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7


 
 

제 5 장

7

 

이날 저녁 늦어서 림춘추소조가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했다. 국내에 이주시킨 혁명가들의 가족속에는 리순정의 부모님들도 있었다. 시난차마을의 촌장은 살기가 어려워 고향으로 간다는 소문을 내면서 압록강을 건너 광산로동자들이 집중되여있다는 단천지구로 나가게 되여있었다.

적들의 타격을 피해 혁명력량을 보호하고 은밀히 이동시키면서 그 하나하나의 씨앗이 강력한 반일세력으로 자라게끔 조처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진행한 작전을 총화하면서도 보다는 수행할 작전에 더 마음을 쓰시였다.

그이께서는 백두산으로 나가는 길이 지체되여 마음을 쓰면서 림춘추를 한발 먼저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회의에 온 대표들을 각각으로 만나 실정을 보고받으면서 형편을 료해하고 자료들을 종합하는 등의 사업은 그가 대신할수 있을것이였다.

또한 대표들이 오고가는 비밀과 안전을 보장하며 백두산주변 지하조직들과 련계를 유지하기 위해 김정숙동지를 함께 파견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서울공작원 차석진을 방조할 성원으로는 지하공작경험이 없지만 리순정을 파견할 예정이시였다. 옌지(연길)시내 조직의 형편을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시내에 들어갔던적이 있는 홍대복을 파견해야 했다.

각지에 떠나보낼 소조들의 구성과 전투임무를 구상하시고도 박중돈을 찾으러간 소조들이 돌아오지 않아 명령을 하달하지 못하고계시였다.

천막입구에 전령병 김명산이 들어서서 벌죽이 웃으며 물었다.

《사령관동지, 지금 몇시쯤 됐습니까?》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12시가 다 되였다고 알려주시였다.

《사령관동지, 밤이 깊었는데 이젠 쉬십시오.》

(그 말을 하려고 물었군!)

하고 생각하시며 그이께서는 웃으시였다.

《그래- 나도 자겠으니 명산이도 자라구.》

《예.》

전령병은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나가지는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무데가서나 경위대원들이 쉽게 만들어놓군 하는 걸상 겸 나무침상우에 엷은 모포를 펴고 잠자리를 보시였다. 김명산은 지켜서있다가 그이께서 침상우에 누우시자 등잔불을 끄고 밤인사를 남기면서 나갔다.

피로에 지친 그이께서는 담요의 한쪽을 당겨 몸을 가리우고 이어 잠이 드시였다. 꿈도 없이 굳잠이 들어 곤하게 자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잠귀가 엷어지시였다. 산속에서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오고있었다. 안개에 싸인듯 희미한 잠속에서도 끊어졌다간 다시 이어지는 천막밖의 말소리가 잠기를 앗아갔다.

(누굴가? 무슨 일일가?)

의문이 드시자 잠기가 씻은듯이 날아났다.

《이제 한두시간 지나면 날이 밝겠는데 동무들두 가서 쉬라구.》

보초병의 부드러운 권고에 저쪽에선 물러서지 않고 소곤거린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침상우에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움쭉 일어나 천막밖으로 나가시였다.

《무슨 일이요?》

어둠속에 대원들 여럿이 서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보초병동무, 거기서 있는게 누구요?》

주저하다가 보초병이 대답했다.

《김철한동무, <홍대포>동무네 소조가 돌아왔습니다.》

《돌아왔다! 그런데··· 왜 거기서 있소?》

그이께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들쪽으로 걸어가시였다. 보초병이 그들을 저지시킨 까닭을 짐작했지만 개의치 않고 흥분하여 물으시였다.

《어떻게 됐소? 동무들, 김철한동무··· 홍대복동무···》

《사령관동지, 박중돈소대장을 찾았습니다. 지금 살아있습니다.》

격동된 그이께서는 기쁨을 누를수 없어 홍대복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굳게 잡더니 와락 끌어안으시였다.

《살아있다. 중돈이가 살아있단말이지! 그런데 왜 동무들은 여기서 어물거리오?···》

보초병은 난처하여 뒤로 물러섰고 그이께서는 홍대복의 손을 잡아 사령부천막으로 이끄시였다.

