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2


 
 

제 2 장

2

《조장동무, 여기가 퍽 낯이 익습니다.》

실팍한 몸집에 동작이 굼뜨고 허튼 소리도 곧 잘하여 동무들속에서 《홍대포》로 통하는 젊은 대원이 말했다.

《저-기 저 높은 산을 보니 생각납니다. 재작년 여름에 우리가 퉁화(통화)쪽으로 나갈 때 행군하던 곳이구만요. 그때 우리가 여기를 지나서 안투(안도)쪽으로 빠지지 않았습니까!》

박중돈은 그가 가리키는 높은 산을 돌아보면서 말이 없었다.

《···》

《조장동무가 그때 여기 어디서 식량공작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홍대포》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했으나 평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가슴아픈 사연을 이 고장에 남겼던 박중돈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을뿐이다.

이번에 공작임무를 받고 떠날 때 그는 사령관동지께 이전날 식량공작하러 나가서 만났던 박창술이라는 함경도농민을 만나보고 련계를 가지고싶다는 의향을 말씀드렸었다. 그때 그 집에서 쌀을 지고 떠나오다가 적들에게 추격을 당했으나 박창술이 자기네를 밀고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는다면서 그와 사귀게 된 경위까지 말씀드리였었다.

이국살이를 떠나 두만강변의 나루터에 당도했을 때 두 자식을 거느린 젊은 류랑인 부부가 어둡기전에 건네달라고 사공을 붙잡고 애원하던 일이며 매생이가 작아서 하는수 없이 박중돈이 아이들을 보아주며 기다리던 일, 다시한번 매생이가 건너갔다 와서 나중에 그가 혼자 배에 올라 어두워진 남의 나라 땅에 가닿았을 때 봄바람이 세찬 강변에서 그네들 한가족이 우들우들 떨면서 기다려주던 일들을 그대로 털어놓았었다.

그들과 한가족이 되여 이역의 거친 땅을 헤매이다가 이 근처의 작은 산간마을에 자리를 잡았었다.

마음어진 박창술에게 친동기처럼 정이 들어 일손없는 그 집을 도와 화전을 일구었으며 씨붙임까지 해주고 제 살길을 찾아 광산으로 떠날 때 온 가족이 등성이까지 따라나와 바래워주던 일을 정겹게 회상했었다.

박중돈의 과거지사를 다 들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시면서도 지금은 유격대의 공작원으로 파견되는만큼 경각성을 높이며 임무를 망각하지 말라고 가르치시였었다.···

릉선길을 타고 고개마루에 올라선 그들은 누렇게 말라버린 황량한 들판을 가르며 뻗어간 대도로를 보았다.

방금전까지 낯익은 고장이라고 싱글거리던 《홍대포》는 눈이 둥실해져서 부르짖었다.

《아아-니, 이게 어딥니까!》

박중돈은 들판건너편의 산기슭을 더듬으며 농가들을 찾아보았다. 가을하고 난 텅빈 밭들이 펼쳐져있을뿐 마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쉬잇-》

다른 대원이 속삭이자 그쪽을 돌아봤다. 골짜기아래에서 검스레한 모자를 쓰고 허옇게 너풀거리는 옷을 입은 사람이 크지 않은 짐을 지고 릉선길을 오르고있었다. 그들은 가둑나무아래 앉아 동정을 살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넘어서자 비탈을 꿰질러 뒤를 따랐다. 다음 고개에 올라서보니 마른 풀밭에 앉아 곰방대를 빨고있는것은 농사군차림의 늙은이였다.

벗어놓은 부들망태안에서 무엇인지 꿈틀거리고있었다. 인적기에 고개를 돌린 농민은 허름히 처져내린 벙거지전에 손을 올려 넘어오는 해빛을 가리우며 길손들을 불안하게 살피는것이였다.

《아바이, 안녕하십니까?》

웃으며 텁텁하게 인사하는 박중돈에게 눈길을 멈춘 로인은 그의 강마르고 굳세여보이는 용모에 위압을 느낀듯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좁은 이마에 코마루가 덩실한 로인의 얼굴에 걱정이 어리는것을 보고 《홍대포》가 푸접좋게 그앞에 넙적 퍼더버리고앉았다.

