇게 타산한 양가는 촌장을 통해 이번에는 자기쪽에서 그를 불러다 소작계약을 맺았다. 교활한 양가는 장마만 지면 범람하는 봉상강류역의 논을 빌려주었다. 이 고장에서는 장마철에 논이 물바다가 되는 일이 드문했고 토지도 해하성 충적토로서 땅속에 공기류통이 잘되지 않아 벼의 생육에 불리했다. 양가는 이런 논을 리준형이에게 빌려주고 소작료는 다른 토지에서와 같이 그리고 고정하여 물게 했다.

리준형이와 그의 안해는 뒤산에 가서 가둑나무를 베여다 논에 넣었고 두엄을 져날라 땅을 걸구었으며 씨뿌리고 김매고 또 수확하고 탈곡하느라 1년내내 허리펼새 없이 일했다. 아이들이 크자 그들도 농사에 협력했다. 했건만 거의 매해 가을이면 지주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낟알을 걷어갔고 더우기는 흉년이 들거나 봉상강에 침수되여 수확을 적게 거두거나 거의 거두지 못해도 계약대로 낟알을 물어야 했기에 지주에게 진 빚이 나날이 늘어갔다. 그래서 해마다 뼈빠지게 일했건만 좀처럼 가난을 모면할수가 없었다.《이게 다 제땅이 없는탓이다.》 수염이 탐스럽게 자라 하관을 뒤덮고 목부위에까지 드리운 리준형이 탄식을 했다. 《제땅이 없으니 아무리 소처럼 일해야 가난을 면할수 없구나. 망할놈의 세상.》

그가 원한에 사무쳐 저주를 퍼부은 망할놈의 세상은 과연 망하고말았다. 왜놈들이 망했고 지주들의 땅이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무상분배되였다.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자 원동사람들은 리준형로인을 위시하여 모두 떨쳐나 꽹과리와 징을 울리고 북을 치고 장새납을 불며 《김일성장군 만세!》, 《토지개혁법령 만세!》라고 쓴 프랑카드와 기발들을 들고 동네를 돌았으며 탁고개에까지 올라가 평양을 향해 《만세!》를 목이 쉬도록 웨쳤다. 가난한 농사군들에게 땅이 차례지다니! 아, 얼마나 가지고싶었던 농토냐! 얼마나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짓고싶어했더냐! 리준형은 분여받은 땅을 밟아보고 손으로 흙을 부스러뜨려보고 냄새를 맡아보면서 들에서 들어올줄 몰랐다.

달이 밝은 어느날 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서 리종수는 두루 생각하다가 분여받은 논으로 나갔다. 아니나다를가 거기 논뚝에 아버지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고요한 들에 달빛만 차고 넘치는데 몽롱한 빛발속에 앉아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있는것일가?

《아버지.》 가까이 다가간 리종수가 조용히 불렀다.

아버지가 머리를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열에 뜬것처럼 번들거리는 눈을 볼수 있었다. 그 어떤 무한한 희열이 넘친듯 해보이기도 했고 절절한 갈망이 비낀듯 해보이기도 하였다.

《맏이냐?》 아버지는 따뜻하게 말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좀 떨리는것 같았다.

《여기 앉아서 무얼 하십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종수가 물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땅이 하는 말을 듣고있다.》

종수는 저으기 놀랐다. 지어 아버지의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았는가 생각되기도 했다.

《땅이 하는 말을요?》

《그래! 너는 아직 땅이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지?》

아들은 심중해졌다.

《예.》

《아직 멀었지. 두엄을 더 져날라야 하고 김을 더 매야 한다.》

아버지의 말은 비단필이 흘러내리는듯 한 달빛속의 전야에서 엄숙하고 신비하게 들려왔다. 종수는 아버지가 정신이 혼미해진것도 아니며 더우기는 롱담을 하고있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로인은 저으기 흥분되여있었다. 가슴에 드리운 수염이 부들부들 떨었다.

종수가 옆에 앉으며 눈길을 떨구고 정중하게 물었다.

