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4


 
 

제 5 장

14

 

장마가 걷히고 도시우에 푸른 하늘이 열렸다. 해빛을 받아 반짝이던 유리창들에는 공습시의 피해를 덜려고 백지간살을 붙였고 방학이 되여 비여버린 학교마당들에서는 목총과 목검을 든 청장년들이 군사훈련을 벌리고있어 활기가 꺼져가는 도시에 살기를 뻗치고있었다.

명치좌, 부민관을 비롯한 크고작은 극장, 영화관들에서는 총독부의 지시에 따르는 집회가 매일같이 벌어졌다. 《방첩단》결성식, 《청년단》결성식, 《부인지도부대》편성식, 《청년단》동원대회, 《농업증산청년보국부대》편성식···

그것은 쏘도전쟁으로 하여 더욱 긴장해진 정세하에서 제국의 통수부가 결정한 기본국책에 따라 쏟아져내리는 제반 조치를 수행하려는 억지다짐의 움직임이였다.

쏘도개전에 잇달아 일본은 《대미영전쟁을 각오하고 남방진출을 강행하는 한편 좋은 기회를 타서 대쏘전을 벌린다.》는 기본국책을 내놓고 벌써 해남도에서 대기하던 무력이 서남태평양상의 미국, 영국, 네데를란드의 식민지들을 공격할 전초기지인 프랑스령 동남아시아반도의 남부에 강압상륙했으며 전쟁을 앞둔 대대적인 무력이전을 시도하고있었다.

미나미총독은 전쟁궤도를 따라 내달리는 제국의 앞날을 내다보고있었다. 이번에 기본국책을 결의함에 앞서 전쟁에 소요되는 막대한 군수물자를 충당하기에는 국력이 따르지 못함을 통수부의 요인들도 걱정했음을 알고있었다. 걱정하고 고민하면서도 국체의 본성대로 전쟁궤도를 따라 내달리는것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국민을 드세게 틀어잡고 생산을 최대한 확충하며 소비를 극력 제한해야만 하는데 일본본토에서보다 식민지인 조선에서 더욱 피가 나게 집행해야 한다고 미나미는 생각하고있었다.

미나미가 검은 속심을 가리우며 조선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수작을 꾸미던 시기는 지나갔다. 그것이 오래전 일은 아니였으나 그동안에 세상이 달라진것이다. 일본의 처지가 각박해진 지금 미나미도 작은 일에서조차 조선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생심이 없었다. 만저우(만주)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뼈저리게 결심했었다.

《만저우(만주)땅에서 뛰노는 항일공산세력이 조선으로 흘러들지 못하게 철저히 막아야 한다. 조선사람들을 뭉치지 못하게 리간시키면서 사정없이 때려몰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평생을 바쳐 다져온 일신의 복락과 제국의 운명이 위태로와진다.》

그는 만저우행각에서 돌아온 직후에 벌린 회의에서 도지사들이 씩씩한 목부가 되여 2천 4백만의 《양무리》를 전시하의 국민총력발휘에로 몰아치라는 연설을 하면서도 국내에 흘러드는 《간첩단》들을 철저히 적발소탕하며 요언랑설을 엄단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했던것이다. 조선총독부 3호회의실에서 열린 그 회의에는 조선의 도지사들뿐아니라 《만저우국》 각성 성장들과 타이완(대만)총독부의 척무성대표 그리고 본국의 행정관들도 참가했었다. 그것은 국정이 긴박해지는 때에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미나미총독에게서 배우라고 제국정부가 특별히 취한 조치였다.

만저우시찰이 끝날무렵에 비록 불쾌하고 불길한 충격도 받았지만 어쨌든 그 행각으로 하여 미나미의 영예는 절정에 이르렀었다.