그가 부들망태아구리를 벌리고 손을 넣어 투닥거리자

《꿀··· 꿀꿀···》

하고 돼지새끼가 뛰놀았다.

《두우- 두 두.》

《홍대포》는 량미간에 흰점이 박힌 새끼돼지를 끌어내여 등줄기를 쓸어주면서 로인을 돌아본다.

《아부님, 이거 어디서 좋은 종자를 얻어옵니다. 주둥이가 뭉툭한게 입이 걸어서 잘 크겠습니다.》

로인은 마치 제 손자라도 귀여워해준듯이 벙글써해져서 곰방대를 빨았다. 가늘어진 눈길로 새끼돼지를 보다가 뜨직뜨직 말했다.

《짐승개가 없이문야 그게 무신 농사군네 집이요. 벼르구벼르다 가을걷이를 대충 마치구 이웃마을 가서 사오는기요.》

《아부님은 어디서 사십니까?》

《내사 이 너메 복지향서 사오.<개척민>으루 들왔단께.》

《고향은 어뎁니까?》

《멀고먼 충청도서 왔소.》

《살림이 자리잡혔습니까?》

옆에서 박중돈이 묻자 로인은 멀뚱히 상대편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그러께 여름 늦어들와 토성쌓으문서 농사락고 짓는디.···

대부금에 쌀꾸어 묵은거랑 있어 척식국서 어쩔라는지. 올해 가을은 아직 두구봐야 안단께.》

《아버님, 그전에 이 근방에서 살던 조선사람들도 그 마을에 있습니까?》

로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우리 복지향은 집단이주한 <개척민>들의 부락이란께. 이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갔어.··· 무신 ··· 마을이름두 없어지구.》

로인은 남의 불행이 마음에 씌는지 담배연기를 한숨섞어 길게 내불더니 곰방대를 털어 무명조끼의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임자네들은 무얼하는 사람들인기요?》

《돈벌이 좋다는 광산에 일하러가는 길입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혼자소리처럼 뇌였다.

《만수툰에 가는기구마.》

《아부님은 그 광산을 어떻게 압니까?》

《복지향서두 지난봄에 여덟이 뽑혀갔은께. 우리 집 둘째두 뽑혀갔어. 거기 간 사람덜 삯전은 현공소서 달마다 내려오는디. 살림에 보탬이 된다께···.

그래두 집에서 같이 살문서 농사짓기보담 못하다, 못해.》

살아가는 형편을 두루 알아보면서 박중돈은 지엔다오(간도)의 농촌지대 군중공작의 방향과 방도를 제시해주시던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상기했다. 일제의 수탈과 통제정책이 우심해져서 농민들이 곁을 주지 않으며 최근년간에 조선에서 들어온 《개척민》들과는 접촉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정을 설명하시고나서 이렇게 강조하시였었다.

《미나미총독이라는자는 <개척민>들을 이주시켜 토성을 쌓고 수비대를 배치한 집단부락에 몰아넣고 유격대와 접촉하지 못하게할뿐 아니라 유격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꾸려놓았소.

그렇지만 우리는 경계가 삼엄한 그 집단부락들을 점령하고 조선농민들인 그 <개척민>들을 반일의 길에 묶어세워야 하오. 총포를 쏘면서 공격하여 점령할것이 아니라 새 전략의 방침대로 군중공작으로 속으로부터 허물어서 점령해야 하오.···》

박중돈은 자기네 공작조가 목적하고 온 지대에서 형체가 없어진 이전날의 마을을 찾아다닐것이 아니라 새로 생겨난 《개척민》부락을 대상해서 일을 벌리기로 결심했다. 혁명화하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하여 물러설수가 없었을뿐더러 호기심과 함께 의욕이 부쩍 솟구쳤다. 집단부락의 경비정형과 주민들의 의식상태를 알아보려고 한가지 부탁을 꺼냈다.

