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6


 
 

제 5 장

16

 

크지 않은 연회장에 무리등이 휘황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백설같이 흰 상보를 친 둥근 식탁들에는 비상시국을 상기시키듯 료리들이 간소하게 챙겨져있고 널직널직 자리잡은 빈객들은 엄숙하게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조심스럽게 마시고있었다.

연회장정면 가운데에 총독부 중추원 참의며 《향토시찰단》을 인솔하여온 신징(신경)방직재단의 조선인 부총재 등과 한식탁에 앉은 미나미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려있었다.

맏사위의 전사에 대한 비보를 받은 후에도 줄곧 장마철의 하늘처럼 침침하던 그의 가슴에 오늘 비로소 기쁨이 찾아든것이였다.

《향토시찰단》으로 온 만저우(만주)에 사는 조선사람들을 맞는것이 반가와서가 아니였다.

만저우의 개척과 부흥을 위해 다년간 현지에서 공적을 쌓은 조선사람들이 한때의 기회를 얻어 휴식 겸 향토를 방문한다는 꼭두각시놀음을 통해 이제는 조선사람들도 《내선일체》, 《선만일여》의 정신으로 일관되여 《대동아공영권》건설에 솔선 매진하고있음을 내외에 시위하자는것이였고 따라서 그것은 《<만저우국>을 안아키웠으며》 지금은 조선을 다스리고있는 미나미의 치적이였던것이다. 부임이래 식민지의 통치에 진력해온 다섯해동안 조선사람들을 노예화한다는것이 가망없는 일이라고 걸음마다에서 느껴온 미나미였으나 오늘 《향토시찰단》을 접견하는 마당에서 제후국사절이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인양 은으로 만든 기념품을 증정받은데다 자기 명의로 배설한 연회장에서 래방자들을 굽어보느라니 《선만일여》의 초지가 이루어진것만 같아 저으기 만족스러웠던것이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걷어올린 담황색 명주문보사이로 외등에 밝혀진 총독부의 후원이 내다보이고 그리로부터 흘러드는 무더위를 내몰면서 선풍기가 기분좋게 돌아가고있었다.

건너편 식탁우에는 지엔다오(간도)에 체류할 때 만났던 고형근이 앉아있었다. 옆사람들이 웃으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있는지 반쯤 마시고 놓은 술잔을 들여다보면서 미소를 지은 그의 옆모습은 무슨 생각에 잠긴것 같이도 보인다. 그때 거기 성 경찰청장은 미심쩍은데가 있다고 했으나 그후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일본의 시정에 충실하다는것이였다. 고형근의 옆에는 영접객으로 초청된 경성트레스의 조선인기자가 자리잡았고 그의 뒤에 있는 다른 식탁에는 조선어학회의 두 학자가 나란히 앉아 담소를 하고있다. 그중의 한 사람은 리극로였다.

미나미는 리극로와 등지고 앉은 고형근을 건너다보면서 그들이 그렇게 자리잡은것이 배석의 우연인지 아니면 감정의 알륵때문인지는 알수 없었으나 생활의 방불한 상징이라고 생각되여 회심의 미소를 금치 못했다. 자기가 주둔군사령관으로 봉직하다가 조선을 떠나게 되였던 십여년전의 일이 또다시 떠올랐던것이다.

그때 그들은 절친한 지기로 붙어다니면서 자기의 초청을 거절했었다. 조선을 떠나가는 인연없는 인물로 치부해서였는지 아니면 일본군대의 관병식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반감때문이였는지, 어쩌면 그 두가지가 다 관련되였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대수롭지 않게 거절했었다.

(그때 저사람들이 몇해후에 내가 다시 조선에 오리란걸, 와서 이 땅의 최고통치자로 되리라는걸 알지 못했지.···)

하지만 미나미는 알았었다. 주둔군사령관으로 그 땅과 백성들을 알게 된 연후에 다시 총독으로 군림한다는 관례를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그때 선진국인 도이췰란드와 일본에서 방금 돌아온 장래가 촉망되는 조선의 젊은 인테리들을 사귀여두려고 했던것이다.

