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5


 
 

제 2 장

15

 

처창즈의 림시밀영을 떠나 거의 한달이나 혈로를 헤치며 기지를 향해 행군하던 대오는 대흑령산줄기가 갈라져나가는 산지대에 이르러서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둥닝(동녕)쪽으로 곧추 나가면 목적지가 훨씬 가까왔지만 사령관동지께서 왕칭(왕청)쪽으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셨던것이다. 닥쳐온 추위속에서 안정된 휴식도 변변한 식사도 없이 밤길을 걷고 산속을 헤쳐온 소부대성원들은 모두가 지치고 쇠약해졌지만 띠를 졸라매면서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 일대의 지형을 손금보듯 알고계시는 사령관동지께서 헐하고 안전한 길로 대오를 이끌고가시리라고 생각들 했다.

허나 왕칭지경에 들어서니 도로에는 《토벌대》를 실은 자동차들이 더 자주 지나다녔고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마다에 군경들의 경계가 한결 삼엄했다.

언제나 사령부의 안전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있는 강준의 표정은 남달리 심각했다. 분비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산등판에서 휴식할 때 강준은 행군방향을 잡으려고 등마루에 올라 눈덮인 산발들을 바라보시는 사령관동지에게로 다가가 특별히 다른 목적이 없으시다면 지금이라도 동쪽으로 나가는편이 빠르고 안전할것 같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이께서는 등성마루에서 천천히 내려와 모여앉은 대원들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왕칭땅으로 깊이 들어가는걸 동무들이 량해해주기 바라오. 특별한 작전이나 피치 못한 일이 있는건 아니요. 다만 나는 이번길에 오재영동무의 아버지인 오로인을 만나보려고 하오. 막내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어느때든 알게 되겠지만 풍문에 듣거나 우연히 알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허전하겠소!

그래서 내가 찾아가 소식을 전하고 위로해드리려고 하오.》

대원들도 지휘원들도 머리를 깊이 숙이고 말이 없었다.

행군이 다시 계속되자 모두들 춥고 배고파하던 기색은 씻은듯이 나타내지 않았다.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척후에도 나가고 후위도 맡아나서면서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성심으로 받들었다.

그들은 모두 전사한 재영동무의 일을 자기 일같이 여겼고 사령관동지께서 지금 자기 부모들을 찾아가시는 길인듯 감격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몇해전에 오재영이네 집에 다녀갔던 일이 있어 그 마을로 가는 길을 알고계시였다.

그것은 유격근거지가 해산된 직후의 일이였다.

그무렵 베이만(북만)에로의 원정준비때문에 다망한 속에서도 적통치구역에 내려간 인민들에 대한 생활보장정형을 료해하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로인이 구정부에서 급여하는 원호금을 받지 않고 떠나갔다는 사실을 아시고 의아해 하시였다.

둘째아들은 이미 지하활동을 하다가 체포학살되였고 다른 아들들은 모두 혁명군에서 싸우고있어 집에는 앓고있는 늙은 안해와 어린 딸밖에 없는 로인이 아무런 생활수단도 없이 적통치구역에 내려가 당장 어떻게 목숨부지를 하겠는가.···

구정부일군의 말에 의하면 그때 오로인은 자식들을 혁명의 길에 내세운 내가 어찌 넉넉치 못한 혁명자금을 축내겠소. 내 힘으로 살아가겠으니 그 돈은 더 요긴한 일에 써주오 하면서 얼마되지 않는 종곡마저 받지 않고 남들에게 양보했다는것이다.

그 일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원정대오가 로인이 사는 마을가까이를 지나게 되였을 때 부대를 휴식시킨 후 전령병인 오재영이를 데리고 로인을 찾아떠나셨던것이다.

오로인이 친척집 곁방살이로 자리를 잡았다는 곳은 촌공소부락에서도 시오리나 떨어진 산간이였다. 산골물이 합쳐지는 골안에는 신록이 짙어가고있었다. 개울가의 산기슭에 말라붙은 딱정벌레들마냥 재빛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널려있었다. 집집의 문들은 열려있고 개울가엔 푸성귀 담은 함지들이 놓여있건만 산우에서 내려다보이는 좁은 마당이나 등성이의 오솔길에 인적은 없었다.