그의 방만활동이 세계에 알려지자 히틀러는 도이췰란드, 일본의 친선과 3국추축의 강화에도 큰 공헌을 한 미나미 지로에게 도이췰란드 최고훈장인 대십자훈장을 수여했으며 귀중한 선물도 보냈었다. 5월상순의 맑게 개인 날 총독부 총독사무실에서 다리엔(대련)주재의 도이췰란드총령사를 통해 전달된 훈장과 고급연초가 든 귀중품함을 받아안은 미나미는 만족한 기분으로 영사실에서 도이췰란드군대의 발칸점령 전격전을 촬영한 기록영화를 구경했었다. 군인으로 복무하면서도 명예가 당당했지만 총독으로 군림하면서부터 자기 자질이 남김없이 발휘되여 무쏠리니 같은 강국의 통치자와 어깨나란히 히틀러의 최고평가를 받았던것이다.

바로 그무렵에 미국에서도 워싱톤에 있는 국제박물관의 세계위인사진진렬실에 걸어놓겠다고 그의 사진을 요구해왔었다. 미나미는 미국이 베푸는 이러한 호의가 전쟁을 향해 내달리는 일본의 포문을 북방의 쏘련쪽으로 돌려놓기 위한 경제적, 외교적책략의 한 고리임을 잘 알고있었으나 아무튼 제국 일본에서 으뜸가는 위인으로 일러주는데는 은근한 자부를 느꼈었다. 하기에 백테안경을 건 메마른 비서관이 메주볼에 귀밀눈을 한 자기 초상화를 들고왔을 때에 《그걸 보낸다고 국가에 무슨 리익이 있을텐가?》

하고 달갑지 않은듯 뇌까리면서도 정작 보내지 말라고 오금박지는 않았던것이다.

미나미는 이해 여름을 그 어느 때보다도 다망하게 보내고있었다. 신문들의 1면에는 사흘이 멀다하게 총독의 《열화같은 연설》문이 실렸고 레코드에 취입한 그의 《사자성》이 전파를 타고 세상에 울려갔다. 반도의 인력과 자원을 무자비하게 긁어갈 갖가지 통제령, 제한령, 회수령들을 매일같이 고안했으며 본토와 타이완, 만저우 등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맞아야 했다.

6월중순부터 내리며 말며 하던 비가 월말경에는 홍수를 몰아와 총독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홍수로 농사를 망치게 된 조선농민들의 처지때문이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쌀을 긁어가기 어렵게 되였기때문이였다.

보리장마철의 폭우가 지나간 이튿날 미나미는 《재만조선인향토시찰단》이 며칠내에 오게 된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것은 《내선일체》와 《선만일여》를 위해 특출한 공헌을 하고있는 미나미총독이 발기한 《총후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중요한 민정행사였다.

《대일본제국에 충실한 벗》들의 래왕이여서 환영의식을 비롯한 각종 움직임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경무국과 경시청에 해당한 지시도 주었고 관방실을 통해 준비시킨 일들이 원만히 갖추어졌다는 보고도 받았지만 장마로 황페화된 농촌들을 보여주어야 할 사정이 난감했다. 시찰단의 눈을 가리우기 위해서도 그렇고 쌀 한토리라도 더 긁어내기 위해서도 수해지역을 빨리 복구해야 했다.

그는 정무총감을 불러 반도의 전지역에서, 특히는 경기도주변의 지방들에서 당장 농작물피해복구대책을 철저히 취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내가 직접 나가보겠소.》

이튿날 아침, 미나미가 농지시찰을 떠나려는 때에 정무총감이 들어와서 급보를 알렸다.

《각하, 방금전에 정부의 특사가 비행기로 떠났답니다.》

미나미는 전투모를 쓴채 넓은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20분쯤 지나서 다시 문이 열리고 정무총감의 안내를 받으며 륙군대좌 두명이 방안에 들어섰다. 거수경례로 총독에게 경의를 표하고는 커다란 악어가죽가방에서 정부의 각인이 찍히고 밀봉한 금빛노끈이 드리운 탄탄한 봉서를 넘겨주었다. 미나미가 문건을 책상우에 놓고 자기 자리에 앉았으나 두 군인은 나가지 않았다.

