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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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우연이였던지 아니면 시국의 요청에 의한 움직임으로 력사의 필연이였던지 강점한 땅에서 주인행세하는 총독 미나미가 인민들의 반일기세에 불만을 품고 그 원천을 진멸봉쇄하려고 웃음의 허울을 쓰고 방만행각을 떠나 《만저우(만주)국》지경에 들어선 1941년 4월 9일, 인민의 념원을 한몸에 지니신 조선의 진정한 주인이며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들의 반일기세를 고무하고 반일항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휘몰아가기 위해 소부대를 이끌고 쏘만국경을 넘어 전구에 진출하시였다.

일제가 대륙침략의 포문을 열어 만저우를 강점하던 시기에는 반일무장투쟁의 첫 봉화를 지펴올렸으며 그후 10년세월 그 어디서보다 유격전쟁이 치렬하게 벌어졌던 지엔다오에 진출하여 지금도 맹렬하게 투쟁하고있는 소부대들과 지하조직들을 지도하시고 조선혁명의 책원지가 자리잡은 백두산으로 나가시려는것이였다.

전구를 떠나계신 그동안에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쳐 일제를 때려부실 국제적뉴대를 다져놓고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사람들의 힘으로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는 일관한 신념을 견지하면서 강점자들과의 결전을 위한 전민항쟁지반을 튼튼히 마련하시려는것이였다.

일제가 《치안이 확보되였다.》고 떠들어대는 만저우땅에 들어서자 철통같이 방비된 집단부락을 백주에 공격하여 도전의 총소리를 높이 울린후 한개 소부대를 두만강연안에로 진출시키고 스무명남짓한 대오를 다른쪽으로 이끌어가시였다. 둥닝(동녕)땅을 지나온 사령부소부대는 천교령을 바라보며 북상하다가 뒤따르는 적들을 혼란속에 몰아넣고 미나미가 조선사람들의 보호자연한 거드름을 피우며 특별렬차로 횡단한 방향과는 대칭되는 로정을 따라 산발들을 타고넘으며 지엔다오의 중심지대를 향해 진군하였다.

4월이라 하지만 날씨는 추웠다.

눈이 녹지 않은 골짜기도 봄빛이 어리는 산등판도 피흘린 전적이 력력한 땅이였다. 나무가지에 옷이 찢기고 얼굴을 할퀴면서 수림을 지났으며 밤이면 별이 총총한 하늘아래 골짜기에 천막을 치고 쪽잠을 잤다.

서남간으로 행군하던 대오가 참나무, 자작나무가 엉성하게 들어선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 멀리에 산간지대를 흘러가는 강줄기가 바라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경위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등성이마루에 서서 쌍안경을 들고 주변의 지형을 오래도록 살피시였다.

《저-기 보이는 강이 가야하요.》

그이께서는 강줄기를 가리켜보이며 말씀하시였다.

《전투도 많이 했고 사연도 많은 고장이지···.》

생각에 잠겨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산아래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철한동문 왕칭(왕청)지방에서 싸워보지 못했지?》

《예, 지난 겨울에 련대장동지를 따라 이 근방을 통과하기는 했습니다.》

다부지게 생긴 김철한의 대답이였다. 비탈을 내려가면서 다른 경위대원이 물었다.

《사령관동지, 조선까지는 아직 멉니까?》

그이께서는 만저우땅에서 자란 젊은 대원을 정겹게 돌아보며 미소지으시였다.

《큰길로 걸어가면 그리 멀지도 않소.》

그리고는 걸음을 멈추고 불그레하게 노을빛이 어린 남쪽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골짜기아래는 어둑어둑했다. 천막안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저녁식사가 준비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물김이 오르는 주전자옆에 통졸임 두통과 젓갈그릇이 놓여있는것을 보고 희한해하시였다.

《오늘 저녁에는 어찌된 일이요? 진귀한 반찬들이 차려져있으니···》

숙영을 준비한 류경수가 씨익- 웃었다.