부대기밭에 일하러 나간것이였다.

골안을 오르다가 갈라져 들어간 좁은 골짜기에 새로 일군 화전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일어선듯 한 그 비탈에서 웃동을 벗어붙인 농군이 타다남은 등걸을 뽑으며 밭고랑을 짓고있었다. 오재영은 멀리서도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고 나무등걸우에 놓았던 적삼을 대충 걸치며 움직이던 로인은 밭머리에 서계시는 김일성동지를 알아보자 곽지를 던지고 손을 털며 밭고랑을 타고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벌어진 동가슴을 가리우려고 적삼자락을 더듬는 손에 단추고리가 잡히지 않아 후둘거렸고 머리에 동였던 땀배인 무명수건을 벗어쥔채 기쁘고 황송하여 허리굽힌 얼굴에서 락수물처럼 땀이 흘렀다.

풀숲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이께서 찾아오신 사연을 듣고는 볕에 탄 얼굴이 근엄하게 굳어졌고 살림에 보태라고 내여드린 웅담덩이를 받아들고는 망두석이 되여 눈만 슴벅이는데 눈시울에 번져나오는 눈물이 볼을 적시였다.

《장군님!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싸우시는분이 어찌 우리들 걱정꺼지 하십니까!···》

살아가는 형편을 헌헌하게 말씀드리고 사령관동지께서 떠나실 때가 되자 점심한끼 대접하지 못함을 죄스러워하는것이였다.

《재영아, 어디가서나 장군님을 명심하여 모셔라. 늙은 애비가 사람들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잘 처신해다오!》

아들에게 절절하게 부탁하고는 비탈우에 올라서서 얼기설기 주름진 이마우에 손을 얹고 수림속으로 멀어져가는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래웠었다.···

그때로부터 다섯해가 지나 사령관동지께서 지금 다시 이 길을 걸으시는터이였다. 하지만 이번은 생각이 많고 마음이 무거운 걸음이였다.

섣달의 매운 바람이 부는 저녁녘에 마을뒤산에 당도했다.

눈에 덮여 몰라보게 된 산천에서 울퉁불퉁 얼어붙은 골개울이며 허옇게 부풀어 빙판을 이룬 합수목이 낯익었다.

산기슭과 합수목 건너의 언덕밑으로 갑절이나 늘어난 초가집들이 한겨울의 봉분처럼 눈에 덮여 고요히 하루해를 지우고있었다.

가느다란 구새통에서 오르는 실연기들이 락조가 스러져가는 허공중에서 푸르무레하게 그물거렸다.

땔나무를 끌어내린 발구길을 따라 골바닥에 내려섰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시닥나무가 한길씩이나 뒤엉키고 도간도간 소나무들이 서있는 비탈아래에 자리를 잡고 어둠을 타서 강준을 마을로 내려보내시였다.

마을이 가까왔으므로 불도 피우지 못했다.

밤이 들어가면서 바람이 터졌다. 하늬바람은 눈가루를 갈기처럼 추켜올리고 내닫다가 채찍에라도 맞은듯 돌개치면서 사방에 휘뿌렸다.

행군에 지친 대원들은 눈속에 꼬부리고 누워 잠들었으나 그이께서는 소나무아래서 이쪽저쪽 옮겨밟으면서 오로인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시였다.

이제 나타날 로인에게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재영이 전사했다고 말씀드려야 할 일이 난감하고 가슴아프시였다. 하지만 돌아올수 없는 그 아들을 속절없이 기다리게 될 로인의 정상을 생각하면 일시 괴롭더라도 진상을 알려드리고 위안하며 힘을 주어야만 했다.

심각한 그 소식을 후날 풍문으로 듣게 되면 귀한 자식들 모두를 나라찾는 싸움에 내보낸 어버이마음이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그러니 나라의 운명도 구국용사들의 운명도 한몸에 맡아안고 나서신 자신께서 꼭 전해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으시였다.

자정무렵이 되자 바람은 너누룩해졌으나 대원들의 마음속에서는 불안이 더욱 고개를 추겨들었다.

