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8


 
 

제 2 장

8

 

고형근은 성정부나 현공소에 드나들기 꺼려했으나 이날 아침엔 경찰청장을 만나기로 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알고싶어 들린척 하면서 《개척민》촌에 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줄 심산이였다.

이번 행차에 경찰의 의혹을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저우(만주)국 내무부에 있다가 3년전에 이곳 성경찰청장으로 부임되여 온 모리따 시게루는 무식하면서도 교활한자였다. 지성이 낮은 인간들이 벼슬자리에 올라앉으면 항용 그러하듯이 모리따도 몸가짐이 틀스러웠고 웃을 때에도 점잖음을 나타내려고 했다.

고형근은 처음 그를 만나보고 자기가 도꾜에서 대학을 다닐 때쯤에 일본 어느 거리에서 실업자로 돌아치다가 《대륙의 랑인》으로 만저우에 건너온 건달군쯤으로 인금을 매겼었다.

모리따는 사실 그렇게 대륙에 건너와 관동주 수비대 (관동군)의 모략기관에 흡수되여 마적단이나 토비의 두목들과 접촉하면서 친일세력을 부식하고 반일분자들을 제거하는데서 공로를 세워 위조국가가 건립되자 내무부의 관리로 있다가 《사무라이정신》과 모략의 수완이 인정되여 지엔다오(간도)성경찰의 수석으로 등용된 인물이였다.

교활과 허세를 남달리 미워하는 고형근에게는 경찰고관차림에 뒤짐을 지고 아래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위엄있게 웃는 중년이 지난 경찰청장이 천박하게 느껴졌으므로 은근히 상종을 피했다.

이태전 어느 봄날에 그의 사무실에 불리여가 서울서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생사건에 가담하여 검속되였다는 통고를 들을 때엔 세상도 자식도 귀찮아지는 심정이여서 나무쪽무이를 한 경찰청장실 바닥의 한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묵묵히 앉아있었을뿐이다. 그후 다시 호출되여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아버지에 대한 지엔다오성경찰의 보증을 접수하고 아들을 석방시키겠다는 통고를 들을 때에도 역시 무표정하게 사무실바닥의 한곳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아들이 검속되였을적엔 의분을 금할수 없었고 석방되였다는 통고를 듣고는 의혹을 품었었다.

그후 제국대학에 입학하고 집에 들린 아들에게 그 일을 물었더니 《개자식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하고 쓰겁게 웃는것이였다.

하여 고형근은 지난번 서울에 나갔을적엔 그 일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고형근이 모리따와 마지막으로 만난것이 바로 전명석의 화물문제때문이였다. 전명석에게 무슨 혐의가 걸려있음을 느꼈으나 내막을 몰랐고 모리따의 협박이 있었으므로 그를 찾을념도 하지 못했다. 그후 전명석이 자기 사무실에 왔다가 돌아갈 때 형사들이 달려들고 자살사건이 벌어지자 경찰청장의 모략이 깔려있었음을 간파하고 그자와의 접촉을 더욱 꺼리였던것이다.

이날 고형근이 경찰청장실에 들어서자 모리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보다 훨씬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광산에 나가 재해처리를 도와주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성장님도 사장선생의 활약에 대단히 만족해합니다.》

고형근은 겸허하게 웃었으나 속이 께름했다. 동포들을 위해 뛰여다닌 결과가 재해처리를 도와준것으로 된다니 일본놈들을 도와준다고 비난하던 조봉길의 말을 경찰청장이 확인한 셈이였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동포들을 위해 일했을뿐이다.) 하고 그는 자기량심을 위안했다.

《개척민》촌에 나가보겠다고 했더니 모리따는 제켠에서 좋아하며 부추기였다.

《생각을 잘했습니다. 복지향에 가면 마을사람들을 칭찬하고 고무하시오. 복지향 부락민들이 좋은 사람들이요.

전번에 공산비적들이 량식구하러 온걸 제때에 신고해서 격퇴해버렸소.

부락민들이 아주 잘했소.

