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7


 
 

제 4 장

7

 

경찰청의 여러 방들에서는 전화종소리가 간단없이 울렸다.

각 현에서 정형을 보고받고 필요한 지시를 주는 전화들이였는데 총독이 체류하게 된 이날은 30분에 한번씩 상보하게 되여있어 여느때없이 소란스러웠다. 어느 현소재지 장거리에서 일본인경관이 내의류를 압수해가는 바람에 상인들이 소란을 피웠다거니, 어느 공사장에서 로동재해로 사람이 죽고 징용자 몇명이 도망쳤다거니, 어디에서는 불공평한 배급때문에 소요가 일어났다거니 하는 등의 늘 벌어지는 일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온했다.

모리따 시게루는 성장초대연을 마련하는 《시민관》에 전화를 걸어 현장에 나가있는 형사과장에게 징계정형이며 연회준비상황을 알아보고나서 마음에 걸리는 한가지 일을 또다시 생각하고있었다. 미나미총독의 엄명에 못이겨 할수 없이 환영행사에 참가시키고는 있으나 고형근에 대한 의심이 풀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지난 기간 그의 모든 활동을 믿었던 나머지 그에 대한 감시와 경계를 철저히 하지 않았던것은 사실이였다. 하지만 지난 여름 전명식이라는 유격대공작원의 정체에 의혹을 품고 제때에 경찰에 통고하였던 밀정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고형근에게도 의심스러운 일들이 련속 나타나고있다.

지난 늦가을에 행처가 명확하지 않게 여러날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는 통고에 대해서는 대단치 않게 여기고 지나쳤었다. 밀정의 통고도 근거가 뚜렷하지 않았을뿐더러 고형근이 안도와 명월구에서 하루이틀씩 체류했다는 목격자들도 있었던때문이였다. 하지만 이 봄에 장새촌 정미소마당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을 때 수상한자들이 나타나 불온한 선동을 하고 종적을 감춘 사건이며 그 이튿날 복지향에 다녀오는 고형근의 마차에 정체모를 자들이 함께 타고 수색구역을 버젓이 통과했다는 사실 등은 모두 의심스러운 일들이였다. 밀정들의 통고란 언제나 과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런 통고를 거듭하여 무시했다간 나중에 엄중한 후과를 초래할수도 있으며 경찰청장자신이 책임지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밀정은 지엔다오성(간도성) 경찰청이 박아놓은 자가 아니고 총독부 경무국에서 지엔다오에 파견한자들중의 한 사람인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모리따는 밀정의 통고를 중시하여 고형근에 대한 감시까지 조직하고 경계하던 터인데 총독이 독을 쓰는 바람에 오늘밤의 연회에까지 참가시켰던것이다.

(총독각하가 체류하는 오늘밤에 나의 관할지역에서 무슨 사건이 있어서는 안되겠는데···)

모리따가 걱정에 싸여 방안을 서성거리고있을 때 총독부 경무국의 미우라과장이 들어왔다. 사복차림에 중절모까지 쓴 행색이지만 그의 눈길과 체취에서는 고등경찰의 위엄이 풍기고있었다.

모리따는 전에 신경에서 근무할 때 자기보다 썩 아래급의 경관이였던 젊은 특고과장을 너그럽게 맞이했다.

《자네가 이리로 온다는 통고는 받았네. 지엔다오에서는 얼마나 체류하겠나?》

《일을 하면서 봐야 알겠습니다.》

《흐음, 좌우간 여기서 일하는동안 모든 편의를 잘 보아주겠네.》

《고맙습니다.》

미우라는 모자를 벗어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모리따를 마주보며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한데 청장님, 전 총독각하의 호위임무를 맡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등한할수가 없어서 한가지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낮에 시민초대연석상에서 미나미총독과 <만선척식>총재사이에 앉았던 눈길이 예리하고 쐐기형코수염을 기른 조선사람은 어떤 인물입니까?》

《총독각하와 친분이 있다는 고형근이라는 사람이요···》

모리따는 그의 경력과 직책, 사회활동 등을 짤막히 소개하고나서 그를 신임하였던 근거를 알려주려는듯 한마디 보태였다.