《아버님, 우리도 그 광산에 가는 길인데 오늘밤 묵어갈데가 없어 야단입니다. 무슨 방도가 없을가요?》

로인은 그들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면서 말했다.

《내사 집에 데려가고싶다만 성문단속이 심하니께··· 무신 도리가 없구마.···》

땅바닥을 굽어보며 눈을 껌뻑이다가 머리를 쳐들었다.

《고개를 넘어가문 밭에서 우리 맏이가 날 기다리문서 일할기요. 우리 맏이는 부락에서 <청년의용대> 대장으로 있으니께 성문지키는 수비대장이랑 자위단장두 말을 잘 들어주오. 그애가 말하문 무슨 수가 있을끼라.》

마음싸지 않았으나 이제와서 달리 어쩔수도 없었다.

로인은 고개를 오르면서 맏아들자랑을 하는것이였다.

《우리 맏이사 워낙에 마음이 고정하고 부지런해 마을사람덜이 모두 치사한다네. 그러께 여게로 들오던 때에두 같이 오는 늙은이나 아이덜을 차에 올려주구 내려주구 짐을 보살펴주구 땀을 철철 흘리문서 남덜때문네 뛰여다니구 ··· 그래서 모두가 원령감네 맏이가 훌륭하다구, 덕천이가 사내싸다구··· 칭찬들을 했다니께.

지난봄에 광산징용자덜을 뽑을 때두 부락에서 공론덜이 싸움 싸우드키 많았소. 누구네는 안가는디 어째 우리 집에서 뽑나, 우리가 지엔다오루 농사하러왔지 징용나갈락고 왔나.···

우리 둘째가 뽑혔길래 나두 화가 났다니께. 알아보작구 향공소로 가는데 우리 덕천이가 오다가 날 붙잡고 오손도손 말하더군.

아부지, 모두가 싫다하고 온 부락이 떠들면 향장님이 딱해하구 경찰서놀음이 시작되구 일이 크게 번져질것 같소. 우리 집 농사는 나두 있구 셋째두 있으니 둘째를 징용에 보냅시다.··· 그럭해서 우리 둘째가 나서니 다른 사람덜두 마지 못해 따라간기요.

그러게 향장이랑 우리 덕천이한데는 삽삽하게 군다니께!

시내에 있는 《개척민》후원회 회장님두 우리 덕천이를 착실한 젊은이락구 기특하게 여기우.

회장님은 우리 고향사람이라는디 말이 없구 점잖은 사람이우. 일본가서 공부도 많이 한 유식한 사람이래···.》

고개를 넘어 다시 등성이에 올라서니 뉘엿이 뻗어내린 넓은 비탈에 가을한 수수밭이 펼쳐져있었다.

지경에 두메오리나무 두그루가 서있는 밭에서 수수단들을 묶어 초막처럼 엇걸어세우면서 농립을 쓴 젊은이 한사람이 일을 하고있었다.

《우리 덕천이요.》

로인은 그들을 돌아보며 웃어보이고는 부들망태를 멘채 그쪽으로 겅정겅정 걸어가는것이였다.

젊은이는 일손을 놓고 아버지를 맞더니 이쪽을 휘- 돌아보고나서 부들망태를 받아들고 그안을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쪽을 돌아보고 무엇인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것이였다.

이윽고 아버지와 아들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어디서 오시는분네들이우?》

하고 원덕천이 묻는것이였다.

《품팔러다니는 사람들이요. 안투쪽에서 오는 길이요.》

박중돈의 대답에 원덕천이 파고들었다.

