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8


 
 

제 4 장

8

 

공산군이 나타난다고 소동이 벌어졌던 그날 밤에 복지향《청년의용대》도 장새촌 뒤산에서 밤을 새웠다. 시내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라 밤하늘을 벌겋게 물들일 때 엎드려있던 최서방이 놀랍고 의문스러워

《허어!-》

하고 외마디를 질렀다.

《다레까(누구냐)?》

성문수비대장교가 씹어뱉듯이 으르자 모두들 움츠렸다.

《관공청인지 총독숙소인지 말짱 타는기야-》

원덕천은 소리없이 큰숨을 내쉬였다. 낮에 마을공회당에서 상금봉투를 받아들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통탄하던 일이며 어머니가 죽은 동생을 부르며 꺼이꺼이 울던 일이 떠올라 원한이 꿈틀거리던 가슴이 시원해지는것 같았다.

공산군이 나타났다고 수비대들이 움직이자 그들도 따라섰다. 빨갛고 파란 불줄기를 그으며 총소리가 자지러졌다. 뒤에 오던 축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장교가 옆을 지나 달려가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난생처음으로 이런판에 끌려나왔던 《청년의용대》원들은 귀뿌리를 쭝-쭝- 스쳐지나는 총탄을 피해 산비탈의 우묵진곳에 엎드려있었다.

날이 희붐히 밝아오자 호각소리가 울리고 수비대의 자위단이 모이기 시작했다. 《청년의용대》원들도 숨어있던 곳에서 기신기신 모여들었다. 그 모양을 지릅떠보고있던 장교가 악이 나서 고래고래 소리치던끝에 원덕천에게로 달려와 주먹으로 상판을 갈겼다.

그네들 모두를 두들겨패고싶은 분통을 대장에게 터뜨린것이였다. 흐르는 코피를 소매로 훔치면서 원덕천은 부드득 이를 갈았다.

날이 밝아 수색이 벌어졌다.

몰이군들처럼 벌려서서 숲속을 뒤지며 골짜기까지 내리훑었다.

돌아서 올라오던 원덕천은 수림속에 넘어져있는 진대통밑에서 신음소리같은것이 들려 머리칼이 쭈삣해졌다. 서두르는 판이여서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등성이를 넘어서니 행길에 자동차들이 늘어서서 시체와 부상자들을 싣고있었다. 찾고 부르며 분견대단위로 집결하여 떠나기 시작했다. 복지향의 성문수비대와 자위단은 자동차 두대에 갈라타고있었다. 의용대원들이 줄레줄레 다가가니 장교가 적재함우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 속에서 자동차는 떠나갔다.

《바쁠 때엔 실어오고 놀음이 끝나니 걸어가라는기야. 괘씸한 놈들!···》

좌상격인 최서방이 두덜거리자 모두들 덕천이를 돌아본다.

《까짓거. 밥이나 묵고 떠나잔께.》

원덕천의 말에 찬성들 했다.

행길에서 보이지 않을 골안에 들어가 모닥불을 피웠다. 베보자기에 싸온 수수밥에 된장을 발라 우들우들 떨면서 요기를 했다. 담배를 말아피우며 지난밤의 이야기를 나누고들 있을 때 원덕천은 최서방을 따로 불러 의논을 했다. 진대통밑에서 흘러나오던 신음소리가 마음에 걸렸던것이다. 눈을 뜨부럭거리며 듣고있던 최서방이 동의하자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고 떠났다.

골짜기를 돌아 뒤산비탈에 붙었을 때 그들이 가는쪽 수림우에서 까마귀들이 떠들며 소란스럽게 울었다. 가까이 다가가며 살폈다.

까마귀들이 내려앉은 진대통근처에서 피흔적이 눈에 띄여 무춤했다. 진대통밑의 락엽무지를 조심스럽게 헤치니 싸창을 틀어쥔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번들거리는 가죽외투가 눈에 익었다. 검스레한 얼굴에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눈확이 우묵하게 꺼져들어간 그 사람은 의식이 없었다. 허벅다리와 왼팔에 제손으로 싸맨듯 한 헝겊을 벌겋게 물들이며 피가 번져나고있었다.

《정미소마당에서 패싸움이 터졌을 때 싸움을 말리문서 날 살려준 사람이구마.》

원덕천이 중얼거리자 최서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자를 조심스럽게 끌어냈다. 원덕천이 제 적삼을 찢어 상처를 꼼꼼히 처매주었고 최서방은 일손을 도와주면서 주변을 살폈다.

처치가 끝났을 때 두 사람은 땀을 훔치며 서로 마주보았다. 서로의 속내를 헤아려보는 그 말없는 동안에 어성버성했던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한듯 싶었다.

《아저씨, 날 살려준 사람인데 버리고 갈수 없소. 내가 업구 갈라우.》 원덕천이 속심을 털어놓자

《용타! 나두 그 생각을 했어!》

하고 최서방이 시원하게 회답했다.

원덕천은 기다리고있는 마을 젊은이들에게 돌아가 장새촌에 볼일이 있어 최서방과 같이 떨어지겠으니 먼저들 떠나라고 일렀다. 그들이 행길로 내려가는걸 지켜보다가 원덕천은 돌아왔다.

최서방과 의논하여 부상자를 어깃 갈아업으며 산길을 타고 걸었다.

두 고개를 넘어쉬고 가려고 골짜기의 풀밭에 부상자를 내려놓았다. 하늘을 향해 번듯이 누워있던 부상자는 의식을 차린듯 가느스름히 눈을 떴다. 자기를 굽어보는 두 사람을 몽롱하게 쳐다보다가 맥없이 눈을 감았다.

