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3


 
 

제 2 장

13

 

원동에서 열리게 될 혁명군대표들의 회의는 조선혁명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였으므로 성숙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중대사였다.

전구에서 오래동안 떠나가 있어야 할 사령관동지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우시였다. 새로운 전략에 이행하여 아직 이렇다하게 성과를 올리지 못했을뿐더러 좌절과 난관을 겪고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자리도 든든히 잡지 못한 소부대소조들을 겨울이 닥쳐오고있는 때에 광활한 전선 각곳에 남겨놓고 가자니 생각이 많으시였다.

어렵게 첫걸음을 내디딘 지엔다오(간도)지방에서의 군중공작도 당분간은 지도할수 없게 되였으므로 새로 한개의 소부대를 편성하여 남겨놓으려고 결심하시고 그들에게 부여할 임무와 수행방도를 모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전에 만났던 국내지하조직책임자들을 통해 지금 국내에서, 특히 남부조선일대에서 일본의 수많은 군수공장 로무계원들이 당지의 경찰과 짜고들어 조선의 청장년들을 닥치는대로 강제징집하여 끌어가는 정형을 알고계셨으므로 그런 기회를 리용하여 공작원들을 일본에 더많이 파견하실 구상도 하고 계시였다.

하지만 령남, 호남지방의 생활풍습을 잘 아는 새로 파견할 대상자들을 당장 가까이에 부를수 없는 형편이여서 기지에 들어가 파견하기로 하시였다.

길주와 학성지방의 농조지도자들과의 공작을 위해 공작원들을 파견하실 때엔 백무선을 거쳐 나가라고 이르시였다. 거기 무산, 연사지구에서는 이미 김정숙동지께서 조직하고 지도하시던 조국광복회의 하부조직이 활동하고있었던것이다.

회령 등 함경북도의 탄광지구에는 그 고장 출신인 오백룡을 책임자로 하여 공작조를 파견하려고 하셨는데 오백룡소부대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형편이였다. 은밀하게 진행되여야 할 식량공작이 총격전속에서 벌어졌다니 임무를 간고하게 수행할 전사들을 생각하면 무척 괴로우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두양산(오도양산)밀영을 떠나기전에 돌아오지 못한 오백룡소부대를 위해 겨울옷과 량식을 파묻게 하시였다. 진대나무밑에 구뎅이를 깊이 파고 마른 나무가지와 락엽을 깔았으며 손바느질로 정성들여 지은 옷들과 사령부친솔소부대성원들이 배를 곯으면서도 간수해오던 반마대나 되는 쌀과 강냉이를 꼼꼼히 묻었다.

대원병실을 지었던 곳에 우등불자리를 남기고 재무지속에 그들만이 알수 있는 표식을 남겨두었다.

그리고는 소부대성원들을 이끌고 황거우령(황구령)아래의 밀영병원을 향해 떠나시였다.

밀영병원에서 치료받고있는 부상당한 대원들을 어느 한시도 잊으신적이 없었지만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소부대들을 지도하시느라 방문할 사이가 없으시였다. 먼길을 떠나기전에 병원에 찾아가 환자들에 대한 치료정형도 알아보고 겨울동안 여기에 남아있어야 할 그들을 위로하며 고무해주고싶으시였다.

또한 회복정형을 보아 새로운 임무도 주려고 하시였다.

일행은 깊은 골짜기에 수목이 울창하고 깎아지른듯 한 비탈이 뻗어오른 험산지대를 행군했다. 경위대원들과 전령병들이 큼직한 짐을 지고 걸었다. 그 짐들속에는 얼마간의 쌀이며 약재 등 대원들자신이 마련하거나 인민들의 지성어린 지원물자로 만든 생활필수품들이 들어있었다.

수림속을 꿰질러간 오솔길은 잡초와 락엽에 묻혀 형적을 가리기 어려웠다. 사흘만에 병원이 자리잡은 골짜기에 이르니 늦가을의 짧은 해가 저물고있었다.

일행이 바위비탈을 타고 산등판으로 오르는데 웃쪽 솔밭속에서 바닥초가 소리쳐 저지시켰다. 이쪽에서 응답하자 의아해서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이어 녀대원의 모습이 얼른거리더니 울먹이는 부르짖음이 바위츠렁에 쩌렁-하니 울리였다.

