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6


 
 

제 5 장

6

 

산중턱의 수림속에 숙영지를 옮긴 사령부 소부대성원들은 침통한 기분에 싸여있었다. 공작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류경수소부대가 슬픈 소식을 가져왔던것이다. 깊은 산중밀영에서 중병으로 신음하던 워이정민(위증민)이 이른 봄에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비감에 싸여 종일토록 식음을 전페하시였다.

류경수는 돌아오는 길에 마을들에 들려 군중공작을 하면서 최근 신문들을 가져왔는데 거기에는 일본외상의 유럽행각과 《쏘일중립조약체결》에 대한 소식이 여러 호에 걸쳐 상세히 게재되여있었다.

일본외상 마쯔오까가 추축국들인 도이췰란드와 이딸리아를 방문하고 집권자들과 회견한 소식이며 로마를 거쳐 다시 베를린에 돌아와 총통궁전에서 히틀러, 립벤드르프와 더불어 회담을 하고나서 《추축국들의 동맹은 백년을 이어 길이 빛날것이다!》 하고 축배를 들었다는 사연, 귀국하는 길에 모스크바에 들려 크레믈리에서 쓰딸린, 몰로또브와 장시간에 걸치는 두차례의 회담끝에 《쏘일중립조약》을 체결한 소식이 게재되여있었다. 게다가 일본외상이 모스크바를 출발할 때 각국 외교대표들이 환송하러 나와있는 역두에 몰로또브를 대동하고 나타난 쓰딸린이 발차시간을 늦추면서까지 마쯔오까가 탄 차칸에 올라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다는 상보는 일본의 국력을 세상에 시위하는듯 했다.

쏘련과 일본이 중립조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만도 놀라운 사변인데 쏘련의 최고지도자가 적대국인 일본의 한낱 외상에게 베푼 외교관례에서 벗어난 호의와 친절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모독처럼 여겨졌다.···

《사령관동지, 쓰딸린의 친절이 지나친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신문을 다 읽으시자 그때까지 초막안에 앉아있던 류경수가 자기 속심을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쓰딸린이 존엄없이 행동한것만 같아 불만스러웠던것이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다른 대원들의 기분도 반영되여 있음직한 류경수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였다. 어쩌면 지나친 친절같이도 보이는 쓰딸린의 그러한 외교자세에는 현시의 긴박한 세계정세와 관계되는, 착잡한 고충이 깃들어 있으리라고 간파하시였다.

유럽의 대륙을 거의다 정복하고 북부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쫓아낸 히틀러가 바야흐로 대쏘침공을 개시하려 하는것은 온 세상이 보고있는 사실이였다. 이런 정세하에서 국가의 운명을 한몸에 지닌 쓰딸린이 동쪽 국경으로부터의 일본의 침공을 저지시키려고 갖가지로 외교적친절을 베푸는것도 리해되는 일이였다···

일제는 그것을 알고있으면서도 세상사람들앞에서 저희가 강하기때문에 쓰딸린이 고분고분하게 군다고 희떱게 허세를 부리는것이다. 일본의 《강대성》을 시위하면서 세상사람들에게, 특히는 자기네를 반대하여 일떠서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고 공포를 주자는것이리라···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본통치층의 심리를 꿰뚫어보시면서 바로 그렇기때문에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며 자기 힘으로 일제를 때려부셔야 한다는 확고한 사상을 심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이러한 때에 왕바버즈에 갔던 공작조가 충격적인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3호련락소가 파괴되고 한영옥의 부모님들은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하게 싸우다가 희생됐으며 지영갑이 도주했다는 소식이였다.

지휘원들도 대원들도 모두 의분에 끓고 증오심이 북받쳐 이를 갈았다. 류경수는 한시바삐 사령부를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바버즈에서 돌아온 공작조도 그것을 열렬히 제기했다. 그들은 그때 변절자를 추격하려고 하다가 사태를 빨리 사령부에 보고하고 적들이 밀려들기전에 사령부로부터 이동하게 해야 한다는 김기창의 의견을 쫓아서 서둘러 돌아왔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공작조들을 기다리며 또 새로 조성된 정황들에 신속히 대비할 구상을 익히면서 숙영지의 이동을 서두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도주자에 대해 혐오감과 의분을 느끼면서도 늙은 혁명가부부의 희생을 못내 비통해하시였다.

