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4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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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총독은 역홈에 줄지어 늘어선 총독부와 조선주둔군고위인물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특별렬차 히까리에 몸을 싣고 《만저우(만주)국》방문의 길에 올랐다. 렬차에 오르기전에

도시는 아침부터 삼엄한 분위기에 싸여있었다.

역사앞에 있는 《야마도호텔》로부터 정부기관들에 둘러싸인 《대동광장》을 지나 《일만군인회관》에 이르는 중심거리는 관동군수비대의 특별수비병들로 경계가 삼엄했으며 일체 통행은 금지되여있었다. 팔에 완장을 두르고 아라비아산 구마를 탄 순시헌병들만이 등줄기를 뻗치고 군도를 번쩍거리면서 도간도간 지나다녔다. 정오가 지나 렬차도착시간이 림박하자 순시헌병들도 골목어구마다에 밀려들어가 건물옆에 부어놓은 황동주각상마냥 부동의 자세로 굳어져버렸다. 렬차에서 내린 총독일행은 마중나온 관리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의 행렬은 30만인구의 국도 중심거리인 대동대가를 따라 흘러갔다. 차들마다에는 목깃에 누런 령장을 달고 전투모를 쓴 일본군장성들이 앉아있었고 중절모를 쓴 관리들과 화려한 샤프누르개로 가슴을 장식한 《만저우국》군장령들의 모습도 눈에 띄였다.

운두에 붉은 테를 두른 례모를 쓴 고위장교가 질주하는 차의 발판에 버티고서서 거리를 살피는 모습으로 하여 행렬의 위엄에는 살기마저 뻗쳤다.

미나미는 좌석의 등받이에 젖히고 앉아 낯익은 거리를 내다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군사령관으로, 대사와 《관동국》장관을 겸임하여 만저우에 군림하던 시기에 《국도건설 1차 5개년계획》으로 추진시켰던 도시의 정경을 탄상하는것이 만족스러웠던것이다. 그가 이곳에 있을적에 비해 달라진것이란 형태식으로 완공했다는 일본모직회사 건물이였다.

중앙공원입구에 높이 세운 장대에서 《못가에 버들이 싱싱하고 왕도락토에 생기가 넘친다》라는 글발이 씌여진 프랑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있다.

마치도 싱싱한 버들이며 《왕도락토》가 춤이라도 추는것처럼···

군인회관 영빈관에서는 재만기자단이 기다리고있었다.

미나미는 시종 웃음어린 표정으로 만저우에 거주하는 조선사람들의 생활안정과 교육의 진흥을 위해 불원천리 찾아왔다는 취지를 알리고 체류기간이 짧지만 힘써 많은 성적을 올리겠노라고 단언했다.

기자회견후에 역시 치레거리인 신사참배까지 치르고나서 대사관과 관동국이 함께 들어있는 관동군사령부뒤에 있는 사령관관저로 향했다.

우메즈 요시지로는 철책대문을 열어놓은 정원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한때 자기가 살던 집의 귀빈을 위한 별실에 들어선 미나미는 《만저우국》의 통치자와 마주앉았다.

회담의 비밀보장을 위해 다른 사람은 일체 들이지 않았다.

《국제정국은 대단히 긴장합니다.》

하고 미나미가 말을 뗐다.

《제국은 바야흐로 만저우강점으로 시작된 아시아제패를 위한 전쟁궤도의 최종목적을 향해 돌진하려고 하고있습니다.

요즘 마쯔오까외상이 유럽쪽에 간것도 동맹국들의 협력관계를 다시 확인하면서 힘을 돋궈주고 히틀러로 하여금 동쪽으로 진격하라고 부추기기 위해서입니다. 그쪽에서 싸움이 붙으면 우리가 한결 쉬워지지요.

한데 이제 큰 전쟁을 시작하자고 하니 아무래도 후방이 문제란 말입니다. 조선과 만저우, 특히 조선은 전진적인 병참기지로서나 대륙과 련결되여있는 지리적위치로 보아 중요한 후방이고 우리가 디디고 싸워야 할 발판인데 지금 같아서는 미덥지 못한 발판이란 말입니다. 이런 사정이야 사령관각하도 잘 알겠지만 지엔다오(간도)를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고있는 김일성공산군이 제일 큰 골치거리지요. 만저우일대에서 영향력을 뻗칠뿐아니라 조선에까지 흘러들어 반일기세를 부추기니 통수부에서도 골치를 앓지요!

