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6


 
 

제 2 장

6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두양산(오도양산)밀영으로 떠나시기에 앞서 고형근을 사령부에까지 안내해오라는 지시를 조봉길에게 보내시였다. 뚜렷한 사상이 없다나니 본의아니게 일제의 시정을 도와주는 고형근이라는 인간에게서 조선사람으로서의 량심과 제나름의 지조를 느끼고 호감을 품으신것이다.

고형근이를 만나 아직 밝히지 못했을뿐더러 단서도 잡지 못한 전명석의 사망원인도 알아보실 생각이였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고형근이 격해서 물을수도 없게 표표해지더라는 오백룡의 말을 참작하여 당자를 만나 그의 사람됨을 헤아려가면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우두양산밀영에 도착하니 대원들의 기분은 흐리여있었다. 농촌지대의 군중공작에 나갔던 박중돈소조는 수비대의 추격을 받아 소대장이 경상을 당했고 식량저장임무까지 주어 안도쪽에 파견했던 오백룡소부대도 일이 시원치 않다는 소식이였다. 중간보고를 가지고 떠난 통신원들도 도중에서 《토벌대》와 조우하여 한명은 부상당해 도착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병실초막에 들려 부상자들의 상태를 알아보시고 나오는 걸음에 개울가의 가지무성한 자작나무아래에서 오백룡소부대의 중간보고부터 들으시였다.

···오백룡소부대는 지난여름 부대들이 분산활동을 맹렬하게 벌리던 때에 유격대원들에게 자기 집 쌀을 퍼주고도 돈을 받을 대신 오히려 좋은 말을 한 일이 있는 서남차마을의 촌장을 찾아갔다. 했으나 서남차는 마을이 작은데다 많은 곡식을 팔아줄만큼 잘 사는 집들도 없었으므로 촌장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30리쯤 상거한 다른 마을에 사는 자기와 사이가 좋은 중국사람을 찾아가 8백석의 곡식을 밭에 세운채 사게끔 도와주었다. 촌장은 돌아가고 유격대원들이 한창 가을걷이를 하고있을 때에 경찰대가 달려들었으므로 군중공작을 벌리지 못했을뿐더러 식량공작도 적들과의 총격전속에서 진행된다는것이였다.

《추수작업이 여러날 끌게 되니 어느 놈이 뒤가 켕겨 경찰에 알린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잘거리며 흘러가는 개울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식량때문에 동지들이 또 피를 흘리게 된것을 가슴아파하시였다.

《련대장동지는 임무를 수행하고나서 배신행위인가, 어느놈이 밀고했는가 하는걸 결판을 짓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밭주인은 촌장과 가까운 사이고 촌장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니 촌장을 따지면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통신원은 자기 동무들의 견해라고 하면서 촌장에 대해 설명했다.

《···농사를 짖던 사람같지는 않았습니다. 말씨도 선비같고 그 마을에 온지도 얼마되지 않는 사람이였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말씀이 없으시였다.

(여름에는 유격대를 성실하게 도와주던 사람이 가을에는 유격대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손때묻은 밀정일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 하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그렇지만 사람을 겉만 보고 어떻게 평가할수 있는가.···

다른 고장에서 온 사람같다는 말을 더듬으시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눈을 감고 조용히 사색을 모으시였다.

여러해전 차석진을 알게된 후 그이께서는 먼곳에 떨어져있는 후방병원에 들려 리순정이를 만나보고 녀대원의 높은 의식상태와 혁명열의에 감동하시였다. 집을 뛰쳐나온 뒤에 부모님들이 어떻게 되였는지 몰라 안타까와하는 녀대원의 정상이 마음에 걸려 그후에 지방조직을 통해 알아보시였으나 행방이 묘연했으므로 뇌리에 깊이 새겨졌었다. 지금 통신원의 보고를 들으니 그 사람이 혹 교장으로 있다가 체면을 유지할수 없어 시내에서 사라져버린 리순정의 아버지가 아닐가 하는 의문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으시였다.

(우리 동무들이 곤경을 치르면서 보복하려고 하는 그 촌장이 혹시 리순정의 아버지라면···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한 일이 빚어지는가.

하지만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밀정일지도 모르는 인간을 용서해준다면 장차 우리 투쟁에 헤아릴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수도 있다.

