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10

 

10

 

길주군 봉암리는 뒤산에 과수원이 있고 강을 낀 앞벌에 논과 밭이 펼쳐져있어 첫눈에 아름답고 살기좋은 고장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살기좋은 고장에서 분배가 넉넉히 돌아가지 못해 대여곡을 먹으며 일하고있다니 어찌된 일인가.

앞서 들려보신 다른 협동조합들과 실정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답답해오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뼈마디가 굵고 수더분하게 생긴 관리위원장은 농사를 지으라면 힘이 남아돌아갈 근면한 실농군이겠지만 협동조합을 관리운영하는데서 조직적수완과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어딘가 미흡한 점들이 느껴졌다. 그는 수령님을 뵈옵게 된 기쁨과 감격에 목이 메여 인사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굳은 살이 박힌 그의 손을 잡아주시며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해방전에는 무엇을 했소?》

《지주놈의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래··· 고생을 많이 했구만.》

그이께서는 왜 작년도 농사를 잘 짓지 못했는가고 따져물으려 했지만 평생 농사를 지으며 근면하게 일해오느라 뼈마디가 툭툭 불거진 큼직한 손이며 볕에 탄 순박한 얼굴을 보시고는 말씀을 돌리시였다.

《조합원의 살림집에 가봅시다.》

그이께서는 협의회에 앞서 먼저 조합원들의 살림형편을 알아보시려는것이였다.

관리위원장은 어느 집을 보여드리면 좋겠는가 의향을 묻는듯 리당위원장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리당위원장도 당황한듯 인차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저 집에 가봅시다.》 수령님께서 가까이에 있는 아담한 농가 한채를 가리키시였다.

《집주인은 어떤 사람이요?》

《김영애라는 녀성인데 전사자가족입니다.》

수령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얼른 집주인을 데려오오.》

수령님께서 동행한 일군들과 같이 그 농가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하시는 사이에 집주인을 데려왔다. 봄추위에 두뺨이 익은 사과처럼 붉어진 자그마한 몸매의 젊은 녀인이였다. 녀인은 머리수건을 벗어들고 수령님께 깊숙이 허리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녀인의 짙은 함북사투리를 들으며 그이께서 빙긋이 웃으시였다. 담화를 해보니 녀인은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며칠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었다고 한다. 눈물을 쏟을만큼 쏟고나자 미국놈들에 대한 증오가 힘이 되여 자리를 차고 일어났으며 손에 호미를 쥐고 밭으로 나갔다. 그날로부터 오직 농사일밖에 몰랐다. 일을 통해 슬픔을 이겨냈고 또한 로동당원으로, 녀맹위원장으로 성장했다. 로동을 통해 협동조합을 발전시켰고 생활을 개척해나갔다. 녀성보잡이로 이름이 났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커다란 감동속에서 들으시였다.

《참 용소. 혼자 사는데 집도 참 깨끗이 거두었구만. 부엌에 들어가보아도 되겠소?》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부엌안은 대단히 깨끗했다. 가마들은 기름이 찰찰 도는것처럼 반짝이였고 찬장안에는 그릇들이 가쯘하게 갖추어져있었고 찬장우에는 천정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소랭이, 버치, 옹배기, 바께쯔 등속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아주머니가 여간 알뜰하고 이악하지 않습니다. 원래 함경도녀자들이 부엌을 잘 거두고 부엌세간 갖추어놓는것을 자랑으로 여기는데 이 집은 특별히 눈이 부시오.》

수령님께서 치하를 아끼지 않으시였다.

《수상님, 다 이만큼은 갖추어놓고 삽니다.》

《그렇단 말이지. 생활수준이 높아졌소. 독들도 많구만. 장독이 어느거요?》

녀인은 뒤울안으로 드나드는 부엌문곁에 놓여있는 장독을 가리켜드리였다. 장독도 알른알른 윤기가 돌았다.

수령님께서는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시였다. 잘 보이지 않아 독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된장이 독밑바닥에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이께서 놀라시였다.