《···원래는 통화쪽에서 살다가 공산당폭도들에게 피해를 입고 여기로 온거요.》

《학력이나 경력만으로는 사람의 사상동향을 다 밝힐수 없지요. 더군다나 공산군령수는 우리 제국에 반감을 품은자라면 학력이나 경력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이나 다 휘하에 포섭하는 인물이라는거야 청장님도 잘 아시겠지요.》

《대륙의 랑인》출신인 로회한 경찰청장도 따지고드는 옛 부하의 말을 등한히는 듣지 않았다. 여유를 얻으려는듯 한마디 비쳤다.

《당신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 않을거요. 몇해전 경무국에서 우리한테 신원료해를 의뢰했던 학생사건관련자의 아버지요.》

《알만합니다. 고청민이··· 그래서 나는 더욱 관심을 가지는겁니다.》

《고형근에 대해서 나도 요즘 와서는 의심하고있었지만 총독각하가 굳이 보증하는 바람에 그처럼 상석에 앉혔던거요.》

《상석이 문제가 아니지요.》 하고 젊은 고등과장이 자신만만해서 뒤를 이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총독각하가 신임한다 해도 우리 경찰관들은 끝까지 뒤를 캐야 합니다. 총독각하는 조선사람들에게 유화정책을 쓰지 않을수 없지만 우리 경찰관들이야 어디까지나 조선사람들을 경계해야지요.》

《옳은 말이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요. 계속 철저한 감시를 붙이려고 하오. 오늘밤은 나 자신이 연회장에서 그 사람옆에 붙어있을 작정이요.》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놓겠습니다.》

미우라는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말했으나 일어설념은 하지 않았다.

《청장님, 떠나오기전에 전보로도 알렸습니다만 지엔다오지방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 유격대정치공작원들과 파견원들에 대한 자료를 넘겨주십시오. 검거되였거나 처형된자들의 자료까지 포함해서···》

경찰청장은 피곤한 웃음을 띄우고 탄식하듯 말했다.

《미우라군, 난 지금 숨돌릴 사이도 없네. 총독님이 떠나간 다음에 보세나. 오늘은 정말··· 틈이 없어.》

그러자 미우라도 선뜻 일어섰다.

《좋습니다. 그럼 후날 다시 오지요.》

경찰청장은 따라 일어서면서 문쪽으로 가는 미우라의 등뒤에 대고 말했다.

《자주 들리게. 자네가 하는 일을 언제나 도와줄 용의가 있으니까.》

창문밖에는 이미 어둠이 덮여있었다.

연회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시민관》에 나가 돌아보려고 층계를 내려가는데 아래층 복도에서 당직경관이 달려와 보고했다.

《청장님, 장새촌주재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직접 말씀드리겠답니다.》

모리따는 층계에 멈추어 선채 물었다.

《누군가?》

《모르겠습니다. 주재소장은 아닙니다.》

모리따가 잠시 생각하다가 돌아섰다. 자기 방에 들어서자 수화기를 들었다.

《나다. 모리따다.》

전화가 련결되고 억눌린듯 한 긴장한 목소리가 울렸다.

《청장님, 장새촌 정미소의 신덕환입니다. 15분전에 저의 집에 유격대원 두명이 나타났댔습니다. 오늘밤 12시경에 200명의 부대가 장새촌에 내려와서 정미소옆 분창고에서 쌀을 가져가겠답니다.

총소리를 내지 않고 가져갈수 있게 저더러 경비병들에게 술을 먹이라는겁니다.

