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9


 
 

제 3 장

9

 

두 사람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산속에서 불도 못피우고 밤을 지냈다.

적의 수색대가 사방 찾아다닐것이여서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는것이 오히려 불리했다. 게

대지에 가까와진 태양이 잔설로 얼룩져있는 갈색의 광야에 따뜻한 미소를 던지는 이른 봄의 어느날 김일성동지께서 대원들이 집결되여있는 원동의 훈련기지에 도착하시였다. 하바롭스크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신것이였다.

기지는 환희에 휩싸였다. 친솔부대에 있었던 성원들도 그이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만 들어오던 베이만(북만)의 지휘원, 대원들도 모두들 기쁨과 감격에 넘쳐있었다.

소부대를 이끌고 벌써 두달전부터 이곳에 와있던 오백룡은 그이를 만나 인사를 드렸을뿐 자기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보고드릴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지휘원들과 대원들에게 둘러싸여있었고 기지에 꾸려놓은 생활터전과 훈련시설들을 돌아보시느라 틈을 낼수가 없었던것이다.

지영갑소조도 오백룡소부대를 따라서 이곳에 와있었다.

만수툰에서 적의 경계가 증강되고 수색이 심해져서 난관을 겪던 지영갑은 오백룡소부대를 만나 그들이 사령부를 찾아 기지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따라섰던것이다. 지영갑은 여기까지 오는동안 눈에 덮인 씨비리의 설원이며 자동차를 타고지나는 촌락들과 도시들을 환희에 차서 바라보았었다.

학생시절부터 동경하여 마지 않던 나라, 로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여 새 생활을 건설하는 세상에 마음이 끌렸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김책이며 안길 등 지휘원들과 더불어 아무르강변의 수림속에 꾸려진 야영소를 돌아보시였다.

림춘추가 앞에 서서 일행을 안내했다. 사령부건물을 비롯하여 병실도 여러채였다. 통나무로 귀틀을 짠 건물이였으나 널판으로 칸을 막고 창문이 여러개씩 달린 높고 큰 집들이였다.

유격전을 하면서도 톱과 도끼, 자귀 등 쟁기들을 배낭에 늘 지고다니던 빨찌산대원들이 이곳에 도착하자 나무를 찍어 말리면서 재목을 다듬었고 선톱질로 널장도 켰으며 대장간을 꾸려 대패나 문돌쩌귀도 만들었던것이다.

널직하게 다진 마당에는 철봉이며 평행봉도 주런이 세우고 외나무다리며 바줄타기벽같은 장애물도 설치되여 있었다.

식당에서 초간히 떨어진 변두리에 통나무로 든든히 지은 돼지우리가 있는데 투실투실한 돼지새끼 세마리가 꿀꿀거리며 돌아쳤다. 림춘추는 웃으면서 돼지를 치기 시작한 경위를 설명했다.···

어느날 인적없는 밀림속을 백여리 강행군해간 대오가 숙영을 한 근처에서 연기가 오르는것을 보았다.

녀대원들 세명이 가까이 가니 수림속에 귀틀집이 몇채 보였다.

발볌발볌 그쪽으로 다가간 녀대원들은 희멀건 얼굴에 광대뼈가 두드러진 나나이족 사람들과 맞띄웠다. 저쪽에선 총멘 사람들을 보고 놀랐으나 이편이 녀자들이고 상글상글 웃는데 마음이 놓여 손을 들어 집안으로 청했다. 돌아설수도 없는 형편이여서 잠시 들려보기로 했다.

널직한 한칸방인데 바닥은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 일매지게 깔았고 구석엔 나무침상이 놓여있었다. 나무그릇, 질그릇들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침상밑에서 돼지새끼를 기르는것이 불결해보였다.

녀대원들이 돼지를 밖에서 든든하게 우리를 지어 길러야 한다고 손시늉을 하며 설명했더니 나중엔 그럴사하게 여기면서 고개짓을 했고 돌아오려고 하자 돼지새끼 세마리를 기어코 주는것이였다.

녀대원들은 마지못해 받아들고 그 답례로 새벽부터 따들고오던 보라버섯을 버들로 엮은 광주리에 쏟아주면서 먼저 먹어보이고 료리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초가을에도 새파랗게 돋아나는 맛이 좋은 그런 버섯이 그 밀림속에 많았다.