그래 어떻습니까? 요즘 형편은···》

우메즈는 최근까지의 작전성과를 알리고나서 주적인 김일성부대를 소멸하지 못했노라고 실토했다.

《···김일성공산군을 다 소멸했다고 여러번 떠들어놓고도 <토벌사령부>를 그냥 두는것이 세상의 웃음거리로 될것 같아서 지난 3월말을 기하여 일단 해산하고 전반적인 지휘를 나의 참모부가 맡아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부대들은 자기 군관구에 소환하고 지엔다오와 국경지대에 병력을 더 투입했습니다. 지금 형편에서는 김일성부대의 소재가 명확하지도 않습니다.》

미나미가 물었다.

《우메즈각하는 그 소재가 어디라고 보오?》

《정보들이 똑똑치 않습니다. 헌병대보고에 의하면 지난 2월부터 안도, 옌지(연길)일대에서 움직인다는 설도 있었습니다만 쏘련측에 침투한 정탐들의 보고에 의하면 금년 초에 원동지구에 회의하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디서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동북만저우일대에서 공산군은 여전히 활동하는데 땅속에 잦아든것처럼 자취를 감추기때문에 추적과 포초에서 난관을 겪고있습니다.》

《그렇게 흩어져 잦아든 세력들이 조선의 여기저기서 솟아올라 워낙 잘 다져지지 않은 우리 통치의 지반을 허물고있습니다.

축항공사장이나 철도건설장, 탄광, 광산들에서뿐아니라 총독부가 틀고앉은 도시에서까지 <일제타도>를 노리는 류언비어들이 떠돌고 민심이 흉흉하니 장차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알겠습니까!

후방교란으로 나갈것이고 폭동까지 일으킬수 있습니다. 공산군령수는 능히 그렇게 할수 있는 인물입니다.》

우메즈는 두손으로 무릎을 짚고 꼿꼿이 앉아있었다.

《그래 어떤 대책을 취하고있소?》

《아까 말씀드린 실무적조치와 금년초에 제시한 치안숙정요강에 따르는 치표, 치본공작과 특수부의 비밀공작을 근기있게 내밀려고 합니다.

일본의 강대성에 대한 선전을 맹렬하게 벌리는 한편 적군을 혼란와해시키기 위한 모략선전도 펴고있습니다. 그밖에 특별히 다른 방도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이젠 다들 지쳤습니다. 명예도 훈공도 차례지지 않는 전쟁에 진저리나서 모두 목숨이나 건질 생각뿐이지 분발하지 않습니다.》

《상여가 변변치 않은게군.》

《고생으로 말하면 그 어느 전쟁보다 혹심하지요. 허나 명분이 없는 전쟁이고 보니 차례지는건 거의 없습니다. 전몰자유가족들은 더 불만입니다. 요즘도 만저우에 있는 유가족들이 생계가 어려워 내지로 돌아가겠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살아있는 장병들의 의기가 더욱 저상될수밖에 없지요.》

《명분없는 전쟁이라니! 만저우에서 공산군과의 대결이 일대 성전과 같다는것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 터인데···

지금 도죠륙상도 실정을 잘 아는터이니··· 상고하시오. 그리고 <토벌사령부>가 사명을 마쳤다고 공포한 요즘 같은 때 전몰장병위령제 같은것도 거행하는게 좋을것 같소. 영령도 위로해야 하지만 장차 싸울 군인들을 격려해야지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민중에게 주는 영향이 나쁠것 같습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전몰한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못한다면 살아있는 장병들이 어찌 죽음의 길로 달려나가겠습니까. 물론 세상에 알려져서야 안되지요. 보도진은 막고···》

우메즈대장은 선배의 정중한 충고를 귀담아듣고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총칼로만 싸울것이 아니라 계략으로 싸워야 한다는겁니다. 이게 중요하지요.

