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0


 
 

제 3 장

10

 

푸른 하늘에서는 태양이 빛나고 허공중 저 멀리에 기러기떼가 날아가고있었다. 분비, 가문비에 뒤덮인 수림속은 물냄새로 싱싱한데 얼쑹덜쑹 눈녹은 공지의 누런 잔디밭에서는 연두색 새싹이 돋아나고있었다.

녀대원들의 유쾌한 말소리, 명랑한 웃음소리에 지저귀던 새들이 포롱포롱 날아올랐다.

녀대원들은 이날 사령관동지를 끌다싶이 모시고나와 그리도 갈망하던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구에서도 은근히 바라던바였고 더군다나 남북동서에 흩어져 싸우던 녀성대원들이 다 모인 환경이여서 뜻없이 흘러보낼수 없는 이 시절을 사진으로나마 남기고싶었던것이다. 남대원들도 같은 심정이여서 너그러워진 사진사의 공감을 쉽게 살수 있었다.

이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충직한 전우이며 귀중한 동지인 김정숙동지와 함께 물기오른 가지들이 치렁치렁한 봇나무앞에 나란히 서서 타향에서 맞는 뜻깊은 새봄을 사진에 남기시였다.···

해가 지자 구릉선너머로 거무숭하게 뻗어간 산줄기우에 달이 솟아올랐다. 양푼같이 둥근 달은 삼라만상을 대낯같이 밝히면서 두루미의 울음소리 처량하게 멀어져가는 광야우에 청옥색의 유정한 빛을 필필이 드리웠다.

병영의 넓은 뜰에 모여든 대원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흥늘어진 민요도 열정이 끓는 혁명가요도 불렀다. 덩실덩실 어깨춤도 흐르고 제식과 집총훈련으로 다져진 땅을 구르며 박력있고 씩씩한 군무도 펼쳐졌다.

대원들속에 끼워 구경을 즐기던 김책은 방금 춤을 추고나온 김정숙동지에게로 다가갔다. 군모의 채양이 짤막한 그늘을 던진 땀흐르는 얼굴을 훔치며 숨을 돌리고있는 생기넘치는 녀전사를 한옆에서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팔을 건드려 담벽을 이룬 구경군들의 뒤로 불러냈다. 녀전사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에 한가닥 의문을 그리며 이쪽을 쳐다본다.

《오락회도 이젠 끝이 나는것 같은데 나하구 좀 거닐지 않겠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가 무슨 긴한 말을 하려는구나 짐작하고 선선히 따라 걸으시였다.

수목이 성글게 자라는 병영주변을 벗어나니 초리꺾인 갈대가 외롭게들 서있는 달빛어린 들판 멀리에 바다우의 섬마냥 거무숭한 수림이 바라보인다.

《넓은 대지가 너무 황량하지요?》

환하게 드러난 광야와 그 저편에 우중충한 수림의 군락을 둘러보면서 김책이 말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공감하시였다.

《그래요. 이 넓으나넓은 땅이 아무런 쓸모도 없이 버림받고있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손이 모자라는 모양이예요.》

《주권을 잡고 안정을 얻은지가 이십년도 못되니까··· 지금도 땅을 개간하거나 이런 곳에 생활을 건설할 경황이 없을거요. 나라의 존망이 위태위태한 형세니···》

《주권을 잡은 뒤에도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는게 헐한 일 같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겠지.》

두사람은 광야에 뻗어간 대도로를 따라 걸었다.

《내 정숙동무에게 부탁하고싶은 말이 있소.》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운듯 걸음을 멈추시였다.

《사령관동지께 말씀드리지 않고 왜···》

《이건 사령관동지의 충직한 전우이고 동지인 정숙동무만이 할수 있는 일이요.···좌우간 들어보시오.》

김책은 신선한 대기를 들이키고나서 말했다.

《나는 하바롭스크에 있을 때부터 심중하게 생각되는바가 있어 떠나오기전에 최석천, 안길동무들과도 진지하게 토론했고 여기와서도 어제저녁에 지휘원, 정치일군들을 모여놓고 의견들을 나누었소. 한마디로 말하면 사령관동지의 신변보위문제요. 모든 지휘원들, 대원들까지 한결같이 사령관동지께서 전구에 진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의견인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을것 같소.

하바롭스크에서 회의할 때부터 문제토의를 너무 오래 끈다고 했소. 빨리 전장에 달려나가 소부대활동도 하고 조직건설, 군중공작을 해야겠는데 시간이 아깝다면서···

내가 북야영에 갔다가 돌아와보니 많은 지휘원, 대원들이 보이지 않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여러대의 공작조들을 국내와 동남만지구에 파견하셨다고 간단히 말씀하셨지만 림춘추동무의 말을 들으니 사령관동지께서는 거의 밤잠을 쉬지 못하셨다더구만.···

이전날에 사령부호위를 맡아보던 오백룡동무까지 공작조를 책임지워 떠나보냈더구만.···》

《오백룡동지는 동만을 거쳐 조선의 북부국경지대에 진출했습니다. 나가는 길에 동만일대에서 혁명가의 가족들을 은밀하게 국내의 각지에 분산이주시킬 과업까지 받고 떠났습니다.

