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3


 
 

제 5 장

3

 

복지향《개척민》부락까지는 산을 타고 질러간대도 닷새길이 실히 되지만 그들은 밤새워걸어서 나흘째의 아침나절에 토성밖의 산등성이에 도착했다. 품팔이군의 행색을 한 그들은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참나무수림속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폈다.

지경에 두메오리나무가 두그루 서있는 원로인네 밭에서는 늙은이와 소년이 곽지로 땅을 찍어번지며 밭고랑을 짓고있었다.

비탈아래쪽에서는 아낙네까지 한가족인듯 한 네명의 아이어른들이 역시 곽지로 땅을 뚜지고 성문이 내려다보이는 둔덕쪽에서는 아이어른이 어울려 멍에줄을 끌며 소없는 보습으로 밭갈이를 하고있었다. 둔덕너머에서도 행길건너편의 들판과 산비탈에서도 허옇게 널려 일하고들 있었다.

(어떻게 사람들을 만날것인가?)

지난 가을의 쓰라린 실패를 잊지 않은 홍대복은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도 속으로 궁리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임무를 주실 때 잘 아는 지대라고 하여 방심하지 말고 얼마간이라도 파악이 있는 농민들에게 접근하여 진심으로 사귀면서 실정을 료해하라고 가르치시였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많지만 함께 싸우던 동지들의 생사여부도 모르고 어찌 이 고장을 떠날수 있겠소!》

자신을 탓하시듯 가슴아파하시며 말씀하셨을 때 박중돈과 함께 전투에 나갔던 홍대복은 자책감으로 하여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그를 고무해주시였다.

《···홍대복동무는 군중성이 있고 또 그 일대에서 여러번 공작했으니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리라고 믿소.》

처음으로 소조를 책임진 사명감을 무겁게 느끼면서 홍대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임무를 수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원로인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속에 그 집 맏아들이 없는것을 이상해하면서 소박하고 정직한 그 로인부터 만나 형편을 알아보리라 작정했다.

그때 저고리를 벗어 팔에 건 사람이 행길에서 올라온듯 비탈밭아래쪽에 나타났다. 누런 홀태바지를 입고 《전투모》를 뒤통수에 제쳐 쓴 그 사람은 아래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하고나서 밭지경을 따라 두메오리나무 두그루가 서있는 곳으로 올라오는것이였다. 그러자 둔덕쪽에서 소없는 보습의 탑손을 잡고 일하던 장정이 머리에 동였던 수건을 벗어 땀을 훔치며 원로인네 밭쪽으로 스적스적 내려온다.

《전투모》가 나무아래에까지 오니 밭에서 곽지질을 하던 늙은이가 허리굽혀 인사하고 묻는 말에 대답하며 밭지경으로 나가는데 소년이 따라서고 그뒤로 수건을 어깨에 걸친 장정도 걸어간다. 밭머리에 어성버성하게 앉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호걸스러운 장정의 목소리가 도간도간 들리고 흥겨워하는 그의 웃음소리가 연두빛으로 물들어가는 등성이의 수풀속에까지 울려온다.

《전투모》를 쓴 사람은 무슨 벼슬아치같이 보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는데도 그들이 흩어질념을 하지 않는것을 보면서 홍대복은 다른 산밭쪽으로 돌아가볼가 하고 생각을 굴리였다.

《홍동무!》

후면을 감시하던 대원이 그에게로 기여와 어깨를 건드렸다. 그가 가리키는쪽으로 고개를 돌린 홍대복은 짐을 지고 릉선을 넘어온 사람이 오솔길을 따라 고개에 오르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허름한 캡을 쓴 모습이 원덕천이였다. 그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밭지경을 살피다가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지고가는 짐은 네발을 버둥거리는 산 노루였다. 앉아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그가 오는것을 보고 떠들며 달려올라와 기뻐하면서 다시 나무아래로 몰려내려갔다.

《전투모》만이 일어서서 바라볼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원덕천이 노루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후에도 둘러서서 구경하며 흥겹게 지껄여댔다.

이윽고 《전투모》가 아래로 내려가니 젊은이는 다시 노루를 짊어지고 따라갔으며 다른 사람들도 저마끔 밭으로 흩어져갔다.

(상전에게 섬겨바치는군!)

하고 홍대복은 원덕천에 대해 속으로 코웃음쳤다.

한낮때가 되자 널려서 일하던 사람들이 점심밥보자기를 들고 두메오리나무아래에 어슬렁어슬렁 모여앉았다. 점심참이 지나 한식경이나 쉬고난 사람들이 다시 자기 밭으로들 흩어져갔을 때 홍대복은 행동을 개시하기로 작정했다. 게으름을 자아내는 봄볕이 포근히 쏟아져내리는 이러한 시간에는 수비대의 병정들도 평온과 라태속에 딩굴것이였다.