《안투에서 무슨 일 했스미껴?》

《안투는 지나왔을뿐이지··· 실상은 조선에서 들어왔소. 흥남에서 부두공사를 하다가 돈벌이 좋다해서 간도에 찾아왔소.》

원덕천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량식은 팔아주지 못하미다-》

《그런 사정은 알지만 만수툰까지는 아직 이삼일 더 걸어야 하는데 굶으면서 갈수야 없지 않소!》

박중돈이 웃으며 대답하자 원덕천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향공소에 찾아가 사정하문 외려 나을텐데유. 향공소에 간닥하문 성문수비대두 조사하고 들여보내니께.》

《그런 생각두 해봤지만 관청에 가면 시끄러운 일이 많소. 묻고따지고 여기가라 저기가라··· 벌금내라 어쩌라··· 그러다나면 사흘길을 열흘가도 다 못가오.》

《···》

《우리도 살기 바빠 품팔러다니구 당신네두 살길을 찾아 만저우(만주)에까지 온 사람들이구··· 다 같은 가난한 조선사람들인데 어려운 때에 사정을 좀 봐주오.》

박중돈은 치미는 부아를 꾹 누르고 좋은 말로 비위를 써보았지만 저편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밭고랑을 굽어보면서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시방 부락에 들어가문 오늘은 성문으루 다시 못나와유. 량식을 가지구는 어림두 없어유.》

박중돈은 밭지경아래의 흙벽이 벌겋게 드러나고 물이 말라버린 골개울바닥을 돌아보고 소탈하게 말했다.

《추운때가 아니여서 여기서 밤을 새울테니 래일아침 일하러나올 때 가져다주오.》

《···》

돈을 내주었으나 아들 역시 받지 않았다. 좁은 이마밑에 작은 눈이 들어앉고 코마루가 덩실한 생김새가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은 젊은이였다.

오금을 꺾고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북해하던 로인이

《날이 찬디 산에서 어떻게 밤을 새울락고?》 하며 걱정했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서있다가 밭고랑을 타고 내려갔다.

그들 부자가 비탈밭아래에 내려서서 굽이돌아간 행길에 나타날 때까지 세사람은 유심히 지켜보면서 소감들을 나누었다.

《아들녀석은 무엇인지 딴 생각을 하는것 같소. 부락 <청년의용대>대장이라니까··· 일본놈들의 개질을 하겠지.》

《홍대포》가 중얼거리자 다른 대원이 덧붙였다.

《손이랑 보니 농사군은 농사군이고 정직한 젊은이 같은데··· 관청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는 고지식한 머저리구만.》

《일제의 억압통치가 빚어낸 저러루한 숙맥들이 아무데 가나 있기 마련이지.》

박중돈이 조소를 띄우고 아퀴짓듯 말하자 《홍대포》가 느슨하게 중얼거렸다.

《조장동무, 갑시다. 뒤일이 께름합니다.》

박중돈이 역시 경계심을 품으면서도 떠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주민들의 동향부터 상세히 알아야 하오. 이게 바로 군중공작이지.》

주변지형을 살피니 그들이 서있는 밭머리에서는 경사져오른 저편 릉선에 가리워 토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웃쪽 밭머리의 수림을 에돌아 소나무, 가둑나무들이 들어선 릉선마루에 올라섰다. 그러자 엇걸어세운 수수단무지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그쪽 비탈아래에 행길이 굽이돌아간 들판이 펼쳐지고 그 건너편에 망루식포대가 아니라 콩크리트화점이 사방에 설치된 우중충한 토성이 안겨왔다. 석양의 밝은 빛에 열려진 성문으로 원로인과 아들이 사라지는 모습도 또렷이 보였다. 성안의 집들은 보이지 않고 누렇게 풀이 말라가는 성벽우에서 통나무를 박아 도간도간 말뚝을 세운 가시철조망이 반짝반짝 해빛을 튕기고있었다.

《수비대 한개소대이상은 배겨있겠소!》

박중돈의 말에 《홍대포》가 공감했다.

《···자위단원들도 20∼30명쯤 될거고··· <청년의용대>라는것도 무장을 가지고있겠지요?》

《그럴거요.》

《<개척민>촌이라기보다 무슨 국경요새같습니다.》

《흥, 국경요새가 아니라 조선농민들을 가둬넣은 감옥같소!》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보초병들이 어슬렁거리는 성문주변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성문안에 들어선 원로인네 부자는 제나름의 걱정에 싸여 짚검불이 딩구는 마을길을 말없이 걸어갔다. 그들의 집은 부락변두리의 성벽가까이에 있었다. 갈림길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 아들이 터벅터벅 따라오는 로인을 기다리다가 말했다.

