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4


 
 

제 2 장

4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만강연안일대에서 소부대들의 전투활동을 조직지도하시고 돌아오는 길에 지영갑소조가 공작하는 만수툰의 림시밀영을 찾으시였다. 소부대활동경험이 없는 그들을 현지에서 도와주시려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지영갑이네를 찾아가는 이 길에서도 이즈음 마음속에 은근히 한자리 차지하고있는 고형근이를 생각하시였다. 지엔다오(간도)를 중심으로 하여 벌리는 그의 활동은 어느모로 보나 만저우(만주)의 신천지에 《왕도락토》를 꾸려간다는 일제의 허황한 나발에 춤을 추는 친일파의 놀음이였다.

하지만 오백룡의 공작보고에서는 친일파로만 볼수 없는 인간상이 나타나고있었다.

친일활동을 한다는 지적에 만저우에 사는 동포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몽매하게 지내야 하느냐는 반박, 유격대가 일제타도를 목적한다는 주장에 서글프게 웃으며 어림도 없다고 한숨짓더라는 모습, 유격대를 동정하여 스스로 군자금을 내놓으면서도 조선사람들을 반일의 길에 하나로 묶어세울수는 없다면서 개탄하더라는 사연···

반일의 뜻은 있으나 강성해지는 일제의 세력앞에서 희망을 잃고 제나름의 량심을 지켜가는 인물이였다.

이 지방 조선사람들속에서 신망도 있고 영향력도 있는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친일파로 몰아서는 안되며 혁명의 편에 끌기도 어려운 인물이 유격대원의 가까운 친척이여서 더욱 생각이 많으시였다.

전명석의 희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김일성동지께서는 만수툰으로 가시던 길에 그 광산에서 굴이 무너져 많은 희생자가 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걱정에 싸이시였다.

광부들이 희생되였다면 알아볼 여지도 없이 대부분이 조선사람들일것이였다.

지영갑소조의 림시밀영은 광산에서 십여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꾸려놓은 초막이였다. 잎떨어진 분지며 가시개암나무들이 뒤엉킨 떨기나무숲에 가리워져 가까이에서도 언뜻 눈에 띄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원들과 반갑게 만나고 주변을 돌아보시면서 만족해하시였다. 초막안의 나무가지로 엮은 당반에 쌀마대며 콩자루가 놓여있고 말라가는 토끼가죽도 서너장 칡으로 이은 바줄에 널려있었다.

사령관동지를 맞이하여 기쁨과 감격에 넘쳐 안내하던 지영갑은 초막밖에 나와 그동안의 공작정형을 들어보자는 그이의 말씀에 어색한 웃음을 띄우고 난처해하였다. 그이께서는 풀밭에 앉아 지영갑을 가까이로 부르시였다.

《동무들이 여기와서 사업한 정형을 사실대로 말하면 되오. 도착한지 한달밖에 안되는데 광산형편을 료해하면서 밀영을 꾸리고 생활조건을 마련해가느라니 본격적인 공작을 들이대지 못했을수도 있소. 마음놓고 이야기하시오.··· 식량은 어떻게 보장하고있소?》

동무들속에서는 호협한 사람으로 인정되였으며 말도 설득력있게 잘하던 지영갑이였으나 사령관동지와 가까이 마주앉은 지금은 신중해져서 생각을 더듬으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것은 사령관의 권위나 위엄때문이 아니라 말만 듣고도 진상을 환하게 꿰뚫어보시는 그이의 예리한 통찰력앞에서는 허세도 과장도 무색하게 된다는것을 잘 알기때문이였다.

《여기 구갱에 조직되여있는 지하조직책임자인 의형제패의 맏이가 동발목재상의 귀틀집에까지 쌀을 보내줍니다. 때로는 그 목재상이 구입해주기도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하늘가에 걸레짝처럼 널려있는 갈가마귀떼들이며 락엽이 날아오르는 릉선마루의 헐벗은 수림을 바라보며 기다리다가 지영갑이 광산형편을 보고하기 시작하자 주의깊이 들으시였다.