가령 비민분리도 총칼로만 시행할것이 아니라 민심을 구슬려서 우리 편으로 끌고 공산군과는 등을 지게 계략을 써야 합니다.》

《저도 알고있습니다만 넓으나넓은 땅에 수천만의 인간들을 상대해서 하는 그런 놀음이··· 뜻대로 되여가지 않습니다. 총칼을 휘둘러 족치고··· 진멸해야 합니다.》

《눈앞에 적의 부대가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진멸합니까! 족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이또 히로부미공작의 조선병탄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등차를 많이 만들어 우대도 하고 천대도 하면서 한덩어리로 뭉치지 못하게 분렬하여 다스려야 합니다. 나의 이번 행각에서도 지엔다오일대의 조선사람들을 황국신민으로 어루만져주면서 영향력있는 자들을 우리 품에 그러안자는것이 주되는 목적입니다.

힘만이 아니라 계략이 필요합니다.···》

관동군사령관은 미나미의 훈계가 마음싸지 않은듯 찌뿌둥해졌으나 굳이 입은 열지 않았다.

미나미는 훈계에 이어 자기가 생각해오던 실무적인 대책 몇가지를 렬거했다.

두만강류역의 경계를 배가하고 조선측 경비진과의 련락협의를 긴밀히 할것, 조만국경지대에서의 교통, 특히 도로망의 련결, 전화 및 무선망을 설치할것, 재만저우국 일본대사관 특수기관 및 령사경찰, 관동군 헌병대와 산하분견대, 《만저우국》내무성 및 각 성시의 경찰기관, 조선총독부 경무국 및 조선주둔군 헌병사령부 등 반공특수기관들이 항일무장부대와 공작원들에 대한 정보, 검속, 예심자료들을 신속히 제시, 호상 통보하는 문제 등이였다.

의견을 서로 보충해가면서 순조롭게 합의에 이르렀다.

원탁쪽으로 손을 뻗쳐 래방자에게 차를 부어준 우메즈는 자기잔에도 따라 두어모금 마셨다. 백설같이 흰 손수건으로 검스레한 입언저리를 누르고나서 점잖게 말을 뗐다.

《각하의 그러한 계략이 공산군의 활무대인 이 지엔다오에서도 부디 좋은 실적을 올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량입귀에 쓸쓸한 미소를 띄웠다. 자기가 입밖에 낸 말을 스스로 비웃는듯 한 표정이였다. 미나미는 연보라빛 바탕에 금색의 테를 두른 접시우에 차잔을 놓고 까맣게 반짝이는 탁자우의 보석으로 아로새겨진 청조의 황실문양에 멎어있던 눈길을 주인쪽으로 돌렸다. 인품이 고결하다는 제국의 륙군대장이 강점지에 차려놓은 생활의 일단에 주의가 끌려 말귀를 미처 알아듣지 못했던것이다.···

방문의 기본용건을 첫날에 반나마 처리한 미나미는 이튿날엔 국무총리를 방문한다, 일본인 총무장관으로부터 《정부》의 시정을 청취한다, 어디어디에 참배를 한다, 《만저우국》황제페하를 배알한다는 등의 의례행사를 치르고나서 만저우에 사는 조선사람들을 돌보러온 《어버이》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수부의 구석진 거리에 있는 조선인학교에 가서 《천황페하께 충성다하는 훌륭한 일본국민이 되라》 하고 일장훈시를 하였고 《만선척식총재》를 만나서는 조선에서 넘어온 농민들에게 크게 혜택을 베풀듯이 난문제들을 물어도 보고 관민의 유력자들을 청하여 풍성한 만찬도 베풀었다.

수부를 떠나는 날 아침엔 역두에 전송하러 나온 장교들, 관리들, 유지들앞에서 재만조선인들에 대한 따뜻한 보호를 요망한다고 생색을 내는 연설도 했다. 하지만 선만의 관계가 하나같이 되여가고 대동아건설의 의기가 날을 따라 높아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호언하는 그 연설에서도

《동아의 대세를 모르는 무자각분자들이 만저우국의 변방에서 치안을 문란시키며 민심을 동요케 한다》고 어쩔수 없는 울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