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4


 
 

제 3 장

4

 

회의는 교외에 있는 울타리를 둘러친 자그마한 독립건물에서 진행되였다. 아담하게 꾸려진 크지 않은 방안에 국제당대표를 비롯하여 조선과 중국, 쏘련군 대표들이 널직이 둘러앉아있었다.

국제당뷰로의 위임을 받고온 반백의 베네그쎈이 첫 발언을 했다.

그는 동북아시아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공산주의적무장력들의 련합에 대한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것을 유감으로 여긴다면서 정세의 추이로 보아 더는 미룰수 없는 문제이므로 이번 회의에서 원만한 해결을 보기 위해 각군 대표들이 높은 리념에 기초하여 성의있게 노력해주기를 촉구했다.

쏘련군 대표인 류쎈꼬장령이 일어나서 자기 보고를 시작했다. 그는 세계정세와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국가간의 관계들을 상세히 분석하고 세 나라 혁명적무장력의 통합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련합형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자기 론거의 정당성을 정력적으로 피력했는데 요약하면 군대의 수량으로 보나 무장장비, 공급조건, 후방기지 등을 고려하여 조선과 중국의 혁명군들이 쏘련원동군에 편입되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통역을 통해 그의 보고를 들으면서 언젠가 숙소에 찾아왔던 크리멘이 하던 말을 상기하시였다. 그날저녁 크리멘은 회의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류쎈꼬장령의 주장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군부를 대표하는 견해이므로 이번 회의에서도 달라지지 않을것이라는 예측을 말했었다.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린 말이였지만 그것은 이번 회의의 성과적결속을 위해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중국군장들의 견해를 따를것이 아니라 류쎈꼬장령의 견해에 공감하여 중국동지들을 설복해주었으면··· 하는 암시였다.···

저우바오중(주보중)군장은 곧은 목우에 길쑴한 얼굴을 쳐들고 덤덤히 듣고있었다. 짐작하고있었다는듯한 그의 무표정한 눈길이 김일성동지의 부드러운 시선과 마주친 그 짧은 순간 《보시오. 내가 뭐랍디까! 쏘련사람들이 코대가 높다는걸 인젠 알았지요.》 하고 말하는듯 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를 들으면서 또다시 20년전 일인 원동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의 종말도 생각하시였다. 의분을 품고 궐기했던 그 애국지사들은 하늘을 찌를듯 한 무장부대의 기세를 믿고 일제의 무장력을 경시했으며 자기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구국투쟁의 터전을 마련한것이 아니라 남을 믿고 남의 힘에 의거하여 광복전쟁을 벌리려고 했었다.

그때의 열혈지사들은 조선의 구국용사들을 불러들였으나 온 나라 인민들을 반일전에 묶어세우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동북항일련군을 대표하여 저우바오중군장이 보고했다. 처음하는 소리가 아닌 자기 견해를 피력하는것이 마음싸지 않은듯 낮게 뜨직뜨직하게 시작했으나 본론에 들어가자 어쩔수 없이 격해지면서 말이 빨라졌고 때로는 길다란 손가락을 머리우에 내저으며 격한 심정을 드러냈다.

반일련합의 필요함과 절박함을 인정하고 희망하면서도 동북항일련군이 쏘련원동군에 편입되여야 한다는 론거에 대해서는 이전이나 다름없이 완강하게 반대했다.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받는 항일련군을 쏘련공산당이 령도하는 쏘련군대의 한개 변강군구에 편입한다는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며 또한 무장력들이 수행하는 투쟁목적에 비추어도 모순된다.

쏘련은 지금 원동에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라며 따라서 원동군은 일본의 침공을 견제하기 위해 왼심을 쓰고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지금 일본과 전쟁을 하고있으며 따라서 동북의 항일련군도 반일전쟁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고보면 우리 부대들을 쏘련의 원동군에 편입한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가당치 않으며 불합리하다.···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저우바오중은 한결 침착해지면서 계속했다.

《류쎈꼬동지는 자기보고에서 쏘련의 서쪽과 동쪽에서 파쑈국가들이 당장 쳐들어 올것처럼 말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된다면 원동군은 일본과의 전쟁상태에 들어갈것이고 항일련군이나 조선인민혁명군이 원동군에 편입되여 공동의 적을 치는것이 불합리하지 않을뿐더러 좋은 방도일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쏘일간에 전쟁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면 원동군에 편입된 중국이나 조선의 반일부대들은 쏘련군대의 빵을 축내면서 3년이건 5년이건 앉아서 기다리는수밖에 없습니다. 관내에서는 자기 동포들이 피를 흘리며 항일전을 벌리고있는데 일본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그 어디서보다 먼저 시작했으며 십년이나 피를 흘리며 싸워온 우리 동북의 혁명가들이 무장을 거두어지고 남의 나라 땅에 와서 구경이나 하고있으면 무슨 꼴이 됩니까! 그럴수는 없습니다.···》

저우바오중은 자기보고를 마치면서 이 문제에서는 추호의 양보도 있을수 없다는 립장을 재삼 밝혔다.