그가 설혹 혁명가의 아버지라 해도 의식적인 해독분자라면 징벌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가슴이 답답하여 어깨우에 드리운 자작나무가지를 한손으로 치우면서 천천히 일어서시였다. 마주앉아있던 통신원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따라일어서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허나 그이께서는 그의 거동에는 개의치 않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마냥 마른 풀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통신원은 차츰 멀어지는 희벗하게 빛이 바랜 그이의 군복잔등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졌다.

유격대가 일하는 곳에 적들을 끌어온 촌장놈을 심판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사령관동지께서는 어째서 저렇게 기분이 무거우실가··· 하고 그는 의아해하였다.

떨기나무숲앞에서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다른 잎들이 널려있는 풀밭을 굽어보며 서계시다가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다시 자작나무아래에까지 왔으나 통신원의 존재는 잊으신듯 굽이돌아흐르는 개울쪽에 눈길을 두고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조용히, 마디마디가 분명하게 말씀하시였다.

《돌아가서 련대장동무에게 전하시오.

사람들의 운명을 다루는 마당에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동향과 사건의 경위를 충분히 알아보아야 하고 어디까지나 혁명에 리익이 되게 심중하고 너그럽게 처리해야 하오.

몇백석의 식량을 얻는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얻고 군중을 쟁취하는것이 훨씬 더 중요하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원 한명을 더 붙여 통신원을 돌려보내고 나서 박중돈소조의 활동도 료해하시였다. 박중돈은 동무들과 나란히 그이를 마주하고 앉아 공작경위를 말씀드리고 나서 주먹을 틀어쥐고 개탄했다.

《···부락에 들어갈수가 없는데다 사람들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우니 딱한 일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무거운 마음으로 듣고나서 신중하게 말씀하시였다.

《일제가··· 총독놈이 바로 그걸 노리고있소. 그렇지만 우리는 방도를 찾아 참을성있게, 꾸준하게 군중속에 들어가면서 눈을 틔워주고 진리를 깨우쳐주어 요새를 안으로부터 허물어야 하오.

오늘은 비록 그 <개척민>들이 우리를 반대해서 소래기를 지르면서 밀려다녔다면 래일에는 일제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품고 소리없이 뭉쳐 우리가 이끄는 투쟁의 길에 나서게 해야 하오.

반드시 그렇게 될것이요.》

이날 그이께서는 박중돈이를 부상당한 통신원과 함께 밀영병원으로 후송하도록 조처하시였다. 저녁식사후에는 병실초막앞 잔디밭에 대원들을 모이게 하고 그들과 마주앉아 담화를 하시였다.

《···지금 우리가 하고있는 소부대활동은 적의 대부대들과 싸우는 유격전쟁보다 헐하지 않을뿐더러 더 어렵고 힘겨운 투쟁입니다. 물론 우리는 앞으로 전투활동도 할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은 군중공작입니다.

군중공작을 위주로 하는 소부대활동에서는 적아를 분간할수 없는 경우가 많고 어떤 수단으로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다 일제는 인민들이 우리를 적대시하도록 악선전을 하면서 부추기고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편이 되여야 할 사람들에게서 피해를 받을수도 있고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희생될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부대와 떨어져 적구에서 단독으로 공작하다나니 애로와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활동과정에 암초에 부딪쳐 도움을 받으려고 달려왔던 차석진을 생각하시였다. 변변히 휴식도 시키지 못하고 다시 떠나보내지 않을수 없었던 공작지의 환경을 상상하시니 흥분이 차오르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엄숙하게 듣고있는 대원들을 둘러보시고는 흥분을 자제하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난관앞에서 물러서겠는가! 한두번의 실패가 있었다해서 기가 죽어 침울해지고 적들의 봉쇄가 심하다해서 산속에 틀어박혀 편안히 지낼 궁리나 한다면 그게 무슨 투사이고 혁명가인가!

시련이 중중첩첩한 길을 뚫고나가는 사람, 죽을 길도 오히려 웃으며 떳떳이 걸어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투사이고 혁명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총탄이 비발치는 적진을 향해 붉은기를 휘날리며 달려나갔고 눈보라치는 만저우(만주)의 산과 들로 주린 배를 졸라매고 행군해가면서도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혁명의 한길 노래로 가라!>

이것이 우리의 사상이고 구호입니다.》

그이의 열정넘치는 말씀에 대원들은 모두 가슴이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