만수툰광산에는 4년전까지 광주의 서기로 공작하던 조봉길이 꾸려놓은 지하조직이 있었다. 중일전쟁발발을 전후하여 광산이 군속으로 넘어가면서 징용자들이 쓸어들고 로동자수는 3배나 불어 8백여명이 되였으나 조직은 이렇다하게 발전을 보지 못했다. 성원들이 두루 류동된데다 조직을 지도하던 조봉길이마저 광산에서 밀려나 옌지(연길)시내에 옮겨앉았던것이다. 지영갑은 남은 조직성원의 한 사람인 의형제패의 맏이와 련계를 맺고 광산형편을 료해하면서 조직을 확대하려고 시도하던중에 큰 재해가 생긴것이였다.

지영갑소조가 도착한지 20여일 되나마나한 때였다.

새로 파들어가던 신갱에서 광층이 무너지는 바람에 수십명이 생매장을 당했고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터져 운신하지 못하게 된 부상자가 부지기수였다.

시체와 부상자들을 끌어내는 신갱의 갱구일판은 검붉은 피로 물들여졌다.

광산측에서는 중상자들을 치료시설이 있는 옌지시내로 실어갔다. 병원에 실려갔어도 처치를 받지 못하고 숨이 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형편이 험악해져 수습하기가 어려워지자 광산측에서는 돌사태에 묻힌 광부들을 그대로 매장해버리려고 했다. 광부들이 광산사무소에 몰려가 시신을 파내여 고향에 보내줘야 한다고 항의하며 들끓었다.

만수툰에서 일어난 재해의 소식은 주변일대를 휩쓸고 시내에까지 퍼져 주민들을 격동시켰다. 광부들속에서는 악질감독들과 재향군인출신 경비원들을 처단하여 원한을 풀자는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지영갑은 광부들의 격앙된 기세를 고무하여 광산사무소와 중요설비들을 들부신 후 로동자들을 해산시켜 광산을 페허로 만들어버릴 적극적인 투쟁을 계획했었다. 허나 형편이 험악해지는것을 보고있던 광산당국의 요청으로 경찰수비대 한개 중대가 만수툰에 급거주둔했다.

폭동적인 진출은 즉시에 탄압당하리라는것을 알고 지영갑은 전술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로동자들속에서 태업을 선동하여 광산의 모든 기능을 마비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사태를 주시하고있는 때에 옌지시내의 조선사람들이 위문단을 무어 위문품과 구호물자를 싣고 광산에 찾아왔다. 위문단에는 치료대도 있어 병원에 실어가지 못한 부상자들을 치료도 했으며 먹을것을 싸들고 붕락현장이나 숙소에 찾아다니면서 위로도 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생각에 잠겨 저녁해살이 비쳐드는 떨기나무숲을 바라보고계시였다. 지영갑의 보고는 그들이 한 일이 아니라 하려고 했던 일에 대한 리론적분석이였다. 아마 그는 그동안 일은 많이 못했지만 자기가 로동계급의 투쟁을 지도할수 있는 리론실천적능력을 소유하고있음을 나타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소 유감스러웠으나 얼마전까지 유격전쟁을 하던 대원들이 새 임무를 받고 광산생활에 깊이 파고들기엔 경험도 시간도 부족했으리라고 리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보고를 마치고 긴장하게 앉아있는 지영갑의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영갑동무, 생소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애를 많이 쓰고 고생이 많았소. 짧은 기간에 광산실태를 깊이 료해했소.···

이제부터는 로동현장에 깊이 침투하여 광부들과 사귀면서 반일감정, 반일사상을 고취해야 하오. 동지들을 규합하고 조직을 더 튼튼히 꾸려야 하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요.

조직된 부대가 없이는 폭동적진출이건 태업투쟁이건 전술을 꾸밀수가 없소.

지금 당장은 부상당한 사람들을 광산당국이 책임지고 치료해주며 그들의 생활조건을 보장해줄것과 사망한 사람들의 유해를 부모형제들에게 넘겨주고 유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해줄것을 강경히 요구해야 하오.

놈들이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건 뻔하지만 이런 문제를 들고 광부들을 선동하고 합법적인 투쟁에 궐기시켜야 하오.···》

지영갑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자기가 조직원들과의 접촉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사업보고를 대치한 사실을 환히 꿰뚫어보시고도 사령관동지께서 한마디의 추궁도 없이 고무하여 방향을 제시해주시는 마당에서 죄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하시던 말씀을 마치고 너그럽게 웃으며 화제를 돌리시였다.