두 대원에게 경계임무를 맡긴 그는 릉선을 넘어온 오솔길을 따라 밭지경을 타고내려갔다. 고랑을 지으며 밭지경에까지 나온 원로인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스적스적 지나내려가다가 돌아보면서 물었다.

《아부님, 여기가 복지향부락이지요?》

로인은 길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렇시다.》 하고 심상하게 대답한다.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하고 홍대복은 다행으로 여겼다. 《향장님을 만나자면 어디에 가면 될가요.》 하고 홍대복이 물으니 안도감을 느낀 원로인은

《아까 여기 왔다갔은께 지금쯤 집에 있을끼라.》

하고 선선히 대답한다.

홍대복은 그 자리에서 다시 물었다.

《마을에 들어가면 원덕천이라는 젊은이를 만날수 있습니까?》

《무신 일루 그 사람을 만나자는기요?》

홍대복은 웃으며 몇걸음 올라섰다.

《지난 초봄에 우리 장새촌에서 이 부락사람들과 패싸움이 있었는데 그때 그 젊은이가 몹시 다쳤다는 소문을 듣구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마을을 지나가던 길에 안부도 물을겸 사죄를 하려구요.》

로인의 볕에 탄 얼굴이 빙글써해졌다.

《고마운분이구마. 덕천이는 우리 집 맏이라. 인자 다 나았으니 걱정놓으소. 그 일때메 왔다면 부락에 들어갈것두 없은께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소.》

홍대복은 등성이아래서 밭을 갈던 장정이 이쪽으로 오고있음을 진작 보았으나 원로인은 그가 가까이 와서야 알아보고 길손이 찾아온 사연을 웃으며 알리는것이였다.

《최서방, 이 나그네가 장새촌 사람일다.》

최서방도 이쪽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앉아서 담배피우기를 권했다. 홍대복은 장새촌에서 그날 밤에 업어다 놓은 원덕천의 머리맡에 앉아 피를 닦아내며 상처를 치료하던 최서방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그들이 담배를 피우며 그날의 어리석었던 일을 개탄하고있을 때 뒤산에서 뻐꾹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홍대복은 은근히 비탈아래와 행길쪽을 살폈으나 다른 동정은 없었다. 그가 눈길을 우쪽으로 돌렸을 때 지금쯤 부락안에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원덕천이 이쪽을 여겨보며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고있었다. 최서방이 돌아보고 놀라운듯

《아-니, 으떻게 이리루 오능기야?》

하고물었다. 원덕천이 대답없이 홍대복이만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덕천이 이 사람아, 이분은 장새촌에 사는 사람이란께. 초봄에 우리가···》

《아저씨-》

원덕천은 그의 말을 밀막으며 웃고있는 홍대복이를 여겨보는것이였다.

《나를 알아보겠소?》

하고 홍대복은 앉은 자리에서 태연하게 물었다.

《작년 가을에··· 여기 와서 량식팔아 달락고 하던분이 아니유?》

《알아봤구만, 반갑소, 덕천이··· 장새촌에서두 머리가 터진 임자를 업어냈지.》

원덕천은 풀썩 주저앉으면서 땅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못난 이자식을 용서해주이소.》

어리둥절해졌던 최서방이 무엇인가를 감촉한듯 사방을 둘러보고 중얼거렸다.

《빨리 웅덩개로 내려가라, 내려갑시다. 토성우에 올라서문 만리경으루 이 아근이 환히 보인다···》

그리고는 일손을 놓고 이쪽을 바라보는 소년에게 타일렀다.

《너랑 아부지하고 곽지질하문서 이쪽은 보지 말란께.》

물기없는 웅덩개엔 소털같은 잔풀이 파랗게 돋아나고있었다.

세사람이 둘러앉자 원덕천이

《그때 같이 왔던···》

하고 입을 떼다가 생각난듯 말머리를 돌렸다.

《무슨 일루 오신기요?》

홍대복은 어떤 예감에 이끌리며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우리는 동지를 찾고있소. 총독이 온 날 밤에 전투를 하다가 행방불명된 동지를···》

《그때 같이 왔던··· 가죽외투를 입은··· 박중돈형님은 살아계셔유-》

홍대복은 흥분하여 원덕천의 손을 덥석잡으며 눈물이 글썽해서 다우쳐 물었다.

《어디 있소? 지금 어디에 있소. 몸은 어떻소?》

《인자 다 말하겠시유. 근데··· 우리사··· 야단이유···》

최서방은 얼굴이 환해져서 젊은이의 잔등을 철썩치며 좋아했다.

《됐단께. 덕천아, 어서 이분 모시구··· 가문서 이야기하라.》

그가 재촉하니 원덕천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부탁했다.

《그럼 아저씨- 뉘기 날 찾거던 노루옹노 보라갔닥 해주우-》

《오냐오냐. 뒤일은 내가 맡아줄거니 어서 가라-》

웅덩개에서 나오자 최서방은 자기밭으로 가고 원덕천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고개를 넘어갔다.

