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5


 
 

제 3 장

5

 

오백룡이 여덟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우두양산(오도양산)밀영에 도착했을 때 사령부는 그곳에 없었다.

차후행동방향에 대한 지시나 암시의 표적이라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헤쳐보다가 진대나무밑에 깊이 묻어둔 새로 지은 두툼한 겨울군복들을 발견하고 군복주머니에서 자기들 매 대원의 이름을 쓴 종이쪽지를 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져 숭엄한 생각에 잠겼다.

사령관동지께서 돌아오지 않는 자기들을 얼마나 안타까이 기다렸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곳을 떠나면서 자기들때문에 얼마나 심려하셨는가를 가슴이 저리게 느꼈던것이다.

그이께서 이곳에 사령부를 정하고 백두산 북부와 동북부일대에서 혁명적지반을 다지려고 하신 의도를 잘 알고있었던 오백룡은 사령부가 반드시 지엔다오(간도)지구의 어느 산속에 옮겨갔으리라고 추측했다.

하여 그는 대원들과 의논하고 여름에 대부대작전을 진행하던 때에 사령부가 자리잡았던 다오무거우(도목구)를 향해 떠났다.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며 이레를 행군하여 거기에 당도하니 이전날의 밀영자리엔 불타다 남은 통나무들이 눈속에서 엉성하게 드러나보일뿐 인적은 없었다.

눈오기전에도 눈이 온 후에도 《토벌대》들이 싸다닌 흔적이 어지럽게 눈에 띄였다. 무슨 다른 자취를 찾으려고 눈속을 헤치다가 얻어든 삐라장에는 고리타분한 문장으로 엮은 귀순권고문이며 어느 부대가 어디서 괴멸되였다는 등 유격대원들의 동요를 노린 상투적인 선전문이 찍혀있었다.

눈속을 행군하느라 지친 대원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앞에서 오백룡은 사령부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날 자기 결심을 밝혔다.

여름에 적의 수송대를 습격하고 로획품을 비장해둔 밀영이 있는데 사령부가 거기에 옮겨갔으리라고 생각했다. 몸을 녹이면서 푹 쉬고나서 다시 길을 떠났다. 오백룡은 열병을 앓고나서 몹시 쇠약해졌으나 앞에 서서 길을 내며 대원들을 고무했다.

《토벌대》들이 싸다닌 흔적이 력력한 산발을 타고 행군하던 그들이 저녁무렵에 수목이 무성한 산마루에 올라섰을 때 고개를 넘어 따라오고있는 적들이 눈에 띄였다. 철갑모와 총창이 해빛에 번들거리는 누런 행렬이 추격하고있었다.

그들은 산마루를 넘어서자 관목이 무성한 경사면을 꿰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산아래는 벼랑턱이였으나 오른쪽으로 비탈을 돌아서면 그 건너편에는 삼송림이 울창한 수림이 펼쳐져있었다. 저녁 그늘이 내리덮인 그 수림에만 들어서면 추격에서 벗어날수 있을것이였다. 그들은 팔뚝같은 넝쿨과 언나무가지들을 분지르고 헤치면서 필사의 힘으로 뛰였다. 적들은 그들이 넘어온 산마루에 올라서자 기관총을 휘둘러대며 위협하는 한편 투항하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경사면을 따라 쏟아져 내려왔다.

그들이 비탈에 붙으려고 할 때 앞에서 달리던 김철한이 돌따서 뛰여오며 소리치는것이였다.

《앞에두 적이 있소!》

오백룡은 비탈건너편의 삼송림에서 나오는 위장포를 쓴 적들을 보았다. (포위됐구나-) 하는 절망감에 심장이 얼어드는듯 했다.

《련대장동지, 결사전을 합시다.》

《피값을 합시다. 일없습니다.》

대원들은 보총을 꼬나들고 불이 펄펄이는 눈으로 오백룡을 쳐다보며 오히려 고무하는것이였다. 말이 없고 수더분하던 김철한의 얼굴에도 증오가 이글거렸다.

《피값을 합시다!》

《결사전을 합시다!》

다른 대원들도 호응했다.