《지금 광산에 와서 활동한다는 위문단성원들에 대해 료해해보았소?》

《예, 옌지시내의 조선인공직자들과 유지들, 교원들, 의사들,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공장과 제조소, 농촌사람들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잘했소. 그런걸 다 알아야 하고 그 사람들에게도 재해의 원인이 일본놈들에게 있다는걸 똑똑히 인식시켜주어야 하오.

영갑동무, 래일쯤 동무가 직집 접선장소에 내려가서 위문단성원들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알아가지고 오시오.》

지영갑은 대답없이 상의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는것이였다. 그것을 받아 펼쳐진 갈피를 들여다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지영갑이 이미 자료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진작 내보이지 않은 까닭을 짐작하시였다. 위문단성원명단의 첫머리에 고형근이 올라있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고모부때문에 위축되여 있는 지영갑의 심정을 리해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알아본데 의하면 영갑동무의 고모부는 속이 깊고 진실한 사람같소. 안목이 높지 못하고 계급적제한성이 있다보니 일본놈들에게 속히우는 모양이요.》

지영갑은 얼굴이 환해졌다.

《고정하고 인정있고 의리가 깊은 분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심중하게 들으시였다. 수첩을 돌려주면서 갈피의 한곳을 짚으시였다.

《우리가 조봉길이를 만나려고 하는데 래일 접선장소에 나가 련계를 취하시오. 이 사람이 몇해전까지 여기서 광주의 서기로 있었으니 서로 잘 아는 조직원이 있을거요. 그러되 이쪽이 누구라는걸 알려주어서는 안되오.》

그이께서 조봉길이를 만나려고 하신것은 오백룡의 공작을 통해 더 알게 된 고형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견해를 그에게 알려주면서 현재 만수툰에서의 투쟁방도를 토의하시기 위해서였다.

조봉길이 이곳 실정을 잘 아는터이므로 지영갑소조의 활동에 도움을 줄수 있는 좋은 방도도 찾을수 있고 필요한 연줄도 마련할수 있을것이였다.

이틀이 지나 접선장소에서 돌아온 지영갑이 련계가 이루어졌음을 보고했다.

《조봉길이라는분이 일이 다망하여 시간을 많이 낼수 없다기에 만날 장소를 광산가까이에 있는 산골짜기에 정했답니다.》

《좋소, 수고했소.》

이튿날 그이께서는 두명의 경위대원을 데리고 지영갑의 안내를 받으며 광산쪽으로 내려가시였다. 분비나무들이 들어선 골짜기에 실개울이 흐르고있었다. 개울가에 서있는 늙은 돌배나무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여 있었으나 시간이 되여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사복으로 변장한 경위대원 한명과 지영갑을 접선장소에 내려보내고 골어구가 바라보이는 산비탈에 앉아 기다리시였다.

흐리고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반시간쯤 지나 골안 아래쪽에 사람이 나타나더니 개울가의 오솔길을 따라 스적스적 올라오는것이였다. 중절모를 쓰고 진회색 춘추외투를 입은 그 사람이 개화장을 천천히 옮겨짚으며 산천경개라도 구경하듯 수림을 지나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계시던 그이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어리였다. 먼데서 보아도 조봉길이 틀림없었다. 돌배나무아래에 있던 두 대원이 그 사람을 스쳐지나 골안 아래쪽으로 내려가는걸 보시고는 비탈을 내려 접선장소로 향하시였다.

스적스적 걸어오던 조봉길은 환하게 웃으며 내려오시는분이 사령관동지임을 알고는 눈이 둥실해지더니 오솔길을 달려오르면서 격해서 부르짖었다.

《사령관동지-》

그이의 손을 두손으로 움켜잡은 조봉길은

《사령관동지, 어찌 여기까지 다 오셨습니까!》 하고 걱정과 불안을 털어놓았다.

《두만강쪽에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렸소.》

《두만강쪽에도 <토벌대>들이 뒤덮였을텐데···》

《전사들이 목숨걸고 싸우는데 사령관이 안전한 곳에 앉아있어서야 되겠소!》

웃으며 하시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 뜨거워진 조봉길은 한숨을 쉬고나서 잠자코 있다가 땅바닥에 던졌던것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개화장이 아니라 가늘고 긴 자루가 달린 광산감독들이 쓰는 딱따구리 망치였다.

