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18

 

18

 

지난밤에 바람이 웅ㅡ웅ㅡ거리더니 새벽에 날씨가 찼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옷을 걸치시고 록음이 우거진 저택의 정원길을 걸으시였다. 병꽃나무의 꽃이 한창 피고있었다. 나무잎사이마다 꽃이 있고 꽃사이마다 꽃의 크기와 같은 잎이 피여나 푸른 잎과 진분홍색꽃이 점점이 조화를 이루었다. 정향나무에서는 아직 향기가 풍기고있다. 수령님께서는 정원에 피여난 꽃들을 보다가 바람에 우듬지들이 흔들리는 키큰 나무들을 쳐다보시였다. 하늘은 비가 오려는지 흐릿하였다.

(새벽에 모를 뜨는 농민들의 손이 시리겠군.)

수령님께서 새벽추위를 느끼며 하시는 걱정이였다. 지금 전국이 모내기전투에서 절정을 이루고있다. 농민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먼저 모판에 들어가 모를 뜬다. 얼마전 원화리에 나가 농민들과 담화하며 그들로부터 새벽에 모를 뜰 때 손이 시리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간 열흘남짓이 흐르며 날씨가 더워지자 모판에 댄 물도 더워졌으리라고 생각하였는데 변덕스러운 봄날씨가 다시 추워지고있으니 저으기 걱정되시였다. 그러나 조합원들과 지원자들은 봄추위를 이겨낼것이다.

사실 지금 그이께서 걱정하시는것은 쌀고장인 황해남도에서 모내기가 늦어지고있는 사실이였다. 다른 도들에 비해 모내기실적이 떨어지고있었다. 워낙 논이 많으니 그럴수 있겠다고 리해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때문에 종합대학학생들을 비롯하여 지원로력을 많이 넣지 않았는가. 원인은 다른데 있을것이다.

황해남도에 파견된 당중앙위원회 지도그루빠의 보고가 상기되시였다.

《···작년에 연안군에서 벼농사가 잘되지 못한 원인은 도인민위원회의 일군들이 농사지도를 관료주의적으로 한것과 많이 관련됩니다.》하고 보고서에는 지적되여있었다. 《도인민위원회의 농산국은 간석지논에는 모를 무조건 1대씩 꽂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어떻게 1대씩 꽂겠습니까. 아무리 랭상모라 해도 1대씩 꽂았다가 그것이 죽으면 빈포기가 생길것이라는 걱정과 더우기는 모를 여러대씩 꽂던 지난 시기의 타성으로 하여 그들은 1대씩 꽂기도 하고 2~3대씩 꽂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농산지도국장이 내려와보고 노발대발하며 2~3대씩 꽂은 논의 모를 1대만 남기고 다 뽑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농민들은 지시대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걱정한대로 1대씩 남은 모마저 적지 않게 죽었습니다. 연백벌사람들은 그 랭상모때문에 농사를 망쳤다고 하는데 지도일군들의 무식과 관료주의가 얼마나 엄중한 정치적 및 경제적후과를 가져왔는가 하는것을 이것만 보고도 알수 있습니다.》

실로 웃지 못할 일이였다.

보고서는 이러한 자료도 담고있었다.

《이 군에서는 작년도에 알곡 예상수확량에 비해 실수확량이 1만t이나 적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예상수확량에 따르는 현물세를 받아갔습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생산량이 적은데다가 판정수확을 허풍친 결과로 현물세를 많이 내다보니 봄이 오자 절량농가들이 생겨나게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실어갔던 쌀을 국가대여곡으로 다시 실어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이것 역시 앞의 자료에서 본것 못지 않게 혹독한 관료주의적행위이다. 이런 현상이 당과 대중을 리탈시키며 농민들 특히 분계연선지구 농민들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영상을 흐리게 하며 외곡된 인식을 줄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농민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는다.

일군들이 이처럼 무책임할수 있는가. 흐린 하늘에서 비가 부실부실 내렸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보고서의 내용을 상기하시며 비가 오는것을 느끼지 못하시였다.