《오늘이 사령관동지의 탄생일입니다.

우리가 기지를 떠날 때 정숙동무가 언제한번 생신날을 쇤적이 없는 사령관동지께 드려달라고 요행 얻어서 보관해두었던 젓갈 한통을 제 배낭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일이 잊혀지지 않아서 저번 전투때에 로획한 물고기통졸임을 보관해두었습니다.》

웃음이 사라져가는 그이의 얼굴에 그윽한 상념이 어리는것이였다.

어머님이 차려주시던 소박한 생일상을 받아본지도 까마득한 옛날같이 생각되는 흘러간 어린시절에 대한 서글픈 애수에 이어 사선을 넘으며 오로지 혁명을 위해 바쳐온 기나긴 세월에 대한 벅찬 감회, 광복위업을 이룩해가는 간고한 투쟁속에서 망각했던 일신상의 일을 명심하여 마음써준 사랑하는 녀전사에 대한 감사의 정이 가슴에 넘치고 눈길에 숙연히 흐르고있었다.

며칠전, 국경을 넘어 행군해오던 밤길에 온몸이 얼어드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발이 류달리 차분하고 훈훈하여 신발을 벗어보니 바닥에 머리칼로 지성들여 만든 깔개가 깔려있던 일도 상기되시였다. 솎아낸 머리를 가리우느라 늘 모자를 벗지 않고 지내던 기지를 떠나기전의 김정숙동지의 명랑하던 모습은 유격전쟁의 나날 총탄이 비발치는 격전장에서도 주림에 시달리는 숙영지에서도 오로지 동지들을 위해 자기를 바쳐가던 녀전사의 고귀한 자태를 떠올리면서 젓갈통을 망연히 바라보시는 그이의 가슴을 감사와 감동의 뜨거운 정으로 그들먹이 채우는것이였다.

《동무들, 고맙소.》

화기어린 침묵속에서 그이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내 생일을 알고 이렇게 마음을 써주니 생각이 많아지오.···

그렇지만 혁명에 몸을 바쳐싸워온 길에서 동무들이나 나나 언제한번 생일을 쇤적이 있었소! 싸움의 길은 간고하고 승리의 날은 아직도 먼데 우리가 어찌 생일을 따로 쇠고있겠소!》

모두들 눈길을 숙이고 말이 없었다.

《이제 도가선철길을 넘어 며칠만 더 가면 산속 밀영에서 겨울을 나며 적구투쟁을 벌려오던 동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을거요. 겨울동안 적구에 남아 고생하던 동무들에게 이 희귀한 젓갈과 통졸임을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아하겠소! 우리는 줴기밥과 더운물로 저녁식사를 하고 이것들은 다 건사했다가 우리를 기다리면서 소부대활동을 벌려온 동무들에게 줍시다.》천막안의 대원들은 말이 없었다. 류경수가 마지 못해 젓갈통과 통졸임들을 배낭속에 도로 넣었고 뜨거운 경모의 정이 넘치는 속에서 간소한 저녁식사를 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오가 도가선철길을 넘어서자 강준을 책임자로 한 소조를 만수툰에 파견한 뒤 산발을 넘어 지엔다오의 중심지대로 향하시였다. 광산로동자들속에서의 활동에 자신심을 가지지 못하는 지영갑에게는 사령부와 함께 행동하면서 다른 전투임무를 맡기려고 하시였다.

깊은 산속을 지나 행군하던 대오가 잔디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물기오른 참나무들이 무성하게 들어선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 허옇게 경사면을 드러낸 석회암지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비탈을 따라 갈지자로 닦아놓은 길우에서 사람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돌파편을 하늘높이 뿜어올리며 남포소리가 쿵-쿵- 울렸다. 옌지현(연길현)북부에 있는 지엔다오세멘트회사의 원료채취장이였다. 산아래의 바닥이 드러난 개울가에 쿠리막이 여러채 보였다.

