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3


 
 

제 3 장

3

 

눈보라를 일으키며 북풍이 불었다.

국제당 대표가 자리잡은 2층집 주변에서도 눈보라가 휘말려올라 창문밖에서 회오리쳤다.

원탁둘레에는 네사람이 앉아있었다. 인사차로 이곳을 방문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당집행뷰로의 한 성원인 베네그쎈과 마주앉아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반일무장투쟁과 당창건준비정형에 대해 통보하시였다.

반백이 희슥희슥한 베네그쎈은 옆에 앉은 김책이나 통역관쪽은 돌아보는 일없이 눈길을 들어 이쪽을 여겨보면서 침착하게 듣고있었다. 진지한 그 표정은 (김일성동지가 이렇게도 젊으신분이였단말인가!) 하고 은근히 놀라면서 더욱 관심을 돌리는듯 했다. 했으나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추호도 나타내지 않으려는듯 줄곧 입을 다물고있었다.

직책에 의한 존엄을 지켜서인지, 심각한 의견대립과 론쟁이 예견되는 혁명군대표들의 회의를 공명정대하게 이끌어가야 할 무거운 책임감때문인지 손님들이 방안에 들어설 때부터 정중하고 례절겹게 처신하면서 필요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전날 쏘련의 원동군대표인 류쎈꼬장령을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장대한 체구에 벙글벙글 웃는 모습이 벌써 소탈해보이는 류쎈꼬장령은 문밖에 나와 기다리다가 두팔을 쩍 벌리고 다가오더니 김일성동지의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면서 격정을 터쳤었다.

《이름높은 조선빨찌산 대장을 만나기가 헐치 않습니다그려. 반갑습니다. 대단히 반갑습니다. 우리 허심하게 얘기해봅시다.》

장령은 김일성동지를 이끌어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히고 차를 들겠는가 커피를 들겠는가 친절하게 물었으며 숙소에서 불편한 점이 없는가, 요구되는것은 무엇이든 거기있는 경비장교를 통해 알리라는 등 세심하게 관심해주었었다. 회의의 목적과 취지 등을 알려주면서 쏘련측의 립장을 밝혔고 헤여지기전엔 웃으면서 국제정세에 대해 많이 토론해보자고 말했다.

《중국사람들이 속이 깊다더니··· 과연 저우바오중(주보중)동지도 보통이 아닙니다. 물론 김일성동지가 우리보다 더 잘 알겠지요.

자기 나라 전쟁만을 중시하면서 히틀러의 쏘련침공이 박두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얼굴을 돌리지 않더란 말입니다.···

물론 중일전쟁도 큰 관심사지요.···》

그것은 쏘련측의 립장을 은근히 나타내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베네그쎈은 공식적인 말이외에는 아무런 견해도 감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회견은 극히 실무적이였고 그러한 분위기로 하여 방안도 한결 써늘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책이 베네그쎈을 념두에 두고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아주 심중하고 로숙한분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선선히 공감하시였다.

《국제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녁이면 숙소에 동지들이 찾아와 국제정세며 쏘련의 경제건설 형편, 혁명투쟁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간도의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를 두번이나 찾아왔던 국제주의투사인 크리멘은 첫날의 감격적인 상봉이 있는 후로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군 했다.

마쟈르의 이 열정적인 공산당원은 올적마다 조선총독부의 어용신문인 《매일신보》와 만저우(만주)국의 《만선일보》를 비롯한 출판물들을 꼭꼭 가지고왔다. 적구에 있는 사령부에 찾아갔을적마다 밀영의 천막안에서 신문잡지들을 무드기 쌓아놓고 정세를 연구하시던 김일성동지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저우바오중의 숙소에 가신 날은 겨울치고는 드물게 따뜻한 바람없이 개인 날이였다. 같은 설계에 의하여 건설된듯 한 별장식단층주택의 넓은 뜨락에 김책과 함께 나온 저우바오중은 그이의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반가와했다.