책임부관이 우산을 가지고 와서 펼치여 비를 막으며 《비가 오는데 들어가셔야 할것 같습니다.》하고 말씀드려서야 현실로 돌아오시였다.

(비가 가늘게 내리니 농민들은 그냥 모를 뜨고있겠지.··· 그런데 손발이 차거운것보다 마음속이 차거워들가봐 제일 걱정이야.)

그이의 생각이였다. 다른 고장, 특히 평안남도에서는 농사가 련속 잘되는데 연안군은 알곡수확고가 떨어졌으니 농민들이 무슨 재미가 나서 농사일에 발벗고 나서겠는가. 모내기를 빨리 끝내자고 선전해야 효과가 있겠는가.

더우기 가슴을 쿡 찌르는것은 보고서에 언급된 월남자가족문제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남편이 월남한 녀자들의 운명문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월남자가족들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말며 포섭할데 대한 정책적방향을 주시였다. 그런데 월남자가족녀인들이 월남한 남편과 리혼시켜줄것을 제기하고 또 타지방으로 퇴거를 떼달라고 하는데 승인해주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이것은 아직도 월남자가족들을 믿지 못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 아닌가. 남편과 헤여져 10년세월을 홀로 보내고있는 녀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황해남도에 특히 월남자가족들이 많다.···

심각하게 제기되고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시급히 풀어주지 않는다면 황해남도가 올해농사를 짓는데서 그것들이 장애로 될것이다. 이런것들을 제때에 풀어주어 사람들속에서 우리 제도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간직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한것이다. 사람들의 심장에 불을 지펴야 한다. 사람들이 발동되는것이 승리를 가져오는 방도이다.

그저 모내기를 빨리 끝내라고 지시하고 독촉하는것은 농민들을 피동적인 존재로 만들뿐이다. 그러한 명령식지도방법은 사회주의의 원칙과 본성에 맞지 않으며 백해무익하다.

실비가 내리는속을 천천히 걷고계시던 수령님께서 책임부관에게 말씀하시였다.

《황해남도에 빨리 가봐야 하겠소. 언제부터 간다간다하며 일이 바빠 평양을 뜨지 못했는데 더는 지체할수 없소. 모내기가 끝나기전에 가야 하오. 오늘 가면 더욱 좋소.》

책임부관이 대답을 드리였다.

《오늘은 내각 제5차전원회의가 있고 래일은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가 있습니다.》

《그럼 상무위원회를 오전에 하고 오후에 떠나도록 하지.》

《예.》

비는 그냥 부실부실 내리고있었다. 수령님의 눈앞에는 보슬비를 무릅쓰고 비옷을 입거나 도롱이를 쓰고 벌에서 모내기를 계속하고있을 농민들과 지원자들의 모습이 보이는듯싶었다. 이 정도의 비에 논일을 그만둘 농민들이 아니라는것을 그이께서는 알고계시였다. 그이께서 모든 력량을 집중하여 적기에 모내기를 와닥닥 끝낼데 대하여 주신 교시에 따라 전국이 떨쳐나 말그대로 전투를 벌리고있는 시기였다.

 

×

 

함경북도가 우리 나라의 동북쪽 맨끝이라면 황해남도는 공화국북반부의 서남쪽 맨끝이다.

황해남도땅에 들어선지 이틀째되는 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청단군을 거쳐 연안읍으로 가시던 도중 풍천농업협동조합 11작업반 번개틀논을 지나치다가 차를 세우도록 하시였다.

차에서 내리여 모내기가 한창인 논벌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작업반장을 부르시였다.

아침 아홉시가 지나 해가 어지간히 높이 떠올랐는데 뿌옇게 흐린 하늘에서 희미하게 보이였다. 들판에는 운무가 끼여 멀리 언덕들이 어슴푸레한 륜곽을 나타내고있었다. 여기저기 논판에서 뜨락또르와 소가 써레질을 하고 농민들이 줄을 지어 허리를 굽히고 모를 꽂고있었다.

