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9


 
 

제 2 장

9

 

우두양산(오도양산)의 밀영엔 사흘째되는 밤에 당도했다. 별빛도 흘러들지 않는 산림속을 천방지축 따라가는 고형근은 몸을 가누기 어렵게 지쳐있었다. 어둠속에서 불시에 울린 호령소리가 섬찍했으나 이어 마음을 놓았다. 조봉길이 암호를 대고 얼마쯤 지나 다시 수목들사이를 지나갔다. 별이 총총한 군청색 하늘가에 우중충하게 산들이 솟아있는 형세를 보니 과연 산중요새가 있음직 했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골짜기의 작은 초막이였다. 등잔불에 희미하게 비친 방바닥엔 두툼하게 깔아놓은 마른 새초우에 얇은 탄자가 펴놓여있었다.

조봉길이 힘겹게 지고 온 커다란 배낭을 헤치고 료리점의 만두며 흰쌀밥, 술병들을 차근차근 꺼내는 동안 고형근은 초막기둥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사장님, 이걸 드시고 여기서 편히 쉬십시오.》

조봉길이 그렇게 권하고 초막에서 나가자 시장기를 참을수 없어 수저를 들었다. 술기운에 취해 쓰러진채 추운줄 모르고 푹 자고 일어나니 발치와 머리맡에 잉걸불이 이글이글한 탄약통이 놓여있었다.

초막을 나서니 수림속에 감도는 안개를 뚫고 해빛이 흘러드는 아침이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근처에는 초막이 서너채고 군사들도 너덧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사령부가 자리잡았다는 골안이 이렇게 조용할수 있나 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자고나온 초막을 미타하게 돌아보고있는데 엇비듬히 경사진 둔덕에서 조봉길이 내려오고있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더니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인사를 건넨다. 고형근은 궁금한 일이 한두가지 아니였으나 인사에만 대답하고 묻지는 않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사장님을 아침식사에 청하셨습니다.》

떠나기전부터 머리속에 그려보던 범연치 않은분과 이제 대면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다듬어지는것이였다.

가지들이 청청한 분비나무수림을 지나 작은 공지에 나서니 허옇게 서리를 들쓴 초막이 눈에 뜨인다. 그 앞에서 이쪽으로 걸어오시는분을 보자 조봉길이 돌아서며 일러준다.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

고형근은 저도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세상에 명망이 들날리고 장군이라 불리우는 독립대장을 그는 수염이 검은 위엄있는 용모에 품위있는 차림을 하고 호위군사들속에 으리으리하게 앉아있는 인물로 상상했었다. 하여 그러한 위풍앞에서 자기는 결코 굽어들지 않을것이며 용렬하게 처신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지금 여느 군사들이나 다름없이 빛이 바랜 얇은 군복을 입은 너무나도 젊고 름름한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앞에 와서 멎어서자 그는 겨루어보기도 전에 기가 질린 씨름군마냥 두손을 드리우고 어정쩡하게 쳐다볼뿐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모자를 벗어들고 허리굽혀 절하는 고형근에게 고개숙여 마주 인사하시고는 친근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선생님이 멀고 험한 길을 이렇게 와주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잠자리도 퍽 불편했을겁니다.》

활기에 넘친 인사에 고형근은 깍듯이 대답했다.

《아니올시다. 불편없이 잤습니다.··· 산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념려해주어 고맙습니다.

선생님, 모자를 쓰십시오. 날씨가 찬데··· 어서 쓰십시오.》

고형근은 천천히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이리로 떠나기전부터, 또한 오는 길에서 상상했던 정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그렇듯 인간적인 범절에 오히려 마비되여 버린듯 했다.

《이렇게 오신것이 일본놈들에게 의혹을 사고 선생님의 신상에 화를 미치게 될가봐 걱정스럽습니다.》

김일성동지의 진정어린 념려에 고형근은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미소가 떠올랐다. 죽음까지 각오했던 일이 너무나도 어리석게 생각되였던것이다.

《장군님, 그놈들이 알수도 없거니와 설혹 알았다 한들 나를 죽이기밖에 더하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으나 웃음이 사라져가는 얼굴엔 념려의 그늘이 남아있었다.

초막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고형근은 그이의 사려깊고 인정겨운 거동을 더듬으며 (이렇게도 젊으시다니!) 하고 속으로 경탄했다.