총독이 체류하고있어서 경계가 심하다고 했더니 시내는 경계가 심하겠지만 주변 농촌들은 조용할것이라면서 기회가 좋다는것이였습니다···》

《유격대가 확실한가?》

《틀림없습니다. 겨울에 우리 집에 들려 <토벌대>병정들에게 쌀을 지워 가지고 간 그 유격대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니지만 제가 신표로 주었던 회중시계를 가지고왔습니다. 시계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으음-》

모리따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밀정의 보고는 그를 긴장시켰다.

겨울에 유격대와의 련계가 이루어졌다는 정보를 받았을적엔 은근히 기뻐하며 기대를 품었었다.

그러나 정작 그 기대가 이루어지게 된 마당에서는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총독이 도착하여 주의가 이쪽에 쏠린 기회를 리용하여 식량을 끌어가겠다는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량식공작이라는 허위정보를 미끼로 삼아 주의를 장새촌에 집중시키고 시내에 잠입하여 연회장이나 총독의 숙소를 습격할수도 있는것이다.

적의 기도를 알수 없으므로 어느쪽도 등한히 할수 없다. 하여 모리따는 결심을 내렸다.

《알았다. 이제 대책을 세우겠으니 너는 자기 집에 있으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즉각 보고하라. 선통하러 왔던 그 두 놈은 어느쪽으로 갔는가?》

《한 놈이 먼저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에 다른 한 놈이 떠나갔으므로 뒤따를수가 없었습니다. 도로에 나서서 복지향쪽으로 간것 같습니다.》

《으음··· 알만하다.》

모리따는 수화기를 놓고 생각해보았다.

며칠전에 동녕현에서 공산군이 《토벌대》가 주둔하고있는 집단부락을 공격점령하였다는 통보로 미루어보아도 적들의 활동이 맹렬해지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2백명이 량식을 운반하러 오겠다는 사실도 있을수 있는 일이고 총독이 체류하고있는 시내에 침입할수도 있을것이다.···

모리따는 수비대참모장과 경부들을 불러 작전방안을 토론했다.

수비대력량을 세개의 분견대로 나누어 한개 분견대는 총독의 숙소와 연회장 등 중요대상들의 경비를 담당케하고 두번째 분견대는 도로와 조양강도하지점들을 비롯하여 공산군이 시내에 들어올수 있는 요소들에 경계를 조직할것이며 세번째 분견대는 장새촌에 진출하여 북쪽산지대에 매복하여 유격대의 출현에 대처할것이다. 세번째 분견대를 증원하기 위해 복지향의 성문수비대와 자위단, 청년의용대를 끌어다가 장새촌 남쪽 산지대에 배치할것이다.···

작전토의가 끝나자 지휘관들과 참모성원들을 각 분견대에 내려보내고 잠시후에는 경보를 울렸으며 출동명령을 하달했다.

시간이 박두했으므로 연회장으로 가려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자기 방에 올라와 각 현들의 정황을 알아보고서야 떠났다.

시내의 공기는 살벌했으나 《시민관》2층의 중앙객실은 무리등불빛으로 휘황했다.

관리들과 고위장교들은 사뭇 엄숙한 기분으로 술잔을 들었다. 연회장으로 오는 길에서 띄여본 군인들의 움직임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던것이다. 오로지 미나미총독만은 세상사를 다 알고있을뿐더러 모든 일에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있는듯 한 너그럽고 감미로운듯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고있었다.

그는 발이 짧은 유리술잔을 들어 곁에 앉은 성장과 건배를 하였고 이전날의 륙군참모차장과도 건배를 했다. 육중한 몸을 일으켜 이웃 식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황송하게 일어선 모리따경찰청장과 잔을 찧으며 씨무룩이 웃었다.

그것은 대륙의 징벌과 숙정을 위해 헌신하고있는 그의 수고를 잘 알고있으며 만족하게 여긴다는 친근감이 넘치는 웃음이였다.

