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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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작업반 기호동무를 우리 1반에 받았어요.》 문영숙이가 1초급당단체위원장에게 보고하였다.

초급당단체위원장은 리종수로인의 맏아들 리춘권이다. 그는 《기호를?》하고 놀라면서 얼굴빛을 흐리였다. 기호가 싫었던것이다. 가정환경이 복잡하고 또 소문에 의하면 일에서 꾀를 부리며 반장에 대해 뒤소리를 했다는 락후분자이다. 지난 시기 장사를 하던 버릇을 못 고치고 제 리속만 차리는 과부 강옥숙이 같은 락후분자들과 《치안대》가담자, 처단자의 가족 등이 있어서 당사업이 어려운데 기호같은 락후하고 복잡한 인물이 더 보태여지지 않았는가.

춘권이가 달가와하지 않는 눈치를 보이자 문영숙은 남자로력 한사람이 어딘가, 잘 이끌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가 기호를 받아들인 처사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문영숙의 말에 탓할 건덕지가 없었다. 속으로는 작업반장은 일을 시키면 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다루어야 하니 머리아프단 말이요 하며 맞갑지 않아했으나 어쩌는수 없었다. 만일 복잡한 군중을 포섭할데 대한 당정책이 없고 또 자기가 그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초급당단체위원장이 아니라면 로골적으로 반대를 했을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폭사당하고 셋째동생이 전사한 비애를 가시지 못하고있는 춘권이는 마음속깊이에서는 기호같은 적기관가담자들과 만행한자의 가족들을 용납하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농사를 지어야 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기호가 1반에 나타나 부임인사를 하자 리춘권이는 《말을 들었소. 같이 일하자구.》하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기호는 리춘권이에게서 위압감을 느꼈다. 체격이 크고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귀밑에서 턱에 이르기까지 털이 거밋하게 돋아나는 그의 외형부터가 대하기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 제대되여 돌아와 불탄 집자리에서 장검을 파내여 시퍼렇게 갈아가지고 할아버지의 묘를 찾아가 복수의 맹세를 다졌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청산리사람들이 말하는 유명한 사건이다.

인사를 나누며 리춘권이가 이마살을 찡그리는것을 본 기호는 등골이 오싹했다.

(후퇴시기 죄를 지은 내가 고을리 없지. 우리 집은 리씨집과 원쑤지간이나 같아. 어쩌면 춘권이가 진섭이보다 내심으로는 나를 더 증오할지도 몰라.)

기호는 기가 죽어가지고 두엄을 날랐다. 그래도 안심이 되고 안정이 되는것은 문영숙반장이 따뜻하게 대해주기때문이였다.

리춘권이는 자기가 기호를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반갑게 대할수 없었다.

···리춘권이 전선에서 돌아온것은 전후의 첫봄을 맞는 시기였다. 협동화운동이 한창 벌어지고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를 닮아 어깨가 넓고 키가 컸으며 구레나룻이 거밋거밋하였다.

3년간의 전쟁터에서 사선을 수없이 넘어오며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는 부모님들과의 편지를 통해 가문에 들이닥친 불행에 대하여 대체로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간의 고향소식도 알수 있었다.

리춘권이는 청산리땅에 들어서자 어린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장가를 들고 첫아들을 보고 조부모님과 부모님들과 함께 농사짓던 평화로운 추억이 깃들어있는 고향집과 고향마을을 먼저 가보고싶었으나 거기에는 집도 부모님들도 없다. 그래서 그는 강서정거장에서 가까운 암화마을을 찾아왔고 사람들에게 물어서 부모님들이 살고있는 생소한 집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 무거운 걸음이였다. 그토록 엄하면서도 인자했던 할아버지가 안계시고 또··· 그는 가슴에 엄습하는 서글픔이 클수록 더 입을 꾹 다물고 저물어가는 봄날의 저녁해빛에 길어진 그림자를 끌고 밋밋한 야산들사이로 불어치는 들판의 바람을 홧홧 달아오르는 얼굴에 맞으며 포연에 끄슬고 퇴색한 솜을 두고 누빈 군복에 배낭을 지고 낯설은 집앞에 가닿았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엌에서 저녁때식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뛰쳐나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파냄새 풍기는 손으로 아들의 시커멓게 거칠어진 얼굴을 쓸어만지고 훈장달린 앞가슴을 눈물로 흠뻑 적시며 어머니는 흐느낌속에서 말했다.

《맏이야,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못되셨다. 셋째는 전사했다구 통지서가 왔구 둘째는 여적 소식이 없구나. 고향집은 불타서 주추돌만 남았다.···》

아들은 반백이 된 어머니의 머리칼에 훌쭉하게 꺼져들어간 볼을 가져다대고 어머니의 떨고있는 여위고 가냘픈 어깨를 조부를 닮아 커다랗고 묵직한 손으로 어루만지기만 했다.