사령관동지의 그 구상에 대해서는 김책동지도 알고계시겠는데요?》

《···》

김책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구상에 대해서는 물론 알고있었다.

하바롭스크에 체류하는동안 사령관동지에게서 조선혁명의 전망과 당면하게 해야 할 사업에 대해 많이 들었었다. 혁명가가족 이주에 대한 구상도 그때에 들은 당면과제들중의 하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만저우(만주)일대에 살고있는 혁명가들의 가족, 적들에게 로출된 대상만이 아니라 로출되지 않은 가족들도 그리고 유격대와 인연이 있는 의사들과 상인들, 벌이가 되지 않는 려관업자 등 영업자들과 로동자, 농민들을 조선의 각곳에 계획적으로 이주시킬 구상을 말씀하시였었다.

군수산업지대, 교통로의 중요지점들, 륙해공군 군사기지 주변, 북부국경지대와 동서남해안의 항만지대들에 자리잡게 하여 소부대와 소조들의 련락거점으로 삼으면서 한편 그들을 통하여 주변사람들을 하나가 열을, 열명이 다시 백사람, 천사람을 교양하고 이끌어 반일전선에 묶어세울 폭이 큰 구상을 펼쳐보이시였다.

김책은 그때 조선인민을 반일통일전선에 광범하게 묶어세울 사령관동지의 원대한 구상이 각 방면으로 주도세밀하게, 생활력있게 추진되고있음을 알고는 새삼스럽게 감탄했었다.···

하지만 그이께서 남달리 믿고 사랑하며 가까이 데리고 다니던 오백룡이 같은 지휘관들까지 국내공작에 파견하시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김책은 생각에 잠겨 걷다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제밤에도 자정이 넘도록 적정을 연구하면서 쉬지 않는걸 보니 전구에 진출할 준비를 하시는것 같소.

이건 아주 심중하고 심각한 문제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김책동지가 하려고 하는 말씀을 이젠 알만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만류할수 없습니다. 김책동지가 직접 말씀드리는게 나을겁니다.》

《···》

《사령관동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수 있지만 제가 친솔부대에서 체험한 일들중에서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밤추위가 온몸에 스며들었으나 거기엔 아무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저는 근거지시절부터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축지법을 쓴다, 옛날 도사들처럼 먼 앞일을 내다본다.···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졌지요.

그건 다 옛날부터 인민들이 사랑하고 숭배하는 영웅을 신성하게 여기고 자기들의 념원과 리상을 담아 전하는 과정에 생겨난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겠지요. 신화나 전설은 그렇게 전해지겠지요.···

그런데 제가 보고느낀것은 술수는 쓰지 않지만 앞일을 환하게 내다보신다는건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라는겁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래사람들에게 임무를 주실 때마다 과업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수행방도를 상세하게 가르쳐주십니다.···

저 현성을 공격하자면 어떠어떠한 정황이 있을수 있는데 그때엔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야 한다.

혹은 저 길을 가자면 이러저러한 난관이 생길수 있는데 그때엔 어떠어떻게 해야 한다.···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동무들은 사실 그런 난관이 생겼는데 가르쳐주신대로 하니 되더라고 한결같이 말합니다. 저도 그런 경우를 여러번 체험했습니다.···》

《천재적인 예견성이지!》

하고 김책이 자기 상념속에서 탄성을 질렀다.

《그건 생활과 사물의 본질을 깊이 체득하고있는 사람이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과 거기에 작용하는 온갖 요인들을 과학적으로 통찰한데 기초하여 결과를 예견하는 탁월한 능력이요!》

두사람은 달빛을 가리우며 우중충하게 몰켜선 상록수림의 변두리에서 걸음을 돌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조용히 말씀하셨으나 밤의 고요속에서 그 목소리는 도랑도랑 맑게 울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떤 과제를 설정하실 때면 여러 측면으로 깊이 헤아리시고 일단 결심을 내리면 온 정력을 다해 드팀없이 관철하십니다.》

《그러니 의견을 제기해도 소용이 없다는거요?》

김책이 노엽게 하는 소리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상긋이 웃으시였다.

《원 참! 모색하고 모색해서 구한 동맹자가 전혀 믿을수 없는 대상이였구만!》

김책은 불만스러워 했으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 명랑한 웃음소리는 허공중에 휘뿌려진 은방울마냥 달빛속 멀리로 랑랑하게 구을러갔다.

김책은 마지못해 빙긋이 웃었으나 몇걸음 옮기면서 다시 진지해졌다.

《좋소. 동맹자가 될수 없다면 중립이라도 지켜야 하겠소.

오늘밤 이 길에서 내가 한말은 없었던것으로 합시다.

이건 조선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인만큼 사령관동지의 가장 가까운 혁명동지에게 바라는 약속입니다.》

《알았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진중하게 대답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