《아부진 먼저 가세유. 난 향공소에 들렸다 갈라우.》

그러지 않아 불안을 품고있던 로인은 고개를 쳐들며 맞갖지 않게 물었다.

《향공소엔 무신 일루?》

《향장님한테 말해야겠시요. 암만해두 그 사람들이 비적들같아유.》

로인은 불만스러운듯 혀를 끌끌 차더니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신수 멀쩡한 사람덜 보구 비적이라니! 그 사람덜 어디 남의 물건 뺏아먹을 강도 같더냐- 말이고 행동이고 다 우리같은 상사람이드라.》

타이르며 만류하는 진정이 력연했으나 아들은 얼굴을 찡기며 다가섰다.

《아부진 암것두 모르문서··· 가만 계셔유. 우리가 강습소에 가서 다 배웠단께. 농사군, 막벌이군행색으루 댕기구 도회지의 신사차림으루두 댕긴닥고··· 비적이 아니락두 낯선 사람을 보문 향공소나 주재소에 신고하락 하지 않던가베··· 후에 무신 사달이 생기문 어쩔락고 그래유-》

로인은 괴로운듯 한숨을 쉬고 우두커니 서있다가 조이삭이 무겁게 드리운 지게 진 농군이 가까이 오자 집쪽으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원덕천은 향장에게 신고하러가면서도 만저우로 떠나오기전에 강원도의 세포라는 산등판에 가서 《<개척민>강습》을 받던 일을 생각했다. 강습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점토질의 척박한 산등판에 징병훈련소를 짓는 토목공사에 시달렸고 틈틈히 모아놓고 준다는 강습은 만저우에 가서 《공산비적》을 경계하고 격퇴하는 강연과 모의훈련이였다.

집터를 닦고 통나무를 찍어 운반하면서 고생하다가 토질병에 걸려 피를 토하고 앓으면서 고향에 돌아가니 이민이 시작되였었다.···

원덕천의 신고를 받은 향장은 그더러 의용대를 집합시키라 이르고는 수비대병사로 뛰여갔다. 저녁그늘이 퍼져가는 마을이 술렁거리고 성문안에서 병정들이 출격준비에 분주탕을 피웠다.

하루의 마지막해빛이 누렇게 서린 성문에서 허연옷을 입은 사람이 나오더니 그 뒤를 따라 또 몇사람이 나왔다.

두사람은 토성앞을 에돌아간 대도로에 나와 우줄거리는 긴 그림자를 끌면서 서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모습이 비탈아래에 감겨들어 보이지 않을 때 성문으로 소달구지 한대가 천천히 나오고 동안을 두고 한대 또 한대 따라서는것이였다. 달구지들은 대도로에 나서자 두사람이 걸어간쪽과는 반대반향으로 길을 잡고 구부러졌다. 소몰이군들은 고삐잡은 손을 팔소매에 찌르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웅크리고 걸어갔다.

《이쪽으로 나온 두사람은 우리한테 오는게 아닐가요?》

긴장한 침묵속에서 《홍대포》가 물었다. 박중돈은 미간을 찌프린채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뭐··· 어떻게?》

하고 되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대원을 돌아봤다.

《여기서 감시하다가 정황이 생기면 뛰여오오. 우린 저쪽에 가있겠소. 적정이요!》

박중돈은 수림속을 빠져 밭머리에 이르자 산비탈에 올라선 흰옷 입은 사람들을 보았다.

《유치한 기만전술이요. 흥!》

랭소를 띄운 박중돈의 얼굴에서 찌프린 두눈섭이 푸들거렸다.

수수밭고랑을 타고넘으며 올라오는 두사람의 걸음걸이는 늘쩡늘쩡하면서도 기운차다.

《변장을 하고··· 무기를 가졌을거요.》

박중돈이 말하고있을 때 숨가쁘게 달려온 대원이 보고했다.

《조장동무, 달구지에 실은 쌀포대는 위장물입니다. 길굽이에서 병정들이 뛰여내려 저쪽 산비탈에 오릅니다.

