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제 3 장

2

 

《장군님, 제 이야기를 하기전에 한가지 소견을 내놓아도 되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시오.》

김일성동지께서 소탈하게 웃으시자 김책이 마음놓고 털어놓았다.

《최석천동무의 이야기에서 나왔기에 하는 말입니다만 중국동지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항일련군은 쏘련의 원동군에 편입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저우바오중(주보중)군장은 이번에 여기로 오면서도 립장이 뚜렷합니다. 항일련군은 원동군에 편입되지 않는다. 김일성동지도 남의 풍에 드놀지 않을것이다, 그러니 회의는 결렬될수밖에 없다는것입니다.

저의 소견에도 그 주장이 타당한것 같습니다. 조선과 중국의 실정이 다르고 여러모로 투쟁조건이 같지 않지만 쏘련의 지휘봉에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사정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풍에 놀다가는 제일을 못하는데··· 이전날 원동에 들어와 활동하던 무장부대들의 교훈으로 보아도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방안이 조용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도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20년전의 그때의 사변들을 겪은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지만 누구나가 알고있었으며 지금의 처지에서 더욱 깊은 생각을 자아냈던것이다.

이윽고 김일성동지께서 조용히 말씀을 떼시였다.

《김책동무가 조선혁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과연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력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20년전에 이 땅에 와서 무장력을 꾸린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에게는 무력으로 일제와 대결하겠다는 견결한 의지는 있었으나 원대한 로선이 없었고 옳바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남의 나라땅에서 조선의 애국자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불러들이려 했고 조선의 반일부대들을 하나라도 더 자기네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했으며 남의 나라 무장력의 도움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하면서 남의 나라 세력을 업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나니 조선과 지엔다오(간도), 베이만(북만) 등지에서 들어온 무장대들사이에 마찰이 생기고 오해가 생기고 나중에는 남의 나라 무장력과의 관계에서도 분쟁이 생겨 결국은 무모한 희생만 내면서 아무일도 치지 못했습니다.

자기 힘을 믿고 자기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압제에 신음하는 모든 조선사람들을 각성시켜 반일전선에 묶어세우고 무장시켜서 때가 되면 전민항쟁으로 일본통치를 뒤집어엎자는겁니다.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것은 이러한 전략을 관철하기 위해 공동의 적을 반대하는 이웃나라 혁명군들과 힘을 합치기 위해서입니다. 힘을 합친다 해도 자기 일을 하는데서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인구실을 해야 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 조선이 아시아대륙의 동북쪽에 중국과 접하고있으며 한쪽끝에는 로씨야가 팔을 뻗치고있고 대양으로 나가는 길에는 일본렬도가 막아서고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것입니다. 이런 지리적환경으로 보아도 우리는 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기고 자주성을 견지하지 않고는 솟아날 길도 없고 살아갈 길도 없습니다.···》

엄숙하게 앉아 듣고있는 사람들은 그이의 비범한 천품에 속으로 감탄하고있었다. 《동무들,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똑하게 차리라는 격언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범한테 물려온것도 아니고 제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업과 관련한 문제는 후에 회의에서 론의하기로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은 오래간만에 동지들끼리 회포나 나눕시다.》

가슴들이 따뜻해지고 긴장하게 굳어졌던 얼굴들에 미소가 떠돌았다. 김책은 속으로 생각했다.

(년세로 보면 청춘인데··· 큰분이구나! 련합을 형성하려는 결심을 가지고오신것 같은데··· 여태까지 결렬만 되던 회의가 과연 어떻게 진행될는지···)

한가닥 의문은 있었으나 마음은 푸근해지는것이였다. 그는 장군님의 권고대로 술잔을 들어찌우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석천동무는 조선혁명의 길을 찾아 수천수만리를 돌아다니면서 곡절을 겪었지만 나는 가까이에서 곁을 에돌며 곡절을 겪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 따라 지엔다오에 들어와 양몰이를 하면서 마을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다가 반일의 뜻을 품고 집을 나섰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산주의바람이 세게 불 때였습니다. 공산당에 들어 화요파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삐라도 찍고 시위도 조직하다가 경찰에 잡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갔댔습니다. 재판을 받게 되였을 때 이름있는 조선사람 변호사가 돈한푼 받지 않고 내 변호인으로 나서주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동정하는 애국자였습니다.