그것이 이 고장에 와서 외인들과 접촉한 처음이자 마지막상종이였다. 그뒤로는 지도에 밝혀져있지 않는 나나이족들의 부락쪽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병영에서 십리 떨어진 곳에 건설한 병원에까지 찾아가 입원해있는 환자들과 허약자들을 문병하시였다.

유격대에서 군의공작을 했던 병원원장은 환자들의 치료정형이며 후방사업실태, 쪽배를 무어 연어를 비롯한 각종의 물고기를 잡아 식탁이 풍성해진 실정 등을 자랑하는것이다.

그이께서는 못내 만족해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은 어느모로 보나 <보배>들이요. 일제와의 싸움에서 용감하고 견결할뿐더러 인민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요!

짧은 기간에 도끼나 자귀만으로 이렇게 훌륭한 병영과 시설들을 꾸렸으니 마음만 먹으면 못해내는 일이 없는 훌륭한 사람들이요.》

마음만 먹으면 못해내는 일이 없는 동지들에 대한 자랑과 긍지는 가슴에 넘치면서 어느덧 머리가 명석하고 재능이 출중할뿐더러 근면하고 성실한 조선사람, 조선민족에 대한 깊은 사색에로, 도탄에 빠진 겨레들에 대한 뜨거운 련민과 사랑으로 번져가는것이였다.

환희에 들끓는 명절같은 분위기는 이튿날에도 계속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령부로 꾸린 목조건물의 널직한 방에서 적정자료들을 연구하면서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구상하시였고 처음으로 만난 지휘원, 대원들과 담화도 하시였다.

김책은 사령부친솔대원들이 들어있는 병실에 들렸다가 고기가루를 넣은 수십개의 봉지에 대한 사연을 듣고는 감격했다. 그것은 사령관동지께서 노루를 잡아서 삶아놓고도 돌아오지 못한 대원들을 생각하여 매 사람의 이름을 적은 봉지에 넣어 건사하게 하신 음식봉지였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그 가루봉지를 받아든 오백룡소부대의 대원들은 그것을 귀중품처럼 배낭에 간직하고있었던것이다.

모여앉은 지휘원들과 대원들은 자기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에 대해 감격에 겨워 이야기했다.

사령관동지께서 기지로 오시는 로정에서 먼길을 에돌면서 오재영의 아버지를 만나신 사연을 들었을 때 김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오재영이 전사한데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책임을 느끼면서 비통해했었다. 하지만 자식들을 혁명에 바친 부모들의 처지와 심정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으며 그나마 날과 달이 흘러감에 따라 망각했었다.···

젊으신 장군님의 웅심깊은 사례, 뜨거운 인정에 새삼스럽게 머리가 숙어지는것이였다.

(과연 원대한 포부, 바다같은 도량, 열화같은 정을 지닌분이시다!) 하고 그는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병실안에 빼곡이 들어앉은 유격대원들을 둘러보고 격정을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동무들!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한가지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번에 하바롭스크에서는 두차례나 결렬되였던 세 나라 혁명군대들의 합동에 대한 문제가 우리 사령관동지의 높으신 안목과 넓은 도량에 의해 원만하게 타결될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투쟁과 활동을 통해 잘 알게 될것입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였으므로 방안은 물뿌린듯 정숙했다.

《···하바롭스크에서 회의와 관련되는 모든 일정이 끝나서 헤여지기전에 저는 그곳에 와있는 국제당대표와 담화를 했습니다. 심중한 사람이고 로숙한 투사인데 귀중한 조언을 줍디다.

요점을 말한다면 조선의 혁명가들은 행복하다.

탁월한 위인을 수령으로 모시고있다. 조국광복과 당건설, 민족통일전선운동을 결부시켜 추진하고있는 김일성동지의 사상은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하면서도 자주적이고 독창적이다.

폭이 넓고 명백하여 로동계급을 비롯한 전체 인민의 지지를 받을것이다.··· 나는 하바롭스크회의에서 제기된 문제들과 함께 조선에서의 당창건과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실태와 전망을 국제당뷰로에 제기하려고 한다.···

유럽에는 <교회당은 가까이 있을수록 커보이지만 사람은 가까이 있을수록 작아보인다.>는 격언이 있다. 그렇기때문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속에 위대한 인물이 있어도 그 당시에는 미처 몰라보는 경우가 있다.···

많은 국가의 민족지도자들을 잘 알고있는 나의 견해로서는 김일성동지는 젊은분이지만 희귀하게 보는 탁월한 령도자이다. 충심으로 받들어야 하고 충심으로 보위해야 한다.··· 이런 뜻이였습니다.》

김책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계속했다.