(저 사람들은 그때 알수가 없었어.···)

미나미는 웃음어린 표정으로 늙은 허수아비인 중추원참의와 술잔을 찧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십수년이 흐르는 동안에 세상은 많이도 변하고 의기양양하던 저 사람들의 얼굴에도 생활의 고통이 주름주름 얼룩졌고 자기가 마련한 놀음의 꼭두각시가 되여 한쪽은 방문객으로 다른 쪽은 환영자로 서로 등지고 앉아있는것이다.

이것은 미나미가 의도한바였고 또한 제국이 소원하는 통치방법이였다.

《각하!》

옆에 앉은 신징직물재단의 부총재가 안경속에서 황송하여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우리 재단은 이제 난징(남경)에 큰 회사들을 설립하려고 하는데 거기 형세가 장차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

《거기 수립된 신정권은 장차 전 중국을 거느리게 될거요.》

《참말 왕조명씨를 중징(중경)정부에서 끌어낸것은 일본군부의 선견지명입니다.》

미나미는 느슨히 떠오르는 웃음속에서

《그자신의 선견지명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응대하고는 자기 생각에 잠겨 실눈을 지었다. 웃음이 떠오른것은 중징정부라는 말에 며칠전에 조선주둔군 사령관으로 전임되여온 이따가끼가 하던 말이 련상되여서였다.

정부에서 륙군상으로 있다가 중국주둔군 참모장으로 전출되여 전선을 지휘하던 이따가끼중장은 대장으로 승격되여 조선으로 오면서 중국주둔군 특무기관장에게서 들은 조선과 관련되는 한 일화를 얘기했었다.

장개석정부를 따라 중징에까지 흘러간 조선인 쌍하이(상해)림시정부가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는 형세를 보고 일본에 대항하려고 《광복군》이라는걸 조직했는데 군사도 무장도 없는 군대를 꾸리자니 자금이 없어 중징정부에 재정원조를 요청했다는것이다. 국민당 군사위원회에서는 그 요청을 귀찮게 여겨 군인이 얼마나 있는가 보자고 했더니 《광복군》조직자들은 지휘관재목 몇명을 긁어모았으나 하급장교와 병졸들이 없어 국민당군대의 한 련대장에게서 한개 중대를 꾸어 조선옷을 입혀 내세웠다가 탄로되는 바람에 망신했다는 일화였다.

그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이따가끼는 호방하게 껄껄 웃고나서 《조선의 반일세력이 다 그러하다면 나도 역시 편안하게 살아가겠는데···》 하고 중얼거렸었다.

그때 미나미는 나직이 한숨을 짓고 고개를 저었었다.

《사령관도 잘 알겠지만··· 김일성장군이 이끄는 혁명군은 기왕에도 만저우에서 관동군과 대결했고 지금은 조선에서까지 흘러나와 우리의 목줄을 조이고있소. 양무리에 지나지 않던 백성들을 각성시켜 제국의 생명선인 이 반도에서 결전을 벌리려고 꾀한단 말이요.》

《난징에 회사들을 설립하자면 자본금이 많이 들텐데···》

《저기 앉아있는 은행두취와 이야기해보구려.》

《이번에 조선에 나왔던 기회에···》

옆에서들 그냥 이야기를 벌려놓고있었으나 미나미는 중징정부라는 말이 야기시킨 련상작용으로 하여 회사요 자본금이요 하는 화제에 흥심이 없었다. 접대양들이 흘러나와 료리담은 접시들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미나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비넥타이를 맨 수석접대부가 일본식 술주전자를 올려놓은 자개박은 쟁반을 받쳐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총독은 자리의 순차를 따라 손님들에게 한잔씩 부어주다가 고형근의 옆에 와서 친근하게 웃었다.

《고형근씨를 여겨서 다시 만나게 되여 대단히 반갑소.》

고형근은 일어서서 총독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아들고 정중히 사례했다.

《고맙습니다. 다 총독각하가 념려해준 덕분입니다. 총독각하가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주신 덕에 저는 지엔다오에서도 후더운 믿음과 영예속에 지내고있습니다.》

주위에서는 수저소리 하나없이 정숙하여 그들의 대화에 귀기울이고있었으므로 총독은 고형근의 찬사에 어지간히 기분이 밝아지는것이였다.

《인사는 고맙소만 여기 앉아있는 내가 어찌 만저우땅에까지 덕을 펼치겠소!》

겸양의 어조속에 자기 덕망을 덧보이려는 심정이 비치고있었다.