그 변호사 덕분으로 형기가 줄어 3년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석방되였습니다. 서울바닥에서는 밥한끼 얻어먹을데가 없는 내 처지를 알고있는 그 변호사선생이 자기 집에 데려다가 며칠동안 보양시켜주었습니다. 떠나오는 날에는 자기 옷가지들을 저당잡힌 돈 3원 50전을 로자로 쓰라고 내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김책은 술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둥그런 유리잔안을 물끄러미 여겨보면서 그때의 일들을 더듬다가 말을 이었다.

《그때 그 집에는 어느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젊은 딸이 있었는데 식견이 높고 외국려행도 많이 한 신식녀성이였습니다. 그 녀자는 밥시중도 들어주고 반일활동에 대해 묻기도 하면서 나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장차 무엇을 하려느냐, 어디로 가겠느냐 하고 심중하게 묻길래 나는 만저우(만주)에 가서 조선을 위해 싸우겠다고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소갈비를 뜯고있던 안길이 허허 웃으며 유쾌하게 끼여들었다.

《그 멋쟁이녀성이 젊은 혁명가한테 단단히 반했댔구만.》

방안이 흥겨워지면서 달가닥거리는 수저소리도 명랑하게 울렸다.

《나한테서 남편감을 본것이 아니라 조선을 위한 혁명가의 기개를 보고 선망을 품었던것 같습니다.》 하고 김책이 서글프게 수긍했다.

《좌우간 그렇게 만저우에 들어와 닝안(녕안)지방에서 활동하다가 중국군벌산하의 경찰들에게 잡혀 지린(길림)감옥에 끌려갔습니다. 나는 거기서 그무렵에 만저우의 여러 지역을 휩쓸고있던 <지린바람>의 지도자인 김성주청년에 대해 알게 되였고 그분의 활동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출옥후에 그분을 찾아헤매였으나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만일 그분을 만났더라면 저의 운명도 달라졌을겁니다. 풍파를 겪지 않고 조선혁명의 길을 곧바로 걸었을겁니다.···

일제가 만저우를 강점하자 나는 베이만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위만군에 체포되여 죽을번 했습니다. 그후에는 대국주의자들의 박해도 받았습니다. 중국동지들과 같이 싸우면서 민족주의를 한다는 비난도 더러 들었습니다. 주허(주하)지방에서 반일유격대를 조직하고 투쟁한때부터의 경력은 최석천동무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의자등받이에 기대여 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안길이 몸을 일으켜 대두병을 들고 빈잔들에 술을 부었다.

《변호사의 딸이라는 신식녀성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후에 더러 만나봤습니까?》

안길이 잔을 들어마시고 묻는 말이였다. 김책은 잔을 기울이고나서 천천히 안주를 집었다.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혁명을 하다나니 경황이 없었지요.···》 하고 김책이 말했다.

《딸은 그렇다치고, 나는 신세를 많이 진 그 변호사선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헤여진 후에 다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태까지 듣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 물으시였다.

《그 변호사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한때 조선에서 신간회의 회장으로도 활동한 허헌입니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 선생은 지금 변호사노릇을 못합니다. 반일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걸려 투옥되였습니다. 변호사를 한다 해도 지금같은 파쑈통치하에서는 제구실을 못할겁니다. 그 딸은 집을 떠나 만저우에 들어와 혁명군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지금은 중국관내에서 로농홍군에 속해 싸울겁니다.》

김책은 놀라와하며 물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그 변호사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십니까?》

《신간회의 회장까지 한 명사를 모를수가 없지요. 최근의 동향에 대해서도 알게 된 연고가 있습니다.》

그이께서 웃으며 설명하시였다.

