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6


 
 

제 4 장

6

 

미나미총독이 만저우(만주)방문로정의 한 체류지인 지린(길림)에 도착한 날 저녁에 현지주둔군사령관이 숙소에 찾아와 다음과 같은 급보를 아뢰였다.

관동군사령부의 통보에 의하면 어제 정오경에 일본군으로 변장한 작은 무장부대가 쏘만국경지대인 동녕남쪽의 큰 집단부락에 나타나 총소리를 울리며 격전을 벌려 포대까지 점령하고 살아남은자들을 무장해제시킨 뒤 창고들을 털어 주민들에게 식량과 물자를 나누어주면서 반일선전을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일대의 주둔부대들과 경찰수비대가 떨쳐나 추적과 수색을 계속하고있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추측컨대 김일성공산군부대 같다. 조용해지는가 싶던 만저우땅에서 또다시 울린 이 전투소식에 따라 도처에서 공산비단들이 준동할것 같으니 총독각하는 부디 다음로정인 지엔다오성(간도성)체류를 변경시키기 바란다는것이였다.

《우메즈사령관각하의 권고올시다.》 하고 현지주둔군사령관이 말하는것이였다. 미나미는 슬며시 코웃음을 쳤다.

《천리밖에서 울린 총소리에 낯빛이 달라진다면 그가 어찌 일본제국의 군인이겠소! 신출귀몰한다는 김일성장군이 총부리를 내대고 내앞에 나타났다 해도 이 미나미가 눈섭한오리 까딱할것 같은가!

체류일정을 바꾸다니···》

《각하, 그렇지만 지엔다오땅은 여느 고장과는 다릅니다.》

《지엔다오가 어떤 고장인가 하는건 당신들보다 내가 더 잘 아오. 돌아가서 우메즈각하에게 념려하여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시오. 그리고 나때문에 체류지에서 경계를 더 보강하는 등의 소란을 피우지 말아주기 바란다고···》

주둔군사령관이 돌아간 뒤에 미나미는 비서관을 비롯한 수행원들을 자기 방에 불렀다. 김일성공산군출현에 대한 소식에 이어 체류일정변경에 대한 권고까지 듣고보니 야마도민족의 권화인 자기의 기개를 떨쳐보이고싶었던것이다.

《지엔다오성 소재지 체류기일은 계획대로 하되 일정은 다른 체류지들에서처럼 격식화하지 말고 조선사람들과 폭넓게 상종하도록 방식을 달리해야겠다. 선구적인 <개척민>부락방문은 예정대로 할것이고 그 뒤에 있을 시민대표들의 환영연이나 성장초대연 같은것도 성정부청사안의 구석진 빈관에서 할것이 아니라 조선사람들이 흔히 쓰는 장소에 벌리도록 하라.》

한편으로는 조선사람들의 환심을 사면서 동시에 김일성공산군 출현에 불안을 품은 일본군 고관들에게 로장의 위용을 떨쳐보이자는 일석이조의 결심표명이였다.

이튿날 새벽 총독일행은 지린을 떠났다.

지엔다오는 미나미가 처음가보는 고장이지만 륙군상으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잘 알고있는 땅이였다.

만저우사변이 일어난 다음해의 3월 어느날, 괴뢰집정자 부의의 국도입성을 기념한다는 포고에 따라 만저우땅 방방곡곡에 일장기와 새 《만저우국》기가 게양되였을 때 유독 지엔다오에서만은 그 기발이 오르지 않아 군부의 고관들을 경악시켰었다.···

둔화(돈화)서부터는 지엔다오성장을 비롯하여 통화성, 목단강성장들까지 영접나와 동행했다. 옌지(연길)에는 낮 1시반에 도착했다.