그이께서는 여기까지 오는 로정에 대해 물으시였고 고형근은 겪은대로 대답을 드리였다. 그이의 소탈하신 성품에 이끌려 구애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고형근은 문득 도고하게 처신하려했던 일을 상기하면서 (아직은 초면의 인사니까···) 하고 쉽게 무너져가는 자신을 스스로 변명했다.

아침해빛이 흘러들어 환해진 초막안에는 구석쪽에 나무로 엮은 침상이 있고 가운데에 나무를 잘라만든 탁자비슷한것이 박혀있는데 녀대원들이 말없이 아침밥상을 챙기고있었다. 빛은 바래였으나 깨끗하게 손질한 군복을 입고 가죽혁띠에 작은 권총까지 찬 호리호리한 녀대원과 몸이 통통한 녀대원의 모습을 여겨보며 고형근은 은근히 생각이 깊어졌다. 공산군에 녀자들도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막상 띄여보니 각곳에서 뜻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나무가지로 맺아 만든 탁자우에 챙기는 빛이 없는 음식들을 일별한 그는 초막안에 화기를 돋굴겸 하여 장군님을 쳐다보며 겸허하게 물었다.

《녀자들도 일본군과 맞서서 총질하며 싸웁니까?》

장군님께서는 《총질하며 싸웁니다.》 하고 선선히 대답하시고는 의아해하는 그의 마음속에 일본군의 강대성에 대한 환상이 어리여있음을 헤아리며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그릇들을 바로 잡아놓고 물러선 몸이 통통한 녀대원이 권총찬 동지를 돌아보며 상글상글 웃다가 한마디 했다.

《맞서서 총질할뿐아니라 우리 정숙언니 같은 명사수들은 한놈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쏴제낍니다.》

권총찬 녀대원은 거기에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고 손님을 향해 단정하게 례의를 표했다.

《변변치 못한 음식이지만 많이 들어주십시오.》

하고는 초막에서 조용히 나갔다.

장군님께서는 티없이 밝은 웃음을 짓고 말씀하시였다.

《어려운 길을 오신 선생님께 대접이 소홀함을 널리 량해해주십시오.》

고형근은 눈길을 숙여 사례를 표하고 수저를 들었다. 마주앉아 똑똑히 보아도 역시 상우에는 조밥에 산나물국, 소금으로 간한 버섯찌개가 각각으로 놓였을뿐이다.

천천히 수저를 놀리면서도 생각이 많았다. 군사에 해박하지 못한 그의 식견으로도 정상급여를 받고있는 군대는 말고라도 민간에 의거하여 하루살이식경리를 엮어가는 독립군이나 구국군의 군영에서도 두령들의 경우엔 식탁이 풍성하고 호화로움이 항간의 부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음을 알고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장군님께서 친히 초막밖 멀리까지 나와 마중하여 주신 빈객을 위해 차린 상이 이처럼 조촐하니 그 살아가는 정상이 짐작되는 속에서도 군사를 거느리시는분의 소박하고 겸허한 성품이 가슴에 뜨겁게 안겨오는것이였다. 진수성찬이였다면 오히려 체면도 차렸을터이지만 목에 넘어가지 않는 깔깔한 조밥인데도 장군님께서 달게 잡수시는 앞이라 허리를 세우고 앉아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선생님이 다 잡수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상을 물리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 고형근은 불시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스며나올것만 같았다. 눈을 슴벅이며 고개를 숙여 흥분을 가리웠다. 무장부대를 거느린 령수의 너무나도 빈약한 물질생활 일단을 보면서 막연한 죄의식을 느끼던차에 오히려 자기를 위해 따뜻하게 마음쓰시니 가슴이 뭉클 뜨거워졌던것이다. 했으나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의젓이 고개를 들었다. 심중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던것이다.