《찾아가려고 했는데 김사령이 분망하다기에··· 몹시 기다렸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이젠 상처자리가 일없습니까?》

그이의 인사에 저우바오중은 오래전의 일이 떠올라 빙긋이 웃었다.

《건강합니다. 상처자리도 후환이 없고.··· 어서 들어갑시다. 날씨는 좋지만 그래도 씨비리의 겨울이 아닙니까!》

씨비리의 겨울이라는 말을 하면서 저우바오중이 마음싸지 않은듯 도리를 떨었을 때 그것이 비단 날씨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님을 느끼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방안에 들어와 응접탁을 사이두고 앉았을 때 저우바오중은 놀라운듯 고개를 기웃하고 김책을 돌아보며 말했다.

《김사령은 지금껏 내 상처자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어느 옛적 일인데···》

김책은 그 연고를 알지 못했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였다.

《오랜 옛적도 아니고 7년전의 일입니다.》

《7년이면 긴 세월이지요.》

저우바오중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자 그이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방금전에 뜨락에 들어서면서 저우바오중동지가 서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베이만(북만)에 처음 원정해서 라오예링(로야령)너머의 눈덮인 산막에 찾아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우바오중동지가 지팽이를 짚고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골짜기아래에서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박격포탄에 부상당한 다리가 낫지 않아 고생했지요.》

저우바오중은 감격해마지 않았다.

《옳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닝안(녕안)유격대를 창건한 직후였지요. 갖가지 이름을 가진 무장부대들이 싸다니면서 반일은 똑똑히 하지 않고 서로 덮치고 쫓으면서··· 소란스러웠지요. 그래서 내가 김사령에게 련락을 띄워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던겁니다.》

《우리는 그후 동만에 와서 저우바오중동지가 닝안반일유격대를 기간으로 동북인민혁명군 5군을 건설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군장동지를 축복했습니다.》

《고마운 말씀! 그게 다 김사령이 동만유격대를 이끌고와서 터를 닦아준 덕분이지요.》

오래전 일이지만 저우바오중은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것이였다.

《우리가 터를 닦아주었다기보다 그 고장 인민들의 반일의식이 높아진 결과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렇게 대답하시고나서 인사말이 예상치 않은 곬으로 흘러든것을 유감스러워하시며 화제를 돌리시였다.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 저우바오중동지에게는 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초가을에 먼곳에 있는 산중밀영에 가서 워이정민(위증민)동지를 만났었는데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저우바오중은 이마에 주름이 가득해져서 아무말도 못했다.

《밀영조건에서는 회복시키기 어려울것 같아서 쏘련에 들어가 병치료를 받아야겠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무렵에 기지로 들어오는 대오가 있어서 후송에도 유리한 조건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워이정민동지는 혁명을 줴버리고 병치료를 하지 못하겠다면서 응하지 않았습니다.》

《···》

《워이정민동지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기와서 지내면서도 위병과 심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을 소망하고있지만 병이 무거워져서 약으로 다스려내겠는지···》

저우바오중은 괴로움이 층층 어린 커다란 눈을 들고 어딘가를 망연히 바라보고있다가 애수에 젖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사령이 이전부터 워이정민동지의 병을 고쳐주려고 여러가지로 고심한다는 말을 들어오면서도 나는 같은 중국의 혁명가로서 오늘날까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괴로움을 털어놓고나서도 가슴이 쓰려 오래도록 말이 없던 저우바오중은 누구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나직이 준절하게 타매했다.

《보시오. 우리 혁명가들이 중병에 걸려 신음하면서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전투지역에서 왕성한 전투력을 가진 혁명군부대들을 철수시켜 자기네 지휘체계안에 묶어두려고 하니 그게 무슨 공산주의자들이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인가 말이요. 대국주의이고 민족리기주의이지. 눈감고 아웅- 하는 격이란 말입니다.》

자기의 의분에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자 저우바오중은 김일성동지를 건너다보며 짐짓 누그러진 어조로 물었다.