그의 보고가 끝났을 때 쏘련군대표들이 앉아있는 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류쎈꾜는 자기곁에 앉은 동료에게 몸을 기울이고 들으면서 탁상우에 놓은 문서장을 엇비듬히 굽어보고있었다.

입속말로 무엇인가 소곤거리던 장령이 일어나더니 류쎈꼬와는 전혀 다르게 실무적인 어조로 항일련군 일부 부대들에 무기와 장비들을 보장해줄데 대한 워이정민(위증민)의 요청을 설명했다. 그것은 국제당에 보낸 편지에서 인용한 자료인데 원동군사령부 일군들이 전적인 리해와 공감을 받았지만 수송조건이 불리한 사정으로 실현할수 없었다는것이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아도 항일련군부대들이 원동지구에 들어와 정상적인 보급을 받으면서 전투력강화에 노력하는것이 좋으리라는 견해였다.

통역이 그의 말을 다 번져놓기전부터 저우바오중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군장과 수군수군 말했다.

엄숙해지다가도 다시 술렁거리는 론의가 한낮이 지나도록 계속되다가 휴회에 들어갔다.

이튿날 회의를 시작하면서 반백이 희슥희슥한 국제당대표는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적인 련합을 이룩하기 위해 모든 대표들이 고상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에 기초해서 리해를 넓히고 의견상이를 극복하는 방향에서 건설적인 의견들을 많이 제기해달라고 절절하게 말했다.

엄숙한 분위기속에 김일성동지께서 천천히 일어서시였다. 친근감이 어린 시선으로 긴장하게 앉아있는 대표들을 둘러보시고 나직이 말씀을 떼시였다.

《우리는 혁명적인 련합을 이룩하기 위해 성심을 다하자는 국제당대표동지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확고한 국제주의련합을 이룩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것은 상반되는 견해의 본질을 명백하게 밝히고 각군 대표들의 본위주의적인 관점을 바로잡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선과 중국의 항일혁명군을 쏘련의 원동군에 편입하자는 의견에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우바오중동지가 정당하게 지적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견에 첨가하여 더 강조하고싶은것은 쏘련공산당이 당면과업으로 제기하고있는 사회주의건설로선과 조선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이 당면과업으로 내세우고있는 반제민족해방혁명의 성격이 다른데로부터 그러한 실무적련합이 불합리하다는것입니다.

당이 제시한 혁명로선에 근거하여 쏘련군대는 서부국경에서나 또 일본군과 대치되여있는 동부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있지만 조선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침략자를 반대하는 항전을 더 적극적으로 전개하려고 합니다.

우리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이 승리한 나라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면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중단하고 인민들의 고통을 방임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요구와 인민들의 지향을 외면하는 사대주의적이고 투항주의적인 배신행위로 될것입니다.》

류쎈꼬도 그옆에 앉아있는 쏘련군장령도 심중하게 듣고있었고 길쑴한 얼굴을 쳐들고 긴장하게 앉아있던 저우바오중의 눈에는 감동이 빛나고있었다. 그이의 말씀은 은근하면서도 무게있었고 론거가 너무도 뚜렷했으므로 다른 대표들도 모두 숙연한 표정들이였다.

김책은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앉아있었으나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감탄과 긍지가 내려깐 눈시울밑에 밝게 어리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지하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 이미 알고계시는분들도 있지만 여기에 모인 국제당이나 쏘련군대표동지들이 잘 아는 혁명가이기때문에 상기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전구에서 병고에 신음하는 워이정민동지를 만나보았습니다. 병세가 심해져서 산중밀영의 조건에서는 회복될 가망이 없었으므로 때마침 후송조건도 유리하기에 쏘련에 들어가서 병치료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워이정민동지는 일제의 대부대공세로 혁명대오가 역경에 처하고있는 때에 혁명의 지휘성원인 자기가 어떻게 병치료나 하고있겠는가 하면서 응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한 소생할 가망이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전장에서 떠나지 않겠다는것이였습니다. 우리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로서, 혁명가로서 그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물을 참으며 헤여졌습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갈앉은 속에 저우바오중은 지그시 눈을 감고있었다.