《제가 아는 조직원이 찾아와서 유격대공작원이 만나자고 한다기에 접선시간과 장소를 약속해놓고도 몸을 뺄수가 없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여기 오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조봉길은 늦어진것을 죄송스러워했으나 그이께서는 거기엔 개의치 않고 공작정형을 들어보자시며 분비나무가 총총히 들어선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시였다.

마른 새초밭에 자리를 잡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맞은켠에 앉은 조봉길의 수척해진 모습을 여겨보면서 위문단활동까지 하느라고 바쁘게 지내는 모양이구나 하고 측은하게 여기시였다.

《봉길동무가 위문단에 참가한건 잘한 일이요.

지하공작원은 합법적인 활동범위가 클수록 좋소.》

조봉길은 과분한 치하에 게면쩍어 했다.

《만수툰광산에서 재해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저는 또 숱한 조선사람들이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여기에 꾸려놓았던 조직성원들이 잘못되지 않았나하는 불안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징용자들이 일하는 신갱에서 사고가 생겼다는것이였습니다. 저는 이런 참사가 일어난것을 계기로 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광부들속에서 반일선전을 적극 벌리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때에 운송회사 사장인 고형근이 위문단을 조직한다기에 저도 솔선 가담했습니다. 또 이 기회에 고형근사장과도 친숙해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위문단성원들을 모집하고 위문품과 자금이 마련되여 여기로 떠나려는 때에 서울에서 차석진동무가 덜컥 나타났습니다.···》

《차석진이?》

그이께서는 놀라시였다.

《어서 계속하시오.》

《차석진동무를 사령부밀영에 안내해갈 경황이 없었습니다. 금시까지 재해구제때문에 걱정하며 돌아치던 제가 갑자기 다른 일이 있어 빠지겠다고 하면 의심을 살것 같아서 할수 없이 석진동무를 비밀아지트에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여기에 와서도 석진동무가 기다리고있을걸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동안 잠자코 계시다가 말씀하시였다.

《만수툰형편과 위문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소부대동무들로부터 들었소. 사망자들의 유해처리는 어떻게 되여가오?》

《로동자들은 고향에 통지하여 부모형제들에게 위자료와 함께 넘겨줘야 한다고 떠들지만 광산당국은 그럴 의향이 없습니다. 시신을 고향에 보내는 공정이 복잡한데다 세상에 소문이 퍼질가봐 두려워하는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떠들고 요구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반일사상을 고취해야 하오.》

《그런데 위문단으로 온 고형근선생이랑 중간에 끼여들어 절충식으로 나오고있습니다. 합장묘를 잘 꾸리고 가족친척들을 불러 제사를 지내고 위자료를 주어 돌려보내자고 주장했습니다. 광산측이 말을 듣지 않으니 시내에 나가 성장, 성경찰청장에게 상소하겠답니다. 자기딴으로는 죽은 조선사람들을 위해 뛰여다닌다지만 결국은 사태를 무난하게 처리하자는 립장입니다.》

《절충주의는 투항주의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고형근의 철저치 못한 립장이 빚어내는 후과를 통분하게 여기시며 이 사람을 단단히 깨우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오백룡동무가 실패는 했지만 그 공작을 통해 많은걸 얻었소.

고형근이 반일투사를 경찰에 밀고하거나 해칠 사람 같지는 않소. 그 사람 가까이에 나쁜놈이 배겨있을수 있소. 가까이에 배겨 고형근의 일거일동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들도 감시할수 있소. 조봉길동무도 이런 측면에서 경각성을 높여야겠소.》

사령관동지께서 만수툰공작조의 활동조건을 유리하게 해주려고 마음쓰시는걸 알자 조봉길은 위문단이 철수할 때까지 공작조의 겨울나이량식을 보장해줄 안전한 통로를 마련해주며 반일조직의 확대를 위해 의형제패의 한 젊은이를 신갱의 감독자리에 앉히게끔 주선하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봉길이 위문단에 속해 이곳에 온것은 여러모로 잘한 일이라고 치하하시면서 언제까지면 위문단활동이 끝나게 되느냐고 물으시였다.

