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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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장의 로동자들은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토의하면서 모두 로력과 자금을 국가로부터 더 받지 않고 공장의 생산능률을 3배이상 높일것을 결의하고 지금 실천에 들어갔습니다.》

경성군에 있는 크지 않은 경공업공장인 아마공장의 당위원장이 수령님께 올리는 보고였다.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3배이상?!···》

《예.》

농업부장 김만금이나 중공업부장 강영창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원들은 이 녀성당위원장이 지나치게 허세를 부리지 않는가 생각할 정도였다. 특히 김만금은 수령님을 따라 함경북도의 공장, 기업소들을 돌아보면서 이곳 로동계급의 앙양된 혁명적열의와 기개에 탄복을 금치 못하던찰나에 이 공장에서 자체의 힘으로 생산능률을 세배이상 높이겠다고 결의했다니 더욱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위원장동무, 그렇게 할수 있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나?》

수령님의 물으심에 녀성당위원장은 상긋이 웃기만 했다.

《어디 공장을 돌아보자구.》

보아하니 수령님께서 직장들을 보아주시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여서 먼저 발걸음을 떼시며 하시는 말씀이였다.

녀성당위원장은 신이 났다. 공무동력직장으로 수령님을 안내하여 공장로동자들이 자체로 만든 공기마치를 보여드리는 그의 얼굴에는 끝없는 긍지와 함께 행복감이 어려있는것이였다.

《수령님, 저희들이 단능선반기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수집음이 더욱 짙어진 녀성당위원장은 자기들이 자체로 만든 선반기작업장으로 수령님을 안내해드렸다.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흥미를 가지시고 작업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시였다.

《아주 훌륭하오.》 그이께서 허리를 펴시였다.

《아마공장로동자들이 참 용감하오!》

얼굴이 환하게 달아오른 녀성당위원장은 얼굴이 더욱 벌개지며 다시 말씀드리였다.

《수상님, 저희들은 단능선반기를 만든 경험에 기초하여 만능선반기도 만들고있습니다.》

《만능선반기도? 이 동무들이 정말 간단치 않구만. 어디 가보자구.》

직장옆에 창고처럼 잇달린 림시건물이 작업장이였다. 허리를 굽히고서야 들어갈수 있기때문에 녀인은 퍼그나 망설이며 금방까지 환하던 얼굴에 별안간 주눅든 표정을 지었다.

《수상님, 여기서 만들고있는데··· 아직 볼만 한것이 못됩니다.》

《들어가보자구.》

수령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창고안으로 들어가시였다. 그안에서는 조립작업이 한창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조립되여가고있는 만능선반을 이모저모로 살펴보시였다.

《대단하오. 이 선반기를 동무가 조립하오?》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며 그이께서는 채양이 꺾어진 작업모를 쓰고 스파나질을 하던 로동자에게 물으시였다.

《예. 제가···》 로동자는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동무의 직종은 뭐요?》

《기계수리공입니다.》

《여기에 기계박사가 있었구만. 응?》

수령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만족하신 얼굴로 수행원들을 돌아보시였다.

《당위원장동무, 금년에 선반기를 몇대나 만들겠소?》

《50대를 만들려고 결의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깊은 감동에 젖어 머리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오시였다. 공장건물을 둘러보며 격정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대단하오. 훌륭하오. 동무들은 아주 용감하고 대담하오.》 그이께서는 옆에 서있는 당중앙위원회 중공업부장 강영창에게 말씀하시였다. 《이 공장을 다 견학시켜야 하겠소. 귀중한 싹이요. 이런 식으로 모든 공작기계들이 새끼치기를 할수 있을거요. 귀중한 경험이요. 이 모범을 따라 전국적으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벌려야 하겠소.》

수령님께서는 이 공장은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받들고 기술신비주의와 투쟁하여 승리한 공장의 하나라 하며 치하를 아끼지 않으시였다.

