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7


 
 

제 5 장

17

 

비살이 가늘어지면서 바람이 일었다.

수목은 무성한 가지들을 휘저으며 몸부림치고 천리수해를 이룬 백두의 원시림은 폭풍을 안은 대양처럼 설레였다.

줄금줄금 내리는 비는 한낮이 지나도록 끊칠줄을 모른다. 골짜기마다 벽계수가 넘쳐 흐르고 하늘에서는 바람이 휘몰아쳐 천지간에 물소리, 바람소리만 쏴-쏴- 소란하다. 한여름이건만 밀림속은 춥고 구지지했다.

사령부소부대는 곰산밀영을 떠나 사지골로 가는 길에서 비를 만난것이였다.

하루면 넉넉하다던 길을 사흘째 걷고있으니 모두들 더욱 기분이 흐려있었다. 하지만 사령관동지께서함께 가고계셨으므로 딴말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밀영건설에 처음부터 참가했던 《푸관》으로 불리우는 유격대의 후방일군이 길안내를 하고있었으므로 마음을 놓고 따라갔다.

아침나절에 소부대와 동행하는 류경수가 무슨 길안내를 이렇게 하느냐고 나무랬으나 모두들 궂은 날씨에 밤에는 걷지 않았으니 지체되였으려니 여겼다. 골계수가 불어나 멀리를 에돌기도 했던것이다.

쏘만국경을 넘어 지엔다오(간도)의 중심지대를 거쳐 백두밀영에 초여름에 도착했을적엔 줄창 맑은 날씨가 계속되였었다. 간백산밀영에 모인 북부조선일대와 백두산 서북부지대의 지하조직책임자들은 회의휴계시간이면 산비탈에 들어앉은 귀틀집마당에 나가 얼기설기 뻗어간 산발들너머에 백설의 봉우리를 이고 거연하게 솟은 백두산을 바라보며 탄성을 올렸었다. 담청색으로 선명한 산허리에 머물러 움직임이 없는 흰 구름장, 그우에 높이 솟아 만리창공과 더불어 화답하는듯 한 백두의 령봉은 보고 또 보아도 마음이 끌리는 숭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이였다.

그러기에 어떤 대표들은 성산의 위용을 지척에 보고 돌아가기 아쉽다면서 회의를 마치고는 시간을 내여 탐승하기를 은근히 바랐으나 강점자들에게 짓밟히는 땅에서 명산대천탐승이 될 말이냐고 옆에서들 충고하는 바람에 더 말을 못하고 투지를 더욱 가다듬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회의에서 조성된 정세를 분석하고 더욱 절박하게 나서는 목전의 과제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하자!》는 사상을 대표들의 가슴에 깊이 심어주고 투쟁방도를 제시한 후 활동지역으로 돌려보내시였었다. 그리고는 휴식할 사이없이 후방밀영이며 출판소사업들을 지도하시고는 소백수골의 사령부밀영에서 각 지구의 소부대활동정형을 분석연구한데 기초하여 장차의 투쟁계획을 면밀하게 검토하시고는 백두산동북부지구로 떠나시였다. 적들이 끊임없이 싸다니는 허룽(화룡), 옌지(연길)지구를 지나 왕칭(왕청)땅에 들어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비탈아래 여기저기에 파먹고 버린 금전굴들이 잡초에 덮이고 골바닥에는 잔디밭우에 듬성듬성 물사리꽃이 보라빛으로 수놓아진 참나무숲이 무성한 쟈피거우골안에서 소부대소조들의 지휘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회의에서 그 무렵에 발발한 쏘도전쟁의 경위를 개괄하고 쏘련이 참가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은 반파쑈인민전쟁의 성격을 띠게 되였음을 밝히면서 인민들의 단합된 힘이 제국주의침략자들을 타승하리라는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일제가 《일쏘중립조약》의 체결로 일쏘간의 모순이 해소된것처럼 떠들고있지만 히틀러가 《쏘도중립조약》을 무시하고 대쏘침공을 감행한것처럼 일제도 조약의 허울밑에서 대쏘침공을 더욱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사실을 례증하면서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바람결을 따라 돛을 달것이 아니라 자기 운명은 자기 힘으로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쳐주시였었다···.

그 회의이후에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가 쏘만국경을 향해 크게 개설하고있는 군용도로건설장 공격전투를 구상하시고 그 지구의 소부대들을 집결시키시였다. 도로건설장에는 호로대뿐아니라 경찰수비대의 병력도 전개되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의 배치정형과 력량상태를 면밀하게 정찰한데 근거하여 대낮에 불의습격으로 적들을 소탕한후 만세를 부르며 격동되여 환영하는 로동자군중앞에서 나라잃은 조선사람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반일전선에 하나로 굳게 뭉치라고 열렬하게 호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투쟁에 궐기하는 로동자들의 기세를 고려하여 유격대원들과의 담화를 통해 매개인들의 포부와 결의를 료해한 후 조선과 만저우(만주)의 각 지방에 파견하시였었다.