《방금 시작했으니 시일이 좀 걸릴것 같습니다.》

《차석진동무를 은신시킨 아지트는 시내에 있소?》

《시내의 자전거수리소 뒤채에 있습니다.》

《아지트를 아는 사람이 또 누구요?》

《우리 조직련락원이 알지만 거기에 차석진이 있다는건 모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결심을 밝히시였다.

《우리가 차석진동무를 찾아가겠소.》

조봉길은 눈이 떼꾼해졌다.

《사령관동지, 안됩니다. 거기가 어디라고 가신다는겁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지엔다오성경찰청과 악명높은 헌병대본부가 있고 지금은 노조에 <토벌사령부>까지 틀고앉아 적들이 불개미 싸다니듯 와글거리는판에··· 안됩니다.》

조봉길은 기가 막혀 얼굴이 컴컴해졌으나 사령관동지께서 여유있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이 생각을 굴려 한가지 방도를 찾았다.

《사령관동지, 래일이라도 제가 기회를 만들어 시내에 가서 차석진동무를 데려오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여기 그냥 계십시오. 여기도 안심치 않은데. 적들의 소굴에··· 절대로 안됩니다.》

그이께서는 너부죽한 얼굴이 험상궂어지면서 제 주장만 내세우는 조봉길을 보면서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봉길동무의 심정은 잘 알겠소. 그렇지만 위문단에 왔다가 서둘러 시내에 갔다온다는것도 삼가해야 할 일인데 남의 눈에 띄여서는 안될 공작원을 데리고오는것은 더욱 안될 일이요. 그렇다고 이 먼곳에까지 찾아온 차석진을 아지트에서 기다리게 할수는 없소. 그 동무에게 급한 일이 생긴게 분명하오.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련락원의 주소와 암호만 대주오.》

조봉길은 풍신좋은 외모에 반죽좋은 성격이였다. 너그럽고 리해성이 있어 아무 일에서나 선선히 응하는 성미였지만 지금은 우울하게 눈을 내려깔고 입을 다문채 응대가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진지하게 설복하시였다.

《봉길동무도 여러해전부터 적들의 코밑에서 목숨걸고 싸우고 차석진동무도 적의 소굴에서 활동을 하고있소. 정체를 숨기고 사는 차석진이 제 자리를 비우고 여기까지 달려온걸 보면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겨 떠나온게 틀림없소.

대원들이 혁명임무를 수행하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뛰여다니는데 사령관인 내가 두려워해서야 되겠소!

사령관이 위험앞에서 주저한다면 전사들이 누굴 믿고 험지에 뛰여들고 조선혁명이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가겠소!》

생각에 잠겨 엄숙하게 말씀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웃으며 이으시였다.

《심정대로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토벌사령부>따위가 옮겨앉은 지엔다오의 중심지대가 아니라 총독부나 조선주둔군사령부가 위엄을 부리고있는 서울바닥에 나가 투쟁을 지도하고 싶소.》

컴컴해진 얼굴을 숙이고있던 조봉길은 어쩔수 없는듯 한숨을 쉬더니 그이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사령관동지, 절대로 시내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시내에서 멀지 않은 산속에 제가 장차 무장대의 림시밀영으로 쓰려고 보아둔 천연바위굴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산비탈의 바위같지만 틈새기로 들어가면 큰 굴이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경위대원들을 데리고 거기 가서 기다리십시오. 한 동무가 시내에 침투하여 우리 련락원을 만나 차석진동무를 그곳에 데려가게 하겠습니다.

련락원의 주소, 접선암호 등은 그 동무에게 제가 직접 알려주겠습니다.》

《그러니 나한테는 말할수 없다는거겠소!》

그이께서 유감스러운듯 말씀하시자 조봉길은 정색하고 대답했다.

《그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이 조건에 동의하셔야만 저는 접선을 조직하겠습니다.》

《좋소, 동의하오. 동무의 고집이야 누가 꺾겠소!》

그제서야 비로소 조봉길의 둥그스름한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떠돌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날밤 경위대원들을 이끄시고 산간도로를 따라 《토벌사령부》가 자리잡은 지엔다오의 중심시가를 향해 떠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