《제가 말씀드리는것은 있은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총독각하가 다녀가신 뒤에 저는 <만저우국>의 최고위인물들이 렬석한 의식에까지 참가하는 영예를 지녔댔습니다.》

《흐음- 그렇다아- 신징(신경)에 갔댔소?》

《아니올시다. 의식은 지엔다오에서 거행되였습니다.》 하고 고형근은 눈길을 숙이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떠나온 뒤에···무슨 의식이 있었소?》

고형근은 마지 못해서인듯 주저하다가 또렷이 말했다.

《<일만토벌장병전몰자위령제>였는데 관동군사령관이하 수많은 고위장성들과 <만저우국> 국무총리를 비롯한 대신들이 모두 참석한 위엄있는 의식이였습니다.》

《허어- 그런 일이 있었군!》

대수롭지 않은듯 뇌인 미나미는 걸음을 옮겨 다음 식탁으로 향했다.

우둥퉁한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가슴속에서는 싸늘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관동군사령관을 비롯하여 《만저우국》에 있는 관동군 장성들과 정부의 고관들이 다 참석한 《일만토벌장병전몰자위령제》라면 얼마나 요란스러운 비극적인 의식이겠는가? 얼마나 많은 《토벌군》이 전몰했으면 그렇게 성대한 위령제를 거행했겠는가. 그것도 지엔다오땅에서···

다른 설명이 없어도 그것이 김일성공산군에 의해 소탕된 전몰자들이라는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런 말을 연회장가운데서 공공연히 뇌이다니··· 분이 치밀고 괘씸하기 짝이 없었으나 돌이켜보면 덕망을 칭송하는 바람에 들떠있었던 자기때문이였고 이것저것 자꾸 캐여물었던 자기탓이였다. 전몰자위령제로 말하면 신징에서 우메즈사령관과의 회담시에 자기가 극력 권고했던 의식이였다.

죽은 사람들은 그만두고라도 그들의 유가족들과 장차 싸워야 할 장병들의 의기를 북돋기 위해서 반드시 거행해야 된다고···

그러니 누구를 탓할 일이 못되였다. 후날 관방실장으로부터 지엔다오에서 거행된 《일만토벌장병전몰자위령제》에 대한 기사가 《매일신보》에 서너줄의 단신으로 보도되였었다는 실상을 들었을 때엔 보도관제를 허술히 한 우메즈사령관과 주책없이 아무데나 코를 디미는 기자나부랭이들을 욕설했지만 그런줄을 알지 못했던 이날밤의 연회장에서는 고형근을 의연히 불만스럽게 여겼다. 알지 말아야 할 군부의 비밀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했다고··· 엄엄해진 총독의 기분을 고려해서 연회장 한구석에서 축음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고소리 소란하게 군가가 울려퍼졌다.

진군나팔소리를 들을 때마다 환영기발의 바다가 눈앞에서 파도친다는, 일본군병정들의 공명심과 투지를 고무하는 총독이 좋아하는 군가였다.

미나미도 기왕에 그 군가를 부르면서 기병중대를 이끌고 일로전쟁의 격전장으로 달려나갔던것이다. 저가락장단이라도 치고싶어지는 군가의 박력있는 곡조는 흥이 없이 이어지던 연회에 활기를 돋구면서 연회가 바야흐로 종막에 이르렀음을 시사하고있었다.

식탁앞에 앉은 사람들은 눌러오던 식욕을 달래기라도 하려는듯 잔을 기울여 마시며 수저를 놀렸다. 연회장안이 부산해지고 말소리들이 높아졌다. 이런 때를 기다린듯이 고형근이 천천히 돌아앉으면서 뒤에 있는 리극로를 이전날처럼 호로 불렀다.

《이사람 고루··· 오래간만일세.》

리극로도 이쪽으로 몸을 돌리고 엇비듬히 엄숙하게 치떠보는것이였다.

여러해동안 헤여져있던 지기들사이의 너무나도 랭담한 대면이였다.

