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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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에 대한 장영덕의 평가는 비교적 좋았다. 그가 속해있던 이전 동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이 통합을 앞두고 장영덕이에게 그에 대해 좋게 말했다. 작업반장을 시켰더니 씨원씨원하고 관리위원장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물고 일을 전개한다는것이였다. 사람이 좀 과격하고 우락부락해서 작업반원들한테서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일을 하자니까 뒤말을 아니 들을수 없다, 반원들을 다 만족시켜줄수야 없지 않는가, 그만한 반장재목도 쉽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장영덕이 불러서 담화를 해보니 우락부락하기는커녕 어찌나 싹싹한지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사실 장영덕이 그의 진모를 다 알수 없었다. 작업반원들에게 호령질을 잘하는 그는 간부들앞에서는 정반대로 고분고분하며 대단히 겸손한체 하였다. 동산마을 신약수터에 개인이 경영하는 려관이 하나 있었다. 먼곳에서 약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며칠씩 묵어가는 려관이였다. 이 려관이 사회주의적개조와 함께 동산협동조합에 흡수되였다. 이전 녀주인이 그대로 경영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박진섭의 작업반에 배속되였다. 개인재산이 협동단체재산이 된것이였다. 물론 박진섭은 그 녀주인이 하는 사업에 내용적으로 참견할수 없었고 려관에서 번 돈에 대한 처리권한도 없었으므로 그 돈은 곧장 관리위원회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박진섭은 자기 반원이 경영하는 려관에 가서 매일이라도 술을 마실수 있었다. 박진섭은 자기만 뻔질나게 드나들뿐아니라 이전 관리위원장도 자주 청해다가 술과 단고기장국을 대접했다. 그 관리위원장이 장영덕이에게 진섭이를 칭찬하며 좋게 말해준 까닭이 있는것이다.

장영덕이 이런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래서 통합을 할 당시 동산마을이 두개 작업반으로 되면서 그 작업반장들을 물색할 때 장영덕이 그를 12작업반장으로 제기했던것이다. 리당위원장 유근재는 장영덕의 제기에 인차 동의하지 않았다. 군중의 신망이 없다는 평가가 붙어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장영덕이 우겨서 그대로 되였던것이다.

커진 작업반의 반장이 된 박진섭은 큰 벼슬이나 딴것처럼 우쭐렁거렸고 제왕처럼 행세했다. 려관출입도 더 잦아졌다. 려관에 가서 하는 간부접대사업이 늘어났다. 12작업반에 갔다 오는 군의 일군들은 하나같이 그를 칭찬했다. 점심대접을 잘하는데다가 박진섭이 여간 싹싹하지 않게 구니 말이다. 장영덕이나 유근재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관리위원회 지도원들은 쩍하면 12반에 내려가군 하였다.

박진섭이는 이전 작업반장을 할 당시에는 인원이 적어서 논밭일에서 빠져나가기가 헐치 않았었다. 싫든좋든 한겻정도라도 같이 일을 해야 하였다. 그러나 작업반이 몇배로 커지고 밑에 분조장들까지 거느리고있는 지금은 인원도 많고 작업대상도 넓어서 구실이 좋았다. 아침에 분조장들에게 지시를 주고는 이 분조, 저 분조하는 식으로 돌아다녔고 조합창고에 물자 타러 갑네, 관리위원회에 회의갑네 하고 언제든지 작업장을 리탈할수 있었다. 얼마나 좋아졌는가. 이전보다 훨씬 쉬워보이였다. 로력점수를 매 사람 매일 매기는것이 좀 시끄러운데 분조장한테 물어보면 될것이고 물어보지 않아도 누가 얼마큼 일했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그는 로력수첩을 거두어 자기 집 책상에 가져다놓고 처음에는 매일 매기다가 좀 지나서는 닷새에 한번, 좀 지나서는 열흘에 한번정도 매기였다.

분조장들이나 작업반원들은 그를 두려워하였다. 광대뼈가 주먹처럼 불거지고 눈이 큰 진섭은 쩍하면 화를 냈고 욕을 퍼부었다. 작업반원들은 될수록 그를 피하려 했다. 그도 작업반원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반장이면 간부인데 일반 작업반원들과 같이 행동할수 없으며 그들의 우에서 지시를 해야 한다고 자처하고있기때문이였다.