우리는 그 부락을 모범으로 내세우려고 하니 〈개척민〉후원회에서도 후원을 잘해주시오.》

《<공산비적>들이 지금도 있습니까?》

이것은 고형근이 무엇보다도 알고싶은 일이였다.

경찰청장은 내키지 않는듯 중얼거렸다.

《<토벌대>를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소탕했고 일부는 로씨야땅으로 쫓아보냈으나 아직도 잔당들이 남아있소. 남은자들이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는 모양이요. 안도쪽에서도 남아있는자들이 곡식밭을 찾아다니며 준동하고있소. 길을 다닐 때 조심해야 하오.》

모리따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층계에까지 따라나와 바래워주는것이였다.

(복지향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댔구나.)

그동안 일이 바빠 가보지 못했던 《개척민》들을 눈앞에 그려보며 속으로 뇌였다.

장새촌아래마을을 지나느라니 자기가 세운 간이학교에 들려보고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이번엔 그만두기로 했다. 중촌에 이르니 큰길에서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정미소앞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수비대원들이 돌아치는 모양이 눈에 띄였다. 고형근은 마차를 세우고 길바닥에 내려섰다. 이 마을 정미소는 그가 자기 재산을 내여 꾸렸으며 주인도 자기가 인선한 《지엔다오운송회사》에 속한 기업이였다. 돈벌이를 위해서보다 가난한 조선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선의에서 시작했었다. 워낙은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 흘러온 《개척민》들을 생각하여 복지향에 꾸리려던것인데 전기가 들어가지 못했을뿐더러 너무 구석진 현경지대여서 농촌마을들이 많이 널려있는 여기에 벌려놓았던것이다.···

고형근은 초라한 지붕들이 더덕더덕 널린 촌락을 둘러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엉성한 지붕들너머에 다락처럼 솟아오른 재빛목조건물이 정미소였다.

기계소리도 들리지 않는 휑뎅그렁한 마당복판에 누런 《만저우국》경찰복장을 한 경찰들과 사민들이 모여있고 울타리너머로는 구경군들이 조롱박처럼 매달려있었다.

경관 한명과 같이 걸어나오던 주재소장이 고형근이를 보자 《나오셨습니까?》하고 인사하며 지나쳐갔다. 그뒤로 키가 꺽두룩한 정미소주인이 당장 무슨 일을 칠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자 고형근이 물었다.

《무슨 일이요?》

《기계가 고장난데다 기계공이 앓아서 정미소를 돌리지 못했습니다.》

정미소주인이 좁은 이마에 주름살을 짓고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기계공은 어떻게 앓소?》

《감기가 심해져서 누웠는데 병을 털고나오면 하루이틀새에 돌리겠습니다.》

《병자들을 잘 돌보아주오.》

《예.···》

《경관들은 웬일이요?》

정미소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쌀 찧으러왔던 농민들이 반점에서 술먹구 주정질했다구 야단입니다.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니 구경군들이 모여들었습지요.》

《별치 않은 일이군.》

고형근이 그렇게 말하자 정미소주인은 기세를 얻은듯 코웃음치며 뇌였다.

《별치않은 일인데두 주재소녀석들이 글쎄 괜스레 호통만 치지요, 나-원!》

검댕이를 다 씻지 못한듯 검스레하게 꺼져들어간 눈확속에서 검은 눈이 번뜩이는 모습을 보고 고형근은 (속대가 꿋꿋한 사람이야. 경관이나 자위단들앞에서도 굽실거리지 않거든.) 하고 미덥게 여겼다.

《사장님, 언제쯤 돌아오시려는지요.··· 이달 회계를 맞추려는데.》

《회사에 들어가 서무에게 제출하게. 난 안도에도 거래할 일이 있어 돌아서 가려네.》

《예-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정미소주인이 굽석거렸다.

마차에 올라 길을 가면서 고형근은 저 신덕환이라는 사람이 정미소주인자리를 얻을 때까지 자기 집에 찾아오던 일을 회상했다.