좌중이 주시하는 속에서 베풀어진 총독의 호의에 감격한 모리따는 황송하게 일어선채 고개를 젖히면서 호걸스럽게 잔을 냈다.

고형근의 옆에 온 미나미는

《나는 고형근씨가 조선사람들의 대표단을 이끌고 조선에 나올 때 지엔다오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이 오늘보다 한결 안정되고 향상되였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리라고 믿으면서 당신의 건강을 위해 이 잔을 들겠소.》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오르는 속에 잔을 비운 미나미가 뚜벅뚜벅 제 자리로 돌아갈 때 마시지 않을수 없었던 술잔을 상우에 내려놓은 고형근은 사람들의 유쾌한 지껄임소리를 들으면서 리극로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였다. 소매끝에 실밥이 드러난 양복저고리를 입고 무너질듯이 의자에 앉아 잔잔하고 랭담한 자기의 선고에 아무 말로 하지 않던 어두운 얼굴, 비내리는 쪽대문앞에까지 쓰개도 없이 따라나오던 초췌한 몰골···

총독의 접견을 거절하지 않았다하여 뜻으로 맺어진 지기를 배신자로 치부했던 자기는 얼마나 용렬한 인간이였던가···

오도양산의 산막에서 만나뵈온 김일성장군님의 슬기로운 영상도 우렷이 안겨오는것이였다.

리극로를 만나보신적도 없으시건만 조선어를 연구하고 조선어를 지키고 보급하기 위해 마음쓴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사람됨을 알수 있으며 굳게 믿는다고 하시던 현명하고 신념이 뚜렷하시던 위인의 풍모···

번거로운 좌석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느라니 괴로우면서도 한편 가슴이 따뜻해지는것이였다. 리극로에 대한 자기의 성급했던 처사를 생각하면 량심이 가책되였지만 지금 총독과 더불어 술잔을 찧으며 연회석에 함께 앉아있었다해서 결코 반역자로 치부하지 않으리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하여 행복했던것이다.···

보람을 느끼며 즐거워하는듯 한 총독의 우선우선한 태도와 술기운에 기분이 들떠 유쾌해진 빈객들의 떠지껄임속에 주연은 흥겹게 진행되였다.

연회가 끝나 자기 사무실에 돌아온 경찰청장은 《시민관》에 배치했던 경비병력으로 총독이 류숙하는 태화호텔과 그 주변경계를 증강하게 하고 장새촌주변의 정황을 알아보았다.

수비대와 민간무장대들은 여전히 그 일대의 산들에 매복해있고 다른 동정은 없다는것이였다.

(총독을 노리는걸가, 아니면 식량공작일가?)

유격대의 기도를 간파하려고 정신을 가다듬고 이리저리 추측해보다가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간이다. 경비병들이나 매복병들은 다 한순지엔다오 긴장을 늦추지 말라!》 하는 엄명을 내리고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자 잠들어버렸다. 직책수행으로 긴장한 하루를 보낸 그는 주연의 취기에 노그라져 머리를 해바라기씨통처럼 가슴우에 떨구고 느침을 흘리며 굳잠이 들어버린것이다.···

이날밤 자정이 지난 시간에 시가의 서북부 상사출장소건물들의 뒤쪽에 자리잡은 공출미창고에서 화재가 났다. 불은 창고안에서 붙기 시작하였는데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화염이 충천했다.

경보를 받고 자던 의자에서 뛰쳐일어난 경찰청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속았구나.-》

입밖에 내여 부르짖으면서 눈을 흡뜨고 방바닥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얼렁뚱당 지내며 건들거리는 정미소주인 신덕환놈이 눈앞에 떠오르자 그자를 당장 쏘아죽이고싶었다. 하지만 정보원으로서도 그이상 더 어쩔수 없었으리라 생각되자 자기 할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재현장으로 나가려고 자기 방을 나서는데 전화종이 울렸다.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청장님, 지금 마을 뒤산에서 총격전이 시작됐습니다. 유격대가 나타난것 같습니다.》

전화를 걸어온자는 장새촌 주재소장이였다.