《동지들! 중병에 걸려 신음하면서도 싸움터에서 떠나지 못하는것이 혁명가의 심정이고 량심인데 일선에서 싸우던 혁명가들을 자기 나라 혁명에서 손을 떼고 남의 나라에 와서 정세를 관망이나 하라고 한다면 응하지 않을것입니다.

조선의 혁명가들이나 중국의 혁명가들이나 같은 립장이고 같은 심정입니다. 실무적인 련합은 그밖에도 여러가지로 불합리합니다.

가령, 군대의 구성과 교육에 대해 본다면 쏘련군대는 의무병력제에 의해 초모된 군인들로 전쟁승리를 위해 군사훈련을 기본강령으로 삼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인민혁명군은 투쟁에서 단련된 혁명가들로 이루어진 군대로 일제를 격멸할뿐아니라 광복된 조국에서 새 조선건설의 역군으로 되여야 할 사명을 지니고있기때문에 군사훈련과 함께 조선의 력사와 지리, 사회와 경제를 포함한 정치학습을 중시하는 교육강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쏘련군대는 전 교육강령의 15∼20%를 정치학습에 돌리고있지만 우리 군대는 교육강령의 50%를 정치학습에 돌려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연설을 계속하시였다.

《이처럼 실무적인 련합은 여러가지로 불리합니다. 털어놓고 말해서 쏘련동지들이 주장하는 원동군편입안에서는 민족리기주의냄새가 풍기고 대국주의냄새도 풍깁니다.

우리 세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형제적관계에서 혁명을 승리한 사회주의국가인 쏘련은 맏형격이고 큰집과 같은데 지금 겨우 식민지, 반식민지의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반제민족해방혁명을 하는 조선이나 중국을 쏘련이 도와줘야지 그 나라 혁명군을 자기 손에 걷어쥐자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건 공산주의자들의 아량있는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유있게 연설하시였고 쏘련군 대표들은 심각하게 굳어져있었다. 저우바오중은 주름살이 밀려오른 이마를 쳐들고있었으나 눈길은 어딘가 방바닥을 더듬고있었다.

자기의 격렬한 론조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온화하고 그러면서도 사태의 본질을 밝히고 드러내는데서는 그렇듯 예리하고 대담한 그이의 연설에 생각되는바가 많았던것이다.

김책은 깊은 감동에 싸여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큰분이시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고 만사를 편안하게 이끌어가시니···)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유있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기 모인 각군 대표들이 모두 제나름으로 자기들의 민족적리익과 편의만을 추구한다면 파쑈국가들의 도전에 대처하여 절실하게 필요한 련합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란 말은 공담으로 되여버릴것입니다.

혁명의 길에서는 정견과 신앙이 다른 사람들과도 통일전선을 도모하는데 공산주의자들이 큰 아량을 가지지 않고서야 자기의 리념을 어떻게 실현하겠습니까!

맑스는 <공산당선언>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전세계의 로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제창했는데 세계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한 오늘에 와서 공동의 적과 대결하고있는 세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단합하지 못한다면 세계적범위에서의 공산주의승리를 어떻게 제창할수 있겠습니까!

···우리 세 나라 공산주의적무장력들의 련합은 기필코 이루어져야 합니다.

쏘련동지들이 주장하는것과 같은 실무적인 통합이 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과 항일련군의 독자성이 보장되는 통합이여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어느 일방이 타방을 무시하거나 타방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통합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우리들 조선의 혁명가들은 만저우(만주)땅에서 중국혁명가들과 십년세월 공동투쟁을 하면서도 자기의 독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있습니다.

공동의 적인 일제를 때려부시면서 함께 싸우는 과정에 친혈육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되였습니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을 항일련군에 배속시키는것도 반대했지만 쏘련군대에 배속시키는것도 반대합니다.

그것은 형식이나 내용에서 우리의 독자성을 무시하는것으로 되기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의 적인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십여년이나 친형제처럼 어깨겯고 싸웠는데 어째서 같은 적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쏘련동지들과 어깨겯고 싸우지 못하겠습니까! 함께 싸울수 있으며 함께 싸우려고 합니다.