《각하, 겸하여 한가지 영광스러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미나미는 일어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관동군 독립수비대 참모장으로 지엔다오(간도)에서 봉직하다가 공산군소탕작전을 진두지휘하던중 중상을 입었던 각하의 맏사위 이와모또중좌가 어제밤 도꾜 륙군병원에서 순직했습니다.

오늘아침 천황의 칙서로 이와모또에게 대좌의 군사등급이 수여되는 영광이 베풀어졌습니다.》

미나미는 가슴이 싸늘해졌으나 꿋꿋이 버티고있었다.

《과분한 영광이올시다.》

하고 그는 고개를 숙이고 분명하게 말했다. 심장이 쑤시듯이 아팠다. 맞은켠에 서있던 군인들이 언제 사라졌는지 깨닫지 못했다. 온몸에서 맥이 빠져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꺼질듯이 한숨을 쉬고 의자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죽은 뒤에 대좌가 되면 어떻고 대장이 된들 어떻단 말인가!》

일본이 당하고있는 고통의 일단이 드디여 그자신에게도 덮쳐든것이다. 여태까지 조선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을 향해 웨쳐댄 호소 《천황페하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치라》고 한 절규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한정있는 생을 절반도 못채우고 떠나간 사람도 불쌍하지만 서른살 나이의 딸애가 철부지를 데리고 살아갈 정상을 생각하니 가슴이 쓰라렸다. 큰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장차 어떤 불행이 더 들이닥칠지 어찌 알겠는가.···

그런즉 제국이 내세운 총력전의 승리를 위해 더욱 분투해야 할것이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허리를 책상우에 구부리고 봉서를 개봉하여 긴장한 눈길로 내용을 훑어보았다.···

잠시후에 승용차의 행렬은 한강교를 건너 남으로 향했다. 길가에 펼쳐진 논판들에는 다 자란 벼가 해빛이 황송한듯 고개를 숙였고 어떤데서는 호수를 이루어 빠지지 않은 물속에 죽은듯이 쓰러져있다. 산기슭과 강변에서는 홍수가 남겨놓은 자갈모래속에서 곡식잎들이 파릿하게 드러나보일뿐이다.

《이쪽으로 나오면서 보니 수원지방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평택을 훨씬 지났을 때 차창밖에 눈길을 둔 비서관이 말했다. 시종 침묵을 지키는것이 따분했던 모양이다.

총독은 생각에 잠겨 응대가 없었다. 마음이 무거웠던것이다. 충청남도 지경에 들어선 자동차행렬은 천안을 바라고 달리다가 크지 않은 고개 하나를 넘어섰다. 고개아래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고 들판을 가르며 흐르는 강에는 긴 다리가 놓였는데 다리 이쪽에 석대의 승용차가 줄지어 서있었다. 내려가던 자동차행렬이 그 앞에서 멎자 국민복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소매에 누렇게 수장을 두른 고위경찰관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도지사며 경찰부장이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미나미는 인사를 받으며 그들앞을 지나 다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리목에 서서 교두보밑이 깊숙이 패여나간 정형과 다리상판밑으로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간 홍수가 콩크리트교각에 남긴 수위선을 여겨보고는 논뚝길을 따라 철교가 있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철교의 교각들도 수위선아래에 검부레기들을 걸치고 서있는데 그 우에서는 철도로동자들이 쇠장대를 박으며 일을 하고있었다.

《철교가 뜨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군.》

미나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눈치만 보고있던 도지사가 한마디 했다.

《여기서부터는 도로와 철로뚝이 막아줘서 농토들이 좀 살았습니다. 피해상황은 상류쪽이 더 심합니다.》

미나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도로쪽으로 다시 올라왔다. 도로우쪽의 넓은 벌에서는 도랑뚝이 밀려나고 벼포기들이 쓰러진 논판에서 얼굴이 퉁퉁부은 농민들이 허리를 펴고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페농이 된 논머리에 고관들이 나왔으니 무슨 구제책이 있으려나 하고 이마에 손을 얹고 살피는것이였다. 도지사가 어설픈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금년엔 공출세납량이 작년만도 못할것 같습니다. 농군들은 벌써 절량된지 오랜데 이번 수해까지 겪고나니 수확고가 뻔드름하게 되였습니다.》