《청송! 자네도 이런 자리에 참석했네그려.》

호협하던 농사군형의 학자답지 않게 쓰겁두루한 가시돋힌 리극로의 응대였다. 그것은 지난해 가을 리극로를 찾아가 절교를 선언한 자기에 대한 힐난인듯 싶었다. 고형근은 리극로가 입고있는 넥타이 맨 청회색 양복을 일별하고 소리없이 한숨을 지었다. 여러해전의 늦가을 추운날에 경성역에서 자기를 바래우던 때에 입었던 외출용단벌옷인데 목깃이 누르끼레 해여져있었다. 했으나 그는 자책과 련민의 정을 누르고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쳐들고 대답했다.

《참석했지. 주인어른의 뜻으루···》

이쪽을 쏘아보던 리극로의 입가에서 조소가 사라지고 눈길은 파고들듯이 진중해지는것이였다. 총독의 초청을 받았을것은 짐작할수 있지만 주인어른이란 과연 누구를 념두에 둔 말일가··· 하는 의문을 물어보고싶은 모양이였다. 의아해하는 표정만 보고도 고형근은 마음이 놓였다.

팽팽해진 몸을 움직이며 눈길을 숙였다.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어학회에 한번 찾아가겠네.》

그는 리극로를 조용히 만나 진속을 타진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총력련맹>의 기발을 메고다니는 사람들속에서도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나가는 인사들이 한두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를 조국광복회 특수회원으로 받아주신 자리에서 정답게 말하던 녀성공작원의 목소리가 챙챙하게 울렸던것이다. 하여 그는 언제건 리극로를 만나 그의 진정을 두드려보리라 마음먹었다.···

군가의 씩씩한 선률은 연회장의 소음을 누르며 쩌렁쩌렁 울렸다.

연회가 필하자 미나미는 정원에 나갔다. 손님들을 태운 승합차가 사라질 때까지 한 자리에 서있다가 후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밖은 더웠지만 미풍이 선들거려 숨쉬기는 헐했다. 성가신 일 한가지를 치르었으나 마음은 어쩐지 개운치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울적할가?)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더듬다가 지엔다오에서 온 고형근이라는 자가 주책없이 뇌까린 《···전몰자위령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한숨을 짓고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별이 가득한 하늘아래 돌기둥이 우중충하게 늘어선 《경희루》가 바라보였다.

지나간 세월에 이 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이 계상계하에 늘어앉아 태평가를 부르며 주연으로 밤을 새우던 놀이터, 망국의 상징인양 지금은 지붕이 없는 높은 루대를 바라보느라니 서글픈 웃음이 떠올랐다.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과연 우리 일본은 그때 무엇을 했던가?

극동의 바다 한구석에 떠있는 우리 섬나라에서도 그때는 봉건적할거와 신분제도가 인민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암흑의 시대였었다. 그후에 명치유신-

개명하지 못한 국토의 동떨어진 섬들까지 계몽과 향학의 등불로 밝히면서 만백성이 떨쳐나 부국강병을 부르짖었고 드디여 령토확장에 혈안이 되여 십년을 사이두고 청로 두 대국과 세력권을 다투었었다.

그 무렵엔 나라의 임금이 대국들의 압력에 쫓기여 제 나라 수부에서 몸둘 곳을 찾지 못해 다른 나라 공사관에 피신해다니던 조선···

침략의 길잡이로 이 나라에서 돌아치던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동트기전 새벽에 궁성안의 후궁에 뛰여들어 속옷바람으로 움츠린 시비들앞에서 장검을 휘두르며 왕비를 칼탕쳐 죽여도 맞서기는 고사하고 뒤거리에서 통곡이나 하던 조선의 백성들···

그 시절에 그는 륙군사관학교 학생이였고 만몽의 대륙에 번영을 꿈꾸는 군국일본의 청청한 미래였었다.···

전쟁과 군무에서 공적을 세워 중장으로 승진한 그가 조선주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여 봉직하던 시기에 바로 이 총독부 소연회실에서 당시의 총독 사이또가 차린 만찬회에 참석했던 일도 떠올랐다.

경제공황이 세계를 휩쓸고 일본의 거리마다에는 실업자들, 파업에 궐기한 쟁의단들, 그들이 살포하는 삐라가 넘쳐나 민심이 흉흉했고 조선에서는 광주에서 불꽃이 튄 학생사건으로 배일기운이 팽팽하던 때였었다.