전령병이 다가와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제가 좀 내려가 보랍니까? 암만해도 무슨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더 기다려보기요.》

불안은 그이의 마음속에서도 꿈틀거렸으나 차분한 믿음으로 누르시였다. 그이께서는 강준을 굳게 믿고계시였다. 오로인이 지금 어디서 사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여러해전에 거접하던 친척집을 알려주었으니 마을사람들 모르게 로인을 찾아가는것도 헐치는 않을것이였다.

다른 대원이 참지 못하고 의견을 제기했다.

《사령관동지, 마을에 내려가 쉬여도 별일 없을것 같습니다. 적들이 있으면 몇놈이나 있겠습니까! 찍소리 못합니다.》

《적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요. 우리는 편안하게 쉬고갈수 있지만 후에 마을사람들이 화를 입소. 더군다나 오로인네는 결단이 날거요.》

사령관동지의 말씀이였다. 틀림없이 그 집은 감시속에 있을것이였다.

《···》

겨울밤은 정적에 싸여 깊어갔다. 골바닥의 얼음버캐밑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돌돌거렸다.

바람없는 어둠속에서 추위가 독을 썼다. 골안길에 검은 형체가 어른거리더니 차츰 뚜렷해지는것이였다. 어쩐 일인지 한사람뿐이였다. 모두 의혹을 품고 아래쪽을 주시했다. 그러자 초간히 떨어져 따라오는 사람이 보였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강준이 숨을 헐떡거리며 사령관동지앞에 멎어섰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마을돌이 온 사람이 돌아간 뒤에 만났는데 밥을 새로 짓느라고 더 지체됐습니다. 장군님을 빈손으로 만날수 없다고 아바이가 고집쓰는 바람에 어쩔수 없었습니다.》

강준은 짐을 지고 뜨직뜨직 올라오는 로인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제가 지고가겠다 해도 쇠통 듣지 않습니다. 꼭 자기가 지고간다는겁니다.》

《수고했소. 살아가는 형편은 어렵겠지?》

그렇게 물으면서 아래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런데다 두달전에 어머니가 사망했습니다.》 하고 따라오며 대답한 강준의 말에 우뚝 걸음을 멈추시였다.

설음이 북받쳐오르고 가슴이 터질것만 같으시였다. 헌 이불에 쪽박과 그릇가지들을 나누어 이고지고 오롱조롱한 자식들을 거느리며 고향떠나 살길을 찾아헤맨, 한편생에 믿고 의지해오던 안해마저 잃다니!

총포를 쏘아대며 밀려드는 적의 대군을 앞에 보면서도 눈섭한오리 까딱하지 않으시던 김일성장군께서 지금 음식망태를 지고 부축받으며 걸어오는 허약한 로인을 맞아나가시면서는 갈마드는 생각을 종잡지 못하고 당황해하시였다. 앞에까지 바투 다가가신 그이께서는 두팔 벌려 로인을 붙안으며

《아버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하고 뜨거운 격정을 쏟으시였다.

《장군님, 이게 무슨 일이오이까? 이 엄동설한에 불도 없이 산에서 밤을 새우시다니··· 어서 집으로 내려갑세다.》

《괜찮습니다. 아버님, 우리는 곧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외다. 이러다간 중병이 듭니다. 내려갑세다. 마을에 <토벌대>나 순경들이 없습네다. 내려가서 몸을 녹이셔야 합네다.》

로인은 어둠속에서 장군님의 팔소매를 더듬어잡고 끌려고하다가 얇은 옷가지를 느끼자

《아니, 이거···》

하고 놀라면서 여위고 앙상한 두손으로 그이의 언손을 감싸쥐였다.

《장군님, 이 엄동설한에 홑옷을 입고 몸을 얼구시다니!》

그리고는 펄쩍 생각난듯 밥을 넣어 짊어졌던 꼴망태를 벗어놓고 커다란 덧저고리의 단추를 끌르면서 황황히 뇌였다.

《이거 노친네가 지은 성한 덧저고리외다. 장군님, 밤에야 일있습네까. ··· 이걸 우에 껴입으십시오.》

로인이 덧옷을 벗지 못하게 두팔로 꽉 안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이 뻐근하고 눈물이 고여올라 한동안 아무말씀도 못하시였다.