성안에서 몽둥이와 쇠스랑을 든 사람들이 몰려나와 아래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를 포위합니다.》

박중돈은

《흥!》

하고 코웃음치고는 동무들에게 명령했다.

《이제 산등성이에 올라가면 홍동무는 슬쩍 빠져 릉선밑에 붙어서 여기로 돌아와야 하오. 놈들이 근처에 매복하는가를 살피시오. 우리가 만날 자리는 오리나무아래 있는 골바닥이요.

자, 뛰기요. 소란스럽게 ··· 사행식으로···》

세사람은 나무가지를 분지르며 산등성이로 올리달렸다.

아래쪽에서 총소리가 울렸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시간을 가늠하며 달리던 박중돈은 동무들을 멈춰세우고 사격을 명령했다. 한 놈이 쓰러지는것을 보고 또다시 올리달렸다.

등성이에 이른 그들은 동쪽비탈을 타고 일선형을 지어 올라오는 적병들의 무리를 보자 얕은 골짜기를 건너 맞은편 봉우리에 치달아올랐다. 락조의 밝은 빛에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 적들은 어지럽게 총을 쏘면서 수림속을 헤쳐오고있었다.

가을 콩꼬투리 튀듯 총소리가 끊임없이 탕탕거리고 등뒤에서 울부짖는 소리들이 소란했다.

쉬익-쉬-쉬-

쭝 쭝 쭝-

박중돈은 옆구리가 뜨금해서 한방 맞았음을 느꼈으나 수목들을 헤치며 상등성이까지 뛰여올라갔다.

대원이 뒤따라선것을 보고는 더 내려가지 않고 릉선비탈에 붙어 락엽을 들쓰고 누웠다. 추격하는 적들이 부르고 소리치면서 그곳을 지나칠 때 싸창을 틀어쥐고 엎드려있었다.

산속은 빨리도 어두워졌다.

정적속에 오래동안 누워있다가 소리없이 일어났다. 넘어온 산등성이를 되넘어서서 은밀하게 수림속을 뚫고나갔다.

두어시간이 지나 그들이 수수밭지경에 이르렀을 때 《홍대포》는 오리나무아래의 골바닥에서 기다리고있었다.

《놈들이 철수한지가 오랩니다. 이 근처에는 복병이 없습니다. 저쪽에 너불어졌던 시체를 담가에 메여갑디다. 놈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니 경찰수비대의 수색병장인것 같습니다.》

하고 《홍대포》가 박중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박중돈은 배낭을 벗어놓고 상의를 벗었다. 내의를 찌어 붕대를 만들면서 동무들에게 말했다.

《내 옆구리를 처매주오. 한방 맞았소. 산속에 엎드려있을 때 송화가루를 한줌 꺼내 지혈은 시켰는데··· 제자리에 붙어있는지 모르겠소.》

《많이 다쳤습니까?》

두대원은 놀라 부르짖었다. 겨드랑이밑을 더듬으면서 다시 지혈제를 뿌리고 든든히 처맸다.

《대단치 않소. 두치만 들이맞았다면 황천객이 될번 했소. 풋내기들의 눈 먼 총알에 말이요!》

박중돈은 쓰겁게 웃었다.

철수하자고 하자 《홍대포》가 속삭였다.

《조장동무, 이대로 부옇게 돌아가겠습니까? 당장 적들에게 골탕을 먹일 방도는 없으니··· 수수이삭이라도 짤라서 한배낭씩 지고갑시다. 량식이 없는데···》

박중돈은 한동안이 지나 조용히 대답했다.

《식량이 없을거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일대의 인민들속에 반일조직을 꾸리고 혁명적인 지반을 다지려고 우리를 파견했는데··· 그럴수 없소.》

분해서 입술을 깨물고있다가 털어놓았다.

《<개척민>들이 놀아나는 꼴이 괘씸하긴 하지만 보복을 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오. 참아야지. 식량은 따로 해결합시다.》

격하기 잘하던 박중돈의 이전날 같지 않은 침착하고 진중한 태도에 할 말이 없어진 대원들도 그를 따라 말없이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