김일성장군님의 성망을 들은지는 오랬지만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뵙고 가까이 모시고지냈습니다. 그동안에 제가 느끼고 생각한것은 방금전에 말한 국제당대표의 견해에 꼭같습니다.

장군님을 모시고 지내는동안 저에게는 젊었을 때 천하의 지세를 잘 본다는 한 풍수로인을 따라 백두산에 올랐던 일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저 그 로인이 옛날 사람들이 말하던 기인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즈음 장군님을 가까이 모시고 지내면서 그이의 인품을 알게 될수록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향해 로인이 읊어가던 시구가 풍수설을 깊이 터득한 사람이 명산절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예감이고 예언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뚜렷해집니다.》

등잔불을 밝힌 방안에서 눈이 초롱초롱해진 유격대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나는 스무나문살 되던 때 지엔다오(간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학교선생으로 일했습니다. 어느해 여름, 보리마당질을 하던 무렵이였습니다.

하루는 학교로 쓰고있는 공회당에서 내가 책을 읽고있는데 총각녀석들이 찾아와서 최도사가 선생님을 만나보겠다고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합디다. 최도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몇해 건너 한번씩 마을에 나타나는 풍수인데 마음이 내키면 사람들의 관상도 보아주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말도 하지 않는 괴벽한 사람이라는겁니다. 나는 점쟁이 같은 사람들을 싫어하는 성미여서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이들뿐아니라 부형들까지 만나보라고 권하길래 할수 없이 따라갔습니다.

기왕에 훈장질하던 령감네 마당에 들어서면서 보니 방문을 열어놓은 그 집 웃방에 늙은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파뿌리처럼 흩어져내린 머리를 띠같은 베천으로 졸라매고 앉아 눈을 감은채 입속말로 뭔지 흥얼거리고있었습니다. 방안에 들어서면서 문안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했더니 눈을 뜨고 찬찬히 보는데 귀밀같이 작은 눈에서 칼끝같은 파란빛이 번쩍해서 속이 섬찍했습니다. 내가 그 령감을 우습게 여긴다는걸 알아챈것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총각녀석들이 날 보구 방에 들어가면 꿇어엎드려 절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습니다.

<마을어른들이 말하기를 네가 식자도 있고 포부도 있다는데 네가 과연 의리는 있는 놈이냐?> 하고 심문하듯이 묻길래 얼떨떨해졌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두 량심에 꺼리끼는 일이 없기에 버젓하게 대답했습니다.

<약조를 어긴 일이 없구. 믿음을 저버린적이 없습니다.>했더니 잠자쿠 나를 지켜보다가 말합디다.

<그렇다면 좁쌀 서말과 말린 솔잎을 가루내여 지고서 중복날까지 아무곳에 오너라.>

머리꼬리없는 황당한 말 같았지만 무슨 일이냐고 따질수도 없어 <그 고장에 가서 로인님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내 함자는 네가 알아 소용이 없고 백운도사라는 호를 물어서 알 사람이 없을것이니 떠돌아다니는 최풍수를 찾으면 되느니라->하고 대답합디다.

백운거사라는 고려때의 시성에 대해서는 알고있었지만 백운도사라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였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어느 고망년때 얘기같기두 하구 도깨비한데 홀리는것 같기두 했지만 방학이여서 당장 바쁜 일도 없기에 사흘길을 걸어 찾아갔습니다.

서울가서 김서방찾기로 골짜기를 넘어다니면서 최풍수를 찾다가 어느 산밑에 지어놓은 포수막에서 만났습니다.

최풍수는 세명의 포수들과 같이 있는데 훈장네 웃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래두 무슨 도사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산속 귀틀집앞에서 보니 빼빼마른 몸에 잠뱅이를 걸치구 짚신을 신은 모양이 볼품없는 촌령감이였습니다.

포수들은 이따금 짐승사냥을 하구 풍수는 나무를 주어다가 불을 때구 쌀을 씻어 밥두 짓습디다. 어느날 밤중에 일어나서 길을 떠났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대답두 안합디다. 포수들이 하는 말이 하늘에 있는 큰 못에 치성드리러 간다는것이였습니다. 황당한 소리라고 반박했더니 최풍수가 이때까지 거짓말을 한적은 없다는것이였습니다.