작업반장이 달려와 인사를 올리였다. 수령님께서 한동안 그와 담화를 해보시니 그는 여기서 제대된이래 10년 가까이 농사를 짓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에게서 작년도 정당수확고를 알아보시고나서 수확고가 매우 낮은데 대해 안색을 흐리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니까 잘 못살지··· 반장동무는 분배를 얼마나 탔소?》

《전불까지 14가마니를 탔습니다.》

그러니까 한톤도 못된다. 수령님께서는 작년가을 청산리 암화마을 탈곡장에 들리시였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황금같은 낟알속에 장화를 신고서서 삽으로 가마니에 푹푹 퍼담고있던 농민이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탈곡기를 돌리던 농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부유중농수준에 올랐다. 그만큼 분배를 많이 탔다. 그러니 그처럼 성수나 했던것이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대견해보였던가. 어찌도 그날의 인상이 깊었던지 지금도 눈에 선했다. 그 청산리에 비하면 옥토를 가지고있으면서도 못사는 연안군이 얼마나 뒤떨어져있는가. 이 좋은 벌판에서 분배가 1t도 차례지지 못하면 되겠는가.

《농민들이 우의 지시가 부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는데도 그대로 집행한것은 농민들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지시를 받아물도록 강요한 도농산국에 더 큰 잘못이 있소. 무작정 내려먹이니 할수 없지 않는가. 조합원들이 조합에 매여있으니 어쩌는수 없단 말이요. 이렇게 무작정 내려먹이는것이 사회주의경제관리체계가 아니요. 아래의 실정에 맞게 아래의 요구를 참작하여 지시를 떨구어야 하오. 그래서 민주주의중앙집권제라 하는거요.

동무들은 첫째로 관료주의와 투쟁해야 하겠소. 관료주의자들은 인민이 고통을 당하는데 대해서는 관심이 없소. 자기의 공명과 출세를 위해 상급에 잘 보일내기만 하다나니 농민들이 이미 꽂은 모를 다시 뽑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겠는가 하는것은 생각지도 않는단말이요. 그렇기때문에 부당한 지시가 거침없이 내려가 농민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있소. 도인민위원장동무는 도농산국에서 내려먹인 사실을 알고있었소?》

도위원장은 얼굴이 벌겋게 되여 모르고있다가 후에 총화지을 때 알게 되였다고 대답올렸다.

《도농산국은 어떻게 되여 그런 망동을 부렸소?》

《도농산국이 떨떨했습니다. 농업성에 간석지논에서 모내기한 정형을 보고하였는데 성에서 강한 추궁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제 어떻게 모내기한것을 다시 뽑겠는가고 하자 농사를 망치면 책임지겠는가고 을러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농산국이 그래서 아래에 다시 엉터리없는 지시를 내렸구만. 연안군에 내려와서 형편도 알아보고 농민들도 만나보았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작년도총화에서 비판이 있었소?》

《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동행하고있는 김만금을 돌아보시였다.

《농업성에서는 총화가 있었소?》

《작년도총화를 했지만 연안군에서 논에 낸 모를 다시 뽑은 문제는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김만금이 사실대로 보고드리였다.

《농업성에도 문제가 있소. 올해에도 그런 식으로 농사를 지도하면 안되겠소. 명심하도록 해야 하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성에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김만금은 수첩에 적어넣으며 농업성 최영길부상에게 따져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군과 리의 일군들에게 관료주의적인 지시에 무턱대고 따를것이 아니라 자기의 농사는 자기가 책임지는 립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모내기를 력량을 집중하여 와닥닥 끝낼데 대하여 다시 강조하고 풍천리를 떠나시였다.

자그마한 련못가에 군당위원회 청사가 있었는데 이미 협의회에 참가할 일군들이 모여와 대기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협의회에서 다시금 《이 좋은 옥답에서 왜 농사를 잘못하오?》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물으시였다.