산등성이우에 솟아오른 아침해빛이 분비나무숲에 쏟아져내리면서 청청한 가지들마다에 은실금실의 비단필을 드리우고 푸름푸름한 그늘밑에서 날아오른 산새들이 따뜻한 기운을 즐기며 신이 나서 조잘댄다. 뙤창으로 흘러드는 그 지저귐소리엔 아랑곳없이 고형근은 초막을 떠받친 참나무기둥뿌리를 멀거니 바라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고형근이를 만나시려고 한것은 그가 제나름의 활동으로 오히려 일제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진정한 반일의 길에 이끌어세우기 위해서였지만 오백룡이 설복하려다가 반발을 당했고 조봉길이 드러내놓고 비난했다는 그 문제를 다시 아프게 건드려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제한성은 있으나 반일의 길에서 타락하지 않고 깨끗한 량심을 지키려고 모대기는 고정한 지식인을 고무하고 도와주고싶으시였다.

《선생님께 한가지 량해를 구하려고 합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떼시였다.

《달포전에 우리 사람이 선통도 없이 선생님을 찾아갔던 일을 기억하실겁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하시도록 말씀을 드리라고 하여 보냈습니다. 그렇게 가는 걸음에 선생님이 경영하는 운송회사와 거래가 있었던 전명석이라는 동지의 희생원인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인품을 잘 알기때문에 선생님이 그의 죽음에 관여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지의 희생에 대한 내막을 몰라 무슨 단서라도 쥘수 있을가 해서 가능한껏 알아보라고 했는데 전명석의 말이 나오자 선생님이 몹시 불쾌해 하시더라는 말을 듣고 일이 잘못되였음을 느꼈습니다. 널리 량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러운 웃음을 띠우고 계시였으나 고형근은 침울하게 앉아있다가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저도 전명석군에 대해서는 정체는 몰랐습니다만 애착을 가지고있었던만큼··· 돌연한 사태에 몹시 놀랐고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차에 전혀 뜻밖에 유격대원이라고 하는 낯선 젊은이가 나타나 사건의 전말을 묻기에 불안하고 불쾌해져서 화를 냈습니다. 워낙 제 성미가 괴벽한 탓이지요.···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전명석군은 안목이 높고 성실하고 식견이 풍부한 젊은이여서 저는 그런 유망한 사람이 장사길에 들어서서 돈벌이나 하는것이 가석했습니다. 혁명군의 정탐인줄도 모르고···》

《정탐이 아니라 혁명군의 비밀공작원이였습니다. 하지만 비밀사업은 전명석의 천직이 아니였습니다. 그 사람은 솔직하고 진실하고 향학열이 높은 청년으로 학자가 되려고 하다가 혁명가가 된 사람이였습니다.》

고형근은 생각되는바가 있는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에 잠겼다.

《제가 그 젊은이에게 각별한 애착을 품었던것은 나의 각근한 지기였던 리극로를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전명석군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때에 알게 되였다면서 그 사람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리극로라는 어학자가 있습니다.··· 하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리 운송회사를 리용하려고 나한데 접근하기 위한 계략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략은 아니였을겁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유감스러운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전명석동무는 리극로선생뿐아니라 국내의 명사들을 많이 알고있었습니다. 전명석이 한때 우리 시대 조선청년들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를 탐구하던 끝에 제국대학에 다니는 가까운 동무들과 함께 조선의 애국자, 민족의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편력담>을 들은적이 있는데 아주 교훈적입니다. 그 동무가 만저우(만주)로 혁명군을 찾아떠나기전이니 5∼6년전이겠습니다.

그때로 말하면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에 사상운동선상에서는 전향자가 속출하고 조선의 지성인들이 궁핍과 허무속을 헤매던 시기였습니다.···

한번은 독립운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의 한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작가인 리광수의 집엘 찾아갔답니다. 리광수는 마루에 나서서 젊은이들을 반겨맞아들이고 찾아간 취지를 밝히자 쾌히 응하면서 강론을 펼치더랍니다. 그 요지인즉 조선민족의 최대결함은 당파심이다, 조선사람의 당파심리는 력사적으로 뿌리깊은것으로 근절하기 어렵다, 민족운동의 실패도 그때문이다, 지금 조선은 정치적으로 큰 리념을 들고나가기는 시기상조하니 민족의 모든 성원들이 우선 도덕수양에 전념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그러루한 내용이더랍니다. 초학도의 견지에서 보아도 터무니 없는 자기비하의 민족렬등의식이 몸에 밴 사람이더랍니다.