미나미는 륙군성 군사과에서 근무하던 자기 맏사위가 제국 통수부가 고충으로 느끼는 강적의 소탕을 열망하여 지엔다오의 어느 부대에 전출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나 굳이 만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렬차에서 내릴 때 성경찰청장 모리따를 알아봤으나 깍듯한 인사에 고개만 끄덕였을뿐이다.

인척이나 면식있는 사사로운 관계에 마음을 쓰기에는 자기 직분과 장소가 어울리지 않았던것이다.

마중나온 관리들과 주둔군 부대장들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던 미나미는 뒤돌아보며 경찰청장을 찾았다.

《어째 여기 조선인유지들이 보이지 않소?》

《저기 옌지현 부현장이랑 나왔습니다.》

모리따가 눈길로 그쪽을 가리켰으나 총독은 돌아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부현장은 부현장이고··· 여기에 고형근이라는 유지가 있을텐데···》

경찰청장은 한걸음 다가서서 자기보다 키가 작은 미나미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속삭였다.

《각하, 그 사람은 <개척민>후원회 일도 하면서 학교조합장으로도 활약하지만 미심쩍은 일들이 있어서 오늘 행사에는 청하지 않았습니다.》

《미심쩍은 일이라는건?》

《산간에 있는 <개척민>부락에도 나가군 하는데 행처가 모연한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전에는 수상한자들을 자기 마차에 태우고 다녔습니다.》

《수상한자들이라는건 어떤 자들이고 어째서 태우고 다녔는가?》

모리따는 대답이 궁해서 눈만 겁석거리고있었다. 첩자들이 제공한 자료에 근거해서 감찰부장이 《고형근이 수상하다. 장새촌에 공산군이라고 인정되는 자들이 나타나 군중들앞에서 선동연설을 한 다음날 수상한자들을 자기 마차에 태우고 다녔다.》라는 보고를 했을 때 모리따는 버럭 소리를 질렀었다. 《왜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았는가? 확신할수 없었다면 그후에는 어떻게 확신이 생겼는가? 건달망나니 같은것들···》

지금 그러루한 변변치 않은 자료들을 렬거한다면 총독은 자기를 숙맥이라고 비난할것이였다. 하여 모리따는 비난밖에 차례질것이 없는 대답을 더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

미나미는 사람들이 보는 앞이라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있었으나 좋지 않은 심사를 짭짤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머나먼 지엔다오땅에까지 와서 돌아다니기로 작정한것은 당신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요! 근거가 있다면 잡아들일것이지만 근거도 없이 의심해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다니! 조선사람유력자들을 하나라도 더많이 우리 편에 끌어붙여야 할 때인데···

고형근이를 당장 환영행사에 참가시키오. 자연스럽게···》

미나미는 일행을 거느리고 시내중심부에 있는 성정부에 들렸다.

성장에게서 이 고장 형편에 대한 해설을 들었고 조선사람들의 생활형편과 교육에 대해 특히 관심한다는것을 보여주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 자리에는 조선에서부터 따라온 기자들과 신징(신경)에서부터 따라온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이 있었던것이다.

미나미는 응접탁우에 차려놓은 다과를 들면서 한시간쯤 지체하고나서 지엔다오의 개척촌들에서 모범으로 내세우는 복지향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정부마당에서 자동차에 오를 때 경찰청장이 봄외투를 입고 중절모를 쓴 학자풍의 사람과 함께 자기 차에 오르는것을 피뜩 보았으나 굳이 알은체는 하지 않았다. 기억에 희미했으나 근엄해보이는 인상으로 고형근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자동차의 행렬은 시연극장앞에서 멎었다. 성장이 미나미를 《무연정령공양탑》쪽으로 안내해갔다. 미나미가 열자 높이나 되는 비석앞에 서자 다른 사람들도 줄지어섰다.

미나미는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시하고나서 무주고혼들을 심심하게 추모하는듯 한 표정을 짓고 비석대의 주위를 천천히 한바퀴 돌아오면서 그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들을수 있는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총후에서 분투하다가 순직한 사람들에게 좋은 기념비를 세웠소. 참 훌륭하오!》

미나미는 조금전 성장실에서 광산에서의 재해와 광부들의 항의, 조선사람들의 위문단활동 등을 들었던것이다.