《군중을 잘 동원시키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군당부위원장의 대답이였다.

《군중이 잘 동원되지 않은 원인이 어디에 있소?》

《저희들이 사업을 잘 조직하지 못했습니다.》

《조직지도사업에 걸렸단말이지? 그건 옳은 소리요.》 수령님께서는 그의 대답을 긍정해주고 좀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시였다.

《농촌의 주민구성이 복잡한데 작년에 식량사정이 좀 곤난했습니다. 이러한 실정에 맞게 그들과의 사업을 잘못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작년에 수확판정을 허풍쳤는데 국가에서 그 허풍친 수자에 맞추어 현물세를 실어갔다가 다시 대여곡을 실어왔다, 형편이 현물세를 그렇게 실어가면 절량농가가 생길것은 뻔한데 일군들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군당위원회가 왜 당중앙위원회에 그대로 반영하여 바로잡지 못했는가라고 엄하게 지적하시였다.

《한해 국가납부곡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농민들에게 준다 해서 무슨 큰 손실이 되겠소? 왜 이런 제기를 당중앙위원회에 하지 못하고 농민들이 굶게 하는가. 우리가 아무리 쌀이 없다고 해도 쌀과 사람을 바꿀수 있는가. 우리가 혁명을 하자면 군중을 쟁취해야 하오. 군중을 쟁취하는것이 혁명이 아닌가. 군중이 당주위에서 떨어져나간다면 그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이요.

농민들이 배가 불러야 잘 동원되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이 관철되겠는가? 백성이 배가 불러야 나라정치를 좋다고 하지 배가 고픈데 그 나라 정치를 좋다고 하겠소? 옛날에도 그 지방의 원이 백성들의 배를 불리우면 그 원을 좋다고 했소. 오늘 도와 군위원장들이 일을 잘해서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여야 정치를 잘 한다고 좋아하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배가 고프면 곧이 듣지 않소.》

수령님께서는 군당부위원장이 농촌의 주민구성이 복잡한데 군중과의 사업을 잘못했다고 한것이 옳다고 하시면서 특히 월남자가족들의 문제를 잘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군녀맹위원장동무 있소?》

젊은 녀인이 일어섰다. 중키에 얼굴이 동그스름한 녀성이였다.

《동무가 한번 말해보오. 월남자가족들중 특히 젋은 녀성들이 리혼을 시켜달라고도 하고 다른 고장으로 이사가겠다고도 한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녀맹위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갑자르기만 하였다.

《듣자니 일부 타지방으로 퇴거를 떼달라고 하는것이 정체를 숨기려는 목적이라고 한다는데 동무 생각에는 어떻소?》

《그것은··· 시집을 가려고 이사하겠다는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시였다.

《그거란 말이요! 동무가 녀맹위원장이니까 그 녀성들의 심정을 잘 알고있을거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솔직하게 다 말해보오.》

녀맹위원장이 용기를 얻어 쟁쟁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수상님, 그들은 다 장래를 생각하고있습니다. 월남한 남편과 리혼해주면 로동당에 입당하겠다고도 하고 아무리 농사를 잘해도 벌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금년농사를 짓고는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녀성들은 청춘의 한때가 지나가면 자식도 없이 불쌍한 사람이 된다고 비관하기도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창밖을 이윽히 내다보시였다. 가슴이 아프시였다. 분렬된 민족이 안고있는 이 아픔을 어떻게 가셔야 하겠는가.

그이께서는 연안군에 월남자가족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아보시였다. 다른데 비해 많았다.

군당부위원장이 월남자가족이 특별히 많은 리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분계연선지구로서 남쪽에 돈벌이 갔다가 갈라진 사람도 있고 아직 공화국정부의 시책을 잘 모르다보니 적들의 악선전에 속아 전쟁시기에 남으로 많이 나갔다. 또 시집은 남쪽인데 아이를 낳거나 기타 볼일이 있어 본가집이 있는 북쪽에 왔다가 막혀서 남편과 갈라진 경우도 있다. 그들의 공통된 불행은 통일이 언제 될지 모르는데 계속 혼자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있는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며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가!