우리가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기계제작공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정책을 내놓았을 때 평양주재 동유럽의 어느 한 대사는 의아해하면서 조선에서 공작기계를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는 비행기공장 기사장을 하던 사람인데 기계전문가로서 우리 나라의 공업력사와 기술수준을 보고 말했을것이다. 그렇게 말한 그가 기계공장도 아닌 이 작은 경공업공장에 와본다면 경악을 할것이다.

우리 로동자, 기술자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일군들이 로동계급의 창조적열의를 어떻게 불러일으키며 조직동원하는가 하는데 비결이 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기간공업의 중요한 기지의 하나인 함경북도의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이곳 로동계급의 기세가 대단히 앙양되여있음을 느낄수 있었으며 지난해보다 배이상의 생산을 낼것을 결의하고 돌격전을 벌리고있음을 보게 되시였다. 김책제철소 제1호, 제2호 용광로와 제2호 해탄로의 조업식준비가 끝나 수령님께서 도착하시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함북도를 현지지도하시는 기간 매일 따라오는 《로동신문》은 전국적인 로동계급들의 투쟁소식을 전하며 그이의 기쁨을 더해드리였다.

ㅡ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첫 봉화를 든 강선제강소 진응원작업반이 전기로중보수시간을 종전에 비해 다섯시간단축하는 혁신을 일으킨 소식.

ㅡ 진응원에 이어 룡성기계공장 청년조기직장 주성일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에 궐기한 소식. 그들은 집체적지혜를 동원하여 일체 작업공정을 기계화하고 선진작업방법을 도입하여 부단히 기술혁신을 일으킴으로써 로동생산능률을 지난해에 비해 3.2배로 높여 1차5개년계획을 금년내로 완수할것을 결의. 당면하여 제기된 흑색야금공업 설비품과 농촌의 기술혁명에 필요한 설비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여 공급할것을 결의···

수령님께서는 경성에 오시기 전에 성진제강소, 청진제강소, 라남기계공장, 김책제철소 등 대규모의 금속 및 기계생산기지들을 돌아보시였는데 립철을 생산하는 청진제강소에서처럼 생산과 건설 등 일을 잔뜩 벌려놓고 마치 두손에 떡을 쥐고 어느것부터 먹어야 할지 당황해하는것과 같이 중심고리를 쥐지 못하다보니 생산에서 파동이 생기고 계획을 미달하는 현상이 나타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공업부문의 일이 잘되고있었다. 공업은 벌써 해방후에 국유화되여 사회주의적방법으로 경영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부터 경험이 축적되여있었고 또한 로동계급의 의식수준이 높았다.

수령님께서는 수원들속에서 김만금을 가까이로 부르시였다.

《김만금동무, 이 아마공장을 돌아보니 어떻소?》

김만금은 그이께서 왜 이런 물음을 하시는지 그 의도를 제꺽 판단했다. 그러지 않아도 느낌이 컸기때문에 기회를 보아 말씀올리려 했던 김만금이였다.

《로동계급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로동자들의 자각적열의도 비상하거니와 공장지도일군들이 그 열의를 옳게 조직동원하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가 협동조합들에서의 관리운영사업이 생산자대중의 열의를 북돋아주는데로 지향되고있지 못하는 현 실정을 념두에 두고 말하고있다는것을 감득하시였다. 사실 김만금은 수령님을 수행하여 농업협동조합들을 돌아보며 우리 농촌경리가 안고있는 문제점들을 더욱 깊이 파악하면서 당농업부장으로서의 자기 할바를 바로 못했다고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함경북도안의 공장, 기업소, 탄광, 수산사업소, 농업협동조합, 학교들을 쉬임없이 현지지도하시면서 수행하고있는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 도와 군의 책임일군들에게 부단히 깨우침을 주시고 그들의 안목을 틔워주시였다.