그들이 땅굴이 있는 산비탈에 도착했을 때 박중돈은 빨아서 깨끗해진 군복을 입고 굴밖의 떨기나무숲에 비스듬히 누워 해볕을 쪼이고있었다.

원덕천이를 따라 나타난 동지들을 보고 너무도 놀랍고 반가와 울고 웃으며 팔을 벌리고 엉기엉기 내려왔다. 사령관동지께서 전구에 나오시여 그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소조들을 파견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사령관동지!··· 이 박중돈이는 죽지 않습니다.》 하고 맹세라도 다지듯 엄숙하게 뇌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동지들도 감격하여 함께 울었다. 울음의 격동이 한물결 지나간 뒤에 홍대복은 혁명군의 투쟁소식을 전했고 귀담아 듣고있던 박중돈은 애끓는 심정으로 사령관동지를 그리워하면서 서글픈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동무들, 나는 큰일도 치지 못하고 죽을번 하다가 저 원덕천의 도움으로 살아났소. 덕천이 나를 살려내느라고 고생한 얘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을거요. 그 과정에 나는 덕천이와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였고 덕천이도 혁명가로 자라고있소. 원덕천이 혁명가로 자라났으니 복지향<청년의용대>도 장차로는 혁명의 편에 확고히 서게 될거요.

여기에 세번이나 왔다간 최서방과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 아저씨도 비밀조직결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결의했소···

동무들, 부대에 돌아가면 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려주시오.

이 박중돈이는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순간까지 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어 군중공작을 적극 벌리면서 혁명승리를 위해 기여하겠다고 하더라고···》

그의 강마른 검스레한 얼굴에서 두눈이 불타오르며 번쩍였다. 모두들 감동하여 엄숙해진속에서 홍대복이 벙글거리며 쏘아붙였다.

《조장동무, 무슨 마지막부탁 같은 말을 하는겁니까! 원-참!》

그리고는 상처를 보자고 달라붙었다. 팔뚝의 상처자리에서는 처맨 헝겊을 풀어헤치자 검붉은 고름이 흘러내리고 살은 아래우쪽으로 거멓게 죽어가고있었다. 다리는 한결 나아서 디디고 다닐수도 있다는것이였다. 박중돈은 락심한 동무들앞에서 원덕천이 자기를 시내의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 사연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홍대복은 조금도 웃지 않고 심중하게 말했다.

《조장동무는 우리와 함께 사령부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사령관동지께서는 밤잠도 쉬지 못하면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계십니다. 당장 떠나야 합니다.》

대원들이 적극 공감했으나 박중돈은 고개를 저었다.

《고맙소. 동무들,

솔직히 말하면 우리끼리 있던 밀영병원이라면 내 혼자서도 찾아가려고 했댔소. 그렇지만 이런 몸으로 사령부에 찾아갈수는 없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선혁명을 총지휘하시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백두산으로 나가시는 길인데 심한 상처를 입은 내가 업혀가면 사령부의 활동에 지장을 주게 되오. 이건 엄연한 사실이요. 그러니 내 량심이 허락치 않소. 그리고 또 이 일대에서 적<토벌대>들이 기승을 부리는데 운신하지 못하는 나를 업고 가다가 무슨 봉변이 생길지 예측할수 없소.

나는 여기서 상처를 다 치료한후에 찾아가겠으니 그렇게 믿어주오. 이건 나의 굳은 결심이요.》

그의 말에서는 진정이 울렸다. 홍대복은 두 조원과 따로 앉아 의논하고나서 박중돈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의 이 사태를 사령관동지께 한시바삐 보고드리고 사령관동지의 결론에 따라 움직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이제 대원 한명과 함께 사령부를 향해 떠나겠습니다. 나흘후에, 늦어도 닷새만에는 여기에 돌아오겠으니 그동안 한 동무가 여기 남아 조장동무의 치료를 맡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덕천이는 적들의 경계도 심하고 밭갈이도 많이 밀렸으니 그동안은 여기에 오지 않아도 되겠소. 그렇지만 나흘후에는 꼭 여기 와있어야 하겠소.》

말을 마친 그는 자기 배낭에서 얼마간의 량식과 함께 통졸임 두통을 꺼내놓았다.

《이 통졸임은 리순정동무가 사령관동지께 대접하려고 겨울동안 내내 간수해두었던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리순정동무가 아껴두었다가 드린 통졸임과 다른 식료품들을 한점도 들지 않으시고 이번에 공작지로 떠나가는 소조들에 나누어주라고 지시하시였습니다. 조장동무를 찾으러 떠난 장새촌공작조와 우리 소조에는 두통씩 주면서 조장동무를 만나면 같이 먹으라고 이르시였습니다.》

박중돈의 두눈에 눈물방울이 서서히 맺히더니 떨리는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홍대복은 한시도 지체할수 없는 심정이여서 일어서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대원한명과 함께 사령부를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