《그런데 리혼을 하고 시집가겠다는 사람에게 왜 퇴거를 떼주지 않소? 그것은 본질상 시집을 못가게 하는것이 아닌가? 이러면 안돼. 그들이 돌멩이도 아닌데 어떻게 혼자 살겠나. 시집가겠다는 사람은 보내시오. 월남한 남편들은 색시를 얻어가지고 자식도 보았을텐데 시집을 안가겠다는 녀자가 어디 있겠소. 물론 시집을 보내되 강제로 보낼 필요도 없고 못 가게 할 필요도 없소.》

수령님께서는 이곳 일군들이 이처럼 편협하게 처신하고있는 원인이 월남자가족을 월남한 남편과 같이 보기때문이라고 인정하시였다.

《동무들은 월남자가족들을 적대분자로 락인하는 경향들을 일소해야 하겠소. 말로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리혼도 시켜주지 않으니 마음이 어떻겠나? 무슨 성수가 나서 일을 잘하겠는가. 연안군 농사가 잘 안되고있는 원인이 여기에도 있소. 나는 오늘 연안군에 와서 가슴아픈 충격을 받았소. 결국은 동무들이 그들을 믿지 않는데로부터 출발한것임을 명백히 알아야 하겠소.》

군당부위원장이 일어섰다.

《수상님, 저희들이 편협하였습니다. 수상님말씀대로 집행하겠습니다.》

결의는 좋은데 집행을 어느정도 하겠는지? 또 월남자가족마다 경우가 다를수 있는데 그에 맞는 정확한 해결책을 일일이 세워줄수 있겠는지?··· 수령님께서는 군일군들을 보시며 생각하시였다.

협의회를 마치고 군당청사를 나오시면서도 그이께서는 월남자가족녀인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시였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월남자가족들을 직접 만나봐야 할것 같소.》 그이께서 김만금에게 말씀하시였다. 《사람문제부터 풀어야 하오. 사람문제를 풀자면 직접 만나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하오. 군내 리들에서 월남자가족들을 오후에 군당에 모이도록 하시오. 그들이 모이는 시간에 우리는 배천군을 돌아봅시다.》

김만금은 잠시 생각하고 오후 3시경에 월남자가족들과 만나시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기드리였다.

《아니, 오후 1시에 만납시다. 오후에 예정된 일정이 있는것만큼 시간이 없소.》

《그러면 수상님께서 점심을 하시고 휴식하실 시간이 없습니다.》

수령님께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김만금과 수원들을 돌아보시였다.

《나는 월남자가족들과 만나는것이 한시가 새롭소. 점심이야 차안에서 빵이나 과자를 좀 먹으면 되는것이고 휴식은 밤에 하면 되오.》

김만금은 문득 지난 초봄 수령님께서 두만강류역의 마을들을 찾아가시던중 승용차가 진창에 빠지자 차거운 강바람을 맞으시며 바지와 구두에 진흙이 튕기는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원들과 함께 차를 미시던 모습이 떠올라 눈굽이 뜨거워났다. 그날 김만금은 인민에 대한 사랑,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의 귀감을 감명깊게 체득했었다.

··· 오후 1시 수령님께서 정해주신 연안군당 뜰앞에 있는 자그마한 련못가에 걸상들을 내다놓고 월남자가족녀인들이 모여와 기다렸다. 신록짙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지들이 설레이고 련못의 수면은 잔파도를 일으키며 따뜻한 해볕을 눈부시게 반사하고있었다.

이윽하여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나타났다. 그이께서는 벌써부터 눈물에 젖어있는 녀인들의 인사에 답례를 보내며 모두들 앉으라고 하시였다.