오백룡은 자기 심장이 거칠게 뛰는것을 느끼지 못했다. 얼굴도 옷도 갈가리 찢기고 두손이 벌겋게 피로 물든 모습은 험상궂었으나 눈길을 드리우고 출로를 모색하는 표정은 엄숙했다. 죽음과 삶을 판가리하는 여유없는 순간이 초조하게 흐른뒤 오백룡은 눈길을 들면서

《안된다, 죽어서는 안된다. 살아서 싸워야 한다!》 하고 결심을 밝혔다.

《죽을수 없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는 돌따서서 오던 길을 내달렸다. 아까 관목덤불을 빠져나와 비탈에 붙을 때 아래쪽 낭떠러지를 스쳐보았었다. 정작 거기에 이르러보니 사태에 씻긴 벼랑은 바닥까지 까마득했다. 날새도 깃들기 어려운 이런 절벽으로 내려간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서 싸울 길은 이 길밖에 없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벼랑을 타고 내렸다. 타고 내렸다기보다 내리굴렀다. 바위턱에 찢기고 돌부리에 터지면서 바닥에 처박히자 몸은 피투성이 되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 주변을 살피니 벼랑굽이 여기저기에 동무들이 쓰러져있었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었다.

오백룡은 그들에게로 달려가 한사람한사람을 붙안아일으켜 바위굽에 은페시키고 벼랑우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추격하던 《토벌대》들이 벼랑턱에까지 밀려와 아래를 굽어보며 미친듯 총을 쏘아대면서도 내려올 엄두는 내지 못했다.

기관총소리, 보총소리들이 벼랑에 부딪쳐 찌렁찌렁 메아리치며 산판을 울리다가 한동안이 지나 즘즛해졌다.

유격대원들은 은페지에서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어두워진 하늘에 별이 가득해질 때까지 주변의 동정을 참을성있게 살폈다. 《토벌대》들이 어쩌면 멀리를 에돌아 벼랑밑에 나타날수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적들이 철수하였음을 확인한 오백룡은 대원들을 기다리게 하고 전령병 김철한을 데리고 골짜기 건너편의 높은 산봉우리에 올랐다.

지형을 알아보고 차후 행동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는 지금 총 한자루씩밖에 남은것이 없었다. 배낭도 천막도 취사도구도 약간의 비상용 량식도 수림속을 헤매고 벼랑을 굴러내리면서 잃어버렸던것이다.

무엇보다 식량이 있어야 했다. 별빛으로 방위를 판정하고보니 그들이 굴러내린 벼랑에서 시작되는 골짜기는 동남간으로 뻗어가고있었다.

사령부가 있으리라고 예상되는 밀영으로 가자면 산줄기를 타고 서북쪽으로 행군해야 하는데 눈덮인 산속에 들어서면 어디서 식량을 얻는단 말인가?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서니 멀리 들판쪽에 불빛이 가물거리는 마을들이 보였다. 오백룡은 그 마을들에 내려가서 식량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대는 사령관동지께서 군중지반을 다지려고 의도하신 지엔다오의 중심지대였다. 그러니 식량을 해결하면서 군중공작도 벌려야 한다. 짧은 시간에 충분한 공작을 벌릴수 없다 해도 주민들을 료해하면서 인연이라도 맺을수 있을것이였다. 혹시 시난차(서남차)의 촌장같은 좋은 사람을 만날수도 있지 않는가···

대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오니 그들은 벼랑밑의 웅덩진 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고있었다.

《련대장동지, 여기와서 불을 좀 쬐십시오.》

《철한동무, 이쪽에 오라구. 몸이 꽁꽁 얼었을텐데···》

자리를 내주면서 동지들을 생각하여 마음을 쓰는 모습들을 보면서 오백룡은 더욱 신심을 느꼈다.

불앞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나서 오백룡이 말했다.

《내 결심은 사령부를 찾아 목적했던 방향으로 가자는거요.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는 행군을 계속할수 없으므로 식량을 얻어서 기력을 회복해야겠소. 적들이 도처에 있으므로 산을 타고나가면서 고생할게 아니라 부락에 들어가 식량도 구하고 군중정치사업도 해야겠소. 우리는 어떤 역경속에서도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관철해야 한다는 혁명전사의 근본사명을 잊지 말아야 하오. 이렇게 행동하는데 다른 의견들은 없소?》

선뜻 대답하지들 못했다. 유격투쟁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열명도 안되는 성원으로 벌방지대의 마을에 들어간다는것이 납득되지 않았던것이다.