그러시고는 다시 옌지현 북부와 둔화(돈화)를 거쳐 서쪽으로 멀리까지 진출하면서 군중정치공작을 지도하시고 방향을 돌려 시지엔다오(서간도)를 지나 백두산의 곰산밀영으로 오셨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백두밀영의 사령부에서 국내공작을 지도하실 계획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곰산밀영에서 대기하고있던 류경수와 김명산을 데리고 지금 사자골밀영으로 나가시는 걸음이였다. 류경수를 김명산과 함께 국내공작에 파견하려고 진작 구상하고계셨던것이다.

비는 그쳤다가도 다시 줄금줄금 내렸으나 바람은 차츰 잦아들고있었다. 바람소리 없는 골안에서 물소리가 더욱 소란하게 들리고 수림우엔 안개가 자욱히 내리덮여 앞을 분간할수 없었다.

대오는 골바닥을 울리는 개울물소리를 들으면서 산비탈의 수림속을 전진했다.

비에 젖은 대원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안개속에서 움직이는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곰산에서 2∼3일 더 묵을걸 그랬습니다.》

행렬의 중간에서 사령관동지를 따라 걷고있는 김철한이 그이를 고생시키는것이 민망하여 중얼거리였다.

《비를 맞지 않겠다고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릴수는 없소.》

사령관동지께서 대범하게 말씀하시니 더 다른 소리없이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묵묵히 앞으로 전진했다.

안개속에서 기다리고있던 류경수가 사령관동지곁으로 다가오며 속심을 털어놓았다.

《걷기가 어째 이리 싫은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꼭 도깨비한테 홀려가는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얼굴에 흐르는 비물을 수건으로 훔치며 핀잔하듯 말씀하시였다.

《그렇다면 <박푸관>이 도깨비란 말이요? 당치도 않은 소리··· 갑시다. 좀 더 가다가 쉽시다.》

《힘들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하고 류경수가 발명하듯 뇌이고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안개속에서 주위를 유심히 돌아보며 걷다가 휴식명령을 내리시였다. 온통 물판이여서 앉지도 못하고 어츠랗게 서있는 대원들의 곁을 지나 앞으로 나가시는 그이의 뒤에서 경위대원들이 따라갔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더욱 갱핏해보이는 길안내자는 때아닌 때에 내린 휴식명령이 이상하게 생각되여 뾰족한 턱을 쳐들고 멀뚱하니 서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앞에 다가가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박동무 우리가 길을 잘못든것 같소. 어제저녁에 걸은 길을 지금 가고있소.》

추위와 불안으로 하여 푸관은 턱을 덜덜 떨었다.

《사령관동지, 그럴수 없습니다. 골안길을 타지 못해 그렇지··· 틀림이 없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어제 저녁에는 우리가 개울을 따라 걸었지만 골안은 이 골안이요. 나는 걸으면서 이런 곳에서 적군이 따라오면 어떻게 소멸할것인가 하고 생각했댔소. 여기 이 돌바위들을 보니 확실하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깎아지른 벼랑이 있을거요. 그런 정황에서 우리가 높은 지대를 차지한다 해도 적들이 그 바위밑에 들어서면 소멸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댔소.

철한동무와 같이 더 올라가보오. 우리가 여기서 기다릴테니··· 벼랑바위가 있을거요.》

밀영책임자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있다가 돌아서더니 땅바닥에 미끄러지면서 지척지척 올라갔다. 그뒤를 김철한이 따라갔다.

앞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여 류경수가 슬금슬금 올라오고 대원들도 다가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비를 맞으면서 여러해전 백두산에 진출하여 반유격구형태의 근거지를 꾸리던 일을 회상하시였다.

《밀영이 혁명근거지의 노란자위여서 위치선택으로부터 많이 고심했댔소. 우리가 떠나온 곰의골밀영은 김주현동무가 선발대를 데리고나와 위치를 잡고 건설을 시작했댔소.

그후에는 전군이 밀영건설에 달라붙었지. 그때 도끼, 톱, 자귀같은 도구가 없어서 애를 먹었소.···》

비오는 백두밀림속에서 조선혁명의 책원지를 건설하던 초시기를 더듬어보시는 그이의 얼굴에는 서글픈 미소가 떠돌고있었다. 뜻깊은 력사의 나날에 대한 그윽한 감개와 더불어 순국한 동지들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다.

수림속 저편에서 올라갔던 두사람이 돌아오고있었다.

앞에 선 김철한은 미간을 찌프린 우울한 표정인데 뒤에 오는 밀영책임자는 발앞을 굽어보며 눈길을 들지 못했다. 앞에까지 오더니 비에 젖은 창백한 얼굴을 숙인채 추위에 떨며 말했다.

《사령관동지, 제가 길을 헛갈렸습니다. 어제저녁에 지나간 골안이 옳습니다.》

《글쎄 무슨 쪼간이 있겠지.》

하고 류경수가 뇌이자 옆에서들 기가 막혀 웃거나 혀를 차는 속에서 김철한이 중얼거렸다.