《적군은 얼마나 되는가?》

《아직 확실한건 모르겠지만 총소리로 보아 많은것 같지 않습니다.》

《음- 몽땅 잡아야 한다. 거기 분견대장에게 일러라. 한 놈도 놓치지 않되 될수록 생포해야 한다고, 증원이 요구되지 않는가?》

《아직 전투대와 련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련계를 유지하면서 정황이 생기면 수비대 참모부에 보고하라. 난 화재현장에 나간다.》

저쪽에서 무슨 말을 묻는듯 했으나 모리따는 수화기를 절커덕 놓았다.

그가 화재현장에 도착했을 때엔 한해전에 지은 커다란 목조창고는 형체도 없이 타버리고 시꺼멓게 된 쌀더미우에서 불길이 솟구치고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탄내가 주변을 휩쓸었다. 소방호스가 물을 뿜고 갈구리와 모래봉지를 든 사람들이 불속을 뛰여다녔으나 숯무지로 되여버린 쌀가마니밑에서는 빨갛게 불꽃이 타오르군 했다.···

희붐히 먼동이 터오고있었다.

경찰청에 돌아오니 장새촌뒤산에서의 전투정형에 대한 보고가 기다리고있었다.

···시내상공에 화염이 솟구치기 시작하자 어둠속에 음페하고있던 유격대원들이 산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발견한 수비대가 포위태세를 취하자 공산군은 분산도주하면서 추격을 혼란시켰다.

두 방향으로 갈라져 추격하던 아군은 적의 대부대와 조우하여 전투를 벌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둠속이라 아군들끼리 맞붙어 사상자를 내였다. 그 총격전에서 경찰수비대 일곱명과 자위단원 2명이 죽고 12명의 수비대원이 부상당했다.

공산군은 얼마되지 않는 력량이였는데 처음에 정황을 옳게 판단하지 못하고 남북에 갈라져있던 아군전체를 망라한 포위진을 치려고 한것이 잘못이였다.···

지치고 정신이 흐리터분해진 모리따는 의자등받이에 쓰러질듯이 않아 상관들앞에서는 맹호라도 잡아올듯이 만용을 부리지만 정작 전투마당에 나가면 뒤에 서서 사병들만 내모는 수하의 장교들을 눈앞에 떠올리면서 또다시 꺼질듯 한 한숨을 쉬였다.

방화현장을 보장하고 수사단서를 잡으라고 거듭하여 지시하고나서 철도역주변에 경계를 증강하고 환송의례를 검토하면서 아침을 맞았다.

도문행 렬차의 발차시간이 되여 미나미총독이 역두에 나왔다. 환송나온 관리들의 앞을 태연하게 걸어 지났으나 승강대아래에서 부축하려고 곁에 온 경찰청장을 아니꼬운듯 밀어젖히고 혼자서 뚜벅뚜벅 층계를 올라 성장이하의 관리들과 군부대장들, 시민대표들에게 거수경례로 대답하며 떠나갔다.

그때 군인으로 늙어온 미나미의 우둥퉁한 얼굴에는 미소가 굳어졌으나 기마격전에서도 끄떡하지 않던 가슴속에서는 싸늘한 분노가 꿈틀거리고있었다. 함께 온 수행원들도 지엔다오성의 주인들도 화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시내중심에 있는 태화호텔 2층에서 류숙했던 그는 휘장을 친 창문에 노을빛으로 우줄거리는 화염을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화재는 틀림없이 김일성공산군의 세력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만저우(만주)에 행각한 자기에 대한 도전이고 심중한 경고였다. 만일 그것이 우연한 재해라면 오히려 자기에 대한 천운의 지나친 조롱이 아니겠는가.···

모리따는 역두에서 돌아올 때 고형근을 자기 차에 태워 집에까지 깍듯이 모셔다 주었으나 경찰청에 돌아오자 즉시 그의 집에 감시를 조직하였다.