당파심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동서방 어느 민족의 과거나 현재에 뚜렷이 존속되는것인데 그것만이 어찌 민족운동실패의 원인이 될수 있으며 또 민생이 도탄에 빠진 식민지에서 어찌 도덕수양이 초미의 과제로 된단 말인가! 게다가 강토와 자원은 물론이고 인민들의 생존권마저 빼앗긴 땅에서 경제적실력을 무슨 수로 배양한단 말인가!··· 하는 등의 갖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워낙 사상이 병든 사람 같아서 더 묻지도 않고 다시 찾아가지도 않았답니다. 지금 리광수가 <창씨개명>도 먼저 하고 친일의 길에 아주 굴러떨어진걸 보면 그때 전명석이 그 사람을 면바로 꿰뚫어본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사한 대원을 못잊어하시며 쓸쓸한 웃음을 띠우고 계셨으나 고형근은 굳어진듯 심각해져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도덕수양이요, 경제적실력배양이요 하는것은 자기가 존경하던 민족주의자 안창호선생이 제창하던 지론으로 자기도 거기에 많이 공명했던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기의 활동도 그러한 리념에 바탕을 두고있는것이다.···

그의 상념에는 개의치 않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후 어느 기회에 명사로 알려진 안재홍선생을 찾아갔답니다. 같은 취지의 강의를 청하니 마지 못해 응하면서 조선과 같은 사회에서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투쟁할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조로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민족의 숙적인 일제가 있기때문이다 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에 귀가 솔깃했답니다. 그렇지만 일제가 군림하는 조선에서 애국심에 불타는 조선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물으니 알지 못했서인지 말하기가 두려워서인지 대답을 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조선이 독립된 후에도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대립하여 투쟁해야 하는가> 하고 물으니 거기 대해서도 대답을 하지 않더랍니다. 전명석동무가 우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묻기에 저의 견해를 말해주었습니다. 민족주의자도 친일인가 반일인가 하는 기준에 의해 갈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서나 조국이 광복된 이후에나 민족주의자들을 배척할것이 아니라 그들과 단합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공산주의자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리익을 위해 공헌하는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것은 압박과 착취가 없는 리상사회건설을 지향하기때문이고 특히 조선과 같은 나라에서 인민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주, 자본가, 상공업자들을 한나름으로 배척하거나 타도해서도 안된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들과는 재산정도의 여하, 정견과 신앙의 차이에 관계없이 단결해야 한다, 이것은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서도, 광복된 조국에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일관하게 견지해야 할 로선이다.

공산주의자로 자처하는 기성세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족주의자라면 덮어놓고 배척하고 자산계급출신이라면 덮어놓고 때려부셨는데 그들은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물젖은 편협한 종파분자들이였지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아니였을뿐더러 진정한 애국자도 반일투사도 아니였다.···

이러한 취지를 리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지주나 자본가출신 혁명가들, 우리가 투쟁과정에 깊은 인연을 맺게 된 민족주의자들이나 자산계급인사들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해명해주었습니다.···》

고형근은 여전히 심각한 생각에 잠겨 듣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래전의 일들을 더듬으며 회포에 싸여 말씀을 이으시였다.

《전명석동무가 최남선이라는 력사학자를 찾아갔던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그 사람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3. 1운동때에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언론활동으로 민족정신을 교양한다고 떠들다가 저술생활에 들어간 최남선이를 우리도 오래전부터 알고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찾아가니 최남선은 <내가 조선의 민족, 사회, 문화, 풍속 등을 연구하여 집필중이니 저서가 세상에 나오면 보라. 거기에 내 사상이 담겨질것이다. 지금은 강론을 펼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더랍니다. 접객의 례의는 박절했으나 후날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기분좋게 돌아왔답니다. 그후 전명석은 그 저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내지 못하고 활동선을 찾아다니다가 우리 사람들과 련계가 맺어져 혁명군에 참군했습니다. 그러던 최남선의 고심작들이 요즘 만저우의 산속에서 날아다니는데 우리 혁명군에 보내는 <귀순권고문>입니다.···》

그이께서는 허거프게 웃으셨으나 고형근은 미간을 찌프리고 숨을 거칠게 쉬고있었다. 수치감을 느꼈던것이다.