《장이 벌써 떨어져가는구만. 왜 장을 이렇게 적게 담그었소?》

볼우물을 지으며 쨍쨍한 목소리로 대답을 잘하던 녀인이 갑자기 입술을 빨며 얼굴을 붉히였다. 녀인이 대답하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작년에 콩을 적게 심은때문이다. 수령님께서 독가녁을 도닥도닥 두드리며 나직이 물으시였다.

《개인농시기는 어떠했소?》

《그때는··· 제 마음대로니까 심을만큼 심어서 장을 넉넉하게 담그었습니다.》

녀인은 다시 얼굴을 활딱 붉히였다.

수령님께서는 《장이 떨어져가니 야단이군.》하고 혼자소리처럼 말씀하시며 밖으로 나가시였다.

집마당에 김만금농업부장, 함의선농업상 그리고 도와 군, 리의 책임일군들이 가득 서있었다. 이 숱한 사람들이 다 농사일을 지도한다고 하는데 농가에서는 초봄에 벌써 장이 떨어져가고있지 않는가.

개인농시기에는 자기가 제 살림살이의 주인이니까 생활에 필요하게 작물들을 심었다. 《제맘대로》니까. 그런데 조합에서는 관리위원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관리위원회가 계획을 잘못 세우면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고 수확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봉암협동조합의 관리위원회, 특히 관리위원장이 자기 사업을 원만히 못하고있다는것을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도 알수 있으시였다.

집단경리운영에 대한 지도경험이 부족해서일가? 군인민위원회가 협동조합들에 대한 지도를 잘하지 못해서일가?

협의회에서 론의해보면 구체적으로 알수 있을것이다.···

관리위원들, 일부 작업반장들, 일부 초급단체위원장들, 모범농민들이 참가한 협의회는 《조선로동당력사연구실》에서 진행되였다. 수원들도 물론 다 참가했고 김영애아주머니도 참가했다.

《밭에다가는 무엇을 심었습니까?》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강냉이와 감자를 심었습니다.》 관리위원장의 대답이였다.

《작년도 정당수확고가 대단히 낮은데 왜 그렇게밖에 내지 못했습니까?》

《봄에 가물이 심해서 수확이 떨어졌습니다.》

《가물때문에!··· 올해에도 가물이 심하면 대책을 어떻게 세우겠습니까?》

《···》

《남대천(당시)이 저렇게 흘러가고있는데 속수무책이란 말이요?》

그이께서는 관리위원장이 아무런 구상도 가지고있지 않는데 놀라시지 않을수 없었다.

《관리위원장은 일을 연구해야 해. 한개 조합살림살이를 책임지지 않았나. 작년은 그렇더래두 금년은 조합의 힘도 커졌는데 무슨 마련이 있어야지.》

《···》

수령님께서는 김영애의 집에 들리셨을 때의 의분이 다시 살아나시였다.

《콩은 왜 적게 심었소?》

《수확이 낮습니다.》

《길주명천이 콩이 잘되는 고장인데?··· 정당 얼마씩 났소?》

《한톤정도입니다.》

《주작이요, 간작이요?》

《간작으로 심었습니다.》

《주작으로는 심어봤소?》

《예. 하천부지와 척박지에 심어 정당 반톤정도 수확했습니다.》

《콩을 그렇게 홀시하다니, 길주에서 말이요.··· 김영애아주머니, 이 고장이 콩고장이지요?》

몸매 자그마한 김영애는 얼굴을 또 붉히며 큰소리로 《콩을 적지에 심고 석탄재를 내면 잘됩니다. 전에는 콩을 많이 심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보시오. 그런데 콩을 홀시하여 척박지에나 조금 심으니 수확이 떨어지고 또 장을 담그는데도 지장을 받지 않는가. 이 고장에는 콩을 위주로 심어야 하오. 그런데 누가 강냉이를 많이 심고 콩을 무시하라고 했소?》

《군에서 계획이 그렇게 떨어졌댔습니다.》

《군에서 떨구는 계획을 그대로 받아무오? 동무들이 조합농사의 주인인데. 타산이 있어야지.》

하면서도 수령님께서는 관리위원장만을 탓할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시였다. 군에서 내려먹이니 방법이 없었을것이다. 군은 도, 도는 농업성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물었을것이고··· 《강냉이는 밭곡식의 왕이다》라는 구호도 있으니 아니 받아물수 없을것이다.