오백룡은 주저하는 대원들의 심정을 파악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난관이 중첩되고 역경에 처했다 해서 위축되여 주저앉을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맞받아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셨소.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정황에 부딪쳤소. 맞받아나갑시다!》

지휘관의 확고한 결심에 대원들은 힘을 얻었다.

길을 떠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두어시간 걸어서 산속을 빠져나왔다. 산간의 대도로에 행인들은 없었다. 시오리쯤 내려가니 초가집들이 엉성하게 널려있는 작은 부락이 있었다.

한산해보이는 부락인데다 불이 켜져있는 집이 보이지 않아 망설이고있는 때에 길 아래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가까와지는것이였다.

눈길을 굴러오는 수레바퀴소리가 끼익-끼익- 들렸다.

농촌사람들임을 짐작하고 떼거리지어다니는 사람들인체 했다.

앞에서 걸어가던 오백룡이 마주오는 사람들을 지나쳐놓고 돌아보며 물었다.

《려인숙이 있는 마을이 아직 멉니까?》

《이 아래 중촌에 가면 정미소주인네 객주집이 있는데 멀지 않수다.》

《지금 영업을 합데까?》

《불이 켜져있는걸 보니 하는게지요. 떠드는 소리두 들리구···》

《고맙소다-》

오백룡은 따라가는 달구지를 여겨보면서 두루걸이로 인사하고 지나쳤다.

다른 대원들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걸어갔다.

다시 얼마쯤 걸어가니 어둠속에 널려있는 부락이 나타나고 길가의 큰집에 불이 켜져있었다. 쌀 한짐씩 지고가재도 그렇고 마을에서의 영향력을 보아도 그렇고 돈냥이든 권세든 있는 사람을 찾으려했는데 마침이였다. 집모양을 보니 식당같은데 창문을 통해 일본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백룡은 대원들을 은페시키고 김철한과 함께 널직이 둘러친 울타리주위를 돌아본뒤 목조현관앞에서 주인을 찾았다. 방안에서 두런거리던 말소리가 끊기자 부엌문쪽에서

《누구요?》

하고 시답지 않게 되묻는 소리가 들렸다. 오백룡은 그쪽으로 걸어가서 태연하게 말했다.

《지나가던 나그넨데 저녁 한끼 먹읍시다.》

《없소. 다 끝났소!》

안에서 사나이가 귀찮은듯 대답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니 걸려있었다. 품속에서 싸창을 꺼내며 《전투준비!》를 신호하고 위엄있게 호령했다.

《주인 좀 나오우.》

부엌문을 왈칵 열고 중키의 사나이가 조끼바람으로 밖에 나서면서 사납게 물었다.

《도대체 누구요?》

앞에 선 사람을 쏘아보다가 손에 잡은 싸창을 보더니 와뜰 놀라며 굳어졌다.

《집안에 <토벌대>가 몇이나 있소?》

사나이는 주변을 살펴보고 목을 움츠리며 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무장한 군대가 열다섯입니다. 다른 집들에도 더러있고···》

오백룡은 옆에 있는 김철한에게 일렀다.

《전령병, 기관총대는 정면을 맡고 7련대는 집뒤를 둘러싸라고 전달하라. 신호총소리만 울리면 전부대가 집안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으라. 쥐새끼 한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게.》

《알았습니다.》

김철한은 눈치빠르게 대답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주인은 공포에 질려 말을 못하다가 정신을 차린듯 한손을 쳐들었다.

《쏘지 마시오. 가족들도 있는데··· 제가 들어가서 대장에게 말하겠으니··· 제발···》

오백룡은 대수롭지 않게 시켰다.

《빨리 들어가서 현관문을 여오. 유격대 2백명이 마을을 포위했으니 반항하는 기미만 보이면 한놈도 살려두지 않겠단다고 말하시오.》

주인을 따라 싸창을 뽑아든 대원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백룡은 다른 두 대원에게 경계임무를 주어 밖에 세워두고 현관에 들어섰다. 길다란 앉은상들을 벽쪽에 밀어놓고 웃동을 벗은 병정들이 방복판에 몰려있었다.