《김사령, 그새 여기 주인들을 만나보았습니까?》

《어제까지 여러계통의 인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좀 타진해보았습니까? 이 사람들의 립장을 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선선히 대답하시였다.

《타진할것도 없습니다. 립장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저우바오중은 무엇인가를 망설이듯 한동안 생각을 더듬다가 심중하게 물었다.

《그러니 김사령의 립장은··· 쏘련편입니까 우리 편입니까?》

물음이 심각하게 제기되는 바람에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유있게 웃으시다가 안락의자우에 편안히 자리잡으면서 진지하게 말씀하시였다.

《어째서 우리가 꼭 누구의 편이 돼야 합니까!

우리는 이쪽편도 저쪽편도 아니고 조선인민의 편입니다.》

옆에 앉아 눈길을 숙이고 긴장하게 듣고있던 김책이 고개를 들고 경건하게 우러러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여전히 저우바오중을 향해 침착하게 말씀하시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만저우(만주)에서 일제를 반대하여 중국동지들과 한편이 되여 어깨곁고 싸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사람들과는 누구를 막론하고 한편이 되여 어깨곁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쏘련은 지금 일본과 싸우지 않을뿐더러 싸움이 터질가봐 우려하고있습니다.》

저우바오중의 말에 김일성동지께서 침착하게 해명을 가하시였다.

《우려를 하면서도 싸움준비는 합니다. 오늘은 쏘일간에 전쟁이 없지만 래일에는 전쟁이 있을것입니다. 국가들의 계급적기초로 보아도 그렇지만 로씨야와 일본간에는 로일전쟁으로 하여 더욱 격화된 력사적으로 내려오는 알륵과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세 나라 군대는 반일련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우바오중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구부정하니 앉아있다가 흥분을 누를 길이 없는듯 일어서서 방안을 거닐었다. 방끝까지 갔다가 뚜벅뚜벅 돌아와 열이 올라 말하는것이였다.

《지금 쏘련동무들은 자기 나라의 서쪽과 동쪽에서 히틀러와 일본이 당장 쳐들어올것처럼 정세를 평가하면서 원동에서의 3군련합을 조속히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즉 정세가 급박한만큼 동북의 반일무장력들이 원동군에 합류되여야 한다는것입니다.

김사령도 아마 최근 국제정세를 많이 연구하셨을겁니다. 두달전에 진행된 몰로또브, 히틀러회담에 관한 통신도 보셨겠지요?···

쏘련동무들은 그 회담을 히틀러가 영국과의 전쟁을 진행하면서 당면한 쏘련침공준비를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얻으려는 책략으로 보고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히틀러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쏘련을 견제하는 외교적책략으로 봅니다.

히틀러는 당장 쏘련을 공격하지 못할겁니다. 영국본토상륙을 단념한 히틀러는 한달전부터 무력을 지중해쪽으로 돌려 발칸반도와 아프리카북부에 진출시키고있습니다. 마치도 동맹국인 이딸리아가 실패한 유고슬라비아공격을 도와주는척 하지만 사실은 그 지역을 타고앉아 지중해에서 영국세력을 구축하고 식민지들과의 련계를 차단하면서 다른 방면으로부터 영국의 목을 조이려는 전략일겁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이 쏘만국경에 무력을 집중하는건 사실이지만 남방에 더 눈독을 들이고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장기화되는 중일전쟁에서 숨을 돌리려고 난징(남경)에 왕정위괴뢰정권을 세워놓고 중국사람들끼리 싸우게 하면서 장제스(장개석)원조통로를 차단하는 명목으로 정예군단들을 남방에 진출시키고있습니다. 남중국방면에 대기하던 25군을 프랑스령 동남아시아반도의 북부에 강압진주시킨것은 결코 장제스원조통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만이 아닐것입니다. 일본군은 미구에 동남아시아반도의 남부에 틀고앉을겁니다.