자식은 비록 없지만 골수에 사무친 일제에 대한 증오를 생존을 위한 량식으로 삼고 살아온 늙은 혁명가들이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지키다가 딸에게 넘겨준 조직의 비밀은 지금 그이의 머리속에 새겨져있었다.

담배쌈지안에 대수롭지 않게 넣어둔듯 한, 아이들의 학습장을 일매지게 잘라만든 담배말이들속에서 조봉길의 비밀암호가 연필로 찍혀진 그 한장에는 《석천이는 앓는다.》라고 연필로 서툴게 쓴 한마디가 적혀있었다.

그것은 서울공작원인 차석진이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였다. 아마도 조봉길이 련락을 받고 3호련락소에 마지막으로 전달한 통신일것이다.

혁명조직의 비밀을 생명보다 귀중히 지키면서 자기 사명을 수행한 늙은 혁명가부부의 정체가 탄로되여 적들에게 추격당하고 있을 옌지(연길)시내의 조직성원들을 생각하며 그이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어떤 역경을 뚫고서라도 곤경에 처한 지하조직을 구출하여야 하며 위기에 처한 적소굴의 공작원에게도 제때에 충분한 도움을 주리라고 결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쏘일중립조약》이라는 국가들간의 일시적인 타협이 혁명대오의 성원에게 이처럼 큰 동요를 일으켰으니 일제의 상시적인 허위선전을 들으며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것인가를 헤아리며 이에 따르는 실천적인 대책도 생각하시였다.

고통과 분노를 자제하며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의 앙양을 위해 마음쓰시였고 휘몰아치는 반혁명의 역풍속에서 혁명의 타륜을 튼튼히 틀어잡고 항로를 멀리까지 내다보고계시였다.

일제는 지금 쏘련과의 일시적인 타협을 성사시키고나서 식민지 조선에 대해 특히 공산주의적인 반일무장세력에 대해 탄압과 회유정책을 더욱 강화할것이라고 예상하시였다.

이런 형편에서 무엇보다 혁명군대오안에서 자주혁명정신, 자력독립사상을 더욱 철저히 견지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별들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그이께서는 지금 해 저무는 산비탈에서 변절자를 저주하며 의분에 들끓는 대원들을 보시면서 이 귀중한 혁명의 골간들을 더욱 믿음직하게 보호하고 사랑을 담아 튼튼히 육성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시였다.

사색에 잠겨 거닐고계시는 그이의 앞으로 류경수가 다가오더니 제의했다.

《사령관동지, 제가 대원 몇명을 데리고 가서 변절자를 잡아오겠습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버러진 그는 떡메같은 주먹을 틀어쥐고 울분을 토했다.

《그놈이 갔으면 얼마나 갔겠습니까! 처창즈의 수림속을 헤메고 다닐겁니다. 그놈을 잡아다가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뒤따라온 김기창이도 호응해나섰다.

《그놈이 아마 밍위웨거우(명월구)나 라오터우거우(로두구)쪽으로 간것 같습니다.》

다른 대원들도 걸어오며 떠들었다. 만사 제쳐놓고 변절자를 징벌하겠다는것이다.

해는 저물었으나 락조의 빛은 아직 산발에 어려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원들쪽으로 다가가시였다. 흥분한 모습들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동무들, 변절자를 붙잡겠다고 온통 떨쳐나서 찾아다닐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게 품을 들여 붙잡아다가 처단해서는 무얼합니까?》

분김에 떠들던 대원들이 잠잠해지자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놈은 어디가서 숨어지내거나 적의 편에 갈것입니다. 그놈은 원쑤들의 발밑에 기여들어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게 내버려둡시다.

이제 우리가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광복하면 그놈은 가슴을 치며 후회할것이고 낯을 들고 밝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겁니다.