《서울에서 어물상으로 활동하는 공작원에게서 보고받은 자료들중에 그 변호사도 반영되여있습니다.

큰 딸은 사라지고 집에 있는 아들들은 아직 어린데 변호사가 서기로 쓰고있는 동생의 맏아들이 우리 공작원이 조직한 반일청년동맹에 망라되여있습니다.》

수저를 다루는 소리도 끊어지고 방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장군님께서 국내에 많은 비밀조직을 꾸려놓고 지도하신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으나 국내깊이에서 벌어지는 크지 않은 일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알고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제가 안목이 높지 못했습니다.》 하고 김책이 자책감에 싸여 뇌였다.

《저는 그 변호사에게서 큰 도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편지나 인편으로 인사를 전하면서 련계를 가졌더라면 좋았을건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러지않았다 해도 인연이 맺어졌던 사람들이 의리가 깊고 진실하면 그런 관계가 장차 조선혁명을 위해 좋게 발전할겁니다.

사상이나 리념이 중요하지만 의리가 있는 사람인가, 진실한 사람인가··· 하는것이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고리의 웃단추들을 끌러놓고 천천히 열정에 넘쳐 계속하시였다.

《우리 조선에는 비록 공산주의는 모르지만 일제를 미워하고 일본놈들의 탄압에 굽어들지 않으면서 조선사람으로서의 량심과 지조를 꿋꿋이 지켜가는 의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그가 설혹 지주나 자본가라 해도 아끼고 사랑하면서 진실한 인연을 맺어가야 합니다. 믿고 도우면서 반일통일전선에 굳게 뭉치게 해야 합니다.

민족대단결은 나의 일관한 신조입니다.

나라를 광복하는 길에서만이 아니라 독립된 우리 나라에 새 조선을 건설하는 길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길에서도 변함없이 견지해야 할 리념이고 소원입니다.

민족이 대단결하면 떨어져나갈것은 외세이고 외세에 붙어먹던 반역자들뿐입니다.

민족이 대단결해야 대국들에 둘러싸인 조선에서 인민들이 잘 살수 있고 민족의 슬기와 존엄을 세상에 떨칠수 있습니다.》

《···》

(큰 어른이구나-) 하고 김책은 속으로 깊이 탄복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듣고있던 최석천은 대두병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그이의 잔에 찰찰 넘게 부었다.

《장군님, 이건 제가 특별히 크나큰 존경심을 담아 부은 잔입니다.》

그리고는 병을 두손에 잡은채 그이께서 천천히 잔을 들어 마시는 모습을 경건하게 보고있다가 상우에 놓은 잔에 다시 따랐다.

《이번 잔은 이야기를 하시면서 천천히 드십시오.》

《아-니, 최동지가 술병을 독차지하는겁니까!》

의자등받이에 기대고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던 안길이 두덜거리며 의자를 끄당겨 나앉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최석천은 들고있던 술병을 안길의 잔에 기울이면서 싱글거렸다.

《마시지도 않으면서··· 타발이 많구만.》

《장군님의 말씀에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과를 한 안길은 한모금 추기고나서 사령관동지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러자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나는 평양근처에 있는 만경대라는 작은 마을 초가집에서 태여나 자랐습니다. 우리 가문은 어느 조상대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북으로 들어와 증조할아버지대부터 만경대에 뿌리를 내렸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삼촌들과 고모들, 형제들까지 열명 가까운 대식구가 기를 쓰고 일했지만 타개죽도 제대로 차례지지 않는 살림이였습니다. 내가 어렸을적의 어느해엔가 우리 아버지가 두 삼촌들을 데리고 마을앞에 세그루의 백양나무를 심으면서 우리 삼형제도 저 백양나무처럼 청청하게 자라 나라를 독립시키고 잘 살아보자고 하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후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오겠다면서 혁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작은삼촌도 그렇게 고향집 사립문을 나섰고 어머님도 우리를 이끌고 아버지가 가신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사람들이 다 이국의 하늘아래 묻히고말았습니다.···》

