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9


 
 

제 5 장

9

 

《사령관동지, 시내공작에 저를 보내주십시오.》

지영갑은 야산지대에 붙어서 시내로 가고있었다.

도주를 결심했을적엔 앞길이 환했었다. 처녀를 데리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부대기농사나 지으면서 그럭저럭 살아볼 생각이였다.

하지만 한영옥이 자기를 따르지 않을뿐더러 원쑤로 치부하며 저주했을 때 자기 인격이 걸레짝이 되였음을 괴롭게 깨달았다. 그 자리를 떠나 외토리가 되여버리자 자신에 대한 신심마저 잃어버렸다.

그는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었다. 설사 경험이 있다 해도 산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편안히 살아갈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렇다고 적들에게 투항할 생각은 없었다. 변절투항한 자들에 대한 유격대원들의 증오와 경멸, 복수열은 일제군경에 대한 적개심에 비할바가 아님을 그 자신이 생생하게 체험했었다. 게다가 투항한 자들의 말로란 자료를 다 털어바치고나면 《토벌대》의 길잡이가 되여 총끝에 몰려다니다가 버림받는 운명임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고모네 집에 찾아갈 작정을 했다. 지금의 처지에서 의지할 곳이란 그 집밖에 없었다. 고모는 말할것도 없고 고모부 또한 자기를 리해해줄것이였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깊숙이 숨어 한동안 무사히 지낼수 있을것이다. 그동안에 세상형편을 잘 알아보고 조선에 나가던지 아니면 중국관내로 깊이 들어가던지, 지엔다오(간도)땅에서 종적을 감출수 있을것이였다. 고모부는 일본관청이나 세력가들과도 잘 어울리는 모양이여서 그럴만 한 영향력도 있을것이고 재력도 있는터이다. 작년 초겨울에 옷천을 넘겨받을 때 만나보니 어떤 연고로 해서인지 유격대와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있는상 싶었다. 어리석게도 자기는 그때 고모부를 기쁘게 하려고 큰 도움을 주어 고맙다고, 어려운때 도와주는 사람들을 혁명군은 결코 잊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때 고모부는 자존심을 손상당한듯 《후날을 바래서 하는 일이 아니다···》 하고 불쾌해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쪽과도 저쪽과도 더 좋게 지낸다는 보신책인듯도 하다···

시가복판에 시커먼 아마공장건물이 솟아있는 라오터우거우(로두구)를 먼산에서 내려다본 때로부터 사흘이 지난 한낮에 옌지(연길)시내의 앞산에 이르렀다.

벌판을 감돌아내리는 파란 강줄기가 눈아래 바라보이고 다리건너편에 붉은 벽돌담장을 높이 둘러친 옌지감옥이 음침한 자태를 드러내고있다. 들판 저쪽에 얼기설기 펼쳐진 구내선을 배경으로 하얀 신호탑이며 철도역사와 기관구들이 또렷이 드러나고 중심가도 너머로 사람들이 아물거리는 장거리도 안겨온다. 지금까지 그가 활동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들끓는 시가가 눈앞에 펼쳐져있다. 이제 그는 집들이 총총히 들어앉고 사람들의 왕래가 번다한 시내에 숨어들어 골목과 거리들을 지나 고모네 집 문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생명과 안식이 보장되고 삶의 길이 열리게 될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의 행색은 사람들의 눈에 뜨이고 의심을 살것이니 시내에 숨어들기가 어려울것이고 저렇듯 넓은 시가지에서 고모네 집을 또한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해빛이 누렇게 쏟아져내리는 시가를 바라보느라니 눈앞이 어질거리고 메슥메슥 욕지기가 일었다. 기진맥진한 그는 행동하기전에 쉬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간 기력을 회복하고 맑은 정신으로 행동방향을 정해야 했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산짐승마냥 새초와 쑥대가 부루루한 애어린 풀덤불속에 기여들어 락엽이 썩어가는 축축한 땅바닥에 꼬부리고 누웠다. 봄볕에 육신이 나른해져서 잠이 들자 망각의 나락에 빠져버렸다.