먼저 들어온 대원이 적들의 무장을 한구석에 모아놓고 격발기를 뽑고있었다. 오백룡은 적병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인을 향해 가재탕 열명분과 2백명분의 밥과 찬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주인은 고개를 숙이고 너덜너덜해진 오백룡의 바지가랭이를 여겨보다가 검은 눈을 슴벅거리면서 딱해하였다.

《가마때문에 그렇게 많은 밥을 당장 지을수는 없습니다.》

《좋소. 내가 나가보겠으니··· 당장은 지을수 있으리만큼 짓소.》

그렇게 말한 오백룡은 비로소 내의바람에 꿇어앉은 《토벌대》놈들에게로 돌아섰다.

《당신들은 조선사람이건 중국사람이건 일제의 개질을 하는것이 용서받을수 없는 반역행위라는걸 똑똑히 알아야 한다 ···》

일본장교놈도 꿇어엎디여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오백룡은 김철한을 불러 《토벌대》놈들의 옷을 벗겨 유격대원들의 옷과 바꾸어 입히라고 지시했다.

말귀를 알아들은 병정놈들이 옷을 벗기지 말아달라고 울부짖자 증오에 찬 눈길로 준절하게 오금박았다.

《너희놈들은 유격대를 <토벌>하여 사정없이 죽이지만 우리는 너희들을 포로로 여기고 살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놈들의 군복을 벗기 아쉬워한단 말이지?!···》

죽을가봐 겁을 먹은 놈들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부엌에서는 주인이 녀편네를 독촉하며 음식준비를 하느라 설레치고있었다. 오백룡은 그의 열성엔 전혀 무관심한듯 살림방으로 건너가자고 이끌었다.

널직한 방안에 가구들이 그쯘하게 놓여있었다.

《당신은 일본놈들에게 붙어서 잘 사는구만···》

오백룡이 웃으며 말했지만 주인은 이편의 의도가 리해되지 않는듯 미간에 그늘을 지으며 발명했다.

《아니올시다. 일본놈들에게 붙을 일도 없고 잘 살지도 못합니다. 남의 정미소를 맡아안고 근근히 살아갑니다. 벌이가 되지 않아 객주집을 차려놓았는데 칼찬 녀석들이 가고오며 다 처먹으니 남아나는게 없습니다···》

오백룡은 《칼찬 녀석》들에 대한 주인의 반감을 마음속에 치부해두고 다른 말부터 물었다.

《남이란건 누구요?》

《시내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고형근이라구··· 재산도 있는··· <개척민후원회>회장입니다.》

오백룡의 머리에 날카로운 눈길로 자기를 여겨보던 코수염을 갈라붙인 중년사나이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내색은 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개척민후원회> 회장이면 친일파겠구만.》

《친일파 같기도 하고··· 불쌍한 조선사람들을 도와준다는 평판들이 있는데··· 딱히 모르겠습니다.》

집주인은 눈길을 숙이고 조심스럽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요? 여기 오기전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했소?》 하고 오백룡은 천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고향은 함경남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북선기계제작소>에서 로동을 하면서 반일운동에 참가하여 좀 뛰여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공장에서 해고되고 반일운동도 흐리마리해져서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밥벌이나 하는 신셉니다.》

《반일운동이란건?》

《한때는 <신간회>에도 들었댔구 <적색로조>투쟁도 했습니다.》

《여기와서는 왜··· 반일투쟁을 안하오?》

《···》

주인은 노전을 깐 방바닥을 굽어보며 눈을 슴벅거릴뿐이였다.

《이 지방사람들의 생활형편은 어떻소?》

《아무데나 다 같지요. 소작료에, 공출에, 지세요, 호구세요, 도로세··· 그런데다 근년에는 <헌납금>이요 <위문금>이요··· 일본놈들이 등가죽을 벗겨내지요. 민심이 흉흉하고 반일감정이 울뚝울뚝합니다···

그런데다 조선에서 <개척민>들까지 밀려들어 특세를 부리려고 하니 억울하고 기막힌 일이 한두가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은··· 공부도 하고 반일투쟁까지 했다는 사람이 강건너 불보듯 한단 말이요!》

주인은 검스레한 눈시울밑에서 눈을 띠룩거리면서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이다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사이문을 열고 부엌을 향해 빨리빨리하라고 독촉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제자리에 와서 앉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아 나도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하다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반일조직 비슷한걸 무어놓았습니다만··· 그게 어디 헐한 일입니까! 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백룡은 은근히 기뻐하면서도 텁텁하게 말했다.