변절자에 대해서는 더 말도 하지 맙시다.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비겁한자는 갈테면 가라고 합시다.···》

대원들은 격했던 감정들이 풀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길마저 침착해진 대원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조선민족의 높은 기개를 지니고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한영옥동무의 아버지, 어머니를 잊지 맙시다.

또한 지금도 원쑤들의 추격과 박해를 받고있는 혁명동지들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지금 전민항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기 위해 백두산으로 진출하고있습니다. 목표가 뚜렷하고 걸음이 바쁘지만 전구에서 동지들이 차지했던 진지들이 파괴되고 피어린 혈투가 벌어진걸 보면서 그대로 지나쳐갈수는 없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진지를 보호하고 튼튼히 다지기 위해 피를 바치고 심혈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조국광복의 결전을 위한 믿음직한 터전이 마련되는것입니다.···

동무들!

지영갑은 우리와 함께 10년 가까이 혁명의 길을 걸어왔지만 신념이 확고하지 못하고 량심과 의리가 없는 놈이였기때문에 변절도주했습니다.

사대주의에 물젖어 큰 나라만 쳐다보면서 자기 힘을 믿지 않다나니 혁명적인 신념이 뚜렷할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해서 조선혁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쏘련이 일본과 중립조약을 맺은게 뭐가 그리 놀랍고 두렵단 말입니까. 그런 조약은 한낱 허울에 불과한것으로 국가들의 리해관계가 달라지거나 세력관계가 변하면 헌신짝처럼 줴버리고 제멋대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지금 세계정세가 복잡하고 대전의 불길이 더욱 넓게 퍼져가는 형편에서 모든 나라들이 자기의 안전을 지키려고 갖은 수단을 써가면서 다른 나라들과 불가침조약을 맺으려고 뛰여다닙니다. 침략자들도 남을 쳐먹을 생각을 하면서 다른쪽으로부터의 타격을 막으려고 그런 조약을 맺습니다.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쏘련을 공존할수 없는 적대국으로 치부하면서도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한주일전에 쏘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는 동안에 동쪽에 있는 대국인 쏘련은 제발 가만있어달라는 속심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유럽대륙을 다 타고 앉았으니 이게 쏘련에 쳐들어가리라는건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조약 같은건 생각지도 않을겁니다.···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데다 큰 나라를 쳐다보고 큰 나라에 의거하는 사대주의에 물젖어있다나니 <쏘일중립조약>에 하늘이라도 무너진것처럼 절망에 빠져버렸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리적으로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있는데다 봉건통치의 오랜 기간 큰 나라를 섬기며 지내오다나니 사람들의 머리속에 사대주의사상이 뿌리깊이 남아있습니다.

그러기에 력대로 외래침략자들이 쳐들어오면 인민들은 의분이 끓어넘쳐 목숨바쳐 싸웠지만 무능한 통치배들은 인민들을 믿지 않고 대국을 쳐다보면서 대국의 힘을 빌어 외적을 물리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외적을 물리쳤다 해도 다시 다른 대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흘러온 수치스러운 사대주의의 력사를 끝장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

이것이 오늘 우리앞에 나서는 절박한 과업이고 우리 혁명의 당면구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번에 백두산에 나가 국내와 백두산일대에서 활동하는 소부대, 소조, 지하조직책임자들을 통하여 인민들에게 이 사상을 심어주고 이 사상으로 인민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부터 하려고 합니다.

우리 항일유격대는 일제침략자들을 쳐부시기 위해 전인민적항쟁의 앞장에 선 핵심부대인 동시에 우리 나라력사에서 처음으로 자주정신을 지니고 자주적인 힘으로 침략자들을 쳐부시는 자랑스러운 투쟁전통을 창조하는 선구자들이라는 높은 자각과 긍지를 지니고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깊은 감명에 젖어 숙연히 서있었다. 대국들의 힘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들으니 혁명의 앞길이 더욱 간고하게 느껴졌으나 세상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심오한 진리를 밝히며 자기자신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도도하게 호소하시는 담력과 신념이 넘치는 김일성동지의 영상은 더욱 거룩하게 우러러 보이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