뒤에서 반원들이 수군수군했다.

두엄을 쳐내는 작업을 하는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반원들이 반장을 흉보았다.

《반장은 게사니고기를 먹고 다니는가, 꽥꽥거리긴 왜 꽥꽥거려.》

《려관에 가서 술안주로 게사니뼈다귀를 뜯는 모양이지.》

《하ㅡ하ㅡ》

《우리 반장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소.》하고 빈지게를 진채 무릎을 꺾고앉아 마라초를 피우며 기호라는 사람이 말했다. 그는 두눈이 가늘고 령리하고 말을 조리있게 차근차근 잘하는 사람이였다. 《작업반장이면 들에 나와 같이 일해보면서 누가 일을 많이 했고 누가 일을 적게 했는가, 누가 하는 일이 힘든 일이고 누가 하는 일이 쉬운 일인가 다 가늠해서 로력점수를 주어야 하겠는데 한바퀴 돌아보며 꽥꽥 욕설만 퍼붓고는 해가 지기도전에 려관에 찾아들어가 뜨뜻한 구들에 엉치를 붙이고 술이나 마시고 로력평가는 제 집책상에 앉아서 누구는 원래 일을 잘하니까 1.3공수다, 누구는 원래 몸도 약하고 일도 잘못하니 뻔하다, 0.8공수다 하구 짐작으루 매긴단 말이요.》

같이 담배피우던 로인이 코끝에 매달려 추위에 떨고있는 맑은 코물을 손바닥으로 훔쳐 바지에 문대기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듣고보니 그렇군.》로인이 수긍했다.

그런데 기호는 자기의 입덕을 단단히 보았다.

그의 형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치안대》에 들어가 만행을 하고 남으로 도주한자이다. 한편 꾀가 있는 기호는 대세의 흐름을 관망하다가 《치안대》에 들든지 어쩌든지 하려고 형을 선뜻 따르지 않았다. 그는 《공화국이 망했다.》라는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세상일이란 알수 없다.

이렇게 타산한 기호는 《치안대》에 들라는 성화를 피하여 다녔지만 나중에는 어쩔수없이 《치안대》완장을 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미군이 밀려났으며 전쟁도 멎었다. 그는 《치안대》노릇을 마지막며칠간 했고 그것도 경비 서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떳떳치 못했다. 그는 며칠을 뻗치지 못한것이 한스러웠다. 그런데 만행을 하고 도주한 형때문에 그의 《치안대》가담죄는 두드러졌다. 그는 체포되여 내무서에 감금되였으나 곧 석방되였다. 그러나 앞길이 콱 막혔다. 그의 가정이 너무 죄를 많이 졌다. 그는 《치안대》에 의해 피살된 당원가족들의 피발이 선 눈길을 피해다녔다. 그러나 공화국정권은 관대하였으니 형의 죄를 동생에게 묻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치안대》완장을 꼈던 그를 형의 죄와 명백히 구분했으며 그에게도 꼭같은 공민의 권리를 주었다. 일하며 살아갈수 있게 했고 선거권도 주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다른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 기호는 일을 잘하여 보답하는 길밖에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리하여 한시기 도박에 미쳐다니기도 했고 겨울이면 뜨뜻한 아래목에 누워 늦잠을 자군 하던 그가 협동조합에 들어 열성을 다해 일했다.

일을 잘했지만 본능적인 결함도 있었다. 지내 령리했었다. 자기가 일 잘한다는것을 반장이나 관리위원장이 알아주었으면 하였으며 그러다보니 로력점수에 신경을 썼다. 그는 일을 무리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성과를 올렸는데 그것이 꾀를 부리는것처럼 박진섭반장에게는 인정되였다. 그는 차츰 박진섭이에게 불만을 품었고 마침내는 로력점수 매기는 문제를 가지고 반장을 걸고들었던것이다.

기호가 마라초를 피우며 같이 일하는 로인에게 한 말을 누가 엿들었는지 진섭이의 귀에 들어갔다. 작업반원들속에는 진섭의 친척도 있었고 로력점수를 잘 받으려고 아첨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튿날 기호가 역시 짝패인 로인과 같이 두엄을 쳐내는 일을 하고있는데 진섭이가 나타났다. 어제 저녁에 술을 지내 마셔 곯아떨어졌던 그는 아침에 해정술을 마셔서 얼굴이 뻘건데다가 성이 독같이 올라 마치도 소낙비를 잔뜩 안고있는 먹장구름같았다.