《농군들은 죽더라도 공출은 줄일수 없소. 일선에서 싸우는 장병들에게 쌀을 보내야 하오. 국가존망과 관련되는 대사요.》

《저희들도 그걸 잘 알기때문에 하루빨리 피해를 가시고 한알이라도 더 소출을 내자고 면장, 동장들과 조합장들을 내세워 농군들을 일밭에 끌어내고있습니다만 굶어서 제 집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가보면 비참하기도 하고···》

《누구의 정상을 동정할 때가 아니요. 죽어도 공출은 제대로 내고 죽어야 해. 그렇게 살기가 어려우면 만저우에 <개척민>으로 들어가라지. 금년이 10만호를 목표한 이민 1차 5개년계획의 마지막해인데 아직 절반도 들여보내지 못했소. 당신네 도에서도 미달한 수자가 많지!》

도지사는 눈길을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하늘높이 떠오른 해가 물에 잠겼던 들판을 뙤약볕으로 지져대고있었다. 미나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나무뿌리며 짚나래들이 엉성하게 널린 강변을 바라보다가 도지사에게로 돌아섰다.

《피해를 속히 가셔야 하오. 그건 그렇고··· 우선 래일부터 이틀동안 경부본선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떨쳐나서서 철길을 원상대로 복구해야겠소. 허물어진 뚝을 보강하고 교두보나 교각기초가 패여나간 곳을 든든하게 다져야 하오.

철도로동자들만으로는 힘이 딸리고 시간을 보장할수 없소.》

도지사는 난감한 표정이였다.

《각하, 경부선은 이미 기차가 다니고있습니다.》

《알고있소.》

《철길복구는 2∼3일 지나서 지시대로 수행하겠습니다. 그런데 곡식은 요즘 하루이틀만 이대로 두면 건질나위가 없을것 같습니다.》

《···》

《게다가 이 일대의 농민들은 불평이 많아서 지난 봄에도 진정서를 들고 다니며 소란을 피웠댔습니다. 그때 경무국장님도 내려오고 우리도 두루 힘써서 무난히 넘겼지만 지금 같은 때 부역에 나오라고 하면···》

도지사는 하던 말을 마무리지 못한채 굳어지고 말았다. 이쪽을 쏘아보는 총독의 귀밀눈에 독기가 어려 아리숭해졌던것이다.

도지사가 말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모양을 보자 청춘과부로 된 자기 딸의 신세를 생각하며 이글거리던 미나미의 분노도 얼마큼 사그라졌다.

《당신은 내가 식민지의 농민들이 굶어죽는 정상이 가긍해서 여기 나온줄 아오?!》

그렇게 질책한 미나미는 주변을 둘러보고 가까이에 경무국장과 비서관만이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금 군부에서는 만저우에 무력을 극비밀리에 이동시키기 위해 <관동군특별연습>이라는 명목으로 예비역들에 대한 소집을 시작했소. 비밀엄수를 위해 <교육소집>의 형식으로, 소집령의 전달도 전보가 아니라 봉함편지로 하고 소집자들에 대한 강행회와 환송도 일체 금지하고있소.

소집된 병력은 본토의 3천여개 잔존부대와 순차가 다르게 다리엔항과 조선의 부산, 마산, 려수항에 상륙하여 만저우에 진출하오. 조선반도를 통과하는 병력은 하루에 군인 1만, 군마 3천 5백의 수자로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나도 모르오. 무엇때문인지 알겠소?

이 무력수송에서 자그마한 사고라도 생기면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오. 집결시간의 지연도 큰 문제지만 철도사고란 소문이 퍼지기 쉬우며 싸움터에 가는 군인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고 일본이 망하기를 바라는 조선사람들에게도 큰 파문을 일으킨단 말이요!》

도지사도 경무국장도 꼿꼿해져서 (새 전쟁이 박두했구나.-)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