《철한동무도 들어오오. 어서···》

《사령관동지 저희들의 공작보고는 특별히 급한것이 아닙니다. 이제 아침에 보고하겠습니다.》

《그럼 동무들은 그동안 쉬오. 피곤할텐데···》

김철한소조원들은 어둠속으로 물러갔다. 밀영병원의 반토굴에서 두 소조를 맞아 새 숙영지까지 안내하여온 두명의 통신원들도 물러갔다.

천막안에 등잔불을 켜고 홍대복이와 다른 한 대원을 여겨보시는 그이의 얼굴에 기쁨과 함께 은근한 불안이 떠올랐다.

《어서 말하오. 박중돈동무는 왜 같이 안왔소?》

《몸에 두군데나 총상을 입어 움직일수 없는 형편이였습니다. 그래서 한 동무를 거기 떨궈두고왔습니다.》

그이께서는 두 대원의 표정을 찬찬히 여겨보다가 근심스럽게 물으시였다.

《생명이 위태롭지는 않소?》

《생명에는 크게 위험이 없을것 같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상처는 몹시 험합니다.》

복지향의 산속을 떠나서부터 밤낮 이틀반동안 자지도 쉬지도 못하면서 달려온 두 대원의 얼굴은 훌쭉해지고 우묵해진 눈확속에서 눈들만 반들거렸다. 그들의 정상을 보고 사태를 어림하신 그이께서는 고무하듯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박중돈이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있었소. 상처는 어떤 형편이요?》

홍대복은 전투가 있은날 새벽에 원덕천이라는 젊은이가 구원하여 복지향근처의 산속에 숨겨두고 돌보아준 정형을 상세히 말씀드리고 자기들을 만났을 때 박중돈이 피력하던 결의까지 그대로 보고했다.

《···박중돈동무는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순간까지 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어 군중공작을 적극 벌리면서 혁명승리를 위해 견결하게 싸우겠다는 자기의 결심을 그대로 보고드려달라고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등잔불빛이 너울거리는 천막자락을 초점없이 바라보면서 혼자소리로 외우시였다.

《···군중공작을 적극 벌리면서 혁명승리를 위해 견결하게 싸우겠다···》

《그렇습니다. 꼭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난해 가을 박중돈이를 오래간만에 만나던 일을 회상하시였다. 옷차림도 단정한 박중돈이 고개에서 기다리다가 감격하여 흐느껴울던 일이 지금따라 생생하게 떠오르시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샤오하얼바령(소할바령)회의방침을 알려주면서 군중공작을 잘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였었다. 그러자 박중돈은 운명의 갈림길에 선 사람처럼 엄숙해지면서 군중공작을 배우고 군중공작에서도 모범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대답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느라니 지금 운신할수 없는 처지에서도 가다듬은 결의를 망각하지 않고 개척민부락사람들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해 마음쓰는 박중돈의 사람됨이 더욱 뜨겁게 느껴지시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 우리는 박중돈조장을 원덕천의 의견대로 시내의 병원에 입원시킬수도 없고 또 여기로 후송해오자니 본인이 반대하고 해서 용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결론만 주시면 이 길로 곧 돌아가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이윽히 생각하시다가

《림춘추동무를 불러오시오.》

하고 홍대복의 곁에 있는 대원에게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어딘가 멀리에 옮겨앉은듯 간간해진 두견새의 울음소리에 귀기울이며 심려에 싸여계시였다.

림춘추는 옷깃을 바로 잡으며 들어서더니 나무걸상을 옮겨놓고 천막어구에 자리를 잡았다.

《홍대복동무, 총상정형을 다시 한번 상세히 말하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평소에 《홍대복동무》 하고 부를 때 가벼운 미소를 짓군 했는데 거기엔 느리고 푸접좋고 말주변좋은 그의 성미에 대한 호감과 더불어 동무들이 흔히 부르는 《홍대포》라는 별명을 신통하게 여기시는 웃음기도 있은듯 했다.

이날밤엔 그이의 표정에서 그러한 빛을 추호도 찾아볼수 없었지만 홍대복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더욱 뜨겁게 안겨왔다.