《야 기호, 너 뭐라구?》 우뢰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어쨌다구? 로력일평가를 책상에 앉아서 한다구?》

《그나마두 매일 해주면 좋겠소.》기호도 약이 올라 대꾸질을 했다. 《열흘씩 묵이니까 일할 멋이 있소?》

《너 그래서 일에 꾀를 부리니?》

《뭐요?》

《너 가래질할 때 줄당기는 녀자들만 힘쓰게 하구 자기는 가래장부를 하면서 힘을 아끼는걸 내가 못 본줄 알아?》

기호는 기가 막혀 입을 벌리고서 반장을 쳐다보기만 했다. 기호는 일을 무리하게 하지 않았다. 가래질을 할 때 줄당기는 녀자들이 힘의 균형을 맞추게 잔소리를 하였고 가래날을 깊이 박지 않았다. 그래 얼핏 보면 꾀를 쓰며 힘을 아끼는것 같았으나 그와 같이 가래질을 하는 녀자들은 힘든줄 모르면서도 남들 못지 않게 능률을 내군 하여 좋아했고 그자신도 물론 일에 재미나하였다. 그러나 반장은 꾀를 쓴다며 로력점수를 적게 매기군 했다. 그러니 어찌 억울하지 않으며 또 어찌 불평을 터뜨리지 않으랴.

《왜 바람먹은 붕어모양으루 입만 벌리고있어? 야!》하고 진섭이가 소리질렀다. 《그러면서두 반장이 뭐 해지기전에 려관방에 들어가 뜨뜻한 구들에 앉아있다구? 반장이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네놈이 알아? 흙을 주무르구 두엄지게를 져야만 일인가. 그런 일은 너따위가 할게구 반장은 조직사업을 한단 말이다. 야, 너같은것들은 입만 까져가지구 남을 시비하구 반장을 헐뜯기전에 제 처지나 잘 생각해봐야 해.》

《제 처지?》

《그렇다. 후퇴시기에 너는 뭘했니? 또 네 형은 어떤 원쑤냐? 생각만 해도 눈에서 불이 인다! 넌 입이 열이라두 할 말이 없다. 주둥이를 작작 나불거려. 재미없다.》

《그럼··· 나는··· 의견도 말 못하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기호의 입술이 푸들푸들 뛰였다.

《너따위는 말할 자격이 없어. 일만 하란 말이야.》

기호의 두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리고 말없이 거리대질을 시작했다.

반원들은 반장의 과격하고 조폭한 욕설에 대해 각이한 반응을 보이였다. 박진섭이는 속이 후련해져서 홱 돌아서서 가버리였다.

소낙비를 퍼부은 먹장구름이 물러가듯이 우뢰소리도 멎었다. 그러나 기호의 귀에서는 천둥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아, 내가 머저리지··· 어리석었다.··· 말 못하는 짐승처럼 되여야 하는건데! 그래두 같은 조합원이니 발언권이 있다고만 생각했지. 아니야, 아니야.···)

그는 자기의 처지를 다시 명백히 인식하였다. 그래도 자기는 량심적으로 일했고 량심적으로 말했는데 일하는건 일없지만 말하는건 안된다고 한다. 만일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박진섭반장이 그렇게 모욕적인 욕을 하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렇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처지가 다르다는것을 망각했었다.

리당위원장 유근재가 박진섭이를 저녁에 불렀다.

《동무, 그게 뭐요? 반장사업에 대해 반원이 말할수 있지. 물론 뒤에서 시비질한건 틀렸소. 그러나 접수해야 할 내용이 없는가? 동무에 대한 군중의 여론이 좋지 않소. 이자 반장사업을 시작한지 서너달 되나마나한데 폭군처럼 행세한단 말이요. 통합되기 전부터 계산하면 반장을 몇해 잘했는데 처음에는 말이 없더니 차츰 여론이 돌기 시작했소. 그러다가 큰 작업반의 반장이 된 다음부터는 무슨 큰 간부처럼 행세한단 말이요.》

《···》박진섭이는 꼿꼿이 서서 욕을 먹었다.