련합의 형식과 방법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각이한 나라들의 혁명군을 활동에서 독자성을 가지는 지대들로 편성하고 그 지대들을 국제련합군형식의 지휘체계에 망라시켜 군단 혹은 려단이라는 명칭을 붙일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련합을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문제들도 많고 련합의 형식과 방법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야 하겠지만 의견상이를 좁히고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우리 세 나라 혁명군은 련합하여 함께 싸워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보고를 마쳤을 때 회의장안은 숨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류쎈꼬장령은 육중한 몸을 의자등받이에 젖히고앉아 손가락짬에 끼운 연필을 무의미하게 뱅글뱅글 돌리고있는 품이 상부의 지시대로 주장할수 없게 되였음을 딱해하는듯 했다. 저우바오중은 길쑴한 얼굴을 쳐들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 격렬한 론쟁끝에 서먹하게들 헤여져 간 이전날의 회담을 돌이켜 보는상싶었다. 여전한 그 자세대로 움직임이 없이 앉아있는 김책의 뇌리에는 젊은 시절에 허룽(화룡)땅에서 만났던 한 기인이 떠올랐다. 반백의 머리가 파뿌리처럼 흩어진 그 로인을 따라 백두산에 올랐던 일이며 천지가 내려다보이고 백운이 흩날리는 절벽우에서 도사가 읊조리던 글귀가 귀에 쟁쟁하게 울려오는것이였다.

《···하여 백두의 기상을 지니고 천지의 담력을 지닌 위인이 태여나면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강토에 백화가 만발하리라.···》

한쪽팔굽을 책상우에 세우고 주먹으로 반백의 관자노리를 고인채 김일성동지의 의젓한 자태에 이끌리는 베네그쎈의 상념짙은 눈에는 따뜻한 정이 어려있었다. 그는 지금 회의의 결속을 알려야 할 자기 소임도 잊은듯 젊은 사령관을 경건하게 쳐다보면서 동방 조선의 창창한 앞날을 마음속으로 축복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에게 쏠리는 찬탄과 감동의 기분들에는 마음을 두지 않으면서 그윽한 눈길로 창문밖을 보고계시였다.

창문밖에 펼쳐진 눈덮인 대지를 바라보면서 엄동의 이 계절에도 국내와 만저우의 산과 들, 농촌과 도시에서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고있는 동지들, 소부대성원들이며 정치공작원들, 눈보라를 헤치며 사선을 헤쳐가는 사랑하는 전사들을 생각하시였다.···

이날저녁 숙소에는 활기가 넘치였다.

넓은 방안에 모여앉은 조선동지들은 감격과 환희에 휩싸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구석쪽에 자리를 잡고 배달된 정세자료를 보시다가도 어둠이 내려덮인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기군 하시였다.

밤이 들어 모두가 침실에 흩어져 간 뒤에 예상치 않게 김책이 나타났다. 솜외투의 깃을 여미며 방안에 들어선 그는 얼굴에 떠돌던 미소를 거두고 게면쩍어 하면서 늦은 시간에 찾아와 죄송하다고 인사부터 드렸다.

《어찌된 일입니까? 이런 시간에···》

김일성동지께서 다정하게 물으시자 어쩔수 없는듯 입을 열었다.

《지금 저쪽 숙소에서는 모두들 흥분해서 떠들고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큰 교훈을 찾았다면서 자기들을 대표하여 장군님을 축하해드리라고 떠밀었습니다.

나는 나대로 가슴이 너무 후련해서 장군님곁에 오고싶던터여서··· 이렇게 왔습니다. 오늘의 성과를 축하해서 장군님과 한잔 나누고싶었습니다.》

김책은 솜외투의 안주머니에서 품위있는 도자기병을 꺼내들었으나 어디에 놓지는 못했다. 그쪽을 일별한 김일성동지의 미소어렸던 표정에는 유감이 비꼈던것이다.

《중국동지들의 인사는 고맙습니다만 우리들로서는 축하를 보내고 받을만 한 일이 없습니다. 적들과 싸워 크게 이긴것도 아니고 혁명동지들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데··· 축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겸허하신 말씀에 김책은 감심했다.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가시며 그이께서 웃으시였다.

《들고왔던걸 가지고 돌아가서야 되겠습니까. 밤이 늦었는데 한잔씩 하고 여기서 쉬고 가십시오.》

《장군님, 고맙습니다. 사실은 저도 장군님곁에서 하루밤 같이 새우고싶었습니다.》

하고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위대한 인간을 조선혁명의 수령으로 모셨다는 크나큰 자랑과 긍지를 입밖에 내기가 거북해서 범상하게 말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모태주병을 받아들고 원탁우의 사기잔들에 부으시였다.

《혁명의 래일을 위해 함께 듭시다.》

잔들을 비우고나서 복도 건너편에 있는 침실로 갔다.

《이부자리는 하나지만··· 같이 덮고잡시다.》

《장군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며 소탈하게 말씀하시였다.