부상자의 형편을 상세히 얘기한 홍대복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다리는 곪았다 터졌다 하면서도 나아지는것 같은데··· 우리 보기에도 팔이 야단입니다. 보총탄에 뼈가 부서져 아래쪽은 곪고 웃쪽으로는 새살이 살아나서 보기조차 끔찍합니다.》

《상처자리부위가 거무스레하게 곪았겠지?》

하고 림춘추가 묻자 홍대복은 그렇다고 걱정했다.

《겉은 뜬뜬한데 속에서는 피고름이 나옵니다.》

《환자의 기분상태는 어떻소?》

하고 림춘추가 다시 물었다.

《아프지도 않고 식욕도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기분은 괜찮은 편입니다. 다만 팔다리를 쓸수 없어 괴로와합니다.》

림춘추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였다. 형편을 짐작해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보지 않아 딱히 모르긴 하겠지만 팔이 화농되여가는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부상당한 즉시에 수술해야 하는데 처매두고 날자를 끌었으니 그대로 두면 피가 말라들면서 생명을 위협할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제가 당장 떠나야 할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계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중요한 일들이 있지만 동지의 생명부터 구출해야겠소. 동무들에게 맡기려던 과업은 다른 동무들이 대신할수 있소.》

림춘추는 걱정스럽게 앉아있었다.

《지금 형편에서 환자를 살리자면 화농되여가는 부위까지 팔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팔을 자르겠다면 박중돈이 응하겠는가 하는겁니다···. 워낙 성미가 드센 사람이여서 안자르겠다고 펄펄 뛸겁니다. 그게 야단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심려에 젖어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어려운 사태앞에서 주저한적 없었던 그이께서 미간을 모으고 천막바닥의 한곳을 굽어보면서 무엇인지를 더듬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팔이 없는 박중돈이, 무기를 손에 들지 않은 박중돈이를 상상할수 없으시였다. 우둘거리며 밸을 쓰던 버릇은 다듬어져 한결 정중하고 침착해졌으나 그의 열렬한 심정, 적개심에 불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과감한 기질은 퍼렇게 살아있다고 생각하시였다.

그것이 없다면 박중돈이 아닐것이다.

《두구보오.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걸 알게 될거요!》

언젠가 한영옥이 자책감에 싸여 눈물을 흘리며 술회하던 박중돈의 말이 상기되여 더욱 마음이 괴로우시였다.

팔을 자르자면 응하지 않을것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것이다.···

천막안에 찾아든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망연히 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무겁게 고개를 드시였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니 어서 떠나야겠소.

림춘추동무, 어떤 일이 있어도 박중돈이를 살려주오. 할수없이 큰 수술을 한다 해도 중돈이를 살려야 하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심장만 고동친다면 혁명가는 혁명을 위해 싸울수 있소.

박중돈동무는 혁명의 길에서 물러설 사람이 아니요. 자 그럼···》

그이께서는 홍대복이를 돌아보시였지만 선뜻 다음 말을 하지 못하시였다. 지휘관이건 대원이건 전투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면 식사와 휴식부터 시키던 사령관동지께서 지금은 이틀밤 이틀낮을 쉬임없이 달려온 대원들에게 휴식을 시키지 못했으며 시킬수도 없는것이 안타까우시였다. 홍대복이 그이를 쳐다보며 훌쭉해진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사령관동지, 떠나도 되겠습니까?》

대원을 바라보는 그이의 눈길에 한없는 사랑과 믿음이 층층 어려있었다.

《가만··· 림춘추동무는 가서 준비를 하고 오시오.》

그러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밖으로 나가시였다. 환하게 밝은 천막밖의 진나무아래에서 전령병이 다가왔다.

《김정숙동무에게 공작지로 떠나가는 동무들에게 량식을 갖추어주라고 전하시오.》

그이께서는 따라나온 홍대복에게 충분히 휴식한 대원 두명을 데리고 가라고 이르시였다.

떠나갈 성원들이 모여섰을 때 김정숙동지께서 커다란 량식꾸레미를 들고나와 대원의 배낭에 넣어주시였다. 그때 한영옥이 사령관동지께로 다가왔다.