한달 가까운 기간 함북도의 곳곳을 찾아가시는 수령님의 현지지도로정 그자체가 일군들에 대한 교양이였고 교육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연경제적조건이 불리하여 인민들의 생활이 추서지 못한다고 하는 웅기군(현재 라선시의 선봉지구)에도 찾아가시여 호수와 진펄을 돌아보시고 이 고장 토배기 로인들을 만나 방도를 의논하시였으며 바람이 세차게 부는 우암산에 오르시여 쌍안경으로 두만강하구의 모래불과 새초밭들을 살펴보시고 이런 말씀을 남기시였다.

《아주 특이한 자연이요. 욕심나는 땅이요. 동무들의 눈에는 저 진펄이나 모래불, 산과 늪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눈에는 내 조국의 귀중한 살점들처럼 보이오. 이 거치른 땅도 애착을 기울이고 땀을 바치면 훌륭한 풀판이나 담수양어장으로 변모될것이 아니겠소.》

모래산을 떠옮긴다는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어와 그이의 외투자락을 사납게 흔들며 펄럭펄럭 기폭소리를 냈다.

군당위원장과 군인민위원장이 그이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말씀을 기다렸다.

《웅기군은 산과 바다를 잘 리용하고 진펄을 개척하여 풀판을 조성하면 하나의 큰 종합농장으로, 경리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킬수 있소. 저 새초밭들을 보시오. 새초는 소에게 흰쌀밥이나 같소. 저 넓은 벌판에 소를 치면 얼마나 좋겠소. 습지대에는 배수로를 째고 물기를 빼면 소를 얼마든지 기를수 있소. 우리가 좀 일찌기 왔어야 하는데 늦었소.》 군의 주인들인 두사람의 머리가 더욱 깊이 숙여졌다. 《이렇게 좋은 자연경제적조건을 리용할 생각을 못하고있으니 전쟁이 끝난지도 언젠데 아직 여기 인민들은 생활이 펴이지 못하고있지 않는가. 동무들은 그새 뭘하고있었소?》 수령님의 말씀은 준절하였다.

군이 나아갈 전망을 펼쳐보이시고 우암산을 내리시는 길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동북쪽 맨끝 두만강하구의 자그마한 어촌 서수리(현재 우암리)에 가시여 인민들을 만나주시였으며 두만강류역에 산재해있는 마을들을 다 찾아보려 하시였다.

수원들이 간밤에 내린 진눈까비때문에 길이 험해 차가 빠진다고 온 길로 되돌아가셨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올리였다.

《동무들이 내가 가는 길이 나쁘다고 걱정해주는것은 고맙소. 그러나 내 걱정에 앞서 이 외진 고장과 험한 고장에서 사는 인민들의 생활을 먼저 걱정해야지. 나에게는 그런 일군이 필요하오. 내가 타고가는 차가 진펄에 빠질가봐 걱정할 필요는 없소. 차를 타고가다 못 가면 걸어서라도 갑시다. 우리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가봐야 하오.》

두만강을 끼고 달리던 승용차는 부포로 들어가는 진펄길에서 끝내 진탕을 튕기며 헛바퀴를 돌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리여 수원들과 함께 진창에 빠진 차를 미시였다.

세차게 불어오는 강바람, 감탕을 휘말아올리는 차바퀴, 승용차가 가까스로 진창에서 벗어났을 때 수령님의 구두는 감탕투성이였고 봄외투앞자락에도 여기저기 흙탕물이 올라있었다.

그후에도 여러날째 계속된 함경북도 현지지도 전기간 김만금의 머리속에는 진창길에 빠진 승용차를 미시던 수령님의 모습이 사라질줄 몰랐다.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시각에도 그는 줄곧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수령님의 그 모습은 일군들이 어떻게 현실에 내려가며 어떻게 아래단위들을 지도해야 하는가 하는 산 모범으로 그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졌다.

김일성동지의 이 걸음이 1년후 청산리에로 이어지게 되리라고는 아직 그 누구도 상상할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