그도 한때 그들을 존경하면서 동지로 휩쓸렸었다. 그러다가 하는 일이 마음싸지 않아 언론활동이며 학문탐구를 포기하고 만저우에 들어와 실천적인 운동을 모색하면서 변질되여 가는 《민족운동자》들을 경멸했지만 지금 산중초막에서 혁명군령수의 말씀을 듣는 마당에서는 자기도 그네들과 한동아리인것만 같아 량심이 가책되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심각해진 그의 표정을 여겨보신 김일성동지께서 온화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선생님을 믿고 존경하는것은 일본놈의 세상에서는 아무런 보람도 낼수 없는 언론이요 뭐요 하는 활동을 미련없이 버리고 지조를 꿋꿋이 지켜나가시기때문입니다.》

《···》

그이의 말씀에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지는듯 고형근은 눈길을 숙이고 말이 없었다.

《선생님, 어째 담배를 피우지 않으십니까? 제가 워낙 피우지 않다나니 권하지 못했는데 어서 피우십시오.》

《···》

고형근이 응대가 없자 그이께서는 웃으며 유감스러워하시였다.

《선생님이 너무 고정해 계시면 제가 도리여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올시다. 례의를 지켜서가 아니라 장군님의 말씀에 심취해서 담배생각은 통 잊고있었습니다.··· 그럼 제 한대 태우겠습니다.》

《어서 피우십시오. 제가 그만 소홀했습니다. 선생님, 피곤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더 듣고싶습니다. 생각되는바가 많습니다. 더 말씀해주십시오.》

《전명석의 편력담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리극로선생에 대해서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느 뒤거리에 자리잡은 조선어학회에 찾아가서 리극로선생을 만나니 지금 나라를 사랑하는 조선청년학도들이 할 일이 많겠지만 자기는 세계적으로 우월한 문자로 인정받는 조선어를 배우고 깊이 연구하여 널리 보급할것을 바란다고 하더랍니다. 평범한 말 같지만 깊은 뜻이 느껴져 자주 다니면서 배우는 과정에 친숙해졌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리극로선생을 만나본적이 없습니다만 젊어서부터 구국의 길에 나서서 뜻을 이루어 보려고 많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후에는 학문에 뜻을 두고 베를린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도 조선어연구에 몰두했으며 귀국후에는 일제의 박해를 받을뿐아니라 생계유지에 한푼의 도움도 받을수 없는 조선어연구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깊이 존경하며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일본놈들이 지금 우리의 민족적인 모든것을 말살하려고 발광하는 때에 조선말과 글을 지킨다는것이 얼마나 의의있는 일입니까!》

고형근은 아무 반응 없이 오래도록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기가 지겨운듯 이마에 주름이 가득해져서 뜨직뜨직 말했다.

《장군님,

저의 가까운 지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드리기가 거북합니다만··· 그 사람도 시세에 견디지 못해 변질되여 가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형근의 표정을 오래도록 진지하게 지켜보다가 물으시였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과연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고형근은 가슴이 답답한듯 한숨을 쉬였다.

《얼마전에 조선총독이라는 자가 조선글로 된 신문잡지들을 강제로 페간시키는 횡포를 감행했습니다. 장군님께서도 다 아시겠지만 놈들은 그런 야만적인 탄압을 하면서도 조선사람들에 대한 회유책을 쓰는데 리극로도 그중의 한 대상으로 되였습니다. 총독부에서 리극로를 불러들여 어학회를 그냥 두겠으니 <총력련맹>에 들라고 설복했는데 리극로는 단호하게 거절할 대신에 어물어물 응하였습니다. 그후부터 총독부에서는 리극로에게 갖가지로 호의를 베풀면서 저희들의 심복으로 삼고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글도 내주며 명분도 세워주고 그 사람이 주관하는 출판관에 후원도 하는 모양입니다.···

일본의 국력이 팽배해지니 ··· 버티고 견디기가 어렵기는 합니다만··· 일은 그렇게 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중한 표정이였다.

《리극로선생이 변질되였다거나 반역의 길에 나섰다고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엄숙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무장을 들고 십년세월 일본군과 싸워오는 과정에 대내에서나 대외에서 변절자, 반역자들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뜻을 같이 하고 생사를 같이 하던 사람들이 변절도주했거나 반역의 길에 들어선 사실을 알게 될 때면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런 체험이 너무도 아프게 새겨져서인지 확실한 근거가 없이는 변절자, 반역자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지 못하겠습니다. 변절자나 반역자라는 락인을 찍는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그 한사람의 운명뿐아니라 그의 부모형제들과 친척, 친우들에게까지 치욕을 끼치는 평판을 함부로 들씌우지 말아야 합니다. 장차 나라가 광복되면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낯을 들고살겠습니까!