《동무들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어서들 앉으시오.》

좌석이 정돈되자 수령님께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30살쯤 되여보이는 녀인에게 눈길을 주시였다. 양혜옥이라고 하는 그 녀자는 얼굴이 워낙 예쁘게 생긴 바탕인데 때이른 정신적고민과 인생의 서글픔이 비껴있어 어두워보였다.

양혜옥은 자양리에서 열살난 딸애 하나를 데리고 살고있었다.

《아이가 아버지의 얼굴을 아오?》

수령님께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아버지가 남으로 나갈 때 젖먹이였습니다.》

저고리고름을 꼭 쥐고 말씀드리는 녀인의 목소리가 떨고있었다.

《그러니 알수 없겠지···》 그이께서는 나직이 말씀하시고 《인편에라도 남편의 소식을 듣지 못했소?》하고 그 어떤 위안이 될 일이 없겠는지 마음쓰며 물으시였다.

녀인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녀인에 대한 깊은 동정이 가슴을 지지였다.

양혜옥이더러 앉으라 하시고 이번에는 더 애돼보이는 얼굴이 갸름하고 몸매가 버들가지처럼 날씬한 녀인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그 녀자는 이름을 채분녀라고 하는데 남편과 헤여진 이야기를 들으니 기가 막혔다. 지금 29살인 녀인은 18살에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는데 20살 나는 해 정월에 그와 헤여졌다. 녀인이 남편과 산 3년간, 그것도 남편이 개성사범전문학교에 다니느라 별로 함께 살아보지 못한 그 기간은 마치 번개가 번쩍하고 사라진것처럼 느껴졌다. 부부간의 애정을 깊이 나누어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헤여져 오늘까지 9년세월을 보냈다. 남편이 죄를 짓고 간것도 아니고 놈들의 위협과 허위선전에 속아 나갔으니 더욱 애절하게 기다려져 한숨과 눈물속에 보낸 밤인들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다.

남편없이 녀인이 혼자 살아온 9년간의 서글프고 괴로운 세월을 상상해보시니 가슴이 아파옴을 어쩌지 못하며 수령님께서 나직이 물으시였다.

《어린애는 있소?》

어린애라도 있으면 녀인의 고독이 한결 풀릴것이다. 눈이 큰 채분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없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 큰 눈에 어린 슬픔을 차마 마주 볼수 없으시여 눈길을 떨구시였다.

《그럼 무슨 재미에 사오? 어린애는 없지, 그저 밥이나 먹고 동무들과 같이 일하는것밖에 없지 않겠소, 응?》

분녀는 드디여 북받치는 설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같은 설음을 안고있는 녀인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였다. 련못가는 삽시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도당위원장이 바빠서 《울음들을 그치시오. 이러면 안되오. 어서들 그치시오.》하고 말리였다.

수령님께서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놔두시오. 실컷 울라고 하시오. 이 아주머니들이 남의 눈치를 보느라 사람들앞에서 눈물이나 제대로 흘렸겠소. 밤에 이불속에 들어서야 홀로 베개를 눈물로 적시였을거요. 내앞에서 실컷 울게 놔두시오.》

그러자 녀인들의 울음소리는 더 높아졌다.

어찌하여 이런 비극이 이 땅우에 빚어졌는가. 저 스무살 꽃나이에 3년간 겨우 살고 남편과 생리별을 한 녀인은 사실 부부생활을 했다고 말할수 없다. 그런데도 조국이 통일되고 남편과 만나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며 어느덧 9년세월을 보내왔다. 기다리고 기다리기에 지치고 마음고생에 시달려 서른살도 못된 녀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겉늙어보이지 않는가. 이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마음고생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누구도 알수 없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못가의 정향나무에 손을 뻗치여 꽃 한송이를 꺾어드시고 한잎한잎씩 꽃잎을 못의 수면에 떨구시며 자신의 아픔을 누르려 하시였고 또한 녀인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리시였다.

