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8


 
 

제 3 장

8

 

두 사람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산속에서 불도 못피우고 밤을 지냈다.

적의 수색대가 사방 찾아다닐것이여서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는것이 오히려 불리했다. 게다가 주민지대에 내려온 이상 공작을 더 진척시키기로 결심했던것이다. 이틀쯤 산속에 숨어지내다가 적들의 수색이 뜸해지면 장새촌 하촌에 숨어들어 박창술을 만날 작정이였다. 마을의 반일조직성원들을 통해 정미소주인의 정체를 더 알아봐야 했다. 또한 박창술의 도움을 받아 시내 지하조직과의 련계를 맺어야 했다.

오백룡소부대가 매몰해두었다는 식량에는 정미소주인의 정체를 밝히기까지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날이 밝아 해가 높이 떠오를 무렵에 도로건너편의 높은 산등성이에서 움직이는 적들을 보았다. 40여명의 적들이 일선형으로 늘어서서 산비탈을 오르더니 고개를 넘어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유격대를 찾고있는 모양이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두 사람은 한낮의 해볕이 포근한 산비탈에서 교대하여 휴식했다. 소나무들이 버성긴 그 비탈에는 뒤엉켜 자라던 관목들대신에 낫자루가 삐죽삐죽한 개암나무와 싸리그루터기가 촘촘했다.

《홍대포》가 자는동안 박중돈은 주변을 감시했다.

금실같은 해빛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니 눈덕이 자꾸 내려덮이였다.

박중돈은 몸을 놀려 졸음을 뿌리치면서 가까운데서부터 먼곳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시의 눈길을 돌리였다.

그늘이 퍼져가는 앞산 봉우리며 그 릉선너머로 뻗어간 도로쪽을 살피다가 돌아앉아 뒤산줄기를 찬찬히 여겨본 뒤에 담배한대를 붙여물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그에게는 해걸음이 너무 더딘것 같았다.

산릉선너머로 도로를 오래동안 살펴보고나서 다시 뒤산줄기들을 더듬어보던 그는 앞을 가리는 소나무가지를 쳐들고 움직이지 못했다. 해빛에 밝게 드러난 동남쪽산등을 넘어오는 총을 멘 한떼의 무리를 보았던것이다.

가슴이 세차게 방망이질했다.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빈후에 《홍대포》를 깨웠다.

코를 골던 대원은 시들하니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피발선 눈을 비비며 박중돈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고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어떡할가요?》

《가기요.》

박중돈은 한마디로 대답했으나 생각은 복잡했다. 적들이 고개하나를 넘어올 때까지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어느쪽으로 피할것인가. 산속으로 들어가자면 적들을 맞받아가다가 빠져나가야 한다. 그것은 모험이였다. 안전하게 멀리 피하자면 도로를 건너 저편산에 붙어야 하는데 행인들과 맞띄울수 있을뿐더러 산에까지 오르자면 시간이 걸릴것이다. 그래도 가능성은 그쪽에 있었다. 박중돈이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홍대포》가 말했다.

《벌판을 지나서 건너편 산에 붙읍시다.》

《그래, 나도 그 생각이요.》

배낭을 지고 일어섰다. 릉선을 타고내려가 마지막등성이에 오르기 시작했다.

등성이에서는 행길이 발아래 고대였다. 길은 텅비여있었다.

박중돈은 걸음을 다우치면서 말했다.

《위험고비는 넘겼소. 놈들이 여기까지 오기전에 우린 건너편산을 넘어설수 있소.》

도로까지는 이제 오륙십보, 거기를 건너 조금만 더 가면 비탈진 묵밭이다. 그때 큰길 웃쪽에 마차 한대가 나타났다.

《이거 야단이구만!》

걸어가면서 박중돈이 중얼거렸다. 행운이 미소를 던지던 계획이 한순간에 뒤집히고 두사람의 운명은 경각에 이르렀다. 그것은 절망의 나락이였다.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올리뛰기엔 때가 늦었다. 마차가 길없는 묵밭으로 추격해올수는 없다 해도 소동이 벌어질게고 《토벌대》놈들에게 알려질것은 뻔한 노릇이였다. 도로에 나서면서 마차쪽을 돌아보니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오고있었다.

《길을 따라 걷기요. 이렇게 된바엔 차라리 마차를 타고가기요. 까짓거!》

위급한 정황에 처하면 물러서지 않을뿐더러 맞받아나가는 박중돈의 성미그대로였다. 그는 벌써 품속에서 브로우닝을 꺼내 주머니속에 넣었다. 걸으면서 조금전에 넘어온 산등성이를 돌아봤으나 적들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마차가 그냥 지나가면 어쩝니까?》

따라오면서 《홍대포》가 묻는 소리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그때 봐서 ···건넌산에 붙어야지.》

등뒤에 마차소리가 가까와지자 박중돈은 길가에 멎어서서 손을 쳐들었다. 허나 마차는 멎어서기는 커녕 씽-하니 그들곁을 지나쳐버렸다. 마부의 일그러진 얼굴이 스쳐갔을뿐 안에 탄 사람은 볼수 없었다.