조선에 애국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이지 변절자나 반역자가 많은것이 자랑으로 될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젊어서부터 일제를 반대하여 독립군에도 가담했었고 구국의 길을 찾아 헤매며 고생하던분이 그리고 오늘은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대학에서 수여받은 박사의 학위와 전공학문까지 버리고 오로지 조선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심하는 리극로선생이 그렇게 쉽게 변질될수는 없습니다.

조선의 뜻있는 지성인들이 그렇게 나약할수가 없습니다.

섬나라 강도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민족의 넋이고 자랑인 조선어를 가지고 발전시키려고 총독부의 회유공갈에 굽어드는척 했을수도 있습니다.

총독부의 호의를 사면서 그놈들의 비위를 맞추는 행세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분이 속까지 온통 변질됐다고는 단정할수 없습니다.!》

고형근은 눈시울이 확 달아오르면서 뜨거운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반일전쟁의 수만리 혈로를 헤쳐오며 만고풍상을 다 겪은 젊으신 장군님의 심오하고 심원한, 열정어린 말씀으로 하여 가슴속에 감격과 회오의 격랑이 일었다. 실망과 모대김속에 지내는 자기 인생을 온통 뒤흔드는 그 격랑이 파도쳐간 기슭에서 가슴굽을 파헤치며 천만가지 상념이 넘실거렸다.

거세고 변덕스러운 생활의 흐름을 꿰뚫어보시는 장군님께서 만나본적도 없는 인사들의 활동을 통찰하시면서 드러나는 허물의 바닥에 깔린 사연까지 헤아리고 굳게 믿어주시는 대상이 과연 리극로만이겠는가.

누구보다 먼저 자기도 그 한사람이였다.

자기 집에 찾아왔던 조봉길이 실토한대로 그렇듯 현명하고 아량있는 장군님의 훈계가 아니였더면 지엔다오(간도)땅에서 자기부터 선참 친일파로 몰려 된욕을 보았을것이다.

《조선에 애국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이지 변절자나 반역자가 많은것이 좋을수 없습니다.··· 조선의 뜻있는 지성인들이 그렇게 나약할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 대지와 같은 포옹력이 넘치는 그이의 말씀은 조용히 앉아있는 고형근의 가슴에 감명깊게 남아있었다.

민족주의자나 지주, 자본가, 재산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한나름으로 배척하고 타도할것이 아니라 친일인가 반일인가 하는 기준에 따라 갈아보아야 한다는 사상도,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재산정도나 신앙과 정견의 차이에 관계없이 단결해야 한다는 사상도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 대지와 같은 포옹력에 뿌리를 두었으리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조선사람 누구에게나 접수될, 생활력있고 진실하며 공명정대한 사상으로 느껴지는것이였다.···

문득 3년전에 망명생활에서 돌아온 도산 안창호가 경찰에 검속되였다가 병으로 가출옥했다는 소식을 받고 찾아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민족운동의 지도자로 칭송받던 안창호는 해외에서의 반일투쟁상황에 실망을 느끼고 귀국했는데 국내에서도 밝은 앞날을 볼수가 없어 의기를 잃고 병상에 누워있었다.

문병 온 명사들과 지기들에게 둘러싸여 말없이 쓸쓸해하던 그는 고개를 쳐들고 비분이 어린 눈길로 창밖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내가 조선에 돌아와서 통감한것은 이 나라에 주인이 없다는것이요!》

하고 통탄했었다.

구국의 길에 평생을 바쳐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채 림종을 앞두고 토로한 안창호의 그 말한마디는 고형근의 가슴을 비통하게 울렸고 뇌리에 깊이 새겨졌었다.

하지만 안창호가 경제적실력배양과 도덕수양을 국운회복의 신조로 삼으면서, 려객선에 몸을 싣고 대양을 건너다니고 렬차에 올라 중국과 조선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지 못했던 이 나라의 주인을 고형근은 지금 만저우의 깊은 산속에 펼쳐진 혁명군밀영의 초막에서 마주하고 앉은 심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