《전구에서는 가랑잎을 덮고 자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호강이지요.》

《···》

김책은 자기 심정에 맞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현명한 사람은 소박하다》는 경구가 떠올라 경건해지는것이였다. 널직한 침상에는 양탄자가 깔려있고 방안은 벽난로의 열기로 하여 훈훈했다. 하얀 당목을 덧씌운 덮개는 큼직했으나 깃털을 넣은 서양식베개는 하나뿐이였다.

김책은 베개를 장군님쪽에 밀어놓고 자기는 솜외투를 벗어 베고 누웠다. 장군님께서 전등을 끄고 자리에 들자 방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는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오후에 국제당대표의 요청으로 반백의 로투사와 마주앉았던 일을 상기하면서 과연 조선의 혁명가들은 행복하구나 하고 긍지에 넘쳐 생각했다.

눈앞에 삼삼하게 떠오르는 고통스럽던 지난날들을 더듬다가 높아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군님께서 잠들어 계시였다. 심려와 사색으로 피곤해진 하루의 활동에서 한때의 안식이 찾아든것이였다. 그이의 숨소리와 고르롭게 울리는듯 한 심장의 박동에 귀기울이던 김책의 가슴은 안도감으로 하여 평온했다.

행복에 취해 저도모르게 솔곳이 잠들었던 김책은 갈증을 느끼며 밤중에 눈을 떴다.

잠자리가 생소하여 곰곰히 생각하다가 손을 뻗쳐보고 아연해졌다. 장군님의 자리가 비여있었다. 이제 들어오시려니 하고 기다렸으나 복도도 이웃방들도 잠에 취한듯 고요했다. 천천히 일어나 전등을 켜고 둘러보다가 솜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복도에 나섰다. 새날에 잡히는 2시 반이였다.

현관을 나선 그는 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고 발을 옮겨디디며 서있는 보초병에게로 걸어갔다.

《장군님께서 어디가셨는지 모르오?》

로씨야병사는 말귀를 알아듣고 건물뒤로 펼쳐진 봇나무수림을 가리켜보이며 서툴게 번졌다.

《사령관동지··· 산책···》

김책은 불안하게 그쪽을 둘러보다가 바삐 걸어갔다. 달빛이 어린 수림은 인적없이 고요했다. 높이 자란 봇나무들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느라니 외투를 어깨에 걸친 그이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찬기운에 머리가 맑아진 김책은 론전이 심각하던 회의장을 그려보면서 자기가 너무 이르게 회의의 성과를 기뻐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아직도 남은 문제들이 있으니 주견이 센 두 대국 대표들과의 관계에서 장군님의 마음이 여전히 무거우리라는 생각에 걸음이 무거워졌다. 허나 그이께서 돌아서시는걸 보고는 그쪽으로 마주 걸어갔다.

《장군님, 어찌 이런 밤중에··· 저는 놀랐습니다.》

《내가 오히려 미안합니다. 김책동무가 잠도 제대로 못자게 해서···》

김책은 송구스러웠다.

《제가 때아니게 나타나서 사색을 방해하는게 아닌지···》

장군님께서는 쓸쓸하게 웃으시였다.

《아니요, 자다가 깨니 잠이 오지 않아서··· 누구하고든 가슴을 헤치고 이야기하고싶었습니다. 가끔있는 일입니다.》

《···》

김책은 비켜서서 길을 내여드리면서 따라나선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소부대활동과 관련되는 문제를 얼마나 더 토론하겠는지···》

혼자소리로 외우는 장군님의 말씀에 생각하던바를 털어놓았다.

《장군님, 제가 베이만(북만)에서 중국동지들과 같이 사업하면서 보니 저 사람들은 회의같은걸 시작하면 열흘이건 스무날이건 불궈놓고 이어대면서 제속을 다 채울 때까지 우려냅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수림속을 망연히 바라보며 말씀이 없으시였다. 김책은 하던 말을 보태였다.

《로씨야동지들도 우리더러 전쟁마당에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마음놓고 푹 쉬면서 회의를 계속하자고 합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더니 눈무지에 발을 내짚은 김책의 팔을 이끌어 길우에 올려세우고 한동안 서계시다가 말씀하시였다.

《김책동무, 나는 지금 이 수림속을 걸으면서 우리 동지들이 싸우고있는 전구를 생각합니다. 소부대들과 지하공작원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샤오하얼(소할바령)회의 방침을 관철하자면 동지들의 전투정형을 료해하고 더 많은 소부대와 소조들을 넓은 전선에 파견해야겠는데 여기서 세월을 보내자니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인민들을 반일전선에 묶어세우자면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편안히 잠을 자고 휴식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가슴에 안고사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가슴이 뜨거워진 김책은 고개를 숙이고있을뿐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