복지향까지의 도로는 경계가 삼엄했으나 미나미는 저으기 온화한 표정으로 차창밖에 눈길을 주고있었다.

복지향 마을복판에 자리잡은 공회당 앞마당에서 현장, 현경찰서장, 현협화회장들과 함께 향장이 총독일행을 맞이했다.

성장이 사람들을 소개할 때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온 《개척민》후원회 회장도 인사시켰다. 총독은 벌써부터 웃고있었다.

《고형근씨는 나의 옛 친구라고 할수 있소. 내가 조선주둔군사령관으로 재임할 때부터 알고지낸 사이니까.》

미나미의 각근한 호의에 고형근은 눈길을 숙이고 인사치레의 미소를 지었을뿐이다.

새 다다미를 깔아 산뜻해진 공회당안에 빈객들을 위해 차려놓은 응접탁자들에는 백설같이 흰 탁상보가 씌여져있고 그 우에 다과를 담을 다반들이 놓여있었다.

총독은 특별히 준비해온 북해도산 밀종자가 든 상자두개와 《선만일여》라고 초자로 갈겨쓴 액자 한틀을 향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복지향을 행복이 꽃피는 신천지로 꾸려나가는데서 큰 기여를 한 향장에게 총독부의 명의로 된 표창장과 상금을 수여했고 공산비적과의 싸움에서 용감했을뿐더러 당국의 시책을 수행하는데서 남다른 열성을 발휘한 선구농민인 원덕천에게도 상금을 수여했다.

촌닭 관청에 온격으로 어마어마한 관리들속에 끼여앉아 굳어져있다가 총독앞에 불리워나가 상금봉투를 받은 원덕천은 제자리에 돌아와서 멀뚱하니 앉아있더니 흐느껴 우는것이였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서 벙글거리던 향장도 눈을 슴벅거리면서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였다.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성장이 웃으며 수습했다.

《총독님이 지엔다오의 오지에까지 왕림하셔서 친히 격려해주시니 감사와 감격을 누를 길이 없지요!》

방안에 둘러앉은 관리들은 과연 그렇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옆사람과 더불어 공감을 표시하고있었으나 고형근은 가슴이 답답했다. 원덕천이 지금 감격에 겨워 우는것이 아니라 상금봉투와 바꾸어버린 자기 처지가 원통해서 우는것이라고 직감했던것이다.

미나미는 비서관이 부어주는 차를 두어모금 마신 뒤 몇마디 훈시를 하고는 일어섰다. 그러자 다른 관리들도 일어서서 뒤를 따라 방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텅 비여버린 너렁청한 방안에서 마지막으로 움직이고있는 고형근에게로 원덕천이 다가왔다. 한손에는 상금봉투를 되는대로 말아쥐고 다른손 손등으로 고여오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울먹이는 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회장님, 전 도로공사부역에 나가지 않겠닥 해시미다. 이젠··· 진저리가 나미다···》

아마도 자기의 비장한 결심을 한고향 어른인 고형근에게만은 말하고싶었던 모양이다. 고형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 비낀 수긍의 표정을 느꼈던지 원덕천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물러갔다.

미나미총독의 만저우방문로정에서 《개척민》부락방문이나 《시민초대연》이라는 일정은 지엔다오성에서만 예견되여있었다.

조선총독이 《만저우국》에 사는 조선사람들에게도 남다른 애정과 배려를 돌리며 지엔다오의 조선사람들도 자기네 총독을 각별히 정답게 맞이했음을 널리 선전하려고 벌린 놀음이였다.

《시민초대연》이 마련되여있는 태화국민학교 마당에서는 초청받은 사람들이 기다리고있었다. 흰 장갑을 낀 교장이 옻칠한 사각쟁반에 두루미를 자개박은 함을 받쳐들고 서있었다.

