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2


 
 

제 4 장

2

 

덕수궁너머로 내려앉은 해가 하늘중천을 감빛으로 물들이고있었다. 달리는 전차들에는 일요일임에도 사람들이 초만원이였다.

종로 뒤거리에 들어선 홍준걸은 요기나 하고 가려고 굽인돌이의 작은 음식점에 들렸다.

식탁이 5∼6개 놓여있는 홀에는 식사하는 손님이 한명뿐이였다.

머리에 초록리봉을 달고 반양장차림을 한 접대부가 나타나자 국밥 한 그릇만 청했다. 뒤거리를 지나가던 젊은이가 문을 열고 휑뎅그렁한 홀을 둘러보고 사라지자 식당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상우에 가져다놓은 음식은 보기에도 초라했다.

(벌이가 되지 않는 모양이군.)

속으로 그렇게 뇌이면서 천천히 그릇을 비웠다. 고래등같은 기와집들이 들어앉은 뒤거리에는 행인이 드물었다. 해가 저물고 황혼이 찾아들고있었다. 청계천을 건너 《혼마찌》에 들어서니 일본인들의 흐름이 제세상인듯 소란스러웠다.

전등불빛이 휘황하고 기름냄새가 흐르는 좁은 거리엔 황갈색 《국민복》을 입고 거드름스럽게 걸어가는 관리풍의 인물들보다 하오리에 게다를 끌고다니는 놈팽이들이 더 많다. 뒤잔등과 량앞섶에 천박한 문장이 찍힌 하오리를 걸치고 기모노 입은 녀인들을 낀 중대가리의 험상궂은 털보들이 술내를 풍기면서 휘청거린다.

령락한 《반도》의 민중들에겐 《긴박한 시국》에 대처하여 《내핍》과 《직멸봉공》을 강요하고 《근로보국》과 《국민훈련》에 악착같이 몰아세우면서도 바다를 건너온 저희 족속들에겐 관용을 베풀어 추태를 허용하는 생활풍경이고 침략자의 본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리였다.

홍준걸은 마네킹같은 녀인이 매대앞에 서있는 가게에서 술 두병과 과자, 사탕을 사들고 밖에 나섰다. 현란한 불빛아래 매대와 행객들이 색스러운 긴 거리를 지나기가 싫어서 뒤거리로 빠져 광화문통을 건너갔다.

대통로에서 썩 들어가 터전을 널직이 잡고 파유리를 박은 벽돌담장을 둘러친 일본식주택을 그는 잘 기억하고있었다.

삐여져나온 현관 이마에 달려있는 외등이 한적한 뜨락을 밝히고있었다. 대문옆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자 일본인 문지기가 나타나 홍준걸의 명함장을 받아들고 사라졌다.

퍼그나 지체해서야 대문안에 들어섰다. 주인은 하오리를 걸치고 현관에 나오더니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받았다.

《홍준걸이더라··· 무슨 일인가?》

《미우라님을 만나본지도 오래고··· 또 과장님으로 영전하신걸 늦게나마 축하하려고 왔습니다.》

《아- 무슨 그런 일루···》

하품이라도 할듯 시답지 않게 뇌이고나서 마지못해 덧붙였다.

《하여간··· 들어오게.》

《생명의 은인》은 고사하고 귀찮은 식객을 대하는듯 한 맞갖지 않아 하는 말투에 홍준걸은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미우라는 널직한 다다미방 한쪽에 차려놓은 옷장앞에 편안히 자리를 잡으면서 홍준걸의 손에 든 상등포장을 한 꾸레미를 일별하고 랭담하게 말했다.

《앉으라구.》

홍준걸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신색이 좋지 않은걸 보니 건강이 시원치 않은 모양입니다.》

주인은 쓰거운 웃음을 짓고 흥심없이 중얼거렸다.

《건강이야 뭐··· 그저 그렇지, 군은 아직도 거기서 일하는가? 무슨 학교였지···》

홍준걸은 은근히 반가왔다. 자기에 대해 뒤조사를 하지 않은것이 다행스러웠던것이다.

《예- 하는 일도 없는데 늘 바쁩니다.》

날씨며 도시생활에 대해 두루 건네는 이야기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홍준걸은 면도를 하지 않아 검스레해진 미우라의 상판이며 수심이 어린듯 한 검은 눈을 스쳐보고나서 어줍게 물었다.

《집에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긴것 같은데··· 전 가보겠습니다.》

그제사 미우라는 손님을 랭대한 자신을 깨달은듯 손을 들어 제지했다.

《상서롭지 않은 일이야 무슨··· 그냥 앉아있소. 앉으라니까.》

그리고는 미닫이를 열고 아래방에 내려가 몇마디 말하고 돌아왔다. 앞치마를 두른 하녀가 주안상을 차려놓자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안주인이 얼굴도 내밀지 않는걸 보고 홍준걸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더는 이 집에 나타나지 말아야겠군.)