시간이 퍼그나 지나 얼굴에 비쳐드는 해빛에 잠기가 엷어지면서 눈을 뜨니 목사품이 근질거렸다. 손을 넣어 집어내니 커다란 지렁이가 꿈지럭거린다. 몸서리치며 팽가쳤다.

해는 서산마루에 내려앉고있었다. 시가를 바라보면서 이럭저럭 궁리하던 그는 유격대에서 터득한 경험으로 지금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형편에서는 오히려 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돌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색소가 있는 대도로를 따라 시내에 들어갈것이 아니라 강을 건느고 동뚝을 넘어 묵밭사이를 꿰질러나가다가 학교운동장을 에돌아 시가의 복판을 뚫고 들어갈 작정을 하고 산에서 내려갔다.

빈 밥통과 탄알주머니밖에 없는 배낭에 모자를 넣어 꿍져서 수풀속에 파묻었다. 거리에 내려가면 식당이나 료리점이 있을것이니 운송회사 사장 고형근의 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것이였다.

어둠을 타서 강을 건넌 그는 논밭사이를 꿰질러 살림집들이 다닥다닥 널려있는 뒤거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았을뿐더러 누구의 눈에 띄지도 않았다. 시간은 어지간히 흘러 네모난 벽돌집들이 답답하게 들어앉은 구시가에 나섰을적엔 행길에 왕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는 현관우에 초롱불이 두개달린 중국반점을 앞에 두고 어둠속에서 망설였다.

물어보지 않고는 그 집을 찾을수 없는데 정작 물어보자니 후환이 생길가봐 쩔렸다. 차라리 어둠속에 서있다가 길가는 사람에게 묻는것이 낫지 않을가 하고 생각을 굴리는데 아래쪽에서 순경이 올라오고있었다.

지영갑은 담장밑에 돌아서서 오줌을 누는척 했으나 가슴이 떨리고 온몸에 진땀이 내돋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순경이 지나간 뒤에 반점에서 술취한 사람이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에 나서고있었다. 불안에 떨고있던 지영갑의 머리에 재생의 빛줄기인양 령감이 번개쳤다. 그는 휘청거리며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 팔을 끼고 부축해주면서 동무삼아 걷다가 술취한 말투로 슬그머니 물었다.

《뭐?··· 뭐?··· 운송회사 사장인 고형근씨네 집이 어디냐구?

응? 허허허··· 이 옌지시내에 살면서 고선생네 집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엉?》

생각없이 떠들어대는 주정군의 넉두리가 지영갑에게는 살점을 저며내는듯 섬찍섬찍했으므로 앞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우쳤다. 허나 행인들은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술집과 료리점 두세군데를 지나자 행길에서 갈라져나간 큰길쪽에 대고 팔을 휘저으면서 주정군이 트림질했다.

《벽돌담장에 소슬대문이 난 고선생네 집을 모르다니? 엉? 임잔 도대체 어디 사람인가.》

지영갑은 온몸이 땀에 뜨고 기운이 진할대로 진했으나 주정군을 부축하며 한동안을 더 걸어가다가 슬그머니 떨어져버렸다. 몸도 마음도 지쳐 빠진 그는 걸음을 옮겨놓을 맥조차 없었으나 자신을 행운아로 여겼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던 그는 드디여 재생의 문어구에 이른것이다. 이제 대문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잡힐 우려도 없고 탓할 사람도 없을것이다.

대문은 안으로 잠그어져있었다. 그는 두드리려다가 어둠속을 둘러보고 단념했다. 대문은 높았으나 밑에는 기둥쪽으로 개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으로 기여서 간신히 빠져들어간 지영갑은 메마른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채 거치른 숨을 톺았다.

재생의 길을 떠나온 자기의 용단에 만족의 미소를 던지며 천신만고하여 당도한 행운의 마당에 감사의 눈물을 뿌렸다.

뒤뜰로 통하는 집모퉁이에서 인적기가 난것 같아 얼른 몸을 일으켜 웃방문쪽으로 갔다. 주인을 찾지도 않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등갓을 씌운 전등불아래 자리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있던 고형근이 의아하게 일어나 앉아 뚫어지게 쏘아본다.