삼복철이라 홑바지에 적삼만 입구 걷는것두 더위에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밤에는 걷구 낮에는 자면서 닷새를 가다가 깎아지른듯 한 벼랑에서 물이 쏟아져내리는 계곡에 들어섰습니다. 퍼그나 올라가니 집채같은 돌바위밑에서 끓는 물이 펑펑 솟구쳐오르는 온천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최풍수가 시키는대로 온천물에 목욕을 했습니다. 성산에 오르기전에 목욕재계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이제부턴 어떤 짐승이든지 쏘아서는 안된다고 훈시합디다. 포수들은 총만 메고 가다가는 내가 진 쌀가루마대를 엇갈아 메여주군 했습니다. 최풍수는 범가죽을 납작하게 접어서 등에 지고 앞에서 걸어가는데 걸음발이 젊은이들 못지 않더군요. 자꾸 높은 곳으로만 오르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더위도 한결 가시여져 선선했습니다. 분비나무, 쇠스레나무들이 엉켜 자라는 산등성이를 넘어서니 뉘엿이 뻗어오른 비탈이 펼쳐지는데 듬성듬성 서있는 이깔나무들이 한결같이 가지를 한쪽으로 뻗고 허리를 구부린 형국이였습니다.

최풍수의 말이 그 나무들에도 다 성산수호신이 접해서 엎드려 절을 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포수들은 최풍수 모르게 빙글빙글 웃었습니다. 내 보기에두 나무들이 구부러진것은 기온이 차고 바람이 한쪽으로만 세차게 불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게 분명했지만 최풍수가 너무도 진중하게 설명하기때문에 믿는체 했습니다.···》

김책은 자기말이 너무 길어지는것 같아서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대원들은 모두가 흥미를 느끼는듯 잠자코 귀를 기울이면서 다음말을 기다리고있었다.

《나무도 변변하게 자라지 못하는 골짜기에서 마지막밤을 새웠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불타다 남은것 같은 산들쭉나무가 드문드문 자라구 범꼬리풀이랑 쌈싸 먹는 오이풀이 성글게 돋아있었습니다. 추워서 우등불을 피우고도 제대루 자기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요기를 하고 등성이를 넘으니 비탈이 끝나는 저편에 큰 봉우리가 거연하게 솟았는데 구름에 가리워 마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절초들이 엉성하게 돋아난 그 등판에두 집채같은 바위들이 박혀있어 우리는 그 바위를 의지삼아 바람을 피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최풍수는 앞에 솟은 봉우리를 향해 엎디여 절을 하면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최풍수가 치성드리는 모양이 우습기도 했지만 추위에 몸이 떨려서 거기에 마음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봉우리를 가리웠던 구름이 걷히자 최풍수를 따라 나무도 풀도 없는 급한 경사면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큰 종을 엎어놓은것 같은 그 봉우리가 백두산 상상봉이였습니다.

봉우리에 다 올라섰는데 불시에 바람이 불어치면서 구름이 해를 가리우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발앞은 한치도 가려볼수 없게 구름에 싸이고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데다 찬바람에 뼈속까지 얼어들어 덜덜 떨었습니다. 손을 뻗치고 더듬거리면서 나가다가 바위에 부딪치자 쭈그리고 앉아 최풍수를 찾았습니다. 바람이 불어칠 때마다 구름이 엉켰다 흩어졌다 하는데 최풍수는 앞에 꿇어엎디여 절을 하면서 입안의 소리루 무얼 자꾸 외우구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비바람이 그치지 않자 포수들은 우들우들 떨다가 날더러 산아래로 내려가자고 이끌었습니다. 비소리, 바람소리에 말이 들리지 않으니까 내 귀에 대고 <저 령감은 산신이 접해서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러다간 얼어죽는다.> 하면서 팔을 잡아끌었지만 나는 최풍수를 혼자 남겨두고 갈수 없어서 더 기다려보자고 우겼습니다. 내가 와들와들 떨면서도 움직이지 않으니 포수들도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얼어드는 몸을 녹이려고 비를 맞으며 껑충껑충 뜀뛰기만 했습니다.···

한식경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바람이 자고 구름이 흩어지더니 해가 내려비치고 앞이 확 틔였습니다. 그때에야 우리가 절벽끝에 서있는것를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과연 장관이였습니다! 거창하게 솟은 억센 암벽들로 수십리를 둘러싼 깎아지른 절벽밑에 바다같은 호수가 펼쳐져있었습니다.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호수의 수면은 주름살 하나없이 초록빛으로 신비스러운데 멀리 대안에 우중충하게 솟은 절벽의 검은 그늘이 드리워 숭엄하고 무시무시했습니다. 실안개가 감도는 발아래 벼랑에서 산제비들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가 돌멩이마냥 떨아져내리면서 휙-휙 바람을 일으키는 모양도 하늘나라 신선들이 사는곳을 련상시켰습니다.

