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3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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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총독은 역홈에 줄지어 늘어선 총독부와 조선주둔군고위인물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특별렬차 히까리에 몸을 싣고 《만저우(만주)국》방문의 길에 올랐다. 렬차에 오르기전에

《여는 만저우에 직행한다. 황제페하를 배알하여 만저우국의 찬란한 개화에 감탄의 소견을 아뢰고 대동아공영권확립에 광휘로운 선적을 찍으려는것이다.》 하고 성명했다.

하지만 지금 일본군에서 하층장교들마저도 꼭두각시로밖에 여기지 않는 《만저우국》황제에 대한 경건한 례의를 지켜 행차하는것이 아님은 견장만 없을뿐인 군복과 전투모, 무릎까지 오는 군인장화를 신은 그의 차림새만 보아도 짐작할수 있는 일이였다.

물론 모처럼 방문하는 걸음에 만저우에서의 조선인《개척민》문제, 조선인아동교육문제, 압록강수력발전 2계단 개발을 비롯한 자연개발과 산업진흥문제도 협의할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행각의 근본취지는 속깊이 감추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비서관과 총독관방 문서과장 그리고 군사보좌관들인 두명의 륙해군 대좌를 대동하고 경무국의 경시를 비롯하여 특별고등사찰과의 과장 등 만저우와 조선에서의 반일항쟁세력들에 대한 파악이 깊은 경찰관들을 비공식수행원으로 데리고 떠났다.

세계정세가 날을 따라 삼엄해지는 봄이였다.

일본은 4년이나 끌어오는 중일전쟁에 시달리면서도 유럽에서 이태째 계속되는 대전의 불길이 더욱 크게 타번지는 기회를 타서 더 많은 땅덩어리와 리권을 빼앗아내려고 새로운 침략을 시도하는 때였다.

밤중에 압록강철교를 건넌 렬차는 해솟는 아침엔 벌써 랴오동벌(료동벌)을 달리고있었다. 언제나처럼 어제저녁에도 차안에서 혼자 술 한병을 다 마신뒤 푹 자고난 미나미는 승강대에 나가 아침식사후의 소풍을 했다.

비서관과 무관들이 찾아와 아침인사를 하고 돌아가자 경무국의 특고경관들을 불렀다. 사복차림을 한 두사람이 들어오자 탁자건너편의 안락의자를 가리켰다. 몸이 호리호리한 경시는 머리를 조아리며 자리에 앉자 웃음을 띄우고 장황한 인사를 했다.

《각하, 떠나기전에도 산악지대를 다니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 려로에 피로하시지 않습니까?》

직급상의 여러 층계를 뛰여넘어 총독이 친히 자기들을 찾은것을 황송하게 여긴 경시는 상전의 비위에 맞을만 한 말을 섬겼다.

그는 며칠전에 거행한 평원선개통을 총독이 자기 치적으로, 자랑으로 여긴다는것을 눈치채고있었던것이다. 두볼과 아래턱이 무겁게 처진 미나미는 작은 눈에 웃음을 띄우고

《참 바쁘게 지냈어-》

하고 뇌였다.

《하지만 제국의 번영을 위해서는 쇄골분투의 각오가 되여있으니 주저앉진 않을걸세.》

《착공한지 19년이나 되는 철길을 완공했으니 기쁘시겠습니다.》

《나 한사람의 기쁨이 아니야. 정부에서 크게 관심하던 일이네.》

두 경관은 과연 그렇겠다는듯 과장된 감동을 표시했다.

총독은 다시 근엄해지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군들을 부른것은 짐작하고있겠지만 조선에 침투하여 모략활동을 일삼는 공산분자들을 수배, 색출하는데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번 걸음에 만저우국 중심성 경찰청들과의 협의와 자료연구들을 실속있게 하라는 취지에서였네.

군들도 아다싶이 조선사람들을 다스리자면 항일하는 공산군을 무장으로 소멸할뿐아니라 지하에서 움직이는 모략분자들을 숙청해야 하네. 이 두가지 전쟁을 잘하지 못하면 조선에서의 제국의 지위가 안정될수 없을뿐더러 나아가서는 통치지반이 허물어질수 있네. 심각한 문제야.

그래서 내가 이번에 특별히 만저우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싸운 경력을 가진 특고경찰들을 선발하라고 한거네.》

《명심하겠습니다.》

하고 경시는 제꺽 대답했으나 보다 젊고 령리하며 투지만만한 미우라특고과장은 동안을 두었다가 한가지 의견을 제기했다.

《각하, 저도 이전에 만저우에서 봉직하여 잘알고있습니다만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활동상황에 대한 정보는 대체로 각 성 경찰청과 령사관들을 통해 수집됩니다. 하지만 10여년전에 왕성하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동분서주는 건건히 감옥에로 잇닿았고 그후에 번성해가는 김일성공산군의 활동에 대해서는 경찰청이나 령사관들에서보다 관동군이 더 책임을 느끼고있습니다.