《···》

《이게 어찌 우리 한가정이 겪은 고통이겠습니까! 여기 있는 우리 동지들 매 개인의 가정이 이렇고 우리 조선의 모든 가정들이 이런 비운을 겪고있습니다.》

《···》

《지난날을 더듬노라면 떠오르는 생각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류달리 가슴에 파고드는것이 어머니에 대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작별하던 때의 모습은 내가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더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마음을 가다듬게 해줍니다.···

유격대를 창건하고 난만(남만)원정을 준비하던 때에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기별을 들은 나는 좁쌀 한말을 얻어지고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중병에 잡혀있었습니다.···

살아갈 방책도 없는 집에 중병이 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남겨두고 떠나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해 산에 가서 나무 한짐을 져다놓고 이튿날 아침에 떠나려는데 어머니가 고리짝밑에서 돈 20원을 꺼내 나에게 주었습니다. 남자의 주머니에는 급할 때 쓸 돈이 있어야 한다면서 건사하라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그 돈을 받아들었으나 주머니에 넣을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병색이 짙은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어서 떠나라고 고무했지만 하직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선 나는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두걸음 집둘레를 따라 걸음을 옮겨놓는 내 머리에는 천만가지 생각이 떠돌았습니다.

내가 과연 승산이 있는 길을 떠나는가, 원정에 갔다오는 동안에 어머니의 병환은 어떻게 되겠는가··· 근심걱정에 싸여 지척거리는데 어머니가 문을 열고 준절하게 꾸짖었습니다.

나라를 찾겠다고 결심품고나선 사람이 그렇게 마음이 여리구서야 어떻게 대사를 이루겠느냐. 후에도 이 에미걱정때문에 집으로 올 생각이면 아예 이 문앞에 얼씬도 말아라. 나는 아들을 만나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이였습니다.

원정에서 돌아왔을 때엔 어머님의 무덤이 있었을뿐입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술잔을 들어 목을 추기시고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유격대생활에서도 돈 쓸일이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삯빨래, 삯바느질로 벌어 아껴두었다가 주던 그 돈 20원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여러해가 지나 우리가 장백에 진출하여 마안산에 들렸을 때 거기 집결되여 있던 혁명가의 유자녀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그때까지 소중히 간수해가지고 다니던 어머니가 주신 돈을 꺼내 아이들의 옷감을 사오게 했습니다.

그렇게 쓰고보니 어머니의 유한을 얼마큼이라도 풀어드린것만 같아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전투와 행군, 작전과 정치공작으로 이어지는 투쟁의 나날에 한가한 때가 없지만 밀림우에 달이 밝고 숲속에서 두견새가 우는 싸움이 없는 밤이면 지난날을 더듬어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사무쳐서 그랬던지 언젠가 한번은 시상 비슷한것이 떠올라 노래를 지었습니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으나 아무도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속에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그이께서는 맞은켠 벽에 걸린 커다란 풍경화너머의 어딘가를 꿈꾸듯이 바라보며 서정에 잠겨 노래를 떼시였다.

 

내 고향을 떠나 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

 

가슴이 저리도록 애달프게 그리운 고향의 산천, 꿈결에도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

잔잔하게 흐르는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에 젖어들면서 그윽한 향수를 자아내고 차마 잊을수 없는 지난날을 떠올린다. 하여 모두는 자기를 잊고 애절한 추억에 잠겨버린다.···

노래가 끝나고 방안에 흐르던 은근한 여운마저 사라졌으나 숨을 죽이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기 심장의 즐거운 박동을 들으며 눈물이 글썽해서 찬탄의 손벽을 울렸다.···

《좋구나!-》

김책은 지금 자기 가슴에 넘쳐나는 감동과 환희의 이루 말할수 없는 정서를 그렇게 표현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소박하고 근면한 사람들, 열렬한 애국자들의 가정에서 태여난 고결한분이구나-)

곡절많은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가시는 령도자의 고귀한 인간상에 깊이 감탄한 그는 겸허하게 눈길을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