좋은 술에 기분이 가벼워지자 주인이 호기있게 말했다.

《일이 바빠서 쉴새도 없단 말이야.》

《오늘도 쉬지 못한 모양이군요.···》

《쉬는게 다 뭔가!》

두어잔 더 마시고는 마음이 풀린 미우라가 속을 열었다.

《며칠후이면 다 알려지겠으니 비밀도 아니지.

총독각하가 만저우(만주)행차를 떠나는데 동행하게 되여 해야 할 일들이 밀렸거든···》

홍준걸은 호기심을 품고 미우라를 쳐다보았다.

《거 대단한 영광이군요. 총독각하와 동행하게 되였으니···》

《영광이야 무슨··· 동행이라 해도 난 경무국 일보러가는거니까.》

《아니, 총독부 경무국이 만저우까지 맡아봅니까?》

홍준걸이 순진한체 하면서 변죽을 올리자 미우라는 쓰겁게 웃었다.

《맡아보고 안 보고가 없어. 다같은 일본땅이니까.

조선안에서 움직이는 공산분자들을 색출하자니 그 뿌리가 뻗어있는 만저우쪽과 협력을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미우라는 빙긋이 웃었다. 만저우쪽과 협력도 해야지만 이번 걸음에 자기가 지엔다오(간도)지방에 파견한 밀정들도 만나보고 수확을 거두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여러해전에 함남도 농조사건관계자들을 검속하여 심문하는 과정에 드세고 견결해보였으나 실상은 의지박약자였던 신덕환이라는 자를 전향시켜 석방하고 그후 지엔다오지방에 파견했던것이다. 현지경찰과 련계를 가지면서 비밀조직을 꾸리고 유격대지휘부에 잠입할 과업을 주었는데 그동안 공작이 성과를 거두고있다는 통보를 받고 큰 기대를 걸고있는터이였다.

《조선안에 공산분자들이 아직도 있습니까?》

《더러있지. 하지만 두려운 존재는 아니야. 만저우쪽에서 흘러드는 자들이 문제지.》

홍준걸은 별반 관심이 없는듯 잔을 비우면서 부지런히 안주를 집었다.

《지금도 그런 자들이 있다는게 유감스럽구만요.》

《많지는 않지만··· 있어. 그러기에 우리는 조선사람들을 철저히 구별해서 취급한단 말이요. 우리 편인가, 적인가, 우리 편은 돌봐주구 적편은 가차없이 제껴치우지. 자네는 내가 믿는 사람이니 말하지만 사소한 일이라 해도 정부의 시책에 불만을 품는 자들은 용서를 받지 못해. 이런 점을 명심해서 일을 잘하게.》

《여부가 있습니까? 적은 힘이나마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려고 힘쓰고있습니다.···》

그러루한 이야기끝에 징용딱지가 떨어진 이야기를 했더니 미간을 찌프리고 듣다가 혼자소리처럼 뇌이는것이였다.

《부청 기획부에서 떨구었군. 군이 반일운동자들과 척을 진 일이 있는 모양이지···》

홍준걸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척 흘려보내면서 미타하게 여기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 학교에 새로 온 군사교관과 틀린 일이 있습니다. 그 교관은 학교뒤에 교련장을 새로 꾸리면서 뒤마당을 넓히려고 거기에 있는 오막살이 같은 주택을 철거시키라고 하는데 학교에는 집값을 치를만 한 자금이 없습니다.

그 일때문에 감정을 상한 교관이 저를 은근히 미워하더니··· 이런 봉변이 생겼습니다.》

미우라는 잠자코 듣고나서 말하는것이였다.

《징용딱지쯤은 돌려놓도록 하겠으니 이후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명심해서 일을 잘하게.》

홍준걸은 마음이 흥그러워져서 몇잔 더 들고 일어섰다. 미우라가 현관에까지 나와 바래워주는 바람에 마음이 푹 놓였다.

밤거리를 걸으면서도 미우라가 하던 말을 곰곰히 더듬어보았다.

반일운동자들과 척을 진 일이 있는 모양이라고 추리한것은 그런 경우에 징용장을 떨구는 자가 부청 해당 부서에 있다는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미우라 등 경찰이 그자를 감시하고있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는 서대석을 상기했으며 그 《대혁명가》와 련관되는 인물들이 일제의 관공청들에도 배겨있는것이라고 짐작했다.

생각에 잠겨 보도를 따라 걷다가 만리동끝에서 골목길에 들어섰다.