그런데 관동군에서 파견하는 토벌대들에는 특별공작부 아래에만도 선무공작조를 비롯한 여러개의 공작단위가 각기 정보선을 가지고있습니다. 또 헌병사령부산하의 각지 헌병대들도 유격대와의 전쟁에 우선적인 관심을 돌리면서 정보사업을 맹렬하게 벌립니다.

이처럼 하나의 적을 상대하는 우리측의 여러 기관들이 협의나 정보교환을 수시로 하면서 공동보조를 취할대신 책임한계요, 비밀루설이요 하는 구실을 대면서 울타리를 높이 쌓고 저마끔 제볼장을 봅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가 이번에 요긴한 자료들을 넘겨받을수 있겠는지가 우려됩니다.》

미나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지당한 말이다. 이 문제는 내가 조처하겠다-》

그리고는 수첩에 몇자 적어넣었다. 젊은 특고과장에게 축잡힌 감이 들었던지 호리호리한 경시도 한가지 의견을 제기했는데 따지고 보면 먼저번 문제와 비슷한것이였다.

총독은 적당히 들으면서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

시야가 모자라게 펼쳐진 광야에 연두색 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육중한 몸을 의자등받이에 젖히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미나미의 가늘어지는 눈길에 그윽한 상념이 어리는상 싶었다. 총독은 이미 건너편에 송구하게 앉아있는 특고경관들이며 철창을 울리는 차바퀴소리에는 아랑곳없이 렬차의 진동에 흔들리면서 지평선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있었다. 미우라는 (돌아가야 하지 않을가?) 하는 뜻으로 동료를 쳐다봤으나 처세에 능한 경시는 총독의 환심을 살수 있는 좋은 기회를 스스로 사양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여 인정을 헤쳐볼수 있는 물음을 건넸다.

《각하께서는 조선에서의 봉직이 마음에 드십니까?》

《···》

미나미는 그 말을 듣지 못한듯 여전히 차창밖을 내다볼뿐이였다.

경시는 자기 물음이 너무 외람되여 총독의 노여움을 사지 않았을가 기색을 살펴봤으나 속심을 알수 없었다. 하여 그는 총독이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한것으로 여기면서 마음을 놓았다.

미나미는 경시가 묻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한낱 경시따위가 생각하는것처럼 흥미거리의 화제가 아니였으므로 무시해버렸던것이다. 조선에서의 봉직 5년간은 《내선일체》,《선만일여》를 부르짖으며 《비상시국》에 처하여 더 무거운 부담을 짊어진 조선백성들을 틀어쥐고 닥달하며 때려 몰아가는 숨가쁘고 기진력진한 고전분투의 나날이였던것이다.

미우라가 평범한 화제를 꺼냈다.

《각하께서는 6년만에 만저우땅을 밟아보시는군요.》

미나미는 여전히 차창밖을 내다보다가 이윽고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6년만이지.》

다부룩한 코밑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는 양이 대륙에 대한 야망을 품고 관동군을 호령질하던 만저우재임시절을 그리는듯 했다.

《각하께서는 외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시는데 내지가 그립지 않습니까?》

미우라는 서정적인 이야기로 이 자리를 인정겨운 친목의 마당으로 만들고싶어 그렇게 물었으나 군국의 화신인 늙은 륙군대장은 막 깎은 메주머리를 외로 틀면서 그들을 향해 돌아앉았다.

《아닐세. 우리 일본은 좁은 제 땅에서만 살수 없게 숙명지어진 나라여서 제국의 남아들은 나라를 위하고 향토를 그리는 마음이 곧 바다건너 대륙을 그리워하고 대륙에 뛰노는 마음으로 되여야 하네. 우리는 젊어서부터 대륙을 그리워하고 대륙에 뛰놀았네. <관동군가>에도 있지!

<홍안령 뻗어내린 저 들판에 부조의 호국령혼 잠들었도다···>

선렬들은 벌써 대륙에 새 일본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대륙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 우리가 주인질하는 만저우국을 세웠네.》

경시와 미우라는 엄숙한 표정으로 듣고있었다.

《세상리치란 단순한것이여서 힘있는 자에게 정의가 있네. 히틀러도 말했지만 국가란 결코 평화적인 경제에 의해 건설되는것이 아니라 민족을 보존유지하려는 본능에 의해서, 선각자들의 영웅적행위와 책략에 의해 건설되는것이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제국이 나갈 길을 내다보면서 앞장에 서서 만저우사변을 일으킨 당시의 관동군 선각자들이 그런 리념을 체현하고있은 영웅들이였지···》

렬차는 기적을 울리며 질주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진동에 기우뚱거리면서 스뎅양복차림에 백테안경을 건 비서관이 들어섰다.

《각하, 두시간후에 신징(신경)에 도착합니다.··· 얼마간이라도 쉬지 않으시겠습니까?》

총독이 눈길을 숙이자 무겁게 처진 아래볼과 꾹 다문 입귀에 불만의 빛이 내번졌다. 대륙을 짓밟으며 뛰여다니던 장쾌한 기분이 깨여져 서운했고 열정이 북받쳐 기염을 토하는 자리에서 범속한 늙은이들에게 하듯 휴식을 권고하는것이 못마땅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