《누구요? 웬 사람이냐!》

부르짖는 소리에 놀라 사이문을 열어젖히며 올라온 안주인이 눈이 둥실해져 굳어져버린다. 지영갑은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서서 숨을 헐떡거리며 갈린 소리로 힘들게 말했다.

《고모, 나요. 영갑이요!》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녀인이 달려오는속에 지영갑은 풀썩 주저앉더니 문설주에 등을 대고 나른해졌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고형근이 사뭇 심각해져서 다가왔다.

《물을 좀 주시오··· 먹을것도 좀···》

지영갑이 맥없이 중얼거리자 녀인은 얼른 부엌으로 나갔다.

고형근은 그를 눕히려다가 이제 요기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안쪽벽에 의지하게 편안히 옮겨앉혔다.

고모가 소반을 챙겨들고 들어왔다. 묵은 밥이지만 흰쌀밥 한그릇에 랭수 한사발, 간장에 절군 소고기와 봄배추김치, 오이지 등을 스쳐본 지영갑은 밥상앞에 허리를 굽히자 묻는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먹기 시작했다. 문밖에 나가 뜰안을 살피고 돌아온 고형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관절 어떻게 집을 알고 찾아왔느냐?》

지영갑은 대답을 서둘지 않았다. 볼이 미여지게 퍼넣고 즐기듯 천천히 씹어넘기면서 도간도간 적당히 말했다.

《산길을 타고 오다가 강을 건너 곧바루 시내에 들어섰습니다.··· 거리에서 맞띄운 사람에게 물었더니··· 어렵지 않게 대주더군요.···

이 집을 다 알고있습디다.···》

묻는 말에 등한히 대하면서도 먹는데만 정신이 팔려있는 모양을 지켜보던 고모가 민망스러워했다.

《여러끼를 굶은 모양이구만.》

《여러끼가 뭡니까! 보름나마 낟알구경을 못했습니다. 드문드문 풀죽이나 먹었지.》

《아이구- 기막혀라.》

녀인은 소스라치며 소반을 잡았다.

《그렇게 굶었으면 굳은 음식을 먹어선 안되네. 먹지 마오. 내 이제 미음을 쒀줄게··· 보름씩이나 굶다니.》

지영갑은 밥사발을 잡은채 어설프게 웃었다.

《고모두 참 유격대에서는 그렇게 굶는게 보통이지요.》

《끔직하기두, 무슨 고생이 그리도 심하냐.》

《이젠 막 진저리가 나요. 그래서 난 아주 떠나왔소.》

그러자 잠자코있던 고형근이 눈길을 쳐들고 의아해서 물었다.

《아주 떠나다니?》

《싸우기를 단념했어요.》

《그럼··· 김일성장군님은 어디 계시느냐?》

지영갑은 고모부의 눈길을 피하면서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산에 계시지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싸우는데 너 혼자 도망쳐왔다는 소리냐?》

지영갑은 선뜻 대답을 못하다가 진상을 밝히려고 설명했다.

《지금 일본은 도처에서 세력을 뻗치며 탄압을 강화합니다. 게다가 쏘련과 일본이 중립조약까지 맺었으니 쏘련을 믿고 하던 혁명이 가망없이 되여버렸습니다. 그래서 난 떨어져나왔습니다.》

《흐음-》

고형근은 신음소리마냥 뇌이고는 방바닥의 한점을 쏘아보고있을뿐이였다. 얼음같이 찬 기운이 방안에 퍼져갔다.

《그런즉··· 형세가 좋을 때에는 조선이 독립되면 혜택까지 베풀 꿈을 꾸더니 형세가 글러지자 목숨부지라도 하겠다는거구나.》

고모부가 흥분했음을 눈치채고 지영갑은 동정을 바라듯이 중얼거렸다.

《따라다녀봐야 고생끝에 죽음밖에 차례질것이 없으니··· 할수 없지요.》

《너는 작년에 만났을적에 김일성장군님이 자기를 크게 믿어주신다구 자랑했지. 그래 그런분의 믿음에 보답을 하는 길이 고작 이런 걸음이냐?》

말소리는 낮았으나 의분이 쩌렁쩌렁 울렸다.

