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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렬차는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경성역을 지나고 길주역을 지나고 김책역을 지난다. 함경북도는 뒤로 멀어지고 함경남도가 앞으로 가까와진다.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총화해보면 가장 기본적인것은 내 나라, 내 조국을 사회주의의 부강한 공업국가로 그것도 짧은 시일내에 건설할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게 되신것이였다. 이 기간에 수령님께서는 함경북도의 성과를 직접 보시며 또 출판보도를 통해 강선제강소 진응원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쟁취하였다는 내용을 비롯하여 그 기간에도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혁신의 경이적인 소식들을 보고 들으시며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지시였다. 이것이 중요한것이였다. 그리고 전진도상에서 나타났으며 아직 극복되지 못하고있는 결함들을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더 빨리, 더 좋게 사회주의건설을 촉진시킬 전망을 펼치였다. 이것이 더욱 중요한것이였다. 가슴아픈 일, 분노를 자아내는 현상이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함경북도에 내한성이 강한 작물을 심으라 하였는데 알곡이 위주요 무엇이요 하며 당의 농사방침대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 어떤데서는 잘되지도 않는 벼를 심는다고 논을 풀었는데 벼가 안되니 다시 피를 심었다. 농민들은 시키는대로 논을 푸느라 고생하고 또 논을 밭으로 만드느라고 고생하였다. 회령읍에는 국수집이 하나밖에 없어 국수 한그릇 사먹기 위해 늙은이, 녀인,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그전에는 개인의사들이 읍에 고려병원이요, 소아병원이요, 고려약국이요 하는것을 많이 차려놓았는데 지금은 군병원과 진료소밖에 없다. 그런데다 의료일군들이 친절하지 못하고 봉사성이 높지 못하며 약품도 제대로 마련해두지 않고있다. 화대군에서는 농민들이 무우를 많이 생산해놓고 팔지 못하여 애를 먹었지만 청진시에서는 무우가 적어서 로동자들이 김치를 제대로 담그지 못하였다. 개인장사군들 같으면 돈벌이를 위하여 그 무우를 어떻게 해서라도 다 청진에 끌어갔을것이다. 지난날에는 이런 일을 자본가나 장사군들이 하였다면 오늘은 인민위원회가 책임지고 하여야 한다.

일군들속에서의 관료주의는 아래에 내려가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서 무엇을 하라고 내려먹이기만 하는데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있었다. 군인민위원회일군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제멋대로 계획을 세워 떨구었다. 그래서 수수를 심을 밭에는 강냉이를 심으라고 하였으며 감자를 심을 밭에는 수수를 심으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니 농사가 잘될수 없다. 관료주의는 농업성에도 있다. 이번에 내려와보니 성일군들은 현지에 내려와보지도 않고 중앙에 앉아서 목장을 합치라, 어째라 하고 지시하였다. 아래에서는 농목장을 쓸데없이 합치느라 야단을 쳤다. 인민의 세상인 사회주의제도가 섰는데 왜 함경북도가 농사를 잘 짓지 못했고 인민생활이 뒤떨어져있는가, 왜 사회주의사회의 본성과 어긋나는 참을수 없는 현상들이 빚어지고있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번 현지지도과정에 그에 대한 대답을 더 명백히 찾을수 있으시였다.

무엇보다도 일군들이 우리 나라에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였다는것을 명백히 인식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지난 시기의 조건과 환경에서 몸에 밴 낡은 사업방법과 작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깨여났다고 할가.

또한 인민생활을 책임진 주인이라는 확고한 관점에 서있지 못했다.