《사령관동지-》

녀대원은 벼랑길에서 미츠러지고 마른 넝쿨에 걸채여 비칠거리며 달려왔다. 부상자치료를 맡아보는 리순정이였다.

환하게 웃으시는 사령관동지앞에 와서 걸음을 멈추고 군모의 채양에 손을 올려 인사를 드리는 녀대원의 크고 길숨한 눈에는 행복감이 어려있었다. 그이께서는 살이 빠져 더욱 갸름해진듯 한 녀대원의 얼굴을 여겨보시다가 아귀세고 꽛꽛한 손을 굳게 잡아주시면서 격정을 누르고 따뜻하게 말씀하시였다.

《순정동무, 부상자들을 책임지고 얼마나 고생하오!》

행복한 웃음이 어린 처녀의 눈에 구슬같은 눈물이 핑그르 돌더니 볼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녀대원은 민망하여 얼른 손바닥으로 훔치고 이슬기 촉촉한 눈을 들어 그이를 쳐다보며 더욱 밝게 웃었다.

《사령관동지, 아무 고생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걱정없이 지내고있습니다.》

격동된 리순정의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진 그이께서는 오히려 대범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따르는 대원들도 반갑게 만나 녀대원의 팔을 이끌며 벼랑길을 따라 등성이에 올라섰다. 솔밭을 지나서 황량한 수림사이로 지팽이에 의지하거나 부축을 받으며 이쪽으로 움직이는 모습들이 사라져가는 저녁해빛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알뜰하게 빨고 기운, 빛이 바랜 군복을 입은 수척한 얼굴들에 감격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날밤은 밀영병원이 명절을 맞은듯 한 분위기였다.

겨울군복을 타입고 저녁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등불을 밝히고 사령관동지의 두리에 모여앉아 밤이 깊도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안팎의 정세며 샤오하얼(소할바령)회의 방침, 소부대활동에서의 경험과 교훈 등을 분석적으로 말씀해주시였다.

명절같은 분위기는 이튿날 아침에도 떠돌았다. 그이께서는 친솔소부대성원들과 더불어 더덕이며 도토리음식으로 끼니를 에우며 환자들을 위해 아껴오던 찹쌀로 떡을 쳐서 아침식탁을 푸짐하게 마련해주시였던것이다.

아침나절에 부상자들의 치료와 회복정형을 상세히 료해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병실앞 봇나무아래에 놓인 통나무걸상에 리순정이와 나란히 앉아 금후의 치료대책을 의논하시였다. 녀대원의 건강이며 사업과 생활에서 애로되는 점을 하나하나 료해하시고 나서 부모들의 소식은 더러 듣느냐고 물으시였다. 녀대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묵을 끌다가 흥분을 누르며 조용히 대답했다.

《시내에서 떠나갔다는것만 알지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침착해지려고 애쓰는 녀대원의 표정과 대답으로써 그의 심정을 리해하시였다. 오백룡소부대의 중간보고를 가지고 오다가 부상당한 통신원이 여기서 치료받고있으니 시난차(서남차)촌장에 대한 말을 들었을수도 있고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캐여물었을수도 있으리라 짐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온화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물으시였다.

《부모님들이 어디로 옮겨갔으리라고 짐작되는바도 없소?》

《고향으로 나가지 않았으면 외삼촌네가 살고있는 안도쪽에 갔을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외삼촌네와는 자주 오고가고 했습니다.》

《외삼촌은 안도에서 무슨 일을 하였소?》

《척식회사에서 측량기수로 일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심중해졌으나 더 묻지 않으시였다. 시난차촌장의 배신행위에 대한 보고를 들은 때부터 막연하게 떠오른 추측이 근사해지고 보니 더욱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시난차는 안투(안도)시내에서 멀지 않은 농촌마을이여서 그쪽으로 흘러갔을수도 있는 일이였다. 리순정의 기대어린 시선을 느끼신 그이의 가슴은 터질듯이 아팠으나 오백룡소부대가 촌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매듭지었는지를 알지 못하니 다른 말은 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 자기때문에 걱정하고계심을 감촉한 리순정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차분하게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저의 부모들이나 저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혁명의 길에 나선 전사가 어찌 가정이나 부모형제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와 하겠습니까! 저는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령관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녀대원의 기특한 말에 그이의 심정은 오히려 서글퍼지시였다.