일본은 지금 광석과 석유, 고무 등 전략물자가 절실히 필요한데 그 모든것이 바로 눈앞인 서남태평양상에 무진장 널려있습니다.

일본군이 지금 무장장비의 현대화에서 해군을 앞에 내세우는것도 까닭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방을 공격하면 동시에 북방에 전선을 펴기는 어려울것입니다.···》

저우바오중은 다시 방안을 끝까지 걸어갔다가 제자리에 돌아와 요점을 강조하려는듯 한손을 쳐들어보이면서 아퀴를 지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원동군의 지휘체계에 속한다면 인민들이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데 팔짱을 끼고앉아 전쟁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아까 워이정민동지 이야기도 나왔지만 진정한 투사들은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도 결전장을 떠나지 못하는데··· 팔짱을 끼고앉아있는다는게 말이 됩니까!》

김일성동지께서도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해빛이 쏟아져드는 창문밖을 한동안 내다보시다가 이쪽으로 돌아서서 엄숙하게 말씀하시였다.

《팔짱을 끼고앉아있을수는 없습니다. 그렇게는 되지 않을겁니다. 그럴수는 없습니다.》

《허어, 김일성동지는 아직 쏘련동무들과 마주서보지 못했지요!》

저우바오중은 뜻있게 웃고나서 고개를 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거기엔 마음을 쓰지 않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주동지의 견해에 공감되는바가 많지만 히틀러가 당장은 쏘련을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견해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침공이 박두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동지는 히틀러가 지난 12월부터 공격의 예봉을 지중해로 돌려 발칸반도에 침입한것이 영국을 종국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한 <동성서격>의 전략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견해를 달리합니다.

히틀러는 유고와 그리스공격에서 실패한 이딸리아를 돕기 위해 발칸반도에 진격한것처럼 떠들었지만 그것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동성서격>의 전략인것이 아니라 그런 연막을 치면서 발칸반도를 장악함으로써 사실은 대쏘공격의 측면을 보장하기 위한 방대한 무력이동을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감쪽같이 해치운 셈입니다. 이를테면 세수를 내다본 흉책을 쓴셈이지요.》

저우바오중은 뚜벅뚜벅 제자리에 가서 구부리고앉더니 손바닥으로 관자노리를 엇비듬히 고이고 자기로서는 꿰뚫어보지도, 상상도 못했던 거창한 책략의 진상을 헤아려보는것이였다.

김책도 그이의 예지에 크게 깨달아지는바가 있어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심각하게 주의를 집중하고있었다.

《··· 그러고보면 얼마전에 있은 몰로또브와의 회담에서 히틀러가 핀란드에 자기 군대를 들이민것은 대쏘공격을 준비하는척 하면서 노르웨이를 거쳐 영국을 결정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책략인듯이 설명했지만 사실은 쏘련의 눈앞에서 대쏘공격을 위한 무력을 이동한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쏘련을 <3국추축동맹>에 가입하라고 권고한것이며 자기는 지금 영국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는데 모든것을 다 바치고있다고 엄살을 부린것 등이 다 대쏘공격을 위한 모략에 지나지 않을것입니다.

히틀러는 광신자지만 한편 당돌하고 파렴치한 야심가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동성서격>의 책략을 쓰는척 하지만 사실은 <서전동화>의 계략을 쓰면서 대쏘침공의 속심을 가리우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옮겨 자리에 가서 앉아 웃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북쪽에 무력을 증강하면서 남방도 노리고있으며 남방에서 포문을 여는 경우에 북쪽에서는 쏘련을 외교적으로 견제하리라는것도 근거있는 추측입니다. 그렇지만 깜찍한 일본놈들은 큰놈을 업고 제속을 차리는데 이골이 나서 히틀러의 전격전이 쏘련을 꺾을수 있는 경지에 가면 북쪽에서도 동시에 포문을 열어 씨비리에 진격하리라는것도 예상해야 합니다.