언제면 조국이 통일되겠는가! 이 녀인들에게 통일을 가져다주고 이 녀인들의 가슴에 엉켜있는 슬픔을 가셔주게 될 날이 언제 오겠는가. 그렇다고 괴로와만 하고 동정만 하고있겠는가. 우선 이 녀인들이 월남자가족이라는 불명예스러움을 털어버리고 우리 당과 정부의 따뜻한 품에 안겨 참다운 생을 누리도록 보살펴주어야 할것이다.···

김만금은 담찬 사나이이다. 그렇지만 녀자들의 눈물앞에서는 어쩔줄 몰라했다. 더구나 지금 녀인들이 울고있는것이 청춘시절에 과부처럼 된 신세가 서글퍼서 우는것이 아니고 김일성동지의 뜨거운 인간애에 감심되여 진정한 인간적눈물을 쏟는것이기에 그도 어쩔수없이 손수건을 눈에 가져다대였다.

그렇다, 저 눈물의 바다, 그것은 우리 수령님의 인간애와 자기 인민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감사의 정에 겨워 터친 깨끗하고 숭고한 눈물의 바다이다.

그러나 수령님께서 괴로움을 이겨내기 힘들어하시고 시간도 자꾸 흐르기에 김만금은 일어서서 녀인들에게로 다가갔다. 역시 그는 사나이였다.

《아주머니들, 그만 진정합시다. 수상님께서 가슴아파하시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심정은 다 알만 합니다.》

녀인들은 드디여 눈물을 씹어삼키며 진정하였다.

이윽하여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저으기 갈리신 음성이였다.

《참으로 조국통일은 조선인민의 절실한 념원입니다! 지금 동무들은 한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앉지 못하고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공화국정치가 좋다는것을 몰라서 넘어간것입니다. 남조선으로 넘어간 당신들의 남편들가운데는 지금 낯선 거리에서 깡통을 차고 빌어먹는 사람도 있을것이며 또한 리승만도당을 반대하여 싸우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그 싸움에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올수도 있는것입니다. 대체로 북반부에서 나간 사람들이 공화국정치가 좋다는 선전도 제일 많이 하고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월남자가족이라고 해서 다 나쁘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우리 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시기에 우리는 정령으로써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도 자기 죄과를 뉘우치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에 나선다면 손을 잡고 같이 나갈것이라는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몰라서 넘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여기서 죄를 짓고 갔다 해도 다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중에는 좋은 일을 하고 돌아올 사람도 있을수 있는것입니다. 우리 당의 정책은 언제나 자기 죄과를 뉘우치고 우리와 같이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다 용서하고 같이 데리고 가는것입니다.》

녀인들의 눈물자욱이 어린 얼굴들은 밝게 빛나고있었다. 련못의 수면에 반사되는 해빛도 더 밝게 반짝이는듯 하였다.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들은 마치 가뭄철의 메마른 대지에 내리는 단비처럼 녀인들의 가슴속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속이 확 열리고 눈앞이 환히 트이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월남자가족녀인들의 전도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명백한 해명을 주시였다.

《우리 당에서나 국가에서는 동무들의 전도를 열어주고있습니다. 동무들은 자기 손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동무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해서 공화국을 부유케 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동무들은 일을 잘해서 당에도 들고 또 잘살아야 합니다. 정치생활에도 잘 참가하여 월남자가족들가운데서 사회활동가도 나오고 로력영웅도 나와야 하겠습니다. 또한 남편이 밤중에라도 들어오면 붙들어놓고 내무기관에 자수를 시키고 같이 잘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오늘에 와서 미국이 나쁘다는것을 알고있을것입니다. 오늘의 남반부는 다만 돈있는 사람들만 살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잘사는 사람도 없고 특별히 못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잘살게 될것입니다.··· 동무들은 우리 당과 정부를 믿고 일을 잘하고 아이들의 공부를 잘 시키고 자기운명을 자신들이 개척해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그들을 믿어주시고 그들이 불명예스러운 수치감을 털어버리고 공화국공민으로 꿋꿋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앞길을 열어주시였다.