《온밤과 낮을 산줄기 하나를 안고 돌았습니다!》

모두가 자신들보다 사령관동지를 고생시킨 일이 민망하고 분해 《푸관》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제가 건설하고 책임진 밀영에서 길을 잃다니··· 밀영책임자는 오늘부터 철직이다!》 하고 류경수가 성을 냈다. 분김에 던진 롱말인줄을 알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길안내의 실수도 푼수가 있지··· 하는 기분들이였다.

허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였다.

《밀영책임자가 길을 잃고 헤매는 형편이니 일제의 군경들 천만이 쓸어든들 두려울것이 없소.

백두밀영은 과연 천연요새요!》

그러자 을씨년스럽던 수림속이 훤하게 밝아지고 추위에 떨던 사람들의 가슴도 후더워지는것이였다.

그이의 호방한 말씀에서는 위축되여 떨고있는 밀영책임자를 위로하고 고무하시려는 뜨거운 심정과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근거지창설을 모색하여 조선혁명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오신 지난 날에 대한 긍지도 울리였던것이다.···

행렬은 오던 길을 돌아서 아래로 내려갔다. 알고보니 골짜기어구에 개울이 넘치여 길을 헛들었던것이다.

십리도 안가서 사자봉골짜기에 들어섰다. 홍두산아래있는 곰의골밀영의 부대병실은 채벌로동자들의 합숙자리였지만 출판소가 자리잡은 사자골밀영의 대원병실은 산기슭에 새로 지은 귀틀집이였다.

흐린 날씨여서 어둑어둑했지만 해가 있음직한 보리저녁때였다.

병실에 있던 출판소동무들과 함께 림춘추, 박중돈 그리고 복지향의 산간에 꾸려놓은 림시밀영에 자리잡고 박중돈이를 치료해주면서 군중공작을 벌려온 홍대복이네가 일행을 맞이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미 박중돈의 수술결과를 알고계셨으므로 지금 한팔을 잃은 그가 동무들의 뒤에 어깨가 처져 서있는 모양을 보고 격정이 북받쳐올라 성큼성큼 다가가 두팔 벌려 꽉 그러안으시였다.

《중돈이, 살아서 돌아왔구만. 살아서 돌아왔어!》

《사령관동지!》

박중돈은 사령관동지의 품에 안겨 졸라맨 한 팔로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그이의 군복섶을 안타까이 어루쓸면서 흐느꼈다.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느라 꽉 감은 눈시울밑으로 이슬같은 눈물이 스며나와 강마른 얼굴우에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떨고있는 그의 잔등을 은근하게 쓸어주시며 대견해하시였다.

《장하오! 장해.

전투에서도 영웅이고 수술에서도 영웅이고 군중공작에서도 영웅이요.

대오에 돌아온 중돈동무에게 사령관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오!》

박중돈은 몸가짐을 바로 하고 눈물에 번들거리는 갱핏한 얼굴을 쳐들었다.

《사령관동지, 혁명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싸워야지. 싸워야 해.

혁명가에게는 한순간도 투쟁에서 물러설 권리가 없소.

그래 상처는 다 아물었소?》

《다 아물었습니다.》

《아픈데는 없고?》

《없습니다.》

박중돈은 확신에 넘쳐 대답했으나 림춘추가 웃으며 다가서서 아직 깨끗하게 낫지를 않아서 뜨끔뜨끔 쏘겠지만 행동에 결정적인 지장은 없을것 같다고 설명했다.

《···걸음걸이가 온전하지 못하지만 이제 제대로 될겁니다.》

그이께서는 만족하여 빙긋이 웃으시였다.

《박중돈동무에게는 앞으로도 무거운 임무를 주어야겠구만.···》

그 말씀에 감동된 박중돈의 얼굴이 번들번들 빛났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휘원, 대원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웃음어린 얼굴로 그들뒤에 서있는 낯선 청년을 바라보시였다.

《박중돈동무를 구원해준 복지향마을의 원덕천입니다.》

림춘추가 곁에서 소개했다. 그이께서는 진작 짐작하시고 그에게로 다가가 따뜻이 손을 잡아주시였다.

《덕천이, 고맙소. 우리 동지를 구원해준 귀중한 은혜를 어떻게 갚았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만.···》

진정이 넘치는 사령관동지의 사의에 원덕천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할아버지 상사가 있어서 고향에 다녀 온다고 하고는 우리를 따라 왔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을 기어코 만나뵙겠다고 부득부득 따라오기에 데리고왔습니다.》

림춘추의 설명을 듣고 그이께서는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잘했소. 여기서 며칠동안 지내면서 혁명군형님들과도 사귀고 혁명투쟁에 대해서도 배우시오.

데려오기를 잘했소.》

사자골에서 사령부밀영이 자리잡은 소백수골짜기는 돌아가도 십리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으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날 밤 사자골밀영에서 묵으시였다. 밤늦게까지 박중돈이며 홍대복이 그리고 원덕천이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시며 지방형편을 깊이 료해하시였고 원덕천이 마을에 돌아가서 최서방과 손을 잡고 할 사업이며 장새촌의 박창술이와 련계를 가지면서 그 지방에서 조직을 확대해갈 방도에 대해 가르쳐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