이러한 제반 조건으로 보아 쏘련이 국방문제에 최대의 신경을 쓰는것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 두 나라 무장력을 자기들의 통솔하에 넣으려는 시도도 리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남의 지휘봉에 따라 팔짱을 끼고앉아있을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것입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뒤에 저우바오중이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면서 그이를 건너다 보았다.

《그래서는 안되고 그럴수 없다는건 엄연한 진리이지만 쏘련동무들이 그런말을 듣습니까? 무기와 장비, 후방물자를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어떻게나 끌어넣으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련합을 이룬다 해도 독자성을 잃을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물론 련합도 이루어야 합니다.》

저우바오중은 허허 웃었다. 마음싸지 않아 하는 웃음이였다.

《이것도 저것도 다 얻겠다고 하니 김사령은 역시 락관주의자입니다!》

그이께서도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물론 나는 락관주의자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이것도 저것도 다 우리 혁명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다 얻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왔습니다.···》

부드럽게 말씀을 맺으시다가 두사람을 돌아보고 여전히 웃으며 덧붙이시였다.

《인사하러왔는데 토론회에 참가한것 같습니다.》

저우바오중도 김책도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따라 웃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떠나가실 때 자동차곁에서 김책이 한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장군님, 대쏘침공을 위한 히틀러군의 익측보장책략에 대한 장군님의 견해를 쏘련군 사령부에 통보해주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그이께서는 겸허하게 말씀하시였다.

《강력한 정보망까지 가지고있는 모스크바의 전략가들이 그쯤한 계략을 간파하지 못했을라구요! 그저 우리들의 정세토론이였지요.》

그러시고는 또다시 인사를 보내는 저우바오중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시면서 차에 오르시였다.

이날 저녁 김일성동지께서 숙소에서 담소하고계실 때 한 로씨야녀인이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경비실의 련락을 받고 안길이 나가니 동방국자료실의 연구사인데 크리멘을 대신하여 신문과 통신자료를 가져왔다는것이였다. 안길이 받으려고 하자 녀인은 웃으며 서툰 중국말로 김일성동지께 직접 전하겠노라면서 목도리를 벗고 복도의 큰 거울앞에서 옷매무시를 바로잡았다.

안길은 무슨 중요한 문제겠거니 생각하며 물러서서 여겨봤다. 산뜻한 옷차림이 날씬한 몸매에 잘 어울리는 젊고 아름다운 녀인인데 방에 들어가서 얼마있지 않고 돌아가는것이였다. 안길이 방에 들어갔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원탁옆에 서서 방금 받은 신문을 읽고 계실뿐 다른 기색은 없으시였다.

《사령관동지, 이자 그 녀동무가 무슨 중요한 문제때문에 왔댔습니까?》

비위좋은 안길이 궁금해서 물으니 안락의자에 앉아있던 두사람이 의아해서 돌아보았다. 그이께서 흔연하게 대답하시였다.

《크리멘동지가 바쁜 일이 있어서 오지 못하는 모양이요.》

《···》

안길은 어리둥절해 서있었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후에도 녀인은 크리멘을 대신하여 자주 찾아왔으나 그때마다 밖에 나가 맞이하는 안길에게는 웃으며 고개숙여 인사만 할뿐 가지고온 신문과 자료들을 넘겨주지 않았다.

안길은 방면군 참모장으로 큰 회의에 참가하러온 자기를 못미더워하는 그 녀자를 불만스럽게 여기다가 하루는 눈치를 보던끝에 그 녀자가 돌아가자 웃으며 소견을 털어놓았다.

《사령관동지, 저 로씨야미인이 조선빨찌산 대장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틀림없다니까요!》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시물시물 웃고있을 때 그이께서도 웃으며 응수하시였다.

《그렇지만 난 안될것 같소. 서양녀자들은 코수염이 번쩍거리는 남자들을 좋아한다더군.···》

방안에 웃음보가 터지는 속에서 안길은 저도모르게 코수염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