《올해계획은 어떻게 세웠소?》

그이께서 관리위원장에게 다시 물으시였다.

《강냉이를 위주로 하면서 감자와 보리도 심고 콩은 약간···》

관리위원장이 이미 추궁을 받은 문제라 부끄러워하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작년도와 같구만. 만일 동무가 농가에 들려 장독을 열어보았더라면, 또 이 고장 토배기들과 상론했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수 있소. 그래도 군에서 내려먹인다고 받아물겠는가? 군에서는 협동조합에 내려와서 담화를 해보고 계획을 세운 일이 있소?》

《···》 군인민위원장도 군당위원장도 대답을 못하였다.

《없을테지. 길주군에 협동조합이 20개 되나마나한데 책상머리에서 주관적인 계획을 세워 내려먹이지 말고 군위원장이 농업부장을 데리고 한개 리에 2일간씩만 나가서 자면서 어느것이 잘되고 어느것이 안되는가를 물어보고 조합원들과 협의하면 현실적인 좋은 계획을 세울수 있습니다. 성에서는 강냉이를 많이 심는 방향에서 일반적인 계획을 떨굽니다. 그러나 군과 리에서는 실정에 맞게 해야 합니다. 량강도에서 일률적인 지시대로 강냉이를 심었다가 농사를 망쳤댔소. 그래 내가 가서 알아보고 량강도에서는 밭곡식의 왕을 잘못 모셨다, 감자를 왕으로 모셔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더니 감자를 심어 작년에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관리위원장동무!》

《예.》 관리위원장이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형언할수 없는 자책의 빛이 어리여있었다.

《이 조합이 작년에 농사가 잘 안된것은 가물이 들어서만이 아니요. 또 조합원들이 열성이 없어서도 아니요. 저 영애아주머니를 보오. 얼마나 이악하고 알뜰한 살림군이요. 땅도 나쁘지 않소. 그러면 왜 농사가 잘 안되였는가? 우선 관리위원회가 군에서 떨구는 계획을 그대로 받아물고 연구가 없이 강냉이만 많이 심고 콩을 적게 심었고 비배관리를 잘하지 않았소. 적지에 콩을 밀식하고 카리성분이 많은 고참탄재를 밭에 내면 정당 3t이상 낼수 있소. 그런데 강냉이만 심어 정당 수확고가 떨어졌소. 이렇게 실정에 맞지 않게 하니 잘살수 있는가. 여기에 무슨 주인다운 태도가 있는가. 개인농시기에는 장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조합에 들어 장이 떨어지면 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종수로인이 하던 말이 생각나시였다. 로인은 협동화된 청산벌을 가리키며 이제는 《우리 땅》이 되였다고 했었다. 그 말속에는 《우리 땅》에 대한 애착이 이전의 《내 땅》에 대한 애착처럼 뜨겁게 스며있었다. 협동조합의 농사를 자기 농사처럼 착실히 짓자면 매 조합원들이 집단경리에 대한 그러한 애착이 있어야 하고 관리일군들 역시 그러한 애착을 가지고 머리를 쓰며 일을 짜고들어야 한다. 우에서 시키는대로 무턱대고 따라하는것은 벌써 자기 농사라는 애착과 주인이라는 자각이 없는 표현이다.

수령님께서는 봉암협동조합의 모범농민들과 담화하시며 그들도 협동경리를 자기들의 생활로 받아들이고있음을 알수 있으시였다.

《해방후 개인농시기에 자기 땅을 가꾸던것처럼 협동조합땅을 책임적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여기서 조합의 주인인 관리일군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관리위원장이 사업을 책임적으로 조직하고 조합원들을 옳게 발동시키면 가물도 이겨내고 수확고도 높이고 분배도 많이 타서 잘살수 있습니다. 관리위원장동무. 그렇게 할수 있소?》

관리위원장의 황소같은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저는 그저 군에서 지시하는대로 해야 하는줄로만 알았습니다. 수상님말씀대로 꼭 하겠습니다.》

그의 젖은 목소리가 떨리였다.