《저놈들이 무슨 낌새를 챈것 같습니다.》

《홍대포》의 말에 박중돈은 걸어가면서 대답했다.

《일없소. 단속하면 쏴제끼고··· 마차가 사라지면 건너편 산으로 뛰기요.》

마차는 속력을 늦추더니 길바닥에 멎어섰다. 그들이 가까이 가자 차문이 열렸다. 수달피모자를 쓰고 암회색외투를 입은 관리풍의 사나이가 내다보며 묻는다.

《무슨 사람들인가?》

《채벌장에 돈벌러갔던 사람들입니다.》

박중돈의 대답을 들으며 차림새를 훑어본 주인이 분부했다.

《타시오.》

그들이 타자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뒤의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자기들이 넘어온 산길을 내다본 박중돈은 초조해졌다.

《토벌대》들이 누렇게 덮여있었던것이다.

마차안에서 예리하게 지켜보던 주인이 물었다.

《무슨 사람들인가?》

박중돈이 주머니에 손을 찌르자 주인은 엄하게 질책했다.

《총을 쏘면 당신들이 무사할것 같소?》

마차의 앞장으로 장새촌이 바라보였다.

《당신들은 채벌군이 아니요. 당신들이 아까 내려온 길은 채벌장으로 통하지 않소.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마차를 장새촌에서 세우겠소.》

박중돈은 주인의 말투를 이상하게 여기면서 주머니에 손을 찌른채 대답했다.

《우리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혁명군입니다. 김일성장군님의 군사들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앞에 대고 소리쳤다.

《내처 몰게!》

달리던 마차는 마을 복판에서 멎었다. 자위단원이 총을 내지르며 앞에 나서고있었다.

《웬일인가?》

주인이 날카롭게 묻자 마부는 길건너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수비대들이 세우라고 한것 같쇠다.》

출입문에 붙은 유리창으로 내다보니 건너편 집앞에서 화물자동차 한대가 서있고 십여명의 수비대원들이 이쪽을 바라보는데 장교는 벌써 행길에 올라서서 오고있었다. 장교의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오고있는 외투를 입은 사민을 알아본 박중돈은 가슴이 뜨금했다. 밤새운 야경군마냥 검스레하게 꺼져든 눈시울밑에서 번뜩이는 눈이며 량볼에 면도자리가 푸르스레한 용모가 박창술이네 집에 들렸을 때의 그 사나이였다. 정미소주인 신덕환··· 주머니에 손을 찔러 권총을 틀어쥐면서 《홍대포》에게도 신호했다.

주인이 문고리를 잡고 그들을 제지시켰다.

《뒤에 바싹 붙어앉소.》

그리고는 마차문을 반쯤 열고 내다보며 류창한 일본말로 건넸다.

《기동수비대장인가··· 어떻게 여기와있소?》

《이 마을에 수상한자들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받고 새벽부터 나와있습니다. 지금 주변 산들을 수색하는 중입니다.》

《청장님도 나오셨는가?》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청장님을 만나거든 내가 <개척민>부락들을 다녀오더라고 전하게. 량식때문에 말썽들이 많아서 돌아보고오는 길일세.》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기동수비대장은 깍듯이 경례를 붙이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때 정미소주인이 그 옆을 지나 마차쪽으로 걸어왔다.

《선생님!》

박중돈이 불안해서 나직이 속삭였으나 마차주인은 미소로써 《이 사람은 일없어.》 하는 뜻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사람에게 반색하는것이였다.

《사장님, 정미소 일에 대해 말씀드릴게 있는데···》

신덕환이 중얼거리며서 마차문앞에 멎어섰을 때 차벽에 붙어앉은 박중돈은 짐짓 고개를 돌려 앞쪽을 내다보고있었다.

《내가 간이학교때문에 하촌에 나오겠으니 그때 만나 이야기 하세.》

하고 말한 주인이 문을 닫아버리자 마차는 떠났다.

(그자가 나를 알아보았을가? 아니 그럴수 없어.)

박중돈은 마음을 달래면서도 불안에 싸여있었다. 그는 마차의 뒤창으로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자가 밀정이라면 기동경찰대가 뒤따라올수도 있었던것이다. 허나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멀리 뒤에 두고 마차가 들길을 달릴 때 주인이 박중돈을 돌아봤다.