함안에 든 홍삼은 총독의 《만년장수》를 기원하여 드리는 시민들의 선물이였다.

차에서 내려 거수경례를 하고 그것을 받아 비서관에게 넘겨준 미나미는 위병들이 서있는 현관을 지나 교직원실에 들어갔다. 그 뒤를 함께 온 《만선척식》총재며 고위관리들이 따라서고 시민대표들도 줄레줄레 흘러들어갔다.

교장이 일어서서 《반도의 주인이며 <만저우국>을 안아키운 어버이이신 미나미총독각하의 래만과 지엔다오지방시찰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자 미나미는 처진 볼에 웃음을 흘리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장내의 이쪽저쪽에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하고 비서관이 들고있는 국화의 어문장으로 장식된 크지 않은 함을 받아놓고 입을 열었다.

《나는 제국의 시책을 받들고 바람세찬 만저우에 진출하여 대일본의 륭성을 위해 귀중한 씨앗을 심고 가꾸어가는 <개척민>들에게 심심한 인사를 드리면서 산미증식과 총후방비에서 충의를 다한 12개 부락의 향장, 촌장들과 75호의 선구농가에 총독부의 명의로 표창장과 상금을 수여하려고 합니다.》

박수가 터져오르는 속에서 지엔다오성《개척단》단장이 대표로 목함을 받았다. 미나미는 사뭇 기분이 좋아 넓은 방안을 둘러보며 훈화를 시작했다.

《현하 반도의 조선민중 2천 4백만은 국가의 어려운 시기에도 동양인의 운명공동관에 의해 공존공영의 도의세계를 건설한다는 특이한 목적을 리해하고 최근은 황국신민이 된 긍지도 높이 국방국가체계의 확립과 근로보국에 명랑하게 나서고있는데 여기 지엔다오에 사는 조선사람들도 같은 심정임을 보고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제국정부는 조선민중이라면 세계의 어느 땅에 있건 재외일본공관의 지도보호로 일본국민된 긍지를 지니도록 이끌어주고있습니다.···

만저우에 사는 조선사람들도 <만저우국>정부의 통치에 준하여 5족협화의 만저우립국정신을 배양하고 생활안정과 교화를 기하면서 흥아의 성업에 참여할수 있는 현실에 있음을 명심하여 적성의 요언랑설에 귀기울이지 말고 대일본의 륭성을 위해 목숨바쳐 헌신하기를 바라는 바이요.···》

《선만일여》를 위해 축배를 들었고, 제국의 륭성을 위해, 미나미총독의 만수무강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잔들은 어울렸으나 연회장에 흥은 오르지 않았다. 연회에는 동부인한 일본관리들과 회사의 사장들, 직원들, 상인들과 함께 조선인유력자들과 유지들이 참가했는데 눈치들을 보면서 서로 어울리지를 않았다. 미나미는 이러한 분위기를 짐작하고 진작 조선인부현장과 고형근을 주탁에 배석하도록 일렀었다.

주탁에는 《만선척식》총재며 성장 등이 자리잡고있었으나 미나미는 누구보다도 자기곁에 앉힌 고형근이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형근이 그동안 지엔다오에서 사람들의 생활안정과 교육진흥을 위해 특히는 《개척민》들을 도와서 많은 일을 했다면서 학벌도 높고 재산도 있는 사람이 만저우의 벽지에서 제국의 번영을 위해 큰 일을 한다고 극구 치하했다.

미나미는 그들이 처음만났던 10여년전의 일을 감회깊이 회상했으며 그때 고형근이와 함께 다니던 리극로에 대해서도 정겹게 말하는것이였다.