《순정동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서 잊어지겠소! 꿈속에서도 잊을수 없는것이 떠나온 고향과 부모형제들이지···

하지만 우리는 부모형제나 친근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때문에 자기 사명을 잊어서는 안되오. 인정에 끌려 혁명가의 근본립장, 혁명적인 원칙을 망각해서는 절대로 안되오.》

다소곳이 고개숙인 녀대원을 여겨보시던 그이께서는 병원성원들의 개성과 준비정도에 대해 관심을 품고 알아보시다가 차석진동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였다.

리순정은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있다가 소리없이 한숨을 쉬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훌륭한 청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몹시 따르고 사랑했습니다. 진실하고 착한 청년이고 고상한 리념을 지녔기에 그 동무를 따라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혁명대오에 들어온 후로는 그 동무가 저를 멀리하면서 랭담하게 대했습니다. 이 몇해동안은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리순정은 병실마당에 굴러온 오그라든 가랑잎을 무심하게 굽어보면서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가리우려는듯 웃음을 지었다. 녀전사의 의지와 자존심을 나타내는 그 웃음은 오히려 그이의 가슴을 쓰리게 하는것이였다. 한동안이 지나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차석진동무는 혁명에 충실한 훌륭한 동지요. 이전날 순정동무를 멀리하고 랭담하게 대했던것은 석진동무로서는 책임질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었기때문이였소.》

《···》

《석진동무는 지금도 여전히 순정이를 생각하고있소. 먼곳에서 활동하다가 얼마전에 중요한 일이 있어 사령부에 찾아왔었는데 동무를 그리워하면서 만나고싶어했소. 우리도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고싶었지만 공작지에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어 떠나갔소.

순정동무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소.》

긴장하게 듣고있던 리순정은 행복감에 목이 메여 《사령관동지!》하고 흐느끼며 부르짖었다. 그이의 팔을 두손으로 꼭 그러잡고 눈물을 흘릴뿐 더 말을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진정을 알게 된것도 기뻤지만 평범한 대원들의 가슴속에 엉킨 사연들을 헤아리고 그 희망을 꽃피워주려고 마음쓰신 사령관동지의 지극한 인정에 감격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곳을 떠나시기에 앞서 박중돈을 따로 불러 밀영병원에 남아있게 되는 성원들이 앞으로 해야 할 활동방향을 제시하시였다.

우선 밀영병원을 로획한 식료품이 비장되여 있으며 위장조건이 좋은 링어링(령액령)산줄기의 중동부 산간밀영에 옮기도록 하시였다.

《··· 거기서 경계대책을 철저히 세우고 겨울동안은 치료사업에 집중하시오.

봄이 되면 새로 남게 되는 두 동무와 건강이 회복된 대원들로 소부대를 편성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야겠소.》

크지 않은 상처때문에 갑갑한 병원생활을 해오던 박중돈은 전투임무가 부여되는 바람에 흥분하여 시무룩이 웃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소부대의 기본임무는 옌지(연길)시가주변과 복지향일대의 농촌들에 혁명적인 군중지반을 닦는것이요. 그것을 위해 복지향에서 옌지에 이르는 중간지대의 산재부락에 발판을 마련하고 <개척민>들과 원주민들속에서 군중공작을 벌리시오.

일제가 조선사람들사이에 리간과 알륵을 조장하려고 획책하는만큼 놈들의 기도를 폭로하고 반대하면서 반일조직을 꾸리고 사람들을 반일투쟁에 묶어세워야 하오···

소부대는 또한 시내의 지하조직과 련계를 가지고 협동하여 인민들의 반일감정을 앙양시킬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야 하오.

놈들의 면상을 불이 번쩍나게 답새기란 말이요···》

박중돈은 흥분하여 결의를 가다듬었다. 조봉길이와의 접선암호를 알려주신 그이께서는 전령병이 지고다니던 애양피외투를 박중돈에게 내여주면서 은근하게 말씀하시였다.

《이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한 애국지사가 나에게 선물한 외투인데 박중돈동무가 입으시오. 박중돈동무는 상처자리가 많은데다 지금도 상처가 다 났지 않았으니 몸을 얼구지 말아야 하오.》

애양피로 지은 고급외투를 받아든 박중돈은 이렇듯 희한한 옷을 자기가 받아서 일없겠느냐고 묻는듯 둘러선 동지들을 돌아보았다. 대원들은 모두 이제 먼길을 가셔야 할 그이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후더워져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였다.···