조선에서 소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사상운동건으로 쫓겨나 살길이 막혀 고향을 떠났다면서 살아갈 방도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영민하고 뜻이 있고 활동성도 있어보이는 장정이 피골이 상접해서 울분을 품고 호구지책을 구하는 정상이 고형근에게는 측은하게 여겨졌다. 수심이 어린 검은 눈이 때로 의분에 번뜩이고 가슴에 쌓인 사연은 많은것 같은데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운송회사에 잡부로라도 받아달라고 구청이였으나 고형근은 일찌기 고등학교까지 다녔다는 신수멀쩡한 장정에게 궂은 일을 차마 시킬수가 없었다. 사무원으로는 받을 자리가 없었으므로 후날 다시 보자고 좋은 말로 타일러 돌려보내고 잊어버리고있었는데 석달이 지나 다시 나타났다. 농촌들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편지도 써주면서 살길을 두루 모색하댔는데 《개척민》들이 들어오면서 토성을 쌓고 산재가옥들을 이주시키는 바람에 장새촌에 왔다면서 정미소를 세운다니 그 일을 맡겨주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절절하게 청원하는것이였다.

고형근은 지식도 있고 열정도 있어보이는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장새촌에 있는 간이학교를 책임질 선생으로 천거하려했으나 당자가 훈장질은 다시 안하겠노라고 넌더리를 치는 바람에 소원대로 정미소를 맡겼던것이다.

(사람이 영민하고 세상형편에 대해 말하는걸 보면 속이 시퍼렇게 살아있어···)

말들은 땀에 젖은 덜미를 쳐들고 흙내가 싱싱한 적갈색 길바닥에 편자자욱을 늘쩡늘쩡 찍어갔다.

고형근은 손바닥만 한 창유리를 통해 새로 닦은 《대숙정도로》옆으로 흘러가는 번번한 공지며 그 저편에 펼쳐진, 우듬지에 이르기까지 가지를 맷맷이 찍어 병신을 만든 엉성한 수림을 내다보고있었다.

(나무들까지 제모양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군.) 하고 한숨을 지으며 생각했다.

마차는 성문앞에서 멎었다.

병정들이 증명서를 검사하는 동안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토성우에 얼기설기 돌아간 가시철조망이며 콩크리트로 다진 화점이며 성벽밑에 깊숙이 파놓은 구뎅이바닥에 박아세운 창날들이 오늘따라 더 무시무시했다.

부락은 여름에 락성식에 왔을 때보다 더 어수선했다. 길바닥엔 지푸라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집집의 마당들에서는 부옇게 먼지를 들쓴 사람들이 느직느직 움직이면서 지나가는 마차를 서름하게 내다보군 한다. 마차는 마을복판에 자리잡은 항공소앞에서 멎었다.

낡은 홑섶양복저고리에 가랭이가 달라붙은 군대바지를 입은 체소한 향장이 반갑게 맞으면서 공산군 십여명을 쫓아보낸 사연을 신이 나서 엮어댔다.

《원령감넨 상으루 수수쌀 열가마니나 받았심다. 횡재한 심이지요. 모두들 부러워함다.》

《···》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원래부터 족제비상을 한 이 향장을 농촌에 기생하는 건달군으로, 등치고 간 빼먹을 놈으로 속치부해왔었다.

《그밖에 다른 일은 없소?》

고형근이 랭담하게 묻자 향장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부역이 많아 야단임다. 군속에 징용간 사람덜은 돌아오지두 않았는데 도로인부 내라, 마초 실어날라라, 전보대 찍어놓아라··· 밭에서 곡석단은 언제 끌어들이구 탈곡은 어느 세월에 하구 땔나무는 언제 함미까. 군납미 바칠 가마니는 언제 짜구··· 글쎄 난 뭐··· 불평들이 많으니께··· 나두 힘듬미다. 기다가 살림살이가 모두 엉망이지로.》

늦은 점심을 치르고나서 향장이 마을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이끌었다. 고형근은 귀찮아서 사절하려다가 이 부락에 온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집들을 돌아봐야 눈이 감기는 살림형편이고 사람들을 만나 말을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하소연뿐이다.