《당신이 입고있는 그 가죽외투는 어디서 얻었소?》

주인에 대해 감사와 존경을 품고있던 박중돈은 얼떠름해졌다.

《그건 어째서 물으십니까?》

《물건이 좋아보이고 마음에 들어서··· 실은 아까 그 가죽외투를 보고 마차를 세웠소.》

박중돈은 난처해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 선생님이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주었습니다. 은혜를 갚으려면 목숨도 아끼지 않겠습니다만 이 애양피외투만은 드릴수 없습니다.》

저쪽은 빙그레 웃고나서 말했다.

《나는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런 물품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알고싶어 물었소.》

말뜻을 리해한 박중돈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건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저에게 주신 은정깊은 귀중품입니다.》 하고 갈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감회가 새로와지는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난 초겨울에 장군님께서는 깊은 산속의 밀영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부상자들을 걱정하여 멀고 험한 길을 찾아오셨댔습니다.

부상자들의 형편을 일일히 알아보며 치료대책을 세워주시고 돌아가실 때 나라를 사랑하는 한 뜻있는 애국자가 선물로 보내준 귀중한 외투인데 상처자리에 동상을 입어서는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주시였습니다. 자신께서는 빛이 바랜 여름군복을 입고계시면서···》

주인은 입을 다물고있었으나 눈에는 그윽한 감개가 어리는것이였다.

살찐 말들은 고르롭게 편자를 울리고 쇠테를 두룬 마차바퀴는 얼어붙은 길바닥에서 덜컹거리며 굴러갔다.

해는 서산마루에 내려앉고 붉은 노을이 하늘가에 비껴있었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뜨리며 주인이 정중하게 물었다.

《장군님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오?》

《만저우(만주)의 넓은 전선을 끓임없이 헤치고 다니십니다.》

저쪽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묻지 않았다.

산굽이를 돌아가자 황혼이 내려앉은 들판저쪽에 시가가 바라보였다.

천천히 몰아가는 마차우에서 주인이 말했다.

《내가 크게 힘은 없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으니 도움받을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오.》

어조가 하도 친근해서 박중돈은 가슴이 뭉클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후에 선생님의 도움을 또 받겠습니다만 오늘은 저 갈림길에서 내리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나서 물었다.

《아까 장새촌에서 만났던 정미소주인과 가까운 사이입니까?》

《그렇다고 할수 있지. 정미소가 내 회사에 속했으니··· 한데 그건 왜 묻소?》

《그자는 수상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신덕환이? 그럴수 없소. 그렇지 않을거요!》

마차주인은 부정했으나 박중돈은 더 우기지 않고 조용히 계속했다.

《이제 마차가 시내에 들어서면 경찰이 단속하고 마차를 수색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사람을 태웠다고 사실대로 말씀해도 일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장새촌을 지나서 내리더라고만 하십시오. 하지만 검색을 당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자가 밀정이 아니거나 혹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에는··· 좌우간 조심하십시오. 우린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땅거미가 지고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두사람은 갈라져 간 도로를 따라가다가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방향을 바꾸어 시내쪽으로 향했다. 박중돈은 시내에 잠입할 계획이였으나 마차를 타고가는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밤중에 얼음이 다 풀리지 않은 차디찬 강물을 헤염쳐 건는다는것은 결사의 각오를 가져야 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였으나 공작의 안전을 위해서 그 길을 택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치는 어둠속을 걸어가면서 《홍대포》가 중얼거렸다.

《난 아까 산에서 내려왔을 때 도로에 마차가 나타난걸 보고 눈앞이 아찔해졌댔습니다. 만사가 끝장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 마차에 귀인이 타고올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정말 천만다행이였어.》

하고 박중돈이 공감했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줬지요.》

《홍대포》가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박중돈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다가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하늘이 도와준게 아니라 사령관동지께서 우릴 도와주셨소. 그 선생이 우리 사령관동지와 무슨 연고가 있는 사람 같더군,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요.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두 대원은 길에서 우연히 맞띄운 생면부지의 인물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들을 구원해준것이 우연일수 없으며 오로지 사령관동지의 높은 명망과 고결할 인품때문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자 김일성장군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싸우는 군대의 전사라는 자랑과 긍지로 하여 가슴이 뿌듯해지는것이였다.···

이날밤 두사람은 차다찬 강물을 건너 제방뚝밑에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자 철공소옆에 있는 단야공네 집에서 하숙하는 지하조직련락원과 접선했다. 시내형편을 료해하고나서 조직책임자인 조봉길과는 한식날 공동묘지골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시내를 빠져나왔다. 눈이 녹고 봄빛이 푸르러지는 계절부터는 유격대소부대와 시내의 지하조직이 협동하여 적극적인 투쟁을 벌리려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