그리고는 경찰 요직자들을 모여놓고 방화범수사대책을 협의했다.

화재현장에는 단서를 잡을만 한 증거물이 없었다. 공출미창고경비원들을 통해 이 며칠동안 그 주변에 왕래했던 사람들을 료해하는 과정에 《지엔다오반점》주인인 조봉길이 방화당일 저녁에 그곳에 나타났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확인하러 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무슨 련락을 받았던지 종적을 감추었던것이다. 그의 집에도 아침까지 가족들이 있은것이 확실했으나 두 아이를 데리고 처까지 사라져버렸다는것이였다.

시내에 공산군지하조직이 있었으며 조봉길이 거기에 관련되여 있었다는 사실이 짐작되였다. 또한 그가 진작 종적을 감춘것으로 보아 경찰관들속에도 그 촉수가 뻗어있음을 느꼈다.

모리따는 분노에 떨며 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사방에 공산군밀정들이 박혀있구나.-)

공출미창고의 안팎사정을 잘 아는자가 지하조직과 련결되여있으리라는 추측은 무리가 아니였다. 창고의 모든 직원, 회계원, 창고원으로부터 경비원들과 상하차인부들에 이르기까지 매사람의 동향과 그날밤의 동태를 엄밀히 조사하면서 혐의쩍은자들을 지체없이 구인하기로 했다.

시내와 그 주변에는 벌써 유격대가 맹활약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민심이 흉흉했다. 경찰청에서는 지엔다오헌병대와의 련계밑에 불온분자취체와 검속의 선풍을 일으키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나절에 미우라가 경찰청장실에 찾아왔다.

그는 연길헌병대에서 검속처리한 공산당원들과 유격대관련자들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아가지고와서 그전날 약속한 경찰청자료를 요구했다. 경찰청자료실에서 내여준 문서철과 사진봉투를 받아가지고 종일토록 끈끈히 파고들어 연구하던 미우라는 저녁무렵에 모리따가 들렸을 때 자그마한 사진 한장을 내보이며 연고관계를 해명해달라고 요청하는것이였다.

거민증신청대장에서 발견한 작은 증명사진으로 양복을 입은 미끈하게 생긴 청년이 찍혀있었다.

모리따는 대장에 밝혀진 주소성명 등을 더듬어보고 고개를 기웃했다.

《이건 여러해전에 여기 연길에서 포목상을 하는 청년이 제출한 거민증신청서의 종근이군.》

《그런데 현재의 주민대장에 없을뿐더러 호적등본도 없습니다.》

미우라의 말에 경찰청장도 수긍되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상한 놈이군. 종적을 알수 없으니···》

심중해진 미우라의 표정을 돌아보고 경찰청장이 물었다.

《어째, 알만한 인물이요?》

《아니, 수상해보여서 물었습니다.》

미우라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총독부경무국 특고과장인 자기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신원을 보증해주었을뿐더러 이번에 만저우로 떠나오기 며칠전에는 징용에서 제외해달라고 부윤관방실장에게 전화로 부탁까지 했던 홍준걸이라는 공산군공작원과 여기서 만나게 되였다고 차마 까밝힐수가 없었던것이다.

잠시후 그 방에서 나온 미우라는 당직경관실에 들려 특별지급경비전화로 총독부 경무국을 찾았다. 워낙은 발생한 사태를 경무국장에게 보고해야 할것이지만 자기 책임이 두려워 특고과의 자기 심복 경부보를 불렀다.

《지금부터 당장 수사망을 펴서 량정중학교의 서무주임 홍준걸을 불시검속하라. 공산군정치공작원이다. 처리는 내가 나가서 하겠다.》

명령을 하달한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아나고 심장이 거칠게 뛰놀았다. 김일성공산군이 이렇듯 오만무례하게 행동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