《그러나 가장 엄중한것은 기호 보고 제 처지를 잊지 말고 일이나 잘하며 입을 다물고있으라고 협박한거요. 가정주위환경과 경력이 복잡한 사람들이 작업반에 더러 있는데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는가? 당의 군중로선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문제를 그저 스쳐보낼수 없소.》

눈이 큰 사람이 겁이 많다고 하는데 진섭이는 더럭 겁이 나서 얼굴이 하얘졌다. 잘못하면 그 좋은 반장자리를 떼울수도 있겠다.

《위원장동지, 잘못했습니다.》

그는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비판서를 쓰시오. 사실 동무는 작업반장자격이 없소. 그러나 처음이니까 용서하는데 비판서를 어떻게 쓰는가 하는것을 참작하겠소.》

《알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반장자리를 떼지 않는다면 유근재의 발바닥이라도 핥을 박진섭이였다.

진섭이가 기호에게 분노를 터뜨려 뿜었던 욕설은 순식간에 동산, 황산, 석우 등 여러 마을들에 나쁜 여론이 돌게 하였다.

《그러니까 공화국정권은 겉으로는 복잡한 군중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지는 믿지 않는군?》

아들이 로동교화소에 들어가있는 외팔이로인이 길가에서 만난 처지가 비슷한 다른 수염쟁이로인에게 하는 말이였다.

《진섭이가 무슨 공화국정권인가?》 이쪽의 심드렁한 대답이다.

《대담배나 한대 주우. 령감은 외팔이여서 권연을 가지구 다닌다더군.》

외팔이로인은 권연을 내주며 눈물이 질쩍한 상대를 경멸에 찬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몇대 남지 않은 누런 이발을 드러내며 깨우쳐주듯 말했다. 《동산 12반에서는 진섭이가 정권이야.》

《걔가 아이적부터 좀 갈갰지.》

이쪽의 대답이다.

장영덕은 리당위원장이 진섭이를 불러다 되게 비판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자기가 또 그를 불러대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사가 좋지 않았다. 작업반에 내려가 만나면 늘 곰상스럽게 굴고 늦어지면 려관으로 안내하여 점심이나 저녁대접을 시키는 진섭이였고 관리위원회 회의에서도 늘 장영덕을 지지해나서는 진섭인데 어떻게 되여 그런 조폭한 언행을 할수 있는가, 작업반원들을 틀어쥐고 일을 내미는것은 좋은데 지나친것 같다, 좀 연구해봐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있는데 저녁에 진섭이가 관리위원장을 찾아왔다.

유근재한테서 욕을 먹은 뒤라 끓는 물에 데쳐낸 배추잎처럼 축 처지고 기가 죽었다. 진섭이는 말없이 자기를 쏘아보는 장영덕이에게 울먹울먹하며 용서를 빌었다. 어떻게나 처량한 목소리로 자기 비판을 하고 결의를 다지는지 오히려 그에게 동정이 갔다.

《자기비판서를 쓰라고 했다는데 썼나?》

장영덕은 일부러 엄하게 물었다.

《쓰는중입니다.》

《잘 쓰라구. 그다음 보겠어.》

《예. 정말 한번만 용서해준다면···》

《가보라는데!》

진섭은 뒤걸음질을 쳐 물러갔다.

장영덕이 밤에 퇴근하여 집에 가니 안해가 하는 말이 진섭반장이 몸이 약한 관리위원장의 보신에 쓰라고 하며 깜장닭 두마리를 가져왔다고 하였다. 아마 그 닭들을 여기 두고 관리위원회에 찾아와서 용서를 빌었던것 같다.

(흥, 이게 보통 수완군이 아니군.)

장영덕은 진섭을 반장자리에서 떼든가 무슨 책벌을 준다는것이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섭이가 자기의 몸을 긴팔로 뱀처럼 휘감고있는듯 했다.

그는 처를 시켜 두마리의 닭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리합숙에 가져다주었다.

이튿날 유근재가 찾아와서 박진섭이 문제를 토론에 붙이였다.

《군중들에게 주는 영향이 나쁘단 말이요.》 유근재가 말했다. 《당세포회의에서도 비판이 되였소.》

장영덕은 입이 쓰거운지 담배만 피웠다.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란폭하게 행동할줄 몰랐소.》 이윽하여 그가 말했다. 《교만해졌단 말이요. 그래 비판서를 써왔습니까?》

유근재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장영덕이 읽어보니 어찌나 성실하게 자기비판을 했는지 감동될 정도였다.