대오는 채석장을 멀리 에돌아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골짜기로 들어갔다. 막치기에 벼랑바위가 나지고 그아래 엉성하게 귀틀집이 한채 서있었다. 지엔다오에서 반일전이 한창 벌어지던 초기에 옌지유격대의 무기수리소가 자리잡았던곳이다.

그시절에 이곳에서는 적개심에 불타는 혁명투사들이 일제를 족쳐댈 일념으로 고장났거나 페물취급을 받는 갖가지 보총들을 밤을 새워가면서 수리했고 벼랑밑 바위굴에서는 작탄까지 만들어 싸우는 유격대에 보내주었었다. 그때엔 근처에 채석장도 없었고 이 깊은 산간에 나드는것은 반일투사들뿐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망치질소리 쟁쟁하던 바위굴이 신비로운 정적속에 컴컴하고 혁명가의 노래소리 울려나오던 귀틀집은 잡초에 묻혀 기울어져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1차베이만(북만)원정에서 돌아와 건강이 채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야오잉거우(요영구)로 나가던 걸음에 이곳에 들렸던 일을 회상하면서 그윽한 감회에 싸여 골짜기를 둘러보시였다.

그때 청소한 유격대오에 병기를 보장하기 위해 분투하던 투사들이 지금은 광활한 반일전선의 도처에서 견결하고 충성스러운 일군들로 활동하는 모습을 더듬느라니 조선혁명이 전진해온 십여성상의 자랑찬 길이 가슴뿌듯이 펼쳐지면서 지금 국내와 동남만주 도처의 지하에서 소용도는 반일의 거세찬 흐름을 조국광복의 대하에로 이끌어가리라는 결의가 새삼스러워지는것이였다.···

사령부소부대가 이곳에 온것은 기지에서 뒤늦게 떠나 곧바로 전구에 진출하는 김정숙동지네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근년에는 적들도 망각해버린듯 《토벌대》들도 잘 나타나지 않는 이곳을 접선지점으로 정한것은 김정숙동지께서도 잘 아는 지대이기때문이였다. 게다가 또 이곳은 옌지시내의 지하조직이 비상시에 피난처로 리용하는 장소였다.

골짜기에도 바위굴속에도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그이께서는 시내의 지하조직이 무사한 모양이구나 하고 한가닥 안도감을 느끼시였다.

이틀이 지나서 사복차림을 한 김정숙동지께서 한영옥이와 어린 남대원 한명을 데리고 도착했다. 기지에서의 사업을 일단락짓고 떠나오셨던것이다. 헤여진지는 열흘 남짓했으나 전구에서 건강하신 사령관동지를 만나뵙는 감격이 새로와 모두 행복한 기분들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오가 전구에 진출하여 벌렸던 전투이야기를 들으면서 거기에 참가하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 드리라고 싸준 희귀한 음식감들을 그대로 가지고가는 사연을 듣고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을뿐 다른 말씀이 없으시였다. 남다른 대접을 받지 않으리라는걸 진작 알고있으면서도 그이의 탄생일을 생각하여 기울였던 마음을 차분한 흠모의 감정속에 삭이고있었다.

대오가 떠나기로 된 저녁에 날씨가 궂어졌다. 바람이 수림속을 배회하며 찬기운을 몰아오더니 흐린 하늘에서 비방울이 날렸다. 저물녘이 되여 바람은 너누룩해졌으나 비는 그치지 않고 줄금줄금 시름없이 내렸다. 을씨년스러운 이 밤에 사령부소부대는 적들의 경계가 삼엄한 지린(길림)-투먼(도문)철도선을 넘어야 했다.

어제도 걸었으며 오늘도 걸으며 래일도 걸어갈 험난한 길이였다. 찬비에 몸을 가리울 우산이 없고 힘겹게 걸어도 한시나마 쉬고 갈 숙소가 없고 주리고 허기진 배를 달릴 끼니조차 변변히 차례지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도 조선을 타고앉은 침략자-강도배들을 때려부시기전에는 이 길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나선 사람들이였다. 대오의 앞에서는 언제나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김일성동지께서 걸어가고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