수령님께서 함경북도일군들에게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전에는 우리 농민들이 개인농민들이였다. 개인농민들은 생산하고싶은것을 마음대로 생산하고 소비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들이 다 한가정에 단합되였습니다. 한개 리가 한가정이 되였습니다. 그 한개 리의 호주가 리인민위원회이며 당단체와 협동조합관리위원회입니다. 이 호주가 모든 농사일을 계획적으로, 책임적으로 조직하여야 합니다. 그전에 개인기업가, 상인들이 제멋대로 하던 생산과 류통사업을 오늘에 와서는 인민위원회가 조직하고 계획하고 지도해야 합니다. 인민위원장이 일을 잘하지 못하면 인민들이 굶고 남새가 없고 기름이 없고 집을 수리하지 못하게 되고 상점에 물건이 나오지 않게 되고 인민들이 병을 제대로 치료받을수 없게 됩니다. 동무들이 발전하는 현실에 지도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명백히 알아야 한다. 주인이라는 자각이 없는 일군에게서는 창발성도 헌신성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상적립장부터 바로 세워야 합니다.

동무들도 왜정시기에는 다 어렵게 살았고 반일투쟁도 했고 해방후에는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는데서 일을 잘했습니다. 그때 한자리씩 하게 되였는데 한자리를 하니 근본을 잊고 왜정시기 관리들처럼 행세하려듭니다. 자기가 앉은 자리가 높아보이고 인민들은 아득히 내려다보인단 말이요. 인민생활에 관심이 없는 자신들을 부끄럽게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인민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도중에 일군들을 비판하시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가령 웅기군(당시)에는 군종합농장을 창설할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를 밝혀주시며 젖소를 길러 젖, 빠다, 젖가루를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송아지고기와 오리고기를 대대적으로 생산하며 담수양어, 굴양식, 조개, 해삼을 비롯한 바다가양식과 고기잡이를 배합하면 군내인민들이 잘살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렇게 현지를 돌아보고 방향을 주시였는데 벌써 종합농장창설안이 그이께 제출되였다. 그이께서는 농장의 기구와 임무에 대해 밝혀주시였다. 일군들이 사상적으로 동원되면 되지 않는가! 일군들이 발동되면 된다.···

렬차는 동해선을 달리고있다. 창가림을 젖히니 흰갈매기가 날아들고 파도가 모래불을 핥고 바위에 부딪치며 웅글은 소리를 내는 바다가 펼쳐졌다. 볼수록 가슴이 활짝 열리고 담이 커지게 하는 동해엿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행한 일부 간부들과 담화를 나누시였다. 정준택 부수상, 리종옥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 강영창 당중앙위원회 중공업부장, 김만금 농업부장이 자리를 같이하였다.

《정치란 뭐요?》 그이께서 문득 이런 문제를 꺼내시였다. 《정치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말들도 하고 글도 쓰고있소. 정치는 권력의 쟁취, 그의 유지 및 행사라고 넓은 의미에서 정의하기도 하고 간단히 나라와 인민을 다스리는것이라 하기도 하오. 어떻게 말하든 모든 정치는 다 인민을 대상하고있소. 인민대중을 쟁취하느냐 못하느냐 하는데서 승패가 결정되거든. 자본가계급도 권력을 유지하여 더 많은 리윤을 짜내기 위해 무슨 〈복지사회〉요, 〈민주주의〉요, 〈법치〉요, 〈만민평등〉이요 하면서 근로인민대중을 기만하고있소. 인민을 착취하고 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인민의 편에 서는척 한단 말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는 철저히 자본가계급의 리익을 위해 국가와 인민을 다스리는것이요.

그러나 근로인민대중이 정치의 주인이 된 사회에서는 사정이 다르오. 정치가 인민의 리익에 철저히 복종하게 되였소. 우리의 정치는 사람들을 설복하고 쟁취하며 군중을 조직하고 동원하는것이요. 모두가 주인이 되였지만 선진분자와 락후분자가 있고 주인구실을 바로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소. 때문에 우리는 군중을 부단히 교양개조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워야 하며 또한 군중을 혁명과 건설에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동원하여야 하오. 이 사업을 맡아 수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간부들, 일군들이요.