얼마후 어슬어슬해질무렵 아버지가 빈 싸리바지게를 지고 방울소리 절렁이는 황소를 이끌고 뜨락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솜을 둔 허름한 무명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었고 머리에는 색날은 풍뎅이를 썼다. 아들이 방에서 나와 인사를 했다.

《아버지,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리종수는 안개가 뽀얗게 낀듯 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입을 약간 실룩거리다가 말했다.

《맏이가 돌아왔구나! 됐다!》

춘권이는 아버지의 어깨에서 지게를 벗겨드리고 소고삐를 넘겨받아가지고 외양간으로 끌고갔다. 어진 황소의 둥근눈, 굼뜨고 듬직한 걸음걸이, 외양간의 구수한 냄새···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농가의 향취였다.

《집에서 장만한 손가요?》하고 그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디 소를 살만 한 돈이 갑자기 생기니? 조합소다.》 아버지가 대답하며 옷의 먼지를 털었다. 저녁상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 아들은 강서읍을 지나며 사서 배낭에 넣어가지고온 소주 한병을 꺼내여 잔에다 부어 아버지에게 권했다.

《너도 마셔라.》

《예.》하면서도 아들은 무릎을 꿇은채로 앉아있기만 했다.

《편안히 앉아라. 너 이 사람에게 술을 부어라.》 리종수는 울어서 눈이 부은 춘권의 처에게 말했다. 리종수는 후퇴도중에 죽은 춘권의 아들때문에 며느리가 운것이라고 짐작하고 탓하지 않았다. 그때 리종수는 전선에 나간 아들들마저 다 전사하면 가문의 대가 끊어질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으며 그 불안한 심정은 전쟁 전기간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맏아들이 돌아왔다. 이것은 대를 이을 종손이 곧 태여날수 있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는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뻤던지 격하게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목이 메여 《맏이가 돌아왔구나.》하는 말로 3년간 쌓이고쌓이였던 슬픔과 불안, 기대와 희망의 깊은 의미를 나타냈던것이다.

리종수는 부드럽고 순하고 마음어진 어머니의 피와 함께 성미드센 불같은 아버지의 피도 몸에 흐르고있었기때문에 그 혈기가 때로 불쑥불쑥 종잡을수없이 분출하군 했다. 술에 취하자 그가 갑자기 어성을 높이였다.

《네가 미국놈들과 그 졸개놈들을 몇놈이나 족쳤는지 모르겠다만 그 원쑤놈들을 다 몰아내지 못하고 항복도장이나 받아가지고 왔단말이냐?》

리춘권이는 아버지가 들에서 들어오기전에 면도를 해서 지금은 푸릿해진 턱을 쳐들며 놀란 눈으로 흥분한 그를 바라보았다.

《분통이 터져 죽겠구나.》하며 아버지는 집이 불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울분속에서 들려주었다.

가슴을 치는 리종수의 눈에서 주먹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춘권의 어머니도 춘권이의 처도 같이 눈물을 쏟았다. 모두의 가슴에 원한이 멍들어있었다.

리춘권이는 머리를 수굿한채 듣기만 했다.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어온 병사, 허나 표정이 돌덩이같이 굳어졌다 해서 피마저 굳어진것은 아니다. 피는 더 뜨겁게 끓었으며 부글부글 끓으면서 분출하지 못해 모대기는것이였다. 그는 먼 선조처럼 장수로 싸우지는 못했지만 병사로 싸우면서 수많은 원쑤를 죽이였다. 장수나 병졸이나 격전장에서 싸우기는 마찬가지였고 애국의 넋도 다를바 없었다. 그는 자기가 죽인 원쑤놈들의 수자를 알수 없었으나 속이 후련하게 싸웠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노라니 부끄러움을 느꼈고 기관총을 휘둘러대던 화선시절의 분노의 피가 다시금 끓어올랐다.

그가 아버지를 향해 얼굴을 들었을 때의 사납게 번뜩이는 눈찌는 신통히 할아버지 같았다. 조용히 물었다.

《양가놈이 다시 남으로 도망갔습니까?》

《인민군대가 나오자 선참으로 내뺐다.》

리춘권이는 이발을 부드득 갈았다.

이튿날 아침 조반을 먹은뒤 리춘권이는 리당위원회가 있는 원동으로 가서 리당위원장을 만났다. 세포위원장을 하던 유근재가 걸상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너 춘권이구나!》

《근재형님!》

《잘 왔다. 지금 제일 귀한것이 사람이다. 토지가 황페화되고 집들이 불에 타고 소와 로력이 부족한 애로보다 손잡고 일할 핵심이 부족한것이 제일 큰 애로야. 잘 왔다.》

유근재가 방안이 떠들썩하게 자기의 기쁨을 터치였다. 그는 리춘권이에게 리내 형편을 알려주었다. 청산리는 읍이 지척이고 평양과 남포 중가운데 있어서 옛날부터 장사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종교를 믿는 사람도, 해방후와 전쟁시기 반동단체에 가담한자들, 월남자와 처단자가족도 있었다. 반면에 핵심들은 전선에 나갔고 전사했고 고향에서 수다히 피살되였다. 적들이 준동하고있다.