젖은 범의 가죽을 걸치고 망연히 서있던 최풍수가 무릎을 꿇고 호수를 향해 절을 하자 뒤에 서있던 우리도 정성스럽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최풍수가 우습게 여기던 일들은 까맣게 잊고 숭엄하고 신비한 자연의 힘에 머리가 숙어져 경건하게 절을 했습니다.

치성을 마친 최풍수가 우툴두툴한 바위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우리도 따라갔습니다. 돌비늘이 반짝거리는 바위꼭대기에 올라서니 북쪽으로 멀리 해빛이 거울처럼 반사된 호수의 정경이 한눈에 안겨왔습니다. 최풍수는 한손을 가슴에 얹고 먼 하늘가를 바라보면서 신이 접한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경을 외우듯이 띠염띠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세상을 만들적에 지세를 몰아 여기에 조종의 산을 앉히고 뫼부리에 늪을 파서 바다에 통하게 하였느니라. 태봉의 웅자는 사해에 떨치고 산정의 용용수는 강토를 적시리니 이제 백두의 기상을 띠고 천지의 담력을 지닌 장수가 태여나면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강산에 백화가 만발하리라-》

···나는 최풍수를 우러러보았습니다.

흩어져내린 머리칼이며 수염이 가볍게 날리고 베천오리로 동여맨 이마는 해빛에 번쩍거렸습니다. 잔등에 걸친 범가죽이며 젖었던 무명적삼과 잠뱅이에서는 허연 김이 서려올라 마치도 구름속에 떠있는 신선같이 보였습니다.

포수들도 그랬지만 나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볼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백운도사가 틀림없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귀밀같은 눈을 감은듯이 내려뜨고 천지를 바라보는 로인의 얼굴엔 선망과 환희가 어려있었습니다. 나도 눈길을 돌려 천지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은근하게 놀랐습니다.

멀리 북쪽으로 물곬이 트인것 같은 좁은 목이 넓어지다가 동쪽기슭에 와서 둥실하게 구부러든 천지의 모양이 신통히도 사람의 심장같았습니다.

나는 백운도사가 읊조리던 말귀를 마음속으로 외웠습니다. 한구절 한구절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로인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그때도 로인에 대해 자상히 알고싶었지만 최풍수는 내려오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포수막에까지 와서는 쓰러져서 앓았습니다.

나는 로인의 병을 간호하면서 이것저것 시중을 들어주었으나 포수들이 자기네가 잘 돌봐줄테니 젊은이는 가보라고 극력 안심시키기에 하직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후 혁명에 참가하여 베이만(북만)에서 유격대를 무어 싸우면서도 그 로인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댔습니다. 그러다가 난후터우(남호두)군정간부회의후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많은 동무들이 베이만(북만)에 들어와 사령관동지께서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끄실 원대한 구상을 지니시고 백두산으로 진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수많은 애국자들과 명인지사들, 반일투사, 공산주의자들이 나라와 인민을 위해 일제를 반대하여 열혈지정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며 싸워왔지만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 반일항전에 조선인민을 하나로 묶어세울 담대한 포부!

그때 나는 최도사를 따라 백두산에 올랐던 일을 상기했습니다.

<백두산천지와 같은 담력과 포옹력을 지닌분이구나-> 하는 심정이였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해 생각하면 백두산이 떠오르고 백두산천지가 떠올랐으며 백두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김일성장군님이 떠올랐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나라 북변에 하늘을 찌를듯이 우뚝 솟아 사계절 흰눈을 이고 장엄하고 신성한 위용을 떨치면서 지맥을 삼천리에 뻗어 묘향산, 금강산, 한나산 같은 명산대천을 거느리고있으며 산아래로는 원시림이 천리수해를 이루어 나라의 지경을 억척같이 지켜선 천연요새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김책은 상념에 잠긴 그윽한 눈길로 둘러앉은 대원들의 머리너머로 어딘가를 아득히 바라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