초겨울의 추운 날씨였으나 훈훈한 연회장에 둘러앉은 식민지 각계를 틀어쥔 일본륙해군의 현역과 퇴역장성들은 관동군막료들이 진행한 《베이만(북만)참모려행》이며 관동군의 어느 한 대위에게 맡겨 작성했다는 《만몽점령지통치법》등을 신이 나서 론의했었다. 그때 경무국장이 급급히 연회장에 뛰여들어 《큰일났다!》고 총독에게 보고했다. 정보과장의 지급통보에 의하면 조선민족의 지도자들이라 일컬으는 《신간회》의 중핵간부들이 모여 광주학생사건에 대한 상보를 조선각지에 전달선전함과 동시에 민심을 부추겨 3. 1봉기때와 같은 반일항쟁을 일으키려고 모의했다는것이였다.

숨죽은듯 조용해졌던 연회장이 불시에 소란해지면서 폭소와 야유, 지탄이 터져올랐었다.

《그까짓, 맨 주먹을 휘두르는 반항?··· 시끄럽다-》

《십만이고 백만이고 총칼로 짓뭉개면 돼.》

《독립만세나 부르는 폭동이라- 허허허··· 약소민족의 숙명이지.》

《경무국장은 뭘해! 모의자들을 잡아가두면 그만이지.》

다시 말소리 소란해지고 술잔을 쳐들어보이며 연회는 활기에 넘쳐 계속되였다. 술기운에 얼근해진 장성들은 껄껄 웃으며 게트림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로부터 불과 10여년이 지난 그동안에 조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만저우의 밀림에서, 조선의 국경지대에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울려퍼지고 그것으로 하여 세상이 달라지고있는것이다!

그렇게 달라지는 움직임을 막아보려고 관동군이 토벌전을 벌리고있으며 경찰과 헌병들이 도시와 농촌을 뒤지며 다니고 또한 총독을 비롯한 고위관리들도 민심을 수습하고 회유하기에 급급하고있다.

만저우에 사는 조선인《향토시찰단》도 그래서 왔던것이고 그러느라 오늘저녁의 연회도 벌렸던것이다.

하지만 오늘저녁의 연회석상엔 활기가 없었고 축음기로 불어댄 소란스러운 군가도 흥을 돋구지 못했다. 게다가 때아닌 때에 튀여나온 《토벌장병전몰자위령제》를 요란하게 거행했다는 말이 총독의 기분을 완전히 잡쳐버린것이다!

김일성공산군에 의해 그렇듯 참혹한 현실이 빚어진것이다.···

미나미는 마음이 무거웠다.

걸음을 돌려 현관으로 향하던 미나미는 로대의 기둥옆에 서있던 비서관이 대리석층계로 내려오는 모양을 보았다.

《각하, 경무국장님이 말씀드릴게 있답니다.》

《그런가.》

그제사 그는 아직도 주차장에 서있는 두대의 승용차를 보았다.

《무슨 일인데?》

경무국장은 주저하며 다가왔다.

《방금 들어온 통보입니다.》

《···》

《부산발 신징행 급행렬차 <히까리>가 서흥-영등포구간에서 탈선전복되였습니다. 20시 30분경입니다.》

총독은 경무국장을 지켜보며 말이 없었다. 술기운은 말끔히 달아났다.

《렬차에 타고 오던 장교와 병사 12명이 죽고 97명이 중상과 경상을 당했습니다.》

미나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통이 터져올라 거칠게 숨을 쉬다가 나직이, 준절하게 물었다.

《사고원인은 무어냐?》

목소리는 갈려있었다.

《지금 조사중인데··· 홍수로 하여 땅이 패우고 로반이 내려앉은것 같습니다.》

총독의 참을성은 드디여 폭발하고 말았다.

《등신같은 놈아! 홍수가 지나가고 렬차들이 다닌지가 언젠데 하필 군용렬차가 전복된단 말이냐?》

《···》

《원인을 조사하고 범인들을 잡아내라. 렬차전복의 조종자는 공산간첩이다. 수사망을 조이고 의심되는 자는 모조리 검속하라. 방첩투쟁이 기본전선이란 말이다. 등신같은···》

미나미는 온몸에서 기운이 일시에 빠져버렸다.

병마공총의 전쟁터에서 늙어온 군인이였으나 이 타격을 견디여내기가 어려웠다. 어떤 연고로 해서인지 만저우행각의 마지막날밤 태화호텔의 2층 자기 방 유리창에 어렸던 붉은 화염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너울거리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