《허··· 비판서는 잘 썼구만요.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이요?》 장영덕이 유근재를 쳐다보았다.

《처음이니 용서해줘야지요.》

《예, 옳습니다. 사실 기호가 먼저 잘못했지요. 반장의 뒤소리를 했으니까 그걸 듣고 기분이 좋을탁 있겠소? 어쨌든 두사람 다 교훈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요.》

그러나 두사람사이의 반감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서로 소 닭보듯 했다. 그래도 그 정도라면 괜찮겠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진섭의 말없는 박대가 심해졌고 기호는 기호대로 반발심을 참느라니 사는것 같지 않았다. 세상이란 참 살기 힘들다. (그는 울적해서 한탄하는것이였다.) 미국이 전쟁은 왜 일으켜서 서로 죽일내기를 하고 죄를 짓게 하는가. 또 왜 저 살고싶은대로 살라고 내버려두지 않고 조합에 넣어가지고 진섭이 같은것한테 천대를 받아야 하는가. 이 세상에 태여난것자체가 한스럽다. 하지만 태여났으니 좋든싫든 한생을 살아야 하는것이다. 당장은 저 진섭이를 피해서 살수 없을가? 그는 몇번이나 재며 주저하다가 초급당단체위원장을 만나 자기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인정이 있다고 소문이 난 암화1작업반장 문영숙이한테 가서 일했으면 하는 심정이였다. 그것이 곧 유근재에게 반영되였다. 한편 진섭이도 기호가 싫어서 장영덕이에게 다른 작업반에 그를 옮겨달라고 제기했다.

《뭐가 어째? 동무가 작풍을 고치고 화해를 하면 되는것이지 같이 일 못하겠다는건 뭐요? 비판서를 헛썼구만? 군소리 말고 기호와 화해를 하오.》 장영덕은 겉으로만 이렇게 큰소리를 쳤을뿐이고 어디까지나 그를 살려주자는 립장이였다.

유근재가 기호의 제기를 들고 찾아왔다.

두사람은 심중히 토론하였다. 결과적으로 기호를 1작업반으로 돌리기로 락착을 보았다. 그렇게 하면 진섭이의 요구도 들어주는것으로 된다.

그런데 문영숙이가 기호를 받자고 하겠는가? 사람을 띄워 문영숙을 부른 장영덕은 손으로 이마를 고이고 앉아서 진섭이와 관련된 지나간 사건을 두루 돌이켜보며 문영숙이가 또 어떻게 나올지 몰라 걱정에 잠겨있었다. 농사 짓기보다 사람들의 관계문제가 더 머리아픈것 같았다.

똑똑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장영덕은 이마에서 손을 떼고 《예, 들어오시오.》하고 응답하였다.

문영숙이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언제 보아야 웃는 얼굴이고 환한 인상이다. 그렇지만 맵짤 때는 여간 맵짜지 않다.

《반장동무, 앉소. 12작업반에서 벌어진 일을 들어서 알고있겠지?》

《예, 알고있습니다.》

장영덕은 진섭이와 기호를 갈라놓아야 할 사정 그리고 기호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그래, 1반에서 기호를 받겠소?》

《받지 않구요.》 문영숙이 즉시에 응했다.

장영덕은 한숨이 쑥 나갔다.

《고맙소.》

《고맙게 생각하는건 접니다. 남자로력이 한사람 늘게 되지 않았습니까.》

《음, 영숙동무는 참···》 장영덕은 그가 너무 기특해서 무어라고 칭찬해야 할지 몰랐다.

박진섭이와 문영숙은 품성이 판판 달랐다. 기호가 진섭이한테서 떨어져나와 영숙이한테로 간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런데도 장영덕은 문영숙을 칭찬하는것처럼 진섭이도 내세워주게 되는것이다. 영숙이 같은 작업반장이 필요했지만 진섭이 같은 작업반장도 필요했다. 마치 손바닥과 손잔등이 정 반대방향을 이루고있지만 합해서 한손을 이루고있는것처럼.

이튿날부터 기호는 1작업반에 속하여 먼 동산에서 암화로 점심밥을 싸들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