《리극로씨가 오래전부터 조선어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조선어학회>를 운영하면서 조선어사전편찬사업을 추진해온다는 말을 듣고 나는 과학연구사업인만큼 학회를 그대로 운영하고 사전편찬준비도 잘할수 있게 그가 하는 일을 적극 보장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와 가까운 조선의 벗들이 하는 일인데 내가 무관심할수야 없지요.

물론 일본족과 조선족이 동조동근이라는것이 력사연구에 의해 명백하게 된 지금에 와서 조선어를 연구하고 사전을 편찬한다는것이 부질없는 일이지만 고고학을 연구하듯이 과학적연구의 견지에서는 리해될수도 있는 일입니다.》

고형근은 례의에 어긋나지 않으리만큼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식탁에 놓인 산해진미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처럼 저가락으로 골라짚으며 천천히 먹고있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러는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 백제의 옛 도읍인 부여땅에서 내선일체와 발상지로 확인된 백마강가의 부소산에 부여신궁을 앉혀 두 민족이 한뿌리에서 생겨났음을 온 세상에 자랑하려고 합니다!》

고형근은 더러운 수작질에 메스꺼워지는 속을 누르려고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한쪽켠에 앉아있던 《만선척식》총재가 총독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신궁까지 앉혀놓으면 조선사람들도 과연 <황국신민>으로서 더욱 긍지를 가질겁니다.》

고형근은 척식총재가 지금은 비록 넥타이를 맨 신사로 처신하고있지만 기왕에는 제국의 륙군참모차장으로 만저우의 강점에 극성스리웠던 자임을 잘 알고있었다. 침략의 원흉들이 력사를 모독하고 조선민족을 모독하면서 위선적인 말을 늘어놓는것이 참을수 없었지만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제속을 그대로 드러낼수는 없었으므로 화제를 돌리면서 적당히 변죽을 울려주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사람들은 지금 생활난에 허덕이고있습니다. 입을것도 없지만 먹을것이 없어 모두가 굶주리고있습니다.》

척식총재는 그 말이 불만스러운듯 고형근을 힐끗 쳐다보았으나 미나미는 리해하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량식이 문제요. 량식이··· 이 점에서는 총재각하가 책임이 크지!》

불만을 나타낼듯 한 《만선척식》총재를 웃으며 눌러놓고는 고형근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선각자인 고형근씨도 백성들을 독려하여 농사를 잘 짓게 합시다.

우리 다같이 국가앞에 중책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요.

참 내가 여기로 오면서 생각하던것인데 고형근씨도 올여름에는 조선을 방문해주시오. 만저우에 사는 조선사람들로 대표단을 무어 고향을 방문하여 친척들도 만나보고 만저우땅이 살기좋은 신천지로 변모되여가는 모습을 민중들앞에 소개도 하고, 조선의 명승지들을 답사도 하고··· 경성에 나오기만 하면 체류의 모든 조건들을 내가 잘 보장해드리겠소.

작년에는 외몽고에 있는 조선사람들 향토시찰단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특별히 고형근씨를 초청하는바이요.》

고형근은 은근히 긴장되여있었다. (내가 사람들의 면전에서 미나미의 친구가 되고 그가 부르는 노래에 춤을 추는 친일파가 되는구나.) 하고 자기의 용렬함을 개탄했다. 자기의 철저치 못한 립장이 빚어놓은 소극적반항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총독의 초청에 고개숙여 사의를 표하면서도 거절의 구실을 찾았다.

《대표단을 무어나간다는게 저한텐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올시다. 게다가 저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건강이 좋지 않을 때에는 전지료양이 효과적입니다. 그럴만 한 료양지를 찾아봅시다.》

웃음어린 총독의 말을 성장이 받들었다.

《대표단은 제가 조직하지요. 신청자가 많을뿐더러 보내고싶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총독의 의사에 아부하고있었으나 고형근은 마지못해 웃으며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때에 가서 병피탈이라도 하는수밖에 없구나-)그는 총독의 초청에 응하지 않을 구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