인사말들이 끝난 후 춘권이는 이 고향마을에서 좀 할 일이 있다며 유근재의 동의를 구했다. 그는 리당에서 곧장 고향집터를 찾아갔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새 흙이 덮여 불탄 흔적들이 많이 가시여졌고 그우에 잡초들이 무성해져 지난해의 묵은 풀대들이 차거운 이른 봄바람에 흔들거리며 아츠러운 소리들을 내고있었다.

리춘권이는 잠간 서서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어린시절의 한토막을 추억하였다. 그처럼 엄하신 할아버지가 뜻밖에도 3대종손인 춘권이가 수염을 만져보는것을 허락했고 재미스러워하였다. (할아버지는 참 좋아.) 그는 이렇게 속으로 감탄했었다. 이런 추억도 떠올랐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네 집을 다녀가신 날 저녁에 할아버지는 원동과 린근에 사는 리씨의 일가와 친척들을 다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문의 모든 사람은 김일성장군의 휘하 친위병들이란걸 명심해라.》라고 말했다.···

리춘권이는 가까운데 있는 농가에 가서 곡괭이와 삽을 빌려왔다. 그리고 조상의 유물인 장검과 투구, 갑옷들을 건사해둔 장농이 있었음직한 곳을 중심으로 페허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원동에 사는 삼촌과 그밖의 친척들에게 인사하기전에 먼저 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볼 결심이였는데 꼭 장검을 찾아들고 가려고 마음먹었다. 장검은 불에 타지 않으니 남아있을것이다. 장검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다 삭은 재봉기대가리, 깨진 거울 쪼박, 장농열쇠 따위들은 삽에 걸려나왔으나 어찌된 일인지 장검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가던 원동마을사람들이 그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고 친척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인사말들과 상봉들이 다 귀찮았다. 그는 점심도 건느며 꾸준히 뚜져나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리춘권이에게 행운이 차례졌다. 칼집과 손잡이가죽이 다 타버리고 강철부분이 새까맣게 녹이 쓴 알몸만 남은 장검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리춘권이는 팔소매로 이마에 내밴 땀을 씻으며 숨을 크게 내쉬였다.

《아, 찾아냈다! 네놈들이 할아버지의 넋은 못 죽여!》 그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그는 군대솜옷안에 장검날을 감추어가지고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는 황산을 찾아갔다. 긴 세월이 흐르며 황산에는 가문의 무덤이 많이 생겼다.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들의 유골을 합장한 커다란 봉분아래로 리준형의 어머니항렬의 무덤이 몇개있고 그아래로 리준형이와 로친의 무덤이 둥그렇게 솟아있었다. 그밖에 봉분이 몇개 더 있었으나 춘권이는 다른것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고 리준형지묘》라고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는 무덤앞에 이르러 춘권이는 상돌우에 장검을 내려놓고 준비해가지고온 술을 술잔에 부어 같이 놓았다.

《할아버지, 춘권이가 왔어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눈굽이 확 뜨거워났고 뒤이어 어쩔새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는 술을 전부 묘소에 뿌리였다. 무슨 새들일가? 이름모를 새들이 이 나무가지에서 저 나무가지로 포르릉포르릉 날아다니며 슬피 울어댔다. 혹시 할아버지의 령혼은 아닌지?··· 그는 새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개울가에 앉아 숫돌 비슷한 돌을 찾아가지고 거기에 장검날을 갈았다. 한시간정도 갈자 녹이 벗겨지고 광택이 살아났으며 무딘 날도 어느정도 예리해졌다.

그는 장검을 솜옷안에 넣어가지고 그길로 유근재를 다시 찾아갔다. 춘권의 얼굴은 말이 아니였다. 눈에 피가 지고 입술은 깨물어 부풀어올랐고 피가 맺혀있었다. 그는 장검을 유근재의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유근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가 페허속에서 장검을 찾아내여가지고 황산으로 갔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렇지만 알몸만 남은 장검을 보니 스산했다.

《나는 이 장검을 찾아냈어요.》

《···》

《이 장검을 가지고 할아버지의 묘를 찾아갔댔어요.》

《···》

《이 장검으로 원쑤들의 목을 베여버릴수 없는것이 분통하오. 전쟁마당이라면 〈치안대〉에 가담한자들을 몽땅 쏴갈기련만!···》

칼을 보지도 않고 창밖으로 눈길을 주고있던 유근재가 조용히 타일렀다.

《여기서는 다르게 원쑤를 갚아야 한다. 장검을 치워라.》

춘권이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춘권이는 조합에 들어 일하는 한편 틈틈이 오동나무를 구해다 칼집을 만들고 노루가죽을 칼집과 손잡이에 씌워 원상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어느정도의 수복을 했고 칼날을 선들선들하게 갈아 장농속에 깊이 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