마지막무렵에 토성아래 자리잡은 원로인네 집에 들렸다.

고형근은 근면하고 정직한 이집 사람들을 남달리 동정하며 친근하게 여기고있었다. 향장이 앞에 나서서 쫄랑거리며 공비들과 만났던 얘기를 하라고 권하자 맏아들 덕천이가 마지 못해 뜨직뜨직 이야기했다.

원로인은 토방에 쭈그리고 앉아 눈길을 숙이고 곰방대만 풀썩풀썩 빨고있었다. 덕천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원로인을 돌아본 고형근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총질로 대답하고 상까지 타먹었으니 마음이 개운치 못한게구나.) 하고 동정을 품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복지향을 떠나 안도쪽으로 넘어가다가 조봉길이와 만났다.···

락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어치는 산길을 걸어가는 두사람은 말이 없었다.

무거운 등산용배낭을 지고 앞에서 걸어가는 조봉길은 지팽이를 짚고 탑삭탑삭 뒤따라 오는 고형근의 모습을 이따금 뒤돌아보았다. 그의 뒤틀린 심정을 짐작은 했지만 풀어주거나 위안할 경황은 없었다. 산속의 인적기에 마음을 써야 했고 지세를 보아야 했으며 먼 산에서라도 적정이 나타나지 않는가를 끊임없이 살펴야 했다. 게다가 이제 와선 그에게 여러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이따금 뒤떨어졌던 그가 다가오는걸 기다리면서 《이런 산길을 처음 걸어보시지요?》, 《유격대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십년세월 헐벗고 굶주리면서 이런 산속을 꿰질러다니며 일본놈들과 싸웠습니다.···》하는 등의 짤막한 말들을 스스럼없이 번지군 했다.

고형근은 이렇다하게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산속을 걸어가느라니 평생을 지내온 큰 도회와 시가의 생활단편들이 떠올랐으나 그때그때의 찰나적인 회상이였고 줄기차게 흐르는 그의 상념은 김일성장군이 어째서 나를 만나려고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떠나기전부터도 어림해보았지만 짐작은 여전히 한곬으로 흘렀다. 자기가 보매에도 출중한 인물이던 전명석이라는 젊은이가 활동과정에 자살했으니 그 연고를 캐여보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내 해명하지 못했으니 장군의 위엄으로 물으시리라.

물론 그 한가지만은 아닐것이다.

자기가 일본놈들을 도와준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금에 와서는 그 자신도 변명할 여지가 없음을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지울것이다. 큰 인물이 하는 일이니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다 해도 거기에 따르는 제재나 후일의 담보를 요구할것이다. 궁극에는 자기를 공산군의 영향하에 두자는것이리라.···

이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립장이 뚜렷했으니 물질적인 지원은 제공할수 있지만 공산군의 지지자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다른 한편 자기의 사회적명망과 관련해서도 추측해보았다.

근년에 중국의 일본강점지역인 베이징(북경), 티엔진(천진), 난징(남경) 등지에서 큰 기업가나 자산가들, 명망높은 학자나 사회활동가들이 머나먼 섬서, 섬북의 산간에서 싸우는 공산군과 내통하여 무기와 자금, 군사정보들을 제공하다가 정체가 드러나서 파문을 일으킨 사실들을 그는 알고있었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도 그런 전술을 쓰지 않을 까닭이 없으니 자기를 심복으로 삼아 그런 공작에 인입하자고 할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속에 칼을 품고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지내는 그런 공작을 하지 않을것이며 공산주의자들과는 내통하지도 한동아리로 되지도 않을것이다.···

나무뿌리에 걸려 휘청거리고 마른 풀숲과 앙상한 가지들을 헤치며 걸어가면서 그러루한 생각을 더듬던 고형근은 육신이 지치고 피로가 심해지자 만사에 시들해져서 간신히 따라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