《그러니까 군위원장동무, 동무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지 않소?》

《예. 오늘 정말 많이 깨달았습니다.》

《좋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김영애에게 눈길을 주시였다. 《아주머니, 조합원들도 손님격이 되여서는 안되오. 의견을 적극 내고 잘못하는것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비판을 해서 고치도록 해야 하오. 이렇게 조합농사에 적극성을 내야 일할 재미도 있고 능률도 납니다. 상하가 다 합심이 되여 일해야 합니다.》

《수상님.》 일어선 김영애가 눈빛을 빛내이며 말씀드리였다. 《조합농사를 제일처럼 깐지고 이악하게 하며 의견도 적극 내겠다는것을 결의합니다.》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다음문제로 넘어갔다.

《퇴비반출을 얼마나 했소? 오면서 보니까 적지 않게 냈던데?》

수령님께서 관리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50%정도 냈습니다.》

《정당 얼마씩 내려고 하오?》

《30t 내려고 합니다.》

《30t?··· 모든 논밭에 다 그렇게 낼수 있소?》

《예···》

《대답이 시원치 않구만. 작년에는 얼마를 냈소?》

관리위원장은 눈길을 떨구었다.

《30t 냈습니다.》

《모든 논밭에 다?》

《실제상··· 대부분 논밭에 10t정도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관리위원장이 다시 풀이 죽어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올해에 정당 30t 내겠다지? 할수 있소?》

《할수 있습니다.》

《실지 그만큼 내도 대단해!》

김만금과 함의선농업상은 생각이 깊어졌다. 농업성이 밑에 떨군 50t계획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김만금은 연설을 뿜어대던 최영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가 목표를 높이 주고 강한 통제를 하면 어쨌든 논밭에 퇴비가 많이 들어갈것이라고 한것은 결국 농민들을 믿지 않는 태도이며 주먹치기로 계획을 세우고 내려먹인다는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눈을 내리깔고있는 함의선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것일가? 그는 이번에 거의 말없이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수행하고있었다.

협의회도중에 수령님께서는 남천강물을 전기를 쓰지 않고 밭에 끌어들여 관수할 물길공사를 벌릴데 대한 방도를 가르쳐주신 다음 이렇게 좌중을 향해 물으시였다.

《동무들이 길주가 어떤 고장인지 알고있습니까?》

선뜻 용기를 내여 대답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길주는 예로부터 관북땅에서 중시되는 고장이였고 농사가 잘되고 수공업이 발전했다. 15세기에 길주의 토호 리시애의 지도하에 농민전쟁이 일어났는데 함경도에 대한 중앙정부의 차별과 천시, 생활난이 원인이였다. 폭동이 진압된 후 리조정부는 길주의 격을 현으로 낮추었다. 그런다고 길주의 지위가 쉽게 허물어지겠는가. 길주는 여전히 관북땅의 중요고을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길주는 반일투쟁을 잘한 지방이다. 길주에서 박달과 같은 혁명가도 태여났다. 이처럼 력사가 깊은 길주가 로동당시대에 와서 《길주》라는 이름그대로 번성하여야 할것이다.

자기가 나서자랐으며 또한 그 품에서 살고있는 향토의 력사를 모르며 긍지와 애착심이 없는 그러한 사람, 그러한 일군들에게서 향토애와 고향사람들, 인민에 대한 사랑이 생겨날수 없는것이다. 애민, 애국의 감정이 흐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열정과 열의와 창발적인 사색을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얼마나 뜻깊은 말씀인가.)

김만금은 숙연한 감정에 휩싸였다.

(수상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애국심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땅 한뙈기, 부모처자, 고향사람들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표현된다. 오늘 우리 농민들에게서 애국적감정은 협동화된 《우리 땅》에 대한 사랑, 주인다운 태도에서 표현된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는 자기가 청산리에 나가 실태를 료해하면서 보지 못했던것, 즉 협동조합관리운영에서 나타나고있는 모순들이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주인의 자각에서 오는 협동화된 땅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의 부족에 있다는것을 심각히 깨닫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