《정신 차리이소. 선생님, 정신 차리이소.》

원덕천이 애타게 부르며 어깨를 가볍게 흔들자 조용히 다시 눈을 뜨는데 그 눈길에 의식이 느껴졌다.

《저를 모르겠시미까. 선생님, 복지향의 원덕천이미다. <개척민>부락의··· 선생님···》

원덕천은 기쁨과 슬픔이 뒤엉킨 일그러진 웃음을 띄우고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부상자가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는것을 보고 눈치챈 최서방이 간수하고있던 싸창을 들어보이자 안도감을 느낀듯 가까스로 말을 번졌다.

《이게 어디요.》

《선생님, 마음 놓으시우. <토벌대>는 없시미다. 선생님이 부상당해 우리 말 가까운 산에 모시고 가미다.-》

원덕천이 절절하게 말하고 곁에 있는 최서방도 강잉히 웃었다.

《우린 나쁜 사람이 아인께 안심하이소. 산속에 숨겨두구 잘 치료하미다.-》

박중돈은 가늘게 한숨을 쉬였다. 성한 손으로 곁에 앉은 원덕천의 손을 더듬어잡고있다가 나직이 속삭였다.

《고맙소. 덕천이···》

한동안 숨을 돌리고나서 부옇게 흐리여지는 눈에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나를 선생님이라 하지 말고 형님이라고 불러주오.》

원덕천은 그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었다.

《형님, 형님! 우리 으떻게 하나 형님을 살려내게시미다.-》

최서방도 다가앉아 부상자를 보며 말했다.

《증말이지, 덕천이 말대루 우리가 기어쿠 살려내겠수. 걱정마이소.》

감동된 박중돈은 아무말도 못했다. 고여오르는 눈물이 관자노리를 타고 줄줄히 흘러내려 귀밑을 적시고있었다.

복지향에서 십리쯤 떨어진 산속에 땅굴을 파고 부상자의 거처를 마련했다. 이튿날부터 원덕천이 남모르게 기회를 보아가며 음식을 날랐다.

밭갈이가 한창인 계절이였다.

원덕천이 밭에서 없어지는 구실을 만들려고 골짜기의 샘터곁에 노루옹노를 놓고 그걸 보러다닌다는 말을 퍼뜨렸다.

부상자의 상처는 곪았다 터졌다하면서 더디게나마 나아가고있었다. 식욕도 돌아서서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회복되여갔다.

열흘쯤 지나서 최서방이 찰떡과 꿀병을 보자기에 싸들고 덕천이와 함께 찾아갔을 때 박중돈은 굴밖에 나와 절름거리며 움직이고있었다. 풀숲을 헤치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알아본 그는 창백한 얼굴에 흰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반겨맞았다. 굴밖에서 상처를 헤쳐본 최서방은 컴컴해진 얼굴을 숙이고 꺼질듯이 한숨을 쉬였다.

가문비나무진을 이겨붙인 다리의 상처는 훨씬 나아졌으나 뼈가 부서진 팔목부위의 상처는 곪으면서 퍼렇게 붓고있었다.

최서방은 원덕천이를 따로 불러 소곤소곤 의논했다. 이전에 고향에 있을 때 다리건설장부역에 끌려나갔다가 팔목뼈를 부스러뜨린 아무개가 돈이 없어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치료하다가 살이 썩어오르면서 나중에 잘못된 사실을 상기시켰다.

무슨 방도를 세워야지 이대로 지내다간 큰 일을 칠것 같다고 걱정했다. 원덕천이 한숨을 쉬면서 안타까와하니 최서방은 한가지 방도를 내놓았다. 《개척민》촌의 원덕천이네를 남달라 돌봐주는 《개척민후원회》회장에게 부탁하여 부상자를 시내의 병원에 입원시키자는 의견이였다.

《고향서 놀러온 덕천이 사촌형이락하문 된단께. 공산군이란건 숨기구···》

원덕천은 좁은 량미간을 찌프리고 오래동안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숨기지 않아두 일없시미다. 그 선생은 공산군이 좋은 사람이라고 나한테 말했시미다.-》

두사람이 의논한바를 박중돈에게 말하니 그는 웃으며 도리를 저었다.

《내 상처가 총상이란게 뚜렷할뿐더러 내몸에는 그런 상처자국이 여러군데 있소. 병원에 입원하면 아무리 감싸고 조심한다해도 유격대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치료받을 새도 없이 경찰에 잡혀가게 되오.》

아무도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박중돈은 근심에 싸인 그들을 안심시켰다.

《나를 생각해주는 심정들은 고맙소. 상처가 좀 더 나으면 부대를 찾아떠나겠으니 너무 걱정하지들 마시오, 떠날 때까지는 여기서 최형이나 덕천이의 도움을 받으며 치료를 하겠소. 그러니 다른 방도는 찾지 말아주시오.》

박중돈은 여태까지 원덕천이를 만날적마다 마을형편을 료해하면서 사람들에게 반일사상을 고취할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복지향 농민들과 《청년의용대》원들을 반일사상으로 무장시키면서 비밀조직을 꾸리려는것이였다. 그는 상처가 더해져 소생할 가망이 없다해도 목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사령관동지로부터 받은 혁명임무를 관철할 결심이였다.

일제가 《비민분리》를 위해 꾸려놓은 집단부락을 총포를 쏘아대며 점령할것이 아니라 군중공작으로 사람들을 쟁취하여 안으로부터 허물어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신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을 어느 한시도 잊은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