《줄을 따로 찾을게 있소? 우리하구 련계를 가집시다.》

주인은 천천히 허리를 펴더니 미심쩍은 눈으로 오백룡을 여겨보았다.

《말이 쉽지요··· 산에서 돌아다니는 당신들을 저희가 어디가서 찾습니까?》

《힘들게 찾아다닐것도 없소. 우리가 당신을 찾아올테니까!》

주인은 미덥지 않아하며 히죽이 웃었다.

《위험한 놀음입니다. 사방에 경찰의 눈과 귀가 배겨있는데···》

《그건 걱정마오. 우리가 서툴게 찾아다니진 않을테니. 혹 내가 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내 이름을 접선암호로 합시다. 나는 오백룡이라고 하오.》

주인은 이쪽을 치떠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들의 심정을 알아주고 지도해주겠다니 고맙습니다만···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메겠습니다. 오늘은 주변이 어수선해서···

···후에 다시 만나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오백룡이 그의 속심을 가늠하려는듯 찬찬히 여겨보자 눈길을 피하며 생각을 굴리더니 용단을 내린듯 중얼거렸다.

《좋습니다. 그럼···》

하면서 그는 조끼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은빛사슬에 달린 회중시계를 떼여 내놓았다.

《말은 미덥지 않으니 이 시계를 신표로 삼읍시다. 이걸 가지고오는 사람이면 유격대동지로 믿겠습니다.》

《좋소.》

오백룡이 그것을 받아들자 주인이 뜻있게 당부하는것이였다.

《저놈들앞에서 저를 혹독하게 다루어주십시오. 그래야 후에 의심을 사지 않습니다.》

오백룡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성함을 어떻게 부르오?》

《신덕환이라고 합니다.》

《신덕환이라- 기억해두겠소.》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소리를 높여 호령했다.

《우리가 식사를 하고 떠날 때 당신도 포로들과 같이 쌀짐을 지고 따라야 하오. 2백명이 닷새동안 먹을수 있는 쌀을 꾸려놓소···

쌀짐을 꾸려놓으라고 하지 않아, 알았는가?》

《예-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인은 겁을 먹고 설설기는 모습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백룡은 날새기전에 쌀짐을 지운 사람들을 앞세우고 서둘러 그 집을 나섰다.

마을을 멀리 벗어나서는 어제밤에 내려온 방향과는 반대편에 있는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다가 짐군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지고갈수 없는 쌀짐은 골짜기의 바위틈에 감추어놓고 행적을 혼란시키면서 행군을 계속했다.

산발을 타고 걷다나니 여드레만에야 목적한 밀영근처에 이르렀다.

눈에 덮인 비탈과 등성이에 《토벌대》가 싸다닌 자취가 얼기설기 고랑지고 우등불자리주변에는 오줌, 똥자리들이 어지러웠다.

산너머 오묘하게 들어앉은 분지에 밀영이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오백룡과 김철한뿐이였다. 그들은 로획품을 적지 않게 비장해둔 이 밀영에 사령부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토벌대》가 허탕치고 돌아간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발자욱을 메우면서 벼랑을 에돌아 릉선을 넘었다. 반토굴이 있는 산밑에까지 가도 인적기가 없었다. 한낮의 괴괴한 정적이 불안을 자아냈다.

산중턱에 올라섰으나 헐벗은 나무가지들에서 새소리만 들렸다.

비탈에 가리워진 반토굴집들에 문짝이 붙어있고 그앞으로 눈우에 오솔길이 나있었다. 모두들 바라보며 의아해하는판에

《손들엇!》

하는 벽력같은 웨침과 함께 량쪽에서 총을 든 사람들이 달려왔다. 오백룡이도 따라 온 대원들도 어리둥절해졌다.

《련대장동지-》

하고 부르짖으며 나서는 사람은 박중돈이였다. 그뒤로 리순정이며 다른 대원들이 달려나와 얼싸안고 돌아갔다.

오백룡소부대성원들이 입고있는 누런 일본군복이 오해를 일으켰던것이다.

《우린 적들인줄 알았습니다.》

《<토벌대>척후라고만 여겼다니까!》

추운줄도 모르고 떠들면서 상봉의 기쁨과 감격을 나누다가 훈훈한 반토굴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