《사령관동지, 저를 치료대에 함께 보내주십시오.》

박중돈의 소식은 밤중에 병실들에 다 퍼져 동지들은 모두 걱정속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것이다.

《동무의 심정은 리해되지만 몸이 불편한 영옥이가 따라가서 도움될 일이 별로 없소. 지금 박중돈동무의 상태가 위급해서 이 동무들은 빨리 가야 하오.》

《사령관동지, 그래서 저도 가려고 합니다. 죽을 고비에서 헤매는 그 동무의 곁에 있고싶습니다. 이전에 그 동무가 과오를 범하고 찾아왔을 때 저는 깊이 리해하고 뜨겁게 도와줄 대신 원망하면서 외면했댔습니다.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면서도 용서를 빌지 못했습니다.

사령관동지, 저는 그 동무를 사랑합니다. 그 동무가 지금 불행을 겪는데··· 앞으로 더 큰 불행을 당한다 해도 혁명을 위해 숨을 쉬는한 곁에서 도와주며 사랑하겠습니다.

저도 함께 보내주십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다가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며 멈춰서시였다. 쌓이고 쌓인 진정을 털어놓는 녀대원의 뜨거운 결의에 가슴이 후더워지시는것이였다.

이 엄혹한 시기에, 더구나 부모들의 참살을 목격했고 배신의 쓰라린 체험까지 겪은 녀전사의 상처입은 가슴속에 간직되여있는 열렬하고 기개높은 사랑의 고백을 들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지시는것이였다.

이렇듯 고결한 사랑에 받들리는 박중돈은 행복한 혁명가이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렇듯 의롭고 참다운 전사들속에 있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마음이 든든해지시는것이였다.

(조선아! 여기에 그대의 참다운 아들딸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인민을 궐기시켜 그대의 강토를 짓밟은 일제와의 결전을 마련하려고 백두산으로 나간다.

조선아- 우리를 기다리라. 광복의 대업을 성취하고 돌아갈 우리를!)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돌려 대원들앞으로 걸어가시였다. 안타까이 대답을 기다리는 녀대원을 굽어보며 따뜻하게 말씀하시였다.

《영옥동무의 진정을 고맙게 생각하오. 그렇지만 아까도 말한것처럼 길이 급하고 또 거기 가서도···》

그이께서는 말씀을 고르시였다. 거기 가서도 어쩌면 사나이들도 차마 볼수 없는 수술이 벌어질수 있는데 처녀가 무슨 도움을 주겠느냐는 말씀을 할수가 없으시였다.

《···거기 가서도 영옥동무가 도와줄 일이 별반 없을것 같소.

림춘추동무가 영옥동무의 심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줄거요.

그리고 이제 백두산에 나가면 우리모두가 박중돈동무와 만나게 되오.》

녀대원은 수긍하듯 천천히 고개를 숙이였다.

떠나갈 성원들도 주위에 모여들었던 대원들도 숭엄한 침묵속에 움직임이 없었다.

조선혁명의 책원지가 자리잡은 백두산으로 진군하는 로상에 전개된 혁명군의 야전사령부.

여기서는 지금 국내와 지엔다오(간도)의 지하조직들과 소부대들에 활력을 주고 방향을 주며 적들의 타격에 대처할 예비대의 이동과 재편성을 지향하는 작전적인 과제들이 처리되고있었다.

여기서는 또한 적의 위장공세, 허위선전에 공포를 느끼고 패주한 변절의 교훈을 참작하여 혁명군과 전민에게 자력독립의 사상사업을 선행시킬 사령부의 전략적조치가 완성되고있었으며 그 실현을 위해 대표들이 모이는 백두산으로 선발대가 떠나갈것이였다. 멀고 험한 각지의 적소굴로 공작원들이 파견되여 갈것이다.

크낙한 정치군사적작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있는 여기서는 또한 낮과 밤을 이어가며 휴식도 없이 긴장한 시간을 보내는 혁명군사령관이 한 부상자의 생사를 놓고 마음을 조이며 전사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두고 감사와 감동에 젖어 밝은 래일을 축복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