《아버지, 땅이 뭐라고 말합니까?》

《알고싶으냐?》

《예.》

《진짜주인을 만났으니 농사를 잘 짓자고 말한다. 여태껏 남의 농사를 짓지 않았느냐. 이제부터는 내 농사다. 거름을 듬뿍듬뿍 내서 땅을 걸구고 곡식을 심어 부지런히 가꾸면 풍년을 주겠단다. 풍년이 들면 내가 잘살고 땅을 준 내 나라도 잘살게 되지!》 로인의 웅근 목소리가 고요한 들에 멀리까지 울려갔다.

리종수는 눈굽이 화끈해졌다.

《아버지, 잘 알았습니다. 토지를 주신 장군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는 땅이 했다는 말이 곧 아버지의 심중의 고백임을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땅에 온넋을 기울이고있었다.

로인은 대견해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들이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것이 고마왔다.

이튿날부터 아침 일찌기 리준형로인은 두 아들과 며느리들, 큰손자를 깨워가지고 싸리바지게에다 두엄을 듬뿍듬뿍 퍼담아가지고 논으로, 밭으로 나갔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것이 농사일의 첫 공정이다. 리준형과 그의 아들들은 땅을 살점같이 귀중히 여기고 다루었다. 이 시기 토지를 분여받은 빈농민들 모두가 그랬다. 그렇게 애지중지 살찌우고 보살피고 잘 다루어 해마다 풍작을 이룩했다.

1948년 5월 말 어느날 아침, 가장인 수염이 보기 좋은 리준형로인이 식사를 하다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제 밤에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 칠색무지개가 저 탁고개에서 우리 집 뜨락까지 뻗치였는데 그우로 왕관을 쓴 룡이 날아들어오더구나.》

《길할 꿈 같습니다.》맏아들인 부모를 모시고있는 리종수가 말했다.

이날 로인은 마음이 뒤숭숭해서 들에 나가지 않고 외양간에서 두엄을 쳐내는 일을 하였다.

오전 10시가 좀 지났을가. 어떤 양복차림의 젊은이가 삽짝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리준형농민의 집인가고 물었다. 그렇다고 로인이 대답하자 젊은이는 이제 곧 중앙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니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집안팎을 정돈하는것이 좋겠다고 그리고 맏아들도 어디 있는지 빨리 데려오도록 하라고 했다.

리준형은 꿈생각이 번개치듯 하여 대뜸 얼굴이 긴장해졌다. 그는 로친네를 시켜 집안팎을 거두게 하는 한편 밭에 나가있는 맏아들을 빨리 데려오라고 손자며느리를 재촉했다. 그리고 서둘러 세면을 하고 빨아 손질해서 농안에 넣어두었던 무명바지저고리를 꺼내 갈아입었다. 바지끝에 대님을 맸고 저고리우에 비단조끼를 입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상투는 잘라버린지 오랬고 그렇다고 젊은이들처럼 신식으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지 않고 늘 빡빡깎군 했는데 지금 밤송이처럼 돋아나 보기가 좋았다. 수염은 자연상태로 자라나 목을 다 가리우고 가슴에까지 드리워 희슥희슥한것이 아주 풍만했고 위풍이 있었다. 차비가 끝나자 로인은 공연히 헛기침을 하며 뒤짐을 지고 닭들이 널려있는 뜨락을 거닐면서 그 귀한 손님을 기다렸다. 두눈을 가느스름하게 쪼프리고 집안팎을 둘러보는 그의 얼굴에 끝없는 감회가 어렸다. 젊은 시절 그의 부부가 어린 아들 둘을 달구지에 태워가지고 이 원동부락에 정착한 이래 세월은 아득히 흘러 그는 어느덧 70살의 고령이 되였고 자손들이 퍼져 지금은 대가정을 이루었던것이다.

마침내 귀한 손님이 삽짝문을 열고 들어오시였다. 중절모를 쓴 키가 후리후리한 젊은분이신데 안광이 어찌도 눈부시게 빛나는지 로인은 한동안 넋을 잃고 황홀히 쳐다보기만 할뿐 인사드릴 생각도 미처 못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