얼굴이 예쁘장한 양혜옥이 다시 일어섰다.

《수상님, 수상님을 뵈옵게 되여 정말 영광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희같은 녀자들은 사람축에 변변히 들지 못해 축잡혀 살고있었는데 수상님께서 만나주실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떤 간부들은 저희들을 만나면 겉치레인사말이나 몇마디 하고는 인차 피하군 했습니다. 수상님! 수상님께서 저희들을 친히 만나주시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녀인의 눈에서 불시에 눈물이 다시 솟아나 볕에 감실감실하게 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가로 저으시였다.

《동무들의 남편을 다 데려다주어야 반갑지 나를 보고서야 무엇이 반갑겠습니까!》

녀인은 눈물을 손수건으로 씻고 계속 말씀을 드리였다.

《수상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희들의 앞길이 환히 내다보이는것 같습니다. 수상님의 말씀대로 꼭 하겠습니다. 수상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자신이 로력혁신자가 되여 입당도 하고 자식들을 혁명가로 키우겠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월남자가족녀인들의 공통된 심정이였을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속이 후련해져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좋습니다. 나는 동무들이 다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하며 그 결심대로 살아가리라고 확신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녀인들과 헤여지시며 《모두들 건강한 몸으로 일들을 잘하시오.》하고 다시금 고무해주시였고 눈물을 씻으며 작별의 인사를 드리는 녀인들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날 늦은 저녁 수령님께서는 숙소에서 김만금을 조용히 부르시였다.

그이께서 오전과 오후에 걸쳐 휴식도 없이 황해남도의 농촌들과 해주유자녀학원을 현지지도하시고 도의 책임일군들과 중요한 담화를 하시느라 피로하실터인데도 늦게 찾으시니 김만금은 생각이 무거워졌다.

《잠자리에 누운걸 깨우지 않았소?》

수령님께서 오히려 미안해하시였다.

《아닙니다. 오늘 수상님께서 하신 간곡한 말씀들을 정리하고있었습니다. 말씀을 새길수록 그 깊은 의미가 가슴을 칩니다. 어떻게 잠을 자고있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고요한 눈길로 김만금을 바라보시였다.

《나도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동무와 얘기를 좀 나누어보자고 불렀소.》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오늘 나는 연안군에 가서 큰 교훈을 찾았소.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대장이나 대원이나 상하구별이 없이 일심동체가 되여 훈련도 하고 생활도 하고 싸움도 하였소. 이것이 힘의 원천이였소. 이 전통을 우리가 계승하고있소. 그런데 뜻대로 잘 안돼. 우리 일군들이 아래에 내려가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그들의 아픔을 풀어주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가르쳐주기도 하면 그 어떤 문제도 다 풀수 있소. 내가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고 총화를 지어주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 사상의 본질이 이거요.》

김만금은 그 근저에 인간애와 동지애가 깔려있는 수령님의 인민적령도풍모에 감심되여 말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만금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김만금은 불이 황황 이는 눈을 들었다.

《함경북도에 가보고 느낀바이지만 제가 청산리에 가서 농촌이 안고있는 문제들을 현상적으로 고찰했었다는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청산리··· 나는 청산리를 생각하면 언제나 리종수로인과 그의 부친이 떠오르오.》 이윽하여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로인이 청산벌을 가리키며 〈우리 땅〉이라고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소. 인민의 지지를 받고있는것이 우리 혁명의 큰 밑천이요. 뜨락또르, 자동차도 중요하지만 인민의 앙양된 열의가 기본이요. 그 열의를 조직동원하기 위해서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것이 우리의 정치이고 이 정치사업을 모든 사업에 선행하는것이 우리의 지도방식이요. 내가 오늘 연안군과 황해남도 일군들의 관료주의와 인간애가 결여된 매정한 사업태도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는데 우리자신이 우선 우리 식의 대중령도방법을 부단히 완성해나가고 일군들에게 배워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하오. 내가 오늘 찾은 교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