어둠속을 지나가면서도 스쳐지나가는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다음 골목으로 꺾어드는데 불쑥 복면한 자들이 막아서더니 몽둥이를 쳐들어 내리쳤다. 그는 재빨리 비켜섰으나 머리에 엇비듬히 된타격을 받고 널바자를 지치며 쓰러졌다. 또 하나의 몽둥이가 머리를 겨누고 날아드는 찰나 두 팔로 막으면서 발길로 힘껏 내질렀다.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괴한이 나딩굴고 손에서 몽둥이가 빠져나갔다.

웅성거리는 소음속에서 불빛이 비치고 누군가가 자기를 안아일으켰을 때에야 정신이 들었다. 하숙집주인이 그를 알아보고 집으로 업어가는것이였다. 피는 얼굴을 적시며 목깃으로 흘러들었다.

《병원으로 가야겠구만.》

집주인이 다급해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홍준걸은 눈을 감은채 나직이 말했다.

《심하지 않으니··· 일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요? 경찰에 알려야지.》

《강도를 만났는가?》

《뛰는걸 보니 젊은 녀석들이더군.》

집안에까지 따라들어온 사람들이 떠들어대자 그는 맥없이 손을 저었다.

《술먹고··· 싸웠습니다.》

사람들은 맹랑한듯 하나 둘 돌아가고 상처를 처치해준 집주인내외만이 곁에 앉아 탄식했다.

《점잖은 홍선생이 이렇게 싸우다니··· 거참 모를 일이군.》

홍준걸은 뼈를 어이는 아픔을 참으려고 지그시 이발을 악문채 더는 말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집주인에게 학교에 전화를 걸어 력사교원 김시형을 와달라고 부탁했다. 동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김시형이 올 때를 기다리면서 어제밤의 사건을 곰곰히 더듬었다.

기습자는 젊은 녀석들이였다. 서대석의 누이동생과 함께 왔던 대학생이 상기되였고 서대석이 제국대학 학생들속에서 비밀독서회를 운영한다던 김시형의 말도 떠올랐다.

렬차에서 있은 일로 사의를 표하려고 오라는 청에 응하지 않았더니 자기들의 비밀을 알고있는 사람을 그냥 둘수 없다고 인정하여 징용에 보내려고 손을 썼을것이다. 그리고는 자기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미우라네 집에 찾아간걸 알고 경찰의 밀정으로 치부했으리라- 하고 그는 추리했다.

차에서 내려 대합실을 나섰을 때 고마움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안타까와 하던 그 순진한 처녀가 결국은 이렇게 은혜를 갚았단말이지··· 물론 그의 오래비인 《대혁명가》가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조종했으리라 짐작했다.···

집안에 들어선 김시형은 머리가 터진 홍준걸의 모습에 놀라고 불안해하다가 설명을 듣고나서 괴한들이 떨구고 간 목검을 세심하게 살폈다. 손때묻은 칼자루에 새겨진 ㅁ자에 주의를 돌리더니 《제국대학 학생들의 군사교련용 목검이요. ㅁ자는 나라국자의 략자니까.》

하고 소견을 밝혔다.

《···》

《<대혁명가>인 서대석선생이 꾸민 모략이지. 그 사람 휘하의 특공대원들이 아마 <조선어학회>도 들부셨을거요! 야단이라니까···》

지근거리는 동통을 참으면서 김시형의 푸념을 듣는 홍준걸의 머리에 지난 늦가을 지엔다오산간의 바위굴밀영에서 만나뵈온 김일성동지의 영상이 우렷이 떠오르고 그이께서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히 울리는것이였다.

《···더군다나 서대석이 같은 사람은 일제의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으면서도 반일의 지조를 지켜왔는데 우리의 로선을 모르고 방해가 된다 해서 배척하거나 제거해버린다면 그 사람이 어디로 가며 그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소!》

어떻게 하면 사령관동지의 로선을 그에게 납득시키며 어떻게 하면 그를 그 로선의 지지자, 관철자로 만들겠는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가 드러날수 있다는 우려로 하여 거처를 비밀리에 옮겨야 했다. 홍준걸은 진작 아지트로 쓸만 한 주택을 보아둔곳이 있었으므로 그리로 옮길 작정이였다.

그는 김시형이 불러온 택시에 올라 입원한다는 구실을 대고 병원에까지 갔다. 병원에서부터는 김시형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서 새 비밀거처로 향했다.

비칠비칠 걸어가면서도 이처럼 복잡한 정황에서 활동을 계속할수 없게 된 자기 처지를 괴로와했다.

당장 활동할수 없는 사태를 보고하면 조선혁명의 앙양을 위해 무거운 중하를 한몸에 지니고 고심참담한 길을 걷고계시는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심려하시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터진 머리의 동통보다도 심장이 죄여드는듯 아팠다. 하지만 이 엄중한 사태를 보고하지 않을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