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8


 
 

제 5 장

8

 

《사령관동지, 시내공작에 저를 보내주십시오.》

파랗게 돋아난 가둑나무잎새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거기 지하조직은 지금 파괴되였거나 추격을 받을수도 있는데 옌지(연길)시내에 가본적이 없는 정숙동무가 어떻게 줄을 찾겠소?》

심려에 싸여 수림속을 거닐던 사령관동지께서 심중하게 물으시였다.

《거기 현공소에서 서무계장으로 일하는 천시억이라는 사람을 제가 잘 압니다.

우리 마을에서 살던 그 사람이 둥신평(동신평)에 내려가 구장질을 할 때 제가 조직의 임무를 받고 거기 가서 공작한 일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겁을 먹고 집에도 잘 들여놓지 않던 사람이 나중에는 우리 공작을 성실하게 도와주었습니다.

그 사람 처남이 지하조직의 련락원입니다.》

높이 솟아오른 태양이 산등성이를 비치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무그늘밑에 서있는 녀전사의 모습을 여겨보다가 말씀하시였다.

《조봉길동무에게서 들은적이 있소. 일본놈들을 미워한다고 데리고있던 처남을 내쫓은 사람이 유격대공작원을 반갑게 맞아주겠소? 또 미워하던 처남을 찾아주려고 하겠소? 더군다나 그 처남이 지금 수배를 받고있을지도 모르는데··· 자기 처지를 편안하게 하려고 경찰에 신고할수도 있을거요.》

《그사람이 소심하긴 하지만 악하지는 않습니다. 리순정동무는 그 사람을 선량하고 정직한 좋은 사람으로 보고있습니다. 리해타산이 밝다는건 누구나가 인정하는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침에 리순정이 찾아와 자기를 시내공작에 보내달라고 제기하던 일을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으시엿다.

《그러니 동무들은 시내공작을 놓고 토론들을 많이 했구만···》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길을 숙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려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가능성에 대한 타산보다도 수행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솔선 맡아나서군 하는 김정숙동지의 성품에 새삼스러운 감동을 품으시였다. 미더운 눈길로 녀전사를 바라보시다가 진중하게 말씀하시였다.

《정숙동무에게는 더 어렵고 중요한 과업이 있소.

기지에서 함께 떠난 동무들을 데리고 당장 백두산으로 나가야겠소. 림춘추동무를 같이 보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동무가 림춘추동무의 몫까지 다 맡아 수행해야겠소.

시내공작에는 리순정동무를 파견합시다.··· 벌써부터 그 생각을 했지만 지하공작경험이 없는걸 걱정했소. 정숙동무의 말까지 들으니 지혜를 합치면 리순정동무가 임무를 수행할수 있으리라는 신심이 생기오.

내 아까 장새촌에 나갔던 김철한조의 공작보고를 받았는데 박창술이라는 농민과 련계를 맺고 마을형편을 상세히 료해하면서 활동을 아주 능숙하게 했소. 우리 동무들이 모두 군중공작에 잘 준비되여 있소.》

《···》

《리순정동무는 앞으로 서울공작에 나가야 하겠으니 자기가 살던 지방의 공작에서 경험을 쌓는것도 필요한 일이요.

돌아가서 리순정동무를 사령부에 보내시오.

동무는 백두산으로 나갈 준비를 빨리 하고··· 임무는 따로 주겠소.》

한낮이 지나 김정숙동지께서 녀대원천막에서 한영옥이와 함께 치마저고리며 손구럭을 깨끗이 손질하고있을 때 리순정이 들어섰다. 공작임무를 받고온 녀대원의 표정은 엄숙했다. 동지들이 자기의 길차비를 마련하고있음을 깨닫고는 차분해지면서 김정숙동지곁에 가서 앉았다.

《정숙언니, 백두산까지 먼길을 대오에서 떨어져 어떻게 가겠어요. <토벌대>들이 사방에서 싸다니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명랑하게 대답하시였다.

《그런 길을 처음 걷는것도 아닌데 뭘, 우린 지금 순정동무 걱정을 하는 중이예요.》

《언니, 어때요. 마음이 늘 조마조마하겠지요?》

《늘 조마조마해가지고서야 멀고먼 길을 어떻게 다 가겠어요! 순정이 우리는 비록 정체를 숨기고 다니지만 마음은 늘 떳떳해야 해요. 경계하는 대상들과 마주설 때에는 더욱 그래요.

<이 땅에서는 우리가 주인이고 어엿한 사람이다. 이걸 명심하고 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이런 자세로 버젓하게 행동해야 해요.

천시억이 같은 사람과는 더욱 그래야지, 위축되면 그 사람이 오히려 업수이 여길거예요.》

《사령관동지께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칫하면 그 사람이 자기의 보신책으로 공작원을 해치려고 할수도 있으니 경각성을 높이면서도 어디까지나 진리의 길로 이끌어줘야 한다고··· 나의 임무는 조직선을 찾는것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반일의 길에 묶어세우는 우리의 기본전략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하게 가르쳐주셨어요.》

비상용량식으로 만든 강낭떡을 구럭에 싸넣던 한영옥이 조용히 물었다.

《순정언니, 언제 떠나요?》

《오늘 당장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사령관동지께서는 준비를 잘하고 오늘 밤은 푹 쉰후 래일 아침에 떠나라고 하셨어요. 대도로에 나설 때까지는 동지들이 호위해준다고 하시면서···

임무를 수행하고는 오도양산밀영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거기까지 가시여 기다리시겠대요.》

리순정은 고여오르는 눈물을 씻을 념도 하지 않고 혼자소리처럼 뇌였다.

《내가 뭐이길래 사령관동지께서 바쁜 걸음을 지체하시면서까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면서 리순정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어두워지자 수림속에서 두견새가 처량하게 울기 시작했다.

밤중에 잠을 깬 리순정은 등잔을 켠 천막구석에서 불빛을 가리우며 꼬부리고 앉은 김정숙동지께서 조용히 바느질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의아해서 살피다가 조용히 물었다.

《정숙언니, 쉬지도 않고··· 무얼해요.》

그이께서는 하시던 일을 계속하면서 돌아보지 않고 속삭였다.

《어서 자요. 나도 이제 자겠어요.》

새벽에 리순정이 떠날 차비를 할 때 김정숙동지께서 다가와 살색녀자양말을 그의 손에 들려주면서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순정이는 녀선생 행색으로 시내에 들어가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홑버선보다는 양말을 신는게 나을것 같아요. 시내에서는 류행이니까···

이건 전구에 나오면서 변장용으로 내가 신던건데··· 그런대로 이게 나을것 같아요.》

손에 받아든 물건을 굽어본 리순정은 깨끗이 빤 양말의 알뜰하게 기운 자리에 눈길을 멈추고있다가 웃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언니, 정말 고마와요. 내 기어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