나는 이번에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과정에 우리가 새 환경에 맞게 당 및 국가, 경제기관들의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결정적으로 개선해야 하겠다는것을 절감하였소. 사회주의제도가 섰다고 하여 일이 저절로 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 일군들은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지도방법을 결정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오. 김만금동무는 청산리에 나갔다와서 오늘 규모가 커지고 사업내용이 방대해진 협동조합을 관리운영하는데서 관리일군들의 조직지도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였소.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독촉이나 하고 욕이나 한다고 하였소. 농업성사업에서도 주관주의와 형식주의가 있는것 같소. 함경북도에 가보고 더욱 절감했으리라고 보는데 부장동무, 할 이야기가 없소?》

김만금이 자세를 바로 가지였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그는 두만강반의 마을 부포로 가는 진탕길에 빠진 승용차를 수원들과 함께 미시던 수령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는 수상님으로부터 부단히 배우겠다고 결의한바 있습니다. 이번 현지지도를 수행하면서 저는 무엇보다도 수상님께서는 찾아가시는 공장이나 협동조합들마다 거기서 오래 일하고있는 사람들이나 그곳 지도일군들이 늘 부닥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있는 문제들, 별치 않아서 누구나 범상하게 스치는 그런 문제들을 발견해내시고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도 제기하시는것을 보면서 느껴지는것이 많았습니다.》

그는 수령님께서 봉암협동조합의 한 농가의 부엌에 들어가 된장이 떨어져가고있는것을 보시고 관리위원회와 군인민위원회 일군들이 인민생활에 관심이 없고 자기 지방의 특성에 맞게 농사를 주인답게 짓지 못한다는것을 밝혀내신 내용, 또 자그마한 아마공장에서 만든 선반기를 보시고 전국적인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발기하신 내용 그리고 군당위원장과 군인민위원장들이 군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있는 웅기군의 진펄과 초원과 바다를 돌아보시면서 군종합농장을 건설할 구상을 펼치신 내용 등등을 념두에 두고 이와 같이 말했던것이다.

이것은 수령님의 천재적인 안목과 비상한 관찰력과 전개력을 말해줌과 동시에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인민들을 잘살게 하시려고 사색하시고 탐구하시는 그이의 헌신적노력과 높은 책임감이 가져온 결과라고 김만금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다만 이렇게만 말씀드리였다.

《저는 우리 일군들이 승용차를 타고 큰길로만 다니거나 공장과 협동조합에 내려가서도 빙빙 돌면서 현상적인것이나 보고 훈시나 몇마디 하는것으로 그쳐가지고는 도저히 의의있는 문제점들을 찾아쥘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시는 수상님을 수행하는 과정에 참으로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중도에서 막으시였다.

《누가 내 얘기를 하라나. 물론 현실에 내려가서 현실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러자면 어떤 립장과 관점, 안목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것을 시사받았다면 좋은 일이요. 그런데 부장동무는 함북도에 가서 무엇을 제일 느꼈소?》

《그에 대해서는 수상님께서 다 말씀하셨습니다. 수상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혁명을 하는가, 길이 나빠 차가 빠지면 걸어서라도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가보아야 한다고 하실 때 저의 가슴에는 눈물이 고이였습니다. 수상님께서 인민앞에 머리숙이고 사죄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들의 가슴을 찢는듯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묵묵히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파도이는 동해가 여전히 흘러지나고있었다.

리종옥이 불기우리해진 눈을 들고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수상님께서 방금 하신 인민적인 정치철학에 대한 말씀을 듣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사회주의정치에 대한 정의를 오늘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만금이 그의 말을 받았다.

《저는 일본에 가서 대학도 좀 다녀보고 쏘련에 류학가서 고급당학교도 다닌 사람으로 정치, 철학, 당사업 등 많이 배웠고 강의도 해보고 글도 썼지만 인민적인 정치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해보지 못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는것은 복잡하고 장기적인 사업이요. 밤잠을 자지 않고 일하며 부단히 결함과 오유들을 시정해나가면서 완성에 도달해야 할거요.》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소. 참으로 많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