《···》

《난 쏘련을 믿은 일도 없고 공산당을 지지한적도 없다. 하지만 김일성장군이 어떤분인가 하는건 잘 안다. 그분을 하늘처럼 믿고있다.》

격해지는 심정을 누르며 고형근이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사제간이나 친구지간에도 신의를 저버리는 자는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 하물며 백성들이 숭상하는분의 두터운 믿음을 배반했으니 배은망덕도 푼수가 있지!》

《···》

《여러 생각말고 이 집에서 나가거라. 당장!

의리도 량심도 없는, 사람값에 들지도 않는 너같은 놈은 내 집에 한시도 들수가 없다!》

지영갑은 눈이 휘둥그래져 고개를 쳐들었고 녀인은 넋나간 사람처럼 절망에 겨워 손을 저으며 하소했다.

《당신이 실성했소? 이 집에서 나가면 어딜 간단 말이요-》

하지만 녀인은 남편의 눈길에 압도되여 쓰러지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말하면 드팀이 없는 남편의 결기를 알고있었으므로 더는 어쩔수 없는 자기의 처지가 한스러웠던것이다.

《난 여직껏 너를 자식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내 친자식이라 해도 의리를 저버리는 짐승만도 못한 놈은 내 집에 받아들일수 없다.》

《아-니, 정말 이럴내기요?!》

지영갑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괴춤에서 싸창을 빼들었으나 고형근은 끄떡하지 않았다. 그의 눈엔 고통과 분노가 이글거렸고 목소리는 찌르듯이 준절했다.

《죽이겠으면 죽여라. 그러지 않아 살기가 지겹다. 애국자로 자부하면서도 목숨이 아깝구 살림이 아까와서 원쑤를 원쑤로 대하지 않구 비위를 맞추며 살아온것이 후회되고 한스럽다.

나라와 민족을 도탄에서 구원하고저 혈로를 헤쳐가시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극진하게 받들지 못한것만두 죄스럽기 그지 없는데 이제 배신자까지 내 집에 용납한다면 나야말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내 주검을 밟지 않고서는 이 집문턱에 들어서지 못해!》

절망에 몸부립치던 지영갑이 총부리를 제가슴에 들이대면서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그럼 난 죽으란 말이요?!》

그러자 헝클어진 머리를 쳐들었던 고모는 비명을 질렀고 고형근은 쓰겁게 미간을 찌프린채 말이 없었다.

《···》

방안의 소란에 의아해진 마부가 문을 열었다가 놀라 움츠러들자 지영갑은 문밖에 나서면서 기세를 부렸다.

《어느놈이냐, 어떤놈이냐?》

《총을 치우시우, 총을···》

주저하며 뇌이던 마부는 총끝이 자기를 겨누자 물러서면서 총쥔 손을 잡고 비틀었다.

그러자 총소리가 터지면서 지영갑이 주저앉듯 스르르 쓰러졌다.

당황해진 마부가 불빛아래서 살펴보고 난처해서 중얼거렸다.

《격철에 손을 걸었을줄은 몰랐소이다. 총을 앗으려고 했는데···》

고형근이 나와 더듬어보고 침통하게 말했다.

《천벌을 받았지··· 자살도 못할 위인이야.》

행길쪽에서 호각소리가 울리고 이 집을 감시하던 형사들이 달려와서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문을 열어라! 문을···》

마부는 겁에 질려 주인을 쳐다보는데 흐느껴우는 녀인이 땅바닥을 치며 넉두리했다.

《성미가 옹고집이니 무슨 일이 되겠소? 조카를 죽이구 신세를 다 망쳤지.》

눈에 피발이 올라 방문곁에 서있던 고형근은 미간을 찌프리고 그쪽을 쏘아보다가 나직이 엄하게 오금박았다.

《조카는 무슨 놈의 조카! 이 집엔 그런 조카가 없어. 재물을 강탈하러왔던 비적이지··· 조카라는 말은 입밖에 내지도 말라···》

그리고는 방문앞에 서있는 마부에게 일렀다.

《가서 대문을 열어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