끌끌한 네 아들을 혁명의 길에 떠나보낸 아버지,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싸움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오늘은 이국의 깊은 산간에서 허리펼새 없이 근면하게 농사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성실한 로인, 세월이 흘러 꿋꿋하던 허리도 굽어들어 체소해지고 고락을 같이 하던 로친마저 세상을 떠나 의지할데가 없어진 오늘에도 혁명군을 위해 더운밥을 지어오려고 마음을 썼으며 지금은 단벌덧저고리까지 벗어주고싶어하는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조선의 하늘과 땅,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고싶으시였다. 하지만 지금 그이께는 어깨에 멘 한자루의 싸창과 군용지도가 든 가방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님, 이러지 마십시오.》

《아니외다, 장군님. 집에 있는 사람이야 추운들 무슨 걱정이겠소이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얼어드는 손으로 로인의 단추를 채워드리면서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아버님,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고 싸움터에 나선 몸들이니 추위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문 여기서라두 더운밥을 드시우. 식을가봐 포대기루 쌌지만 안에 베보자기를 씌웠으니··· 깨끗합네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허리를 꼬부리고 망태를 끌르는 로인의 손을 잡아일으켜 세우시였다.

《아직 식지 않았쇠다. 여기 약주도 있습네다. 장군님께 드리려고 내 손으로 고아 여러해동안 건사해오는 산삼술이외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그이의 목소리는 비감에 젖어있었다.

《그동안 어머님이 사망하셨다니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로인은 어깨를 구부리고 설음에 겨운 애처로운 목소리로

《한평생 고생만 시키다가···》

하고 가슴아프게 후회하면서 터져나올듯 한 오열을 참느라 흐윽- 흐윽- 목이 메게 흐느끼였다. 했으나 이어 마음을 갈앉히며 너풀거리는 덧저고리소매로 눈언저리를 문지르고 꺼질듯이 후유- 한숨을 쉬였다.

《···명이 그뿐이니 어쩌겠습네까. 그저 떠나간 자식들이 웃으며 돌아오는 모양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게··· 애통합네다.》

다시 울먹이며 끝을 맺은 마지막말에 주변에 서있는 대원들은 눈물을 삼켰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얼굴도 손발도 온통 얼어드는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터질듯 한 가슴을 부여안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살림형편을 물으시였다. 진작 알고계실뿐더러 지금 이 자리에서는 요긴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으시면서 여기까지 걸어오는동안 모질게 다잡았던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 괴로우시였다. 혁명의 가시덤불길을 수천만리 헤쳐오시면서 고통과 비애에 흔들린적이 없었고 엄혹한 진실을 외면한적이 없었던 그이였으나 고통과 외로움에 가슴이 말라버린 로인을 지금만은 위로하고싶었고 부축해드리고싶으시였다. 로인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는 따뜻한 말씀조차 드릴수 없는 형편에 막내아들이 전사한 소식은 차마 입밖에 낼수가 없으시였다. 언제건 전하지 않을수 없는 그 소식은 로인의 기력이 추서고 마음이 안정된 때에, 로인에게 힘이 되고 행복이 될만 한 일을 해놓은 뒤에 알려드리리라 마음을 정하시였다.

《아버님, 우리는 이 근처를 지나다가 아버님네 생활이 걱정되여 잠간 들렸습니다. 재영동무는 지금 베이만쪽에서 싸우고있습니다.···

제가 후날 꼭 아버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어려운 세월이지만 부디 마음을 굳게 가지고 몸성히 견디여주십시오.···》

듣고있던 대원들은 안도감에 싸여 큰숨을 쉬였고 로인은 감격하여 허리를 굽혔다.

《장군님, 저때문에 어찌 이 험한 길을 걸으셨소이까!

백골이 진토되도록 잊지 않겠소이다.》

어둠속에서 나눈 작별은 털어놓지 못한 비애로 하여 더욱 가슴이 쓰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조선혁명을 기필코 승리의 길로 이끌어가리라 마음다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